'4가지' 없는 박근혜정부 막전막후

아버지 따라잡기?…시절이 다르잖아요

[일요시사=정치팀]집권 2년차로 접어든 박근혜정부에는 꼭 필요하지만 찾아볼 수 없는 네 가지가 있다. 제대로 된 인사, 소통, 공약 이행 의지, 시대적 과제에 대한 대안 등이다. 외형상 50% 중후반대의 안정적인 지지율을 보이며 순항 중인 듯하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부족한 네 가지로 인해 향후에도 순항할지는 의문이다. 역으로 이것만 보완한다면 남은 임기도 성공적으로 보낼 가능성이 높다. 박근혜정부에 필요한 네 가지를 <일요시사>에서 파헤쳐봤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의 2월17∼20일 여론조사 결과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은 56%를 기록했다. 취임 초 잇단 인사실패와 불통 논란에 41%까지 떨어졌던 지지율을 차근차근 만회해 집권 1년이 된 시점에서 대선 당시 득표율(51.6%)보다 높은 지지율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는 민주화 이후 집권한 역대 대통령들과 비교해도 김대중 전 대통령(60%)을 제외하고 가장 높은 수준이다(조사방식-휴대전화 RDD 전화조사원 인터뷰, 조사대상-전국 유권자 1218명, 표본오차-95%신뢰수준에 ±2.8%p, 응답률-15%).

외형상 선전
내부는 불안

이와 같은 지지율은 지난 1년 대립과 갈등으로 점철됐던 내치에도 불구하고 아직 식지 않은 국민의 기대와 활발한 외교 활동의 성과가 반영된 결과로 분석된다. 그렇지만 남은 임기도 순항할지는 미지수다. 원활한 국정운영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지만 없는 네 가지가 있기 때문이다.
우선 박근혜정부에는 '제대로 된 인사'가 없다. "인사가 만사다"라는 말이 있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인사는 '망사'에 가까웠다는 것이 정치권의 일반적 평이다.
정부 출범 전 인수위 시절부터 시작해 최근까지도 고위직 인사들의 부적절한 언행으로 인한 낙마는 지속적으로 반복됐다. 이는 제대로 된 인사시스템을 거치지 않고 박 대통령의 수첩을 기반으로 한 '나홀로 인사'가 만든 결과물로 알려진다.
또 박 대통령은 자신에게 쓴소리를 하는 사람은 주변에 두지 않는 것으로 전해진다. 때문에 공식적 루트 외 비공식 루트에서도 박 대통령의 잘못을 지적하는 인사가 없다는 것이 청와대 관계자의 전언이다.
그러는 사이 주변의 쓴소리를 하는 사람들은 내쳐지거나 스스로 떠났다. 일례로 박 대통령 당선에 일조한 경제민주화 공약을 총괄했던 김종인 전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은 경제민주화 공약과 관련해 박 대통령과 마찰을 빚다 내쳐졌다. 진영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복지공약 이행과 관련해 청와대와 마찰을 빚다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인사·소통·공약의지·비전 부재 지적
지금까지 부족한 부분 채우면 성공?

제왕적 대통령제를 취하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대통령의 권력은 무한대에 가깝다. 때문에 대통령이 잘못된 길로 가려 할 때 이를 바로 잡아줄 참모가 없다면 나라 전체가 잘못된 길로 가게 된다. 대통령이 잘못된 판단을 하려 할 때 쓴소리를 내뱉는 사람은 없고, 듣기 좋은 소리만 하는 아첨꾼만 가득하다는 것은 예삿일이 아니다.
특히 현대와 같이 다원화, 분업화, 전문화된 사회에서 1인이 모든 것을 조율할 수는 없기 때문에 박 대통령이 모든 국정을 직접 챙기는 만기친람형 정치를 벗어나, 대선 때 약속했던 내각책임제 등을 통해 국무총리 및 부처 장관들에게 권한과 책임을 이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소통에 문제없다?
실제론 불통왕국

"소통이 없다"는 비판적 기류도 만만찮다. 과거 정권과 비교하면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박 대통령의 소통은 지극히 제한적이다. 당장 전임 이명박정부와 비교해도 대국민접촉의 상징인 기자회견 횟수가 상당히 차이가 난다.
박 대통령은 지난 1월6일 2014년 새해를 맞아서야 처음으로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회견의 내용도 국가기관 대선개입 사건 등 당시 민감한 정치 현안에 대한 언급은 없이 '경제개혁 3개년 계획'을 설명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했다. 게다가 기자들과의 질의응답은 진보성향의 언론은 배제한 채 사전에 준비된 질의를 받고, 준비된 답변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지난 2월25일 취임 1주년을 맞아 진행한 대국민담화에서도 질문은 받지 않은 채 40여분간 홀로 원고를 낭독한 뒤 끝냈다.
국민과 소통의 자리를 거의 마련하지도 않았고, 또 마련하더라도 제한적으로 진행한 셈이다.
이에 일부 참모들은 국민과 소통하는 기회를 자주 가져야 한다는 것을 건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는 후문이다.
박 대통령의 '복심'이라고 불리는 청와대 이정현 홍보수석이 대선 1주년을 앞두고 기자들에게 한 "박 대통령의 가장 잘못된 점을 불통이라고 하는 부분이 가장 억울하다. 원칙대로 하는 데 대해 불통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자랑스러운 불통이다"라는 발언은 박 대통령의 소통에 대한 인식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국민과의 소통뿐 아니라 국정의 동반자인 여당과도 소통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청와대의 지시를 여당이 일방적으로 따르는 수직적 당·청 관계가 고착화되며 야당과 대화·타협·협상으로 정치를 이끌어가야 할 여당은 지난 1년 야당과 갈등과 대립으로 점철된 세월을 보냈다.
여당과도 소통이 되지 않는데 야당과의 소통은 언감생심이다. 지난 1년 내내 박 대통령은 야당과 첨예하게 맞섰다. 지난해 9월에는 박 대통령과 여야 대표가 국회 사랑재에서 만나는 3자 회담이 가까스로 성사됐지만, 각자 하고 싶은 말만 하다가 소득 없이 끝났다.
결국 국민, 여당, 야당과의 소통 부재는 "정치권에 정치가 없다"는 비판을 불렀다.
이와 같은 불통 논란이 나날이 확산되자 친박 핵심인사인 새누리당 최경환 원내대표도 지난 2월25일 당 원내대책회의에서 "정부의 정치력을 한 단계 높여야 한다"며 "정부와 가교 역할을 담당할 정무장관직을 부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당선 전후
확 바뀐 공약

박 대통령은 대선 당시 국민대통합, 경제민주화, 복지확대를 슬로건으로 하는 이른바 좌클릭 전략을 전면에 내세워 국민들로부터 많은 지지를 얻었다. 그러나 인수위 시절부터 경제민주화는 창조경제로, 복지확대는 약속보다 축소 이행 및 폐기된 경우가 많았다.
특히 박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과 최근 대국민담화에서도 국민대통합, 경제민주화, 복지확대가 쏙 빠지자 여권 내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캠프 정치쇄신특별위원회 위원을 지낸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는 최근 한 라디오 방송을 통해 "대통령이 2012년 총선과 대선에 이르는 동안 내놓은 여러 슬로건이 취임 후에 지켜지지 못한 부분이 많다"며 "대표적인 것이 국민대통합, 경제민주화, 정치쇄신 큰 세 가지 줄기가 그다지 이행된 부분이 별로 없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또한 "과거 김영삼 전 대통령은 쌀시장 개방은 없을 것이라는 공약을 결국 지키지 못하자 하나의 공약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해 국민을 향해 90도 각도로 인사를 하고 양해를 구한 바 있다"며 공약 후퇴 및 폐기에 대해 일언반구도 없는 박 대통령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이와 관련해 대선 당시 총괄선대본부장을 맡았던 김무성 의원은 지난 2월20일 대한변호사협회 초청 강연에서 "박 대통령은 (후보 시절) 참모들이 써준 공약을 그대로 읽었다"고 고백했다.
공약의 내용을 잘 모르고 참모들이 써 준대로 읽다 보니 현재 공약이 지켜지지 않는 것에 대한 책임감도 크게 느끼지 않고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지지율은 순항…실상은 위태위태
준비된 대통령? 아마추어 대통령?

지난 1년 국정의 발목을 잡았던 국가기관 대선개입 사건에 대해선 수사결과를 지켜봐야 한다고 일관되게 말하면서 이석기 의원의 내란음모 사건에 대해선 재판 진행 중 정부가 나서 정당해산심판까지 청구하는 등 이중 잣대 논란도 제기된다.
최근에도 세세한 사건사고까지 직접 언급하는 박 대통령이 주한 중국대사관이 직접 '위조'라고 밝히며 불거진 국정원·검찰의 '서울시 간첩 공무원 사건' 증거 조작 의혹에 대해선 일언반구도 하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야권 한 관계자는 "박 대통령은 불리한 것에는 입을 다물고 유리해 보이는 것만 말하는 성향이 있다"고 꼬집었다.

거꾸로 가는
시대의 대안


대한민국이 직면한 시대적 과제에 대한 대안 마련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사회는 90년대 이후 극심한 양극화 현상과 두 번의 경제 위기로 인해 새로운 대안이 필요한 상황이다.
경제 규모는 세계 15위권으로 성장 했지만 부의 편중으로 국민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서민들은 너도나도 "힘들다"고 아우성이다.
이와 관련해 박 대통령은 대선 당시 경제민주화와 복지확대를 시대적 화두로 제시해 호응을 얻었지만, 당선 이후 창조경제를 바탕으로 한 경제성장으로 급선회했다.
박 대통령이 최근 강조하고 있는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통한 474(잠재성장률 4%, 고용률 70%, 국민소득 4만불) 비전 제시는 가까이는 임기 내내 경제성장만 외쳤지만 '허황된 꿈'으로 끝난 전임 이명박정부의 747공약(7% 성장, 4만불 소득, 7대 강국 진입)과 유사하고, 멀리는 박정희정부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떠올리게 한다.
이에 대해 한 정치평론가는 "박 대통령이 60∼70년대 박정희정부와 똑같이 가고 있다"며 "시대가 흐르고, 시대적 요구도 바뀌었지만 아버지의 향수에 젖어 시계를 거꾸로 돌리고 있다"고 말했다.

허주렬 기자 <carpedie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박근혜정부에 많은 세 가지

박근혜정부에는 과거 정권에 비해 유독 많은 것이 세 가지 있다. 첫째는 관료 출신이다. 청와대 비서진과 정무직 자리에는 관료 출신이 대거 포진하고 있는데, 특히 경제 라인은 100% 순수 관료 출신들이 장악하고 있다. 이는 박근혜 대통령이 정치 경험보다 행정 경험을 중시하고, 상명하복이 몸에 밴 관료들을 선호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둘째는 노장이 많다. 특히 관료 출신의 60∼70대가 중용되고 있는데 청와대 김기춘(74) 비서실장을 비롯해 남재준(69) 국정원장, 김장수(66) 국가안보실장, 박흥렬(64) 경호실장, 주철기(67) 외교안보수석, 현경대(75) 민주평통수석부의장 등이 대표적 인사들이다.
이와 관련해선 박 대통령이 20대 초반부터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하며 당시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을 따르는 참모들과 자연스럽게 지낸 경험이 많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셋째는 육사 출신이다. 사실 육사 출신은 권력의 핵심부인 청와대에 입성한 숫자가 많지는 않지만 국가의 외교·안보·정보라인을 장악하고 있다. 대표적 인사로는 남재준 국정원장(육사 25기), 김장수 국가안보실장(육사 27기), 김관진 국방부 장관(육사 28기), 박흥렬 경호실장(육사 28기) 등이 있다. <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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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