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가지' 없는 박근혜정부 막전막후

아버지 따라잡기?…시절이 다르잖아요

[일요시사=정치팀]집권 2년차로 접어든 박근혜정부에는 꼭 필요하지만 찾아볼 수 없는 네 가지가 있다. 제대로 된 인사, 소통, 공약 이행 의지, 시대적 과제에 대한 대안 등이다. 외형상 50% 중후반대의 안정적인 지지율을 보이며 순항 중인 듯하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부족한 네 가지로 인해 향후에도 순항할지는 의문이다. 역으로 이것만 보완한다면 남은 임기도 성공적으로 보낼 가능성이 높다. 박근혜정부에 필요한 네 가지를 <일요시사>에서 파헤쳐봤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의 2월17∼20일 여론조사 결과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은 56%를 기록했다. 취임 초 잇단 인사실패와 불통 논란에 41%까지 떨어졌던 지지율을 차근차근 만회해 집권 1년이 된 시점에서 대선 당시 득표율(51.6%)보다 높은 지지율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는 민주화 이후 집권한 역대 대통령들과 비교해도 김대중 전 대통령(60%)을 제외하고 가장 높은 수준이다(조사방식-휴대전화 RDD 전화조사원 인터뷰, 조사대상-전국 유권자 1218명, 표본오차-95%신뢰수준에 ±2.8%p, 응답률-15%).

외형상 선전
내부는 불안

이와 같은 지지율은 지난 1년 대립과 갈등으로 점철됐던 내치에도 불구하고 아직 식지 않은 국민의 기대와 활발한 외교 활동의 성과가 반영된 결과로 분석된다. 그렇지만 남은 임기도 순항할지는 미지수다. 원활한 국정운영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지만 없는 네 가지가 있기 때문이다.
우선 박근혜정부에는 '제대로 된 인사'가 없다. "인사가 만사다"라는 말이 있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인사는 '망사'에 가까웠다는 것이 정치권의 일반적 평이다.
정부 출범 전 인수위 시절부터 시작해 최근까지도 고위직 인사들의 부적절한 언행으로 인한 낙마는 지속적으로 반복됐다. 이는 제대로 된 인사시스템을 거치지 않고 박 대통령의 수첩을 기반으로 한 '나홀로 인사'가 만든 결과물로 알려진다.
또 박 대통령은 자신에게 쓴소리를 하는 사람은 주변에 두지 않는 것으로 전해진다. 때문에 공식적 루트 외 비공식 루트에서도 박 대통령의 잘못을 지적하는 인사가 없다는 것이 청와대 관계자의 전언이다.
그러는 사이 주변의 쓴소리를 하는 사람들은 내쳐지거나 스스로 떠났다. 일례로 박 대통령 당선에 일조한 경제민주화 공약을 총괄했던 김종인 전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은 경제민주화 공약과 관련해 박 대통령과 마찰을 빚다 내쳐졌다. 진영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복지공약 이행과 관련해 청와대와 마찰을 빚다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인사·소통·공약의지·비전 부재 지적
지금까지 부족한 부분 채우면 성공?

제왕적 대통령제를 취하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대통령의 권력은 무한대에 가깝다. 때문에 대통령이 잘못된 길로 가려 할 때 이를 바로 잡아줄 참모가 없다면 나라 전체가 잘못된 길로 가게 된다. 대통령이 잘못된 판단을 하려 할 때 쓴소리를 내뱉는 사람은 없고, 듣기 좋은 소리만 하는 아첨꾼만 가득하다는 것은 예삿일이 아니다.
특히 현대와 같이 다원화, 분업화, 전문화된 사회에서 1인이 모든 것을 조율할 수는 없기 때문에 박 대통령이 모든 국정을 직접 챙기는 만기친람형 정치를 벗어나, 대선 때 약속했던 내각책임제 등을 통해 국무총리 및 부처 장관들에게 권한과 책임을 이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소통에 문제없다?
실제론 불통왕국

"소통이 없다"는 비판적 기류도 만만찮다. 과거 정권과 비교하면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박 대통령의 소통은 지극히 제한적이다. 당장 전임 이명박정부와 비교해도 대국민접촉의 상징인 기자회견 횟수가 상당히 차이가 난다.
박 대통령은 지난 1월6일 2014년 새해를 맞아서야 처음으로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회견의 내용도 국가기관 대선개입 사건 등 당시 민감한 정치 현안에 대한 언급은 없이 '경제개혁 3개년 계획'을 설명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했다. 게다가 기자들과의 질의응답은 진보성향의 언론은 배제한 채 사전에 준비된 질의를 받고, 준비된 답변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지난 2월25일 취임 1주년을 맞아 진행한 대국민담화에서도 질문은 받지 않은 채 40여분간 홀로 원고를 낭독한 뒤 끝냈다.
국민과 소통의 자리를 거의 마련하지도 않았고, 또 마련하더라도 제한적으로 진행한 셈이다.
이에 일부 참모들은 국민과 소통하는 기회를 자주 가져야 한다는 것을 건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는 후문이다.
박 대통령의 '복심'이라고 불리는 청와대 이정현 홍보수석이 대선 1주년을 앞두고 기자들에게 한 "박 대통령의 가장 잘못된 점을 불통이라고 하는 부분이 가장 억울하다. 원칙대로 하는 데 대해 불통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자랑스러운 불통이다"라는 발언은 박 대통령의 소통에 대한 인식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국민과의 소통뿐 아니라 국정의 동반자인 여당과도 소통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청와대의 지시를 여당이 일방적으로 따르는 수직적 당·청 관계가 고착화되며 야당과 대화·타협·협상으로 정치를 이끌어가야 할 여당은 지난 1년 야당과 갈등과 대립으로 점철된 세월을 보냈다.
여당과도 소통이 되지 않는데 야당과의 소통은 언감생심이다. 지난 1년 내내 박 대통령은 야당과 첨예하게 맞섰다. 지난해 9월에는 박 대통령과 여야 대표가 국회 사랑재에서 만나는 3자 회담이 가까스로 성사됐지만, 각자 하고 싶은 말만 하다가 소득 없이 끝났다.
결국 국민, 여당, 야당과의 소통 부재는 "정치권에 정치가 없다"는 비판을 불렀다.
이와 같은 불통 논란이 나날이 확산되자 친박 핵심인사인 새누리당 최경환 원내대표도 지난 2월25일 당 원내대책회의에서 "정부의 정치력을 한 단계 높여야 한다"며 "정부와 가교 역할을 담당할 정무장관직을 부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당선 전후
확 바뀐 공약

박 대통령은 대선 당시 국민대통합, 경제민주화, 복지확대를 슬로건으로 하는 이른바 좌클릭 전략을 전면에 내세워 국민들로부터 많은 지지를 얻었다. 그러나 인수위 시절부터 경제민주화는 창조경제로, 복지확대는 약속보다 축소 이행 및 폐기된 경우가 많았다.
특히 박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과 최근 대국민담화에서도 국민대통합, 경제민주화, 복지확대가 쏙 빠지자 여권 내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캠프 정치쇄신특별위원회 위원을 지낸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는 최근 한 라디오 방송을 통해 "대통령이 2012년 총선과 대선에 이르는 동안 내놓은 여러 슬로건이 취임 후에 지켜지지 못한 부분이 많다"며 "대표적인 것이 국민대통합, 경제민주화, 정치쇄신 큰 세 가지 줄기가 그다지 이행된 부분이 별로 없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또한 "과거 김영삼 전 대통령은 쌀시장 개방은 없을 것이라는 공약을 결국 지키지 못하자 하나의 공약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해 국민을 향해 90도 각도로 인사를 하고 양해를 구한 바 있다"며 공약 후퇴 및 폐기에 대해 일언반구도 없는 박 대통령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이와 관련해 대선 당시 총괄선대본부장을 맡았던 김무성 의원은 지난 2월20일 대한변호사협회 초청 강연에서 "박 대통령은 (후보 시절) 참모들이 써준 공약을 그대로 읽었다"고 고백했다.
공약의 내용을 잘 모르고 참모들이 써 준대로 읽다 보니 현재 공약이 지켜지지 않는 것에 대한 책임감도 크게 느끼지 않고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지지율은 순항…실상은 위태위태
준비된 대통령? 아마추어 대통령?

지난 1년 국정의 발목을 잡았던 국가기관 대선개입 사건에 대해선 수사결과를 지켜봐야 한다고 일관되게 말하면서 이석기 의원의 내란음모 사건에 대해선 재판 진행 중 정부가 나서 정당해산심판까지 청구하는 등 이중 잣대 논란도 제기된다.
최근에도 세세한 사건사고까지 직접 언급하는 박 대통령이 주한 중국대사관이 직접 '위조'라고 밝히며 불거진 국정원·검찰의 '서울시 간첩 공무원 사건' 증거 조작 의혹에 대해선 일언반구도 하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야권 한 관계자는 "박 대통령은 불리한 것에는 입을 다물고 유리해 보이는 것만 말하는 성향이 있다"고 꼬집었다.

거꾸로 가는
시대의 대안


대한민국이 직면한 시대적 과제에 대한 대안 마련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사회는 90년대 이후 극심한 양극화 현상과 두 번의 경제 위기로 인해 새로운 대안이 필요한 상황이다.
경제 규모는 세계 15위권으로 성장 했지만 부의 편중으로 국민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서민들은 너도나도 "힘들다"고 아우성이다.
이와 관련해 박 대통령은 대선 당시 경제민주화와 복지확대를 시대적 화두로 제시해 호응을 얻었지만, 당선 이후 창조경제를 바탕으로 한 경제성장으로 급선회했다.
박 대통령이 최근 강조하고 있는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통한 474(잠재성장률 4%, 고용률 70%, 국민소득 4만불) 비전 제시는 가까이는 임기 내내 경제성장만 외쳤지만 '허황된 꿈'으로 끝난 전임 이명박정부의 747공약(7% 성장, 4만불 소득, 7대 강국 진입)과 유사하고, 멀리는 박정희정부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떠올리게 한다.
이에 대해 한 정치평론가는 "박 대통령이 60∼70년대 박정희정부와 똑같이 가고 있다"며 "시대가 흐르고, 시대적 요구도 바뀌었지만 아버지의 향수에 젖어 시계를 거꾸로 돌리고 있다"고 말했다.

허주렬 기자 <carpedie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박근혜정부에 많은 세 가지

박근혜정부에는 과거 정권에 비해 유독 많은 것이 세 가지 있다. 첫째는 관료 출신이다. 청와대 비서진과 정무직 자리에는 관료 출신이 대거 포진하고 있는데, 특히 경제 라인은 100% 순수 관료 출신들이 장악하고 있다. 이는 박근혜 대통령이 정치 경험보다 행정 경험을 중시하고, 상명하복이 몸에 밴 관료들을 선호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둘째는 노장이 많다. 특히 관료 출신의 60∼70대가 중용되고 있는데 청와대 김기춘(74) 비서실장을 비롯해 남재준(69) 국정원장, 김장수(66) 국가안보실장, 박흥렬(64) 경호실장, 주철기(67) 외교안보수석, 현경대(75) 민주평통수석부의장 등이 대표적 인사들이다.
이와 관련해선 박 대통령이 20대 초반부터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하며 당시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을 따르는 참모들과 자연스럽게 지낸 경험이 많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셋째는 육사 출신이다. 사실 육사 출신은 권력의 핵심부인 청와대에 입성한 숫자가 많지는 않지만 국가의 외교·안보·정보라인을 장악하고 있다. 대표적 인사로는 남재준 국정원장(육사 25기), 김장수 국가안보실장(육사 27기), 김관진 국방부 장관(육사 28기), 박흥렬 경호실장(육사 28기) 등이 있다. <렬>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계엄 비선’ 노상원·명태균 오버랩

‘계엄 비선’ 노상원·명태균 오버랩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이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을 통해 윤석열 대통령의 안보 공약과 정치적 스탠스 등에 조언을 아끼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윤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와 직접적으로 연락하면서 국정 전반에 개입한 의혹을 받는 명태균씨의 모습과 맞닿아 있는 대목이다. 일각에서는 노 전 사령관이 군 인사뿐만 아니라 국방정책과 사업에까지 손을 댔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통상 비선 실세는 외부서 활동한다. 대통령으로부터 보직을 받지 않았음에도 최측근으로 꼽히는 인사들과 정부의 정책과 정치적 활동에 상당한 영향을 끼친다. 윤석열정부서 이 같은 행위를 한 이들은 주로 ‘무속 관련자’들이었다. 정치 브로커 명태균씨와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 등도 정부 정책 및 인사에 개입한 의혹의 당사자들이다. 안보 분야 대책 조언 노 전 사령관은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을 통해 안보 공약이나 지지율 상승 방안 등을 조언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5일 <한겨레> 단독 보도에 따르면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12월11일 경찰 조사에서 “(2022년)윤 대통령이 대선 캠프를 구성했을 때, 김 전 장관이 제게 일을 도와달라 부탁했는데 성 관련 범죄 경력 때문에 전면에 나서지 못했다”며 “(그 대신에)대선 토론 때 안보 관련 분야 질문 및 답변 내용에 대해 초안을 잡아주면, (상대 후보의)역공 대비 등 세밀히 검토해서 수정하는 작업을 했다”고 진술했다. 그는 윤 대통령 취임 이후에도 “(김 전 장관이)‘대통령 지지도를 어떻게 하면 올릴 수 있냐’고 묻길래 ‘검사 출신이라 말이 친화적이지 않다. 국민에게 다가가는 모습을 보여줘라’고 했다”며 “(시장에 가서)생선 같은 것도 만지면서 친근하게 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광주 5·18(행사)에 참석해라. 그들도 같은 국민”이라며 “일단 내려가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라 건의해라. 이왕 대통령이 됐으면 전라도도 품을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고 한다. 실제 윤 대통령은 지난 2023년 7월엔 부산엑스포 유치 홍보를 위해 부산을 찾은 뒤 자갈치시장서 붕장어를 맨손으로 만졌다. 또 2022년 5월 취임 이후 지난해까지 3년 연속 광주를 찾아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했다. 노 전 사령관은 “나중에 티브이(TV)를 보니까 제 말대로 다 하는 것 같았다”고 했다. 이 같은 상황을 볼 때 윤 대통령은 노 전 사령관의 존재를 수년 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적지 않은 도움을 받은 김 전 장관은 노 전 사령관을 윤 대통령에게 인사시키려 했으나 성사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노 전 사령관은 “김 전 장관이 몇 번 (윤 대통령에게 자신을) 인사시키려 했는데, 저 스스로 성 관련 범행에 대한 멍에가 있어서 안 본다고 했다”며 “(김 전 장관이)군인공제회 산하단체 비상근 사외이사 자리를 주겠다고 했는데 (국회)국방위원회서 다 밝혀질 거라 사양했다. 공기업 임원 얘기도 했지만 같은 이유로 사양했다”고 진술했다. 노 전 사령관의 의혹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노 전 사령관이 자신의 인맥을 활용해 국방사업에도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민주당 추미애 의원은 지난 1월16일 “12·3 내란 핵심 주동자인 김용현(전 국방부 장관), 노상원(전 정보사령관), 여인형(방첩사령관), 김용군(예비역 대령)은 방위산업을 고리로 한 경제공동체”라고 주장했다. 추 의원에 따르면 노 전 사령관은 지난 2022년 김 전 장관이 경호처장 시절 그의 영향력으로 국가정보원 예산 500억원이 육군 전자전 무인 정찰기(UAV) 사업 예산으로 편성 추진했다. 당시 이 예산은 ‘김용현 처장 꼬리표 예산’으로 불렸다는 게 추 의원의 주장이다. 노, 윤 대선후보 시절부터 감 놔라 배 놔라 실제 김 통해 일부 이행…윤 직접 접촉 시도 추 의원은 “2023년 이 사업에 도입될 기종은 노상원이 (당시)재직 중이던 일광공영이 국내 총판인 이스라엘 항공우주산업(IAI)의 헤론으로 결정됐다. 일광공영은 무기 중개상 1세대로 불리며, 2000년 러시아 무기 도입 사업인 불곰사업으로 유명한 이규태가 운영하는 방산업체다. 노 전 사령관은 최근 3년간 일광공영에 근무했다”고 말했다. 통상 무기체계 등 전력사업은 육군본부 기획관리참모부가 관리한다. 그러나 해당 사업은 당시 육군 정보작전참모부장이던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관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이 사업은 예산이 편성되지 않아 중단됐다. 추 의원은 노 전 사령관과 윤 대통령 일가와의 연결고리 의혹도 제기했다. 그는 “노상원은 이미 2015∼2016년 박근혜정부 때부터 김충식과 후원을 주고받는 관계였다”며 “김충식은 윤석열의 장인 행세를 하는 분이고, 장모 최은순 여사와 사적인 관계 또는 경제공동체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노 전 사령관은 국방·안보 분야 조언에 그쳤다. 명씨는 정부 사업과 정치 권력 전반에 영향을 끼친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굳이 둘을 놓고 비교하자면 노 전 사령관보다 명씨의 비선 실세 서열이 한 수 위인 셈이다. <시사IN>이 공개한 윤 대통령 일가와 명씨의 카카오톡·텔레그램 대화 원본을 보면 명씨는 사실상 국회의원 후보 선정과 경제 사업 추진에 판을 짜는 플래너였다. 실제 명씨는 지난 2021년 7월 윤 대통령이 국민의힘에 입당하기 전 이뤄진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 당시 국민의힘 대표였던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과 가진 비공개 회동부터, 그 이후 진행된 윤 대통령의 정치인 접촉을 주도했다. 이 의원과 윤 대통령의 회동 당시 김 여사는 JTBC가 보도한 ‘윤석열·이준석 비공개 회동’ 기사 링크를 보냈다. 김 여사는 명씨에게 “큰일이네요. 왜 준석씨가 이렇게까지 발설했을까요. 남편에게는 완전 악재인데요ㅠ”라며 “선생님(명태균씨)께서 단단히 말씀하셨을 것 같은데요”라고 말했다. 닮은 듯 다른 듯 이들은 대선후보 여론조사 결과 보고서를 각각 여러 차례 주고받았다. 명씨가 윤 대통령 부부에게 여론조사를 무상으로 제공하고, 그 대가로 2022년 6월 보궐선거서 국민의힘 김영선 전 의원 공천을 받았다는 의혹이 ‘명태균 게이트’의 핵심이다. 명씨는 윤 대통령의 일정과 행보에 대한 사후 보고, 평가, 조언도 김 여사에게 더 자주 했다. 예시로 2021년 7월29일, 명씨가 김 여사에게 윤 대통령의 부산 방문 당시 실언한 점을 포착한 영상 보도 링크를 보냈다. 당시 윤 대통령은 이한열 열사가 새겨진 1987년 6월 항쟁 기념 조형물을 보고 ‘1979년 부마항쟁이냐’라고 물어 논란이 된 상황이었다. 명씨는 말실수를 한 윤 대통령이 아닌 김 여사에게 메시지를 보내 “미리 방문하는 곳 학습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2021년 9월17일과 18일, 20일에는 명씨가 김 여사에게 윤 대통령의 경북·경남지역 방문 관련 반응이 담긴 언론 기사와 여론조사 결과를 보냈다. 명씨는 이와 관련해 윤 대통령의 일정을 자신이 기획했다고 검찰에 진술하기도 했다. 명씨는 자신의 ‘기획물(지역 방문 일정)’ 결과를 김 여사에게 보고했다. 특히 윤 대통령의 경남 일정 이후 ‘창원 전·현직 도·시의원 33명이 윤석열 지지를 선언했다’는 내용의 기사 링크도 김 여사에게 먼저 보냈다. 대선 캠프에 소속되지 않은 명씨가 후보 일정에 개입한 것이다. 특히 명씨는 검찰서 자신이 기획한 경남 일정 가운데 창녕 방문을 자랑스럽게 설명했다. 당시 창녕 방문이 윤석열 후보자에게 가장 중요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창녕은 국민의힘 대선 경선 경쟁자인 홍준표 당시 예비후보의 고향이다. 홍 후보를 견제하기 위해 창녕 방문 일정을 넣었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입 열면 쑥대밭 명씨는 윤석열 캠프 인사 개입 의혹도 받는다. 명씨와 김 여사의 대화를 보면, 이 의혹 역시 두 사람으로부터 시작됐다. 명씨가 김 여사와 캠프 인사 문제를 상의했고, 그 결과가 일부 실현된 사실이 확인된다. 2021년 7월16일 김 여사는 명씨에게 황준국 전 주영국 대사 프로필을 공유했다. 그러면서 “후원회장으로 어떤가요? 이권과 연결도 안 돼있다”고 했다. 김 여사가 명씨에게 이 메시지를 받은 다음날인 7월17일, 황 전 대사는 윤석열의 후원회장으로 위촉됐다. 정통 외교관 출신 인사가 대선후보 후원회장을 맡는 사례는 매우 드물다. 2021년 7월19일에는 명씨가 김 여사에게 임태희 경기도교육감 프로필을 보냈다. 그러면서 ‘총장님께서 물어보신 임태희 실장’이라며 장문의 설명을 덧붙였다. 윤 대통령이 먼저 명씨에게 임 교육감 세평을 물었는데, 명씨는 그 답을 윤 대통령이 아닌 김 여사에게 했던 것으로 보인다. 임 교육감은 2021년 12월 국민의힘 선거대책위원회에서 총괄상황본부장을 맡았다. 한 달여 뒤에는 명씨가 김 여사에게 자신이 국민의힘 의원이었던 박완수 경남도지사와 주고받은 문자메시지를 캡처해 보냈다. 박 지사는 “명 대표 나도 많이 도와주세요”라고 말했고, 8월1일 “윤 총장 전화 왔습니다. 열심히 할게요”라고 말했다. 7월31일, 명씨는 윤 대통령에게 박 지사 연락처를 전달하면서 “전화하면 총장님을 돕겠다고 할 것”이라고 했다. 이후 8월6일 박완수 당시 의원은 명씨와 윤 대통령 자택인 서울 아크로비스타에 방문했고 윤 대통령과 사진도 찍었다. 이 같은 명씨의 영향력이 정치권서 소문으로 퍼지기 시작한 이후에도 두 사람은 연락을 주고받았다. 2023년(연도 추정) 4월6일 김 여사가 명씨에게 ‘김건희 여사, 명태균과 국사를 논의한다는 소문’이라는 제목의 정보지 글을 공유했다. 김 여사가 천공 스승과 거리를 두고 명씨와 국사를 논의한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는 등의 내용이었다. 노·명 전부 무속 의혹 제기 “여사 연결고리?” 명, 침묵하는 노와 대조적 “30명 죽일 수 있다” 윤 대통령이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으려 했던 이유가 명씨의 조언 때문이었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명씨는 웃으며 “세상에 천벌 받을 사람들이 많네요”라고 했다. 4월15일에는 명씨가 김 여사에게 네잎클로버 사진을 보냈다. 명씨는 “여사님 행운의 징표인 네잎클로버를 발견하고 여사님께 보내드린다”며 “윤석열정부 꼭 성공한 정부가 될 겁니다”고 했다. 김 여사는 V자 손가락 이모티콘으로 화답했다. 노 전 사령관은 가장 논란이 된 이른바 ‘노상원 수첩’과 관련된 내용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키고 있다. 검찰 조사에서까지 진술거부권을 행사하면서 국지전 유도와 북풍 공작 등의 음모론 같은 의혹은 아직 실체가 드러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명씨는 본인이 적극적으로 검찰 조사에 임하면서 국민의힘과 윤 대통령 일가의 ‘뇌관’을 자처하고 있다. 창원구치소에 수감 중인 명씨는 최근 노영희 변호사와의 접견서 “국민의힘 주요 정치인 30명을 죽일 수 있는 카드가 있다”며 “내가 한 말은 전부 증거가 분명히 있다”고 말했다. 명씨와 연루 의혹이 있는 인사들이 정치권 내에서 이른바 ‘명태균 리스트’로 분류되긴 했지만, 명씨가 직접 숫자를 밝힌 건 이번이 처음이다. 앞서 명씨 관련 의혹을 폭로한 강혜경씨는 지난해 10월 명씨와 연관됐다고 주장하며 여야 정치인 27명 명단을 공개하기도 했다. 명씨의 정치권 인맥은 ‘황금폰’이라고 불리는 명씨 휴대전화서 일부 포착된 적이 있다. 검찰은 지난해 12월 명씨의 휴대전화를 넘겨받아 포렌식을 진행했다. 당시 검찰은 명씨의 휴대전화에 연락처가 저장된 전·현직 정치인 140명을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명씨 측 남상권 변호사는 지난달 13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서 “명씨 황금폰 포렌식 과정서 너무 많은 정치인이 나와서 깜짝 놀랐다”며 “명씨 휴대전화에 저장된 전·현직 국회의원이 140명이 넘는다”고 밝히기도 했다. 황금폰 포렌식 명씨는 “내가 최재형 전 감사원장을 국무총리로, 이준석 의원을 미국 대북특사로 추천을 했었다”면서 “당시 국민의힘 관련 윤한홍, 박완수, 김영선, 김종인 등에 대한 자료가 많다”고 유력 정치인들의 이름을 구체적으로 거론했다. 특히 명씨는 오세훈 서울시장과 홍준표 대구시장에 대해 “(이들에 대해)얘기할 것이 아주 많다”며 “민낯을, 껍질을 벗겨 놓겠다”고 거친 언사를 쓴 것으로도 파악됐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