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 취임 1주년 '공과' 정밀탐구

'소문난 잔치'에 먹을 거 없고 '빈 수레'가 요란하다?

[일요시사=정치팀] 새정부 출범 1년차는 정권의 명운을 가름하는 해이다. 여론의 기대감이 극대화된 가장 힘이 센 시기로 정권 차원의 프로젝트를 밀어붙일 최적기이기 때문이다. 이 기간을 어영부영 보낼 경우 남은 임기 국정운영에 차질이 빚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에 따라 집권 1년차의 공과를 면밀하게 분석하는 것은 남은 임기를 성공적으로 보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25일로 취임 1년을 맞은 박근혜정부의 성적표는 과연 어떨까? <일요시사>가 용인술, 공약이행, 정책, 사회적 시스템 개선 등의 분야로 나눠 세세히 살펴봤다.   
 



국가 경영의 성패는 어떤 사람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갈린다. 때문에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용인술은 리더의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꼽혀왔다. 특히 현대와 같은 다원화된 시대에서 리더의 용인술이 가지는 중요성은 과거보다 훨씬 더 커졌다. 그러나 지난 1년 잡음이 끊이지 않았던 박근혜 대통령의 용인술은 후한 점수를 줄 수 없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수첩의 한계
드러낸 인선
 

박 대통령은 취임 100일을 맞기도 전에 김용준 총리 후보자,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 김병관 국방부 장관 후보자, 한만수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 등 장관급 후보자를 포함해 총 14명의 고위직 인사가 낙마하는 초유의 사태를 겪었다.

특히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과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은 각각 고위층 별장 성접대 의혹과 대통령 방미 중 성추행 의혹이라는 추잡하고도 한심한 사건에 휘말려 경질됐다. 또 채동욱 전 검찰총장은 혼외자 의혹에 휘말려 불명예스럽게 자진사퇴했고, 진영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기초연금 공약 이행과 관련해 청와대와 갈등을 빚다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최근에도 윤진숙 전 해양수산부 장관이 잇단 설화로 경질되는 등 박근혜정부 고위층의 수난사는 진행형이다. 

인사 잡음이 반복되며 전문가들은 박근혜정부를 뒤흔들 가장 큰 뇌관으로 재정이나 복지정책, 공약후퇴 논란보다 용인술을 꼽는 경우도 많다. 이는 시스템에 의한 체계적 인선이 아닌 박 대통령의 수첩에서 나온 이른바 '수첩인사' '밀실인사'의 결과라는 것이 청와대 안팎의 대체적 평가다.  


박 대통령이 인사의 중요 원칙으로 내세웠던 '쇄신' '전문성' 등이 실종된 인선의 사례도 많았다. 지난해 8월 김기춘(76) 대통령 비서실장 임명을 시작으로 홍사덕(72)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대표상임의장, 현경대(75)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 김동호(77) 문화융성위원장, 심대평(73) 지방자치발전위원장, 이원종(72) 지역발전위원장, 한광옥(72) 국민대통합위원장 등 쇄신과는 거리가 먼 충성과 의리가 검증된 원로들이 중용됐다. 또 공천비리로 2차례나 사법부의 처벌을 받은 서청원 의원을 지난해 10월 재·보궐선거에서 새누리당이 공천한 것도 청와대의 입김이 작용한 것이라는 후문이다.



물론 원로들의 귀환을 꼭 나쁘게만은 볼 수 없지만 인사에 '노·장·청'의 조화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원로들에 편중된 인사는 좋은 평을 받기 어렵다.

윤진숙 전 장관의 후임으로 내정된 이주영 신임 해수부 장관이 해양수산 관련 분야의 경험이 전무함에도 불구하고 임명된 사례서 볼 수 있듯 전문성을 중시하는 원칙도 깨졌다.

취임 초 고위직 후보자 줄줄이 낙마
'고위층 수난사' 아직 현재진행형

더 큰 문제는 인사잡음이 향후에도 불거질 여지가 다분하다는 점이다. 임명 1년 만에 무능력·무소신을 드러냈고 말실수로 구설수에 오르기도 한 현오석 경제부총리, 군 사이버사 대선개입 의혹의 윗선으로 지목받고 있는 김관진 국방부 장관,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관련 외압 의혹의 당사자로 지목되는 황교안 법무부 장관 등에 대한 야권의 사퇴요구가 높아 여론이 쏠릴 경우 이들도 교체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추천→검증→임명→평가→재검증'의 인사시스템이 작동하지 않고 지금과 같은 박 대통령의 '나홀로 인사'가 되풀이될 경우 인사문제는 향후에도 지속적으로 정권의 발목을 잡을 것으로 보인다.  

후퇴·지연·파기
공약 '수두룩'
 


박 대통령은 지난 2012년 7월 대선출마를 선언하며 '국민이 행복한 나라'를 슬로건으로 ▲경제민주화 ▲정치쇄신 ▲국민대통합을 3대 핵심과제로 제시했다. 대선 직전에는 20대 분야 201개의 약속(지역공약 제외)으로 세분화해 공약을 발표했다.

당선 이후 정권의 청사진을 그렸던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이하 인수위)에서는 '국민이 행복한 희망의 새시대'라는 국정비전 아래 5대 국정목표(일자리 중심의 창조경제, 맞춤형 고용복지, 창의교육과 문화가 있는 삶, 안전과 통합의 사회, 행복한 통일시대의 기반구축)와 20대 국정전략, 140대 국정과제로 다시 정리됐다. 이 과정에서 박 대통령의 당선에 일조했던 경제민주화 공약은 5대 국정목표 중 하나인 '일자리 중심의 창조경제'의 하위 국정 전략으로 밀렸다. 

물론 지난해 ▲총수 일가의 사익편취 규제 ▲신규순환출자 금지 ▲하도급 3배 배상제 ▲중기조합 단가조정협의권 ▲부당특약 금지 ▲가맹점주 권리강화 ▲전속고발제 폐지 ▲표시광고법에 동의의결제 도입 등의 경제민주화 법안 입법이 완료됐고, 이에 따른 시행령 개정 등 후속조치도 진행 중이지만 당초 공약에 비해 축소·후퇴했다는 평가가 많다.

정치쇄신과 관련해선 기초단체 선거 정당공천 폐지가 대표적 공약이었지만 새누리당은 '유지' 쪽으로 가닥을 잡았고, 박 대통령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는 상황이다.  

국민대통합과 관련해선 대통령 직속기구로 국민대통합위원회가 출범했지만 이 기구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아는 이가 별로 없을 정도로 활약이 미미하다. 오히려 요직에 영남권 인사가 편중되며 영남·보수 중심의 '그들만의 통합'이 이뤄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외에도 복지공약 등 좌클릭 공약들은 줄줄이 후퇴, 지연, 파기됐다. 이미 인수위 시절 주요 공약 150개 가운데 내용후퇴 29건, 내용삭제 41건 등 총70건(47%)의 공약을 후퇴 및 삭제한 박근혜정부는 '공약의 현실화'를 이유로 서서히 복지공약을 뒤집고 있다.

대표적으로 박 대통령의 대표 복지공약인 '기초연금 도입'은 도입 즉시 65세 이상 전원 20만원 지급에서 국민연금과 연계해 소득하위 70%에게 주는 선으로 축소됐다. 현재 여·야·정 협의체를 구성해 국회에서 논의 중이지만 정부안이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보건의료 분야의 '4대 중증질환 진료비 전액 국가부담' 공약은 "단계적으로 100% 보장하겠다"에서 가장 부담이 큰 3대 비급여(선택 진료비, 상급병실료, 간병비)는 보장대상에서 제외하는 쪽으로 개선안을 마련해 원안이 폐기됐다.

이외에도 '반값등록금' 공약은 소득 하위 80%까지 소득연계형 국가장학금을 지원해 올해까지 실질적 반값등록금을 실현하기로 했지만, 국가장학금의 지원 기준액을 450만원으로 정해 그보다 학비가 훨씬 비싼 사립대학이 전체 대학의 80%가 넘는 국내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또 '고등학교 무상교육' 공약은 올해부터 매년 25%씩 확대해 2017년 전면 무상교육을 실시하기로 했지만 올해 예산에서 완전히 삭감돼 사실상 폐기됐다.

그나마 무상보육 공약은 다른 복지공약과 달리 공약대로 이행되고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재정부담은 지방자치단체에 전가하고 있어 가뜩이나 재정이 궁핍한 지자체의 반발이 심한 상황이다.

공약 대거 파기·수정…해명은 실종
한반도 신뢰프로세스·균형외교 성과 

지역공약도 절반가량이 파기 및 후퇴했다. 민주당 민병두 의원이 박근혜정부 출범 1주년 및 6·4지방선거를 앞두고 지난 대선에서 새누리당과 박근혜 후보가 약속했던 시·도별 공약 121개(핵심공약 106개+세부공약 15개)의 이행 현황을 조사 분석한 결과 지역 핵심공약 중 약 50%가량이(60개) 파기, 후퇴, 지연된 상태로 추진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와 같은 잇단 공약의 후퇴 및 파기에 박 대통령은 취임 100여일 만에 복지시민단체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의 오건호·최창우 공동운영위원장으로부터 '공약사기죄' '허위사실 유포죄' 등으로 고발당하는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여권 관계자는 "공약은 전 세계 어느 정치인도 다 지키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라며 "다만 별다른 사과나 설명 없이 지나가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내치는 불통
외치는 소통?

대선 직전 불거진 국정원 등 국가기관의 대선개입 의혹에 대해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이 '모르쇠'로 일관하며 국내 정치는 여야 극한 대치가 1년 내내 이어졌다. 지난해 6월 검찰이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한 후 민주당의 '박 대통령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에 대해서도 박 대통령이 '침묵'하며 파문은 더욱 확산됐다. 민주당은 거리로 나갔고,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전주교구 등 시민·종교계 일각에선 '대통령 퇴진' 카드까지 꺼내들었다.

현재 이 사건에 대한 특검 도입을 요구하는 야권과 시민단체의 요구에 새누리당은 '절대 불가'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논란은 향후에도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관측된다.

원칙을 강조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와 '균형외교'를 공약으로 내걸었던 박 대통령의 외교에 대해선 긍정적 평가가 많다. 우선 청와대도 외교성과에 대해 "박 대통령이 지난 1년 30여명의 외국 정상과 단독회담을 통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성과를 냈다"고 자평하고 있다.


전문가들도 전임 정부의 친미 일변도의 외교에서 벗어나 '한-중' 관계 강화에 나서 '한중 미래비전 공동성명'을 채택한 것 등은 높이 평가하고 있다.

중국과의 관계를 다지는 한편 미국과는 2015년까지로 예정된 전시작전권 재연기를 추진하는 한편, 미 국방부가 판매자로 나선 F-35A 전투기를 구매하기로 하는 등 동맹을 강화하기 위한 노력도 기울였다.  



남북관계에 있어서는 3년4개월 만에 이산가족상봉 재개라는 성과를 얻었다. 하지만 남북관계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북한의 개혁과 개방을 유도하기 위한 정책(5·24조치 해제, 금강산 관광 재개 등)이 빠진 채 "북한이 먼저 변해야 한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어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상황이다.

갈수록 악화 일변도로 치닫고 있는 한·일 관계는 아베 정권의 극우 행보에 당분간 냉기류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비정상의 정상화라는 이름으로 공공부분에는 방만경영을 타개하기 위한 개혁이 추진 중이다. 그러나 일각에선 공공기관의 막대한 부채는 이명박정부의 4대강 사업, 보금자리주택 사업, 원자력 사업 등의 정책을 떠맡아 발생한 부채가 가장 많아 정치적 사업에 공기업이 희생당하지 않기 위해선 여러 외부의 전문가, 시민사회가 참여해 정치적 외압을 차단하는 노력이 우선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와 관련해서는 낙하산 인사의 차단이 급선무지만 박근혜정부는 겉으로는 "낙하산 인사는 없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지속적으로 투입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11월 "공기업 파티는 끝났다"라는 현오석 경제부총리의 발언 이후 새로 임명된 40명의 공공기관장·감사 중 15명(37.5%)이 새누리당 출신 정치인이다.

대표적으로 지난해 12월 김성회 전 한나라당 의원은 한국지역난방공사 사장으로 갔고, 같은 달 한국마사회 회장으로 임명된 현명관씨도 지난 2007년 당시 한나라당 박근혜 대선후보 당내 경선캠프 미래형정부기획위원장을 지냈던 인사다. 

낙하산 없다?
실제론 진행형
 

최근에도 지난 17일 한국전력공사 사외이사로 관련 경험이 전무한 이강희·조전혁 전 새누리당 의원, 최교일 전 서울중앙지검장이 임명되는 등 낙하산은 아직 진행형이다.

이와 관련해 새누리당 이재오 의원은 지난 18일 "정부가 지난 1년 꾸준히 노력하고 많은 일을 했다고는 하지만 결과적으로 잘한 게 없다"며 "(새누리)당도 국정원·검찰발 이슈와 청와대를 따라가기에 급급해 국민들에게 뭔가 희망을 보여주지 못했다"고 쓴소리를 가했다.

 

허주렬 기자 <carpediem@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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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사이더’ 정청래 인싸 플랜

‘아웃사이더’ 정청래 인싸 플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독주가 이어지고 있다. 당원의 명령인 개혁을 완수하기 위한 질주다. 당의 ‘아웃사이더’였던 그가 당을 휘어잡기까지 수많은 당원이 등을 밀어줬다. 비주류에서 주류 ‘인싸’로 자리 잡기 위한 정 대표의 다음 스텝이 주목된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행보가 매섭다. 윤석열정부에서 막힌 과제를 해치우는 동시에 공약이었던 각종 개혁을 빠르게 완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정 대표는 같은 당 박찬대 의원보다 덜 알려졌다는 평이 나오지만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위원장으로서 보여준 ‘사이다’ 면모가 주목받으면서 강성 지지층의 환호를 받았다. 정청래가 걸어온 길 비주류였던 그가 당 대표가 되기까지의 여정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21대 국회 때는 이재명 대표 체제에서 수석 최고위원을 지냈고, 22대 국회에선 법사위원장으로서 국민의힘에 호통을 치며 유튜브 단골 주제가 됐다. 당시 정 대표는 국민의힘이 반대하는 쟁점 법안을 밀어붙이고 상대편 의원과 대립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인기를 끌었다. 그동안 정 대표는 언론 대신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유튜브 등 SNS를 통해 지지자와 직접 소통해 왔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보다 주목도가 떨어진다는 평이 나오지만 팬덤 정치에 최적화된 모습을 보여줬다. 정 대표는 최근에도 자신을 둘러싼 의혹과 청-명 프레임에 대해 직접 입장을 밝혔다. 그는 SNS에 ‘언론의 자유와 횡포 그리고 언론의 게으름의 관성’이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조국 전 대표의 사면·복권을 놓고 일부 언론에서 ‘정청래 견제론’을 말한다. 실소를 자아내게 한다. 근거 없는 주장일뿐더러 사실도 아니다. 상식적인 수준에서 바로 반박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어 “정청래는 김어준이 밀고, 박찬대는 이재명 대통령이 밀었다는 식의 가짜 뉴스가 이 논리의 출발”이라며 “어심이 명심을 이겼다는 황당한 주장, 그러니 정청래가 이재명 대통령과 싸울 것이란 가짜 뉴스에 속지 말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이재명 대통령과 각을 세울 일이 1도 없다. 당정대가 한 몸처럼 움직여 반드시 이재명정부를 성공시킬 생각이 100(이다)”이라고 덧붙였다. 계파 갈등 프레임이 씌워질 조짐이 보이자 이를 사전에 차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 대표의 정치적 뿌리를 따지자면 친노(친 노무현)에 가깝다. 그러나 문재인 전 정부서는 친문(친 문재인), 이재명 대표 체제에서는 친명(친 이재명)으로 분류되는 등 계파색이 비교적 옅은 편이다. 1989년 미국 대사관저 점거 농성을 주도한 혐의로 2년형을 선고받은 등 학생 운동권 출신이지만, 대표 운동권인 민주당 86 그룹과의 친분을 공개적으로 과시하지 않았다. 따라서 정 대표는 당의 주류보다 비주류에 가깝다는 게 여의도에 떠도는 평이다. 친문? 친명? 오히려 ‘계파 청산파’ “잘못된 586 문화 배운 97도 청산” 전당대회가 한참이던 당시 한 민주당 의원은 “사석에서 만난 정 의원은 아주 뚝심 있는 사람이었다. 박찬대 의원은 특유의 재치로 호감을 얻는 편이라면 정 의원은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할 말은 제대로 하는 캐릭터”라며 “그래서 계파를 분류하기 어려운 것 같다. 나만의 길을 가는 것 같으면서도 한번 정한 길은 꺾지 않고 걷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오히려 정 대표는 ‘계파 청산’을 외치는 인물이다. 그는 당 대표 후보이던 당시 “국민께서 비판하시는 586의 운동권 문화는 청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라디오에 출연해서는 “계파는 당을 좀먹는 독약”이라며 강도 높게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정파와 노선은 필요하지만, 계파는 없어져야 한다. 저 스스로 계파에 가입하지 않고, 그런 데서도 저는 안 불러준다”고 말했다. 이어 “저는 586의 질서, 운동권의 수직적 관계가 싫었다. 그런 분들과 몰려 다니는 게 너무 비생산적”이라며 “586의 안 좋은 문화를 따라 배운, 너무 빨리 늙어버린 97 세대들의 그런 것도 청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가 민주당의 수장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당원들의 요구를 파악해 발 빠르게 움직였기 때문이다. 8·2 전당대회에서 정 대표는 당선 이후 “이 대통령이 대통령이 된 것은 민주당 주류가 바뀌었단 뜻이고, 민주당에서 정청래가 대표가 됐다는 것은 당의 주인인 당원들이 당의 운명을 결정하는 시대가 왔다는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해석했다. 이날 전당대회를 “예전에는 당원들이 국회의원 눈치를 봤지만, 이제는 국회의원들이 당원 눈치를 봐야 하는 지극히 정상적인 ‘민주당의 민주화’가 드디어 그 깃발을 높이 든 8·2 전당대회”라고 자평하기도 했다. 이처럼 정 대표를 탄탄히 받쳐주는 건 여의도 인맥이 아닌 당원이었다. 정 대표는 이들을 대주주 삼아 힘을 키워 주류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에는 당원권에 힘을 쏟으며 역사상 처음으로 ‘평당원 최고위원’ 선출을 시도하는가 하면 당원 주권 정당 실현을 강조하기 위해 ‘대의원 1인1표제’를 띄우기도 했다. 대의원 1인1표제는 당원들의 권한을 대폭 향상하는 방안이다. 정 대표는 지난 18일 열린 국회 당원주권 정당특위 출범식에서 “10년 넘게 당원주권정당, 1인1표를 주장해 왔지만, 아직까지도 열리지 않았다”며 “헌법에서 얘기하고 있는 평등 선거가 민주당에서도 구현이 될 수 있도록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3대 개혁 풀가동 이어 “대한민국 헌법에는 평등 선거가 명시돼있고, 많은 선거에서 1인1표가 행사되지만 유독 더불어민주당에선 누구는 1표, 누구는 17표를 행사한다”며 “헌법적으로 보나 상식적으로 보나 매우 부끄러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재명정부가 국민주권시대를 강조하는 만큼 이에 발맞추기 위해서라도 민주당은 권리당원의 권리를 보장하고 상징적인 ‘1인1표’ 시대를 반드시 열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밖에도 정 대표는 당헌·당규 개정을 비롯한 ▲평당원 선출 준비 지원 ▲연말 당원 콘서트 지원 등을 약속했다. 당원의 힘이 커질 수록 정 대표의 정치적 입지도 넓어진다. 정 대표는 연일 국민의힘 때리기에 집중하며 당원으로부터 지지를 받았고, 민주당의 목표로 3대 개혁 완수를 내걸었다. 이는 비주류였던 자신의 정체성을 부각시키기 위한 전략으로도 읽힌다. 이 대통령이 ‘사이다’ 발언으로 당권까지 올랐다면 정 대표는 각종 특위를 띄우며 거침없는 개혁가의 모습을 굳히겠다는 것이다. 정 대표는 강성 지지층의 요구에 따라 검찰개혁에 속도를 내고 있다. 검찰청을 폐지하는 대신 가칭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과 공소청을 신설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다음 달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정 대표는 지난달 21일 의원총회에서 이 대통령과 당 지도부의 만찬 회동을 언급하며 “검찰청 폐지, 공소청·중수청 설립을 담은 정부조직법을 9월 내 본회의에서 처리하자고 당과 대통령실이 입장을 같이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그는 “약속드린대로 추석 귀향길 뉴스에서 ‘검찰청은 폐지됐다’ ‘검찰청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는 기쁜 소식을 국민 여러분께 전해드릴 수 있도록 당에선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임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된 추미애 의원 역시 “법사위원장 선출은 검찰과 언론, 사법개혁 과제를 완수하라는 국민의 명령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며 전폭적으로 힘을 실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위원회도 속속들이 들어섰다. 우선 민주당은 ‘국민주권 검찰정상화 특별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정 대표는 출범식 및 1차 회의에 참석해 “지금의 시대적 과제는 내란 종식, 내란 척결, 이정부 성공에 있다”며 “가장 시급히 해야 할 개혁 중 개혁이 검찰개혁”이라며 “개혁도 골든타임을 놓친다면 저항이 거세져서 좌초되고 말 것이기 때문에 시기가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특위의 주요 과제로는 ▲수사·기소 완전 분리 ▲국민 주권 실현 및 민생 뒷받침 등을 제시했다. 새로운 구심점 이어 언론개혁특별위원회를 출범시키고 언론 보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추석 전까지 도입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는 언론의 허위·조작 보도에 대해 피해자에게 손해액의 최대 5배 배상을 의무화하는 법적 장치다. 언론뿐만 아니라 ‘유튜버’도 포함하는 안이 논의되는 것으로 전해진다. ‘국민중심 사법개혁특별위원회’도 출범했다. 정 대표는 “대법관의 증원과 추천 방식을 변경하는 내용의 사법개혁안을 추석 전까지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구석구석 눈도장을 찍기 위한 지역별 공략에도 나섰다. 지난 21일 호남발전특별위원회를 출범시키고 “다들 대한민국 민주화에 대해서 호남이 기여한 바가 지대하다는데, 국가는 ‘호남을 위해서 무엇을 했는가’에 대한 답을 이제 할 때가 되지 않았나”라고 꼬집었다. 정 대표는 “호남만 발전시키면 되겠느냐”며 영남발전특위도 띄웠다. 이는 내년 6월에 있을 지방선거를 대비해 대구·경북 등의 표밭을 다지기 위함으로 풀이된다. 광폭 행보를 보이는 정 대표를 구심점으로 신흥 세력이 탄생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정 대표는 계파 정치와 거리를 두겠다고 거듭 밝혔지만, 권력자의 주변에 사람이 모이는 것은 당연하다는 해석이다. 정 대표의 편에 선 동료 의원들에게도 시선이 쏠린다. 전당대회에서 정 대표를 공식적으로 지지했거나 개혁 선봉에 함께 섰던 의원 등이다. 정 대표가 당권 도전을 선언한 국회 기자회견장에는 장경태·최기상·문정복·임오경·양문석 의원 등이 자리했다. 여의도 이야기를 종합하면, 정 대표는 ‘당원 중심 정당’ 철학에 부합하는 인사로 장 의원을 꼽았다. 현재 장 의원은 평단원 최고위원 선출 절차를 위한 특위위원장을 맡고 있다. 최민희 의원은 정 대표를 공개 지지한 인물이다. 당시 정 대표가 수박 논란에 휩싸였을 당시 최 의원은 “심하게 비난받는 정청래 후보를 지켜보면 짠하다”며 “비난에도 역비난하지 않고 여전히 유쾌·상쾌하게 선거운동하는 정 후보를 격하게 지지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이 밖에도 한민수·김영환·이성윤 의원은 경선 유세 현장에 함께하며 힘을 실어줬다. 왼쪽으로 붙는 민주당…좁아지는 공간 강성 지지층 등에 업고 개혁가의 길로 개혁가의 길을 걷는 정 대표의 존재감이 커지자 일각에서는 조기 대선을 거치며 ‘중도 보수론’으로 넓혀놨던 민주당의 정치 공간이 다시 좁아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 대표의 강경한 태도가 민주당의 기조가 된다면 야당과의 협치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평이다. 실제 정 대표는 “악수는 사람하고만 한다”며 국민의힘을 척결 대상으로 대하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16주기 추모식에서 정 대표는 국민의힘 송언석 비상대책위원장(이하 비대위원장)과 악수는커녕 인사조차 나누지 않았다. 송 비대위원장 역시 적대감을 드러내면서 그야말로 ‘국회 빙하기’ 시대가 열렸다. 여당인 민주당은 좌우를 넓게 아우르는 정당이 돼야 앞으로 다가올 선거에서 유리한 구도를 유지할 수 있다. 지금처럼 국민의힘이 보수로서 역할을 하지 못할 때 왼쪽은 조국혁신당, 진보당 등에 맡겨둔 채 중도 보수를 자처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당원의 힘으로 대표가 된 만큼 그는 개혁을 완수하기까지 지금과 같은 태도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민주당 상임고문단도 “집권여당은 당원만 바라보고 정치를 해선 안 된다”며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당 상임고문단 간담회에서 “정당의 주인은 당원이어야 한다는 데 공감한다”면서도 “우리 국민은 당원만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고 밝혔다. 문희상 전 국회의장도 “내란의 뿌리를 뽑기 위해 전광석화처럼, 폭풍처럼 몰아쳐 처리하겠다는 대목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과유불급이다. 의욕이 앞서 결과를 내는 게 지리멸렬한 것보다는 훨씬 나으나, 지나치면 안 된다”고 조언했다. 또 다른 민주당으로 민주당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포스트 이재명’ ‘이재명 키즈’가 아닌 새로운 인물이 나타나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 대표가 민주당의 새로운 길을 열어야 당이 계속해서 순환하는 등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어 “민주당의 주류는 강성 지지층이다. 당원이 당을 좌지우지하는데 그들의 숫자가 얼마가 되든 목소리가 커 여론을 만드는 것”이라며 “이 주류의 흐름에 올라탄 사람이 정 대표다. 이 대통령이 대표이던 때와는 다른 모습의 민주당을 보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아직 남은 정 견제 세력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SNS에 올렸다 곧바로 삭제한 게시글이 화제다. 민주당은 지난달 19~20일 양일간 경주를 찾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준비 상황을 점검했는데 정 대표가 마치 천마총 금관을 쓰고 있는 듯한 착시 사진이 문제가 된 것이다. 정 대표가 금관을 직접 착용한 것은 아니지만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시에 왕 노릇을 한다” “벌써 왕인 것처럼 군다” 등 거친 비판이 쏟아졌다. 현재 해당 사진은 삭제됐지만 8·2 전당대회 때 불거진 박찬대 의원과의 앙금이 아직 남은 게 아니냐는 뒷말이 나온 이유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