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정치팀] 일명 국회의원 연금이라 불리는 '헌정회 연로회원 지원금'이 또 다시 도마에 올랐다. 민주당이 지난 3일 발표한 정치개혁안에서 국회의원 연금에 대한 언급이 쏙 빠졌기 때문이다. 당초 여야는 국회의원 연금 폐지를 약속해왔다. 도대체 어찌된 일일까? 한때 잘 나가던 전직 국회의원들에게 월120만원의 지원금은 꼭 필요한 것일까? <일요시사>가 국민들에게 트러블메이커로 전락한 대한민국 헌정회를 집중 해부해봤다.
민주당이 지난 3일 정치개혁안을 발표했다. 하지만 그동안 논란이 되어온 국회의원 연금에 대한 언급은 쏙 빠졌다. 통합진보당은 "민주당이 진정으로 국민을 위하여 국회의원의 특권을 내려놓고자 한다면 원로회원 지원을 폐지하는 법안부터 시작해야 한다"며 "김선동 의원이 전직 국회의원의 지원을 중단하는 내용의 '헌정회 육성법 개정안'을 준비했으나 다른 정당의 외면으로 발의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핵심을 외면한 생색내기식 처방으로는 국민의 지지를 받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특권?
국민들의 비판 여론 역시 거세지고 있다. 이른바 국회의원 연금이라 불리는 '헌정회 연로회원지원금'이 또 다시 도마에 오른 것이다.
그동안 대한민국 전직 국회의원들은 단 하루라도 국회의원을 역임했다면 만 65세부터 매달 120만원의 연금을 받아왔다. 이는 일반 국민이 결코 납득할 수가 없는 일이었다. 이 같은 연금은 일반 국민들이 박봉을 쪼개 20년 이상 연금을 부어도 받기 힘든 금액이다.
일례로 6ㆍ25 참전 명예수당이 고작 월 9만원인데, 국회의원을 한번 했다고 매달 120만원씩 연금을 지급받는 것은 형평성에도 맞지 않는다.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정치쇄신 논의가 있을 때마다 국회의원 연금이 가장 먼저 도마 위에 오르곤 했다.
여야의 약속은 지난해 7월 드디어 결실을 맺었다. △국회의원 재임기간 1년 미만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뒤 사면 복권되지 않은 경우 △가구 월평균 소득이 전년도 도시근로자 가구당 월평균 소득액(2인 가족 기준 월 약 294만원) 이상 △부채를 제외한 자산이 18억5000만원 이상인 경우 등은 지원금을 받을 수 없도록 하는 '대한민국헌정회 육성법 개정안'이 통과된 것이다. 하지만 국회의원 연금을 아예 폐지하겠다는 당초 약속과 비교하면 크게 후퇴한 것이었다.
문제는 또 있다. 법은 순자산 기준에 대해서는 헌정회 정관에 위임했는데, 정관은 순자산가액을 18억5000만원으로 설정했다. 서울시 가구당 평균 순자산 3억6600만원과 비교하면 5배나 많았다.
헌정회의 방만한 운영도 문제다. 헌정회는 지난 2012년 기준으로 총 125억 가량을 지출했다. 국회의원 연금을 제외한 사업비 6억8926만원 가운데 총 3억8829만원을 회원 복지사업, 친목단체 지원, 역사탐방, 회원접대 비용으로 썼다.
세부사항을 살펴보면 헌정회는 매년 창립기념식 때마다 80세 이상 모든 회원에게 시가 120만원짜리 순금 공로패를 수여하면서 4000여만원의 예산을 썼다. 또 매년 역사탐방 1억원, 친목단체지원비 2350만원, 회의비 1억1500만원을 지급했다. 심지어 회원이 아닌 내부 직원 경조사비를 국비로 내기도 했다.
헌정회가 한해 지출한 경조사비만 6000여만원이었다. 주요선진국에서는 헌정회처럼 전직 의원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단체에 국고가 지원되는 사례가 전무하다.
아직도 못 내려놓은 특권, 국민 '부글부글'
"셋방 전전하는 전직 의원 많다" 하소연
물론 헌정회 측도 할 말은 있다. 미국, 일본 등 선진국은 의원연금제도가 있는데 한국은 의원연금제도가 없다. 때문에 다른 나라들과의 단순비교는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7선 의원의 경우 영국에선 연금을 400만원 정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겨우 120만원 받는 게 뭐가 문제냐는 것이다.
헌정회 회원들 간 모임에 국고를 지원한 것도 문제될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헌정회 권해옥 사무총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작심발언을 하기도 했다.
권 총장은 국회의원 연금에 대한 비난여론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의원연금제도가 없는 우리나라 현실에서 국가에 헌신한 분들에 대한 지원은 있어야 한다는 것이 저의 소신이자 바람"이라며 "사실 국회의 특권 내려놓기에 우리 헌정회가 희생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치평론가들은 국회의원연금이 폐지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로 이같은 헌정회의 압력을 첫 손에 꼽는다. 한때 잘나가던 정치인들의 모임인 만큼 정치권이 이들의 영향력을 무시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헌정회는 전직 국회의원들이 회원으로 가입하는 사단법인 단체다. 현재 헌정회의 정회원은 1111명이다. 현역 국회의원은 모두 특별회원이다. 헌정회는 국회의원 연금 논란이 일 때마다 나름 국가의 큰 현안이나 외교적인 일이 있을 때 원로로서 목소리를 내고 정책도 개발해 왔다며 항변해왔다.
하지만 근본적인 궁금증도 있다. 한때 잘나가던 전직 국회의원들이 연금 지원을 꼭 받아야 할 정도로 가난할까라는 점이다. 지난해 국회 공직자윤리위원회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새누리당의 경우 고액자산가인 정몽준 의원(1조 9249억4952만원)을 제외하고도 평균재산이 46억여원이나 됐다. 헌정회 회원들은 전직이기 때문에 재산을 공개할 이유는 없지만 이와 비슷한 수준이 아니겠냐는 추측이다.
헌정회 측은 물론 경제적으로 매우 부유한 회원들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회원들도 많다고 항변한다. 지금은 선거가 있는 해에 상한 3억원까지 후원금을 모을 수 있고, 법정선거비용을 선거관리위원회가 보전해주는 제도가 생겼지만 당시에는 그런 제도가 없었다.
한때 수십억 재산을 가졌던 의원들도 선거 몇번 낙선하고 나면 재산 까먹는 것은 금방이었다는 것이다. 전직 의원이 마땅히 새로운 직업을 가지기도 어려우니 경제적 상황은 더욱 나빠질 수밖에 없었다. 노년이 어렵다보니 전직 의원이란 간판을 이용해 각종 이권에 개입하는 등 범죄를 저지르다 적발되는 회원들까지 있었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사고(?)를 미연에 막기 위해서도 회원들에 대한 최소한의 지원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보은?
실제로 헌정회 사무실을 찾는 회원들의 삶은 비루해보였다. 대다수가 요금을 내지 않는 지하철을 이용해 회관에 나오고, 헌정회에서 주는 식권으로 국회 주변 지정식당에서 식사를 해결한다. 부인과 단 둘이 살고 있는 모 전직의원의 경우 식비가 모자라 식권을 모았다가 부인과 함께 식사를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다른 전직 국회의원은 지병으로 병원에 입원해 있다가 별세했는데 입원비를 해결하지 못해 시신을 기증하는 것으로 대신하기도 했다고 한다.
또 상당수 회원들이 셋방을 전전하고 있다고 헌정회 측은 주장했다. 국회의원 연금을 받아도 각종 부채 등으로 힘들게 살고 있는 전직 의원들이 많은데 국회의원 연금제도를 완전히 폐지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는 것이다. 무소속 안철수 의원의 등장으로 정치쇄신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는 정치권. 국회의원 연금과 헌정회 지원을 둘러싼 논란은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