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경제1팀] 재벌가 혼맥, 대박 브랜드 비밀, 망해도 잘사는 부자들, 기업 내부거래 등을 시사지 최초로 연속 기획해 독자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던 <일요시사>가 2014년 새해를 맞아 새로운 연재를 시작한다. 직원들이 입 밖에 내면 안 되는 '금기어'를 통해 기업 성장의 이면에 숨겨진 '비사'를 파헤쳐 보기로 했다. 일반인은 잘 모르는, 기업으로선 숨기고픈 비밀, 그 첫 번째는 현대산업개발의 'BW'다.
IMF 칼바람이 한창 불던 1999년. 현대산업개발에겐 남다른 한 해였다. 그해 8월 현대그룹에서 계열 분리했기 때문이다. 정몽규 회장이 '현산호'키를 잡은 것도 그때.
고려대 경영학과와 옥스퍼드대학원 정치학 석사 과정을 마치고 1988년 11월 현대차에 입사한 정 회장은 1996∼1998년 현대차 회장을 역임하다 분가 직전인 1999년 3월 현대산업개발 회장으로 취임했다. 그가 37세 때 일이다. 이후 1998년 말만 해도 주식이 없던 정 회장은 1999년 무려 23번의 CB전환, 유상증자, BW전환 등을 통해 부친 고 정세영 명예회장과 함께 약 20%의 지분을 확보, 최대주주 자리에 올라 경영권을 쥘 수 있었다.
헐값 매입 의혹
이 과정에서 정 회장은 결단을 내린다. 바로 BW(신주인수권부사채) 거래다. BW는 일정기간이 지나면 해당 기업이 새로 발행하는 주식을 우선 인수할 수 있는 권리가 부여된 채권. 대주주나 특수관계인들이 회사 지분을 유지 또는 높이거나 차익을 챙기려는 목적으로 BW를 악용하는 사례가 빈번한 만큼 위험한 선택일 수밖에 없었다.
현대그룹에서 분가한 현대산업개발은 우선 몸집 불리기에 나섰다. 첫 번째 자회사가 사업시설 유지관리 업체인 아이서비스다. 상황은 199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10월 이 회사의 원래 주인인 조희준 전 국민일보 회장은 아이서비스(당시 퍼실리티매니지먼트코리아)를 현대산업개발에 매각하는 조건으로 BW를 발행했고, 정 회장은 20만주를 사들였다.
이상한 점은 BW 가격이다. 주당 '10원'이었다. 정 회장은 20만주를 배정받는 데 200만원 밖에 들지 않았다. 당시 이 회사의 주식 가치는 주당 1만5000∼1만8000원이었다는 게 외부 전문기관의 평가다. 헐값 의혹이 제기된다.
1999년 10월4일 기준으로 삼성증권이 평가한 아이서비스 주식가치는 주당 1만5325원. 2001년 3월 한누리투자증권(현 KB투자증권)의 평가금액은 1만8865원이었다. 정 회장은 2001년 12월 투자목적으로 아이서비스 보통주 25만주를 73억1575만원에 매수한 적이 있다. 이를 매매단가로 따져도 주당 2만9263원이란 계산이 나온다.
독립 전후 '경영 장악' 위험한 선택
1999년 23번 CB·BW 발행·전환
다만 여의도순복음교회에 아이서비스 지분을 매각해 엄청난 시세차익을 챙긴 조 전 회장과 달리 정 회장은 아직 BW를 현금화하지 않았다. 신주인수권 행사한 주식을 그대로 갖고 있다. 정 회장은 2000년 3월 전환사채 전환과 2001년 10월 신주인수권 행사 등을 통해 아이서비스 개인 최대주주가 됐다. 수차례 증자와 감자를 거쳐 현재 10.61%(15만주)를 소유하고 있다. 현대산업개발은 56.55%(79만9700주)를, 여의도순복음교회 등은 32.84%(46만4300주)를 보유하고 있다.
아이서비스는 정 회장에게 없어선 안 될 '효자회사'가 됐다. 먼저 '정 회장→현대산업개발→아이서비스→아이콘트롤스→현대산업개발'로 이어지는 현대산업개발 지배구조에서 중간고리 역할을 하고 있다. 현대아이파크몰(5.54%), 아이콘트롤스(9.86%), 현대EP(2%), 아이시어스(46.67%) 등의 계열사 지분을 소유 중이다.
2012년 1711억원을 기록한 매출도 쏠쏠하다. 2001년 400억원대 매출은 매년 늘어 2004년 800억원이 넘더니 2008년 1000억원을 돌파했다. 영업이익과 순이익은 꾸준히 30억∼50억원을 올렸다. 이를 토대로 해마다 배당도 실시하고 있다. 2001년 15억원, 2002년 7억원, 2003년 9억원, 2004년 7억원, 2005년 11억원, 2006년 18억원을 배당했다. 2007∼2011년 각각 18억원씩, 2012년엔 28억원을 지급했다. 정 회장은 매년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을 챙겨왔다.
아이서비스는 앞으로도 지속적인 실적 향상이 기대된다. 든든한 지원군들을 등에 업고 있어서다. 그도 그럴 게 매출의 절반가량이 내부거래인 계열사 일감이다. 현대산업개발 측은 정 회장의 아이서비스 BW 인수에 대해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선을 그었다. 회사 관계자는 "적법한 조치와 절차를 거쳤다"며 "(정 회장이) 주당 10원에 배정받은 것은 맞지만 신주인수권 행사 가격은 주당 10원이 아닌 1만원으로 총 20억원이 들어갔다"고 설명했다.
정 회장은 BW로 웃기만 한 게 아니다. 곤혹을 치른 적도 있다. 공교롭게도 시계추는 다시 1999년으로 되돌아간다. 정 회장은 독립하면서 현대산업개발의 해외 BW 1358만주를 배당받았다. 이는 전체 물량의 90%가 넘는 것이었다.
'주당 10원' 계열사 논란
시민단체 지적에 백기도
당초 현대산업개발에 대한 지배력이 약했던 정 회장은 해외 BW를 행사하려고 했다. 이때 BW를 행사했다면 정 회장의 지분이 32%로 크게 올라 대주주로서 입지를 강화할 수 있었다.
그러나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가 "현대산업개발이 회사 지배권 유지수단으로 BW를 발행했다. 대주주가 보유한 BW를 완전 소각해야 한다"며 제동을 걸었고, 결국 정 회장은 백기를 들었다. 그는 2003년 7월과 12월 각각 5000만달러, 8500만달러 규모의 BW를 전량 무상소각해 BW 문제를 잠재웠다.
현재 정 회장의 현대산업개발 지분은 13.63%. 우호지분까지 18.83%에 이른다. 경영권을 위협하는 템플턴자산운용은 16.98%다. 현대산업개발 측은 '우호 지분'이라 믿고 있지만, 업계엔 템플턴이 '이빨'을 숨기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심이 끊이지 않고 있다. 정 회장 입장에선 '그때 해외 BW를 버리지 않았더라면…'이란 미련이 충분히 들 만하다.
뿐만 아니다. 정 회장은 BW와 관련해 검찰의 수사를 받고 법정에 서기도 했다. 사건의 발단이 된 시기 역시 1999년. 그해 4월 정 회장은 권력형 금융스캔들로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진승현 게이트'의 장본인 진승현씨에게 고려산업개발 BW 550만주를 헐값에 넘기고, 진씨가 이를 리젠트증권에 비싸게 되팔아 발생한 차액 56억원을 돌려받는 방법으로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비자금 조성도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은 정 회장은 벌금 3000만원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정 회장이 비자금을 조성한 것은 맞지만 조성된 비자금 대부분을 부하 직원이 빼돌려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며 "정 회장 횡령액이 3억원에 불과하고, 직원한테 속아 피해자 측면이 있는 점, 피해액을 회사에 변제해 실질적으로 피해가 회복된 점 등을 고려했다"고 벌금형 이유를 밝혔다.
건설산업기본법에 따라 집행유예 이상의 형이 확정되면 건설사 임원 자격을 잃게 된다. 벌금형만 받아 회장직을 유지할 수 있었던 정 회장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가슴을 쓸어내렸다는 후문이다. 1999년, 그때 그 시절 '왕창'발행한 BW 때문에 천당과 지옥을 오간 셈이다.
김성수 기자<kimss@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