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르포> 연초 물만난 ‘복 아줌마’ 따라가보니…

  • 이광호 khlee@ilyosisa.co.kr
  • 등록 2014.01.13 11: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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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짱끼고 가슴 부비적…대담한 미시들의 위험한 대시

[일요시사=사회팀] 길거리를 걷다보면 ‘복이 많다’며 다가오는 여성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번화가나 지하철 입구에 특히나 많다. 과거부터 꾸준히 성행하고 있다. 이들은 주로 ‘미시’로, 요즘에는 그 수법이 다양해지고 있다. 이제는 외모가 출중한 아가씨를 동원하기도 한다. 도대체 이들은 무엇을 위해 ‘복’을 떠드는 걸까. 그 속사정을 알기 위해 한 미시를 따라가 봤다.




지난해 30일,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룬 서울의 한 번화가를 찾았다. 인근 지하철역 입구에 다가서자 ‘그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사람들에게 ‘복이 많다’며 접근하는 ‘복 전도사’ 미시들은 사냥감을 찾는데 혈안이 돼 있었다. 하이에나처럼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타깃을 찾고 있던 이들은 이내 기자와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 익숙한 멘트가 귀를 때려 박았다. “얼굴에 복이 많으세요.”

‘복…복…복…’
그녀들의 도발

역시나 어김없이 들려온 소리. 복이 많다고 한다. 정말 얼굴에 복이 많아서 그럴까. 도대체 이들은 무엇을 위해 낯선 이들에게 연신 복을 외치는 걸까. 그 ‘복’소리의 진실을 파해치고자 미시를 따라갔다. 미시는 “얼굴에 복이 많다”며 “우리가 이렇게 만난 건 하늘이 정한 것”이라며 깊은 이야기를 나누자고 제안했다. 자신을 도인이라고 설명했다.

카페로 이동한 후 미시는 커피를 주문했다. 그리고 커피 값 계산을 요구하며 유유히 뒤돌아 걸어갔다. 이내 의자에 앉아 종이 한 장과 검은 펜을 꺼냈다. 본격적인 ‘복 이야기’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미시는 우선 만남 자체에 크 의미를 부여했다. 미시와 기자의 만남은 하늘이 내려줬다는 것. 보통 사람이었다면 무시하며 그냥 지나쳤겠지만 그렇지 않았기에 매우 특별한 만남이라고 강조했다.

“평소였으면 그냥 갔겠죠? 그런데 왜 저를 따라왔을까요? 왜냐하면 오늘은 하늘이 내려준 날이기 때문이에요. 운명이라는 거죠.”


미시의 외모는 단정했다. 깔끔한 옷차림에 진지한 말투를 보였다. 살아있는 눈빛에서 프로페셔널한 면을 볼 수 있었다. 그저 장난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그래서 천천히 그의 말에 귀 기울였다.

만남 자체에 대한 의미 부여를 마치고 본격적인 ‘복 분석’에 나섰다. 미시는 기자의 얼굴과 손금 등을 보며 인생을 점치고 과거, 현재, 미래를 풀어냈다.

“손금을 보니까 조상님이 생명줄을 이어줬네. 조상님께 감사해야겠어. 그리고 얼굴을 보니 돈이 많이 모이겠네. 근데 지금은 힘들어 하고 있어. 고민도 많고.”

“도 아십니까”무표정 도인들 없어지고 
“차 한잔해요”미모의 여성들 거리 활개

그녀의 펜은 쉴세 없이 움직여 어느새 흰 종이는 깜지로 변했다. 그녀의 화법이 진지했던 탓일까. 말 한마디 한마디가 전부 가슴에 와 닿았다.

“요즘 하는 일이 잘 안 되지?” “인간관계 때문에 힘들지?” “고민이 많네” 마치 기자의 마음을 꿰뚫어보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누구나 느끼는 보편적 감정에 호소해 무언가 설득하기 위한 작업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쉽게 흔들릴 수 있는 감정에 기대는 느낌이 강했다. 그래서 어느 정도 경계하는 마음으로 그녀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그녀는 기자의 이름과 나이를 묻더니 복잡한 한자어를 종이에 휘갈기기 시작했다.


“큰 복을 타고 났어. 근데 그 복이 제대로 나오지 못하고 있어. 복이 지나가는 맥이 꽉 막혀있어서 그래.”

100년에 한 번 나올까말까 하는 복을 받고 태어났다는 것. 하지만 복을 가로막는 장애물 때문에 현재 어려운 삶을 살고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하늘에서 내려오는 복이 제대로 내려오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녀는 원한 있는 ‘조상탓’이라며 조상들의 ‘한’이 복을 가리는 막이라고 했다.

복이 뭐길래…
이렇게 붙잡나

그녀는 이내 손을 꽉 붙잡더니 “손이 차갑다”며 손이 차가운 이유가 무엇일 것 같냐고 질문했다. “겨울이니까요”라는 기자의 말에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조상 중에 동상에 걸려 죽은 사람이 있다”고 말했다. 다소 황당했다. 그녀의 주장은 간단했다. 조상 중에 추위에 떨다 얼어 죽은 사람의 한이 후손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것. 엉뚱한 논리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녀의 주장을 종합해보면, 과거에 원한을 품고 죽은 조상의 영혼이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아다니며 ‘복을 타고난 후손’을 ?아다닌다는 것이었다. 믿을 후손이 본인뿐이기 때문에 조상들이 혼이 들러붙는다는 것. 이런 식으로 ‘선택된 후손’임을 강조하며 억울한 조상들의 원한을 풀어줘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녀에 따르면 부모님이나 가족이 아픈 이유도 억울하게 죽은 조상의 영향이라고 한다. 즉 ‘나’ 자신을 둘러싼 모든 작용이 조상과 연관이 있다는 것. 역설적이지만 복을 타고났기 때문에 조상의 혼이 끊이지 않고 붙는다는 것이다. 믿을 후손은 하나기 때문이라고. 타고난 복은 많은데 기대려는 조상들의 혼 때문에 복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것이다.

“복이 이렇게나 많은데, 지금 이 복을 누리지를 못하고 있어. 왠지 알아? 조상들이 이걸 막고 있어.”

그리고 그녀는 갑자기 ‘효’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지금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자체도 효의 일종이라고 했다. 예의바른 사람이기에 의심치 않고 자신과 함께 대화를 나누고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예의와 효에 대한 칭찬 세례는 계속됐다. 그리고 복을 받는 맥이 막혀있는 것에 대해 안타까워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참 잘될 사람인데, 복이 막혀 있어서 어떡해…눈물이 나네…”

그녀는 몇 방울의 눈물까지 흘렸다. 답답했는지, 자신의 가슴을 치며 큰 한숨을 쉬었다.

“아주머니 괜찮으세요?”

“당신 복이 너무 아까워, 이 복을 뚫어줘야 되는데…”

“그럼 조상들로부터 복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죠?”


“그건….”

카페로 이동해 손 꽉 잡고
조상 들먹여 불안심리 조장
결국 제사 핑계로 돈 뜯어

이때부터 본론이 시작됐다. 지금까지의 말은 포장에 불과했다. 이제 내용을 소개할 차례였다. 어떻게 해야 복을 제대로 받을 수 있냐는 질문에 그녀는 환한 미소를 보이며 “역시 우리의 만남은 운명”이라며 “당신은 말 귀 알아듣는 사람이니까 끝까지 잘 들을 거라 생각 한다”고 말했다.

그녀가 말하는 해결책은 간단했다. 막혀있는 맥을 뚫기 위해서는 조상들께 ‘제사’를 지내야한다는 것이었다. 제사를 통해 억울한 조상들의 한을 풀어줘 막혀있는 맥이 풀려 선택된 참 복을 누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나를 따라오면 돼. 방법은 간단해. 제사 지낼 장소가 있으니까 같이 가자.” 기자의 이름과 사주를 적은 종이를 불태우고 제사를 지내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 제사까지는 좋았다. 그냥 해줄 리는 없었다. 그래서 물었다.

“제사 지내는 비용이 얼만데요?” 이 질문에 미시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얼굴을 붉히며 다소 격양된 목소리를 내뱉었다.

“아니 이 사람아. 당신의 인생이 걸린 문젠데, 지금 돈이 중요해?”


“아, 그럼 공짜로 제사를 준비해주세요?”

“아니…이 답답한 양반아… 내가 지금까지 뭐라고 했나…”

그녀는 돈 이야기가 나오자 민감하게 반응하며 회피하는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다시 펜을 들고 설명을 이어갔다.

“오늘은 운명적인 날이야. 무조건 제사를 드려야 돼. 오늘을 놓치면 당신은 평생을 후회하게 될 거야. 제사 한 번으로 인생이 180도 변할 거야. 이렇게 중요한 날에 돈이 무슨 소용이요?”

이런 비슷한 말들이 끊임없이 반복됐다. 제사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한 노력이었다. 그렇지만 더 이상 시간을 낭비할 순 없었다. 기자도 반복적으로 비용을 물었다. 그러자 회피만 하던 그녀의 입에서 돈 이야기나 나왔다. 제사 비용으로 ‘30만원’을 달라는 것. 너무 황당했다. 그리고 ‘너무 비싸요’라고 딱 잘라 말했다. 이때부터 그녀의 강의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돌이킬 수 없는 결과였다.

“오늘이 아니면 절대 안 된다니까. 그깟 30만원이 중요한가? 술 좀 덜 먹으면 될 것 아닌가? 당신 인생이 걸린 문제야.”

“30만원이 없어요.”

“그럼 25만원에 해줄게.”

그녀는 5만원 씩 5만원씩 가격을 내렸다. 절실해 보였다.

“당신 아까 커피 뭐로 샀어? 카드로 샀지? 카드도 돼.”

막힌 복 뚫어주는
“제사 지내세요”

구린내가 팍팍 났다. 끝끝내 거절하고 나가려고 하자 또 한 번 ‘오늘’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기자의 옷깃을 붙잡았다. 그리고 번호를 달라고 간곡히 요청했다.

“그럼 언제 시간 돼? 시간 될 때 제사 지내줄게.”

‘오늘’이 아니면 안 된다고 했던 그녀. 굳이 오늘이 아니어도 다른 날에 제사를 지내도 된다며 말을 바꿨다. 바뀐 태도를 지적하자 그녀는 말문이 막혔다. 뒤돌아서서 카페를 나왔다. 그녀는 종이와 펜을 들고 기자를 쫓아왔다. 그리고 자신이 근무하는 ‘사무실’로 가자며 애원했다.

“정말 너무 아까워서 그래. 당신 얼굴에 복이 이렇게나 많은데, 복이 피질 못하고 있다고….”

무시하고 돌아서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역시나 역 주변에는 그녀와 같이 영업(?)을 하는 미시들이 줄지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은 미시들의 손길을 외면했다. 그러나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건수 하나를 잡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순진한 사람 하나만 제대로 잡으면 수 십 만원 버는 건 일도 아닌 것이다.

“손이 왜이리 찬지 알아?”

“겨울이니까요”

“아냐, 얼어 죽은 조상이 있어서 그래”

이처럼 ‘복 장사’를 하는 미시들은 전국적으로 퍼져있다. 조직적으로 뭉쳐 다니며 타깃을 ‘복’으로 유혹한다. 간단한 스킨십은 영업의 시작으로 보인다. 이들이 이렇게 양성적으로 번화가를 돌며 활동하는 것을 보면 그만큼 ‘장사’가 잘 되는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그만큼 순진한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순진한 사람의 감정을 흔들어 결국 제사까지 이르게 하는 것. 이렇게 돈벌이를 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것이 ‘사기’라는 걸 어느 정도 알고 있다. 낯선 미시들이 ‘복’짜만 꺼내도 바로 거절한다.
그래서일까. 최근에는 그 수법이 조금 변했다.

조상으로 영업하는
거리의 사기꾼들

직장인 A씨는 퇴근길에 뒤에서 ‘복∼’하며 다가오는 여성들을 마주했다. A씨는 순간 짜증났다. 그런데 다시 뒤를 돌아보니 평소에 부딪혔던 미시들이 아닌, 아가씨들이었던 것이다. 그는 순간 설레임을 느꼈다. 낯선 여성이지만 젊고 예쁜 아가씨들이었기 때문이다. 사기라는 걸 의식하면서도 아가씨들과의 대화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결국 A씨는 그녀들과 함께 카페로 이동해 긴 설명을 들었다. 그리고 아가씨들은 제사비용 50만원을 요구했다. 이처럼 최근에는 젊은 여성들까지 거리로 나서 ‘복 사기’를 치고 있다. 이들에 대한 주의가 요구된다.


이광호 기자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얼마나 예쁘길래…

40대 꽃뱀 아줌마가 20대 명문대생 유혹

중국 베이징의 한 중년 여성이 나이와 학력 등을 속이고 17살 연하의 명문대생을 유혹해 사기결혼에 성공한 드라마 같은 사건이 있다. 일명 ‘꽃뱀 아줌마’로 통하는 올해 나이 41세의 쉬샤오윈씨는 지난 2월 지인을 통해 자신보다 17살이나 어린 26세의 칭화대학 대학원생 리모씨를 소개 받았다.

당시 쉬씨는 자신의 나이는 26세로 칭화대 박사과정을 밝고 있으며, 아버지는 전 중국UN대사, 오빠는 국제경찰로 소개했다. 나이완 다르게 늙어보이는 자신의 외모에 대해서는 갑자기 10kg 이상 살이 찌는 바람에 외모가 조숙해졌다고 둘러대는 뻔뻔함까지 보였다. 때문에 리씨는 쉬씨를 한치의 의심도 하지 않은 채 이야기를 나누며 호감을 갖게 됐고, 결국 이들은 여관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이후에도 쉬씨는 리씨에게 미국 명문대로의 유학을 제안하는 등 자신의 재산과 가문을 자랑하면서 이씨에게 환심을 샀고 둘의 관계는 더욱 깊어졌다. 급기야 이들은 결혼을 약속하게됐다. 하지만 쉬씨는 이씨에게 여러 차례 돈을 요구했고 그렇게 5만위안(850만원)을 뜯어냈다. 

이 같은 쉬씨의 행동에 이상함을 느낀 이씨는 그녀의 학적을 확인하고 주변조사를 하면서 자신이 속은 것을 알게됐다. 결국 이씨는 쉬씨를 공안(경찰)에 신고했다. 공안은 쉬씨는 푸단대학을 나온 명문대생이었지만 이미 2번의 사기죄로 복역한 전과가 있다고 전했다.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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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