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르포> 연초 물만난 ‘복 아줌마’ 따라가보니…

  • 이광호 khlee@ilyosisa.co.kr
  • 등록 2014.01.13 11: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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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짱끼고 가슴 부비적…대담한 미시들의 위험한 대시

[일요시사=사회팀] 길거리를 걷다보면 ‘복이 많다’며 다가오는 여성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번화가나 지하철 입구에 특히나 많다. 과거부터 꾸준히 성행하고 있다. 이들은 주로 ‘미시’로, 요즘에는 그 수법이 다양해지고 있다. 이제는 외모가 출중한 아가씨를 동원하기도 한다. 도대체 이들은 무엇을 위해 ‘복’을 떠드는 걸까. 그 속사정을 알기 위해 한 미시를 따라가 봤다.




지난해 30일,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룬 서울의 한 번화가를 찾았다. 인근 지하철역 입구에 다가서자 ‘그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사람들에게 ‘복이 많다’며 접근하는 ‘복 전도사’ 미시들은 사냥감을 찾는데 혈안이 돼 있었다. 하이에나처럼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타깃을 찾고 있던 이들은 이내 기자와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 익숙한 멘트가 귀를 때려 박았다. “얼굴에 복이 많으세요.”

‘복…복…복…’
그녀들의 도발

역시나 어김없이 들려온 소리. 복이 많다고 한다. 정말 얼굴에 복이 많아서 그럴까. 도대체 이들은 무엇을 위해 낯선 이들에게 연신 복을 외치는 걸까. 그 ‘복’소리의 진실을 파해치고자 미시를 따라갔다. 미시는 “얼굴에 복이 많다”며 “우리가 이렇게 만난 건 하늘이 정한 것”이라며 깊은 이야기를 나누자고 제안했다. 자신을 도인이라고 설명했다.

카페로 이동한 후 미시는 커피를 주문했다. 그리고 커피 값 계산을 요구하며 유유히 뒤돌아 걸어갔다. 이내 의자에 앉아 종이 한 장과 검은 펜을 꺼냈다. 본격적인 ‘복 이야기’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미시는 우선 만남 자체에 크 의미를 부여했다. 미시와 기자의 만남은 하늘이 내려줬다는 것. 보통 사람이었다면 무시하며 그냥 지나쳤겠지만 그렇지 않았기에 매우 특별한 만남이라고 강조했다.

“평소였으면 그냥 갔겠죠? 그런데 왜 저를 따라왔을까요? 왜냐하면 오늘은 하늘이 내려준 날이기 때문이에요. 운명이라는 거죠.”


미시의 외모는 단정했다. 깔끔한 옷차림에 진지한 말투를 보였다. 살아있는 눈빛에서 프로페셔널한 면을 볼 수 있었다. 그저 장난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그래서 천천히 그의 말에 귀 기울였다.

만남 자체에 대한 의미 부여를 마치고 본격적인 ‘복 분석’에 나섰다. 미시는 기자의 얼굴과 손금 등을 보며 인생을 점치고 과거, 현재, 미래를 풀어냈다.

“손금을 보니까 조상님이 생명줄을 이어줬네. 조상님께 감사해야겠어. 그리고 얼굴을 보니 돈이 많이 모이겠네. 근데 지금은 힘들어 하고 있어. 고민도 많고.”

“도 아십니까”무표정 도인들 없어지고 
“차 한잔해요”미모의 여성들 거리 활개

그녀의 펜은 쉴세 없이 움직여 어느새 흰 종이는 깜지로 변했다. 그녀의 화법이 진지했던 탓일까. 말 한마디 한마디가 전부 가슴에 와 닿았다.

“요즘 하는 일이 잘 안 되지?” “인간관계 때문에 힘들지?” “고민이 많네” 마치 기자의 마음을 꿰뚫어보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누구나 느끼는 보편적 감정에 호소해 무언가 설득하기 위한 작업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쉽게 흔들릴 수 있는 감정에 기대는 느낌이 강했다. 그래서 어느 정도 경계하는 마음으로 그녀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그녀는 기자의 이름과 나이를 묻더니 복잡한 한자어를 종이에 휘갈기기 시작했다.


“큰 복을 타고 났어. 근데 그 복이 제대로 나오지 못하고 있어. 복이 지나가는 맥이 꽉 막혀있어서 그래.”

100년에 한 번 나올까말까 하는 복을 받고 태어났다는 것. 하지만 복을 가로막는 장애물 때문에 현재 어려운 삶을 살고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하늘에서 내려오는 복이 제대로 내려오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녀는 원한 있는 ‘조상탓’이라며 조상들의 ‘한’이 복을 가리는 막이라고 했다.

복이 뭐길래…
이렇게 붙잡나

그녀는 이내 손을 꽉 붙잡더니 “손이 차갑다”며 손이 차가운 이유가 무엇일 것 같냐고 질문했다. “겨울이니까요”라는 기자의 말에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조상 중에 동상에 걸려 죽은 사람이 있다”고 말했다. 다소 황당했다. 그녀의 주장은 간단했다. 조상 중에 추위에 떨다 얼어 죽은 사람의 한이 후손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것. 엉뚱한 논리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녀의 주장을 종합해보면, 과거에 원한을 품고 죽은 조상의 영혼이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아다니며 ‘복을 타고난 후손’을 ?아다닌다는 것이었다. 믿을 후손이 본인뿐이기 때문에 조상들이 혼이 들러붙는다는 것. 이런 식으로 ‘선택된 후손’임을 강조하며 억울한 조상들의 원한을 풀어줘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녀에 따르면 부모님이나 가족이 아픈 이유도 억울하게 죽은 조상의 영향이라고 한다. 즉 ‘나’ 자신을 둘러싼 모든 작용이 조상과 연관이 있다는 것. 역설적이지만 복을 타고났기 때문에 조상의 혼이 끊이지 않고 붙는다는 것이다. 믿을 후손은 하나기 때문이라고. 타고난 복은 많은데 기대려는 조상들의 혼 때문에 복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것이다.

“복이 이렇게나 많은데, 지금 이 복을 누리지를 못하고 있어. 왠지 알아? 조상들이 이걸 막고 있어.”

그리고 그녀는 갑자기 ‘효’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지금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자체도 효의 일종이라고 했다. 예의바른 사람이기에 의심치 않고 자신과 함께 대화를 나누고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예의와 효에 대한 칭찬 세례는 계속됐다. 그리고 복을 받는 맥이 막혀있는 것에 대해 안타까워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참 잘될 사람인데, 복이 막혀 있어서 어떡해…눈물이 나네…”

그녀는 몇 방울의 눈물까지 흘렸다. 답답했는지, 자신의 가슴을 치며 큰 한숨을 쉬었다.

“아주머니 괜찮으세요?”

“당신 복이 너무 아까워, 이 복을 뚫어줘야 되는데…”

“그럼 조상들로부터 복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죠?”


“그건….”

카페로 이동해 손 꽉 잡고
조상 들먹여 불안심리 조장
결국 제사 핑계로 돈 뜯어

이때부터 본론이 시작됐다. 지금까지의 말은 포장에 불과했다. 이제 내용을 소개할 차례였다. 어떻게 해야 복을 제대로 받을 수 있냐는 질문에 그녀는 환한 미소를 보이며 “역시 우리의 만남은 운명”이라며 “당신은 말 귀 알아듣는 사람이니까 끝까지 잘 들을 거라 생각 한다”고 말했다.

그녀가 말하는 해결책은 간단했다. 막혀있는 맥을 뚫기 위해서는 조상들께 ‘제사’를 지내야한다는 것이었다. 제사를 통해 억울한 조상들의 한을 풀어줘 막혀있는 맥이 풀려 선택된 참 복을 누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나를 따라오면 돼. 방법은 간단해. 제사 지낼 장소가 있으니까 같이 가자.” 기자의 이름과 사주를 적은 종이를 불태우고 제사를 지내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 제사까지는 좋았다. 그냥 해줄 리는 없었다. 그래서 물었다.

“제사 지내는 비용이 얼만데요?” 이 질문에 미시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얼굴을 붉히며 다소 격양된 목소리를 내뱉었다.

“아니 이 사람아. 당신의 인생이 걸린 문젠데, 지금 돈이 중요해?”


“아, 그럼 공짜로 제사를 준비해주세요?”

“아니…이 답답한 양반아… 내가 지금까지 뭐라고 했나…”

그녀는 돈 이야기가 나오자 민감하게 반응하며 회피하는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다시 펜을 들고 설명을 이어갔다.

“오늘은 운명적인 날이야. 무조건 제사를 드려야 돼. 오늘을 놓치면 당신은 평생을 후회하게 될 거야. 제사 한 번으로 인생이 180도 변할 거야. 이렇게 중요한 날에 돈이 무슨 소용이요?”

이런 비슷한 말들이 끊임없이 반복됐다. 제사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한 노력이었다. 그렇지만 더 이상 시간을 낭비할 순 없었다. 기자도 반복적으로 비용을 물었다. 그러자 회피만 하던 그녀의 입에서 돈 이야기나 나왔다. 제사 비용으로 ‘30만원’을 달라는 것. 너무 황당했다. 그리고 ‘너무 비싸요’라고 딱 잘라 말했다. 이때부터 그녀의 강의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돌이킬 수 없는 결과였다.

“오늘이 아니면 절대 안 된다니까. 그깟 30만원이 중요한가? 술 좀 덜 먹으면 될 것 아닌가? 당신 인생이 걸린 문제야.”

“30만원이 없어요.”

“그럼 25만원에 해줄게.”

그녀는 5만원 씩 5만원씩 가격을 내렸다. 절실해 보였다.

“당신 아까 커피 뭐로 샀어? 카드로 샀지? 카드도 돼.”

막힌 복 뚫어주는
“제사 지내세요”

구린내가 팍팍 났다. 끝끝내 거절하고 나가려고 하자 또 한 번 ‘오늘’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기자의 옷깃을 붙잡았다. 그리고 번호를 달라고 간곡히 요청했다.

“그럼 언제 시간 돼? 시간 될 때 제사 지내줄게.”

‘오늘’이 아니면 안 된다고 했던 그녀. 굳이 오늘이 아니어도 다른 날에 제사를 지내도 된다며 말을 바꿨다. 바뀐 태도를 지적하자 그녀는 말문이 막혔다. 뒤돌아서서 카페를 나왔다. 그녀는 종이와 펜을 들고 기자를 쫓아왔다. 그리고 자신이 근무하는 ‘사무실’로 가자며 애원했다.

“정말 너무 아까워서 그래. 당신 얼굴에 복이 이렇게나 많은데, 복이 피질 못하고 있다고….”

무시하고 돌아서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역시나 역 주변에는 그녀와 같이 영업(?)을 하는 미시들이 줄지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은 미시들의 손길을 외면했다. 그러나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건수 하나를 잡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순진한 사람 하나만 제대로 잡으면 수 십 만원 버는 건 일도 아닌 것이다.

“손이 왜이리 찬지 알아?”

“겨울이니까요”

“아냐, 얼어 죽은 조상이 있어서 그래”

이처럼 ‘복 장사’를 하는 미시들은 전국적으로 퍼져있다. 조직적으로 뭉쳐 다니며 타깃을 ‘복’으로 유혹한다. 간단한 스킨십은 영업의 시작으로 보인다. 이들이 이렇게 양성적으로 번화가를 돌며 활동하는 것을 보면 그만큼 ‘장사’가 잘 되는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그만큼 순진한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순진한 사람의 감정을 흔들어 결국 제사까지 이르게 하는 것. 이렇게 돈벌이를 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것이 ‘사기’라는 걸 어느 정도 알고 있다. 낯선 미시들이 ‘복’짜만 꺼내도 바로 거절한다.
그래서일까. 최근에는 그 수법이 조금 변했다.

조상으로 영업하는
거리의 사기꾼들

직장인 A씨는 퇴근길에 뒤에서 ‘복∼’하며 다가오는 여성들을 마주했다. A씨는 순간 짜증났다. 그런데 다시 뒤를 돌아보니 평소에 부딪혔던 미시들이 아닌, 아가씨들이었던 것이다. 그는 순간 설레임을 느꼈다. 낯선 여성이지만 젊고 예쁜 아가씨들이었기 때문이다. 사기라는 걸 의식하면서도 아가씨들과의 대화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결국 A씨는 그녀들과 함께 카페로 이동해 긴 설명을 들었다. 그리고 아가씨들은 제사비용 50만원을 요구했다. 이처럼 최근에는 젊은 여성들까지 거리로 나서 ‘복 사기’를 치고 있다. 이들에 대한 주의가 요구된다.


이광호 기자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얼마나 예쁘길래…

40대 꽃뱀 아줌마가 20대 명문대생 유혹

중국 베이징의 한 중년 여성이 나이와 학력 등을 속이고 17살 연하의 명문대생을 유혹해 사기결혼에 성공한 드라마 같은 사건이 있다. 일명 ‘꽃뱀 아줌마’로 통하는 올해 나이 41세의 쉬샤오윈씨는 지난 2월 지인을 통해 자신보다 17살이나 어린 26세의 칭화대학 대학원생 리모씨를 소개 받았다.

당시 쉬씨는 자신의 나이는 26세로 칭화대 박사과정을 밝고 있으며, 아버지는 전 중국UN대사, 오빠는 국제경찰로 소개했다. 나이완 다르게 늙어보이는 자신의 외모에 대해서는 갑자기 10kg 이상 살이 찌는 바람에 외모가 조숙해졌다고 둘러대는 뻔뻔함까지 보였다. 때문에 리씨는 쉬씨를 한치의 의심도 하지 않은 채 이야기를 나누며 호감을 갖게 됐고, 결국 이들은 여관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이후에도 쉬씨는 리씨에게 미국 명문대로의 유학을 제안하는 등 자신의 재산과 가문을 자랑하면서 이씨에게 환심을 샀고 둘의 관계는 더욱 깊어졌다. 급기야 이들은 결혼을 약속하게됐다. 하지만 쉬씨는 이씨에게 여러 차례 돈을 요구했고 그렇게 5만위안(850만원)을 뜯어냈다. 

이 같은 쉬씨의 행동에 이상함을 느낀 이씨는 그녀의 학적을 확인하고 주변조사를 하면서 자신이 속은 것을 알게됐다. 결국 이씨는 쉬씨를 공안(경찰)에 신고했다. 공안은 쉬씨는 푸단대학을 나온 명문대생이었지만 이미 2번의 사기죄로 복역한 전과가 있다고 전했다.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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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