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경제1팀] 기업의 자회사 퍼주기. 오너 일가가 소유한 회사에 일감을 몰아주는 '반칙'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변칙적인 '오너곳간 채우기'는 멈추지 않고 있다. 보다 못한 정부가 드디어 칼을 빼 들었다. 내부거래를 통한 '일감 몰아주기'관행을 손 볼 태세다. 어디 어디가 문제일까. <일요시사>는 연속 기획으로 정부의 타깃이 될 만한 '얌체사'들을 짚어봤다.
재계 50위권인 일진그룹은 상장사 5개사, 비상장사 22개사 등 총 27개 계열사(해외법인 제외)를 두고 있다. 이중 내부거래 금액이 많은 회사는 '일진파트너스' 등이다. 이 회사는 관계사가 일감을 몰아줘 적지 않은 실적이 '안방'에서 나왔다.
1996년 설립된 일진파트너스는 국제물류 등 화물운송 중개업체다. 처음 일진파이낸스란 회사였다가 2006년 일진캐피탈로, 2010년 다시 현 상호로 변경했다. 당시 팩토링(회사의 자산 중 외상매출금을 담보로 융자받는 금융상품) 금융업에서 물류 주선업으로 사업 내용을 변경했다.
2010년부터 작업
문제는 자생력. 관계사에 매출을 크게 의존하고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 분석 결과 매출을 내부거래로 채우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룹 차원에서 '힘’을 실어주지 않으면 사실상 지속이 불가능한 상황. 내부 물량이 없으면 문을 닫아야 할 처지다.
일진파트너스는 지난해 계열사와의 거래로 100% 매출을 올렸다. 136억원이 모두 일진전기에서 나왔다. 일진전기는 일진파트너스에 제품 운송 업무 등의 일거리를 넘겨준 것으로 알려졌다. 2010년과 2011년에도 일진전기를 등에 업고 각각 34억원, 9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일감 몰아주기가 사회적 이슈로 부상한 이후 다른 기업들의 내부거래는 감소하는 데 반해 오히려 갈수록 증가했다.
일진파트너스가 처음부터 일진전기에 기댔던 것은 아니다. 공시를 시작한 1999년부터 2009년까지 이렇다 할 내부거래가 발견되지 않는다. 상호와 함께 사업 내용을 대폭 수정한 2010년부터 일감 몰아주기가 발생해 점점 늘어났다. 일진파트너스는 1999년 47억원, 2000년 42억원, 2001년 21억원, 2002년 4억원, 2003년 3400만원, 2004년 1400만원, 2005년 2700만원, 2006년 2억원, 2007년 7억원, 2008년 8억원, 2009년 8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일진파트너스의 내부거래가 도마에 오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오너 일가와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허정석 일진홀딩스 대표는 일진파트너스 지분 100%(400만주)를 보유하고 있다. 오너의 개인회사인 셈이다.
매출 100% 일진전기서…100억대 거래
'황태자' 허정석 대표 지분 100% 소유
허진규 일진그룹 회장의 2남2녀(정석-재명-세경-승은) 중 장남인 허 대표는 유력한 후계자다. 연세대 경영학과와 미국 미시간대학에서 경영학석사(MBA) 과정을 마친 후 1995년 일진다이아몬드 대리로 입사해 그룹 경영기획실 상무, 일진전기 전무, 일진중공업 부사장 등을 거쳐 2007년 일진전기·일진중공업 사장에 올랐다. 현재 일진홀딩스와 일진파트너스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일진그룹이 일진파트너스를 공들여 키우자 업계에선 경영권 승계작업이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됐다. 일진파트너스를 통해 장남을 띄울 것이란 관측이었다. 실제 최근 일진파트너스에 힘이 실리는 '사건'이 벌어졌다. 허 회장이 자신의 일진홀딩스 지분을 장남 회사인 일진파트너스에 넘긴 것.
일진홀딩스는 지난달 21일 2대주주였던 허 회장이 보유하고 있던 지분 15.27%(753만5897주) 전량을 계열사 일진파트너스에 매각했다고 공시했다. 이에 따라 일진파트너스의 일진홀딩스 지분율은 9.37%(462만2432주)에서 24.64%(1215만8329주)로 증가, 일진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오르게 됐다.
이번 지분 매각의 최대 수혜자는 허 대표다. 그는 개인지분(29.12%·1437만1923주)과 일진파트너스를 통해 확보한 지분을 합쳐 일진홀딩스 지분 54%를 보유하게 됐다. 사실상 일진그룹의 승계작업이 완료된 셈이다.
허진규 회장 지주사 지분 전량 넘겨
전형적 승계수법…세금 피하기 꼼수
일진홀딩스는 주력사인 일진전기를 비롯해 일진다이아몬드·알피니언·아이텍·일진디앤코·전주방송 등 핵심 계열사를 거느린 그룹 지주회사다. 일진그룹은 2006년 일진홀딩스를 설립한 이후 허 대표가 일진홀딩스 지분을 현물출자 방식으로 확보하면서 2세 승계작업이 본격화됐다.
차남 허재명 일진머티리얼즈 대표의 경우 일진머티리얼즈를 비롯해 일진디스플레이·일진제강·일진유니스코·일진반도체·일진LED 등 나머지 계열사 경영권을 승계하기 위한 작업을 진행 중이다.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그는 현대그룹 재무파트에서 근무하다 1998년 일진머티리얼즈에 입사해 2006년 대표이사 전무에 올랐다. 2010년부터 대표이사 사장을 맡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허 회장이 지분을 넘긴 것은 분명히 의도가 있다"며 "아들 회사에 일감을 몰아주고 때가 되면 지배구조 정점에 올리는 것은 대물림하기 위한 기업들의 전형적인 수법"이라고 지적했다.
일각에선 세금을 피하기 위한 '꼼수'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허 회장은 지분을 허 대표 개인이 아닌 계열사에 팔아 세율이 50%에 달하는 상속·증여세를 내지 않아도 된다. 한 시민단체는 "허 회장의 지분 매각은 법망을 교묘히 피해 승계를 하려는 의도로 보인다"며 "이는 기업들의 내부거래를 막아야 하는 이유인 동시에 관련법이 시급한 까닭"이라고 꼬집었다.
무슨 돈으로?
일진파트너스가 무슨 돈으로 허 회장의 지분을 샀는지도 의문이다. 허 회장이 처분한 지분 단가(주당)는 2300원으로, 총 매매가는 173억원이 넘는다. 지난해 일진파트너스의 매출은 136억원. 영업이익은 8억원, 순이익은 4억원에 불과했다. 지난해 말 기준 유동자산은 121억원, 보유한 현금은 14억원뿐이다.
김성수 기자 <kimss@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일감 받는' 일진파트너스 기부는?
계열사의 일감을 받고 있는 일진파트너스는 기부를 얼마나 할까.
금감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일진파트너스는 지난해 기부금을 한 푼도 내지 않았다. 2011년 역시 기부금은 '0원'이었다. 일진파트너스는 공시를 시작한 1999년부터 지금까지 단 한차례 2001년 6000만원을 기부한 것이 고작이다.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