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꼭 봐야 할 동양에 밟힌 슬픈 사연들

  • 한종해 han1028@ilyosisa.co.kr
  • 등록 2013.11.18 14: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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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현 회장님 밥이 넘어 가십니까"

[일요시사=경제1팀] 피해자 5만명에 1조5000억원이 넘을 것으로 추산되는 피해금액. 동양사태의 결과물이다. 죄책감에 시달리던 동양증권 여직원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당장 길바닥에 나앉게 생긴 피해자들이 속출하고 있다. 그런데도 보상 여부와 책임 소재는 불분명하기만 하다. 피해자들은 눈물로 밤을 지새우고 있다.




지난 9월 말 동양그룹 계열사인 동양, 동양네트웍스, 동양레저, 동양시멘트, 동양인터내셔널 등 5개사가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이와 함께 동양그룹 기업어음(CP)과 회사채에 투자한 개인 투자자들의 피해 규모도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동양그룹 계열사 CP와 회사채에 투자한 개인 자금 규모는 1조5500억원을 넘어서고 개인 투자자수는 5만명에 달한다.

피해자들은 주로 동양증권의 전화 권유로 해당 상품에 투자했으며 가입 시 채권의 조기상환청구권·CP의 원리금 상환 가능 여부·채권이 예금자보호법의 보호 대상이 아니라는 사실 등에 대해 동양증권 직원으로부터 어떤 설명도 듣지 못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일부 피해자들은 집단 소송에 들어갔으며 나머지 피해자들도 줄소송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집단 소송
줄소송 준비 중

하지만 동양그룹의 법정관리 신청으로 계열사들에 대한 대출과 회사채, CP 등 모든 채권채무가 동결되면서 당분간은 자금이 묶였고, CP나 회사채는 변제 순위가 낮은데다가 자본잠식 상태여서 보상 여부는 불문명한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동양사태로 피해를 입은 개인 투자자들의 사연이 주변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남편의 사망 보험금을 날리게 된 주부부터 10년간 결혼자금으로 모은 돈을 날리게 된 사람 등의 사연이 이어지고 있다.


[남편 사망보험금]
[묻은 세아이 엄마]

세 아이의 엄마인 양모씨(이하 가명)는 생활고에 시달리던 중 남편으로부터 '마지막 선물'을 받았다. 사망보험금을 타 아이들을 키워달라며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

당장 세 아이의 생계를 책임지게 된 양씨는 남편의 사망보험금으로 동양 채권에 투자를 했고 빚까지 내 가게를 계약했다.

만기 날을 기다리던 양씨는 동양의 법정관리 신청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들려왔고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눌 수 없어 하루하루를 뜬눈으로 보내고 있다.

양씨는 인터넷 카페 '동양 채권 CP 피해자모임'에 글을 올리며 "남편을 하늘나라로 보낼 때보다 더 미칠 지경"이라고 썼다. 남편 목숨 값 하나 못 지키는 자신을 얼마나 원망할까 싶어서 라고 했다.

8살 난 아이를 키우는 주부 박모씨도 남편의 사망보험금을 날릴 위기에 처했다. 지난 2006년 아이 돌 지나고 한 달 뒤 남편이 암 투병을 하다가 하늘나라로 떠났다. 살길이 막막해진 박씨는 남편이 아이를 위해 남겨놓은 유일한 재산인 아파트를 판돈과, 남편의 암 진단금, 사망보험금 등 약 2억원을 들고 집 근처 동양증권 영업소를 찾아 CMS 통장을 만들었다.




박씨는 담당 직원에게 "평생 살아가야 할 돈이며 우리 아이 공부할 돈이니 위험한 건 절대 권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채권이 뭔지, CP가 뭔지 잘 몰랐던 박씨는 동양그룹 위기설에도 "걱정말라"고 큰소리치는 직원의 말만 믿었다.


하지만 박씨가 빈털터리가 된 건 순간이었다. 박씨의 돈은 법정관리를 신청한 동양그룹 계열사 5곳에 분산 투자가 되어 있었다. 직원은 "몰랐다"는 말뿐. 일평생 살 돈 2억은 휴지조각이 됐고 박씨는 아이와 앞으로 살아갈 일이 두렵고 무섭기만 하다.

[결혼 자금 맡겼다 ]
[돈 없어 파혼할 판]

동양증권 CMA 통장에 1억원 가까이 넣어놓은 지난 8월 박모씨는 동양증권으로부터 "좋은 상품이 있다. 자리 하나 남았다"는 직원의 전화를 받았다. 결혼 자금이라 걱정된다는 박씨를 직원은 "3개월짜리니까 괜찮다" "동양이 망하면 우리나라 망한다"고 설득, 박씨는 이자 6.3%에 5000만원을 넣었다.

고교 졸업 후 군대 다녀와서 아르바이트로 사회생활을 시작, 퀵 서비스, 음식점 배달 등을 하며 모은 5000만원이었다. 이 돈은 모두 날릴 처지가 됐다. 내년 2월 결혼 예정인데 빚을 져야 하나 하는 걱정에 막막하기만 하다.

사태가 이런데도 상품 권유를 한 직원은 가타부타 말도 없다. 오히려 "저도 피해자"라는 말만 들었다. 아직 여자친구는 이 사실을 모른다.

피해자 5만명 피해금액 1조5000억원 추산
보상여부·책임소재 불분명…입증이 관건

고등학교 교사인 김모씨는 근무 8년차에 대학시절부터 차곡차곡 모아놓은 돈 6500만원을 그저 시중은행보다 금리가 조금 더 좋다는 이유로 동양증권 CMA 통장에 넣어두었다.

그러던 중 동양증권 모 지점 직원이 동양그룹 계열사에 신탁이라는 것으로 넣어 6개월 혹은 3개월간 1000만원 이상의 자금을 묶어서 보관하는 제도가 있으니 이를 이용할 것을 권유했다.

내년에 결혼 예정이라 위험성에 대해 설명해 달라는 김씨의 요구에 직원은 "동양그룹은 30여년간 이어온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계열이 튼튼해 결혼자금으로 쓰는 것에 전혀 문제가 없다"고 설득했다.

직원의 말을 믿은 김씨는 어머니 노후연금 8500만원까지 같은 방식으로 신탁을 맡겼다. 만에 하나 위험성이 있을 수도 있지 않느냐는 김씨의 말에 직원은 "망할 이유도 없지만 혹시라도 동양계열이 안 좋아지면 ㈜동양이 지분을 많이 가지고 있으므로 서로 돕는 관계에 있으니 원금손실의 위험이 전혀 없다"고 설명했다.

동양사태 후 김씨는 채권자임을 증명하는 서류를 떼러 가서 "이래도 소용없을 것"이라는 직원의 조롱 섞인 소리를 들었다. 김씨는 요즘 일상생활도 불가능할 정도로 불안감을 느낀다. 계속 살아야 할지 고민이 많이 된다고 한다.

[지금도 속고 있는]
[  시골 어른신들  ]


추석에 고향에 내려간 한모씨는 아버지로부터 평소에 거래하던 동양증권을 통해 채권을 사 놓았다는 말을 들었다. 동양그룹이 상태가 안 좋았다는 것을 알고 있던 한씨는 동양증권 울산 지점에 전화를 걸어 아버지가 ㈜동양의 회사채 5건, 동양증권 회사채 1건, 동양시멘트 1건을 보유 중인 것으로 확인했다. 게다가 올해 4월 동양증권에서 판매한 전자단기신탁에 8000만원이 추가로 투자된 사실까지 확인했다. 팔십평생 모은 아버지의 노후자금이 몽땅 동양 채권에 투자된 것.

한씨에 따르면 담당자는 "어르신, 채권이라는 것은 회사가 부도나면 날아갈 수도 있습니다"라는 두루뭉술한 설명으로 채권을 판매했다. 동양그룹이 법정관리로 가면 투자된 것들은 어떻게 되냐는 질문에는 오히려 "동양그룹이 법정관리 간다고 누가 그러느냐"고 큰소리를 내며 따졌다.


하지만 결국 동양은 법정관리를 신청했고 한씨와 그의 아버지는 하루하루 피가 마르고 있다.

강화도에 사는 김모 할머니는 동양증권 골드센터 목동점에서 "좋은 상품이 있다. 빨리 나오시라"는 전화를 받고 74세 고령의 나이에 목동까지 나가 3000만원짜리 CP에 가입했다.

CP가 뭔지, 회사채가 뭔지 잘 몰랐던 김씨는 단지 이자를 조금 더 주는 고금리 예금상품인 줄 알고 가입했다. 그러다가 TV 뉴스에서 동양그룹이 위험하다는 소식을 접하고 본인이 가지고 있는 상품이 휴지조각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를 듣고 혼절, 뇌진탕 판정을 받고 앓아 누웠다.

김씨의 딸이 해당 지점에 2회 방문해 불완전판매에 대해 강력 항의 했지만 CP를 판매한 담당 직원은 "동양시멘트 주식을 담보로 잡고 있어 괜찮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며칠 뒤 동양시멘트는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전국 방방곡곡서 ]
[자살소동 차라리…]

최모씨는 동양증권에 칼까지 들고 가서 자살 소동까지 벌였다. 최씨의 피해금액은 자그마치 2억원. 11월 만기인 전셋집에서 2억원을 올려 달라 해서 이사를 갈 요량으로 마련해 둔 돈이었다.

딸 또래 여성 직원이 집까지 찾아와 상품을 권유하니 거절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10월1일 그 '딸 같은' 직원에게 "소식 아시죠? 2억은 찾을 수 없는 거 아시죠?"라는 전화를 받았다. 죄송하다는 말만 되풀이하는 이 직원에 "네가 책임지라"고 했더니 "책임 못진다"고 했다.

최씨는 지난 1일 오후 1시께 서울중구 을지로 2가 동양투자금융빌딩에서 투신자살 소동을 벌이다 119 구급대에 의해 구조됐다. 최씨는 남대문경찰서로 연행돼 자살 시도 동기 등에 대해 조사를 받고 풀려났다.

동양증권 제주지점 직원 고모씨는 "회장님 이러실 수는 없잖아요. 고객들이 피해를 입지 않았으면 한다"는 유서를 남긴 채 자살했다. 꼼꼼한 일처리로 동료와 고객들로부터 신뢰를 받아온 고씨는 지난 9월 말 동양그룹 계열사들이 줄줄이 법정관리를 신청한 후부터 큰 심적 고통을 겪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고씨는 두 아이의 어머니이자 한 남편의 아내다.

피해자들 대부분 직원 권유로 상품 투자
평생 모은 재산 날리고 거리로 나앉을 판

고씨가 발견된 아반떼 차량 안에서는 냄비와 함께 번개탄 두 개가 발견됐다. 경찰 관계자는 고씨가 냄비 안에 번개탄을 피워 놓고 목숨을 끊었다고 말했다.

당시 제주지역 모 일간지에 의해 공개된 고씨의 유서 두 장에서는 고씨의 자살 원인을 추측해 볼 수 있는 구체적 정황이 담겨 있었다. 가족에게 남긴 유서에서 고씨는 "여보 정말 사랑하고 미안해. 애들 잘 부탁할게. 이런 선택을 하게 돼서 미안해. ○○(딸)야 ○○(아들)야 사랑한다. 엄마가 지켜줄게"라고 적었다.

나머지 하나의 유서는 현재현 회장에게 남겼다. 고씨는 유서를 통해 "동양회장님 이러실 수는 없는 거 아닌가요. 오늘 아침에 출근할 때도 믿었습니다. 정말 고객님들께 조금이라도 이자 더 드리면서 관리하고 싶어서 그룹을 믿고 권유했습니다. 하루속히 개인고객님들 (피해가) 전부 해결됐으면 합니다"고 전했다.

고씨의 가족들은 출격에 쉽사리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동양사태가 직원들의 희망까지 앗아간 셈이다.

[ 장애인 딸 위해  ]
[17년 모은 돈 날려]

개인 투자자 중 가장 큰 규모의 손해를 본 이는 장애인 딸을 둔 캐나다 교포 이모씨다. 이씨는 중증 장애를 갖고 태어난 딸을 치료하기 위해 캐나다로 이민을 떠났다. 딸은 캐나다에서 17년 동안 뇌수술을 비롯해 7번이 넘는 대수술을 받았다. 하지만 차도가 없었고 이씨는 자신이 사망한 뒤에도 딸이 혼자 생활할 수 있도록 목돈을 남겨놔야겠다고 생각하고 투자 상품을 찾던 중 동양증권 직원을 만났다.




이메일을 통해 상품 설명을 받던 이씨는 CP와 회사채에 투자하라는 직원의 말을 믿고 캐나다서 17년 동안 아끼고 아껴 모은 돈 29억원을 모두 투자했다. 이씨의 주장에 따르면 직원은 투자설명서나 상품안내서조차 보여주지 않고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는 상품을 소개했다. 동양그룹 계열사가 법정관리를 신청하기 직전인 9월 중순에도 직원은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거짓말을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씨는 동양증권을 상대로 2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서울중앙지법에 낸 상태. 불완전판매 입증이 관건이다.

개별·공동소송전
금감원 조정 우선

동양사태 피해자들이 보상을 받을 방법은 정말 없는 걸까.

동양사태 피해자에 대한 보상은 법원의 채권회수율과 불완전판매율에 의해 결정된다. 동양그룹 법정관리 신청 계열사는 법원의 기업회생계획에 따라 채권회수율이 확정된다. 불완전판매율은 금감원이 인정한 불완전 판매건수가 많아질수록 높아진다.

불완전 판매를 통해 1000만원을 투자했을 경우, 법원에서 채권회수율을 60%로 정하고 불완전판매율이 40%로 결정됐다면 투자자는 회사채 발행회사로부터 원금의 60%인 600만원을, 판매한 증권사로부터 나머지 금액인 400만원의 40%인 160만원을 돌려받는다는 얘기다.

문제는 개인 투자자가 불완전판매를 인정받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금융소비자연맹(이하 금소연)에 다르면 불완전판매에 의한 손해배상 공동소송은 투자성향, 투자이력 등 개인별 불완전판매의 정도가 다르다. 개별적으로 설명의무이행 정도가 다르며 더구나 원고인 피해 투자자가 불완전판매를 입증해야 하기 때문에 민사소송은 많은 비용과 시간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승소 가능성이 희박하다.

같은 약관을 적용한 금융사 '근저당설정비반환' 공동소송은 약관무효라는 대법원의 위법 판결이 있었음에도 원고의 개별 입증에 어려움이 있고 증거 부족 등으로 피해소비자들이 1심에서 패소판결을 받는 실정이다.

민사소송에서 법원은 불완전판매 행위를 조사할 수 없어 감사권이 있는 금융감독원이 감사와 조사를 해 불완전판매임을 밝혀주어야만 보상이 가능하다. 이 불완전판매비율의 조정안을 금융사가 수용하지 않아 소송을 제기하면 소송비 지원까지도 검토하고 있는 금감원에 피해신고를 해 절차가 간편하고 신속한 분쟁조정절차를 거친 후에 상황에 따라 소송절차를 취하는 것이 유리하고 효과적이다.

금감원은 규정에 따라 소송진행 중인 사안은 민원이나 분쟁조정 대상에서 제외된다. 소송을 먼저 제기하면 비용과 시간을 낭비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금감원의 분쟁조정을 받을 수 없어 개별적 소송이나 공동소송 전에 반드시 금감원 조정절차를 먼저 밟는 것이 우선순위가 돼야 한다.

강형구 금소연 금융국장은 "금감원은 투자자의 소중한 재산을 투자부적격 회사의 회사채·기업어음을 매입하게 한 것은 불완전판매로 인정하고 투자자 보호를 위해 역량을 총동원하여 이를 신속히 조사해야 할 것"이라며 "불완전판매 피해자들은 공동소송을 하기 전에 금융감독원에 반드시 피해신고를 해 분쟁조정을 거친 이후 상황에 따라 소송여부를 결정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한종해 기자<han102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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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고객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쿠팡의 태도가 도마 위에 올랐다. 현재까지 대응만 봐서는 국민은 물론, 정부와도 전면전을 벌일 기세다. 새어나간 정보의 범위와 규모가 ‘역대급’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최악의 사태임에도 불구하고 쿠팡의 고개는 꺾일 줄 모르고 있다. 일각에서는 ‘뭘 믿고 저러나’ 소리가 나오는 중이다. 쿠팡의 고객 개인정보 유출 사건, 이른바 쿠팡 사태가 점입가경이다. 사태가 일어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수습은커녕 국민의 화만 돋우고 있다. 쿠팡의 대응 태도가 미지근한 수준을 넘어 뻔뻔한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 김범석 의장은 모습을 비추지 않고 보상안은 꼼수로 가득하다. 국민을 조롱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한 달 만에 고개 숙여 지난해 11월 말 3370만명에 이르는 쿠팡 고객의 개인정보가 ‘탈탈’ 털렸다. 앞서 쿠팡은 4500여건의 고객 정보가 유출됐다고 정부 당국에 신고했지만 2주 만에 그 수치는 7500배까지 늘어났다. 전 국민의 65% 수준이며 지난해 4월 SKT 개인정보 유출 사태 범위(2300만명)를 훌쩍 넘는 사태였다. 쿠팡은 이커머스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갖고 있다. 대형마트 등이 규제에 막혀 뒷걸음질 칠 때 쿠팡은 로켓배송으로 시장을 싹쓸이했다. 전날 저녁에 주문해도 새벽이면 물건이 문 앞에 와 있는 총알 배송에 소비자는 쿠팡으로 몰렸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비판을 받던 물류센터는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아이러니하게도 쿠팡이 국민의 실생활에 얼마나 스며들어있는지를 바로 보여줬다. 쿠팡 사태가 터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은 “쿠팡이 경쟁자가 없는 시장 지위를 누리고 있고 한국 고객이 데이터 유출에 덜 민감해 보인다”며 “잠재적 고객의 이탈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놨다. 그래서일까? 쿠팡은 역대 최악의 정보 유출 사태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도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이 언급하고 정부 차원의 TF가 꾸려졌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힘겨루기’를 하는 태도를 보이는 중이다. 최근에는 정부의 반박에도 자체 조사 결과를 고집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보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쿠팡은 지난달 25일 ‘정보 유출자는 3300만개 계정에 접근했으나 실제 저장한 정보는 3000여개에 불과하며 제3자 유출 정황은 없는 등 피해가 미미하다’는 내용의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면서 “(유출자는)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언론 보도를 접한 이후 저장했던 정보를 모두 삭제하고 범죄에 사용한 노트북을 파손해 하천에 던졌다”고 주장했다. 쿠팡은 “잠수부들이 벽돌에 담긴 쿠팡 가방에 든 노트북을 하천에서 회수했고 유출자가 클라우드 계정에 등록한 일련번호와 해당 노트북의 일련번호가 일치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범행에 사용된 PC 와 노트북 등 모든 장치를 회수해 안전하게 확보했고 글로벌 보안업체들의 조사 결과도 진술 내용과 같았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매출 90% 나오는데 정보 유출 태도·대응 낙제점 쿠팡이 발표한 대로라면 고객 정보 유출 피해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든다. 또 유출자와 접촉해 장치를 확보했으니 추가 피해는 없다. 전체적으로 사건이 축소되는 것이다. 쿠팡의 발표에 정부는 강하게 반발했다. 쿠팡의 조사 내용은 사전에 정부와 어떤 논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됐다는 설명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는 “정보 유출 종류와 규모, 경위 등은 민관합동조사단이 조사 중인 사안”이라며 “쿠팡이 발표한 내용은 조사단에 의해 확인된 바 없다”고 밝혔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과도 “쿠팡 측이 제출한 진술서와 노트북 등 증거물을 분석 중”이라며 “사실관계를 면밀하게 확인하겠다”고 했다. 논란이 계속되자 쿠팡은 정부의 지시를 받아 조사를 진행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경찰은 사전 협의가 없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사실관계가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쿠팡은 지난달 26일 내놓은 입장문에서 “정부의 지시에 따라 수주간 진행한 조사였다”고 선을 그었다. 같은 달 9일 정부가 쿠팡 측에 유출자와 접촉할 것을 제안했고 14일 쿠팡은 유출자를 처음 만난 뒤 해당 사실을 정부에 보고했으며 16일에는 정부 지시에 따라 유출자의 데스크톱과 하드드라이브를 정부에 제공했다는 게 쿠팡 측 주장이다. 하지만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도 “쿠팡의 입장문 형식의 보도자료에서 정부와 협력했다는 내용 중 일부 국정원으로 추정되는 부분도 사실과 다르거나 왜곡된 부분이 있다”고 반박했다. 쿠팡이 자체 조사와 관련해 정부와 사실 공방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 김범석 쿠팡 의장이 사건 발생 한 달여 만에 사과했다. 그동안 박대준 전 대표가 청문회 등에서 뭇매를 맞고 있는 동안에도 김 의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정부의 압박이 거세지자 처음으로 입을 연 것이다. 5만원 상당 속사정은? 김 의장은 지난달 28일 “쿠팡의 창업자이자 이사회 의장으로서, 쿠팡 전체 임직원을 대표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저희의 책임으로 발생한 이번 데이터 유출로 인해 많은 분께서 자신의 개인정보가 안전하지 않다는 두려움과 불안을 느꼈고 사고 초기부터 명확하게 직접적으로 소통하지 못한 점으로 인해 큰 좌절감과 실망을 안겨 드렸다”며 “사고 직후 미흡했던 초기 대응과 소통 부족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한 달 만에야 입을 연 부분에 대해 “무엇보다 제 사과가 늦었다”면서 “모든 사실이 확인된 이후에 공개적으로 소통하고 사과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돌이켜보면 이는 잘못된 판단”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비판과 질책을 겸허히 받아들인다고도 했다. 하지만 자체 조사 논란에 대해서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김 의장은 “쿠팡은 조사 초기부터 정부에 전면적으로 협력해 왔다”며 “일련의 과정에서 많은 오정보가 확산하는 상황에서도 정부의 ‘기밀 유지’ 요청을 엄격히 준수했다”고 주장했다. 김 의장의 사과는 국회 6개 상임위원회가 참여하는 대규모 연석 청문회를 이틀 앞두고 나왔다. 정부가 범부처 TF를 과기부 총리 산하로 확대하고 다각도로 압수수색과 조사를 진행하는 등 대응 수위를 높이는 상황에 압박을 느꼈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그러나 사과와는 별개로 김 의장은 청문회에 불출석하겠다고 밝혔다. 김 의장뿐만 아니라 동생인 김유석 쿠팡 부사장, 강한승 전 쿠팡 대표 등이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면서 쿠팡에 대한 부정적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여기에 쿠팡이 내놓은 보상안도 도마 위에 올랐다. 쿠팡은 지난달 29일 고객 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해 총 1조6850억원 규모의 보상안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전체적으로 보면 1인당 5만원 상당이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뜯어보면 쿠팡의 ‘꼼수’가 보인다. 청문회는 나 몰라라 보상안은 ▲쿠팡 전 상품 구매 이용권 5000원 ▲쿠팡이츠 5000원 ▲쿠팡트래블 2만원 ▲명품 플랫폼 알럭스 2만원 등으로 구성됐다. 소비자들은 보상금의 상당 부분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 등 평소 이용 빈도가 낮은 서비스 이용권 위주로 구성된 점을 지적했다. 실제 이번 보상안을 통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를 처음 알게 됐다는 소비자도 있다. 시민단체도 쿠팡의 보상안에 반발했다. 참여연대는 “1인당 5만원 보상이라고 했지만 현금이 아닌 구매 이용권으로 사실상 강제 소비를 유도하는 방식”이라며 “보상이 아니라 매출 확대를 위한 마케팅에 불과하다”는 내용의 논평을 발표했다. 쿠팡의 행보는 사사건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민을 조롱하고 정부를 기만하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쿠팡이 미국 시장에 상장한 기업이지만 매출 대부분을 우리나라에서 벌어들이는 상황인데도 이 같은 태도를 보이는 것에 분노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회원 탈퇴, 보상안 거부, 집단소송 참여 움직임이 거세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심지어 이재명 대통령도 쿠팡 사태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쿠팡 사태가 일어나고 사흘 뒤인 지난달 2일 “쿠팡 때문에 국민의 걱정이 많다”면서 “사고 원인을 규명하고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관계부처는 해외 사례를 참고해 과징금을 강화하고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도 현실화하는 등 실질적인 실효적 대책에 나서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뒤늦은 사과·꼼수 보상안 도마 위에 이래서 정치권 인사 영입했나? 의혹 12일에도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반복되는 것에 대해 “경제 제재가 너무 약해서 규정 위반을 밥 먹듯이 한다”며 “앞으로는 규정을 위반해 국민에게 피해를 주면 엄청난 경제 제재를 당해서 ‘회사가 망한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규정을 위반하면 난리가 나야 하는 것 아니냐”며 “그런데 위반해도 태도를 보면 ‘그래서 어쩔 건데’ 이런 느낌이 든다”고 지적했다. 정부도 쿠팡에 강력하게 경고하며 전방위 대응을 예고했다. 실제로 같은 달 29일, 배경훈 부총리 겸 과기부 장관 주재로 ‘쿠팡 사태 범정부TF’ 회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과기부와 경찰청, 개인정보위원회, 금융위원회 등은 역할을 분담해 신속한 조사를 진행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배 부총리는 “쿠팡이 국내 고객 정보 3000만건 이상을 유출한 것은 명백한 국내법 위반 사항으로 정부는 쿠팡이 관련 법령을 위반한 사실이 확인될 경우, 다른 기업과 동일하게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에 따라서는 영업정지 여부도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사방에서 몰아치는 압박에도 쿠팡이 연달아 이상한 행보를 보이자 ‘믿는 구석’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그 정도로 쿠팡의 현재 대응 방식을 이해할 수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쿠팡이 미국 기업인 것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 증시가 쿠팡의 모든 결정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는 것이다. 실제 쿠팡이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한 다음 날 미국 뉴욕 증시에서 쿠팡의 주가는 6% 급등했다. 국내에서는 쿠팡의 ‘셀프 조사’에 분통을 터트리고 있는데 미국 시장에는 호재로 작용한 것이다. 쿠팡이 정치·국회 인사를 대거 영입한 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정치권 인사를 영입해 쿠팡 관련 각종 논란을 틀어막고 있다는 의혹이다. 해당 의혹은 ‘강력 경고’ ‘전방위적 대응’ 등의 수사를 사용하고 있지만 실제 조사는 흐지부지될 것이라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오는 배경으로도 꼽힌다. 변죽 울리다 무사통과? 실제 최근 원내대표직에서 사퇴한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이 국정감사를 한 달여 앞둔 시점에 박대준 전 쿠팡 대표 및 대관 총괄과 오찬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쿠팡이 일용직 퇴직금 미지급 사건에서 검찰 외압 의혹, 물류센터·배송 기사의 과로 및 산재 사망 문제가 제기된 상황이었던 만큼 적절성 논란이 불거졌다. 김 의원은 그달 16일 자신의 SNS에 “공개 일정이고 적어도 5명이 (함께) 식사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만남보다 대화의 내용이 중요한 것 아니냐? 참고로 지난해 7월16일 쿠팡 물류센터도 방문했었다”고 적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