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꽂히면 미치는' 오타쿠의 세계 대해부

  • 이광호 khlee@ilyosisa.co.kr
  • 등록 2013.11.19 10:3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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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적인 집착 변태? 폭발적 집중 천재?

[일요시사=사회팀] ‘오타쿠’에 대해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오타쿠는 일본에서 제 3자의 집을 높여 부르는 말 ‘귀댁’에서 유래됐다. 가타카나로 쓰면 ‘이상한 것에 몰두하는 사람’이란 뜻이 된다. 이들은 애니메이션, 게임 등에 푹 빠져 현실과 다소 동떨어진 모습을 보인다. 사람들이 오타쿠를 바라보는 시각은 대부분 부정적이지만 일본의 젊은 층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으로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오타쿠 시장은 점점 블루오션으로 자리 잡고 있다.




‘오타쿠’는 1970년대 일본을 중심으로 나타난 서브컬처(하위문화)의 팬들을 총칭한다. 서브컬처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오타쿠 문화는 주류 문화와 대비되는 비주류 문화다. 이들은 독특한 행동방식을 갖고 있다. 오타쿠 문화 초기에는 애니메이션·SF 팬에 한정해 불렀지만 지금은 명확한 정의가 없이 보다 폭넓게 사용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한국에선 ‘오덕후’ ‘십덕’ ‘덕후’ 등의 표현을 주로 사용한다. 영미권에는 ‘Geek’이 대표적이다. 주로 애니메이션광을 비하하는 말로 쓰이다가, 최근에는 ‘게을러 보이는 외모’를 빗댄 말로 쓰이기도 한다.

이상한 것에
몰두하는 사람

‘팬’ ‘마니아’ 단계를 넘어서 자기의 관심분야에 미친 듯이 열광하는 사람들을 흔히 ‘오타쿠’라 부른다. 이들은 자기만족을 위해 관심대상에 대해 순수한 호기심을 갖고 깊게 파고든다. 수집가적 기질과 함께 자신만의 문화를 창조할 수 있는 극도의 경지까지 이르고 있다. 좋게 말하자면 ‘전문가적 시각을 초월한 사람’을 뜻한다. 이들은 약간 외골수적인 성향을 갖고 있다. 그리고 자신의 행동에 대한 타인의 시선은 개의치 않고 주관적인 가치관으로 사유하고 행동한다.

일본 젊은이들의 문화는 마니아 문화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자신의 취미와 관심사에만 몰입하고 심취하는 이들이 많다. 한 분야에 대해 많은 지식과 정보를 소유한 마니아의 종류는 다양하다. 파친코 마니아, 컴퓨터 마니아, 게임 마니아, 애완동물 마니아, 소형차 마니아, 전쟁 마니아(실제로 전쟁에서 사용한 물품 등을 수집하는 마니아), 히트상품 마니아, 아세아대 마니아족(자신의 관심분야에서 개발한 발명품으로 대학 진학), 스쿠프족(관심거리의 기사만을 전문적으로 찍으러 다니는 마니아), 점술 마니아, 나비 컬렉션족, 발굴사진 마니아, 자동차 마니아, 골프 마니아, 더스트 헌터(쓰레기더미를 뒤져 남의 사생활을 엿보는 마니아), 완전자살 마니아(관심사가 자살에 있고 자살만을 생각하고 심취해 완전자살 마니아가 돼 전문 책자와 비디오까지 만들어냄) 등이 있다. 그런데 오타쿠 중 완전자살 마니아는 극소수다. 오타쿠 자살과 관련해 재밌는 이야기가 있다. “오타쿠는 자살 따위 하지 않아” “다음주에 나오는 애니 봐야 되거든” “분기별 신작을 놓칠 수 없어” 오타쿠들에게 자살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신작 애니를 놓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오타쿠들은 애니에 대한 집착이 강하다.

팬·마니아 넘어 관심분야에 미친 듯 열광
타인들 시선 개의치 않는 외골수적 성향


오타쿠들은 자신이 관심을 가진 분야에 대해서는 전문지식 책자를 써내기도 한다. 또 나아가 직업으로도 삼는 마니아들도 있다.

처음 오타쿠라는 말이 사용되기 시작할 때는 2인칭 표현이었다. 그 시작에는 동호인들이 취미 등에 대해 이야기할 때, 서로 예의를 지키고 존중하는 의미에서 상대를 오타쿠라고 부르면서 생겨났다는 설이 있다.

사람에 대한 분류로 오타쿠라는 말이 일반화된 것은 1983년 일본의 칼럼니스트 나카모리 아키오가 만화 월간지 <망가 브릿코>에 칼럼 ‘오타쿠의 연구’를 연재하면서부터다. 나카모리 아키오는 이 칼럼에서 오타쿠를 비칭으로 사용했다.

하지만 때로는 특정 관심사에 대해 극도로 깊이 빠져들어 직업으로 삼는 프로는 아니지만 전문가 수준의 지식을 소유한 아마추어나, 혹은 너무 한 가지 분야에 빠져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일컫기도 한다.

따라서 누군가가 오타쿠라는 말을 하면 ‘일본 애니메이션 광’이나 ‘특정 분야에 대한 지식이 풍부하다’는 의미가 될 수 있다. 한국에서는 특히 ‘만화에 등장하는 미소녀 캐릭터나 좋아하는 변종’이나 심지어 ‘생김새가 안여돼(안경 쓴 여드름 돼지)’라는 말로도 해석할 수 있다.

이처럼 오타쿠에 대한 의미가 모호한 이유는 일단 기준과 의미가 분명하게 정의되지 않은 채 생긴 신조어기 때문이다. 거기에 점점 여러 의미가 덧붙여지고 이로 인해 뜻이 변해버렸다.

그 범위로는 오타쿠란 모두 ‘한 분야에 심취한 사람’을 뜻할 수 있지만, 그렇게 되면 마니아와 구분하기 어려워진다. 전문가들의 말에 따르면 오타쿠와 마니아의 차이점은 분야와 강도의 관점에서 분류할 수 있다고 한다. 현재 여행, 카메라, 패션 등 현실적인 것을 제외하고 크리에이터가 창조한 것에 열중하는 사람들, 특히 서브컬처에 몰두하는 사람들을 한정해 구분한다.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산다는 점에서 보면 오타쿠와 히키코모리는 같은 선상에 있는 것 같아 보인다. 하지만 오타쿠와 히키코모리는 조금 다르다. 히키코모리는 철저하게 자기만의 세계에 빠진 것에 비해 오타쿠는 자신과 같은 취향이나 취미를 가진 사람들과는 어울리거나 일종의 친목을 형성한다는 점이 히키코모리와의 차이점이다.

그렇지만 한국에서 오타쿠가 갖고 있는 의미는 히키코모리, 은둔형 외톨이라는 의미까지 함축된다. 다소 부정적인 이미지가 지배적인 게 사실이다.




한국에서 오타쿠에 대한 인식은 분명 일본에 비해 좋지 않다. 일본에서는 불경기 시기 오타쿠의 활약이 있으면서 이미지의 전환이 이뤄진 적도 있지만 한국에서는 그러한 계기가 없었고 히키코모리와 동일한 존재나 오타쿠가 소비하는 콘텐츠 대부분이 일본 작품이여서 타문화에 대한 추종으로 비춰질 수 있다는 거부감도 있다.

한때 tvN <화성인 바이러스>에 출연해 애니메이션 등장인물 ‘페이트’에 대한 진심어린 사랑을 공개했던 A씨는 당시 캐릭터가 그려져 있는 베개를 껴안으며 비상식적인 모습을 연출해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집중시킨 바 있다. 당시 시청자들의 반응은 매우 뜨거웠다. 오타쿠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을 확인할 수 있었던 방송이었다.
이후 A씨는 한 커뮤니티를 통해 한 여성과 데이트 하는 모습의 사진을 올리며 수많은 오타쿠들의 부러움을 샀다. “아니 저 사람이 어떻게 여자와 데이트를 할 수 있지?” 등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여친 필요없다
신작 애니 사수

1960년대부터 80년대에 이르기까지의 일본은 여러 차례의 위기를 극복하고 경제 성장의 과업을 달성했다. 산업의 발달과 더불어 일본의 대중문화도 괄목 성장했다. TV보급 전 세대별 맞춤 만화들이 다수 등장하면서 애니메이션 시장도 활기를 띠었다. 특히 ‘고질라’ ‘울트라맨’ 등의 작품들이 쏟아지며 각종 만화 관련 프라모델(피규어)이 붐을 이뤘다. 오타쿠 예비군 양성의 시작이었다.

당시 오타쿠는 존재 자체의 명명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시기였다. 특별히 사회적으로 이슈가 될 만한 존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저 유별난 취미생활을 즐기는 사람들이었다. 수동적인 형태 속에서 스스로가 콘텐츠를 발굴한 것이다.

80년대 말 세상 밖으로
2000년대 들어 양성화

이후 오타쿠가 세상 밖으로 드러난 계기가 있다. 89년 6월, 사이타마와 도쿄 등지에서 발생한 연속 유아 납치살인사건이 발생해 여아가 납치·살해된 것. 당시 유아연쇄살해사건의 피의자 미야자키 쯔토무의 방에서 6000개 이상의 비디오테이프와 많은 잡지들이 나왔다. 매체들은 일제히 이 사건을 두고 ‘오타쿠에 의한 범죄’ ‘오타쿠식 범죄’라고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이후 오타쿠는 전국적인 이슈로 떠오르게 되며 오타쿠 전체에 대한 비난으로 화살의 방향이 틀어졌다.

이처럼 오타쿠는 시작부터 차별적으로 비추어졌다. 자신들의 부정적 이미지를 숨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서면서 오타쿠를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은 조금씩 달라졌다. 만화 및 게임과 같은 분야에서 오타쿠들의 활약이 눈에 띄게 늘어나며 각 분야의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게 된 것이다. 비로소 일본 내 재평가가 이뤄지게 됐다. 그리고 세계 시장에도 영향을 미치면서 오타쿠는 수동형에서 능동형으로 진화하는 모습을 보였다. 지금의 오타쿠는 넘쳐나는 정보를 최대한 효율적인 방법으로 좀 더 유용하게 자신의 것으로 활용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

불황 속 블루오션
주목받는 키덜트

최근에는 아이 같은 감성과 취향을 가진 어른을 뜻하는 ‘키덜트’(kid와 adult의 합성어) 문화가 주목받고 있다. 한마디로 ‘어른아이’, 장난감 사는 어른을 뜻한다. 다 큰 성인이 무슨 장난감이냐 비아냥댈 수도 있지만 건담이나 피규어 등 성인용 장난감을 전혀 거리낌없이 구입하는 사람들을 이제는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키덜트 산업은 매해 급성장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키덜트 관련 제품 시장 규모는 현재 5000억원에 이른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20∼40대 키덜트들은 수십만원에서 수백만원에 이르는 키덜트 장난감을 사기 위해 기꺼이 지갑을 연다. 이들의 구매력에 힘입어 키덜트 시장은 불황 속 블루오션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러한 키덜트 문화의 시장성을 눈여겨본 갤러리아백화점은 서울 강남의 압구정 명품관에 키덜트 장난감 매장 두 곳을 입점시켰다. 키덜트 장난감 매장은 잘 빼입은 남성들로 북적인다.




키덜트 문화를 즐기는 사람들은 수십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오리지널 키덜트 장난감인 건담과 피규어 마니아에 이어 최근에는 무선조종용품이 인기를 끌고 있다. 특이한 취향을 가진 소수의 비주류 문화로 취급받던 때와는 비교할 수도 없다. 이제는 당당하게 대중문화의 한 축으로 자리 잡으면서 자신만의 방법으로 키덜트 문화를 즐기는 이들이 늘고 있다.

만화, 애니메이션, 장난감…
‘그들의 문화’블루오션 부상

16년차 피규어 마니아인 김성재(26)씨. 그는 현재 취업준비에 한창인 경영학도다. 공부면 공부, 운동이면 운동, 자기관리에 철저한 멋진 대학생이다. 그러나 반전이 있었다. 평범한 외모와 달리 그의 방은 온갖 피규어로 가득했다. 울트라맨, 가면라이더 등 피규어만 모아둔 진열장이 있을 정도였다. 어려서부터 일본문화에 심취한 그는 일본 관련 콘텐츠에 해박했다. 심지어 일본어로 회화도 가능하다. 그리고 방에 있는 피규어 대부분은 일본에서 직접 사온 것들이었다. 김씨는 “누가 보면 오타쿠라고 손가락질 할 수 있지만 이렇게 피규어를 모으는 게 소소한 행복이다”며 “하나하나 모을 때마다 뿌듯하다”며 자랑스러워했다.

피규어에 대한 애정을 노래에 담은 이도 있다. 스토리텔링 음악으로 독보적인 위치에 있는 랩퍼 팻두는 음악만큼이나 피규어에 대한 사랑이 각별한 마니아로 알려졌다. 곰인형 모양의 일본산 아트토이 베어브(BearBrick)이 그의 주요 수집품이다. “피규어 수집 취미가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를 담은 스토리텔링 음악을 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밝힌 팻두는 실제로 자신이 좋아하는 베어브릭에 관한 음반을 발표한 바 있다.

2011년 베어브릭을 소재로 7곡의 노래가 담긴 ‘베어브릭 인 러브’라는 음반을 만들었다. 베어브릭을 좋아하는 이들과 사연을 나누고 싶어 자비를 들여 음반 3000장을 찍은 뒤 이 가운데 2500장을 한 아트토이 판매점을 통해 베어브릭 애호가들에게 무료로 배포하기도 했다. 또한 용인송담대에는 토이캐릭터창작과가 생길 만큼 피규어 시장이 산업적으로 주목받고 있기도 하다.


현대사회는
오타쿠 원한다

오늘날 오타쿠 문화는 일본이라는 나라에 국한되지 않고 전 세계인이 함께 즐기고 활용할 수 있는 새로운 문화로 부상했다. 오타쿠 관련 시장은 매해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오타쿠에 대한 편견이 점점 희석되면서 새로운 문화 콘텐츠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이제 오타쿠 문화는 현대사회에 있어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저력 있는 비주류 문화로 자리 잡게 됐다.


이광호 기자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오타쿠 천국’일본에선…
섹스보다 만화 “출산률 저하”

지난달 24일 영국 BBC 방송은 2060년 일본 인구가 현재보다 3분의 1이나 감소할 것으로 우려된다고 보도했다. 일본의 출생률이 이처럼 감소하는 원인 중 하나는 아기를 낳기 위한 성관계보다는 만화나 애니메이션, 컴퓨터 게임 등에 더 열광하는 ‘오타쿠의 급증’이다. 오타쿠는 취업 등에 관심을 보이지 않으며 인간관계, 특히 여성과 관계를 맺는 데에도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 2010년 일본 후생노동성 조사에 따르면 16∼19세의 일본 남성 가운데 36%가 오타쿠였다. 이는 불과 2년 새에 두 배로 늘어난 수치인데 문제는 이러한 증가세가 더욱 빨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16∼19세 남 36% 오타쿠
불과 2년새 2배로 늘어

누리칸(38)과 유게(39)라는 오타쿠는 실제 여성이 아니라 게임 속의 여주인공인 린코와 네네를 자신의 여자친구로 생각하고 있다. 누리칸과 유게는 모두 30대 후반이지만 게임을 할 때는 자신들이 10대 중반의 청소년이라고 생각한다. 누리칸은 “게임 속에서는 언제나 고등학생이 될 수 있고 어린 애인과 관계를 맺을 수 있다”고 말했다. 유게 역시 “게임 속에서는 내가 원하기만 하면 관계를 영원히 지속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일본 남성들 가운데 이처럼 오타쿠가 점점 늘어나는 원인은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많은 일본의 젊은 남성들이 미래에 대해 비관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한 원인일 수 있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일본의 젊은이들은 자신들의 부모 세대만큼 부를 축적할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고, 부양해야 할 자식을 낳아야 할 결혼과 같은 인간관계에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것.

남녀가 만나 교제를 하더라도 섹스를 하거나 결혼하는 비율도 점점 감소하고 있다. 최근 한 조사 결과에 의하면 교제하는 일본 커플 가운데 1주일에 한번이라도 성관계를 갖는 커플은 27%에 불과했다. 일본에서 태어나는 신생아 가운데 혼외 출생아의 비율은 2%에 불과하다.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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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우정-조국 딸 스캔들 오버랩

심우정-조국 딸 스캔들 오버랩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심우정 검찰총장이 ‘딸 특혜 채용 논란’에 휩싸였다. 자격이 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외교부에 최종 합격했다. 외교부가 오직 심 총장의 딸을 위해 전형까지 엎었다는 게 골자다. 외교부는 특혜가 아니라던 입장을 뒤집고, 심 총장 지녀 채용을 보류했다. 정치권에서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딸 사안처럼 검찰의 강도 높은 수사가 필요하다며 맹공을 펼치고 나섰다. 심우정 검찰총장의 딸 심모씨는 ‘아빠 찬스’로 취업에 성공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그는 국립외교원 기간제 연구원과 외교부 공무직 연구원에 합격할 수 없었다. 지원 자격 자체가 미달 수준이었다. 일각에서는 입시 비리 혐의를 받던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딸 조민씨의 사안보다 심각하다고 보고 있다. 수사기관이 심씨를 즉각 수사해야 한다는 지적이 거세다. 아빠 찬스? 수상한 합격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한정애 의원은 지난달 24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현안 질의서 심씨의 특혜 채용 의혹을 제기했다. 이 문제는 지난해 9월 심 총장의 국회 인사청문회 과정서 언급됐었다. 당시 조국혁신당 박은정 의원은 심 총장의 장녀가 11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국립외교원 연구원으로 채용됐는데, 심 후보자가 이와 관련한 자료를 제출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 의원은 당시 “후보자 장녀가 최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석사 과정을 이수했다”며 “후보자 자녀는 대학생들이 선망하는 국립외교원 연구원으로 채용됐다. (장녀가)서울대 국제대학원 1학년 때 박철희 교수에게 수업을 받았다”며 “박 교수는 현직 주일대사고, 후보자 본인 장녀가 입사할 당시 국립외교원장이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박철희 국립외교원장은 나카소네 야스히로상 수상자”라며 “제1회(수상자) 박철희 주일대사고, 윤석열정부서 ‘중요한 건 일본 마음’이라고 말한 김태효 차장이 제5회 장려상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심 총장이 “문제가 없다”고 답변하자, 박 의원은 “그러면 채용 서류를 내라. 자료를 제출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전부터 채용서류 전체를 내라고 하는 것”이라며 “의원실서 계속 요구하지만 후보자 동의가 없어서 (외교원이) 내질 않고 있다”고 따져 물었다. 외교부의 지난 1월 1차 공무직 연구원 채용 공고에는 ‘경제 분야 석사학위 소지자’가 응시 자격이었다. 그런데 한 달 뒤인 2차 공고는 갑자기 심씨가 전공한 ‘국제정치 분야 석사학위 소지자’로 변경됐다. 외교부는 응시 가능 대상을 확대하려는 목적이었다고 주장하지만 변경 전에 응시했던 이들은 2차 공고 때는 응시조차 할 수 없었다는 점에서 이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권익위원회(이하 권익위)의 공정채용 가이드라인 등에 따르면, 채용공고를 변경할 때는 채용 관련 심의기구를 거쳐야 한다. 그러나 외교부는 인사기획관실과 서면 협의만 거쳤다. 심의기구를 통한 공정성을 확보하지 않은 채 채용 공고를 변경한 셈이다. 채용 경력을 두고도 외교부가 자의적으로 해석해 심씨에게 특혜를 줬다는 지적도 거세다. 채용 공고에는 해당 분야 실무 경력 2년 이상이 응시 자격이었다. 그러나 심씨의 경력은 국립외교원 연구원 8개월, 서울대 국제대학원 연구보조원 22개월, UN 경제사회국 인턴 6개월로 실제 경력은 8개월에 불과했다. 경력 1년도 안 되는데 스펙 과대 포장해 지원 외교부 전형까지 뒤집어…기존 면접자는 탈락 외교부는 학창 시절의 경험도 경력으로 인정한다고 해명했지만, 외교부 산하 기관서 2022년과 2023년에 낸 채용공고엔 인턴이나, 교육생, 학위 취득에 소요되는 행정조교 등은 경력서 제외한다고 적시돼있다. 심씨는 서울대 국제학연구소 산하 EU센터서 연구보조원으로 근무했다고 실무 경력에 적었다. 하지만 서울대 국제학연구소가 발간한 2023년 연례보고서에는 심씨가 연구 보조원이 아닌 EU센터 ‘석사 연구생’으로 적혀 있다. 민주당은 지난 2일 심씨의 외교부 특혜 채용 의혹 관련 진상조사단을 출범했다. 조사단에는 한 의원을 포함해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김영배·홍기원·이재강 의원,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김기표·박희승 의원,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박홍배·이용우 의원, 정무위원회 소속 강준현·이정문 의원,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김성회 의원, 교육위원회 소속 고민정·백승아 의원 등 총 12명의 의원이 참여했다. 이들은 심 총장을 포함한 관련자들에 대한 형사 고발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 사건과 관련해 외교부는 지난 1일, 감사원에 공익감사를 청구했다. 면접까지 통과해 현재 신원 조사 절차만 남겨둔 심씨의 외교부 공무직 연구원 채용은 감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유보됐다. 공익감사는 감사 대상 기관이 자체 감사기구서 직접 처리하기 어려운 경우 등에 청구할 수 있다. 하지만 조국혁신당 윤재관 대변인은 “윤석열정부 출범 이후, 감사원은 검찰의 2중대 역할을 자처해 왔다. 감사원에 공익감사를 청구하는 건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격”이라며 “감사원을 동원해 면죄부를 받으려는 시도는 국민을 기만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조사단은 심 총장 자녀 관련 ‘권력형 비리’ 의혹과 문제점을 종합적으로 규명하고 대응할 계획이다. 구체적으로는 심 총장 딸의 외교부 특혜 채용 비리 의혹 및 서민금융 대출 논란, 심 총장 아들의 장학금 수령 특혜 의혹 등을 들여다볼 방침이다. 앞서 민주당 외통위원들은 지난달 31일 서울 여의도 국회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립외교원 연구원 채용 공고상 자격 요건에 ‘해당 분야 석사학위 소지자, 또는 학사학위 소지자 중 2년 이상 관련 분야 근무 경험자’라고 돼있지만 심 총장 딸은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특혜 채용 의혹을 주장한 바 있다. 급 바뀐 채용공고 심 총장은 입장문을 내고 “근거 없는 의혹 제기가 계속되고 있는 것에 강한 유감을 표한다”며 “검찰총장의 자녀는 대한민국의 다른 모든 청년들과 같이 본인의 노력으로 채용 절차에 임했다. 국회에 자료 제출을 위한 외교부의 개인정보 제공 요청에도 동의했다”고 반박했다. 한 의원은 최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심씨 특혜 채용에 핵심 역할을 한 인물이 박장호 외교부 외교정보기획국장이라고 주장했다. 한 의원은 “(박장호 외교부 외교정보기획국장은)윤석열정권 출범 직후 2022년 7월 정도에 대통령실 외교비서관실로 들어갔다가 2024년 1월에 외교부로 복귀해 5월 말, 한반도 평화교섭본부를 없애고 새롭게 신설한 외교전략정보본부 외교정보기획국장으로 보직받아 오늘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한 의원에 따르면 2023년 외교부 연구직 채용 1차 공고 당시 직접 면접에 참여한 박 국장은 지원자 A씨를 “한국어가 서툴다”는 이유로 탈락시켰다. 하지만 A씨는 한국서 나고 자라 학위까지 받은 인물로 언어능력을 문제 삼을 만한 근거는 부족했다. A씨의 탈락 이후 외교부는 2차 공고를 내며 채용 자격을 경제 관련 석사학위 소지자에서 국제정치 분야 석사학위 소지자로 변경했다. 이때 국제협력 분야를 전공한 심씨가 합격하게 된 것이다. 한 의원은 박 국장의 대통령실 근무 경험이 심씨의 채용 과정에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고 의심했다. 채용 실무가 인사기획관실이 아닌 외교정보기획국 산하 외교정보1과서 이뤄졌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그는 “아무래도 용산에 파견 나가 있으면 조금 더 넓게 여러 부처와 관련된 사람들을 접할 수밖에 없다”며 “그런 과정서 어떤 방식이든지 어떤 접점이 이뤄지지 않았겠냐라고 하는 것은 있는데 그 부분은 저희가 조금 더 깊이 파봐야 될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공수처 먹잇감 심 총장과 갈등을 빚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에 심씨의 사건은 좋은 먹잇감이다. 지난 3일 공수처는 시민단체 사법정의바로세우기시민행동(이하 사세행)이 심 총장과 조태열 장관을 직권남용, 특정범죄가중법상 뇌물,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 사건을 수사3부(부장검사 이대환)에 배당했다고 밝혔다. 수사3부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석방을 지휘해 고발당한 심 총장 사건도 수사 중이다. 사세행은 이날 입장문을 내고 “검찰의 수장인 심우정 검찰총장의 딸을 뇌물성 채용한 행위에 대해 철저한 수사를 바란다”고 밝혔다. 공수처가 수사에 착수하면서 감사원이 공익감사 청구를 각하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공익감사 청구는 6개월 이내 결과를 내놔야 하되 기한은 자체 판단으로 늘릴 수 있는데, 그전에 감사에 착수할지 여부부터 감사위원회의 판단을 거쳐야 한다. 과거 사례를 보면 감사 청구를 각하하는 이유는 통상 이미 같은 사안에 대한 수사나 재판이 진행 중인 경우가 많다. 공수처 수사가 각하 사유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국회법상 감사원이 거부할 수 없는 국회 요구 감사의 경우에도 수사나 재판을 이유로 ‘사실상 각하’했던 최근 사례도 있다. 감사원은 지난달 25일 국회가 요구한 방송통신위원회 2인 구조 등 감사를 두고, 같은 사안에 대한 재판이 진행 중이라는 이유로 “위법성 여부를 감사원이 결론 내리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된다”고 매듭지은 보고서를 내놨다. 정치권에서는 야권을 중심으로 심씨에 대한 강도 높은 수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거세다. 입시 비리 논란을 일으켰던 조 전 장관 부부가 받았던 수사와 현재 상황을 비교하면 검찰의 이중적 잣대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한 민주당 재선 의원은 “조 전 장관이 받았던 검찰 수사를 보면 입시 비리 혐의만으로도 압수수색 등의 강도 높은 조사를 받았다. 같은 혐의를 받는 심 총장 딸의 경우 멀쩡하게 살고 있다는 걸 국민 눈높이서 봤을 때 형평성 논란이 일 것”이라며 “이건 상식의 문제”라고 비판했다. 조민은 집유 “강도 높게 수사해야” 용산 파견 키맨 박장호 국장 뒷배? 여당인 국민의힘도 조용하다. 지난달 6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간부 자녀 특혜 채용을 두고 “제2의 인국공(인천국제공항) 사태를 넘어 제2의 조국 사태”라며 신랄하게 비판했던 것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공수처가 심 총장과 심씨에 대한 수사에 속도를 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인력난이 지속되는 가운데 주요 고발 사건이 이어지면서 수사 지연은 불가피하다. 지난 4일 법조계에 따르면 공수처 인사추천위원회는 지난 1월 부장검사 1명과 평검사 3명 등 4명의 검사 임명을 대통령실에 제청했지만 두 달이 넘도록 임명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공수처법에 따르면 공수처 검사는 인사위 추천을 거쳐 대통령이 임명한다. 앞서 공수처는 지난해 9월에도 부장검사 1명과 평검사 2명 등 3명의 검사를 추천했지만 대통령실은 반 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답이 없는 상태다. 윤 전 대통령은 국회 탄핵소추로 직무가 정지될 때까지 이들을 임명하지 않았고,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은 한덕수 국무총리는 송창진 수사2부장의 면직을 재가하면서도 신규 검사 임명은 하지 않았다. 한 총리의 뒤를 이은 최상목 당시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경찰청 등 부처 인사는 진행하면서도 공수처 검사는 임명하지 않았다. 신규 검사 임명이 늦어지면서 고질적인 공수처 인력난도 지속되고 있다. 공수처 검사 정원은 처장과 차장을 포함해 25명이지만 현재 검사 인원은 휴직자 1명을 포함해 14명에 불과하다. 정원의 절반을 조금 넘는 수준이다. 신규 검사 7명을 임명해도 정원보다 4명이 부족하다. 공수처 내부에서는 과부하 상태라는 우려가 나온다. 12·3 비상계엄 수사와 이정섭 대전고검 검사 비위 의혹 수사 등 기존 수사에 인력이 집중돼있어 타 수사를 들여다볼 여력이 없다는 토로도 상당하다. 수사? 미지수 공수처 한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고발 사건이 이어지고 있지만 배당받은 사건을 전부 들여다보기 힘들 정도로 어려운 상황”이라며 “대통령실이 하루빨리 검사 임명을 해줘야 타 사건도 들여다볼 수 있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hounder@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반박에 반박 나선 외교부 외교부가 지난달 30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입장을 재반박하는 장문의 입장문을 내놨다. 외교부는 “관점에 따라 제도 운영 과정서 미흡했던 부분이 지적될 수는 있겠지만, 이를 특정 인물에 대한 특혜로 연결 짓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외교부는 지난해 ‘석사학위 소지자 또는 학사학위 소지 후 2년 이상 관련 분야 근무자’를 대상으로 채용 공고한 국립외교원 기간제 연구원에 석사 취득 예정 상태였던 심씨가 채용된 것에 대해 심씨만 특별히 배려한 것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외교부는 “학위 취득 예정서를 공식 증명서로 증빙하면 자격요건을 갖춘 것으로 인정했던 사례가 2021~2025년까지 총 8건 더 있었다”고 반박했다. 외교부는 올 초 외교부 정책조사 연구원 채용 과정서 이미 최종 면접까지 마친 응시자가 불합격 처리되고, 심씨를 위한 ‘맞춤형’으로 응시 자격을 바꿔 재공고했다는 의혹도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경제 관련 석사학위 소지자’를 대상으로 1차 공고를 냈을 때 응시 인원이 6명에 불과했고, 그 중 유일하게 경제 관련 석사학위를 소지한 응시자 1명에 대해 외부 인사 2명과 내부 인사 1명으로 구성된 면접위원회가 최종 면접을 했으나 채용 부적격 판정이 내려졌다는 것이다. 외교부는 “1차 채용 공고문에 ‘응시자 중 적격자가 없을 경우 선발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사전에 공지했다”고 강조했다. 외교부는 2차 공고에선 응시 가능 대상을 넓히기 위해 자격 요건을 ‘국제정치 분야 석사학위 소지자’로 변경했고, 그 결과 19명의 지원자가 응시해 심씨를 포함한 5명이 서류 전형을 통과했다고 밝혔다. 외교부는 이번처럼 1차 공고 후 적격자가 없어 전공·자격증 분야 등 응시 자격 요건을 변경해 재공고한 사례는 타 부처는 물론 외교부 내에서도 과거 전례가 있다면서 “(심씨가)유일하다는 지적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민주당은 앞서 외교부의 이 같은 설명에 대해 “응모한 사람이 적더라도 (같은) 채용 공고 사이트를 보면 재공고를 해서라도 기한을 연장해 해당 분야 사람을 찾는 경우가 대다수”라며 납득하기 어려운 해명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심씨가 또 다른 응시 요건인 ‘실무 경력 2년 이상’을 충족했는지도 논란이 큰 쟁점이다. 외교부는 심씨의 실무 경력을 국립외교원 경력 8개월, 서울대 국제학연구소 연구보조원, 유엔 산하 기구 인턴 등을 포함해 총 35개월로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 외통위원들은 “인턴, 조교 등은 통상 실무 경력으로 인정되지 않는다”며 “경험과 경력은 엄연히 다르다”고 지적했다. <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