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 울린 르메이에르 사건 대해부

  • 한종해 han1028@ilyosisa.co.kr
  • 등록 2013.11.11 15: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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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한 황제 경영…회장님 과욕이 화 불렀다

[일요시사=경제1팀] 서울의 중심 종로에서도 노른자위 땅으로 꼽히는 '피맛골 입구'에는 지하 7층에 지상 20층 건물로 연면적이 2만8000여평에 달하는 대형 주상복합 건물이 들어서 있다. 2003년 청진동 도시 환경 정비 사업 당시 대기업들의 대규모 공세를 이겨낸 건설사 '르메이에르'가 시행·시공을 맡은 '르메이에르 종로타운'이다. 지금 이곳이 잡음으로 시끄럽다. 회장 한 사람이 고객과 직원 모두를 죽였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무슨 일일까?




피맛골. 조선시대 서민들이 종로를 지나는 고관들의 말을 피해 다니던 길이라는 뜻의 '피마'에서 유래한 이 골목길은 서민 문화를 대표하는 장소로 꼽혔다. 자연스레 서민들 취향의 선술집·국밥집 등 술집과 음식점이 줄줄이 들어섰다.

하지만 1980년대 초 도심재개발지역으로 지정된 뒤 2003년 '청진동 도시 환경 정비 사업'이 시작됐고 600년간 서민의 애환이 서린 피맛골은 추억 속으로 사라졌다. 70년 전통의 청진동 해장국 거리의 명물 '청진옥'은 자리를 옮겼고 35년간 생선을 구워온 '삼성집'도 2008년 문을 닫았다. 비오는 날이면 빈대떡 부치는 냄새가 진동하던 거리도 더 이상은 없다.

의혹 휩싸인 피맛골
발원지 정경태 회장

지금은 서울의 전통 거리가 사라진다는 비판이 제기돼 수복재개발구역으로 지정, 종로 1가 교보문고 뒤쪽에서 종로 3가 사이에 일부가 남아 피맛골의 명맥을 유지하는 정도다.

서울의 중심 종로에서도 가장 노른자위 땅으로 꼽히는 '피맛골 입구'는 재개발 열풍이 불 당시 많은 대기업들이 눈독을 들였다. 그런데 도시 환경 정비 사업이 시작된 지 1년 만에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 건설사 하나가 시행과 시공을 따냈다. 3년이 지나 지하 7층에 지상 20층, 연면적 2만8000여평의 대형 주상복합 건물이 들어섰고 피맛골의 명소가 됐다. '르메이에르 종로타운'이다.

르메이에르 종로타운은 피맛골 상인들의 주목을 받았다. 2004년 견본주택이 문을 열자 하루 평균 2000∼3000명의 방문객들이 몰렸다. 오피스텔 1100만∼1500만원, 상가는 1300만∼7500만원 등 평당 분양가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지만 분양 현장은 북새통이었다. 하지만 2007년 건물 준공 후 6년여가 지난 지금 르메이에르 종로타운은 갖가지 의혹에 휩싸여 있다. 의혹의 발원지는 정경태 르메이에르 회장이다.

[정경태는 누구?]

지난 4일 서울중앙지검 조사부는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입주자들로부터 분양대금 등을 받아 가로챈 혐의 등으로 정 회장을 구속했다. 검찰에 따르면 정 회장은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내 오피스텔과 상가 100여실의 분양 대금과 이를 담보로 대출받은 돈 등 450여억원을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다.

광주에서 태어나 광주일고, 동국대를 나온 정 회장은 1988년 서른일곱 살의 나이에 종합개발컨설팅사 르메이에르를 차렸다. 르메이에르는 최고라는 뜻의 프랑스어로 정 회장이 직접 지었다.

92년에는 중국 랴오닝성 안산시 특구에 한국기업으로는 처음으로 공단을 조성해 주목을 받았고 96년에는 아예 건설사를 차리고 서울 신촌·사당·종로 건물이 대박을 터트리면서 사업을 확장했다. 2005년에는 호주 시드니의 호라이즌 골프장을 100억원에 인수하면서 스포츠센터 분양과 해외 레저시설을 연계해 레저·스포츠 쪽으로 사업 분야를 확장했다. 

450억 분양 사기에 3년간 72억 임금 체불
핑계·변명…이리저리 피하다 결국 쇠고랑

지금은 서울·부산 등 '목'이 좋은 자리에는 어김없이 르메이에르 건물이 들어서 있다. 르메이에르 종로타운을 포함해 동대문구 장안동 아파트, 신촌과 강남에 주상복합건물, 일산 백석동에 상가건물, 부산에 아파트 등 총 17채의 아파트 및 주상복합 건물을 보유하고 있다.

이밖에도 월계2동 청사, 시흥5동 하수관 개량공사, 한국도로공사 구미지사 부속동 신축 공사, 대한체육회 선수촌숙소 신축공사 등 공공시설 공사까지 따내며 승승장구했다.

정 회장의 사업 신조는 "작은 부자는 노력이 낳지만 큰 부자는 신용이 낳는다"는 고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의 철학을 그대로 따왔다. 홈페이지에 나온 '사람을 생각합니다' '나라와 민족을 생각합니다' '세계 속의 성장을 생각합니다'라는 문구는 르메이에르의 경영이념이다.

하지만 이런 신조와 경영이념은 '빛 좋은 개살구'였다.

[분양사기 의혹]

르메이에르는 군인공제회에서 르메이에르 종로타운을 지을 자금을 빌린 뒤 채권자와 분양자들의 돈을 보호하기 위해 르메이에르 종로타운에 대한 소유권을 대한토지신탁에 맡겼다. 분양자가 분양대금을 대한토지신탁에 입금하면 소유권을 인정받는 시스템이다.

그런데 르메이에르는 이 돈을 자신들의 계좌로 입금하도록 계약서를 조작해 돈을 가로챘다. 원본 계약서에 적혀 있던 대한토지신탁의 계좌번호는 종이를 덧대 그 위에 도장을 찍는 방법으로 가렸다. 햇빛을 비춰보지 않는 이상 알 수가 없다. 분양계약을 이끌어낸 영업사원들조차 이 사실을 몰랐다.

대한토지신탁은 돈이 들어오지 않아 소유권을 인정해 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상가와 오피스텔을 합한 전체 830개 호실 중 피해 호실만 100호실, 분양 피해자는 118명, 피해액은 무려 498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피맛골 상인들은 평생 고생하며 모은 전재산을 날릴 위기에 처했다. 분양 사기 피해자들은 계약서 조작의 배후에 정 회장이 있다고 믿고 있는 상황.

하지만 정 회장은 책임 회피에만 급급했다. 정 회장은 "분양이 줄줄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회장이 일일이 신경 쓸 수 없다"며 "영업사원들이 분양을 성사시키면 3%의 수당이 나가기 때문에 기를 쓰고 분양에 나선다. 영업사원들이 무리하게 상가 분양에 나선 것"이라고 주장했다.

직원 상습폭행·교류금지
모든 책임 임직원에 전가

하지만 영업사원들은 방송에서 "정 회장은 분양건에 대해 일일이 사인을 하고 지시를 내렸다" "450억원에 달하는 분양건은 일개 영업사원이 알아서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직원들 가운데는 분양 사기 피해자들도 있다" 등 정 회장의 발언에 대해 반박했다.

분양사기 피해자 외에 수천만원을 내고 종로타운 스포츠센터 회원권을 구입한 피해자도 수백명인 것으로 전해졌다.

르메이에르는 2007년 국내 수도권 골프장의 부킹서비스와 주중 회원 혜택, 호주의 골프리조트 이용료 할인 등을 내세우며 1인당 보증금 3000만원, 연회비 198만원으로 스포츠센터 회원권을 분양했다. 회원이 되면 신촌·사당 두 곳의 멤버십 스포츠센터를 정회원 자격으로 무료로 이용할 수 있으며 '르메이에르 청평 수상스포츠타운'의 지중해풍 요트 등 수상레저시설도 회원자격으로 이용할 수 있다는 달콤한 말로 회원들을 끌어 모았다.

정 회장은 이 스포츠센터를 담보신탁으로 수백억원의 대출을 받았다. 하지만 채무액을 상황하지 못하자 신탁회사가 스포츠센터를 공매 처분하면서 회원 600여명이 구입한 200여억원어치의 회원권이 사실상 휴지조각이 됐다.

[임금 체불 왜?]

정 회장의 횡포는 '구사대'마저 등을 돌리게 만들었다. 지난 3년간 임직원들은 임금 체불과 연대 보증, 스포츠센터 회원권, 오피스텔 물량 등을 강제로 할당받는 등 피해가 막심했다.

먼저 임금 체불 문제를 보면 르메이에르는 지난 2010년 11월부터 전 임직원에게 급여를 지급하지 않았다. 2009년 워크아웃에 접어든 이래 회사 사정이 어려워졌고 이라크 유전 사업, 평창 동계올림픽 선수단 숙소 공사 수주 등이 예정되어 있으니 임직원들이 회사의 고통을 분담해 달라는 취지였다. 이렇게 3년간 유야무야 체불된 임금은 무려 72억원. 생활고에 시달린 직원 상당수가 빚더미에 앉았고 말기 암 판정을 받은 한 직원은 급여가 중단되자 종신보험을 해약한 바람에 사채를 끌어 항암치료비를 감당하고 있다. 또 다른 직원은 분양 광고 전단지를 돌리며 생계를 꾸려가고 있다.

정 회장은 직원들이 임금 지급을 요구할 때마다 "에너지사업, 석유사업이 잘 되고 있으니 곧 1000억원이 들어온다"는 말로 시간을 끌었다.

임금체불이 길어지자 400여명의 직원들은 고용노동부에 진정을 제기했다. 직원들은 정 회장이 임금 체불에 대한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취지의 탄원서를 법정에 제출하기도 했다.

회사 사정이 악화되자 정 회장은 임직원들에게 회사를 위해 대출까지 받으라고 지시했다. 이에 임직원들은 최대 19억원의 대출을 받고 수백억원의 연대보증을 섰다. 스포츠센터 분양권 피해자 중에는 르메이에르 직원도 다수 있었다.

[회사선 무슨 일이?]

정 회장은 '지독한' 황제로 군림했다. 르메이에르 임원들은 회장 비서실에 자신의 위치를 보고해야 했다. 정 회장은 비서실을 통해 오전 9시30분부터 오후 6시까지 하루 두 시간 간격으로 각 부서장들의 위치를 파악했다.

정 회장은 부서 간 교류도 철저히 금지했다. 임원들마저도 타 부서 상황을 잘 알지 못했다. 특히 영업부로 들어가는 정보는 대부분 차단됐다. 분양 영업에 차질이 생긴다는 게 이유였다. 휴일도 없었다. 정 회장이 부르면 무조건 달려가야 했다.

영업본부장은 정 회장이 휘두른 폭력에 고막이 파열됐다는 주장도 있다. 정 회장이 조사를 받으러 검찰에 갔을 때도 자신에게 항의하는 직원을 향해 주먹질을 하는 모습이 전파를 타기도 했다.

2만원짜리 공기청정기를 구입하고 TV 시청료로 나가는 지출까지 비서실과 회장의 결제가 있어야 가능했다. 볼펜을 구입할 때는 볼펜의 상태까지 일일이 확인했다고.

르메이에르 종로타운에 대한 논란이 시작되자 정 회장은 모든 책임을 임직원들에게 전가했다. 다 꾸며낸 얘기라는 것. 계약서 위조는 경리부에, 사기 분양은 영업부에, 임금 체불은 회사 대표이사에게 떠넘기려 했다.

정 회장은 "그런 회사가 대한민국에 어디 있느냐" "그게 사실이면 왜 거기(회사) 붙어 있느냐" "아무런 근거도 없는 중상모략이다"고 반박했다.

정 회장은 임금 체불이 시작된 지 한 달 전인 2010년 10월 당시 전무이사였던 서모씨를 대표이사 자리에 앉혔다. 이 때문에 직원들이 고용노동부에 제기한 진정의 피진정인은 서씨가 됐다. 서씨에 따르면 정 회장은 서씨에게 워크아웃과 관련해 법원에 출석하거나 채권·채무 연장 등에 대표이사 직함을 갖고 참여할 것을 지시했다. 아무 권한은 없이 대표이사 직함만을 갖는다는 각서까지 작성하게 했다는 게 서씨의 주장. 서씨는 피고인이 돼 형사 기소됐다.

정 회장은 "체불이 시작된 시기와 대표이사 교체시기가 우연히 맞아 떨어진 것이다"며 "오히려 서씨가 먼저 와서 대표이사를 한다고 했다"고 설명했다.

[꼬불친 재산은?]

'돈을 돌려 달라' '임금을 지급해 달라'는 분양자들과 임직원들의 요구에 정 회장은 "돈이 없다"며 맞서고 있다.

하지만 정 회장은 지난달 30일 조사차 검찰에 출석할 당시 외제차를 끌고 나타났다. 한 직원은 외제차를 팔아 밀린 임금을 조금이라도 달라고 소리쳤다.

그의 자택은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의 고급 단독주택. 정원에 고가의 소나무가 심어진 이 주택의 시가는 40억원. 소유주는 정 회장이다. 정 회장은 회사 워크아웃 결정 직전 두 살이던 손녀에게 10억원에 달하는 부동산을 불법 증여했다가 국세청에 발각되기도 했다.

"책임져라" 요구에 
"돈 없다" 배째라

임직원들은 정 회장이 회사 자금을 횡령했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르메이에르 전 직원들은 "10억 이상의 자금이 정 회장 개인의 통장으로 흘러들어간 사실이 포착됐다" "정 회장이 큰며느리나 사돈 쪽에 돈을 숨겨놓았을 것이다" "대출 실행이 되면 르메이에르 건설 법인 통장으로 돈이 들어왔는데 비서실을 통해서 은행가서 바로 정 회장 자신의 통장으로 돈을 옮겼다" 등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정 회장은 "그 돈은 본 적도 없고 만져본 적도 없다"며 "만약 의혹이 사실이라면 통장내역을 검토해서 조회를 해보면 바로 나오는 게 아니냐"고 말했다.

2살 난 손녀에게
부동산 불법증여

사태가 이런데도 정 회장은 "지금이라도 어디서 돈만 빌릴 수 있다면 회생할 수 있다"며 썩은 동아줄을 놓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정 회장이 자신만만해 하던 평창 선수단 숙소 사업은 이미 지난 2011년 군인공제회에 밀린 이자를 갚지 못해 사업권이 넘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부지에 대한 공매 공고가 신문지면에 몇 차례 났지만 유찰을 거듭했고 땅 값은 떨어져만 갔다.

분양사기를 입은 피해자들과 임직원들에게 미안한 구석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다. 피맛골을 터전으로 살아온 상인들의 절규는 하루가 다르게 커져가고 있다. 


한종해 기자<han102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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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법원이 주호영 국회부의장의 대구시장 경선 컷오프 관련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항고할 뜻을 내비쳤다. 주 부의장의 강경 대응은 저조한 국민의힘 지지율과 맞물려 혼란상을 더욱 극적으로 비추고 있다. 과연 국민의힘이란 ‘대마’는 ‘불사’의 존재일까? 주호영 국회부의장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경선에서 컷오프된 것에 반발해 지난달 26일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했다.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수석부장판사 권성수)는 지난 3일 이를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곧바로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법원 결정에 반발했다. 법원 결정 바로 반발 주 부의장은 “저는 그동안 이번 컷오프가 절차·내용 모두 중대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해 왔다”며 “법원의 판단과 별개로 이번 공천 과정이 과연 당원·시민의 눈높이에 맞는 공정하고 민주적인 절차였는지는 여전히 엄중하게 따져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주 부의장은 지난 6일 항고를 제기했다. 이어 지난 8일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항고심 판단을 끝까지 지켜본 후 제 거취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선 일각에서 제기했던 무소속 출마설을 일단 유보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어 주 부의장은 “항고심 판단을 기다린다고 해서 이번 공천 난맥상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체제의 책임을 덮고 가겠단 뜻은 결코 아니”라며 “이런 공천 구조를 만든 세력과 절대로 타협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공천은 충성의 대가나 숙청의 도구가 아닌, 오직 국민 앞에 가장 경쟁력 있고 책임 있는 후보를 세우는 과정”이라고 주장하는 등 자신을 컷오프한 것을 ‘숙청’이라고 암시했다.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에 대해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6선인 주 부의장은 대구 수성에서만 국회의원을 지냈다. 대구 수성을에서는 4선을 지냈고, 수성갑에선 재선에 성공했다. 이 중 4선을 했던 지난 2016년 총선 수성을 선거에선 친박(친 박근혜)계 주도로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 출마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유 있게 이겼다. 문제는 주 부의장이 당내 최다선인 6선 의원 겸 국회부의장이라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명예가 곧 실권을 보장하진 않는다. 아울러 주 부의장이 차기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구에 출마해 7선에 도전하면,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다. 같은 6선인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조정식 의원은 각각 부산 사하을·경기 시흥을을 지역구로 두고 있다. 부산은 이미 격전지가 된 데다 조 의원은 민주당계 정당과 국민의힘 소속으로 각각 3선 했고, 경기 시흥을은 수도권이다. 국민의힘의 안정된 텃밭으로 분류되는 대구 수성을에서 7선에 도전하는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 설령 7선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도 참패 가능성이 제기되는 국민의힘이 2년 후 총선에서 다수당이 된다는 보장도, 국회의장이 되리라는 보장도 하기 어렵다. 오는 2028년 총선까지 연일 떠들썩하게 이어지는 계파 갈등을 어느 정도 안정시킨 후 대안 야당으로 발돋움하면서 이재명정부가 실정으로 지지율이 폭락하는 상황이 겹쳐야 승리를 노려볼 수 있다. 주 부의장이 국회의장에 도전하는 것도 현실적으로는 가능성이 희박하다. 불확실한 국회의장…‘텃밭 7선’ 대신 대구? 연이은 공천 가처분 세례 속 서울 지지율 13% 따라서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집념을 불태우는 것은 필연이다. 대선 패배 후 대구시장에 출마해 당선됐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전례도 있다. 주 부의장으로선 “나라고 출마 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에 있느냐”고 판단해도 무리가 아니란 분석이 있다. 대구시장으로서 임기를 마친 후 대권에 도전하거나 당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가능성은 일명 ‘주한 연대설’로 통하는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와의 연대설 때문에 불거졌다. 이는 국민의힘 이정현 전 공천관리위원장이 주 부의장을 컷오프한 직후 불거졌다.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 대구시장에 출마해 대구 수성갑에서 재보궐선거가 진행되면, 한 전 대표가 여기에 출마하는 형식으로 연대한다”는 설이다. 한 전 대표 측으로선 손해 볼 게 없다. 한 전 대표는 지난달 25일 채널A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보수 재건이 필요하다고 공감하면서 나서겠다고 했다”며 “우린 이미 연대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반면 주 부의장은 신중한 반응을 내비쳤다. 그는 지난달 26일 기자들을 만나던 중 주한 연대설 관련 질문을 받자 “제 코가 석 자인데 딴 생각할 여지가 있겠느냐”고 답변했다. 다만 무소속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선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해 준비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따라서 주한 연대설 성립 가능성 자체를 배제한 것은 아니라는 해석이 나왔다. 주 부의장의 항고 제기는 국민의힘의 치명적 문제 하나를 외부로 노출했다. 국민의힘에선 당내 처분에 대해 연이어 법원으로 달려가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가깝게는 주 부의장과 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컷오프에 대한 가처분을 신청했다. 김 지사는 주 부의장과 달리 가처분이 인용돼 경선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멀게는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배현진 의원에 대해 각각 결정했던 제명·당원권 정지 1년 징계의 효력도 법원에서 정지됐다. 4건의 가처분 모두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에서 판단했다. 재판부는 주 부의장 건에 대해서만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줬다. 장 대표는 김 지사가 신청한 가처분이 인용된 다음 날인 지난 1일 기자들과 만나 “법원이 정치에 너무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며 “재판장이 국민의힘에 와서 공천관리위원장과 윤리위원장을 하면 될 것 같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정치의 사법화가 심각할 정도로 진행된 것 같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천 관련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승리 가능성을 어둡게 하는 신호들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국갤럽은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2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상대로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직접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48%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8%로 집계됐다. 제 코가 석 잔데… 서울에선 민주당 지지율이 51%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3%로 집계됐다. 부산·울산·경남에서도 민주당 지지율은 42%로,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7%로 집계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바람). 영원한 격전지 서울에서도 양당의 지지율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여론조사 결과 수치가 공개되자,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한 지적이 날로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4일 자 사설을 통해 “국민의힘은 지금 수도권에서 후보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며 “현행법상 15% 이상 득표해야 선거 비용을 전액 보전받을 수 있는데 그에 미치지 못할까 걱정한다는 것”이라며 현실을 짚었다. 이어 “말로만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선언했을 뿐 실제로는 반대로 하고 있다”며 “공천 혼란에 대해서도 가처분을 인용한 법원 탓만 할 뿐, 어떻게 수습하고 책임질지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등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조선일보>의 주장대로라면, 수습·책임을 맡을 당 대표는 보이지 않는 셈이다. 해당 매체는 “어렵게 나선 후보들은 국민의힘 상징색인 빨간색을 포기하고 흰색 점퍼를 입고 다닌다”며 “인구가 1300만명에 달하고 국회의원 의석수도 가장 많은 경기도에선 지사 출마자를 구하지 못해 공천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는 현실도 짚었다. <조선일보>가 짚은 국민의힘의 현실은 신체를 통제할 두뇌 없이 거대한 군집을 이룬 채 각자의 역할을 맡은 군집 생물에 비유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관해파리를 들 수 있다. 관해파리는 겉으로 볼 땐 덩치 큰 해파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각각의 역할을 맡은 독립 개체들이 모인 군집이다. 이 개체들은 먹이 섭취·이동·번식 등 각각의 역할만을 담당한다. 각각의 개체들은 생존을 위해 서로 연결돼있지만, 이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뇌는 없다. 개체 중 누군가가 제 역할을 못하면 모두 죽는다. 단세포생물인 점균류도 먹이를 찾을 때, 각자의 세포가 알아서 효율적인 길을 찾는다. 이를 통제할 뇌는 없지만, 화학적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최적의 경로를 결정한다. 그런데 잘못된 경로를 찾으면 방향을 틀 능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는 것은 군집 전체가 굶어 죽는 일이다. 페로몬을 통해 신호를 주고받는 군대개미 집단도 선봉에 선 개미가 길을 잃으면 모든 개미가 원을 그리다가 지쳐 죽는다. 제 역할 못하면… 이탈리아의 정치학자 조반니 사르토리는 원심적 경쟁 이론을 주장했다. 보통의 민주주의 국가에선 정당이 중도층의 표심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강경한 여당과 무책임한 야당이 양립할 땐 정당이 중도층을 설득하기보다 진영 결집에 따른 조직표 구성에 몰두한다. 이런 구도에선 중도층이 정치에서 배제되고, 정치적 대화도 단절된다. 이런 상황에선 후보자들은 당의 승리와 중도 확장을 포기하고, 강성 핵심 지지층의 지지를 얻으려고 노력한다. 중도층이 정치에 냉담해지면서 설득 가능 대상으로 강성 핵심 지지층만 남기 때문이다. 가성비 높은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아울러 후보자들이 지도부를 거부하면서 강성 핵심 지지층에게만 구애하는 각자도생에 몰두한다. 이는 결국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준비 과정에서 서울시장·경기도지사 경선에선 구인난에 빠졌지만, 대구시장·경북도지사 경선은 열기가 과도한 것도 이와 비슷하다. 특히 대구시장 경선엔 국회부의장·경제부총리·원내대표 등 당정의 핵심을 지낸 인사들이 모두 출마했기 때문에 더욱 눈에 띄고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리처드 카츠와 아일랜드의 정치학자 피터 메어는 정당을 카르텔·프랜차이즈 기업에 비유하는 독특한 이론을 발표했다. 카츠와 메어는 “현대 정당이 시민의 자발적 후원보다 국가의 정당 보조금·공천권 등 국가의 자원에 의존해 서로 담합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앙당과 지역구 후보의 관계를 본사와 가맹점주 관계로 규정했다. 따라서 중앙당이 자원을 적절히 배분하지 못하거나, 시장에서 자원의 가치가 폭락하면 가맹점주의 불만이 폭발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을 매개로, 캐나다의 정치학자 켄 카티는 “정당이 실제로 프랜차이즈 시스템으로 바뀌고 있다”고 주장했다. 카티에 따르면, 정당은 브랜드로서만 기능하고, 선거에선 후보가 중앙의 브랜드를 빌려온다. 공천은 결국 이들 간 계약 관계 역할을 한다. 이는 실제 정치적 현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일 서울 쌍문역 일대 쌍리단길을 방문했다. 오 시장의 현장 방문에 동행한 국민의힘 소속 서울시의원들과 도봉구의원들은 국민의힘의 상징색 빨간색이 아닌 흰색 점퍼를 입었다. 오 시장도 서울시 로고가 새겨진 흰색 점퍼를 입고 현장을 돌아다녔다. 지난달 31일 진행된 국민의힘 서울시장 본경선 후보들 대상 첫 토론회에서도 후보들은 장 대표를 비판했다. 이들은 “흰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동그라미 푯말을, 빨간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엑스 푯말을 들어달라”는 진행자의 요구에 일제히 엑스 푯말을 들었다. 오세훈 ‘흰색 점퍼’ 현장행 “빨간색 입고 싶다” 대우그룹·프랑스 사회당 등 한순간에 망한 대마들 하지만 말은 날카로웠다. 오 시장은 “빨간색 점퍼를 입고 싶은 마음을 엑스 푯말을 들어 표현해 봤다”고 말했다. 미래통합당 윤희숙 전 의원은 “흰색 옷을 입어야 하는 사람은 장 대표”라며 “이번 공천이 마무리되면 백의종군을 결심해 달라”고 요구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빨간 당 출신이 빨간색을 안 입는 자기모순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도 “장 대표가 확장하지 못했다면 후보들이 확장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달엔 장 대표의 지원 유세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본사에 대한 가맹점주들의 집단행동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서울시당위원장을 맡은 배 의원도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의 서울 지지율 13%의 주역 장동혁 지도부가 기초단체장 후보를 못 구한 지역의 후보를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방선거 패배 가능성이 내·외부에서 연이어 제기되고 있지만, 국민의힘 지도부에 대해선 “변화할 의지도, 대책도 없는 것 같다”는 평이 나온다. 이 같은 상황은 카츠와 메어가 이미 이론적으로 짚었다. 이들은 “카르텔 정당은 국가 자원을 독점하기 때문에 ‘우리는 망하지 않는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고 지적했다. 바둑으로 치면, 국민의힘은 여러 개의 돌로 넓게 자리 잡은 곤마인 ‘대마’와 비슷하다. 시사 분야에서 관용적으로 잘 쓰는 표현 중 하나는 ‘대마불사’다. “대기업이나 대형 금융기관은 국가의 지원을 받아 망하지 않는다”는 관용 표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1990년대 후반 IMF 금융위기는 대마불사로부터 비롯됐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상황은 당시 재계 2위였던 대우그룹의 해체였다. 김우중 당시 회장은 ‘세계 경영’이라면서 해외 업체를 공격적으로 인수했다. 그러다 IMF 금융위기를 맞아 구조조정을 거쳤지만, 삼성자동차를 받고 대우전자를 주는 빅딜 과정에서 엄청난 빚을 져 결국 워크아웃을 선언했다. 김 전 회장도 해외로 도피했다. 대우그룹은 그렇게 해체됐다. 국제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1990년대 초반 캐나다의 집권당 진보보수당은 경제 실정과 내부 갈등 끝에 구심력을 잃고 연이은 당원 탈당 사태를 겪었다. 그 결과 150석을 넘게 보유했던 거대 여당이 선거 한번에 2석만 건지는 참패를 당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프랑스에서도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을 극복하지 못했던 사회당은 지난 2017년 대선을 앞두고 강경한 좌파 성향 브누아 아몽 대선후보를 선출했다. 그러자 사회당 소속 정치인 다수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창당했던 신생 정당 앙 마르슈로 옮겼고, 당은 선거에서도 참패했다. 반대로 민주당은? 민주당은 대구시장 선거 승리를 위해 대구에서 일정한 기반을 갖추고 있고 선거 승리 경험도 있는 김부겸 전 총리를 대구시장 후보로 선출했다. 이어 지난 8일엔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김 후보와 함께 대구 농수산물도매시장을 방문하는 등 승리 의지를 드러냈다. 구인난을 겪고 있는 국민의힘과 달리, 민주당에선 추미애 의원이 치열한 경선 끝에 경기도지사 후보로 선출돼 주목받고 있다. 대마불사는 과연 영원한 걸까. 대마불사만 믿고 배짱 영업을 해도 되는 걸까. 대우그룹 해체는 국민의힘에 어떤 의미를 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