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경제1팀]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도덕적으로 물의를 빚은 '졸부'를 아너소사이어티 멤버로 받아들여 논란이 일고 있다. 과거 미성년자를 성폭행하려 했던 파렴치한을 가입시켜 말들이 많은 것이다. 아무리 돈을 많이 내도 이건 아니지 않냐는 반응 일색이다.
아너소사이어티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이하 모금회)가 2008년 사회문제에 대한 관심과 기부문화 확산 등을 위해 마련한 사회지도층 모임이다. 1억원 이상 고액 기부자들이 가입할 수 있다. 지난 1일 기준 가입자는 369명, 약정금액은 약 420억원이다. 기업인(176명)이 가장 많다. 익명기부자는 58명, 스포츠·방송인도 각각 3명씩 있다.
수백억 자산가
이번에 문제가 된 가입자는 경북 지역의 유지로 알려진 A씨다. 서울과 안동·영주에서 사업을 하는 A씨는 최근 모금회에 1억원 이상 고액 기부를 약정했다. 이와 함께 사후 자신의 유산 30%를 어려운 이웃을 위한 공익사업에 기부하기로 서약했다. 1억원 이상 고액 기부와 유산 기부를 동시에 한 것은 이 지역에서 처음이었다.
A씨는 "한 신문에 게재된 캠페인 기사를 본 후 아내와 의논해 기부를 결심했다"며 "다문화가정과 기초생활수급자 등 형편이 어려운 분들을 위해 요긴하게 쓰여지길 바란다"고 밝혔다.
수만평의 과수원을 가진 부농의 아들로 태어난 A씨는 사비를 들여 환경운동에 나섰다. 그러나 재산을 모두 환경사업에 탕진, 가세가 기울면서 목욕탕 때밀이로 일하는 등 모진 인생의 굴곡을 겪었다. 그는 목욕탕에서 먹고 자고 하면서 때밀이로 악착스럽게 돈을 벌었고, 알뜰하게 모은 돈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사업은 크게 번창했고, 수백억원의 자산가가 됐다. 모금회는 A씨가 사후 기부하기로 한 '재산의 30%'가 30억원쯤 될 것으로 추정했다. 이후 A씨는 형편이 어려운 기초생활수급가정 청소년들에게 거액의 장학금을 전달해 왔다. 다문화가정을 위한 후원활동과 기존에 하던 환경운동도 펼쳐왔다.
모금회는 A씨의 통큰 기부를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각 언론에 보도자료를 돌리는가 하면 아너소사이어티 가입 행사까지 열었다. A씨는 지역에서 유명 인사가 됐다. 쉽지 않은 선택을 했다는 칭찬이 쏟아졌다.
이도 잠시. 유명세를 탄 만큼 그를 둘러싼 뒷말도 적지 않았다. 지저분한 과거가 입길에 올랐다. 알고 보니 A씨는 성범죄 전과자였다. 인면수심의 파렴치한이 아너소사이어티에 가입한 사실이 뒤늦게 확인된 것.
'아너소사이어티' 성범죄 전과자 가입
인면수심 여고생 강간미수 전력 들통
사건은 200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충북 제천경찰서는 그해 9월 가정 형편이 어려운 여고생에게 후원을 약속하며 자신의 집으로 유인해 성폭행하려 한 혐의(강간미수)로 A씨를 구속했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여고생 B양에게 접근, "내가 장학금을 주는 학생들이 집에서 함께 살고 있으니 한번 방문해 달라"고 자신의 집으로 유인해 성폭행하려다 B양이 반항해 미수에 그친 혐의를 받았다.
경찰 조사 결과 A씨는 평소 알고 지내던 B양의 어머니를 통해 B양을 소개받아 "성공적인 후원자가 돼 주겠다. 장학금을 주겠다"며 환심을 샀던 것으로 드러났다. 부모의 이혼으로 넉넉지 못한 생활을 한 B양은 A씨를 철석같이 믿었다.
그러나 B양을 자신의 집으로 부른 A씨는 갑자기 돌변했다. 다른 장학생들은 없었고 빈집이었다. A씨는 B양을 넘어뜨리고 성폭행을 시도했으나 B양의 완강한 저항으로 미수에 그쳤다. B양은 이 사실을 가족에게 알렸고, 가족의 신고로 A씨는 구속됐다. 경찰은 미수에 그쳤지만 정황상 성폭행 의도가 다분했다고 판단해 강간치상 혐의를 적용했다.
A씨는 처음 범행 사실을 완강히 부인하다 "술을 마신 상태에서 우발적으로 그랬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경찰은 "사회사업을 하는 것으로 알려진 A씨가 장학금을 빌미로 청소년을 유인해 성폭행하려 한 충격적인 사건"이라며 "A씨는 사기 등의 다른 전과도 있었다"고 말했다.
도덕적으로 물의를 빚은 A씨의 과거 행적은 금세 탄로가 났다. 지역에선 잡음이 일기 시작했고, 모금회는 부랴부랴 진상 파악에 나서 A씨의 범죄 사실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모금회 측은 A씨의 가입취소 여부를 논의 중이다. 기존 회원들의 명예를 떨어뜨린다는 등의 이유에서다.
모금회 측은 "A씨가 아직까지 기부하기로 약속한 1억원을 납부하지 않았다. 따라서 아너소사이어티 가입 인증서도 전달하지 않은 상태"라며 "A씨의 범죄 연루 사실을 확인해 가입을 철회하는 방향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독지가 행세
뒤늦게 사태 진화에 나선 모금회에도 불똥이 튈 것으로 보인다. 사전에 신상정보를 제대로 확인하지 못해서다. 이번 일로 아너소사이어티 가입 기준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돈이면 다 되는 것이 아닌 누구의 어떤 돈이냐를 따지는 제도적 장치가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김성수 기자<kimss@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아너소사이어티 멤버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아너소사이어티는 1억원 이상 고액 기부자들의 모임이다. 가입자 중엔 기업인이 가장 많다.
최신원 SKC 회장은 지난해 11월부터 아너소사이어티 대표를 맡고 있다. 최 회장은 연이은 기부로 대기업 회장으론 처음 2008년 아너소사이어티 멤버가 됐다. 최 회장은 세계공동모금회(UWW)의 고액기부자 모임 세계리더십위원회의 위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이동건 부방그룹 회장은 사회복지공동모금회 회장이면서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이기도 하다. 김상열 호반건설 회장과 그의 부인 우현희 KBC광주방송문화재단 이사장은 지난해 아너소사이어티에 가입한 부부 회원이다. 박순호 세정그룹 회장은 2008년, 류진 풍산그룹 회장은 지난해, 김광호 모나리자 회장은 지난 1월 각각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이 됐다.
윤영달 크라운해태그룹 회장과 이희상 동아원그룹 회장, 최창걸 고려아연 명예회장, 장홍선 근화제약 회장 등도 아너소사이어티에 가입돼 있다. 지난 2월엔 정홍원 국무총리가 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방문해 성금 1억원을 기부하고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으로 가입해 화제를 모았다.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