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성추행 경계선 논란

  • 최현경 mw2871@naver.com
  • 등록 2013.11.06 09:2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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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만지다 팬티로 ‘쑤욱’

[일요시사=사회팀‘30미터 청진기를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니냐.’ 성범죄로 몸살을 앓고 있는 의료계에서 나온 자조적인 목소리다. 모호한 성범죄 적용 기준으로 환자들은 물론 의사들까지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적절한 진료임에도 불구하고 성추행 등으로 오해를 하는가 하면 배 부위를 진찰하다가 팬티로 손을 넣는 등 피해 사례도 다양하다.




지난달 22일 인천의 한 중소병원 소아과 의사인 김모씨가 진료과정 중 무리한 신체접촉을 하는 등 여중생 3명을 성추행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인천지방검찰청에 따르면 피해 여중생들은 김씨가 진찰 도중 성기를 허벅지에 닿게 하는 행위나 청진기를 가슴에 대는 과정에서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지난 4월 감기증세로 병원을 찾은 중학생 A양에게 다리를 벌리게 하고 다가가 무릎에 성기 부위를 밀착시키고 또다른 여중생 B양은 침대에 눕혀 배 부위를 진찰하던 중 팬티 속으로 손을 넣는 등 성추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적절한 진료다”

이번 사건은 피해 여학생의 부모가 경찰에 신고하며 알려졌다. 피해 여학생은 병원을 찾은 후 울면서 부모에게 성추행 사실을 알렸다. 피해자 가족들이 병원에 찾아가 항의하자 병원 측은 “그런 사실이 없다”며 사과조차 하지 않아 이를 경찰에 신고했다.

피해 여학생들의 부모는 “입에 올리기 어려울 정도로 정상적 진료행위의 도를 벗어나 환자인권을 철저히 무시한 행위까지 있었다”고 말했다.


반면 김씨는 의도적인 신체접촉은 없었다며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이경으로 귀 안쪽을 보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난 신체 접촉을 피해자들이 과도하게 해석한 것”이라며 “정상적인 진료 과정이었다”고 반박했다.

진료과정 중 무리한 신체접촉 지적
신고·고소 잇달아…미성년 피해도

같은 달 인천지역의 또 다른 병원에서는 영상의학과 소속 방사선과에 근무하는 C씨가 119구급대에 의해 실려온 응급환자 D씨의 속옷을 벗기고 성추행한 혐의로 검찰에 송치됐다. 지난 6월 피해자 D씨는 부부싸움 도중 의식을 잃고 쓰러져 병원 응급실로 옮겨왔고, 성추행 범행 당시 의식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병원을 퇴원한 D씨가 며칠 뒤 성추행 사실을 인천 원스톱지원센터(여성·학교성폭력 피해자 전담의료기관)에 신고하면서 C씨의 범행이 드러났다. 현재 C씨는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경찰청이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소속 새누리당 강기윤 의원에게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2008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강간 및 강제추행 등 성범죄로 입건된 의료계 종사자들은 354명이었다. 강간죄의 경우, 2008년 43명에서 2010년 67명, 2012년 83명으로 4년 새 2배 가량 증가했다. 이는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 등 의료계 직종 근무자를 모두 포함한 수치다.

강 의원은 “몸이 아픈 환자들은 의사에게 자신의 신체를 온전히 맡기는 데다 의사들은 수면유도제, 몰핀 등 각종 약물을 다루기 때문에 범죄의 유혹에 빠지기도 쉽다”며 “진료실 및 수술실 내 성범죄 방지를 위한 제도적 보완책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아동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법률(아청법)’에 따라 2012년 8월2일자로 아동·청소년과 성인을 대상으로 성범죄를 저질러 확정판결을 받은 의료인의 취업과 의료기관 개설이 10년간 제한됐다.

앞선 김씨의 경우 유죄가 확정되면 현행법에 따라 10년간 의료기관의 개설이나 취업이 불가능하다. 사회적으로 의사들의 성추행 논란이 끊임없이 제기되자 김씨의 판결에 의료계의 관심이 주목되고 있다.


모호한 성범죄 기준
환자·의사들 불만

과거 당연히 여겼던 청진이 성추행의 원인이 되어 최근에는 청진을 받는 일부 환자들이 의사를 비난하거나 거부감을 드러내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자 의사들은 “청진조차 제대로 할 수 없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일부 환자의 경우 청진을 하지 않으면 무성의한 진료라고 생각해 난감하다는 입장이다.

같은 증상으로 여러 병원을 찾은 경험이 있는 한 환자는 이전 병원에서 없었던 신체 접촉이 과잉진료로 느껴져 수치심을 느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촉진, 타진, 청진 등은 기본적인 진찰과정으로 오진의 확률이 낮출 수 있어 의사가 신체를 만지는 것은 제대로 된 의료행위라고 말한다.

때문에 의료계에서는 신체적 접촉이 있을 수밖에 없는 진찰 과정과 피해자들의 주관적인 판단에 근거한 성폭력 혐의의 적용이 적절치 못하다며 목소리를 내고 있다. 성폭력 특별법의 실효성을 위해서는 의료계에 별도의 기준이 적용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수치심 느낀다” 

경기도 부천의 의사 박모씨는 “성추행의 기준은 매우 주관적이다. 본인이 불쾌감을 느끼면 성추행이라 생각한다”며 “청진기로 진료 시 남자는 몸 앞쪽에서 듣고 여자는 몸 뒤쪽으로 듣는 방법이 있다. 거기서 단점은 등으로 들을 경우 후천적 심장병과 같은 병을 찾아내기 힘들다. 환자의 병을 정확히 진단하기 위해서 청진은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현경 기자 <mw2871@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의사협회 아청법 헌소
“의사들만 괴로워”

의사협회는 지난달 16일 상임이사회를 열어 아청법(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에 대해 헌법소원심판청구를 추진하기로 했다. 과잉입법의 논란이 있었던 아청법 헌법소원과 관련해서는 아청법 위반으로 인해 행정처분 받은 회원들의 소송을 지원한다.

성추행 혐의로 기소된 의사 A씨는 정식 재판을 포기하고 벌금 300만원의 약식명령 처분을 받은 것이 문제가 돼 의료기관 개설허가 신청이 거절당했다. 이처럼 아청법 위반에 따른 행정처분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 행정소송, 헌법소원을 동시에 제기해 지원에 나설 예정이다.

의협 송형곤 대변인은  “협회의 방침은 가능한 빨리 헌법소원에 나서는 것”이라며 “헌법소원을 통해 10년간 의료기관 개설 및 취업제한 등 아청법의 모순이 해결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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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전국 한의과대학교에는 ‘졸업준비위원회’가 존재한다. 말 그대로 졸업 준비를 위해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조직이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명목상 자발적인 가입을 독려하는 듯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강제로 가입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졸업준비위원회(이하 졸준위)는 졸업앨범 촬영, 실습 준비, 학번 일정 조율, 학사 일정과 실습 공지, 단체 일정뿐 아니라 국가시험(이하 국시) 대비를 위한 각종 자료 배포를 하고 있다. 매 대학 한의대마다 졸준위는 거의 필수적인 조직이 됐다. 졸준위는 ‘전국한의과대학졸업준비협의체(이하 전졸협)’라는 상위 조직이 존재한다. 자료 독점 전졸협은 각 한의대 졸업준비위원장(이하 졸장)의 연합체로 구성돼있으며, 매년 국시 대비 자료집을 제작해 졸준위에 제공한다. 대표적으로 ‘의텐’ ‘의지’ ‘의맥’ ‘의련’ 등으로 불리는 자료집들이다. 실제 한의대 학생들에게는 ‘국시 준비의 필수 자료’로 통한다. 국시 100일 전에는 ‘의텐’만 보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졸준위가 없으면 국시 준비 자체가 어려워진다”는 말이 정설이다. 한의계 국시는 직전 1개년의 시험 문제만 공개되기 때문에 시험 대비가 어렵기 때문이다. 국시 문제는 오직 졸준위를 통해서만 5개년분 열람이 가능할뿐더러, 이 자료집은 공개자료가 아니라서 학생이 직접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사실상 전졸협이 자료들을 독점하고 있는 셈이다. 이 자료집을 얻을 수 있는 경로는 단 하나, 졸준위를 결성하는 것이다. 졸준위가 학생들의 투표로 결성되면 전졸협이 졸준위에 문제집을 제공한다. 이 체계는 오랫동안 유지돼왔고, 학생들도 졸준위를 통해 시험 자료를 제공 받는 것이 ‘관행’처럼 받아들여왔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반드시 결성돼야만 한다는 기조가 강하다. 학생들의 반대로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시 전졸협은 해당 학교에 문제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은 모든 학생들의 가입 동의를 얻어야 가능하다. 졸준위 가입 여부는 실질적으로 선택이 아니다. 자료집은 전졸협을 통해서만 제공되기 때문에, 졸준위에 가입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는다는 인식이 학생들 사이에서 강하게 자리 잡았다. 학생들은 “문제를 얻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크다”고 말한다.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경우 현실적으로 문제집을 받아볼 수 있는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학생들의 해당 학년 학생들을 모두 가입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실제 한 대학교에서는 졸준위 결성을 위한 투표를 진행했는데 익명도 아닌 실명 투표로 진행됐다. 처음에는 익명으로 진행했지만 반대자가 나오자 실명 투표로 전환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는 반대 의견이 나오기 어렵다. 실명으로 투표가 진행되는 데다, 반대표를 던질 경우 이후 자료 배포·학년 일정에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 실명 투표로 진행 가입시 200만원 이상 납부 필수 문제는 이 졸준위 가입이 무료가 아니라는 점이다. 졸준위에 가입하면 졸업 준비 비용(이하 졸비) 명목으로 학생들에게 돈을 걷는데, 그 비용이 상당하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한 대학교의 졸비는 3차에 걸쳐 납부하도록 했는데 1차에 75만원, 2차에 80만원, 3차에 77만원 등 총 232만원 수준이었다. 이는 한 학기 등록금에 맞먹는 금액이다. 금액 산정 방식은 졸준위 가입 학생 수에 따라 결정되는데, 한 명이라도 빠지게 되면 나머지 인원의 비용 부담이 커지게 된다. 심지어 2명 이상 탈퇴하게 된다면 졸준위가 무산될 수도 있다. 이 모든 사안은 ‘졸장’의 주도 하에 움직인다. 졸장은 학년 전체를 대변하며 전졸협과 직접 소통하는 역할을 맡는다. 실제 졸장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한 명이라도 탈퇴하면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이 오갔을 정도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졸준위가 결성되면 가입한 모든 학생들은 졸준위의 통제를 받는다.<일요시사>가 입수한 한 학교의 규칙문에 따르면 졸준위는 다음과 같은 규정을 두고 있었다. ▲출석 시간(8시49분59초까지 착석 등) ▲교수·레지던트에게 개인 연락 금지 ▲지각·결석 시 벌금 ▲회의·행사 참여 의무 ▲병결·생리 결 확인 절차 ▲전자기기 사용 제한 ▲비대면 수업 접속 규칙 ▲시험 기간 행동 규칙 ▲기출·족보 자료 관리 규정 등이다. 학생들이 이 규정을 어길 시 졸준위는 ‘벌금’을 부과해 통제하고 있었다. 금액도 적지 않았다. 규정 위반 시 벌금 2만원에서 50만원까지 부과할 수 있도록 정해져 있었다.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병결이다. 졸준위는 병결을 인정하기 위해 학생에게 진단서 제출을 요구하고, 그 내용(질병명·진료 소견·감염 여부 등)을 직접 열람해 판단했다. 제출 병원에 따라 병결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공지도 있었다. 한 병원의 진단서가 획일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단체가 학생의 개인 의료 정보를 열람해 병결 여부를 자체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은 학생들 사이에서 부담과 압박으로 작용했다. 질병이 있어도 벌금이 부과될 수 있고, 병결을 얻기 위한 절차가 학습보다 더 어렵다는 말도 나왔다. 규정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면 졸준위는 대면 면담을 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 과정에서 3:1로 면담을 진행하는 등 학생이 위축될 수 있는 방식을 행하기도 했다. 전자기기 사용 불가 규칙 어기면 벌금도 이 같은 문제로 탈퇴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실제 A 대학 졸준위 전체 학번 회의에서 밝혀진 내용에 따르면 한 학생은 규정에 문제를 느껴 졸준위 측에 탈퇴를 의사를 밝혀왔다. 이 회의에서는 그간 탈퇴 의사를 밝힌 학생과의 카톡 대화 전문이 학생들에게 공개됐다. 공개된 카톡 내용에는 탈퇴 과정이 담겨있었는데 순탄하지 않았다. 졸준위 측은 탈퇴 의사를 즉각적으로 승인하지 않았고, 재고를 요청하거나 면담하는 방식으로 요청을 지연했다. 해당 학생이 다시 한번 탈퇴 의사를 명확히 밝힌 뒤에도, 졸장은 “만나서 얘기하자”며 받아주지 않았다. 심지어는 이 대화를 공개한 뒤 학우들에게 ‘졸준위에서 이탈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서약서를 받아내기도 했다. 졸준위 운영이 조직 이탈 자체를 문제로 판단하고,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압박을 가한 정황이 확인되는 대목이다. 해당 학우는 탈퇴 확인 및 권리 포기 동의서에 서명한 뒤에야 졸준위를 탈퇴할 수 있었다. 탈퇴 이후에도 갈등은 지속됐다. 목격자에 따르면 시험 기간 중, 강의실 앞을 지나던 탈퇴 학생은 졸준위 임원 두 명에게 “제보가 들어왔다”며 불려 세워졌다. 임원들은 이 학생이 학습 플랫폼 ‘퀴즐렛’을 사용한 점을 언급하며, 그 자료 안에 졸준위에서 배포한 기출문제가 포함돼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졸준위에서는 퀴즐렛에 학교 시험 내용이 있다며 탈퇴자가 보지 못하도록 사용자를 색출하기도 했다. 한편, 전졸협은 10년 전 자체 제작한 문제집으로 논란된 적이 있다. 당시 한의사 국가고시 시험문제가 학생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예상 문제집과 지나치게 유사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시험이 끝난 직후 시험장 앞에서 수험생 60여명을 상대로 참고서와 문제집을 압수했고, 국가시험원까지 압수수색해 기출문제와 대조 작업에 들어갔다. 기형적 구조 문제가 된 교재는 ‘의맥’ ‘의련’ 등 졸준위 연합체인 전졸협이 제작·배포해 온 자료들이다. 학생들은 교재에 일련번호를 붙이고 신분증을 확인한 후 배포하는 등 통제된 방식으로 유통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제보자는 “학생들이 전졸협을 통해서만 기출문제를 구할 수 있는 구조는 기형적”이라며 “국가고시를 위해 몇백만원씩 돈을 받고 문제를 제공하는 건 문제를 사고파는 것”이라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