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수록 더하는’ 미스코리아 스캔들 백태

  • 최현경 mw2871@naver.com
  • 등록 2013.10.29 09:3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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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인대회 왕관’돈이면 다 쓴다?

[일요시사=사회팀] 예나 지금이나 ‘미’에 대한 관심은 변함이 없다. 그러나 국내 최고의 미의 축제로 불리며 대중들의 관심을 모았던 ‘미스코리아 선발대회’가 점차 권위를 잃고 있다. 올해 참가자들의 ‘성형’과 ‘뒷돈’으로 잇단 파문을 일으키며 ‘돈으로 만든 미인대회’로 전락한 미스코리아 선발대회. 대중들의 눈밖에 난 이유가 단지 올해만은 아니다.




1957년 시작한 미스코리아 선발대회가 올해로 57회를 맞았다. ‘미스코리아 선발대회’는 18∼23세의 미혼 여성을 대상으로 지성과 미를 갖춘 대한민국 최고의 미인을 뽑는 행사다.

한국의 대표 미인이 선발되는 대회인만큼 80년대에는 생중계가 될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그러나 외모 지상주의와 여성을 상업화한다는 끝없는 비판에 케이블로 옮기는 수난을 겪기도 했다.

잊을만 하면 터지는 사건·사고로 50년 전통을 가진 ‘미스코리아 선발대회’의 위신이 흔들리고 있다.

지난 20일 미스코리아 선발대회에 출전한 한 참가자와 심사위원 간에 ‘뒷돈’이 오간 사실이 알려지며 논란이 됐다. 주최 측은 “일부 심사위원을 매수했음에도 불구하고 후보자가 탈락한 것은 심사가 공정하게 이루어졌음을 입증하는 것”이라는 궤변만 늘어놓아 비난을 받았다.


사실 미스코리아 선발대회의 ‘뒷돈’ 논란은 처음이 아니다.

끊이지 않는 파문에 전통·권위 무너져 
낙태사건·누드모델 경력으로 자격 박탈

SBS 드라마 <두려움 없는 사랑>, KBS <한바탕 웃음으로> <토요대행진> 등에 출연하며 인기를 누리던 90년 제34회 미스코리아 진 서정민은 미스코리아 선발대회 주최측에 돈을 건넨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불구속 기소됐다. 사건은 미스코리아 선발대회 주최사의 사업본부장과 미용실 원장 등 대회 관계자들이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되며 논란이 커졌다. 당시 미스코리아 진 서정민의 어머니는 미용실 원장인 하모씨를 통해 대회관계자 김모씨에게 2000만원을 건넸다. 이후 대회 관계자 김씨는 다른 참가자들에게도 입상조건으로 수천만원을 받아 불구속 입건되며 논란이 됐다.

93년에는 경주의 미용실 원장 박모씨가 당시 여고생인 이모양의 나이가 참가자격에 미달되자 이양의 부모와 짜고 미용실의 종업원인 손모씨의 주민등록증에 이양의 사진을 붙여 나이를 위조했다. 대회에 참가한 이양은 미스코리아 한국일보로 선발됐다. 같은해 미스코리아 선으로 당선된 허양은 고등학교를 중퇴해 학력미달로 대회에 참가할 수 없었으나 오빠의 도움으로 고교 졸업증명서를 위조해 대회에 참가한 혐의를 받았다.

당시 주최사인 한국일보사는 “담당자와 미용실 등 이른바 후견인들과의 밀착관계에서 나타난 비리로 심사위원의 선정이나 후보 선발과정에서의 부정은 발견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며 대회 운영과정과 문제점을 재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자격요건에 의한 대회의 문제점은 앞선 69년에도 있었다.

알고보니 기혼
학력도 속여


13회 미스코리아 선발대회에 서울대표로 참가한 김지연은 진에 당선됐다. 김지연의 당선 소식이 전해지자 주최 측에 “미혼이 아니다”는 항의전화가 빗발쳤다. 대회의 일부 자격인 ‘미스(미혼)’가 아니라는 제보에 따라 심사위원회에서 호적초본조사를 한 결과, 그의 결혼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또 김지연이 숙명여자대학교 가정과에 재학 중인 학생으로 발표되자, 해당 학교 측에서 “(김지연이) 입학한 사실이 없고 재학생도 아니다”고 말했다. 이에 심사위원회 측은 대회 선발규정에 따라 그의 당선을 취소하고 미스코리아 선이었던 임현정을 진으로 재선정했다. 당시 미국 마이애미비치에서 개최되는 제47회 미스유니버스대회에 참가 예정이었던 김지연은 여권수속 중 자격이 박탈됐다.

2008년 제52회 미스코리아 미 한국일보에 당선한 김희경은 대회에 출전하기 전 성인화보 촬영 사실이 밝혀져 미스코리아 자격을 박탈당했다. 김희경은 2006년 슬로우 잼의 1집 ‘Feel Good’이라는 뮤직비디오에 출연해 목욕신, 관음증, 레즈비언 성관계 묘사 등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장면을 찍었다. 특히 같은 해 속옷 차림의 성인 모바일 화보를 찍은 사진이 공개됐다. 앞선 2005년에는 서마린이라는 누드모델로 활동했다.

잊을만 하면 터지는 뒷돈 의혹
참가자-심사위원 커넥션 논란

주최사는 “대회 직후 미스코리아 미로 선발된 김희경에게 중대한 결격 사유가 있는 것으로 대회 직후 밝혀졌다”며 “본건과 관련해 심사위원들의 긴급 회의에서 만장 일치로 선발 무효화를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이어 “이 같은 결정을 존중해 김희경에게 자격을 부여하지 않기로 했다. 후보 선발과 관련해 예기치 못한 혼선이 빚어진 점에 대해 국민 여러분의 넓은 이해를 구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김희경은 한국일보로부터 자격박탈을 통보받은 당일 자신의 미니홈피에 “그동안 너무 큰 상처와 고통을 받았다. 함부로 말하는 사람들 때문에 죽고 싶을 만큼 힘들다”며 심정을 토로했다. 이어 “난 절대 누드 모델이 아니다. 화보에 대해서 주최 측은 이미 알고 있었고 괜찮다고 해서 참가한 것”이라며 “(미스코리아 수상은)자신과 싸우며 얻은 나의 결실이다. 왕관을 가져간다니. 내 명예, 자존심, 상처 무엇으로 보상 못한다. 자격박탈을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말했다.

누드, 낙태 등
타이틀 박탈

2007년 미스코리아 미였던 김주연은 ‘낙태스캔들’로 미스코리아 타이틀을 잃었다. 김주연은 대회 다음 해인 2008년 2월 축구협회 홈페이지에 ‘축구선수의 만행’이라는 제목으로 축구선수 황재원에 대한 폭로글을 올렸다. 황씨와 연인관계였던 그는 기자회견을 통해 임신사실을 밝히며 낙태를 강요받았다고 주장해 파문을 일으켰다.
낙태스캔들 문제가 커지자  미스코리아 주최사인 한국일보사는 김주연이 미스코리아 직을 물러나는 것으로 합의했다고 밝히며 홈페이지에 김주연에 대한 소개를 삭제했다. 이에 김주연은 (한국일보사와) 합의한 적이 없다며 일방적으로 사생활 문제로 자격을 박탈하겠다는 공문을 받았다고 반박했다. 그의 어머니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김주연이) 많은 공을 들여 미스코리아가 됐다. 사생활 문제 때문에 미스코리아 자격을 박탈한다는 건 말도 안 된다. 너무 억울하다”며 “황재원과의 소송문제를 일단 마무리하고 만약 주최 측이 계속 자격발탁을 밀어붙인다면 소송을 불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스코리아 자격을 박탈당한 그는 이후 미니홈피를 통해 농구선수 이지운과의 열애를 공개해 화제를 모았다.

점수시스템 오작동
재심사로 신뢰잃어

98년 미스코리아 선발대회에서는 투명성을 위해 처음으로 도입된 컴퓨터 점수집계시스템이 도입됐다. 최종 8명이 진출하는 2차 선발과정에서 9명의 심사위원 중 1명의 점수가 누락돼 3, 4위였던 참가자들이 탈락하는 사고가 발생하자 이를 생중계한 MBC와 주최 측인 한국일보사에 항의 전화가 빗발쳤다. MBC와 한국일보사는 사과문을 발표하며 대회 5일 후 방송 중계없이 현장에서의 재심사를 통해 미스코리아를 선발했다. 대회의 신뢰도가 하락하며 당시 미스코리아 진의 최지현 또한 대중들로부터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 이듬해 트리니다드토바고에서 열린 미스유니버스 선발대회에도 참가한 최지현은 이후 MBC <특종 오늘의 토픽>, SBS <도전 100곡> <밀레니엄 특급> 등의 MC로 자리를 잡아가며 2010년 영화 <꿈은 이루어진다>에 첫 주연을 맡았다.

결혼 사실 숨기고 진 당선
정치인 성상납 요구 폭로도

최지현과 함께 같은해 미스코리아 미로 선정된 이정민은 KBS <서세원 쇼>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 SBS <기쁜 우리 토요일> 등에 출연하며 뛰어난 말솜씨로 주목을 받았다.


한 정치인으로부터 성상납 요구를 받은 후 연예계에 회의를 느껴 방송출연을 중단했다고 고백한 그는 며칠 후 기자회견을 통해 사실이 아니라고 입장을 번복해 논란이 됐다. SBS <야인시대>로 복귀할 당시 그는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방송사 간부 A씨로부터 DJ 제의를 받으며 “‘정치인 ㅇㅇㅇ가 너를 만나고 싶어한다. 몸으로 먹고 사는 애가 한둘이냐’는 말을 들었다”고 고백했다.

‘성상납 요구’ 발언이 논란이 되자 그는 며칠 후 기자회견을 통해 소속사의 허위 보도자료라고 해명했다. 이에 해당 소속사는 “그(이정민)와 사전에 합의한 것이다”며 반박을 했고 전속 계약 위반 및 명예훼손 등으로 법적 대응하며 대중들로부터 따가운 시선을 받았다.

특혜 논란에
유력후보 무관

2013년 미스코리아 선발대회에 배우 곽가현의 참가는 공정성 논란을 가져왔다. 이가현이라는 예명으로 배우활동을 한 그는 MBC 드라마 <마의> KBS 드라마 <결혼해주세요> <화평공주 체중감량사> 등에 출연한 경력이 있었다. 곽가현이 2013년 미스코리아 서울 진으로 선발되자 연기경력이 특혜로 작용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에 주최 측은 “미스코리아 선발대회는 참가자격에 있어서 나이, 학력, 출전 지역 연고, 결혼여부 등에 문제가 없을 경우 참가에 제한을 받지 않는다”며 “따라서 곽가현 씨의 경우 위 자격에 문제가 되는 경우가 아니기 때문에 ‘2013 미스서울 선발대회’에 참가규정상 문제가 되는 부분은 없다”고 해명했다.

본선 전부터 논란을 빚은 그였지만 미스코리아 진의 가장 유력한 후보 중 한 명으로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그러나 서울 진인 그가 모든 상에서 고배를 마시며 무관으로 대회를 마치자 일부 네티즌들은 온라인 게시판에 미스코리아의 심사 기준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다.


최현경 기자 <mw2871@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러시아 이색 미인대회
영하 20도에 수영복 입고…

러시아 시베리아 도시 노보시비르스크에서 ‘미스 눈 유니버스 미인대회’가 개최됐다. 올해 처음으로 개최된 이 대회는 섭씨 영하 20도의 강추위에서 수영복 차림의 참가자들이 포즈를 취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노보시비르스크주 주정부가 주최한 ‘제1차 국제 눈 포럼’ 행사 중 하나인 이 대회는 겨울이 긴 나라들의 쾌적한 생활환경 조성 문제를 다루기 위해 개최됐다. 대회 개최자인 타티야나 페티소바는 러시아 매체와 인터뷰에서 “우리 도시에는 바다도, 대양도 없다. 당연히 비키니를 입은 미녀들을 찍을 기회도 없었다. 그래서 이런 식으로 사진을 찍는다면 선풍적인 인기를 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대회를) 강행했다”고 설명했다.

러시아 30개 지역 예선을 통과한 20명의 참가자들만이 ‘미스 눈’을 뽑는 결선대회에 출전했다. 한 참가자는 “이가 부딪히는 소리가 나는 것이 추위 때문인지 긴장해서 그런 것인지 모르겠어요. 그래도 마음에 들었고 재미있었어요. 더 오래 서 있을 수도 있었을 거예요”라고 말했다. 본선 대회에서 ‘미스 눈’으로 선정되면 모델 회사와 전속 계약을 맺고, 태국에서 열리는 ‘세계 미스 관광 미인대회’에 러시아 대표로서 참가자격이 주어진다. 시베리아 도시 톰스크 국립대학 법대 1학년에 재학 중인 블라디슬라바 베르네르가 우승을 차지했다. 

출전만 해도 미스코리아?

본선 입상 7명만 ‘진짜’

대회에 출전만 해도 ‘미스코리아’호칭을 쓸 수 있을까. 이를 명확하게 짚은 절도 사건이 눈길을 끈다.

2011년 온라인 채팅으로 만난 남성이 샤워를 하는 동안 돈을 훔쳐 달아난 박모씨와 이를 도운 석모씨가 특수절도 혐의로 구속됐다. 박씨는 2009년, 2010년 두 차례 미스코리아 지역 예선에서 입선돼 ‘미스코리아 지역예선 후보자’의 경력이 있었다. 이에 일부 매체들은 ‘성매매로 남성을 유인한 미스코리아 구속’, ‘미스코리아 출신 20대 절도행각’ 등의 제목으로 박씨의 미스코리아 출전 경력에 초점을 맞춰 사건을 보도했다.

박씨의 미스코리아 경력에 초점이 맞춰지자 미스코리아 선발대회 주최측은 “미스코리아 본선 진·선·미 입상자 7명에게만 ‘미스코리아’호칭을 쓸 수 있다. 지역 예선자는 미스코리아 출신이 아니다”며 “박씨의 프로필과 사건경위를 검토해 미스코리아 대회에 유·무형의 타격을 줬다고 판단되면 지역 예선 수상경력도 박탈할 수 있다”고 입장을 밝혔다.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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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