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인물> 축구화 벗는 이영표

  • 이광호 khlee@ilyosisa.co.kr
  • 등록 2013.10.28 11:5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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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축구 빛낸 초롱초롱 ‘초롱이’

[일요시사=사회팀]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 ‘초롱이’ 이영표(36·밴쿠버 화이트캡스)가 은퇴했다. 한국 축구를 대표하는 부동의 왼쪽 풀백으로 활약했던 레전드. 그가 축구화를 벗고 제2의 인생을 설계한다.




한국 축구를 사상 처음으로 월드컵 16강에 올려놓은 박지성과 거스 히딩크 감독의 화끈한 포옹, 이탈리아를 침몰시킨 안정환의 반지 세리머니. 2002년 한일월드컵 하면 떠오르는 감격의 순간이다. 한국 축구의 역사를 바꿔놓은 장면은 모두 이영표의 발에서 비롯됐다.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이자 한국 축구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초롱이’ 이영표가 정든 그라운드를 떠난다.

정든 그라운드
떠나는 ‘초롱이’

미국 메이저리그사커(MLS) 밴쿠버 화이트캡스는 지난 23일(한국시간)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이영표가 이번 시즌을 마지막으로 은퇴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영표는 구단 홈페이지를 통해 “어린 시절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배웠다.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며 “좋은 팀에서 좋은 사람들과 훌륭한 마무리를 할 수 있어 기쁘다”고 은퇴 소감을 밝혔다.

강원도 홍천에서 태어난 이영표는 안양공고와 건국대를 졸업했다. 초롱초롱 반짝이는 눈을 묘사해서 흔히 ‘초롱이’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빠른 스피드로 인하여 ‘바람’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2000년 안양 LG(현 FC서울) 유니폼을 입고 프로에 데뷔했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 대표팀의 주축 멤버로 뛰었던 이영표는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왼쪽 윙백을 맡아 맹활약을 펼쳐 4강 진출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 조별리그 포르투갈전에서 터진 박지성의 골과 한국을 8강으로 이끈 이탈리아전 안정환의 헤딩 골을 어시스트해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한일월드컵을 통해 존재감을 드러낸 이영표는 히딩크 감독의 부름을 받고 네덜란드 에인트호벤에 입단해 유럽 무대를 밟았다. 이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토트넘과 독일 분데스리가 도르트문트, 사우디아라비아의 알 힐랄을 거쳐 2011년 12월 MLS에 진출했다.

이영표는 2006년 독일 월드컵과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도 출전해 월드컵 본선 무대를 세 차례나 경험했다. 통산 A매치 127경기에서 뛰었다.

이영표는 지난해 은퇴와 현역 연장을 놓고 고민하다 밴쿠버 구단의 요청을 받아들여 현역 생활을 1년 더 연장했다.

그라운드 떠나 행정가로 ‘제2의 인생’설계
3번 월드컵 본선 밟아…A매치 127경기 출전

이영표의 현역 마지막 경기는 28일 열리는 콜로라도와의 정규리그 홈 경기다. 이영표는 “내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가 될 것 같다”고 밝혔다.

밴쿠버 화이트캡스 마틴 레니 감독(38)은 은퇴를 결정한 이영표(36)를 단 한 단어로 표현했다. 미국프로축구(MLS) 공식 홈페이지에 따르면 그는 한국시간 23일 “이영표는 전설이다”라고 말했다.


레니 감독은 “이영표는 클럽 역사상 가장 훌륭한 선수 중 한 명”이라며 “다른 선수들에게 프로 정신과 성공의 의미를 일깨워준 진정한 롤 모델이었다”며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웠다.

한편, 축구 행정가를 꿈꾸는 이영표는 은퇴 이후에도 밴쿠버에 머물며 영어와 구단 행정을 배우고, 캐나다의 대학에서 스포츠마케팅 공부를 할 것으로 알려졌다.

필드서 써간
조용한 전설

데뷔 시절부터 따라다녔던 그의 별명 ‘초롱이’. 지능적인 선수라는 평 덕분이다. 은퇴 직전에는 나이를 잊은 듯한 체력을 과시해 ‘철인’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한국 축구 사상 이처럼 커리어 내내 호평받은 선수는 드물다.
이영표는 누구보다도 행복한 커리어를 쌓았다. 그만한 실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왕성한 활동량, 영리한 지능, 양발을 고루 사용하는 풀백, 풍부한 국제 경험 등을 앞세워 아시아는 물론이고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수비수로 명성을 떨쳤다. 한때 튼햄 핫스퍼 시절 공격력이 다소 부족하다는 인상을 주기도 했으나 이만한 완성도를 지닌 선수를 보기란 흔치 않다는 점에서 전설이라는 말이 과언은 아니다.

이영표의 활약상 중 백미는 역시 2002 한·일 월드컵과 네덜란드 PSV 에인트호번 시절 경험한 UEFA(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UCL)를 꼽을 수 있다. 2002 월드컵 당시 이영표는 2개의 도움을 올리며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한국의 4강 신화에 큰 공을 세웠다. 이영표는 조별 라운드 포르투갈전 후반 25분 왼쪽 측면에서 오른발로 감아올린 크로스로 월드컵 16강 돌파구를 뚫은 박지성의 결승골을 어시스트했다. 이어진 16강 이탈리아전에서는 1-1로 팽팽히 맞서던 연장 후반 12분 마찬가지로 왼쪽에서 오른발로 크로스를 올려 안정환이 골든골을 터뜨릴 수 있도록 했다. 가장 극적 순간에 가장 필요한 득점이 터질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당시 활약상을 높게 평가받아 PSV 에인트호번에 입단한 후에도 이영표는 존재감 있는 플레이를 펼쳤다. 박지성이 유럽 진출 초기 적응에 애먹으며 어려움을 겪었던 반면, 이영표는 흔들림 없는 플레이를 펼쳐 콧대 높은 현지 팬들로부터 박수를 이끌어냈다. 특히 2004-2005 UCL 준결승 2차전에서 당시 세계 최고 오른쪽 풀백 카푸를 완벽하게 무너뜨린 후 올린 크로스로 필립 코쿠의 동점골을 이끌어 내기도 했다. 이 장면은 앞서 굳게 잠긴 AC 밀란의 골문을 열었던 박지성의 골과 더불어 당시 유럽을 뒤흔들었던 PSV 에인트호번의 돌풍을 설명함에 있어 빠지지 않는 장면이다.

PSV 에인트호벤에서 보인 활약상을 인정받아 한 단계 높은 무대, 그것도 전통 강호로 평가받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토튼햄 유니폼을 입었다. 리버풀을 상대한 데뷔전에서 현란한 오버래핑으로 상대 측면을 뒤흔드는 플레이를 펼쳐 경기 최우수 선수로 선정되는 등 강렬한 인상을 심었다. 이후 마틴 욜 감독의 신뢰 아래 입단 초기 주전 왼쪽 풀백으로서 기복 없이 탄탄한 수비를 펼쳐 실력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벤와 아수-에코토, 가레스 베일의 가세 이후 팀 내 입지가 크게 흔들리기도 했다. 특히 후안데 라모스 감독 시절에는 거의 전력 외 취급을 받는 등 아픔을 겪기도 했다.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신화 주역
지능적인 플레이에 철인체력 자랑

지금도 팬들 사이에서 논란이 되는 이탈리아 세리에A AS 로마 이적 거부 사건도 이때 일어났다. 돌이켜 보면 토튼햄 시절은 좋았던 순간과 나빴던 순간이 공존했다.

하지만 독일 분데스리가 도르트문트 이적이라는 영리한 거취 판단으로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했다. 2008-2009시즌 위르겐 클롭 도르트문트 감독은 간판 수비수였던 데데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풍부한 경험을 지닌 이영표를 대체자로 영입했다. 당시 이영표는 22경기를 뛰며 클롭 감독의 기대에 부응했다. 도르트문트는 성실한 플레이로 데데와 마르셀 슈멜처 사이의 연결 고리 구실을 충실히 한 이영표의 플레이에 만족감을 드러냈고, 이영표가 국가대표로서 센추리 클럽(A매치 100경기 출장)에 가입하자 하프타임을 통해 성대하게 축하하는 행사를 열기도 했다.

이영표는 설기현과 더불어 한국 선수들의 중동 무대 진출에 교두보를 놓은 선수이기도 하다. 이영표는 2009년부터 사우디아라비아 최고 명문 알 힐랄에서 두 시즌을 뛰며 통산 64경기에서 1골을 기록했다. 빈틈없는 수비와 날카로운 오버래핑으로 왼쪽 터치라인을 장악, 알 힐랄 팬들에게서 슈퍼스타로서 추앙받는 야세르 알 카타니 못지않은 인기를 끌었다. 당시 알 힐랄의 홈페이지에서 가장 많이 살필 수 있었던 선수 중 하나가 바로 이영표였다. 이 때문에 알 힐랄은 묵직한 연봉을 제시하며 이영표와 재계약을 추진했다. 하지만 이영표는 새로운 도전을 위해 재계약을 포기했다.

알 힐랄 퇴단 후 은퇴할 것이라는 설이 파다했으나 이영표는 새로운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FC 서울 클럽 하우스에서 후배 선수들과 몸을 만들더니 밴쿠버 화이트캡스에 전격 입단한 것이다. 밴쿠버에서도 뛰어난 기량을 뽐냈다. 이미 적잖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입단하자마자 대부분의 경기에서 주전으로 출전하며 수비진의 한 축을 책임졌다. 지난해 3월에는 22경기 연속 풀타임으로 출장해 현지 언론으로부터 ‘철인’이라는 호칭까지 얻었다. 가히 이 정도면 밴쿠버의 하비에르 사네티급이라 해도 무방하다.


이영표는 동료 선수들에게서도 대단한 신뢰를 받았다. 지난 3월에는 시즌 아웃을 당한 미국 대표 수비수 제이 데메리트를 대신할 주장으로 추대되기도 했다. 이영표가 한사코 사양해 주장으로 뛰는 모습을 볼 수는 없었으나 현지에서 이영표가 얼마나 크나큰 믿음을 얻는 선수였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기실 수비수로서, 더군다나 거칠디 거친 유럽에서 체격적으로 열세인 아시아 선수가 이런 커리어를 밟기란 정말 어렵다. 하지만 이영표는 특유의 성실함과 꾸준한 경기력을 인정받아 스스로 세계적 명성을 쌓을 토대를 마련함은 물론이며 현재 아시아 선수들의 유럽 진출 러시의 돌파구까지 만들어 냈다.

부르는 곳이 많았고 떠남을 결정할 때 아쉬워하는 이들도 많았다. 스포트라이트가 상대적으로 덜 미치는 포지션에서도 온전히 자신의 존재감을 떨친 선수였다.

이영표의 아성
누가 뛰어넘나

이영표는 K리그 안양 LG 치타스(당시), 네덜란드 에레디비지에 PSV 에인트호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토튼햄 핫스퍼, 독일 분데스리가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등 프로 생활 중 남긴 족적도 대단하지만 국가대표팀에서 이룬 위상은 그야말로 대단하다. 1999년 코리아컵에서 처음 태극 마크를 단 이영표는 2002 한·일- 2006 독일- 2010 남아공 등 세 번의 월드컵을 거치고 2011 카타르 아시안컵을 마지막으로 대표팀에서 은퇴했다. 12년간 이영표는 무려 127번의 A매치에 출장해 홍명보(136회)·이운재(132회)에 이어 한국 역대 A매치 최다 출장 선수 3위에 이름을 올렸다.

왼쪽 터치라인에서 이영표가 보인 존재감은 대단했다. 악착같은 수비로 공격수들에게 공포의 대상으로 자리매김했고, 공격 시엔 특유의 헛다리 개인기와 칼날 같은 크로스로 측면에서 활력을 불어넣었다.


이런 이영표를 뛰어 넘기 위해 많은 선수들이 도전장을 내밀었다.

가장 먼저 이영표의 후계자로 떠오른 이는 김동진(항저우 그린타운)이었다. 이영표와 똑같이 2000년 안양 LG 치타스에서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한 김동진은 2003년 12월 동아시아 선수권대회 홍콩전에서 A매치 데뷔전을 치른 뒤, 줄곧 이영표의 백업 멤버로 활약했다. 좋은 체격 조건과 과감한 슈팅으로 종종 골을 터뜨리기도 한 김동진은 이영표 은퇴 시 제1옵션으로 여겨졌으나 2010 월드컵 이후 컨디션 하락으로 더는 발탁되지 못했다.

김치우(FC 서울)도 종종 이영표의 후계자로 거론됐다. 2010 월드컵 예선전에서 ‘허정무호의 황태자’라 불리며 두터운 신임을 받았던 김치우는 왼쪽 측면 미드필더까지 소화 가능할 만큼 뛰어난 공격력을 갖춘데다 빼어난 프리킥 능력도 보유하고 있어 더욱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잦은 부상으로 컨디션 난조에 시달렸고 결국 이영표를 넘지 못하고 말았다.

철벽수비에 헛다리
“영원한 태극전사”

2010년엔 J리그 주빌로 이와타에서 뛰던 박주호도 슬슬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2010년 1월 18일 열린 핀란드와 친선 경기에서 데뷔전을 치른 박주호는 안정감 있고 깔끔한 플레이로 주목받았다. 이후 능력을 인정받은 박주호는 스위스 바젤을 거쳐 분데스리가 마인츠 05에 닿을 때까지 종종 대표팀 명단에 이름을 올리며 ‘이영표 후계자’ 타이틀을 향해 천천히 전진하고 있다.

2011년 이영표 은퇴 직후 바로 대표팀에 이름을 올린 어린 선수들도 있었다. 바로 윤석영(퀸즈 파크 레인저스)과 홍철(수원 삼성)이었다. 1990년생 동갑내기인 둘은 각기 다른 장점으로 자신이 ‘포스트 이영표’라 어필했다. 엄청난 체력을 자랑하는 윤석영은 수비 부분에서 강점을 드러냈고, 날카로운 왼발과 빠른 주력을 자랑하는 홍철은 공격형 풀백으로서 가능성을 보였다. 그러나 완성형에 가까운 이영표를 따라잡기에 이들이 보인 임팩트는 부족했다.

이후에도 박원재(전북 현대)·최재수(수원 삼성) 등이 번갈아 가며 이름을 올렸으나 계속 발탁되진 못했고, 2013년에 이르러 또다시 새로운 후계자가 거론되기 시작했다. 올 6월 한국 A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홍명보 감독은 김민우(사간 도스)와 김진수(알비렉스 니가타)를 발탁해 시험해 봤고, 김진수가 좋은 평가를 받았다.

2013 EAFF(동아시아축구연맹) 동아시안컵 호주전서 데뷔 무대를 가진 김진수는 날카로운 크로스와 높은 축구 지능을 바탕으로 한 영리한 움직임으로 주목받았다. 김진수는 지난 9월 치른 크로아티아·아이티와 친선 경기에선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지만, 10월 브라질·말리와 치른 A매치서 다시 한 번 모습을 드러내 좋은 활약을 펼쳐 주가를 높이고 있다.

아름다운 은퇴
끝 아닌 시작

앞서 언급한 선수들 모두가 각자 장점을 가지고 있는 훌륭한 왼쪽 측면 수비수다. 그러나 태극 마크를 달고 나선 경기에서 누구도 이영표만큼 든든한 모습을 보이진 못했다. 또 누구도 이영표만큼 꾸준한 활약을 펼치지 못했다. 앞으로 이영표의 아성을 뛰어넘을 선수는 누가 될 것인가.

이광호 기자<khlee@ilyosisa.co.kr>

 

 

[이영표는?]

▲강원도 홍천 출생
▲안양공고 졸업
▲건국대 정치외교학 학사
▲안양 LG 치타스
▲시드니올림픽 축구 국가대표
▲컨페더레이션스컵 국가대표
▲한일 월드컵 국가대표
▲PSV 에인트호벤(네덜란드)
▲토튼햄 핫스퍼 FC(잉글랜드)
▲독일 월드컵 국가대표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독일)
▲알 힐랄 FC(사우디아라비아)
▲남아공 월드컵 국가대표
▲AFC 아시안컵 국가대표
▲밴쿠버 화이트캡스 FC(캐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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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립무원’ 여야 수장 동병상련

‘고립무원’ 여야 수장 동병상련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당내 강경파의 반발로 인해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동병상련을 느낄 법한 두 사람은 여야 지도부 회동이라는 전략적 제휴에 가까운 선택으로 각자의 어려움을 풀고 정국에 대응할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8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용산 대통령실로 초청했다. 오찬은 약 1시간 동안 진행됐고, 이 대통령과 장 대표는 30분 동안 비공개 영수회담을 진행했다. 유튜브 권력자? 이 대통령과 장 대표는 여야의 수장이지만, 각자의 이유로 자신의 진영에선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다. 두 사람의 회담은 이 때문에 더욱 주목받았다. 정 대표는 지난달 26일 장 대표가 선출된 이후 줄곧 ‘무시’ 전술로 대응했다. 정 대표는 장 대표 선출 여부와 관계없이 국민의힘에 대해 정당해산심판 청구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강공 기조를 잇고 있다. 이 대통령은 이런 상황에서 여야 지도부 회동과 영수 회담을 진행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이 대통령이 장 대표와 만난 것 자체가 고립무원에 처한 이 대통령의 상황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이 대통령이 겪는 어려움은 여당인 민주당과의 관계로부터 시작된다. 이 대통령과 민주당의 관계에 대해선 “대통령 위에 방송인 김어준씨가 상왕으로 군림한다”는 설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이 대통령은 문재인 전 대통령 등 친문(친 문재인) 진영과 오랜 갈등 관계에 있었고 “민주당에서 세가 약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김어준 상왕설’은 이젠 진보 성향 언론에서도 공공연하게 거론한다. <주간경향>은 지난 8일 ‘김어준 상왕설’을 다루면서 “김씨가 비판·견제가 어려운 신성불가침 영역이 됐다”는 민주당 내부 반응과 “김씨는 민주당의 고정 상수고, 당의 일부 기능이 김씨의 유튜브 채널로 이관됐다”는 일부 정치평론가 반응도 소개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위로 알려진 민주당 곽상언 의원은 지난 7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유튜브 권력이 정치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면서 김씨를 강하게 비판했다. 다음 날엔 “저는 ‘유튜브 권력자’에게 머리를 조아리면서 정치할 생각은 없다”며 “이 방송에 출연하면 공천받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얘기를 들은 기억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노 전 대통령은 지난 2002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조선일보>는 민주당 경선에서 손을 떼라’는 의견을 밝히셨다”고 강조했다. 곽 의원은 곧바로 반격을 받았다. 같은 당 최민희 의원은 지난 9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곽 의원을 일컬어 ‘부화뇌동 국회의원님’이라고 지칭하면서 “자존감을 좀 가지시라. 부끄럽지 않느냐”고 비판했다. 최 의원이 곧바로 반격한 것은 역설적으로 김씨와 이 대통령의 위상을 확인시켜 줬다. 이 대통령은 현재 각종 여론조사에서 50%가 넘는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검찰 해체 ▲각종 외교 현안 ▲조국혁신당 성범죄 의혹 등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위에서 누르고 옆에서 치받고 이 대통령 앞에 수북한 난제 민주당에선 정 대표가 검찰개혁 관련 공세를 주도한다. 현재 진행 중인 3개의 특검(내란·김건희·채 상병)과 관련해 수사 기간·범위·인력 대폭 확대와 관련 재판 녹화 중계를 추진하는 특검법 개정안을 추진하고 있다. 개정안은 이미 국회 법사위를 통과했고, 국민의힘은 헌법재판소에 효력정치 가처분을 신청했다. 검찰을 겨냥해선 “추석 전 검찰을 해체하고, 중대범죄수사청(이하 중수청)과 공소청을 설치하겠다”는 방침을 유지하고 있다. 사법부를 겨냥해선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하고 있다. 민주당과 이재명정부 내부에선 중수청의 소속 부처를 놓고 이미 갈등이 있었다. 친명(친 이재명)계 좌장으로 알려진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지난달 27일 “중수청을 행정안전부에 설치하면 민주적 통제가 어려워질 수 있다”면서 사실상 ‘법무부 설치’를 주장했다. 그러자 친민주당 진영은 정 장관에게 강하게 반발했다. 그동안 친민주당 성향을 강하게 드러냈던 임은정 서울동부지검장은 지난달 29일 검찰개혁 공청회에서 “정 장관도 검찰에 장악돼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검찰개혁 후속 법안을 마련하는 정부 기구 구성과 관련해 정 대표와 대통령실 우상호 정무수석이 크게 언쟁을 했다”는 설까지 불거졌다. 장 대표는 이 대통령과 만났을 당시 공개 발언에서 특검 연장·특별재판부 설치와 관련해 이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요청했다. 장 대표가 거부권 행사를 요청한 명분은 ‘견제와 균형 붕괴’였다. 장 대표는 이어진 비공개 회동에서도 “오랫동안 되풀이된 정치 보복 수사를 끊어낼 수 있는 적임자는 이 대통령”이라면서 특검 연장·특별재판부 설치에 강한 우려와 유감의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장 대표에게 뚜렷한 답변을 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이 대통령의 반응을 놓고 “이 대통령이 제어하지 못하는 상황일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정 장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중수청 소속 부처도 행정안전부로 결정됐다. 이에 대해서도 “이 대통령이 당의 의사를 이겨내지 못한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지난 4일(현지시각) 미국 조지아주에서 발생한 현대차·LG 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의 한국인 노동자 300여명 구금 사태도 이 대통령에게 비판의 화살이 집중되는 계기가 됐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5일(현지 시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진행했다. 그로부터 불과 10일 후 발생한 사태였다. 안팎 모두 꼬인 실타래 한미 양국은 정상회담 후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펀드를 조성하기로 합의했고, 미국이 한국에 부과하는 관세율은 15%로 확정했다. 일본은 5500억달러 규모의 펀드를 조성하기로 한 후 15% 관세율을 받아냈다. 그런데 일본의 관세율 15%가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이 내려지면서 명문화된 것과 달리, 우리는 아직 문서를 받아내지 못했다. 미국 정부는 “3500억달러 투자처를 구체적으로 명시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노동자 300여명이 구금된 구체적인 이유는 이들이 최대 90일 동안 단기 체류만 할 수 있는 무비자 전자여행허가 제도를 통해 입국해 근무한 것이었다. 단기 체류 비자로 입국해 근무한 이상 불법체류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까지 진행한 이 대통령에겐 “미국을 왕래하는 국민의 비자 문제에조차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이냐”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커진다. 일본과의 외교도 난항에 부딪힐 가능성이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3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진행한 후 17년 만에 공동언론발표문을 채택했다. 정상회담도 그만큼 훈훈한 분위기로 진행됐다. 하지만 낮은 지지율과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의 지난 7월 참의원 선거 패배로 인해 사퇴 압력에 시달리던 이시바 총리는 지난 7일 결국 사퇴를 선언했다. 후임 총리 후보로는 자민당 다카아치 사나에 의원과 고이즈미 신지로 농림수산상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이시바 총리와 고이즈미 농림수산상은 자민당 내에서 파벌 색이 짙지 않아 비교적 온건한 정치 성향을 지닌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다카이치 의원은 강경한 우익 포퓰리스트였던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알려졌다. 다카이치 의원은 ▲야스쿠니 신사 참배 ▲헌법 개정 ▲재무장 추진 ▲아베노믹스 계승 등 아베 전 총리와 거의 비슷한 정치색을 드러냈다. 지난 1994년엔 <히틀러 선거전략>이란 책의 추천사를 쓴 것으로 알려졌다. 이 책엔 “단기간에 여론을 모아 권력을 빼앗았다”거나 “긴급조치로 적을 섬멸했다”는 등의 독일 나치의 선거전략을 높이 평가하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설득할 수 없는 유권자는 말살한다”는 등 작전을 일본 정치인의 선거 승리 전략으로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노 전 대통령은 자신에게 호의적인 국내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고의로 신사 참배를 했던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일본 총리와 상당한 갈등을 빚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민주당 소속임에도 강경한 우익 성향으로 유명했던 노다 요시히코 전 총리와 갈등하면서 지난 2012년 전격적으로 독도를 방문하는 강수를 뒀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재임 중 아베 전 총리와 상당한 갈등을 빚으면서 대중국 외교에 공들였다. 다카이치 의원이 후임 총리가 되면, 이 대통령도 전임 대통령들처럼 상당한 갈등을 빚을 가능성이 있다. 혁신당 나비효과 게다가 우원식 국회의장은 지난 3일 중국 전승절 80주년 경축 행사에 참석한 것으로 보수 성향 유권자들에게 큰 비판을 듣고 있다. 우 의장은 행사에 함께 참석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짧게 인사를 나눴다. 반면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김 위원장을 2번이나 불렀음에도 아무 반응을 얻지 못해, 이 역시 보수 성향 유권자들로부터 큰 비판을 받고 있다. 이 대통령은 대통령 취임 이후 친서방 외교에 유화적인 방향으로 선회하려고 했다. 하지만 민주당의 전통적 방향과 충돌하는 상황으로 해석되고 있다.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 내부에서 불거진 성추행·성희롱 사건도 이 대통령에게 불리하게 전개될 가능성이 있다. 혁신당은 조국 비상대책위원장 등 친문 핵심 일부가 창당했다. 이 사건은 혁신당 강미정 전 대변인이 탈당하면서 폭로해 외부에 알려졌다. 가해자로 지목된 김보협 수석대변인은 문 전 대통령과 친분이 돈독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우석 전 사무부총장은 조 비대위원장이 민정수석이었을 당시 민정수석실 행정관을 지냈다. 조 비대위원장은 그동안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이 여파는 민주당과 이 대통령에게 번지고 있다. 기성세대 남성의 위선과 운동권 특유의 성 문화 논쟁으로 확대되면서,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범죄 사건까지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으로선 친문계와 빚고 있는 광범위하면서도 조직적인 엇박자가 국정에도 악영향을 미치는 상황에서 그 뒷감당까지 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장 대표도 이 대통령 못지않은 고립무원 상황에 직면했다. 시작은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로부터도 신임받았던 김도읍 의원을 지난 1일 정책위의장으로 임명한 것이었다. 그러자 “장 대표 당선에 큰 공을 세웠다”고 자부하던 강경 보수 성향 유튜버들이 크게 반발했다. 특히 고성국 ‘고성국TV’ 대표는 지난 2일 “내년 지방선거에서 승리하려면, 국민의힘이 지자체장 30석을 자유통일당 등 자유 우파 정당 4개에 양보하면 된다”고 요구했다. 강경 보수 공세 친한 숙청 시동 민주당의 각종 입법 공세 방어 등 대여 공세 수단도 마땅치 않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노란봉투법 통과를 막기 위해 필리버스터를 동원했지만, 큰 의미를 두기 어려웠다. 노란봉투법은 국민의힘의 필리버스터 종료 직후 본회의를 통과했다. 국민의힘이 할 수 있는 일은 본회의 불참밖에 없었다. 3개의 특검은 이미 국민의힘을 사정권에 두고 있다. 현실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은 실질적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장외 집회밖에 없다. 장 대표는 강경한 대여 공세를 약속하면서 당 대표에 당선됐지만, 강경한 대여 공세를 할 수 있는 현실적인 수단은 처음부터 없었다. 따라서 여야 지도부 회동은 장 대표에겐 정치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기회였다. 최소한 “이 대통령에게 우리의 요구를 가감 없이 전달했다”고 자부할 만한 명분이 마련된 것이었다. 내부 사정도 녹록하진 않다. 장 대표에겐 지난해 12월 결별한 친한계(친 한동훈)와의 내부 투쟁도 숙제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다만 장 대표가 당선된 것 자체가 이미 친한계엔 큰 타격이었다. 아울러 친한계엔 ▲김종혁 전 최고위원 ▲신지호 전 사무부총장 ▲윤희석 전 대변인 ▲송영훈 전 대변인 등 국민의힘을 대표해 각종 시사프로그램 패널로 출연하는 인사들이 다수 소속돼있었다. 이들은 대체로 친한계의 이해관계를 각종 방송에서 대변했다. 장 대표는 지난 7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서 “방송에서 당의 의견을 가장해 당에 해를 끼치는 발언을 하는 것도 해당 행위”라며 “국민의힘을 공식적으로 대변하는 인물임을 알리는 패널 인증제도를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장 대표의 방침은 “국민의힘 몫 토론자로 출연해 친한계를 대변하는 인사들을 방송에서 솎아내려는 것”이라는 취지로 해석된다. 이처럼 장 대표는 당내에서 양면 전선을 펼쳐놨기 때문에 현재 상황이 녹록지 않다. 강도 높은 내부 투쟁을 진행하는 이 대통령과 장 대표로선 여야 지도부 회동이 동병상련에 가까운 전략적 제휴였을 가능성이 있다. 장 대표는 비공개 회담에서도 국민의힘의 의견을 모두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도 뚜렷한 확답만 하지 않았을 뿐, 대통령 당선 이전 강성 이미지를 중화하려는 듯 유화적으로 대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장 대표가 이 대통령과 정 대표의 불화를 이용하려고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선 “장 대표도 내부 반발이 있고, 강도 높은 내부 투쟁을 진행해야 해서 제 코가 석 자”라고 보고 있다. 아울러 이 대통령과 장 대표는 그동안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나름대로 중도를 지향하고자 강경파와 투쟁해야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당분간 이들이 전략적 제휴를 맺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정 대표는 이 대통령과 장 대표의 회담 분위기를 무색하게 하듯이 다음 날인 지난 9일 진행된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내란 청산은 정치 보복이 아니”라며 “국민의힘이 내란 세력과 단절하지 못하면, 위헌정당 해산심판 대상이 될지도 모르니 명심하라”고 경고했다. 수북한 현안들 ‘내란’은 민주당이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을 공격하는 용도로 사용하는 일반 명사가 됐다. 정 대표는 대표적인 당내 강경파로서, 국민의힘에 대한 강경한 태도가 정치적 상징이 된 지 오래다. 이 대통령과 장 대표가 마주 보고 성과를 낼수록 정 대표는 설 자리를 잃는다. 정 대표의 제동은 “고립무원에 처한 여야 수장이 서로에게 동병상련을 느껴도 큰 의미가 없을 것”이란 경고 메시지로 해석될 수 있다. 바퀴들이 삐걱대는 사이 현안은 더욱 수북이 쌓이고 있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