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모 성폭행 사건 '기막힌 전말'

  • 강현석 angeli@ilyosisa.co.kr
  • 등록 2013.10.15 15:10:24
  • 댓글 0개

아들이 엄마를…성욕에 눈먼 패륜아들

[일요시사=사회팀] 성폭력의 완전한 사각지대는 없다. 가족 안의 누군가가 가해자가 되고 피해자가 되는 일도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심지어는 성욕에 눈이 멀어 아들이 친모를 성폭행하는 천인공노할 범죄도 벌어지고 있다.




지난 6월27일 통계청과 여성가족부가 함께 발간한 '2013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을 보면 전체 강력범죄 피해자 10명 중 8명은 여성이다.

성범죄 증가
사각지대 없다

2000년 집계된 피해자 8765명 중 6245명(71.3%)이었던 여성 피해자는 2011년 들어 전체 2만8097명 중 2만3544명(83.8%)으로 10년 새 양과 비중 모두 크게 증가했다. 이는 강간과 강제추행 등 성범죄 발생 및 신고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추세와도 무관하지 않다.

성범죄의 완전한 사각지대는 없다. 심지어는 가족 안의 누군가가 가해자가 되고 피해자가 되는 일도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아들이 어머니를 성폭행하는 패륜범죄도 예외는 아니다.

A씨는 20여 년간 헤어져 지내다가 3년 전 다시 만난 친모를 성폭행한 혐의로 재판장에 올랐다. 지난 6일 서울고법 춘천 제1형사부(오석준 부장판사)는 친어머니를 성폭행한 혐의(친족관계에 의한 강간)로 기소된 A(30·회사원)씨의 항소심에서 원심과 같은 징역 3년6월을 선고했다고 밝혔다.


A씨는 지난 2011년 8월30일 오후 8시30분께 충남 아산시 어머니 B(52)씨의 집에서 술을 마시다가 B씨를 강제로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됐다. 모자지간인 A씨와 B씨는 20여 년간 헤어져 살다가 2010년부터 다시 연락하며 지내온 것으로 전해졌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정신적으로 온전치 못한 친어머니를 성폭행한 것은 사회적으로 용납될 수 없는 반인륜적 범행으로 그에 상응하는 처벌을 받아 마땅하다"며 "다만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 점 등을 참작했다"고 판시했다.

그러나 이번 판결을 두고 일각에선 '형량이 너무 약한 것 아니냐'는 여론이 일었다. 성범죄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이 높아진 상황에서 '징역 3년6월'은 합당하지 않다는 의견이다. 실제로 4년 전과 비교해도 친족관계에 의한 강간의 형량은 그리 높아지지 않았다.

2010년 7월 서울고법 형사9부(부장판사 최상열)는 친어머니를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C씨에게 징역 4년을 선고했다. 앞서 1심 재판부는 "우발적으로 저지른 범죄로 보이고 친모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며 C씨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강간 ·강제추행 등 패륜범죄 갈수록 증가
초범 낮은 형량…어머니 눈물로 선처 호소도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 C씨는 2009년 7월 어머니와 말다툼을 하던 중 처음으로 성폭행을 했다. 그리고 이듬해 1월 잠을 자고 있던 어머니를 반항하지 못하게 한 뒤 또다시 성폭행했다.

재판부는 "낳아주고 길러준 친모를 성적 욕구 충족의 대상으로 삼아 두 차례 성폭행한 것은 천륜을 어긴 것"이라며 "모친이 평생 치유하기 어려운 정신적 상처를 안고 살아갈 점을 고려할 때 죄질이 매우 불량하다"고 판시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피고가 성범죄로 처벌받은 전력이 없고 깊이 뉘우치며 반성하고 있는 점, 피해자인 친모가 선처를 호소하고 있는 점 등을 참작했다"고 양형이유를 밝혔다.

초범에겐 관대
재범에겐 냉엄

4년 사이 있었던 두 사건의 공통점은 ▲범행이 우발적이었고 ▲가해자(아들)에게 동종 전과가 없었으며 ▲피해자(친모)가 선처를 호소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범행이 계획적이고 동종 전과가 있다면 형량은 어떻게 달라질까.

지난 2011년 6월 서울동부지법 형사11부(부장판사 설범식)는 자신의 친어머니를 상대로 폭력을 휘두르고 성폭행한 혐의(친족관계에 의한 강간 등)로 기소된 D(38)씨에게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D씨는 전자위치추적 장치 부착 20년과 치료 감호 등도 함께 명령받았다.

D씨는 2011년 1월27일 대구교도소에서 출소한 후 서울에 있는 어머니 E(64)씨의 집에 있었다. 사건이 있던 날인 2월3일은 설날이었고 이날 오전 7시께 E씨는 아들을 위해 떡국을 끓이고 있었다.

하지만 D씨는 어머니의 집에서 어머니를 강간하기로 마음먹고 손바닥과 주먹으로 어머니의 얼굴과 머리 등을 수차례 때리고 부엌에 있는 칼을 집어든 뒤 "좋게 한 번 하자, 가만히 있으라"며 어머니를 위협했다.

E씨가 항거 불능에 이르자 아들 D씨는 어머니의 하의를 벗긴 뒤 모두 2차례에 걸쳐 성폭행했다. 이 과정에서 D씨의 폭력으로 E씨는 전치 8주의 골절 상해도 함께 입었다.

앞서 D씨는 2009년 자신의 어머니를 폭행해 징역형을 선고받은 데에 불만을 품고 있던 것으로 전해졌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D씨는 어머니에게 감내할 수 없는 육체적 고통과 모성을 부정당하는 등의 정신적 고통을 입혔다"며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상상하기 어려운 인륜에 반하는 중대한 범행으로 그 죄질이 매우 무거우므로 엄중한 처벌을 받아 마땅하다"고 판시했다.

이어 재판부는 "다만 D씨가 특정불능의 비기질성 정신병으로 인해 심신이 미약한 상태에 있던 점과 D씨의 나이와 성행(품행), 가족관계 등 제반 양형 조건을 두루 참작해 형을 정했다"고 밝혔다.

해당 사건의 판결문을 살펴보면 D씨는 2004년 4월16일 서울동부지법에서 강간미수죄 등으로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또 출소로부터 1년4개월이 지난 2009년 6월19일 존속상해 등 혐의로 기소돼 또다시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2011년 1월 출소한 D씨는 3번째 범죄를 저지름으로써 15년이라는 중형을 선고받게 된 것이다.

아들의 증오
가장 가까운 곳


친모 성폭행은 엄연한 범죄이자 결혼 제도와 같은 우리 사회의 근간을 뒤흔드는 금기다. 때문에 범죄 발생 빈도도 낮지만 사건이 터져도 외부로 알려지기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그러나 2009년 있었던 충격적인 친모 성폭행 살인 사건은 그야말로 감출 수가 없는 비극이었다.

2009년 7월22일 전북 익산경찰서는 자신의 어머니 E(40)씨를 둔기 등으로 때려 숨지게 한 혐의로 그의 아들 조모(21)씨를 긴급체포했다.

범행 5시간 만에 자수한 조씨는 경찰 조사에서 "어머니가 인터넷 게임에 중독돼 집안일을 돌보지 않았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하지만 살해 동기가 석연치 않음을 느낀 경찰은 죽은 E씨의 부검을 의뢰했고, 그 결과 숨진 E씨에게서 정액 양성 반응이 나온 것을 확인했다. 경찰의 추궁이 이어지자 조씨는 "어머니를 성폭행한 사실이 발각될까 두려워 범행을 저질렀다"고 털어놨다.

E씨는 이른 나이에 조씨를 출산했다. E씨 가족의 가정 형편은 좋지 못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석공이었던 아버지는 조씨가 10살 때 암으로 숨졌고, 조씨는 어릴 때부터 어머니가 아닌 친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그 사이 E씨는 자주 집을 비웠다. 조씨가 11살이 될 무렵, E씨는 교통사고로 받은 보험금 7000만원을 들고 나갔다. 사건 발생 몇 달 전에는 집수리 명목으로 A씨 앞으로 300만원을 대출받았고, 이 돈을 PC방에서 탕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E씨는 주로 PC방에서 생활하며 게임에 열중했다. 2008년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어머니와 함께 살던 조씨는 이런 E씨에게서 따뜻한 모정을 느끼지 못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조씨는 검정고시로 고등학교 과정을 졸업한 후 이벤트 회사에서 월 80만원을 받고 음향기기 기사로 일했다. 여동생이 고향을 떠난 뒤에는 밀린 공공요금 납부까지 온전히 조씨의 몫으로 남았다. 조씨에겐 기댈 구석이 어디에도 없었다. 

사건 발생 당일 조씨는 새벽 2시께 소주 2병을 마시고 돌아와 어머니 곁으로 다가갔다. 평소에도 조씨는 어머니의 팔을 베고 자는 경우가 많았다. 경찰 조사에서 조씨는 "어릴 때부터 엄마가 안아주는 것을 좋아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조씨를 뿌리쳤다. 두 사람의 말다툼은 이내 몸싸움으로 번졌다. 순간 조씨는 E씨에게 성욕을 느꼈다. 조씨는 결국 해선 안 될 선택을 하고 말았다.

경찰에 따르면 조씨는 전북 익산시 자신의 집 화장실에서 어머니를 둔기로 때려 살해했다. 어머니를 강간했다는 죄책감, 자신이 신고 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조씨를 엄습했다. 조씨는 어머니가 옷을 챙겨 입자 신고를 하러 밖으로 나가는 것으로 봤다. 둔기를 집어 든 조씨는 망설임이 없었다. 

조씨는 화장실의 핏자국을 지우고 사체를 보일러실로 옮기는 등 범행을 은폐하려다 범행 5시간 만인 오전 8시께 자수했다. 경찰은 조씨가 범행 직후 시신을 앞마당에 묻으려고 옆집에서 삽과 수레를 빌렸던 사실을 확인했다.

아울러 경찰은 조씨의 진술을 인용해 "여동생과 친구에게 범행 사실을 알리고 도움을 청했지만 '자수를 하라'는 말만 들었다"고 전했다.

경찰에 붙잡힌 조씨는 대법원에서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았다. 당시 법원은 "피고인이 성욕을 채우기 위해 어머니를 성폭행한 뒤 잔인한 방법으로 살해했다"며 "피고인은 평생 수감 생활을 통해 얼마나 큰 잘못을 저질렀는지 참회하고 교화하는 것이 우리 사회 공동체의 이상에 부합한다"고 판시했다.

그러나 2년 뒤 조씨는 형기 도중 세상을 떠났다. 조씨는 자신이 수감 중이던 전주시 평화동 전주교도소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복수 매체 보도에 따르면 조씨는 교도소 운동장 옆 공장동 처마에서 자신의 런닝셔츠를 이용해 목을 맨 채 숨져 있었고, 이를 교도소 관계자가 발견했다. 해당 관계자는 "조씨가 운동시간에 사라져 인원점검을 하던 중 목을 맨 것을 발견했다"며 "유서는 없었다"고 말했다. 친모를 강간한 패륜범의 쓸쓸한 최후였다.

강제로 덮친 후 살인까지
짐승 아들은 쓸쓸한 최후
부모에 증오범죄도 잇달아

조씨와 같은 범죄자들에겐 대개 무기징역형이 선고된다. 지난 2010년 10월 서울고법 형사10부(부장판사 이강원)는 친모를 성폭행한 뒤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오모씨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오씨는 같은 해 2월 경기도 양주에 위치한 어머니 F씨의 집에서 F씨가 '운이 없어 너 같은 애를 낳았다'는 등 평소 자신을 무시하는 발언에 분노하던 중 어머니를 살해한 것으로 드러났다.

판결문에 따르면 오씨는 어린 시절부터 친척집과 복지시설 등을 전전했으며 14세 무렵에는 어머니와 함께 살게 됐지만 F씨의 집에선 어머니와 동거남의 잦은 다툼이 있었다. 이들의 싸움을 피해 교회 등에 거주했던 오씨는 고등학교를 다니다 중퇴했으며 이후 정신분열증을 앓게 됐다.

사건 전날 오씨는 어머니를 죽여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사건 당일 새벽에 귀가해 안방에서 잠을 자던 어머니를 죽이려 했으나 실패했다.

하지만 같은 날 어머니가 잠에서 깨어 아침 식사를 차려주자 함께 식사를 한 후 어머니가 다시 안방으로 들어가 잠이 들기를 기다렸다. 안방에서 인기척이 없자 오씨는 공구함에 들어 있던 망치를 들고 자고 있던 어머니의 머리를 내리쳤다.

자신의 범행 과정에서 피가 튈 것을 두려워한 오씨는 어머니의 얼굴을 이불로 덮었다. 그런데 이불 사이로 얇은 잠옷 바지를 입은 어머니의 하체가 드러나자 오씨는 곧 강간할 마음을 먹었다. F씨의 바지와 팬티가 벗겨졌고, 오씨는 잔인한 수법으로 F씨를 강간했다.

오씨는 강간 후에도 어머니가 살아있는 것을 발견했다. 두려움에 빠진 오씨는 손으로 이불을 눌러 어머니를 질식사시켰다. 어머니가 죽자 오씨는 어머니의 지갑에서 신용카드 등을 꺼내 집을 나섰다.

이후 오씨는 PC방과 모텔 등을 전전하며 유흥을 즐겼다. 하지만 오씨의 도피생활은 1주일도 안돼 끝났다.

끔찍한 패륜
쓸쓸한 최후

재판부는 법정에 선 오씨에게 "어린 시절 부모가 별거를 하고 여러 곳을 전전하며 살았다는 불우한 소년시절을 겪었다고 해도 친모를 성폭행하고 죽인 다음 지갑에서 신용카드를 꺼내 강취한 사건은 범행의 패륜성 및 참혹성에 비춰 엄중한 형의 선고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또 "원심은 징역 20년을 선고했지만 특수강도강간살인의 범행에 대해 양형기준상 권고 형량 범위가 무기징역 이상이라 사형을 선택했고 심신미약자란 점을 감안해 무기징역으로 감경했다"고 판시했다.

 

강현석 기자<angeli@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