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길 포기한' 희대의 패륜 살인마들

  • 강현석 angeli@ilyosisa.co.kr
  • 등록 2013.09.30 14:3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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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말세"라더니…툭하면 존속살인 참극

[일요시사=사회팀] 올 초 전국을 충격에 빠뜨린 '전주 일가족 살인사건'에 이어 최근 '인천 모자 살인사건'까지 터지며 패륜범죄에 대한 국민적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작금의 패륜범들은 태어날 때부터 악마였던 것일까. 세상을 경악시킨 희대의 패륜범들을 되짚어봤다.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인천 모자 실종사건'은 유력 용의자인 차남 정모(29)씨가 구속되면서 수사가 일단락된 모양새다. 정씨의 도박 빚을 비롯한 금전적 문제가 주 범행 동기로 부각된 가운데 가정 내 보이지 않는 불화도 한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정씨는 자신의 어머니 김모(58)씨와 형 정모(32)씨를 살해한 뒤 시신을 유기한 혐의를 받고 있다. 지금까지 드러난 정황을 봤을 때 차남 정씨의 실형은 불가피해 보인다. 하지만 이를 지켜보는 뒷맛은 영 개운치 않다. 아직 우리 사회엔 '제2의 정씨'가 너무 많은 까닭이다.

끊이지 않는
친족 살해

최근 경찰청이 발간한 '2012년 경찰범죄통계'를 보면 지난해 발생한 살인범죄(미수 포함)는 모두 955건. 이중 존속살인은 50건으로 전체 살인범죄의 5% 수준이다.

이는 학계에 보고된 영미권 국가의 존속살인 비율 1∼2%(영국 1%·미국 2%)보다 높은 수치로 한국 특유의 폐쇄적인 가족 문화가 범죄 발생률에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드러내고 있다.


살인죄로 검거된 1056명의 범죄자 중 피해자와 동거친족 관계에 있는 인원은 207명이었다. 살인 전과자 5명 중 1명은 가족을 상대로 살인을 하거나 이에 준하는 범죄를 모의했다는 얘기다.

특히 피해자가 실제 사망에 이른 411건(살인미수 제외)의 '기수사건' 중 친족 살인혐의로 체포된 범죄자는 무려 117명으로 파악됐다. 전체 검거자가 446명인 것을 감안하면 4명 중 1명은 자신의 부모나 형제 혹은 자녀를 살해한 셈이다. 이는 통계상 2위를 기록한 타인(87명)보다 월등히 많은 수치고, 애인(47명)이나 지인(42명)과 비교해도 3배에 가까운 결과다.

'인천 모자 실종사건' 차남 범행 일단락
검거 살인범 4명 중 1명은 가족 '충격'

이처럼 최근의 통계 자료는 많은 수의 살인이 가족과 혈육 간에 발생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를 두고 일부 전문가들은 "부모를 상대로 한 패륜범죄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며 우려를 표시한다. 하지만 불행히도 존속살인의 참극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전두환정권이 들어선 1981년 5월20일, 치안본부가 발표한 보도 자료를 보면 당해 5월을 기준으로 부모를 살해한 패륜범은 모두 26명이었다. 검거된 미수범 역시 7명이나 됐다.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에도 패륜범죄는 꽤 높은 비율로 발생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군부독재가 막을 내린 90년대 들어서도 패륜범죄는 줄지 않았다. 91년 29건이었던 존속살인은 92년 32건, 93년 43건으로 증가세를 보였다. 그러나 2008년 발생한 존속살인 건수가 45건이었던 것을 보면 15년 전과 비교했을 때 통계상으로 큰 차이가 없음을 알 수 있다.

돈을 목적으로
완전범죄 꿈꿔


그럼에도 사람들은 패륜범죄의 심각성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다. 왜일까. 통상 특정 시기에 발생한 존속살인은 단순한 통계 이상의 충격을 안기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모두를 충격을 빠뜨렸던 '희대의 패륜아'들은 묘한 공통점을 보이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부모의 돈을 목적으로 한 완전범죄를 계획했고, 범행 준비에선 치밀함을, 체포 이후엔 뻔뻔함을 보였다. 수사진조차 혀를 내두르는 이들의 잔혹한 범행은 '패륜'이란 말로도 설명이 부족했다.

이제는 패륜아의 대명사가 된 박한상(당시 23세)씨는 자신의 아버지 박모(48)씨와 어머니 조모(46)씨를 살해한 후 집에 불을 지른 혐의로 구속됐다. 지난 1994년 5월19일 벌어진 이 충격적인 존속살인사건은 당시 각 일간지 일면 머리기사에 실리며 엄청난 파장을 몰고 왔다.

1971년생인 그는 당시 저명한 한약상이었던 아버지 박씨의 3남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한상씨는 한의학과에 입학하길 바랐던 부모의 기대와 달리 지방 모 대학에 진학했는데 이는 다가올 참극의 싹을 틔었다.

박씨 부부는 서울 강남에 터를 잡은 100억원대 자산가였다. 부모덕을 본 한상씨는 당시 강남에서 소위 잘나간다는 '오렌지족'이었고, 대학생 신분으로 차를 몰고 다니며 유흥문화를 즐겼던 인물로 소개됐다.

여타 부유층 자제와 다를 것 없이 밤거리를 활보하던 한상씨는 방위 제대 후 미국 유학과 함께 나락으로 빠져들었다. 공부에 소질이 없던 한상씨를 강제로 유학 보낸 게 화근이 됐다. 한상씨는 유학생활 중 학업보다는 향락과 도박에 더 열중했다. 귀국 전엔 라스베이거스에서 3만달러(당시 환율기준 한화 2400만원)를 빚졌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박씨는 아들에 대한 심한 질책과 함께 한상씨의 귀국을 명령했다. 그리고 한상씨에게 생활비 명목으로 줬던 신용카드를 뺏음으로써 사실상의 '경제적 사형선고'를 내렸다.

아버지에게 심한 꾸중을 들은 한상씨는 3일 만에 급히 귀국했다. 하지만 한상씨의 마음속엔 이미 증오가 뿌리내리고 있었다. 그는 귀국 직후 범행에 사용할 25cm 등산용칼을 서울 종로구 장사동에서 구입했다. 또 서울 강남구 신사동 한 주유소에서 휘발유 8리터를 추가로 구입했다. 이로부터 3일 뒤 박씨 부부의 집에선 큰 불이 났다.

화재 직후 한상씨는 "집에 불이 났다"며 관계당국에 신고했다. 박씨 부부의 자택에서는 새까맣게 탄 두 구의 시신이 발견됐다. 그런데 시신이 이상했다. 두 구의 시신 모두에서 수십 차례씩 난자된 상흔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당시 사건을 수사하던 경찰은 소변을 핑계로 밖에 나갔다가 불이 난 것을 보고 도망쳤다는 한상씨의 진술을 의심쩍게 여겼다. 그러나 경찰은 친아들이 부모를 그렇게 잔혹한 방법으로 살해했을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더불어 한상씨가 갖고 있던 '미국 유학파'라는 타이틀도 무시 못 했다. 수사의 화살은 외부로 향했다.

하지만 한상씨를 치료한 병원의 간호사는 "박한상의 머리에 피가 묻었다"는 예상 밖의 증언을 했다. 또 한상씨의 친척은 "박한상의 다리에 이빨자국이 있다"는 제보를 했다. 머리에 묻은 피는 박씨 부부가 칼에 찔렸을 당시 흘린 피며, 다리의 이빨자국은 박씨가 칼에 찔린 뒤 고통에 못 이겨 한상씨의 발목을 물어뜯은 상처임이 뒤늦게 밝혀졌다. 수사망이 좁혀오자 한상씨는 거액의 유산을 노리고 범죄를 저질렀음을 자백했다.

94년 5월26일 경찰은 한상씨에 대해 존속살인 및 방화 등의 죄목을 적용해 구속기소했다. 이후 95년 8월25일 대법원은 같은 혐의로 기소된 한상씨에게 사형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한상씨가 원했던 유산은 한상씨에게 단 한 푼도 상속되지 않았으며 남은 두 명의 동생에게 반반씩 상속됐다.

준비는 치밀하게
잡히면 뻔뻔하게

'박한상 사건'의 여파가 가시지 않았던 95년 3월, 또 하나의 대형 패륜범죄가 발생했다. 대학교수였던 김성복(당시 40세)씨가 사업자금 마련을 위해 덕원예고 이사장이었던 아버지를 살해한 것이다.


이른바 '김성복 교수 사건'으로 명명된 이 패륜범죄는 피해자가 사회 지도층으로 분류된 인사였고 가해자 역시 미국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딴 엘리트였기 때문에 '박한상 사건' 못지않은 충격을 던졌다. 범행 당시 성복씨는 S대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었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성복씨는 서울 중구 신당동에 있는 아버지 김모씨의 자택에서 잠자고 있던 아버지의 목을 칼로 찔러 살해했다. 성복씨는 자신의 살인을 강도사건으로 위장했지만 이후 범행 일체를 자백했다. 성복씨는 사업 과정에서 빚을 지고 있었고 아버지가 죽으면 그 유산을 상속받아 빚을 갚으려고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아버지 장례식장에서 성복씨는 수사관을 만나 "반드시 범인을 잡아 아버지의 원한을 풀어달라"고 읍소했다. 노련한 수사관도 깜빡 속을 만한 뛰어난 연기였다. 그는 평소 추리소설을 탐독하며 완전범죄를 꿈꿨다. 성복씨는 체포 후 기자들과의 일문일답에서 "'형사 콜롬보'에서 봤던 장면들을 떠올리며 살인을 계획했다"고 진술했다. 학교에선 원칙주의자이자 신뢰받는 교수였던 성복씨. 그러나 그는 희대의 살인마였다.

그런데 경찰 수사가 진행되면서 새로운 사실이 밝혀졌다. 성복씨의 범행이 재산만을 노린 단순 범죄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성복씨는 "아버지는 하늘나라에서라도 내가 왜 당신을 죽일 수밖에 없었는지 알 것"이라고 탄식했다. 그의 진술을 토대로 원한에 의한 살인 가능성이 대두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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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보도 내용을 종합하면 성복씨의 아버지는 기부를 자주했고 사회적으로 모범이 된 인물이었다. 그러나 자기 소신이 너무 강해 가족들과 잦은 마찰을 빚어온 것으로 드러났다. 또 아내와 자식들을 구타하고 외도까지 일삼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재판 과정에서 성복씨는 "열 사람이 한 사람을 위해 살아야 한다면 그것을 어찌 가족이라 할 수 있겠는가"라고 답답한 심경을 토로했다. 성복씨의 어머니도 "권위적인 남편이 가족들에게 씻을 수 없는 고통을 안겼다"고 증언했다. 그러나 법의 잣대는 냉엄했다.

96년 5월11일 대법원은 존속살인 혐의로 기소된 성복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그나마 사형이 선고된 한상씨와는 달리 성복씨는 수십 년간 가정폭력에 노출돼 왔었다는 점이 고려됐다. 그리고 성복씨처럼 가정폭력을 이유로 범행을 저지른 패륜범은 4년 뒤 또 다시 매스컴에 등장했다.

2000년 5월24일. 수도권에서 가장 범죄율이 낮은 도시인 과천의 한 공원. 이곳에서 아침 일찍 쓰레기 수거를 하고 있던 미화원은 봉투를 집어 올리던 중 기겁했다. 봉투 안에 담긴 사람의 발목을 본 것이다.

뒤이어 미화원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아연 실색했다. 수색 과정에서 발견된 시신은 여러 조각으로 토막 나 있었다. 손과 발, 몸통, 대퇴부, 팔뚝 등이 차례로 발견됐다. 성인 남자와 성인 여자의 시신이었다.

지문 감식 결과 죽은 남자는 해병대 중령으로 예편한 이모씨로 확인됐다. 그는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엘리트 코스를 밟은 군인이었다. 토막 난 여성은 이씨의 부인인 황모씨. 황씨 역시 명문대 정치외교학과를 나온 재원이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부부생활 내내 그리 화목하지 못했다. 황씨는 군사정권 시절 기대만큼 성공하지 못한 이씨를 원망했다. 이씨 역시 집안일은 뒷전인 채 밖으로 나돌았다. 이들은 한 번 부부싸움을 하면 두세 달은 서로 말 한마디 하지 않고 침묵을 지켰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차남 은석씨는 부모의 지속적인 학대를 받았다.

은석씨는 평소 내성적이고 소심한 성격이었다. 그러나 은석씨는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학업에 매진했고 명문 사립대 중 하나인 K대에 입학했다. 하지만 서울대를 고집했던 부모는 은석씨를 냉대했다. 또 은석씨가 현역으로 복무하는 동안 면회 한 번 가지 않을 정도로 무관심했다.

키도 작았던 은석씨는 속칭 '왕따'의 대상이었다. 그는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보냈고 만성적인 우울증에 시달렸다. 전역 후 남몰래 다른 학과로의 전과를 준비하던 은석씨는 복학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또다시 부모에게 학대를 받았다. 참다못한 은석씨는 결국 침대 맡에 놔둔 망치를 집었다.

각방을 쓰고 있던 어머니 황씨, 아버지 이씨가 차례로 잔인하게 살해됐다. 은석씨는 부엌칼 등을 이용해 부모의 시신을 수십 조각으로 토막 냈다. 토막난 시신은 쓰레기봉투에 담겨 과천 곳곳에 버려졌다. 이중 일부는 소각됐다. 정부청사 인근 하천에선 숨진 이씨 부부의 머리가 발견됐다.

2001년 7월20일 대법원은 존속살인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된 은석씨에게 무기징역을 확정 판결했다. 은석씨는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았지만 성복씨처럼 가정폭력에 시달려온 점이 양형에 참작됐다.

알고보면 부모가
패륜범들 키운다

앞서 밝혔듯 패륜범죄는 거의 매해 되풀이되고 있다. 2002년 미국 유학파였던 이모씨가 당시 유명 대학교수였던 아버지와 친할머니를 살해한 '교수 모자 살해사건'은 그 범행 동기와 잔혹함이 '박한상 사건'과 비교됐다.

또 2005년에는 신용불량자 남매가 거액의 유산 때문에 어머니를 목 졸라 살해한 뒤 시체를 유기해 충격을 줬고, 2008년에는 보험금을 타내기 위해 아들이 학교 선배와 짜고 친모를 살해하는 천인공노할 범죄를 저지르기도 했다.

이 같은 패륜범죄는 2009년에는 58건, 2010년에는 66건, 2011년에는 68건으로 계속 증가하다가 대선이 있었던 지난해에는 50건으로 잠시 주춤했다. 그러나 경제 불황이 장기화되면서 부모의 재산을 노린 존속살해는 다시 증가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입장이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돈이면 다 된다'는 물질만능주의가 가족 내에 작용하면서 패륜범죄를 부추기고 있다"며 "가족끼리 경제적 이유로 갈등하는 상황에서 서로에 대한 반감이 커지면 존속살인과 같은 극단적인 범죄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곽 교수는 "살해의 직접적인 원인은 유산이나 보험금이지만 그 이전에 가족 사이에 갈등이 쌓여 온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범죄를 결심한 시점에 그 분노가 폭발하면서 살해 수법이 잔인해지고 시신을 훼손하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인천 모자 살인사건'의 피해자인 장남 정씨의 시신은 세 토막난 채 발견됐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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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고객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쿠팡의 태도가 도마 위에 올랐다. 현재까지 대응만 봐서는 국민은 물론, 정부와도 전면전을 벌일 기세다. 새어나간 정보의 범위와 규모가 ‘역대급’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최악의 사태임에도 불구하고 쿠팡의 고개는 꺾일 줄 모르고 있다. 일각에서는 ‘뭘 믿고 저러나’ 소리가 나오는 중이다. 쿠팡의 고객 개인정보 유출 사건, 이른바 쿠팡 사태가 점입가경이다. 사태가 일어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수습은커녕 국민의 화만 돋우고 있다. 쿠팡의 대응 태도가 미지근한 수준을 넘어 뻔뻔한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 김범석 의장은 모습을 비추지 않고 보상안은 꼼수로 가득하다. 국민을 조롱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한 달 만에 고개 숙여 지난해 11월 말 3370만명에 이르는 쿠팡 고객의 개인정보가 ‘탈탈’ 털렸다. 앞서 쿠팡은 4500여건의 고객 정보가 유출됐다고 정부 당국에 신고했지만 2주 만에 그 수치는 7500배까지 늘어났다. 전 국민의 65% 수준이며 지난해 4월 SKT 개인정보 유출 사태 범위(2300만명)를 훌쩍 넘는 사태였다. 쿠팡은 이커머스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갖고 있다. 대형마트 등이 규제에 막혀 뒷걸음질 칠 때 쿠팡은 로켓배송으로 시장을 싹쓸이했다. 전날 저녁에 주문해도 새벽이면 물건이 문 앞에 와 있는 총알 배송에 소비자는 쿠팡으로 몰렸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비판을 받던 물류센터는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아이러니하게도 쿠팡이 국민의 실생활에 얼마나 스며들어있는지를 바로 보여줬다. 쿠팡 사태가 터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은 “쿠팡이 경쟁자가 없는 시장 지위를 누리고 있고 한국 고객이 데이터 유출에 덜 민감해 보인다”며 “잠재적 고객의 이탈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놨다. 그래서일까? 쿠팡은 역대 최악의 정보 유출 사태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도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이 언급하고 정부 차원의 TF가 꾸려졌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힘겨루기’를 하는 태도를 보이는 중이다. 최근에는 정부의 반박에도 자체 조사 결과를 고집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보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쿠팡은 지난달 25일 ‘정보 유출자는 3300만개 계정에 접근했으나 실제 저장한 정보는 3000여개에 불과하며 제3자 유출 정황은 없는 등 피해가 미미하다’는 내용의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면서 “(유출자는)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언론 보도를 접한 이후 저장했던 정보를 모두 삭제하고 범죄에 사용한 노트북을 파손해 하천에 던졌다”고 주장했다. 쿠팡은 “잠수부들이 벽돌에 담긴 쿠팡 가방에 든 노트북을 하천에서 회수했고 유출자가 클라우드 계정에 등록한 일련번호와 해당 노트북의 일련번호가 일치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범행에 사용된 PC 와 노트북 등 모든 장치를 회수해 안전하게 확보했고 글로벌 보안업체들의 조사 결과도 진술 내용과 같았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매출 90% 나오는데 정보 유출 태도·대응 낙제점 쿠팡이 발표한 대로라면 고객 정보 유출 피해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든다. 또 유출자와 접촉해 장치를 확보했으니 추가 피해는 없다. 전체적으로 사건이 축소되는 것이다. 쿠팡의 발표에 정부는 강하게 반발했다. 쿠팡의 조사 내용은 사전에 정부와 어떤 논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됐다는 설명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는 “정보 유출 종류와 규모, 경위 등은 민관합동조사단이 조사 중인 사안”이라며 “쿠팡이 발표한 내용은 조사단에 의해 확인된 바 없다”고 밝혔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과도 “쿠팡 측이 제출한 진술서와 노트북 등 증거물을 분석 중”이라며 “사실관계를 면밀하게 확인하겠다”고 했다. 논란이 계속되자 쿠팡은 정부의 지시를 받아 조사를 진행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경찰은 사전 협의가 없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사실관계가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쿠팡은 지난달 26일 내놓은 입장문에서 “정부의 지시에 따라 수주간 진행한 조사였다”고 선을 그었다. 같은 달 9일 정부가 쿠팡 측에 유출자와 접촉할 것을 제안했고 14일 쿠팡은 유출자를 처음 만난 뒤 해당 사실을 정부에 보고했으며 16일에는 정부 지시에 따라 유출자의 데스크톱과 하드드라이브를 정부에 제공했다는 게 쿠팡 측 주장이다. 하지만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도 “쿠팡의 입장문 형식의 보도자료에서 정부와 협력했다는 내용 중 일부 국정원으로 추정되는 부분도 사실과 다르거나 왜곡된 부분이 있다”고 반박했다. 쿠팡이 자체 조사와 관련해 정부와 사실 공방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 김범석 쿠팡 의장이 사건 발생 한 달여 만에 사과했다. 그동안 박대준 전 대표가 청문회 등에서 뭇매를 맞고 있는 동안에도 김 의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정부의 압박이 거세지자 처음으로 입을 연 것이다. 5만원 상당 속사정은? 김 의장은 지난달 28일 “쿠팡의 창업자이자 이사회 의장으로서, 쿠팡 전체 임직원을 대표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저희의 책임으로 발생한 이번 데이터 유출로 인해 많은 분께서 자신의 개인정보가 안전하지 않다는 두려움과 불안을 느꼈고 사고 초기부터 명확하게 직접적으로 소통하지 못한 점으로 인해 큰 좌절감과 실망을 안겨 드렸다”며 “사고 직후 미흡했던 초기 대응과 소통 부족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한 달 만에야 입을 연 부분에 대해 “무엇보다 제 사과가 늦었다”면서 “모든 사실이 확인된 이후에 공개적으로 소통하고 사과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돌이켜보면 이는 잘못된 판단”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비판과 질책을 겸허히 받아들인다고도 했다. 하지만 자체 조사 논란에 대해서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김 의장은 “쿠팡은 조사 초기부터 정부에 전면적으로 협력해 왔다”며 “일련의 과정에서 많은 오정보가 확산하는 상황에서도 정부의 ‘기밀 유지’ 요청을 엄격히 준수했다”고 주장했다. 김 의장의 사과는 국회 6개 상임위원회가 참여하는 대규모 연석 청문회를 이틀 앞두고 나왔다. 정부가 범부처 TF를 과기부 총리 산하로 확대하고 다각도로 압수수색과 조사를 진행하는 등 대응 수위를 높이는 상황에 압박을 느꼈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그러나 사과와는 별개로 김 의장은 청문회에 불출석하겠다고 밝혔다. 김 의장뿐만 아니라 동생인 김유석 쿠팡 부사장, 강한승 전 쿠팡 대표 등이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면서 쿠팡에 대한 부정적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여기에 쿠팡이 내놓은 보상안도 도마 위에 올랐다. 쿠팡은 지난달 29일 고객 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해 총 1조6850억원 규모의 보상안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전체적으로 보면 1인당 5만원 상당이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뜯어보면 쿠팡의 ‘꼼수’가 보인다. 청문회는 나 몰라라 보상안은 ▲쿠팡 전 상품 구매 이용권 5000원 ▲쿠팡이츠 5000원 ▲쿠팡트래블 2만원 ▲명품 플랫폼 알럭스 2만원 등으로 구성됐다. 소비자들은 보상금의 상당 부분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 등 평소 이용 빈도가 낮은 서비스 이용권 위주로 구성된 점을 지적했다. 실제 이번 보상안을 통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를 처음 알게 됐다는 소비자도 있다. 시민단체도 쿠팡의 보상안에 반발했다. 참여연대는 “1인당 5만원 보상이라고 했지만 현금이 아닌 구매 이용권으로 사실상 강제 소비를 유도하는 방식”이라며 “보상이 아니라 매출 확대를 위한 마케팅에 불과하다”는 내용의 논평을 발표했다. 쿠팡의 행보는 사사건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민을 조롱하고 정부를 기만하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쿠팡이 미국 시장에 상장한 기업이지만 매출 대부분을 우리나라에서 벌어들이는 상황인데도 이 같은 태도를 보이는 것에 분노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회원 탈퇴, 보상안 거부, 집단소송 참여 움직임이 거세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심지어 이재명 대통령도 쿠팡 사태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쿠팡 사태가 일어나고 사흘 뒤인 지난달 2일 “쿠팡 때문에 국민의 걱정이 많다”면서 “사고 원인을 규명하고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관계부처는 해외 사례를 참고해 과징금을 강화하고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도 현실화하는 등 실질적인 실효적 대책에 나서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뒤늦은 사과·꼼수 보상안 도마 위에 이래서 정치권 인사 영입했나? 의혹 12일에도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반복되는 것에 대해 “경제 제재가 너무 약해서 규정 위반을 밥 먹듯이 한다”며 “앞으로는 규정을 위반해 국민에게 피해를 주면 엄청난 경제 제재를 당해서 ‘회사가 망한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규정을 위반하면 난리가 나야 하는 것 아니냐”며 “그런데 위반해도 태도를 보면 ‘그래서 어쩔 건데’ 이런 느낌이 든다”고 지적했다. 정부도 쿠팡에 강력하게 경고하며 전방위 대응을 예고했다. 실제로 같은 달 29일, 배경훈 부총리 겸 과기부 장관 주재로 ‘쿠팡 사태 범정부TF’ 회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과기부와 경찰청, 개인정보위원회, 금융위원회 등은 역할을 분담해 신속한 조사를 진행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배 부총리는 “쿠팡이 국내 고객 정보 3000만건 이상을 유출한 것은 명백한 국내법 위반 사항으로 정부는 쿠팡이 관련 법령을 위반한 사실이 확인될 경우, 다른 기업과 동일하게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에 따라서는 영업정지 여부도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사방에서 몰아치는 압박에도 쿠팡이 연달아 이상한 행보를 보이자 ‘믿는 구석’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그 정도로 쿠팡의 현재 대응 방식을 이해할 수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쿠팡이 미국 기업인 것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 증시가 쿠팡의 모든 결정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는 것이다. 실제 쿠팡이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한 다음 날 미국 뉴욕 증시에서 쿠팡의 주가는 6% 급등했다. 국내에서는 쿠팡의 ‘셀프 조사’에 분통을 터트리고 있는데 미국 시장에는 호재로 작용한 것이다. 쿠팡이 정치·국회 인사를 대거 영입한 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정치권 인사를 영입해 쿠팡 관련 각종 논란을 틀어막고 있다는 의혹이다. 해당 의혹은 ‘강력 경고’ ‘전방위적 대응’ 등의 수사를 사용하고 있지만 실제 조사는 흐지부지될 것이라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오는 배경으로도 꼽힌다. 변죽 울리다 무사통과? 실제 최근 원내대표직에서 사퇴한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이 국정감사를 한 달여 앞둔 시점에 박대준 전 쿠팡 대표 및 대관 총괄과 오찬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쿠팡이 일용직 퇴직금 미지급 사건에서 검찰 외압 의혹, 물류센터·배송 기사의 과로 및 산재 사망 문제가 제기된 상황이었던 만큼 적절성 논란이 불거졌다. 김 의원은 그달 16일 자신의 SNS에 “공개 일정이고 적어도 5명이 (함께) 식사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만남보다 대화의 내용이 중요한 것 아니냐? 참고로 지난해 7월16일 쿠팡 물류센터도 방문했었다”고 적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