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운관 마담뚜' 시대별 중매프로그램 변천사

  • 최현경 mw2871@naver.com
  • 등록 2013.09.30 14:2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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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지 않는 인기 ‘TV 속 사랑쟁탈전’

[일요시사=사회팀‘이 세상 사랑없이 어이 살 수 있나요∼다른 사람은 몰라도 사랑없이 난 못 살아요’라는 노랫말처럼 사랑을 찾는 이들이 많다. 사랑에 목마른 청춘남녀를 위해 ‘중매쟁이’가 된 방송들. 데이트 상대부터 결혼 상대까지 소개해주는 기특한 방송들이 있다.




적극적으로 사랑을 표현하는 젊은이들을 보며 “요즘 애들은 창피한 줄도 모른다”고 말하지만 과거에도 자신의 짝을 찾는 젊은이들은 많았다. 방송계는 이런 젊은 싱글남녀의 애정욕구를 채워주기 위해 팔을 걷어부치고 ‘중매쟁이’를 자처했다. 70년대부터 시작한 중매 프로그램들은 시대에 따라 다양한 시도를 하며 90년대에 이르면서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

수많은 중매 프로그램에서 일회성으로 끝나는 ‘보여주기식 사랑’에 익숙해진 시청자들은 짜고치는 고스톱이라는 의심을 떨쳐버리지 못하면서도 TV 속 사랑쟁탈전에 눈을 떼지 못했다. 이제는 중매 프로그램이 외모와 화려한 스펙만을 중요시하는 프로라는 오명에 따가운 시선을 받고 있지만, 건전한 데이트를 권장했던 과거 중매 프로그램의 첫 등장은 뜻밖의 재미와 신선함을 주었다.

처음엔 건전
갈수록 노골

중매 프로그램의 원조는 MBC <청춘만세>다.

77년 1월에 시작한 <청춘만세>는 남녀 각각 3명씩 출연해 대화하며 데이트 상대를 선택하는 프로그램으로 개그계의 명콤비였던 곽규석과 구봉서가 사회를 맡으며 중매역할을 했다.


당시 <청춘만세>의 지석원PD는 “완고한 시청자들의 꾸지람이나 듣지 않을까”라고 걱정했지만 시청자들로부터 ‘이색적인 프로’라는 호평을 받으며 인기를 얻었다.

<청춘만세>는 건전한 교제의 장으로 인식되면서 1200명이 넘는 남녀가 출연신청을 해 평균 경쟁률이 22:1이 될 정도로 치열했다. 최종적으로 데이트가 결정된 커플에게는 5만원의 상금이, 결정되지 못한 출연자들에게는 각각 2만 오천원 상당의 기념품이 주어졌다.

인기에 힘입은 <청춘만세>는 지방에 거주하는 시청자들의 요청에 따라 부산을 시작으로 전국 주요도시 및 인근 지방에서도 촬영을 했다. 한 주에 남녀 총 6명이 출연하는데 한 지방촬영에서는 남자 72명, 여자 59명이 지원해 출연자를 선정하는데 고심하기도 했다.

전국의 미혼 남녀의 관심을 모은 <청춘만세>는 대학교 축제시즌인 4월이 되면 파트너를 찾는 대학생들의 출연이 느는가 하면, 대학시절 미팅으로 만났던 남녀가 연락이 끊긴 후 <청춘만세>를 통해 재회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90년대부터 우후죽순…6개월 기다려야 출연
짜고 치는 고스톱서 리얼 프로젝트로 변화

1978년 11월 <청춘만세>가 탄생시킨 한 커플이 결혼하며 “우리를 맺어준 MBC에 감사하며 우리의 행복은 MBC가 증인이 돼 지켜줄 것”이라고 감사의 뜻을 표현했다. 프로그램 방송 후 2년여 만의 처음있는 기쁜 소식에 <청춘만세> 제작진은 축하화환을 보내고 당시 프로그램의 사회자였던 최우철 아나운서가 결혼식의 사회를 맡았다.

당시 보수적인 연애관과 맞서 ‘청춘’인 남녀를 엮어주는 <청춘남녀>가 성공하며 89년 MBC <청춘 데이트>가 뒤를 이었다. <청춘 데이트>는 1명의 여성과 4명의 남성이 출연해 상대를 선택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단순한 싱글남녀의 만남에서 시작된 <청춘 데이트>는 오락 위주의 방송이 되며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어내지 못했다. 버튼을 누르는 선택과정 또한 “남성을 상품화한다”며 비윤리적인 방송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이에 더해 한 프로에서 결혼을 포기해야 하는 농촌총각들의 어려운 상황이 방송되며 <청춘 데이트>를 향한 비판이 거세졌다.

이 같은 질타 때문인지 그 해 9월 <청춘 데이트>는 ‘농촌총각 50, 도시처녀50’이라는 특집방송을 시작으로 프로그램의 개편을 감행했다.

처음에는 도시여성의 계산적인 질문에 농촌총각들이 압도당한다며 진지하지 못하다는 평을 받았다. 이후 기존의 버튼선택에서 출연자들의 가정과 직장, 생활모습을 소개하고 상대방과의 대화를 통해 짝을 선정하는 방식으로 변경되며 인간적인 중매 프로그램으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청춘 데이트>는 프로그램을 통해 결혼한 5쌍의 커플에게 예식장 비용과 2박 3일간의 제주도 신혼여행 경비를 지원하며 ‘농촌총각 구제하기’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그러나 도시 여성들의 저조한 참가율로 프로그램의 제작에 어려움이 많았던 <청춘 데이트>는 1990년 10월을 마지막으로 폐지됐다.

인기 만큼
논란도 많아

90년대부터 특정 프로그램을 일정기간동안 선보인 후 좋은 반응을 얻는 프로그램을 정규 편성하는, 일명 파일럿 프로그램이 많아졌다.

그 시작은 94년 처음 방송한 MBC <사랑의 스튜디오>다. ‘사랑의 작대기’로 유명한 <사랑의 스튜디오>는 적극적으로 데이트 상대를 찾는 젊은 남녀로부터 인기를 얻었다.

처음에는 출연자 섭외에 난조를 겪었던 제작진들의 ‘괜찮은 후보 찾기’ 노력으로 수준있는 출연자들의 섭외가 많아져 <사랑의 스튜디오>의 인기는 나날이 높아졌다.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쓴 출연자부터 회사의 든든한 지원을 받은 출연자까지 다양한 사연을 가진 출연자들은 최종 선택을 하기 전까지 총 3차례에 걸쳐 자신을 표현했다.

이후 학력, 외모 등을 갖춘 수준높은 출연신청자가 많아지며 신청하고 최소 6개월을 기다려야 출연할 수 있었다. 치열한 경쟁 탓에 출연자의 부모가 몰래 뒷돈을 건내거나 울며 제작진을 협박하는 등 웃지 못할 에피소드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오랜 기간 동안 방송한 탓인지 짝을 찾기 위한 출연자들의 꼼수(?)에 대비한 제작진의 출연진 숨기기 노하우 또한 다양했다. 당시 촬영장을 설명한 한 기사에 따르면 “상대방 출연자와 마주칠 것을 우려한 제작진의 철저한 계산 때문에 녹화 전까지는 화장실조차 제작진의 허락을 받고 가야 할 만큼 엄격히 격리되어 있다”고 했다.

2001년 10월, 7년 동안 1432쌍의 남녀가 출연하고, 총 47쌍의 결혼 커플을 만든 <사랑의 스튜디오>는 시청률이 10%의 낮은 시청률로 막을 내렸다. 이에 MBC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장수 프로그램이 사라지는 것이 안타깝다”며 “청춘남녀를 위한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들어 달라”는 시청자들의 의견이 많았다.


원조 77년 MBC <청춘만세> 
건전한 데이트 상대 선택

일반인들이 참여하는 중매 프로그램이 많았던 90년대 초반과는 달리 90년대 후반부터는 일반인과 연예인을 함께 출연시키는 중매 프로그램들이 생겨났다.

99년 2월에 방송된 SBS <남희석·이휘재의 멋진 만남>이 그 중 하나다. 개그맨 이휘재와 남희석이 진행한 <멋진 만남>은 한 명의 일반인 여성이 출연하여 두 MC와의 이색 데이트를 한 후 최종적으로 한 명의 MC를 선택하는 방식이다. 잘생긴 외모와 재치있는 입담으로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두 MC와 데이트를 하기 위해 출연 신청하는 여성이 매주 100명을 넘으며 시청률 30%에 육박하는 등 많은 인기를 끌었다.




<멋진 만남>의 담당 PD는 당시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자신을 소개하는데 부끄러움이 없어진 세태 변화와 남녀간의 사랑이라는 원초적 재미가 상승작용을 일으키고 있다”며 프로그램의 인기비결을 밝혔다.

방송 6개월 만에 MBC의 <사랑의 스튜디오>에 출연한 여성이 <멋진 만남>에 중복 출연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출연자의 중복출연 경위와 사과의 글을 게재하며 제작진의 잘못을 인정한 <사랑의 스튜디오>와 달리 <멋진 만남>은 해명조차 하지 않아 시청자에게 비난을 받았다.

이후 20%로 시청률이 떨어지며 2000년 9월부터 남희석·이휘재 대신 가수 이지훈, 홍경민, 배우 이동건이 <멋진 만남>을 진행했지만 한 달 만에 막을 내렸다.


신인스타 등용문
시나리오 의혹도

이후 연예인과 일반인의 만남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프로그램은 2000년 방송한 KBS <산장미팅 장미의 전쟁>다. <산장미팅 장미의 전쟁>은 KBS <1박2일>의 나영석PD가 조연출한 프로그램으로 많은 여성들의 로망인 남자 연예인들이 출연하며 인기를 끌었다.

<산장미팅 장미의 전쟁>은 가수 이민우, 이지훈, 이성진 등이 출연해 일반인 여성과 짝을 이뤄 게임을 하고 선택을 받지 못한 출연자들은 산장을 떠나는 방식이다. 출연자들이 장미로 중간 선택을 하고 진실게임을 통해 속마음을 이야기하는 등 이성 앞에서 솔직하고 진지한 출연자의 모습에 반전까지 더해진 최종 선택은 재미를 더했다.

하지만 <산장미팅 장미의 전쟁>은 외모가 걸출한 여성 출연자들이 일반인이 아닌 연예인 지망생이거나 무명연예인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연예인 입문 프로그램’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또한 선택받기 위해 경쟁이 치열해지는 출연자들과 탈락자 선정 시 한 사람을 지목해 탈락 이유를 말하는 방식이 왕따를 조장하는 비인간적인 방식이라는 비판도 적지 않았다.

결국 매주 바뀌는 상대마다 사랑을 표현하는 남자 연예인들과 인위적인 방식으로 인해 <산장미팅 장미의 전쟁>은 1년여 만에 시청자들의 외면을 받고 폐지됐다.

결혼 전제 SBS <짝>
외모와 스펙 부각

2005년 시작한 MBC <좋은 사람있으면 소개시켜줘>는 개그맨 박수홍과 박경림이 진행을 맡아 일반인 여성 1명과 남성 4명과의 만남을 주선한 프로그램이다. 게임을 통해 상대를 탐색하는 과거 프로그램들과 달리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시켜줘>는 출연자들의 대화로 이루어졌으며 국내 최초로 여성 출연자의 어머니가 함께 등장했다.

기존 프로그램에서도 출연자 어머니가 출연하는 경우는 있었으나 방청객에서 눈빛으로만 응원하는 정도였다. 그에 반해 <좋은 사람있으면 소개시켜줘>는 사위감을 찾는 어머니에 초점이 맞춰졌다.

‘중매쟁이’ 방송의 결정판이라는 평을 받은 <좋은 사람있으면 소개시켜줘>는 ‘대한민국 최고의 신랑감’들이 등장했다.

그러나 의사, 사업가 혹은 대기업에 종사하는 소위 엘리트급의 스펙을 갖춘 남성 출연자들의 등장과 어머니의 결정에 따른 소극적인 출연여성의 모습들로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지 못했다.

당시 해당 프로의 진행자였던 박경림이 한 남성 출연자와 교제 1년여 만에 결혼하며 프로그램을 통해 유일하게 결혼에 성공한 사례가 됐다.

진행자 빠지고
“알아서 해!”

지난 2011년 3월 첫 방송된 SBS <짝>은 수많은 논란에도 나름 장수하고 있는 중매 프로그램이다. 지금까지 120회 방송을 거치며 총 650명이 넘는 남녀가 출연했다.

전형적인 중매 프로그램들과 달리 결혼을 전제로 하는 <짝>은 기존 프로그램들의 핵심인 유희적인 요소를 없앴다. 또한 남녀 출연자들을 엮는 역할을 사회자 없이 출연 당사자들의 몫으로 넘겼다.

10명이 넘는 일반인 싱글남녀가 6박7일동안 <애정촌>이라는 특정장소에서 함께 생활을 하며 자신의 데이트 상대를 찾는다. 도시락 선택, 데이트권 등 주어진 기회 외에 출연자들의 호감을 표현하는 방식은 자유다.

또 돌싱이나 노총각·노처녀 특집으로 출연자의 나이가 20∼30대 초반이 다수였던 중매 프로그램의 암묵적인 규칙도 무너뜨리며 많은 싱글 남녀에게 연애의 기회를 주고 있다.

<짝> 돌싱특집에 출연했던 한 남성 출연자는 “사실 이혼 후 속된 말로 ‘이번 생은 망했구나’ 싶었다”며 “다시는 사랑을 할 수 없을 줄 알았는데 ‘짝’에 출연하며 나의 인생이 아직 반이나 남았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잊고 있던 사랑의 설렘과 희망을 되찾았다”며 <짝>의 가치를 입증했다.

허나 남자는 스펙, 여자는 외모를 중요시하는 불변의 진리를 증명하는 듯한 출연자 선정부터 출연자들의 홍보 목적의 출연이나 사생활이 드러나며 프로그램의 ‘진정성 여부’가 연일 논란이 되고 있다.
 
최현경 기자 <mw2871@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소개팅으로 뜬 스타들

지성과 결혼한 이보영, 과거에…

본문/얼마 전 지성과의 결혼으로 화제를 모은 배우 이보영은 <사랑의 스튜디오>에 출연한 경험이 있다. 2002년 22살의 나이로 서울여자대학교 국문학과에 재학중이던 그는 여자 3번으로 출연하며 한 남성출연자와 커플이 성사됐다. 이후 방송에서 출연 당시를 “제일 핫 했을 때다”라고 고백했지만 네티즌은 “얼굴이 달라진 것 같다”는 반응을 보였다.

2000년 미스코리아 경기 미 출신으로 SBS 드라마 <하늘이시여>를 통해 이름을 알린 배우 윤정희 또한 <산장미팅 장미의 전쟁>에 출연하며 얼굴을 알렸다. 윤정희는 <산장미팅 장미의 전쟁> 1기로 출연하며 가수 이민우와 파트너가 되어 뽀뽀를 하는 등 적극적인 태도로 관심을 모았지만 4주 만에 탈락했다.

이후 한 예능프로에 출연해 “(이민우) 팬들이 어떻게 제 메일을 아셨는지 저한테 메일을 보내셨어요. 제목이 ‘언니 좋아요’, ‘언니 팬이에요’라고 적힌 메일이 와서 기쁜 맘으로 메일을 열어봤더니 ‘왜 꼬리쳐?’, ‘네가 뭔데?’라고 이민우 팬들이 보낸 비방메일이었다”며 당시 일반인이었던 그는 그마저도 신기했다고 고백했다.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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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장 올인’ 민주당 그래도 불안한 이유

‘서울시장 올인’ 민주당 그래도 불안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내년 6월 치러질 지방선거의 최대 격전지는 단연 서울시다. 서울시에 깃발을 꽂는 쪽이 전체 선거의 승리라 봐도 무관하다는 해석도 나온다. 진보 진영에서는 당원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오세훈 대항마’를 자처하는 후보군이 속속 등장했지만, 서울 시민의 마음까지 얻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지난 10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전국 지역위원장 워크숍에서 제9회 지방선거(이하 지선) 승리라는 목표를 세웠다. 이달 중으로 지선 공천 룰을 확정해 빠르게 선거에 임하겠다는 방침이다. 큰 틀로는 ▲당원 민주주의 실현 ▲완전한 민주적 경선 ▲깨끗하고 유능한 후보 선출 ▲여성·청년·장애인 기회 확대 등 4대 방향이 제시됐다. 출사표 만지작 민주당은 이번 지선의 성격을 ‘완전한 내란 종식’으로 규정했다. 민주당 전국 지역위원장은 워크숍에서 ‘이재명정부 성공과 지선 승리를 위한 더불어민주당 전국지역위원장 결의문’을 통해 “국민의 준엄한 명령을 받들어 민생회복·내란청산·개혁완수라는 역사적 사명을 반드시 이루어 낼 것을 결의한다”고 밝혔다. 내년 지선서 압도적 승리를 이끌어냄으로서 ‘무능 부패한 국민의힘 지방권력’을 심판하고 ‘진짜 자치분권 균형성장’의 시대를 만들겠다는 방침이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 또한 “이정부 성공을 위해 당이 무엇을 할 것인지에 모든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다가오는 지선은 민주당의 책임과 기회의 시험대다. 당의 힘을 모아 이정부의 성공과 지선 승리라는 두 목표를 함께 이뤄낼 것”이라고 밝혔다. 주목도가 높은 서울시장 선거 최종 후보가 되는 것만으로도 존재감을 키울 수 있다. 차기 서울시장 임기는 2030년으로 21대 대통령선거 시기와 맞아떨어진다. 그동안 서울시장은 대선주자로 가는 지름길로 여겨졌던 만큼 정치인으로서 큰 꿈을 꾸는 이들에게는 ‘일생일대의 기회’다. 민주당은 서울시장 선거 본선행 티켓을 놓고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원내 의원들의 공식 출마 선언 이후에도 자칭타칭 물망에 오른 진보 인사들이 시기를 재고 있어 다양한 경선 구도가 그려질 것으로 관측된다. 박주민 의원은 민주당 내에서도 가장 먼저 공식 출마 의사를 밝힌 인물이다. 그는 “서울이 ‘맏이’ 역할을 하며 지방 도시들과 함께 성장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며 일찌감치 선거판을 예열했다. 뒤이어 민주당 서영교 최고위원이 출사표를 던졌다. 조희대 대법원장 저격수를 자처하며 존재감을 키운 그가 이번에는 “서민을 위해 일 잘하는 시장이 필요하다”며 오세운 서울시장 대항마로 나섰다. 서 최고위원은 “(오 시장은) 토지거래허가구역을 무리하게 해제하면서 부동산 폭등을 자초했다”며 “이태원 참사의 충격이 채 가시지도 않은 시점에서 큰 책임이 있는 용산구청장에게 서울시 주최 지역축제 안전관리 대상을 주는 등 시민의 요구, 시대의 요구를 전혀 읽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전현희 최고위원은 “국정감사 이후 결단을 내리겠다”며 가능성을 열어뒀다. 그는 지난달 오마이TV ‘박정호의 핫스팟’과의 인터뷰에서 “정치적 중요성이 매우 크기 때문에 반드시 승리할 후보가 서울시를 탈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그런 자리에 과연 제가 적합한 후보인지 고민을 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큰 판 향하는 의원들 오세훈만 꺾으면 끝? 지난 조기 대선 당시 ‘민주당 골목골목선대위 서울위원장’을 맡아 서울시 정책 로드맵을 짜는 데 참여한 만큼 출마 명분은 충분하다는 평이 나온다. 마찬가지로 원내 인사인 박홍근 의원과 김영배 의원도 몸풀기에 나섰다. 특히 박 의원은 자신의 거취와 관련해선 지난해 8월 당시 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과 사전 논의가 있었던 점을 강조만 만큼 오랜 고심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 원내대표를 지낸 홍익표 전 의원도 “서울시장 선거 출마를 생각하고 준비 중”이라며 도전을 시사했다. 홍 전 의원은 가장 민감한 서울 부동산 문제를 겨냥하는 등 오 시장의 강남권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를 집값 상승의 원인으로 꼽으며 저격에 나섰다. 박용진 전 의원의 출마 가능성도 점쳐진다. 박 전 의원은 “아직 정해진 건 없다”면서도 연일 오 시장을 때리며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최근에는 “민주당의 정치가 ‘영포티(젊어 보이려 애쓰는 40대)’ 정치로 전락하지 않도록 몸부림쳐야 한다”며 청년세대와의 통합을 강조하기도 했다. 원외에서는 정원오 성동구청장의 이름이 눈에 띈다. ‘K-브랜드지수’에서 서울시 지자체장 부문 1위 타이틀을 따낸 그는 활발한 SNS 활동으로 두터운 지지층을 보유한 인물이다. “나 서울 시민인데, 구청장님 좀 같이 씁시다” 등 밈(인터넷 유행 콘텐츠)이 온라인에 퍼지면서 팬덤을 등에 업고 민주당 원내 인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지 이목이 쏠린다. 민주당 후보군은 일동 ‘오세훈 때리기’에 집중하고 있다. 오 시장의 야심작인 한강버스가 연일 구설수에 오른 데 이어 최근 서울시가 최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서울 종묘 맞은편에 높이 145m 건물이 들어설 수 있도록 재정비촉진계획을 변경한 것을 두고 맹공에 나선 것이다. 지난 11일 민주당 문화예술특별위원회는 기자회견을 통해 종묘 재개발 논의를 정면으로 반박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당내 서울시장 후보군인 박주민 의원과 서영교 최고위원을 비롯한 전현희·김영배·박홍근 의원 등이 대거 참석했다. 특히 박홍근 의원은 “차기 시장, 그리고 대권 놀음을 위해 종묘를 제물로 바치겠다는 것이냐”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서울 종묘가 서울시장 선거의 새로운 전장이 된 셈이다. 이리저리 혼돈의 표심 민주당에서는 윤석열정부 조기 퇴진으로 치러진 조기 대선 승리의 후광효과가 지선까지 이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번 지선 기조를 내란 청산으로 내세운 것 역시 ‘내란 VS 헌법 수호’ 프레임이 유효하다고 본 것이다. 다시 꺼내든 내란 종식 키워드가 내년 지선에서도 먹힐지는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지선 압승이라는 낙관론에 젖어 서울시 민심을 제대로 훑지 못한다면 ‘이정부 심판론’으로 되치기당할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지점이다. 민주당 출신의 한 정치권 관계자는 “서울시 선거는 ‘오세훈만 꺾으면 당선’ 같은 일차 방정식이 아니다. 오 시장이 명태균 게이트, 한강버스 등 각종 리스크에 발목 잡혀 약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서울시민이 내란 종식을 외치는 후보에게 표를 던지겠냐는 근본적인 질문에서 다시 출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구 특성만큼 변수도 많은 서울시 자체가 첫 번째 허들이다. 서울은 마포·용산·영등포·광진·동작·성동·강동·중구 등 13개 선거구를 일컫는 한강벨트를 따라 보수층이 포진해 있어 보수 텃밭으로 여겨지지만, 지난해 치러진 총선에서 민주당이 서울 48석 중 37석을 얻어 과반이 넘는 지역에 파란 깃발을 수놓았다. 그럼에도 조기 대선에서 당시 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서울시에서 각각 47.1%, 41.6%를 얻어 두 후보 간의 격차는 5.5%p에 불과했다. 여기에 범보수로 여겨지는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가 얻은 9.9%를 더하면 보수 진영이 진보 진영을 앞서게 된다. 비상계엄이라는 특수 상황을 경험했지만 40%에 달하는 서울 시민이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두 번째는 한강벨트를 따라 빼곡히 자리 잡은 부동산이다. 정부의 10·15 부동산 정책을 통해 서울시 민심을 움직이는 건 진영 간의 논리 싸움이 아닌 정책, 그중에서도 집값이라는 게 명확해졌다. 서울 전역을 토지거래허가구역과 투기과열지구·조정대상지역으로 지정하는 이재명표 부동산 대책이 발표된 지 약 보름 뒤 민주당 지지율이 1주일 새 10%포인트 하락하며 국민의힘에 오차범위 내에서 역전됐다. 지지층에 휩쓸릴라 한국갤럽이 지난달 28~30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2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민주당의 서울 지지율은 31%로 전주 대비 10%p 떨어졌다. 반면 국민의힘은 12%p 오른 32%로 집계됐다. 서울을 대상으로 고강도 대책이 발표되자 서울 민심에 본격적으로 영향을 끼쳤다는 해석이 나왔다. 이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대한 전체 긍정 평가는 전주 대비 1%포인트 상승해 57%를 기록했지만, 민주당과 마찬가지로 서울 지역에서는 8%p 하락한 47%로 나타났다. 해당 조사의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로 응답률은 12.6%다.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와 한국갤럽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결국 이번 서울시장 선거는 진영 간의 대립구도가 아닌 인물과 정책으로 승부를 봐야 한다는 의견에 초점이 맞춰지지만, 진보 진영 후보들은 본선 진출을 위해 당원의 표심을 얻는 일을 우선해야 한다는 딜레마에 빠졌다. 지선을 앞두고 민주당 지도부가 권리당원 권한을 대폭 강화하겠다고 밝힌 만큼 국민의힘과 잘 싸우는 ‘전투적인 후보’가 경선에서 압도적으로 유리하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차기 서울시장 후보 적합도를 묻는 여론조사에서 진보·여권 후보 가운데 정 구청장이 1위를 차지했다. 만일 정 구청장이 출마 의지를 굳히더라도 박주민·서영교 의원 등 쟁쟁한 원내 인사를 제치고 당원의 선택을 받을지 확신할 수 없다. 인지도면은 물론 민주당 지선 기조가 내란 청산으로 자리 잡은 한 12·3 비상계엄을 해제한 인물에게 더 많은 정치적 유산과 서사가 쥐어지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박 전 의원은 출마 가능성을 시사한 동시에 민주당 강성 지지층에게 집중적으로 질타 받았다. 2023년 8월 당시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이던 시절 체포동의안을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지던 중 불체포특권 포기 성명에 이름을 올린 31명의 의원 중 한 명인 만큼 경선 통과가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반면 민주당 지지층으로부터 꾸준히 이름을 알려온 경우 경선 통과가 수월하지만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 ‘개딸(개혁의 딸들)이 밀어준 강경파 후보’라는 꼬리표가 붙는다면 정책이나 행정가로서의 자질은 묻히고 이에 거부감을 느낀 중도층의 표가 분산될 것이란 점에서다. 당원 마음 잡으랴, 중도층 안으랴 김민석·강훈식 ‘투톱’ 차출설도 경선과 본선을 놓고 민주당의 딜레마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 대통령의 신임을 받는 ‘김민석·강훈식 차출설’이 돌면서 서울시장 선거판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인지도가 높고 행정가 면모가 돋보이는 김민석 국무총리와 강훈식 대통령실비서실장을 서울시장 후보로 내보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국정 투톱이 또다시 정치의 한가운데에 들어섰다. 앞서 김 총리는 여러 차례에 걸쳐 서울시장 출마 가능성에 선을 그어왔지만 종묘 재개발 논쟁에 뛰어들면서 다시 불을 댕겼다. 지난 10일 김 총리가 서울 종묘 일대를 찾아 “무리하게 한강버스를 밀어붙이다 시민의 부담을 초래한 서울시로서는 더욱 신중하게 국민적 우려를 경청해야 한다”고 우려를 표했는데, 이를 두고 오 시장이 “국민 감정을 자극하려 하는데 이는 선동”이라며 지선을 겨냥한 발언이라고 의심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한 차례 서울시장에 도전했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이름도 다시 거론된다. 김 총리가 서울시장 대신 당 대표로 나서고, 직을 내려놓은 정 대표가 서울시장 도전 후 대권 코스를 밟는 시나리오다. 3대 개혁을 두고 당정 불협화음이라는 의심의 눈초리가 따라붙는 만큼 교통정리를 통해 당정 서로에게 윈윈(win-win)하는 방법으로 꼽힌다. 우선 민주당 관계자들은 앞선 두 사람의 출마 가능성이 극히 낮다고 보고 있다. 가장 중요한 시기에 총리나 대통령비서실장 자리에 생긴 공백은 국정 운영에 차질이 빚을뿐더러 정부 출범 1년도 되지 않은 시기에 지선 후보로 차출할 시 모양새가 좋지 않다는 게 공통된 설명이다. 정 대표의 서울시장 도전 여부 역시 “이제 겨우 (취임) 100일이 지났다”며 일축했다. 이처럼 ‘스타 정치인’ 후보군이 물망에 오르자 당 일각에서도 지역 일꾼을 뽑는 지선의 의미가 퇴색될까 우려하는 모양새다. 경선 당락을 결정할 당원의 표심을 사로잡기 위해 지나친 선명성 경쟁이 이어질 경우 중도층의 눈살을 찌푸리게 할 거라는 지적도 나온다. 수많은 변수들 여권 관계자는 “지선 결과를 미리 예단하기엔 시간이 많이 남았으니 차분하게 기다리면서 후보들의 공약을 분석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이어 “앞으로 종묘 재개발 같은 이슈가 전방으로 나올 텐데 그때마다 (민주당도) 네거티브로 맞받아치면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우리 당원도 내란 종식과 민생회복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사람을 최종 후보로 뽑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터줏대감 눈치 보는 국힘? 더불어민주당과 마찬가지로 국민의힘 역시 서울시장을 이번 지방선거의 최대 격전지로 보고 있다. 서울시 사수를 위해 후보군을 물색하고 있지만, 오세훈 시장의 임기가 남은 만큼 누구 하나 선뜻 도전장을 내밀지 못하는 분위기다. 이에 오 시장의 재도전이 유일한 방법으로 여겨지는 모양새다. 오 시장은 “시민들이 어떤 평가를 해줄지 지켜보며 거취를 분명히 하겠다”며 3선 도전 가능성을 내비쳤다. 명태균 게이트, 한강버스, 종묘 재개발 등 리스크를 안고 있지만 현역 프리미엄에 기댄다면 시도해 볼 가치가 충분하다고 본 셈이다. 한때 경기도지사 후보로 거론됐던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이 이번에는 서울시장 물망에 올랐다. 서울시장 출사표를 던진 민주당 박주민 의원이 “오 시장이 아닌 나 의원을 상대할 가능성이 있다”는 취지로 말하면서 이목이 쏠렸지만 정작 나 의원은 서울시장 도전 가능성에 대해 말을 아끼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