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정 성매매의 덫

  • 강현석 angeli@ilyosisa.co.kr
  • 등록 2013.09.02 09: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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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인도 모델도…팔려가는 접대부들

[일요시사=사회팀] 원정 성매매가 업계 종사자를 거쳐 일반인들로까지 확대되는 모양새다. 그러나 돈을 노리는 포주와 브로커들은 고수익이라는 위험한 덫을 놓은 채 호시탐탐 먹잇감을 기다리고 있다.



지난해 한국은 미국 국무부가 매년 발간하는 '인신매매실태 보고서(Trafficking in Persons Report)'에서 "성매매의 근원지(source), 경유지(transit) 그리고 목적지(destination)"라는 평가를 받았다.

2012년 기준 여성가족부가 공식 집계한 한국 국적의 성매매 여성은 27만여명. 전체 여성 인구가 약 2500만명(통계청 2013)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인구 대비 1%가 넘는 여성이 관련 업계에 종사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성매매 근원지
성매매 수출국

특히 집계된 27만명 외에도 과거 성매매 경험이 있거나 정부가 미처 파악하지 못한 성매매 여성 인구를 합산하면 관련 업계 종사자는 더 늘어날 것으로 관측된다. 언론이 늘 써오던 '성매매 천국'이란 수식어가 괜히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런 세간의 평가를 인정하듯 미 국무부가 지난 2013년 6월 발표한 인신매매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작년과 같은 내용이 명시돼 있다. 미국의 시각에서 본 2013년의 대한민국은 여전히 성매매의 '근원지'이자 '경유지'이고, 또 '목적지'이다.


아울러 한국은 해외에서 성을 거래하는 시쳇말로 '성(性)진국'이기도 하다. 보고서는 "일부 한국 여성들이 국내 및 미국, 캐나다, 일본, 호주와 같은 곳에서 성매매에 유입되고 있으며, 이들 중 일부는 빚을 떠안은 채로 브로커에 의해 성매매를 강요받고 있다"고 고발했다.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이들은 왜 국내가 아닌 미국, 캐나다, 일본, 호주 등에서 성매매를 벌이고 있는 것일까.

성 종사자 27만명…캐나다·호주로 '밀행'
워킹홀리데이 통해 대학생 해외성매매 급증

지난 21일 부산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는 한국 여성들에게 일본 등지에서 성매매를 알선한 혐의로 브로커 김모(33·남)씨와 한모(32·여)씨 등 5명을 구속했다고 밝혔다. 또 성매매 여성 47명, 포주·브로커·사채업자 등 18명도 같은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고 알렸다.

경찰에 따르면 성매매로 적발된 여성 대부분은 20대 중후반 나이로 이중엔 전직 연예인 ㄱ씨와 레이싱 모델 ㄴ씨가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유학생, 전직 공무원, 운동선수 등 언뜻 보기에는 성매매와 큰 연관이 없을 것 같은 이력도 원정 성매매 명단에서 확인됐다. 아울러 경찰이 확인한 성매매 여성 중에는 평범한 가정주부도 있어 관계자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업계에 따르면 사실 원정 성매매는 완전히 새로운 얘기는 아니다. 지난 2011년 있었던 이른바 '원정녀' 사건은 원정 성매매가 해외 업주와 연계해 이미 국내외에 뿌리내리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였다.


지난 2011년 10월 서울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는 일본 현지인들과 결탁해 원정 성매매를 알선한 혐의로 최모(35)씨 등 브로커 6명과 성매매 여성 16명을 검거했다.

브로커 최씨 등은 '1달에 3000만원'이라는 큰돈을 벌 수 있다는 말로 꼬드겨 원정갈 여성들을 모집했다. 그리고 인터넷 등을 통해 정보를 접한 여성들은 생활비 마련을 위해 원정 성매매를 결심했다.

이들 대부분은 유흥업소에서 일하던 여종업원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개중에는 성매매를 전문으로 해 본 적 없는 여대생도 포함돼 있던 것으로 전해졌다.

최씨 등은 일본으로 귀화한 포주 스즈키(45·여)씨가 운영하는 도쿄 한 성매매 업소에 여성들을 넘겼다. 이들은 소개비 명목으로 1인당 100만∼200만원을 챙겼다.

그리고 여성들을 소개 받은 스즈키씨가 맨 처음 한 일은 여성들의 누드사진과 프로필 사진을 찍어 인터넷에 올리는 일이었다. 해당 사진을 본 일본 성매수자는 각자가 원하는 여성을 지목해 거래를 했다. 이들은 시간당 2만~15만엔의 화대를 업주 측에 지불했다.

전직 연예인도
레이싱 모델도

하지만 "1달에 3000만원을 보장한다"는 약속은 거짓이었다. 먼저 스즈키씨는 성매매 여성들이 벌어들인 돈의 40%를 상납 받아 업소 운영비로 사용했다. 더불어 성매매 여성들은 현지 숙박비와 성형수술비, 휴대전화 이용료, 홍보용 누드사진 촬영비 등으로 낸 선불금에 월 10%의 이자까지 얹어 매주 스즈끼씨에게 건넸다. 이들 중 일부는 600만∼1000만원의 빚을 진 채 일본에 체류해야 했다.

특히 일본에서 2차례 원정 성매매를 했던 ㄷ씨는 국내로 돌아와 자신의 원정 성매매가 찍힌 동영상이 인터넷에 유포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그 충격으로 한동안 정신과 치료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돈을 벌기 위해 원정을 떠났다. 하지만 돈을 벌지 못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단기간 고수입이 목표였고, 현지 업체와 연계된 브로커가 성매매에 개입됐다. 이번 사건의 경우도 성매매 동기와 수법은 2년 전 '원정녀' 사건과 유사하다. 다만 포주가 사채업자와 짜고 인신매매를 동반하는 등 범죄 수위가 더 악랄해진 것으로 드러났다.

한씨 등은 지난해 2월부터 지난달까지 일본 도쿄 인근 우그이스타니에 업소를 차려놓고 한국 여성들을 데려다가 성매매를 시켰다. 한씨 등은 여성들에게 "월 2000만∼3000만원을 벌게 해주겠다"고 유혹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웠던 유흥업소 종업원 J씨는 선불금으로 175만엔(한화 약 2000만원)을 받고 일본으로 향했다. 수입이 거의 없던 연예인 ㄱ씨도 한씨의 꼬드김에 넘어갔다. 이들은 대개 브로커와 얘기를 나눈 후 원정 성매매를 선택했다. 브로커는 소개비 명목으로 1인당 100만∼150만원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브로커들은 외국행을 꺼리는 여성 등을 꾀어내기 위해 무속인을 고용, "올해 '삼재'가 있다. 일본에 가면 대박난다"고 속이기도 했다. 무속인은 그 대가로 1인당 70만∼1000만원을 받아 챙겼다.


일본에 간 성매매 여성들은 업주가 소개한 스튜디오에서 프로필 사진을 찍었다. 상반신을 노출한 홍보 영상이 가미됐다. 전단과 인터넷에는 이들을 찍은 나체 사진과 영상이 나돌았다. 그리고 일본 성매수자들은 성행위를 하기 위해 포주에게 전화를 걸었다.

포주는 연락이 오면 자동차로 여성들을 태워 도쿄 시내 가정집, 호텔, 모텔 등지로 출장을 보냈다. 여성들은 그곳에서 하루 5∼10명의 남자를 상대했다. 그리고 10일마다 한 번씩 240만원을 포주에게 송금했다. 포주는 모두 10회에 걸쳐 원금을 회수했다.

하지만 반복된 성관계에 건강이 악화된 여성도 있었다. ㄱ씨보다 앞서 일본에 가있던 J씨는 몸이 아파 포주가 정한 기한 내의 이자를 갚지 못했다.

그러자 한씨 등은 J씨의 여권을 빼앗아 귀국을 막은 뒤 일본 센다이 지역의 성매매 업소로 J씨를 175만엔에 되팔았다. 여권을 빼앗긴 J씨는 한국 경찰의 수사가 시작되고 나서야 겨우 풀려났다. 일본 내 한국 성매매 여성의 인신매매가 적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연리만 346%인 살인적인 이자가 여성들을 짓눌렀지만 이들 중 고객이 많았던 여성 8명은 브로커의 도움으로 졸업증명서 등을 위조해 비자를 발급받고 1∼2년간 장기 체류했다. 또 일부 여성들은 미국 LA, 괌을 비롯해 호주 멜버른과 대만 타이베이 등을 오가며 원정 성매매를 벌여온 것으로 드러났다. 현재 경찰은 국내외 브로커들을 중심으로 원정 성매매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한편 연예인 ㄱ씨는 경찰 조사를 받자마자 다시 외국으로 건너가 현재는 연락을 끊은 상태라고 전해졌다. 성매매 여성 상당수는 비자가 만료되면 한국으로 돌아왔다가 다시 외국으로 건너가는 생활을 반복하고 있다.


호주서 활개
미국도 여전

앞서 <일요시사>는 '워킹홀리데이 해외원정 성매매 실태 집중 조명' 등의 기사를 통해 원정 성매매를 다룬 바 있다.

특히 호주에서의 성매매는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갈수록 증가세를 보이는데 1년 사이 호주 유학을 다녀온 복수의 유학생은 "아무리 적게 잡아도 여자 유학생 10명 중 2명은 성매매를 시도했거나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남들 이목도 피할 수 있고, 큰돈을 만질 수 있다는 점이 한국 대학생들을 유혹하고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호주는 성매매가 합법인 나라다.

호주 원정 성매매는 대부분 워킹홀리데이를 악용한 형태로 나타난다. 호주 정부는 지난 1995년 한국 정부와 워킹홀리데이 비자 협정을 맺으면서 18∼30세 한국인에게 일정 기간 동안 관광과 취업을 동시에 허락하는 비자를 발급해왔다.

'호주 원정 성매매' 기사에 따르면 현재 경찰은 상당수의 여대생들이 불법 성매매를 위해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발급받고, 호주로 향하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호주에 도착한 이들은 대부분 현지에 있는 한국인 브로커를 통해 성을 제공할 업소를 알선 받는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을 무대로 활동하는 브로커들처럼 호주의 브로커들도 달콤한 제안을 한다. 1달 400만∼1000만원이 넘는 고수입은 물론 일을 하는 시간이 4∼5시간 내외라 나머지 시간은 공부도 하고, 관광도 할 수 있다는 감언이설을 한다.

월 2000만∼3000만원 보장?
사채빚 지고 '구렁텅이로'
그녀들은 지금…하루 12시간 7명 상대

그러나 하루 5∼10명에 가까운 남성들과 성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점. 성병에 노출될 확률이 높다는 점. 경우에 따라 불법 감금될 수 있다는 점 등을 감안하면 원정 성매매는 대학생들에게 굉장한 위험이다.

특히 한국인과 같은 외국인 여성들이 주로 일을 하는 성매매 업소는 대부분 허가받지 않은 경우가 많은 것으로 전해진다. 아울러 무허가 업체다 보니 폭언 및 폭행은 기본이고, 성추행이나 인종차별을 당했다는 소리도 끊이지 않는다.

그러나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원정을 가는 것보다 더욱 심각한 건 역시 국내 브로커를 거친 단기 입국이다. 브로커들은 "1달에 2000만원을 벌 수 있다"는 허위 광고로 일종의 사기극을 벌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출국 전 "호주에서 일하려면 먼저 성형수술을 받고 가라"며 돈을 빌려준 뒤 꿔준 돈을 사채로 만들어 여성을 착취하는 행태가 몇 년째 반복되고 있다.

한 경찰 관계자는 "원정 성매매로 돈을 벌어 성공했다는 얘기는 들은 적도 본 적도 없다"며 "이제껏 많은 성매매 여성들을 조사했지만 그 과정에서 자신들의 행동을 후회하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하지만 한 번 발을 들이면 빼기 쉽지 않은 곳이 또 성매매 업종이다. 지난 13일 서울지방청 국제범죄수사대가 밝힌 미국 원정 성매매 실태에 따르면 브로커들의 구인광고에 넘어가 미국으로 떠난 200여명의 성매매 여성 중 절반은 불법체류자로 전락해 지금도 현지에서 성매매로 생계를 잇고 있다.

앞서 브로커들은 유흥업소 종업원 구인사이트 등에 "월수입 2500만∼3500만원을 보장합니다" "출국부터 입국까지 에스코트해드려요" "LA에서 함께 일할 언니 초대해요" 등의 광고로 원정 성매매 여성들을 모집했다.

또 돈을 벌지 못할 것을 두려워하는 여성들을 위해 일부 포주는 개런티 계약을 맺기도 했다. 일반 개런티 계약은 3개월에 2000만원. 하지만 업주는 한국인의 성매매로 같은 기간 1억5000만원을 벌 수 있었다.

원정을 떠난 여성들은 매달 1000만∼1500만원의 수익을 올리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숙박비, 미용비 등으로 월 200만∼300만원의 고정비도 함께 지출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악덕 포주를 만난 여성들은 하루 12시간 이상 일하면서 하루 평균 7.2명의 손님을 받고, 수입은 포주와 6대4로 나누는 착취를 당하고 있었다. 이들은 일본·호주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한국을 떠날 때 받은 선금의 이자가 불어나 그 빚을 갚기 위해 성매매를 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미국 국토안보부와 수사공조를 통해 현지에 있는 또 다른 성매매업주 등 6명에 대한 국내 송환을 추진하는 등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 인력만으로는 현지 성매매 여성의 연락처조차 얻기 힘든 상황이다.

국가 망신이다
일부 과장됐다

일부 외신보도와 현지인의 블로그 등을 검색하면 한국인의 원정 성매매를 다룬 글을 비교적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내용은 '한국인의 하룻밤 가격이 344달러다' '한국 여성들이 대만을 오고 가며 단체 성매매를 하고 있다' '난 호주인인데 한국에서 왔다는 성매매 여성의 신상은 이렇다'는 등 다소 불편한 내용이다.

그래서 원정 성매매가 '국가적 망신'이라는 비난도 있다. 앞서 일부 언론은 약 3만명 정도의 여성이 일본에서 성매매를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통상 파악된 일본 상주 한국인(현지 거주 제외)이 18만∼20만명이고, 이중 남녀를 각각 9만∼10만명으로 잡아도 무려 33%에 이르는 여성이 성매매를 하고 있다는 주장은 다소 억측이라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국격은 차치하고라도 원정 성매매 시장은 여전히 활개라는 게 공통된 시각이다. 호주 한 거리의 위치한 붉은 색 벽돌집은 창문을 닫은 채 인터넷을 통해 성매수자의 전화를 기다리고 있었다. 해당 홈페이지에 따르면 그곳에서 성매매를 하고 있는 한국 국적의 여성은 모두 3명으로 파악됐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동남아 섹스관광 1위는?

한국 남자들이 더 하네∼

동남아시아에서 성매수를 목적으로 한 관광 1순위는 한국이라는 실태 보고서가 작성됐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지난 2012년 시행한 현지 실태 조사를 바탕으로 작성된 '동남아시아 아동 성매매 관광의 현황과 대책' 보고서에 따르면 "동남아시아 지역 성매매 관광객 수 1위는 한국"으로 조사됐다. 연구원들은 매년 동남아를 입국하는 관광객 수, 유흥업소를 이용하는 빈도, 피해 여성의 증언 등을 분석해 이 같이 발표했다. 특히 만 18세 미만 아동을 대상으로 한 성매매시장에서 한국 남성은 '독보적인 존재'라는 오명을 뒤집어썼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조사 결과는 이미 예견된 일이다. 앞서 유엔마약범죄국(UNODC)이 2010년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남성은 '동남아 지역 특히 캄보디아 태국·베트남 지역 아동 성매매 관광의 주요 고객'이라고 명시돼 있다. <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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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