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고발하는' 충격사회 실태

  • 강현석 angeli@ilyosisa.co.kr
  • 등록 2013.08.20 09:2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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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아빠 신고하는 기막힌 자녀들

[일요시사=사회팀] 최근 자녀가 부모를 고발하는 기막힌 상황이 잇달아 발생했다. 억울함을 호소한 아이들은 "부모가 나를 때렸다"며 경찰의 도움을 요청했다. 때린 부모들은 "교육이 목적이었다"고 반박했다. 이들 사이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을까.



지난 2010년께 중국에서 있었던 일이다. 중국전문매체인 <온바오닷컴>에 따르면 11살짜리 초등학생 A군은 "자신의 사생활이 침해당했다"며 법원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놀랍게도 A군이 지목한 피고소인은 A군의 부모였다.

A군은 "부모가 자물쇠를 열고 자신의 일기장을 꺼내봤으며 일기장을 통해 자신이 같은 반 여학생과 이성교제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면서 허난성 법원에 정식으로 재판을 요청했다. 그리고 사건을 심리한 재판부는 "미성년자지만 A군의 사생활은 법적으로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면서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당돌한 아들의 예상치 못한 승리였다.

아이는 펄펄
어른은 쩔쩔

이 기막힌 사건은 A군의 부모가 A군에게 사과를 하면서 마무리됐다. 국가 권력이 어른으로부터 침해받은 아이의 권리를 인정한 셈이다. 하지만 가족 내의 상하질서가 뚜렷한 한국 사회에서는 아이의 고발을 바라보는 곱지 않은 시선이 있었다. 인터넷을 통해 해당 뉴스를 접한 네티즌들은 "아이가 어떻게 부모를 신고할 수 있냐"며 믿기 힘들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이 믿기 힘든 일은 비단 먼 나라의 일이 아니었다.

지난 5일 오전 8시10분께 경기 수원서부경찰서에 한 통의 신고 전화가 접수됐다. 신고자는 이제 갓 9살이 된 초등학생 김모(9)군. 김군은 앳된 목소리로 "엄마가 술을 먹고 나를 때렸다"며 어머니 조모(43)씨의 폭행 사실을 알렸다.


경찰이 밝힌 내용을 토대로 종합한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경기 수원 권선구에 있는 한 자택, 그곳에서 조씨는 전날 마신 술이 덜 깬 상태로 아침밥상을 차렸다. 그리고 김군을 불러 "밥을 먹으라"며 식사를 권유했다. 하지만 김군은 손에 쥔 휴대전화를 놓지 않았다. 그건 김군이 최신형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하고 있었기 때문.

밥상 앞의 김군이 아침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자 엄마 조씨는 "빨리 밥 먹고 어서 도서관에나 가라"며 모두 10여 차례에 걸쳐 김군을 재촉했다. 그러자 김군의 입에서 생각지도 못한 욕설이 튀어나왔다. "XX, 짜증나네."

순간 열이 오른 조씨는 김군의 머리채를 잡고, 김군의 뺨을 두어 차례 때렸다. 엄마에게 맞은 김군의 코에서는 코피가 흘렀다.

피를 본 김군이 독해졌다. 손에 쥐고 있던 스마트폰을 두드려 조씨의 폭행 사실을 경찰에 신고한 것. 그리고 첫 번째 신고가 못미더웠는지 거듭 112에 전화해 "엄마가 뺨을 때렸다"며 신고 내용을 확인했다.

 아이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현장에서 마주한 뜻밖의 상황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화장실에서 나온 김군의 아버지가 사건 현장인 자택에 함께 있었기 때문. 김군의 아버지는 아들의 신고를 보고도 말리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초등학생 아들이 엄마를 신고한 것도 모자라 남편이 신고를 용인한 이 난감한 상황에 경찰도 잠시 당황했다는 후문. 하지만 조씨는 이내 폭력 등의 혐의로 인근 지구대에 연행됐다. 아내의 연행 전 김씨는 "법대로 해 달라"며 처벌을 호소했다.

독한 아들
술취한 엄마


경찰 조사에서 조씨는 횡설수설하며 자신이 취한 상태였음을 고백했다. 조씨는 평소 알코올중독 증세를 보였으며 그동안 아들을 자주 때린 것으로 알려졌다. 아들 김군 역시 "평소에도 엄마가 나를 자주 혼냈다"며 조씨의 잦은 폭력을 시인했다.

또 조씨는 그간 술을 자주 마시면서 남편 및 이웃 등과 갈등을 빚어온 것으로 드러났다. 참고인 조사를 받던 남편도 "아내를 처벌해 달라"고 진술했다.

그러나 김군은 "엄마의 처벌을 바라지 않는다"고 말했다. 경찰에 신고는 했지만 그래도 아직은 모성이 그리운 천생 아이였던 셈. 경찰은 피해자인 아들이 엄마의 처벌을 원치 않아 사건을 불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고 밝혔다.

비록 사건은 불기소로 가닥을 잡았지만 한 번 금이 간 관계는 쉽게 회복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훈육을 빙자한 가정 내의 폭력은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지난 9일에는 뺨을 맞은 10대 딸이 아버지를 경찰에 신고한 사건이 알려져 씁쓸한 화제가 됐다.

9살 초등생 "뺨맞았다" 어머니 신고
17살 여고생 "때린다" 아버지 고발

인천 남동경찰서는 딸을 때린 아버지 박모(48)씨를 지난 7일 폭행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박씨는 같은 날 오후 8시께 딸 박모(17)양의 뺨을 1차례 때린 혐의를 받았다.

경찰이 밝힌 사건 개요를 종합하면 이렇다. 인천 남동구의 한 자택, 얼마 전 집에 가져다 놓은 휴대전화를 찾던 박양은 휴대전화가 사라져 버린 사실을 알게 됐다. 박양이 찾던 휴대전화는 친구 B양의 것이었다. 그리고 이 휴대전화를 훔친 범인은 바로 아버지 박씨였다.

이를 알게 된 박양은 "친구가 두고 간 휴대전화를 왜 허락 없이 마음대로 팔았냐"며 아버지에게 언성을 높였다. 그러자 평소 권위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진 박씨는 자신에게 대드는 딸을 보고 화를 참지 못했다. 욱하는 마음에 딸에게 손찌검을 한 박씨. 순간 그는 딸과의 말다툼을 말리던 아내(43)도 손으로 밀쳤다. 이 바람에 박양의 어머니는 벽에 머리를 찧어 상처를 입었다.

이를 본 박양은 망설임 없이 통화버튼을 눌렀다. 112로 연결됐다는 안내 문구가 나오자 박양은 아버지 박씨의 폭행 사실을 경찰에 신고했다.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박씨를 폭력 등 혐의로 체포했다.

그러나 경찰 조사에서 박씨는 오리발을 내밀었다. 박씨는 딸의 휴대전화를 훔친 이유를 묻자 "안 쓰는 휴대전화로 알고 팔았다"고 답했다. 또 딸과의 시비다툼에 대해서는 "집안 청소를 안 해서 혼내려고 한 것"이라고 진술했다. 하지만 박씨가 폭행을 한 사실이 변한 건 아니었다.

박양과 그의 어머니는 박씨를 처벌해 달라고 요구했다. 앞서 김군이 어머니의 처벌을 원치 않았던 것과는 대조된 모습이다. 경찰은 피해자인 박양이 처벌을 원하고 있음으로 사건을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조만간 박씨는 딸과 함께 법정에 서게 될 것으로 보인다. 순간의 폭력이 부른 씁쓸한 참상이다.

뺨맞은 딸
뻔뻔한 아빠


엄마를 신고한 아들과 아버지를 고발한 딸. 이 낯선 풍경에 어떤 이들은 "천륜을 저버린 불효"라며 경계의 눈빛을 보내고 있다. 전통적 의미의 '위계질서'가 붕괴되고 있다는 뜻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산업화를 거치며 핵가족화가 심해졌고 ▲서양 문화가 보급되면서 동양 문화권 특유의 예의범절이 퇴색됐으며 ▲가정마다 자녀수가 줄다보니 아이들이 개인주의에 물들었다고 지적한다.

더욱이 많은 사람들은 가족 간의 문제는 가족 안에서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뺨 한 번 맞은 걸로 어떻게 신고까지 할 수 있냐는 것"이다.

앞선 사건들과 폭력의 강도에서 다소 차이가 있겠지만 만약 가정 내 폭력이 일상적으로 반복돼왔다고 가정해보자. 실제 김군은 자신의 모친이 비교적 잦은 체벌을 가해왔다고 진술한 바 있다. 우리는 이것을 소위 '가정폭력'이라고 부른다.

박근혜 정부는 가정폭력을 '4대악'으로 규정했다. 그러나 실제 처벌 수준은 미미하다. 경찰청이 올 5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1년 7272명이었던 가정폭력 사범은 지난해 9345명으로 1년 새 약 28%가량 증가했다. 가해자 성분은 박씨처럼 대부분 가장이 차지하고 있었으며, 이들은 자녀와 아내를 상습적으로 폭행하고 있었다.

하지만 가정폭력을 뿌리 뽑고자 하는 사정당국의 의지는 그리 크지 않아 보인다. 지난해 가정폭력으로 입건된 9345명 중 구속된 피의자는 겨우 73명에 불과했다. 구속률은 0.8%.


민주당 김현 의원실이 지난 4일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경찰의 가정폭력에 대한 인식변화 및 업무수준 실태 조사결과'를 보면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조사에 참여한 경찰관(9865명)의 57.8%는 가정폭력 대응 방안에 대해 "가정 내에서 해결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답했다. 또 경찰관의 78.5%는 "가정폭력은 사건을 해결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부담스럽다"는 뜻을 밝혔다. 경찰 일선에서조차 사건 개입에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경찰에게도 이유는 있다. 가정폭력 사건 대부분의 경우 피해자가 조사 도중 마음을 바꿔 처벌을 원치 않는 방향으로 사건이 봉합되기 때문이다. 김군의 사례에서도 아버지 김씨는 경찰 조사 말미 기존의 입장을 바꿔 아내의 선처를 바랐다는 후문이다.

사실 어린 자녀의 가정폭력 신고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막상 신고를 받고 출동하면 경찰의 개입을 거부하는 등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공식통계에 포함되지 않는 사례도 허다하다.

지난 1월께 전북에서는 한 여성이 "도와달라"며 아버지를 경찰에 고발했다. 신고자는 윤모(22)양. 그는 술을 마시고 늦게 귀가한다는 이유로 아버지 윤모(54)씨에게서 뺨 등을 맞고 112에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사건은 조용히 무마됐다. 딸 윤양이 아버지 윤씨의 처벌을 원치 않았기 때문. 그리고 이 같은 일은 지금 전국 각지의 지구대에서 반복되고 있다.

씁쓸한 자화상
해결책은 없다

최근 가정폭력에 대한 심각성이 대두되면서 이번 사건이 유독 이슈화됐지만 비슷한 사건은 지난 2006년에도 있었다. 당시 서울 금천경찰서는 아들의 뺨을 때린 혐의로 두 아들의 아버지 김모(39)씨를 입건했다.

이 사건은 앞선 사건과 경위가 거의 비슷하다. 아버지 김씨는 일을 마치고 소주 반병을 마신 뒤 새벽 1시쯤 귀가했다. 하지만 집에 도착하니 둘째 아들(16)은 휴대전화 게임에 열중하고 있었다. 지난달 휴대전화 요금이 약 9만원가량 나왔던 것을 기억한 김씨는 그대로 둘째 아들에게 다가가 서너 차례 뺨을 때렸다. 그리고 이를 본 큰 아들(18)은 "아버지가 동생을 때린다"며 경찰에 신고했다. 아버지는 곧 출동한 경찰에 의해 연행됐다.

경찰 조사에서 아버지는 "아들이 밤늦도록 잠을 자지 않고 휴대전화를 가지고 놀고 있어 혼내줬다"고 진술했다. 자신의 입장에선 일종의 훈육이었던 셈.

하지만 신고한 큰 아들은 "아버지가 술을 마시고 폭력을 휘둘러 참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아버지의 교육방식이 잘못됐다는 얘기다.

7년 전이나 지금이나 사건의 본질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부모는 폭력을 이용해 아이를 길들이려 하고, 아이들은 그런 부모에 반항해 부모의 잘못을 입증하고자 한다. 흔한 말이지만 아이는 어른의 거울이다. 어른들이 힘으로 누를수록 아이는 더 큰 힘을 찾게 된다. 힘을 갖춘 자가 만능인 시대에 아이들이 힘을 가진 공권력을 찾는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르겠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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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립무원’ 여야 수장 동병상련

‘고립무원’ 여야 수장 동병상련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당내 강경파의 반발로 인해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동병상련을 느낄 법한 두 사람은 여야 지도부 회동이라는 전략적 제휴에 가까운 선택으로 각자의 어려움을 풀고 정국에 대응할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8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용산 대통령실로 초청했다. 오찬은 약 1시간 동안 진행됐고, 이 대통령과 장 대표는 30분 동안 비공개 영수회담을 진행했다. 유튜브 권력자? 이 대통령과 장 대표는 여야의 수장이지만, 각자의 이유로 자신의 진영에선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다. 두 사람의 회담은 이 때문에 더욱 주목받았다. 정 대표는 지난달 26일 장 대표가 선출된 이후 줄곧 ‘무시’ 전술로 대응했다. 정 대표는 장 대표 선출 여부와 관계없이 국민의힘에 대해 정당해산심판 청구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강공 기조를 잇고 있다. 이 대통령은 이런 상황에서 여야 지도부 회동과 영수 회담을 진행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이 대통령이 장 대표와 만난 것 자체가 고립무원에 처한 이 대통령의 상황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이 대통령이 겪는 어려움은 여당인 민주당과의 관계로부터 시작된다. 이 대통령과 민주당의 관계에 대해선 “대통령 위에 방송인 김어준씨가 상왕으로 군림한다”는 설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이 대통령은 문재인 전 대통령 등 친문(친 문재인) 진영과 오랜 갈등 관계에 있었고 “민주당에서 세가 약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김어준 상왕설’은 이젠 진보 성향 언론에서도 공공연하게 거론한다. <주간경향>은 지난 8일 ‘김어준 상왕설’을 다루면서 “김씨가 비판·견제가 어려운 신성불가침 영역이 됐다”는 민주당 내부 반응과 “김씨는 민주당의 고정 상수고, 당의 일부 기능이 김씨의 유튜브 채널로 이관됐다”는 일부 정치평론가 반응도 소개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위로 알려진 민주당 곽상언 의원은 지난 7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유튜브 권력이 정치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면서 김씨를 강하게 비판했다. 다음 날엔 “저는 ‘유튜브 권력자’에게 머리를 조아리면서 정치할 생각은 없다”며 “이 방송에 출연하면 공천받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얘기를 들은 기억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노 전 대통령은 지난 2002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조선일보>는 민주당 경선에서 손을 떼라’는 의견을 밝히셨다”고 강조했다. 곽 의원은 곧바로 반격을 받았다. 같은 당 최민희 의원은 지난 9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곽 의원을 일컬어 ‘부화뇌동 국회의원님’이라고 지칭하면서 “자존감을 좀 가지시라. 부끄럽지 않느냐”고 비판했다. 최 의원이 곧바로 반격한 것은 역설적으로 김씨와 이 대통령의 위상을 확인시켜 줬다. 이 대통령은 현재 각종 여론조사에서 50%가 넘는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검찰 해체 ▲각종 외교 현안 ▲조국혁신당 성범죄 의혹 등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위에서 누르고 옆에서 치받고 이 대통령 앞에 수북한 난제 민주당에선 정 대표가 검찰개혁 관련 공세를 주도한다. 현재 진행 중인 3개의 특검(내란·김건희·채 상병)과 관련해 수사 기간·범위·인력 대폭 확대와 관련 재판 녹화 중계를 추진하는 특검법 개정안을 추진하고 있다. 개정안은 이미 국회 법사위를 통과했고, 국민의힘은 헌법재판소에 효력정치 가처분을 신청했다. 검찰을 겨냥해선 “추석 전 검찰을 해체하고, 중대범죄수사청(이하 중수청)과 공소청을 설치하겠다”는 방침을 유지하고 있다. 사법부를 겨냥해선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하고 있다. 민주당과 이재명정부 내부에선 중수청의 소속 부처를 놓고 이미 갈등이 있었다. 친명(친 이재명)계 좌장으로 알려진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지난달 27일 “중수청을 행정안전부에 설치하면 민주적 통제가 어려워질 수 있다”면서 사실상 ‘법무부 설치’를 주장했다. 그러자 친민주당 진영은 정 장관에게 강하게 반발했다. 그동안 친민주당 성향을 강하게 드러냈던 임은정 서울동부지검장은 지난달 29일 검찰개혁 공청회에서 “정 장관도 검찰에 장악돼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검찰개혁 후속 법안을 마련하는 정부 기구 구성과 관련해 정 대표와 대통령실 우상호 정무수석이 크게 언쟁을 했다”는 설까지 불거졌다. 장 대표는 이 대통령과 만났을 당시 공개 발언에서 특검 연장·특별재판부 설치와 관련해 이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요청했다. 장 대표가 거부권 행사를 요청한 명분은 ‘견제와 균형 붕괴’였다. 장 대표는 이어진 비공개 회동에서도 “오랫동안 되풀이된 정치 보복 수사를 끊어낼 수 있는 적임자는 이 대통령”이라면서 특검 연장·특별재판부 설치에 강한 우려와 유감의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장 대표에게 뚜렷한 답변을 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이 대통령의 반응을 놓고 “이 대통령이 제어하지 못하는 상황일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정 장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중수청 소속 부처도 행정안전부로 결정됐다. 이에 대해서도 “이 대통령이 당의 의사를 이겨내지 못한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지난 4일(현지시각) 미국 조지아주에서 발생한 현대차·LG 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의 한국인 노동자 300여명 구금 사태도 이 대통령에게 비판의 화살이 집중되는 계기가 됐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5일(현지 시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진행했다. 그로부터 불과 10일 후 발생한 사태였다. 안팎 모두 꼬인 실타래 한미 양국은 정상회담 후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펀드를 조성하기로 합의했고, 미국이 한국에 부과하는 관세율은 15%로 확정했다. 일본은 5500억달러 규모의 펀드를 조성하기로 한 후 15% 관세율을 받아냈다. 그런데 일본의 관세율 15%가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이 내려지면서 명문화된 것과 달리, 우리는 아직 문서를 받아내지 못했다. 미국 정부는 “3500억달러 투자처를 구체적으로 명시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노동자 300여명이 구금된 구체적인 이유는 이들이 최대 90일 동안 단기 체류만 할 수 있는 무비자 전자여행허가 제도를 통해 입국해 근무한 것이었다. 단기 체류 비자로 입국해 근무한 이상 불법체류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까지 진행한 이 대통령에겐 “미국을 왕래하는 국민의 비자 문제에조차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이냐”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커진다. 일본과의 외교도 난항에 부딪힐 가능성이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3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진행한 후 17년 만에 공동언론발표문을 채택했다. 정상회담도 그만큼 훈훈한 분위기로 진행됐다. 하지만 낮은 지지율과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의 지난 7월 참의원 선거 패배로 인해 사퇴 압력에 시달리던 이시바 총리는 지난 7일 결국 사퇴를 선언했다. 후임 총리 후보로는 자민당 다카아치 사나에 의원과 고이즈미 신지로 농림수산상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이시바 총리와 고이즈미 농림수산상은 자민당 내에서 파벌 색이 짙지 않아 비교적 온건한 정치 성향을 지닌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다카이치 의원은 강경한 우익 포퓰리스트였던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알려졌다. 다카이치 의원은 ▲야스쿠니 신사 참배 ▲헌법 개정 ▲재무장 추진 ▲아베노믹스 계승 등 아베 전 총리와 거의 비슷한 정치색을 드러냈다. 지난 1994년엔 <히틀러 선거전략>이란 책의 추천사를 쓴 것으로 알려졌다. 이 책엔 “단기간에 여론을 모아 권력을 빼앗았다”거나 “긴급조치로 적을 섬멸했다”는 등의 독일 나치의 선거전략을 높이 평가하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설득할 수 없는 유권자는 말살한다”는 등 작전을 일본 정치인의 선거 승리 전략으로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노 전 대통령은 자신에게 호의적인 국내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고의로 신사 참배를 했던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일본 총리와 상당한 갈등을 빚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민주당 소속임에도 강경한 우익 성향으로 유명했던 노다 요시히코 전 총리와 갈등하면서 지난 2012년 전격적으로 독도를 방문하는 강수를 뒀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재임 중 아베 전 총리와 상당한 갈등을 빚으면서 대중국 외교에 공들였다. 다카이치 의원이 후임 총리가 되면, 이 대통령도 전임 대통령들처럼 상당한 갈등을 빚을 가능성이 있다. 혁신당 나비효과 게다가 우원식 국회의장은 지난 3일 중국 전승절 80주년 경축 행사에 참석한 것으로 보수 성향 유권자들에게 큰 비판을 듣고 있다. 우 의장은 행사에 함께 참석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짧게 인사를 나눴다. 반면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김 위원장을 2번이나 불렀음에도 아무 반응을 얻지 못해, 이 역시 보수 성향 유권자들로부터 큰 비판을 받고 있다. 이 대통령은 대통령 취임 이후 친서방 외교에 유화적인 방향으로 선회하려고 했다. 하지만 민주당의 전통적 방향과 충돌하는 상황으로 해석되고 있다.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 내부에서 불거진 성추행·성희롱 사건도 이 대통령에게 불리하게 전개될 가능성이 있다. 혁신당은 조국 비상대책위원장 등 친문 핵심 일부가 창당했다. 이 사건은 혁신당 강미정 전 대변인이 탈당하면서 폭로해 외부에 알려졌다. 가해자로 지목된 김보협 수석대변인은 문 전 대통령과 친분이 돈독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우석 전 사무부총장은 조 비대위원장이 민정수석이었을 당시 민정수석실 행정관을 지냈다. 조 비대위원장은 그동안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이 여파는 민주당과 이 대통령에게 번지고 있다. 기성세대 남성의 위선과 운동권 특유의 성 문화 논쟁으로 확대되면서,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범죄 사건까지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으로선 친문계와 빚고 있는 광범위하면서도 조직적인 엇박자가 국정에도 악영향을 미치는 상황에서 그 뒷감당까지 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장 대표도 이 대통령 못지않은 고립무원 상황에 직면했다. 시작은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로부터도 신임받았던 김도읍 의원을 지난 1일 정책위의장으로 임명한 것이었다. 그러자 “장 대표 당선에 큰 공을 세웠다”고 자부하던 강경 보수 성향 유튜버들이 크게 반발했다. 특히 고성국 ‘고성국TV’ 대표는 지난 2일 “내년 지방선거에서 승리하려면, 국민의힘이 지자체장 30석을 자유통일당 등 자유 우파 정당 4개에 양보하면 된다”고 요구했다. 강경 보수 공세 친한 숙청 시동 민주당의 각종 입법 공세 방어 등 대여 공세 수단도 마땅치 않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노란봉투법 통과를 막기 위해 필리버스터를 동원했지만, 큰 의미를 두기 어려웠다. 노란봉투법은 국민의힘의 필리버스터 종료 직후 본회의를 통과했다. 국민의힘이 할 수 있는 일은 본회의 불참밖에 없었다. 3개의 특검은 이미 국민의힘을 사정권에 두고 있다. 현실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은 실질적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장외 집회밖에 없다. 장 대표는 강경한 대여 공세를 약속하면서 당 대표에 당선됐지만, 강경한 대여 공세를 할 수 있는 현실적인 수단은 처음부터 없었다. 따라서 여야 지도부 회동은 장 대표에겐 정치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기회였다. 최소한 “이 대통령에게 우리의 요구를 가감 없이 전달했다”고 자부할 만한 명분이 마련된 것이었다. 내부 사정도 녹록하진 않다. 장 대표에겐 지난해 12월 결별한 친한계(친 한동훈)와의 내부 투쟁도 숙제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다만 장 대표가 당선된 것 자체가 이미 친한계엔 큰 타격이었다. 아울러 친한계엔 ▲김종혁 전 최고위원 ▲신지호 전 사무부총장 ▲윤희석 전 대변인 ▲송영훈 전 대변인 등 국민의힘을 대표해 각종 시사프로그램 패널로 출연하는 인사들이 다수 소속돼있었다. 이들은 대체로 친한계의 이해관계를 각종 방송에서 대변했다. 장 대표는 지난 7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서 “방송에서 당의 의견을 가장해 당에 해를 끼치는 발언을 하는 것도 해당 행위”라며 “국민의힘을 공식적으로 대변하는 인물임을 알리는 패널 인증제도를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장 대표의 방침은 “국민의힘 몫 토론자로 출연해 친한계를 대변하는 인사들을 방송에서 솎아내려는 것”이라는 취지로 해석된다. 이처럼 장 대표는 당내에서 양면 전선을 펼쳐놨기 때문에 현재 상황이 녹록지 않다. 강도 높은 내부 투쟁을 진행하는 이 대통령과 장 대표로선 여야 지도부 회동이 동병상련에 가까운 전략적 제휴였을 가능성이 있다. 장 대표는 비공개 회담에서도 국민의힘의 의견을 모두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도 뚜렷한 확답만 하지 않았을 뿐, 대통령 당선 이전 강성 이미지를 중화하려는 듯 유화적으로 대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장 대표가 이 대통령과 정 대표의 불화를 이용하려고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선 “장 대표도 내부 반발이 있고, 강도 높은 내부 투쟁을 진행해야 해서 제 코가 석 자”라고 보고 있다. 아울러 이 대통령과 장 대표는 그동안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나름대로 중도를 지향하고자 강경파와 투쟁해야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당분간 이들이 전략적 제휴를 맺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정 대표는 이 대통령과 장 대표의 회담 분위기를 무색하게 하듯이 다음 날인 지난 9일 진행된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내란 청산은 정치 보복이 아니”라며 “국민의힘이 내란 세력과 단절하지 못하면, 위헌정당 해산심판 대상이 될지도 모르니 명심하라”고 경고했다. 수북한 현안들 ‘내란’은 민주당이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을 공격하는 용도로 사용하는 일반 명사가 됐다. 정 대표는 대표적인 당내 강경파로서, 국민의힘에 대한 강경한 태도가 정치적 상징이 된 지 오래다. 이 대통령과 장 대표가 마주 보고 성과를 낼수록 정 대표는 설 자리를 잃는다. 정 대표의 제동은 “고립무원에 처한 여야 수장이 서로에게 동병상련을 느껴도 큰 의미가 없을 것”이란 경고 메시지로 해석될 수 있다. 바퀴들이 삐걱대는 사이 현안은 더욱 수북이 쌓이고 있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