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 특사 무산’ 성은 간절한 거물들

  • 김설아 sasa7088@ilyosisa.co.kr
  • 등록 2013.08.12 13:43:32
  • 댓글 0개

빨간줄 좀…‘은전’ 기다리는 범털들

[일요시사=경제1팀] 8·15 광복절 특별사면을 앞두고 정치권과 재계가 뒤숭숭하다. 박근혜 대통령이 광복절을 코앞에 두고도 이렇다 할 특사 소식을 내놓지 않고 있어서다. 역대 대통령이 광복절 등을 포함해 5∼10여 차례에 걸쳐 사면을 단행한 것과 사뭇 다른 모습. 이대로라면 올해는 정·재계 인사 중 특별사면이 없는 쪽으로 기우는 모양새다.



박근혜 대통령이 ‘광복절 특사’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면서 정치권과 재계 인사들 중 상당수가 ‘은전’을 받기 어려워 보인다. 특히 사면 대상에 포함되기 위해서는 형이 확정되거나 벌금과 추징금 미납이 없어야 하지만, 거론되는 거물급 재계 인사나 정치인들 상당수는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거나 벌금을 납부하지 않는 등 사면 조건조차 충족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누가 되고
누가 안 되나

거론되는 재계 인사 들은 대부분의 형이 확정되지 않았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건강문제로 구속집행정지가 된 상태에서 마지막 기회인 3심이 진행 중이다. 김 회장은 수천억원대 횡령 배임 혐의로 기소돼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징역 3년에 벌금 51억원의 실형을 선고 받았다.

거액의 회삿돈을 빼돌린 혐의 등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최태원 SK그룹 회장도 내달 13일 항소심 선고를 앞두고 있고, 이재현 CJ그룹 회장 역시 최근 구속돼 재판을 앞두고 있는 등 이들은 당장 사면대상이 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상고심을 진행 중인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과 그의 모친인 이선애 상무에 대한 사면도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 이 전 회장은 수천억원대의 비자금을 조성하고 계열사 주식을 부당 취득한 혐의로 2011년 1월 검찰에서 세 차례 소환 조사를 받은 뒤 구속 기소됐다. 모친인 이 상무 역시 불구속 기소되면서 모자가 함께 재판에 넘겨지는 불명예를 안았다. 이들 또한 현재 마지막 재판에 대비하고 있다.

업무상 횡령 등의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구자원 LIG 회장 일가와 같은 혐의로 서울서부지법에서 재판을 받고 있는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도 1심 재판에서 치열하게 다투고 있어 이번 사면 대상에 포함될 가능성은 전혀 없다.


회삿돈 수십억 원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돼 2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은 조경민 전 오리온그룹 사장도 사면 대상자가 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조 전 사장은 현재 상고심을 준비하고 있다.

박근혜정부 첫 특사 무산 “조건대상자 없다”
‘전과자’족쇄 달린 정치인·기업인 한숨 푹푹

담철곤 오리온 회장은 올해 4월 상고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확정 받았다. 담 회장은 법인자금으로 고가 미술품을 매입해 자택 장식품으로 설치하는가 하면 람보르기니 등 고급 외제 승용차를 계열사 자금으로 리스해 개인용도로 사용하는 등 총 226억원을 횡령하고 74억원을 유용한 혐의로 2011년 5월 서울중앙지검에 소환된 뒤 구속기소된 바 있다.

담 회장은 거론되는 기업인 중 유일하게 형이 확정됐지만 박 대통령이 무엇보다 횡령·배임·탈세·외화유출 등 범죄로 처벌받은 기업인들에 대한 사면은 없다고 밝힌 만큼 이번 사면에 배제 될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거물급 MB맨들
발만 ‘동동’

정치인들에 대한 사면도 현실 여건상 어렵다. 여권 일각에서는 정치 대화합을 모색하는 차원에서 불법정치자금 사건에 연루됐던 이상득 전 새누리당 의원과 정두언 새누리당 의원을 사면하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 전 의원은 지난달 말 열린 항소심에서 감형과 함께 추징금 4억 5750만원을 선고 받았다. 8ㆍ15 때까지 이 전 의원이 벌금을 완납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이 전 의원과 정 의원은 임석 솔로몬저축은행 회장에게서 불법정치자금을 받은 혐의 등으로 1심에서 실형을 선고 받고 법정 구속됐다. 지난달 말 열린 항소심에서는 두 사람 모두 감형됐으나 여전히 실형을 살고 있다.


이 전 의원은 17대 대선을 앞둔 2007년 10월 임 회장에게서 3억원을, 2007년 12월 중순 김 회장에게서 저축은행 경영 관련 청탁과 함께 3억원을 받은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됐고 정 의원은 임 회장으로부터 지난 2007년 9월 3000만원, 2008년 3월 1억원을 받아은 혐의 등으로 불구속 기소됐다. 이들은 각각 9월과 11월 출소 예정이다.

담철곤·박연차 형 확정
김승연·이호진은 재판중

친이계 의원들 사이에서는 ‘MB’정권 실세였던 신재민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과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을 사면하자는 움직임도 있다. 그러나 이들 역시 각각 억대의 추징금을 미납하고 있다.

SLS조선 워크아웃 저지 등을 위해 영향력을 행사해주는 대가로 이국철 SLS그룹 회장으로부터 금품을 받은 혐의(특가법상 뇌물, 정치자금법 위반)로 구속 기소된 신 전 차관은 지난 4월 열린 상고심에서 징역 3년 6월에 벌금 5400만원, 추징금 1억1000여만원을 확정 받았다. 민간인 불법사찰을 지시한 혐의 등으로 구속된 박 전 차관도 지난 5월 항소심에서 1심과 같은 징역 2년에 추징금 1억9478만원을 선고받았다.

이 외에 건설업자로부터 공사 수주 청탁과 함께 억대의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최근 구속된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역시 특사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박 대통령 원칙?
엄정한 법 준수

‘MB맨’들의 이름이 정치권 사면 대상자에 오르내리고 있지만, 박 대통령이 이명박 전 대통령의 형인 이 전 의원을 포함한 그 측근들을 사면에 포함시킬 리 만무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실제 박 대통령은 이 전 대통령의 임기말 특별사면 추진에 직접 반대 의사를 밝힌 바 있다.

박 대통령은 당시 “그동안 죄를 짓고도 권력이 있다는 이유로, 또 돈이 많다는 이유로 법망을 피해가는 경우가 많았다”면서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잘못된 관행을 이번에는 확실하게 바로잡아야 할 것”이라고 지도층 인사에 대한 엄정한 법 집행 의지를 보인 바 있다.



이러한 의중은 지난달 말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의 가석방 불허에서도 잘 드러났다. ‘박연차 게이트’의 장본인으로 참여정부 핵심 실세들에게 전방위 로비를 벌인 혐의로 구속 기소돼 복역 중인 박 전 회장의 ‘가석방심사위의 결정’을 황교안 법무부장관이 뒤집은 이례적인 일이 발생한 것이다.

가석방은 징역형을 받고 수감된 사람이 죄를 뉘우치고 교도소 생활을 성실히 할 경우 형기 3분의 1 이상을 채우면 풀어주는 제도로, 당초 예상대로라면 박 전 회장은 지난달 30일 출소를 앞두고 있었다. 

법무부는 가석방 불허 배경에 대해 “사회적으로 이목을 끈 사건의 주요 수형자, 사회 지도층 인사, 고위 공직자들에 대한 가석방을 불허하기로 결정했다”며 “그동안 일정 집행률을 충족하면 당연히 석방되는 권리처럼 인식돼 왔지만 앞으로는 새로운 가석방 정책을 적용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박 전 회장은 남은 형기를 모두 마친 뒤에야 사회로 복귀할 수 있게 됐다. 박 전 회장과 함께 저축은행으로부터 금품로비를 받은 혐의로 수감 중인 김희중 전 청와대 제1부속실장의 가석방 신청도 불허된 것으로 알려졌다.


‘박근혜 정권’의 이같은 행보는 과거 정부의 특사와 맥을 달리한다. 특사는 형 선고를 받은 사람에 대해 형의 집행을 면제하거나 선고의 효력을 상실케 하는 사면법으로 헌법이 보장한 대통령 고유권한이다. 그동안 권력 남용 등의 비판으로 논란 속에서도 1990년대 이후 5년마다 시행돼 왔다. 특히 대통령이 취임하는 해마다 정치인과 경제인을 포함한 특별사면·복권이 대거 이뤄졌다.

이상득·신재민·박영준 다음에?
여론에 따라…가능성은 ‘희박’

법무부에 따르면 전두환 정부부터 현 정부까지 58차례에 걸쳐 17만4187명을 대상으로 특사가 집행됐다. 김영삼 정부는 8차례, 김대중 정부 6차례, 노무현 정부는 9차례 사면을 실시했고, 이명박 정부도 6차례 사면 결정을 내렸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임기말에 전두환 전 대통령의 동생 전경환씨, 김종호 전 내무부 장관, 이학봉 전 의원 등 5공 비리 관련자를 사면했다.

첫 문민정부인 김영삼(YS) 정부는 집권 초기 비리 사건에 연루된 인사들을 대거 사면했다. 슬롯머신사건, 율곡비리, 동화은행장 뇌물비리 등 대형 사건으로 사법 처리된 정치권·군부·재계 인사들이 사면됐다.

김대중(DJ) 정부에서는 가장 많은 범죄자가 사면됐다. 8차례 특사로 7만321명에게 형 집행을 면제했다. 김 전 대통령은 2002년 외환위기의 주범으로 꼽히는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과 이용호·최규선 게이트 연루자인 김영재 전 금융감독원 부원장보, 최일홍 전 국민체육공단 이사장 등 93명을 특별사면했다.


특별사면 단행
역대 정권은?

노무현 정부는 2005년 개인 비리로 구속됐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후원자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을 사면했다. 2006년에는 노 전 대통령의 최측근인 안희정 충남도지사와 여택수 전 청와대 행정관, 신계륜 전 의원이 사면 대상에 포함됐고, 임기 말이었던 2008년에는 자신의 집사로 불렸던 최도술 전 대통령총무비서관을 사면했다. 박용성 전 두산그룹 회장 등 기업인을 석방하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는 2008년 8·15 특사 때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등 74명을 사면했다. 2009년 12월에는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활동 등의 이유로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인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1명에 대해서만 특사를 단행해 파문이 일기도 했다.


김설아 기자 <sasa7088@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