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정치팀] 민주당은 국정조사를 둘러싸고 극심한 내홍을 겪었다. 당 안팎에서는 민주당 지도부를 향해 불신을 표출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을 규명하기 위한 국회 국정조사가 연일 파행을 거듭하며 별다른 진전을 보이지 못하자, ‘야권 지도부 책임론’이 급부상했다. 민주당 지도부가 국정조사와 관련해 ‘장외투쟁’을 선언하고 나섰지만 ‘김한길 체제’가 과연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을지 회의적인 시각이 지배적이다.
국정원 국정조사를 둘러싸고 국회는 바람 잘 날이 없다. 이쯤 되면 이를 지켜보는 국민도 지치기 마련이다. 민주당은 진통 끝에 어렵게 국정조사 합의를 이끌어 냈지만 연일 ‘개점휴업’으로 진도를 못 나가 국민의 시선은 더 싸늘해졌다. 이 가운데 민주당 신경민 의원이 국정조사 진행 과정에 대한 여야 합의를 ‘악마의 합의’라고 비난해 한 차례 논란이 일었다.
국정원 진상규명 뒷전
여름휴가 챙기기 급급
가까스로 시작한 국정조사는 원래 45일을 기간으로 했다. 진상을 규명하기에도 빠듯한 시간에 진행 초반 민주당 진선미, 김현 의원 2명이 물러나느냐를 놓고 갈등을 벌이며 시간을 허비했다. 국정조사가 겨우 정상화돼나 했더니, 갑자기 새누리당 의원들이 여름휴가를 가겠다고 나섰다. 국정조사가 15일밖에 남지 않은 시점에서 국정원의 기관보고를 받고 이틀간 청문회를 하겠다고 한 것.
여야가 국정원 국정조사특별위원회(이하 특위) 일정에 합의하면서 1주일간 여름휴가를 보낸 뒤 활동을 재개키로 한 것을 두고 당 안팎에서 비난이 거세게 일었다. 특위가 이미 일부 의원의 제척 문제와 국정원 보고 비공개 여부로 파행을 겪고도 얼마 남지 않은 국조 기간마저 여름휴가로 날리고 있다는 것이다.
연이은 ‘양보’에
“민주당 제정신?”
여야는 지난달 28일 국조특위 정상화에 합의하면서 내달 5일 국정원 기관보고를 시작으로 특위 일정을 재개하기로 했다. 국정조사 특위 새누리당 간사인 권성동 의원은 합의 뒤 기자들에게 “지금이 하한정국이고 다른 의원들은 다 쉬는데 특위 위원들만 일하고 있다”며 “7월 말은 너무 더우니 8월5일 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국정조사 기한이 8월15일까지임을 감안하면 특위 활동기간은 열흘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사법위원회 부위원장인 이재화 변호사는 트위터에서 “국기문란 범죄 진상조사보다 여름휴가가 먼저라? 국정조사가 심심풀이 땅콩인가? 한심한 위원들!”이라고 비판했다.
국정원의 정치개입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시민들은 허탈한 속내를 감추지 못했다. 트위터와 인터넷상에는 “국정조사냐 국정휴가냐” “휴가만큼 국정조사를 일주일 연장해야 한다” 등의 글이 쏟아졌다.
야권 지지층에서도 강도 높은 비판이 쏟아졌다. 트위터와 페이스북에는 ‘이제 민주당을 버려야 한다’는 글들이 올라왔다. 한 친야 언론인은 ‘민주당 제정신인가’라고까지 했다.
이에 국정원 국조특위 소속인 민주당 신경민 의원이 지난달 29일 국정원 국조와 관련해 “악마의 합의가 있었다”고 지적하면서 국정원 국정조사는 민주당 내분으로 번지는 듯했다.
신 의원은 이날 매체를 통해 ▲국정조사의 공개·비공개 여부를 추후 협의한다고 한 것 ▲증인 선정이 합의될 때까지는 발설하지 않는다고 한 것 등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국정조사 위해 진선미?김현 의원 배제, 여당 의원 여름휴가까지
공개 여부 추후 협의, 증인 선정 합의될 때까지는 발설 않기로
신 의원은 국정조사는 원칙적으로 공개인 점을 들어 국정조사 공개·비공개 여부를 추후 협의한다고 한 게 잘못된 것이라고 꼬집었다. 나아가 신 의원은 증인 선정에 대한 여야 합의를 더욱 거세게 비난했다. 신 의원은 “더 나쁜 악마는 증인 선정이 합의될 때까지 발설하지 않는다는 합의를 한 것으로 이것(증인 선정)을 발설할 경우에는 여야 합의를 깨는 게 돼 우리가 내용을 알고 있음에도 말할 수가 없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신 의원은 또 국정조사 기간에 휴가를 보내기로 한 새누리당 의원들에게 날을 세웠다. 신 의원은 “(국정원 기관보고를) 8월5일로 합의했는데 이번 주를 거의 쉰다는 것으로, 이는 휴가를 간다는 뜻이다. 특히 여당 간사(권성동)가 휴가를 간다는 이야기는 어제 결정된 게 아니라 국정조사를 시작할 때부터 7월 마지막 주는 쉬자고 얘기했다”고 말했다.
그는 국정조사에 민주당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결국 이렇게 (새누리당이) 끌고 가니 무슨 타임테이블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심이 갈 정도”라며 “대단히 불만족스럽고, 국민 눈높이에서 봤을 때는 아주 만족스럽지 못한 국정원 기관보고가 됐다”고 쏘아붙였다.
신 의원은 이어 “악마의 합의와 처음부터 기본전제가 다른 두 집단 간 국정조사이기 때문에 국정조사의 한계가 있는 것”이라며 “증인 선정에서 도저히 만족스럽지 못하고, 청문회가 하나마나라고 판단이 되면 더 이상 국정조사를 해야 할 실익이 없다고 판단하는 게 맞을 것”이라고도 했다.
“국정조사 실익 없어”
“악마의 비겁함”
신 의원의 발언에 민주당 정청래 의원이 발끈하며 ‘악마의 비겁함’이라는 말로 맞섰다. 정 의원은 신 의원의 이 같은 발언이 있던 날 자신의 트위터에 “국조특위 사전회의에서 결정한 것을 마치 자신만 선명한 것처럼 인기성 발언하는 것은 악마의 비겁함인가? 함께 결정한 것에 대해 공동 책임지는 자세가 필요하다”라는 글을 올렸다.
정 의원은 또 “생각이 다를 수 있다”면서 “민주당 국조특위는 그래도 (국정조사를) 안 깨고 가는 것이 맞고, 지상파3사 등 전 방송이 생중계하는 가운데 1시간만이라도 공개발언을 하는 것이 낫겠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밝혔다.
정 의원은 특위 민주당 간사로 새누리당 권성동 의원과 지난달 28일에 8월5일 국정원 기관보고, 7~8일 증인?참고인 청문회, 12일 국정조사 결과보고서 채택 등의 일정을 합의했다. 5일 기관보고는 국정원장 인사말, 여야 위원 기조발언은 공개하되 질의응답은 비공개로 하기로 했다.
양보에 양보 거듭한 민주당 “더 이상의 양보는 없다” 장외로
긴급 의총 때 박영선, 박범계, 신경민 의원 강력 대응 주문
또한 최현락 서울경찰청 수사부장, 권은희 수서경찰서 수사과장, 수사 경찰관 15명, 당시 이종명 국정원 3차장, 민병주 국정원 심리정보 국장, 원세훈 전 국정원장,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 등의 증인 채택을 합의했다.
당내에서는 이러한 국정원 기관보고 및 질의의 비공개. 여당 의원 휴가 일정에 따른 국정조사 일정 순연 등을 놓고 “너무 많이 내줬다”는 불만이 쏟아져 나왔다. 민주당 전병헌 원내대표가 “국정조사 파행·중단을 막기 위한 대승적 결단으로 이해해 달라”고 진화에 나섰지만, 국정조사 특위 위원인 신 의원이 지도부에 직격타를 날린 것.
이 같은 상황에서 민주당은 긴급 의총을 개최했다. 8월 7~8일로 결정된 청문회를 열기 위해서는 1주일 전인 이날까지 증인?참고인에게 출석을 통보해야 하는데 여야가 이에 합의를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쟁점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을 비롯해 새누리당의 MB와 김무성 의원, 권영세 주중대사 그리고 민주당의 김현·진선미 의원과 김부겸 전 의원 등에 대한 증인출석 요구 여부다.
민주당은 증인 출석 없는 국정원 국조는 무의미하다며 장외투쟁을 포함한 중대결심까지 할 수 있다며 새누리당을 압박했다.
민주당 ‘천막당사’
새누리당 ‘자폭’ 비난
한 정치권 관계자는 “긴급 의원 총회에서 민주당의 장외투쟁을 강력히 주장한 의원은 박영선, 박범계, 신경민 의원 등으로 이들은 새누리당과의 ‘대화’를 고수하는 민주당 지도부에 강한 압박을 넣었다”고 전했다. 신 의원은 이 자리에서도 악마의 합의를 언급했다고 한다.
지난 1일 장외투쟁을 선언한 민주당은 서울시청 앞 광장에 천막당사를 차렸다. 여당은 바짝 긴장한 분위기다. 그러면서도 민주당이 국정조사를 파행시키고 ‘자폭’했다는 비난을 퍼부었다.
결과적으로 민주당은 ‘새누리당의 트라우마’로 불리는 촛불집회에 합류하게 됐다. 보수언론에 의해 ‘민주당 강경파’라 불리는 신 의원의 악마의 합의 발언 이후 민주당은 결국 ‘강경모드’로 방향을 틀었다. 이를 지켜보는 정치전문가들은 민주당이 또 다시 새누리당의 ‘여론전’에 무릎을 꿇을지도 모른다며 우려를 표하고 있다.
민주당이 이번에는 ‘야당 본연의 모습’을 보일지 오랫동안 기다린 국민의 기대가 몹시 커 보인다.
조아라 기자 <archo@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