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정치팀] 전두환 전 대통령의 숨은 재산이 씨가 마르게 생겼다. 언론과 정계가 '국민의 자발적 동참'을 선언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불법 재산을 환원·환수하라'며 전 전 대통령과 검찰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던 이들이 직접 팔을 걷어붙였다. 전 전 대통령의 비자금을 두고 찾는 자와 숨기는 자의 치열한 추격전이 전국에서 벌어질 태세다.
<한겨레>는 지난 5월20일 독자 그리고 시민과 함께 전두환 전 대통령의 숨은 재산을 찾는 '크라우드 소싱(crowdsourcing)'을 진행하기 시작했다.
크라우드 소싱이란 '대중'(crowd)과 '외부자원활용'(outsourcing)의 합성어로 기업이 제품이나 서비스 개발과정에서 외부 전문가나 일반 대중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참여자 기여로 혁신을 달성하면 수익을 참여자와 공유하는 방법을 일컫는 말이다. 다시 말해 모든 시민이 전 전 대통령의 비자금을 찾는 제보자이자 수사관인 셈이다.
움직이는 지성단체
얼마 전 조세피난처에 유령회사를 만든 150여 명의 한국인과 함께 기업, 한국 주소를 기재한 외국인 관련 정보를 제공한 <뉴스타파>도 크라우드 소싱을 활용할 것으로 알려졌다.
<뉴스타파>는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와 함께 조세피난처 프로젝트를 시민이 자유롭게 참여해 관련 지식과 정보를 모아 새로운 사실을 밝혀내는 크라우드 소싱으로 전환해 프로젝트를 지속적으로 추진키로 했다"고 밝혔다.
<뉴스타파> 측은 시민들이 참여하는 크라우드 소싱 프로젝트가 보다 질 높고 파괴력 있는 저널리즘을 실현하고, 조세정의를 바로 세우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뉴스타파>는 그동안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한국인 명단을 차례로 밝혔다. 이어 전 전 대통령의 장남 재국씨를 비롯해 추가로 명단을 발표하면서 전 전 대통령의 은닉 비자금의 일부가 장남을 통해 해외로 흘러들어간 정황을 알렸다.
언론사가 홀로 취재하기 어려운 사안을 독자와 함께 추적, 취재, 분석, 보도하는 집단협업방식을 통해 전 전 대통령의 비자금을 추적하는 <한겨레>의 움직임도 국민적 관심을 모으고 있다.
<한겨레>는 기사 말미에 '전 전 대통령이 내지 않은 추징금 1672억 원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추징시효가 2020년으로 늘어났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은닉재산을 더욱 찾기 어려워집니다'라며 시민의 동참을 호소했다.
이와 함께 <한겨레>는 홈페이지에 '전두환 사전 1.0'이라는 원자료를 공개했다. 엑셀파일로 된 이 사전에는 전 전 대통령 비자금 조성 및 관리조력자 명단, 친인척 명단, 일가 재산목록, 골프장 리스트 등 총 네 종류의 정보가 들어있다. 이것은 누구나 마음껏 내려받을 수 있으며 독자들이 이를 검토하고 제보하며 제안할 수 있게 돼 있다.
<한겨레>는 이를 근거로 취재하고, 일정 기간 뒤 업데이트된 '잊지 말자 전두환 사전 1.2'를 공개할 예정이다. '독자참여-업데이트'의 지속적 작업은 전 전 대통령의 비자금 추징 시효가 만료되는 올 10월까지 계속된다.
크라우드 소싱이 시작된 첫날 독자들의 제보와 격려가 잇따랐다. <한겨레>는 전자우편, 트위터, 페이스북 등 20여명의 시민으로부터 구체적인 제보를 받았다.
그중에서 골프장 관련 제보가 가장 많았다. 재산이 '29만원' 밖에 없다며 추징금을 내지 않는 전 전 대통령이 고급 골프장에서 골프를 치는 데 대해 시민이 가장 의아해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뉴스타파> <한겨레> '크라우드 소싱' 활용해 취재 범위 넓혀
기업인 제보로 전두환 금호아시아나 '특혜 골프' 사실 드러나
여러 건의 제보 가운데 전 전 대통령이 금호아시아나 계열 골프장에서 이른바 특혜골프를 즐기고 있다는 사실은 기업인의 제보 중 하나로 좋은 결과물로 손꼽힌다.
차명재산 의혹 제보도 있었다. 특히 전 전 대통령 직계가족이 소유·경영하는 농장, 토지, 기업 등에 관한 것이었다.
<한겨레>는 이후 재국씨가 출판업계 독보적 1위인 시공사 대표이며 약 500억대의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고, 차남 재용씨 또한 부동산투자회사 대표이자 약 300억대에 이르는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도했다. 또한 퇴임 직후 전 전 대통령의 처남과 전 사돈, 그리고 재용씨가 서울 강남의 땅을 매입해 주유소 사업을 벌인 것 등이 기사를 통해 알려졌다.
이 같은 국민협업방식의 전 전 대통령의 비자금 찾기 움직임은 민주당 내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지난 6월13일 민주당은 '전두환 불법재산 환수 특별위원회'(이하 환수특위) 첫 회의를 개최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전 전 대통령 불법자금 환수 및 탈루·탈세 의혹을 확인하기 위한 '국민협업세무조사' 프로젝트 등이 논의됐다.
이후 환수특위는 '전두환 불법자금을 찾습니다'라는 캠페인을 진행했다. 시민에게 추징금 환수를 위한 홍보물을 배포하는 한편, 29만원 밖에 없다는 전 전 대통령을 풍자하는 동전 모금 퍼포먼스 '29만원 이하로 받습니다'를 진행했다.
환수특위는 다음 카페 그리고 트위터를 통해 본격적으로 국민협업조사 프로젝트를 가동했다. 환수특위는 "검찰은 전두환씨 불법재산 환수 문제에 대해 '신발 한 짝이라도 찾겠다'는 '소박한'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국민이 직접 나서면 다르다는 것을 보여줍시다. 시민의 생활 가까운 곳에 전두환 불법재산의 흔적을 찾아 모은다면, 16년간 '직무유기'를 해온 정부 당국이 해내지 못한 새로운 성과를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자료를 통해 밝혔다.
프로젝트 언제든 '재가동'
민주당 환수특위의 위원장을 밭고 있는 최재성 의원 측은 프로젝트 성과에 대해 "현재는 스톱상태이고 성과부분은 미약하다. 의원실로 비공식으로 들어오는 게 많다"면서 "'환수의 신'이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한 것은 전두환 추징법 통과를 촉구하고 검찰 수사를 독려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검찰 수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환수의 신 프로젝트를 다시 가동할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전 전 대통령의 비자금을 찾기 위한 검찰 수사가 급물살을 타고 있는 가운데, 자발적으로 이루어지는 시민의 제보가 검찰 수사에 얼마나 반영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조아라 기자 <archo@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