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정치팀] 대선이 끝나면 통과의례처럼 어김없이 진행되는 게 있다. 바로 검찰의 전 정권 ‘비리 캐내기’가 그것이다. 지금으로부터 5년 전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 수사는 정국을 뜨겁게 강타했다. 이는 결국 노 전 대통령을 서거에까지 이르게 하며 악명을 떨쳤다. MB의 최측근인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해 최근 진행되는 수사는 그때와는 묘한 온도차를 보인다. <일요시사>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노 전 대통령 퇴임 후 검찰 수사를 통해 현시점의 검찰 수사를 점검했다.
5년 권좌에서 물러난 이후 노무현 전 대통령이 돌아간 봉하마을은 관광명소로 자리 잡았다. 주말이면 노 전 대통령 사저가 있는 봉하마을은 ‘관광객(?)’들로 항상 북적였다. 그들은 소박한 농부의 모습으로 돌아간 노 전 대통령을 보기 위해 봉하마을을 찾았다. 노 전 대통령은 자신을 찾아온 방문객들을 구름같이 몰고 다니며 단체 산책을 하기도 했다.
검찰개혁 실패 후 희생양
이 같은 소식은 외신을 통해 전 세계에 알려졌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퇴임 후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노 전 대통령의 소식을 국제면 톱기사로 올려 눈길을 끌었다. <뉴욕타임스>는 “2월25일 청와대를 떠나 고향마을로 돌아온 노 전 대통령은 한국에서 전에는 볼 수 없었던 관광명소로서의 전직 대통령이 됐다”라며 “관광객들은 산책 나온 노 전 대통령을 뒤따르고 사진을 찍는다. 그가 집에 있으면 관광객들은 ‘대통령님, 나와 주세요!’라고 한목소리로 외친다”라고 노 전 대통령의 인기를 전했다.
노 전 대통령은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정말 감사하지만 여기 오신 분 모두 악수를 하거나 차를 대접할 수 없으니 죄송하기도 하다”라며 “정말 바쁘고 할 일이 많지만 자유롭다”라고 심경을 전했다.
외신의 극찬까지 받았던 노 전 대통령의 퇴임 후 평화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검찰은 그 어느 때보다 강도 높은 수사를 진행해 나가며 노 전 대통령의 측근들을 옥죄기 시작했다.
노 전 대통령 서거 1주기를 맞아 노무현재단이 출간한 사후 자서전 <운명이다>에는 당시 검찰 수사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다.
고인은 “검경 수사권 조정과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를 밀어붙이지 못한 것이 정말 후회스러웠다. 퇴임 후 나와 동지들이 검찰에 당한 모욕과 박해는 그런 짓을 한 대가”라며 “검찰 자체가 정치적으로 편향돼 있으면 정치적 독립을 보장해 주어도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지 않는다. 정권이 바뀌자 검찰은 정치적 중립은 물론 정치적 독립마저 스스로 팽개쳐 버렸다”고 그간의 심정을 토로하고 검찰을 비판했다.
노 전 대통령은 참여정부 초기 강금실 법무부 장관을 임명하고 대대적인 인적쇄신을 통해 검찰개혁을 이루려 했다. 검찰은 거세게 반발했다. 노 전 대통령은 헌정 사상 처음으로 ‘평검사들과의 대화’를 시도했다. 그는 “검찰의 중립은 정치인들이 검찰의 중립을 보장해 주는 것이 아니다. 검찰 스스로 지키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재임기간 내내 검찰 개혁에 힘을 쏟았던 노 전 대통령 자신이 검찰개혁 실패의 첫 번째 희생양이 된 셈이다.
2008년 11월26일 국세청이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을 탈세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면서 검찰의 칼끝은 본격적으로 노 전 대통령을 향하기 시작했다. 검찰은 ‘표적수사 의혹’을 전면 부인했지만, 지방기업인 태광실업의 탈세사건을 ‘거악 척결 중추기관’인 대검 중수부에 배당한 것은 그런 의혹을 강하게 뒷받침해주었다. 실제 검찰은 노 전 대통령 측근들과 일가를 대상으로 ‘먼지떨이’에 가까운 저인망 수사를 진행했다.
급물살 ‘저인망 먼지떨이 수사’, 일단 언론에 유출 여론조장 의혹
혐의 드러나도 소환 조사는 차일피일, 피의사실공표죄 엄격 적용
언론도 덩달아 움직였다. 12월29일 언론은 검찰이 박 회장 관련 비리 의혹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박 회장이 노 전 대통령에게 15억원을 빌려준 내용의 차용증을 확보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이어 검찰은 돈의 명목이나 대가성은 물론 차용증의 진위나 신빙성도 구체적으로 검토하지 않은 단계라고 전했다. 검찰과 언론은 이처럼 긴밀한 ‘공조관계’를 유지하며 제대로 된 수사조차 이루어지지 않은 의혹 수준의 혐의를 마치 ‘사실’인 것처럼 알렸다.
이 같은 검찰과 언론의 합작품은 수사망을 넓히면서 연이어 쏟아져 나왔다. 기업 관계자, 관공서 기관장, 지방자치단체장, 민주당 국회의원, 청와대 측근, 전 국회의장까지 검찰의 소환조사가 이어졌다.
2009년 4월10일 노 전 대통령의 조카사위인 연철호씨를 시작으로 노 전 대통령의 부인인 권양숙 여사, 아들인 노건호씨까지 검찰 문턱을 넘었다. 5월12일 검찰이 딸 노정연씨가 박 회장에게 수십만달러를 수수했다는 사실을 추가 확인했다고 발표한 것을 마지막으로 23일 노 전 대통령은 사저 뒷산 부엉이바위에서 몸을 던져 서거했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검찰의 피의사실공표죄 논란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 민주당은 노 전 대통령의 수사 지휘선상에 있던 핵심간부들을 피의사실공표죄 위반 혐의로 고소했다. 하지만 이 같은 고소도 검찰 내부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수사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MB의 최측근인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한 그것과 확연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검찰은 고발장을 접수한 지 불과 17일 만에 박연차 전 회장을 구속시킨 후 속전속결로 수사를 진행시킨 것과는 달리, 원 전 원장에 대한 소환조사는 고발장이 접수된 지 한 달이 훌쩍 지나서야 이뤄졌다. 또한 원 전 원장에 대한 불구속 기소 결정은 소멸시효를 단 5일 앞두고 내려졌다.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가 진행될 당시에는 검찰의 피의사실공표죄를 묵인하고 공조했던 언론이 이번에는 태도를 바꿨다. 국정원사건 수사책임자 발언으로 관련된 수사결과 내용이 언론에 보도되자 이것이 피의사실공표죄 위반이라며 비난의 날을 세운 것. 검찰은 내부적으로도 유출자를 색출하기에 분주한 모습이었다.
내곡동 사저부지 사건으로 MB와 그의 아내 김윤옥 여사, 아들인 이시형씨에 대한 고발장이 접수됐지만 언론은 이를 전혀 다루지 않았고, 검찰 역시 움직이지 않았다. 심지어 검찰 일각에서는 ‘수사 안할 거 뻔히 알면서 고발장을 접수했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고발장이 접수된 후 3개월 이내에 검찰 수사를 마무리해야 한다는 검찰 내부 훈시 규정도 무용지물이었다.
‘그때그때 달라요’
불투명한 사실관계에도 검찰은 노 전 대통령에게 무척이나 엄격했다. 검찰은 노 전 대통령이 몸을 던지고 나서야 칼을 거뒀다. MB와 그 측근들의 사실관계가 명명백백히 드러났지만 검찰은 ‘그때’의 호기로움을 보이지 않고 있다.
아직 국정원 댓글 사건과 4대강 관련해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다. 검찰이 5년 전 노 전 대통령에게 했던 그만큼만 적극적으로 수사에 임하고 적당히 피의사실을 공표한다면 결과는 어떨까? 노 전 대통령이 그토록 이루고자 했던 검찰개혁이 시작될 수 있지는 않을까?
조아라 기자 <archo@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