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사모’ 활동 입체추적

  • 조아라 archo@ilyosisa.co.kr
  • 등록 2013.07.08 11: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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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계엄군? 지금은 각하의 민간군!

[일요시사=정치팀] 전두환 전 대통령의 미납 추징금의 공소시효를 연장하는 내용의 일명 ‘전두환 추징법’이 통과됨에 따라 그의 비자금을 둘러싼 논의가 국회에서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더불어 ‘전두환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이하 전사모)’의 활동이 재조명받고 있다. 혹시 이들이 전두환 추징법에 반대하고 나서는 게 아니냐는 우려에서다. 이에 <일요시사>가 전사모의 지난 10년간 활동을 낱낱이 파헤쳐 보았다.



전사모는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2003년 노무현정권 시절에 만들어졌다. 당시 전사모는 카페 개설 목적을 “각하의 업적과 통치행위, 인간적인 매력에 대해 자세히 알게 하고 (중략) 모든 국민들로부터 가장 추앙받고 존경받으시는 역대 대통령으로 기억되는 각하 명예회복”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MBC <제5공화국> 방영
전두환 지지자 늘어나

개설 첫해에 1000명 정도였던 회원은 MBC 드라마 <제5공화국> 방영을 전후로 급속도로 늘어났다. 회원 수가 1만8000명을 넘어선 것.

당시 카페에 마련된 가입 인사란에는 신규회원임을 알리는 인사말이 꾸준히 올라오며 지지 열기는 고조됐다. 물론 가입자 중 상당수는 전두환 전 대통령에 대한 안티들도 포함돼 지지팬과 안티의 대결구도가 카페의 인기를 더욱 높였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카페에는 전 전 대통령의 업적과 사진, 또 그의 참모들을 소개하는 코너가 마련돼 있었다. 급격히 늘어나는 가입 열기에 힘입어 ‘10ㆍ26 밤의 진실’, ‘12ㆍ12의 당위성’, ‘5ㆍ18 분석의 코너’ 등도 신설됐다.

5·18 다룬 영화에
300억 소송 준비


전사모는 전 전 대통령이 12ㆍ12사태를 통해 권력의 중심에 등장한 것을 두고 이를 ‘구국의 결단’이라 정의했다. 전사모는 전 전 대통령의 통치 이후 노사문제와 물가가 안정궤도에 오르는 등 유사 이래 가장 이상적인 통치가 이뤄졌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리고 평화의 댐, 88올림픽 유치, 통행금지 해제, 교복과 두발 자유화 등을 그의 대표적 업적으로 꼽았다.

전사모는 이 같은 활동을 통해 카페모임이 우익을 단결시키는 국민총화의 장으로 거듭나길 바랐다. 카페모임에서 평가절하된 전 전 대통령의 재평가를 통해 우익역사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이 이들의 복안이었다.

이들은 전 전 대통령의 강력한 리더십을 칭송하며 그에 대한 절대적 지지를 보냈다. 이곳에서 활동했던 카페의 지지자 대다수는 전 전 대통령이 카리스마 넘치는 리더십을 지녔다고 치켜세웠다. 혼란한 시대에 대한민국이 강소국이 되려면 그가 지닌 강력한 지도력이 필요할 때라고 하나같이 주장했다.

이들은 MBC 드라마 <제5공화국>을 여론조작, 좌익옹호, 국군폄하의 주범으로 몰아세우며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이에 힘입은 5공화국 신군부 인사들은 드라마 대본의 수정을 요구하는 등 드라마에 대해 ‘외압’을 행사하기에 이르렀다. 11명의 신군부 인사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드라마 <제5공화국>은 ‘전두환 죽이기’ 시나리오의 일부가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로 정치보복의 도구가 되는 드라마”라고 항의했다.

2003년 참여정부 때 만들어져 1000명에서 1만8000명으로 회원 급증
"12·12사태는 구국의 결단" 강력한 리더십이라 칭송하며 절대적 지지

당시 국가안전기획부장 특별보좌관이었던 박철언은 제36회 ‘여간첩 수지김 조작사건’ 편에 관하여 자신이 수지김 사건에 관여된 것처럼 드라마가 묘사해 명예를 훼손당했다며 MBC와 PD를 상대로 소송을 내 일부 승소판결을 받았다. 전사모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는 대목이다.  

전사모 회원들의 활동은 더욱 탄력이 붙었다. 5·18 광주민주화항쟁을 다른 영화 <화려한 휴가>는 개봉을 앞두고 전사모의 극심한 비난에 시달려야 했다. 당시 언론 보도에 따르면 ‘그리운 오공’이라는 아이디의 회원은 ‘전사모 분들은 뭐 하고 있습니까’라는 제목의 글에서 “전사모가 나서서 <화려한 휴가>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합시다”라고 주장했다.


결국 전사모는 영화 <화려한 휴가>를 상대로 최고 300억원의 소송을 준비하며 카페 회원들을 상대로 소송비용 모금을 시작했다. 전사모는 “거짓으로 꾸며진 영화를 진실인양 홍보해 1만8000명의 전사모 회원 등이 국민에게 손가락질 받으며 정신병자로 취급당한 것에 대한 정신적 피해보상과 진실규명을 위해 소송을 제기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또한 영화에 대해 “애국가를 부르는 광주시민에게 진압군이 무차별 발포한 것에 대해 전국민이 분노했으나 그것은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했다.

‘5·18특별법’ 헌법소원청구
“김대중이 일으킨 내란”

이를 본 5·18민주화운동 부상자회 등은 “전두환이 선량한 시민들을 학살한 것도 모자라 영화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다니 이해할 수 없다”라며 분노를 금치 못했다.

5·18광주민주화항쟁에 대한 전사모의 끈질긴 공격은 멈출 줄을 몰랐다. 전사모는 급기야 ‘5·18특별법’에 대한 헌법소원을 준비하기에 이르렀다. 이들은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이라는 명칭으로 인해 전사모 회원들의 행복추구권이 묵살됐다며 이른 시일 내에 헌법소원을 제기한다는 방침을 밝히며 논란을 일으켰다.
전사모는 전 전 대통령과 5·18은 무관하다며, ‘5·18은 북한이 배후에서 조종한 시위’이거나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일으킨 내란’이었고 간첩들이 벌인 시위를 진압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고 주장했다.

전 전 대통령에 대한 드라마, 영화, 그리고 특별법까지 문제를 제기하던 전사모는 5·18민주화항쟁 기념일에 맞춰 교육과학기술부 고등학교 교과서 내용의 수정을 요구하고 나섰다. 전사모는 “전 전 대통령 각하의 명예를 반드시 회복할 것이며 그분의 명예를 거짓된 진실로 실추시킨 무리들을 응징할 것”이라면서 “왜곡된 사실과 허구성 있는 만화·영화 같은 내용을 가지고 각하의 업적을 폄하하는 무리들에게 이제부터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영화 <화려한 휴가> 상영금지가처분 신청, 교과서 내용 ‘이의신청’ 
7월3일 대구에서 5?18 유족들과 법정공방 펼쳐 “북한군 개입했다” 

전사모를 둘러싼 논란은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북한군 개입설을 둘러싸고 지난 3일 대구지법에서 법정공방이 벌어진 것. 5·18민주화운동 부상자회 신경진 회장등은 “전사모 측이 5·18은 북한군이 침투해서 저질렀다 등의 내용으로 민주화운동을 비하했다”고 주장했다.

전사모 측 변호를 맡은 서석구 변호사는 이날 5·18민주화운동과 관련한 각종 자료를 제시하며 신 회장에 대한 질문공세를 이어갔다. 서 변호사는 북한에서 출간·발행된 자료들을 제시하며 줄곧 5·18민주화운동에 북한이 개입했을 여지가 있다는 의견을 냈다. 그는 “광주항쟁이 시작된 지 4시간 만에 38개 무기고를 장악했는데 과연 순수 시민군의 힘만으로 가능한 일이냐”는 반문도 덧붙였다.

5·18 단체로부터 고소당한 전사모 측 변호인은 이날 재판장에서조차 당시 배경에 북한이 개입했다는 의견을 펼쳤다. 방청객들은 거세게 항의했다. 양측의 공방이 가열되면서 재판은 10여 차례나 중단됐다. 일부 5·18 유가족들은 오열하기도 했다.

전사모 회원 37명 소송
오열한 유가족

이에 앞서 5·18유족회, 5·18부상자회, 5·18구속부상자회 회원 38명은 ‘5·18민주화운동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일으킨 내란사건’ ‘5·18민주화운동에 북한의 특수군이 파견돼 조직적 작전지휘를 했을 것’이라는 내용의 글을 올린 지만원씨와 전사모 회원 등 36명을 2008년 5월28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2009년 대구지방검찰청은 전사모 회원 10명을 명예훼손 혐의로 약식 기소했고 대구지법은 피고 1인당 벌금80만 원씩을 선고했다. 이에 전사모 회원 등 10명과 변론을 맡았던 서 변호사가 최근 정식 재판을 신청해 이날 증인이 참석한 공판이 처음 열린 것이다.

신 회장은 재판 직후 “가슴이 답답하다. 전사모 회원들을 법정 밖에서 만나 허심탄회하게 5·18민주화운동에 대해 토론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의 다음 재판은 다음달 28일 오후 2시20분 같은 장소에서 열린다.
현재 전사모 카페는 휴먼상태다. 하지만 이들의 오프라인 조직은 아직 건재해 보인다.

전 전 대통령에 대한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겠다며 10년이 넘도록 활동을 계속하고 있는 전사모 회원들로 인해 5·18유족들의 시름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전 전 대통령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전사모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멈추어 생각할 때이다. 



조아라 기자 <archo@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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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