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사회팀] 이남기 청와대 홍보수석의 사표가 수리됐지만 '윤창중 사건'은 아직 진행 중이다. 청와대가 명쾌한 해명을 내놓지 못한 사이 사건 당일 행적을 둘러싼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그러나 논란의 중심에 있는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행방은 아직 묘연하다. 윤 전 대변인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잠적이 1주일 넘게 이어지자 경기도 김포에 있는 그의 자택 앞은 눈에 띄게 한산해졌다. 30여명의 취재기자들이 진을 쳤던 아파트 앞 주차장에는 드문드문 찾아오는 카메라기자만 모습을 보일 뿐이었다.
잠적 보름째
청와대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의 한 오피스텔도 마찬가지. 윤 전 대변인의 사무실로 쓰였던 그곳은 세간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사태가 장기화됨에 따라 청와대도 사건을 서둘러 봉합하는 모양새다. 미뤄뒀던 이남기 청와대 홍보수석의 사표를 전격 수리한 것. 지난 22일 있었던 브리핑에서 김행 대변인은 "오늘 사표 수리로 더 이상의 추가적인 책임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즉 이 수석의 사퇴로 '윤창중 사건'의 문책을 마무리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지 수사기관의 성추행 조사는 아직 진행 중이다. 또 윤 전 대변인의 귀국 과정과 관련한 의혹은 아직 풀리지 않고 있다. 그러나 논란에 중심에 있는 윤 전 대변인은 행방을 감춘 채 두문불출하고 있다.
윤 전 대변인이 사용했던 휴대폰은 2개. 현재 공적인 용무로 사용했던 휴대폰은 착신이 정지돼있다. 그리고 사적인 용도로 사용했던 휴대폰으로는 전화를 받지 않고 있다. 수차례의 전화 연결과 문자메시지에도 윤 전 대변인과의 직접적인 연락은 불가능했다.
윤 전 대변인이 언론과 마지막으로 접촉한 건 기자회견 직후인 지난 12일. 그는 일부 언론사 기자들에게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조사 결과는 날조"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그리고 외부와의 연락을 끊었다. 윤 전 대변인의 자택 안에서는 그의 아내가 서럽게 우는 울음소리가 들렸다.
이 무렵 윤 전 대변인의 자택 안으로 서류 봉투를 든 한 남성이 방문했다. 윤 전 대변인 측과 약 1시간가량 면담했던 이 남성은 모 법무법인 소속 변호사로 소개됐다. 윤 전 대변인의 법적 대응을 암시하는 대목이었다.
이 변호사는 "윤 전 대변인의 가족들과 향후 대책을 논의했다"고 말했다. 윤 전 대변인과 직접 만나지는 못했지만 "미국에 가서 조사를 받는 게 좋을 것"이라는 의견을 그의 가족을 통해 전달했다는 것이다. 또 이 변호사는 윤 전 대변인의 자진 출국 가능성을 언급하며 "이렇게 시끄러운데 국가를 위해 진실을 밝히고 오는 게 정답 아니겠느냐"는 견해를 가족들에게 전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윤 전 대변인은 아직까지 묵묵부답이다. 최근에는 미국 조사기관 측이 한 언론을 통해 윤 전 대변인의 강제 소환 가능성을 언급했지만 성추행의 형량 등을 고려할 때 윤 전 대변인의 소환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전방위 압박에도 묵묵부답…향후 행보 주목
"시간 지날수록 유리" 청와대와 막후 협상설
한 정치권 관계자는 "박근혜 대통령의 미국 순방이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수행단이었던 윤 전 대변인의 신병인도를 미국에서 정식으로 요청하는 건 외교적으로 무리가 있다"면서 "윤 전 대변인이 정권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스스로 출국을 결심하지 않는 한 소환 조사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이번 사건의 책임을 두고 이 전 수석이 청와대와 '정치적인 딜을 했다'는 소문이 돌았다"면서 "자세히는 모르지만 윤 전 대변인도 시간을 끌며 청와대와 모종의 거래를 하려는 건 아닌지 의심이 든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윤 전 대변인이 외부와의 접촉을 끊은 데는 단순한 시간벌기가 아닌 계산된 시나리오가 깔려있다는 설명이다. 윤 전 대변인의 잠적이 길어질수록 청와대는 여론의 압박을 받게 되고, 결국에는 사후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할 수 있다는 것.
또 일각에서는 한미간 형사법 공조 체계에 따라 미국 경찰의 한국 현지 조사 가능성이 대두되고 있지만 이 역시 외교적으로는 그리 좋은 모양새가 아니라 현실화하긴 힘들 것이란 지적이다.
한국 사법당국 입장에서도 사건을 수사 중인 미국 경찰이 한국 정부에 위탁조사를 의뢰하지 않는 한 윤 전 대변인을 구속할 수 있는 명분이 없는 상황이다. 또 최근 현지 소식통에 따르면 윤 전 대변인에 대한 체포영장 발부는 수사기관에서 검토 중인 사항이지 확정되진 않았으며, 설사 발부된다고 하더라도 최종적으로는 기각될 가능성이 크다는 전언이다.
결국 미국 수사당국이 이번 사건에 대해 얼마만큼의 의지를 갖고 수사하느냐가 윤 전 대변인의 미국행을 결정짓는 주요 변수로 부상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피해자인 인턴 여대생의 진술이 상당히 일관돼야 하고, 신빙성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 한 경찰 관계자가 전한 내용이다.
익명을 요구한 청와대 출입기자는 "윤 전 대변인이 처음 기자회견문을 작성할 때 법정다툼까지 다 고려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국내 절차에 관한 부분은 국내 변호사에게 이미 조언을 받았고, 성추행 사건에 관해서는 미국 현지 변호사의 조력을 받을 것이라는 게 공통된 의견"이라고 전했다.
아울러 한 법조계 관계자는 "가해자의 DNA 등이 남는 성폭행과 달리 성추행은 물증 확보가 어려운 게 사실"이라며 "윤 전 대변인이 기자회견 때 밝혔던 진술을 고집할 경우 사건 진상 규명은 의외로 힘들어질 수 있다"고 첨언했다.
외출은 언제?
"윤 전 대변인이 원하는 건 그날 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밝히는 게 아니라 그날 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게 하는 것이다." 한 정치권 관계자의 말처럼 윤 전 대변인은 오랜 잠행 끝에 '반격의 타이밍'을 노리고 있다.
일각에서는 자연인으로 돌아온 이 전 수석과 윤 전 대변인이 장외에서 다시 '입을 맞출 것'이라는 시나리오도 돌고 있다. 이처럼 복잡하게 얽힌 윤 전 대변인과 청와대, 미국 간의 실타래는 어느 한 쪽이 '드라이브'를 걸지 않는 한 당분간 풀리지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