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지물’ 국회 윤리특위 실태 추적

  • 조아라 archo@ilyosisa.co.kr
  • 등록 2013.05.22 17:26:45
  • 댓글 0개

팔은 안으로 굽는다더니 “가재는 게 편 맞네”

[일요시사=정치팀] ‘윤리’라는 이름이 무색했다. 국회의원의 ‘권위와 품격’을 유지하기 위해 설치된 국회 윤리특별위원회(이하 윤리특위)가 무용지물로 방치되고 있다. 윤리특위가 단 한 번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정쟁의 도구로 변질됐다는 지적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의원들 사이에서도 “그냥 창피 한번 주려는 거지, 정치적인 쇼”라는 소리가 나올 정도다. 제 역할 못하는 윤리특위 역사를 짚어 봤다.



그동안 윤리특위에서 가결된 징계안은 단 한 건. 이마저도 본회의에서 반대 134표에 부딪쳐 무산됐다. ‘제 식구 감싸기’란 말이 무리는 아닌 듯싶다. 지난 18대 국회 때 남녀 대학생과의 식사자리에서 성희롱 발언을 해 물의를 일으켰던 강용석 전 의원에 대한 징계안 처리가 그것이다.

솜방망이 ‘출석정지’

사실 당시 강 전 의원의 막말 파장은 어마어마했다. 금방 여의도를 집어삼킬 듯했다. 강 전 의원은 “아나운서가 되려면 다 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발언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시쳇말로 ‘멘붕’ 상태에 빠진 아나운서들은 집단으로 강 전 의원을 ‘명예훼손죄’로 고소했다.

서울대 법대에 하버드 로스쿨을 졸업하고 금배지까지 단 손꼽히는 ‘엄친아’의 명예는 일순간에 땅에 떨어졌다. 여론은 갈수록 악화됐다.

강 전 의원은 집단모욕죄에 대해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을 경우 국회의원직을 상실할지도 모르는 위기상황에 놓였다. 들끓는 여론에 국회의원들도 여야 막론하고 덩달아 비난 일색이었다.


좀처럼 빠져나갈 구멍이 없을 것으로 보였던 강 전 의원은 결국 18대 국회 임기를 다 채우고 정치권에서 멀어졌다. 문제가 불거진 이후 ‘한나라당 소속’에서 ‘무소속’으로 바뀐 게 고작이었다. 

강 전 의원은 형사소송 1심에서 징역 6월과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마땅히 비난받아야 할 이상의 비난에 직면하게 된 사정 등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강 전 의원은 이에 불복해 대법원에 상고했다. 하지만 막판 강 전 의원이 아나운서 비하 발언에 대해 공식 사과함에 따라 양측이 극적 합의를 이뤄, 일단 의원직 상실 위기는 넘겼다. 국회와 법원을 오가면서도 배짱을 부리던 강 전 의원은 간담을 쓸어내렸다.

이와 동시에 윤리특위와 국회에서 진행된 강 전 의원 제명안 처리 과정이 수많은 논란을 일으키며 국민의 공분을 샀다. 강 전 의원이 의원직 상실위기에서 이미 한고비를 넘긴 터라 기대에 찬 국민의 이목은 국회 본회의 제명안 처리에 쏠렸다. 한나라당 주성영 윤리위 부위원장은 긴급 브리핑에서 강 전 의원을 제명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일사천리로 처리될 것 같았던 제명안은 한 달이 다 되도록 표류하다 결국 ‘강용석 살려주기’로 막을 내렸다.

가까스로 윤리특위를 통과한 제명안은 본회의에서 재적의원 259명 중 찬성 111명, 반대 134명, 기권 6명, 무효 8명으로 부결됐다. 국회의원을 제명하기 위해서는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인 198명이 찬성표를 던져야 한다.

11대 국회 이후 의원 징계 결의안 176건 본회의 통과한 것 없어
‘국회의원 윤리규칙(안)’ 다룰 국회 정치쇄신위 아직 표류 중

여야는 대체 징계안으로 강 의원에 대한 30일간 ‘국회 출석 정지안’을 통과시켰다. 이로써 강 전 의원은 9월 한달 간 국회에 나오지 못했다. 이 기간에 수당 및 입법활동비 특별활동비도 절반만 받았다.


일각에서는 제명안이 부결되자마자 한나라당이 출석정지안을 상정한 것을 두고 여야가 미리 짠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일련의 의결과정은 당시 박희태 국회의장의 지시로 취재진과 방청객이 모두 본회의장을 퇴장한 가운데 비공개로 진행됐다.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표결과정에서 성경문구를 인용한 뒤 “여러분은 강 의원에게 돌을 던질 수 있나요. 저는 그럴 수 없습니다. 이 정도 일로 제명한다면 우리 중에 남아있을 사람 누가 있을까요”라며 강 전 의원을 두둔한 사실이 한 야권인사의 SNS를 통해 빠르게 퍼졌다.

이를 전후해서 국회에는 국회법상 품위유지의무를 위반한 이유로 수많은 징계안이 발의됐다. 실제로 1981년 제11대 국회 이후 현재까지 발의된 의원 징계안 176건 가운데 본회의를 통과한 징계안은 단 1 건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윤리특위가 사실상 ‘무용지물’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다.

이중 의원 임기만료로 인한 폐기가 98건(55.7%), 철회 32건(18.2%), 사임 등으로 인한 폐기 29건(16.5%), 계류 16건(9.1%), 그리고 윤리특위에서는 가결됐지만, 본회의에서 부결된 강 전 의원 징계안 1건 등이었다.
지난 1월 국회 정치쇄신위원회가 이 같은 내용을 포함한 국회쇄신분야 의제를 가지고 의욕적으로 출범했지만 시작부터 삐걱거리고 있어 국민의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다.

당초 국회쇄신분야 의제는 ▲국회의원 겸직 및 영리업무 금지 강화 ▲인사청문회 관련 제도 개선 ▲국회폭력 예방 및 처벌 강화 ▲대한민국 헌정회 연로의원 지원제도 개선 ▲원구성 지연 방지 ▲윤리특위 운영 등 의원 징계 제도 개선 ▲의원 면책특권 및 불체포 특권 제한 ▲의원수당 지급 개선 ▲가칭 '국회의원 윤리규칙(안)' 제정 방안 등이다.

특위 구성은 지난 1월6일 여야 합의가 이뤄진 이후 3월22일에야 국회 본회의에서 마무리됐다. 첫 회의는 한 달 쯤 지난 4월25일에야 열렸다. ‘늦장 출범’이라는 비난이 이어졌지만, 아직도 뚜렷한 성과물을 내지 못하고 있다. 

의원신분 ‘방탄’ 역할?

정치쇄신 특위마저도 제동이 걸려,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 차원에서 다뤄질 것으로 보였던 ‘국회의원 윤리규칙(안)’ 제정 여부도 현재로선 미지수인 상태다.

의원 징계안 발의가 정쟁의 도구로 전락한 것은 윤리특위가 제 역할을 못한 탓이 크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과연 윤리특위가 국회의원 신분의 방탄역할을 한다는 비판에 귀 기울이고 ‘제 뼈를 깎는’ 노력을 보여줄지는 조금 더 지켜볼 일이다.


조아라 기자 <archo@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우리에게 추석은 차례를 지내거나 귀향을 하는 것이 익숙한 명절이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명절을 보내는 방식이 크게 달라졌다. 특히 차례를 지내는 비중은 줄어들고 MZ세대를 중심으로 긴 연휴를 활용한 여행, 단기 아르바이트, 자기계발 등을 하는 것이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추석에 차례를 지내겠다고 응답한 비율은 40%대 초반에 그쳤다. 절반 이상은 차례를 지내지 않겠다고 답한 것이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당연하게 여겨지던 차례와 제사가 더 이상 필수가 아니게 된 셈이다. 알바 우선 통계청 조사에서도 명절 의례를 간소화하거나 아예 하지 않는 가정이 해마다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차례를 지내는 대신 긴 연휴를 여행으로 보내려는 수요가 뚜렷하게 증가했다. 한국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여행 중개 플랫폼 스카이스캐너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약 77%가 이번 추석 연휴에 여행 계획을 세웠다고 응답했다. 특히 해외여행 비중이 크게 늘었다. 10년 전 대비 명절 여행에 긍정적인 인식이 37%에서 70%로 2배 가까이 상승했다. 검색 데이터에 따르면, 추석 연휴 기간 인기 여행지는 일본(43.1%)이 1위였고, 이어 베트남(13.2%), 중국(9.6%), 태국(7.5%), 대만(6.2%) 순이었다. 도시별로는 일본 후쿠오카(20.2%)가 가장 높은 검색 비율을 기록했으며, 오사카(18.3%), 도쿄(15.4%), 방콕(8.9%), 타이베이(8.0%)가 뒤를 이었다. 여행을 가지 않고 명절 연휴를 일터에서 보내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긴 연휴를 활용해 “돈을 벌겠다”는 사람들이 늘면서 단기 아르바이트 수요도 급증했다. 당근마켓과 같은 알바 커뮤니티와 플랫폼에는 “추석 알바 구합니다”라는 글이 다수 올라왔다. 한 20대 청년은 “쉬는 날이 길어 잠깐이라도 일을 하려 한다”고 밝혔고, 한 대학생은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선물세트 포장 알바에 지원했다”고 말했다. 특히 명절 기간에는 업무강도가 높아 평균 시급의 1.5배를 지급하는 경우가 많다. 평상시에 근무할 때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많은 청년들이 명절 시즌 알바를 노리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 맞춰 구인·구직 플랫폼들은 ‘추석 알바 채용관’을 운영하며 수요를 모으고 있다. 백화점과 대형 마트, 도·소매점과 전통시장에서 단기 인력을 모집하고, 선물용 고기·과일 세트 포장, 택배 상·하차, 진열·판매 등의 일자리가 집중적으로 생겨났다. 절반 이상 “안 지내요” 77%가 여행 계획 세워 지난해 추석 구인 구직 사이트 알바천국 조사에서는 응답자 중 절반 이상(53.9%)이 단기 용돈 벌이를 위해, 22.2%는 고물가로 인한 지출 부담 때문에, 18.2%는 여행 경비나 등록금 등 목돈 마련을 위해 명절 알바를 계획했다고 답했다. 이는 명절을 단순히 휴식 시간으로 보내지 않고, 생계와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집에 머무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자기계발하며 추석 나기’가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혼자 추석을 보내는 일명 ‘혼추족’ 중에는 독서나 온라인 강의, 어학 공부, 자격증 준비 등에 연휴를 투자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스터디 카페와 도서관을 찾는 이용객이 증가했다는 조사도 나왔다. 일부 출판사나 문화 기획사에서는 명절 연휴에 맞춰 북콘서트 같은 행사를 열기도 했다. 명절이 휴식 기간만이 아닌 스스로를 계발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같은 양상은 가족 모임에도 영향을 받았다. MZ세대는 가족·친척 모임을 스트레스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한 청년은 “친척들과 모이면 취업·결혼 얘기 등으로 잔소리를 들어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느니 차라리 그 시간에 자기계발을 하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말했다. 과거처럼 친척 모임에 시간을 할애하기보다, 필요한 경우에만 가족을 만나고 나머지 시간에는 개인활동에 집중하는 방식이다. 연휴를 도심에서 보내는 ‘혼추족’을 겨냥해 유통·외식업계도 다양한 이벤트를 내놓고 있다. 수도권 맛집 가이드, 추석맞이 전시·공연, 집콕형 OTT·게임 프로모션 등이 대표적이다. 편의점과 HMR(가정 간편식) 업체는 명절 한정 도시락·한상 차림 제품을 늘리고, 명절 기간 반값·카드 제휴 할인 등 단기 판촉을 강화하고 있다. 추석 선물 시장도 과거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예전에는 굴비·한우·고급 과일 세트 등 전통 품목이 중심이었지만, 최근에는 실속형·소포장 선물세트가 늘었다. 대표적으로 대형마트에서는 고급 커피·차 세트, 수제 디저트처럼 가볍게 주고받을 수 있는 소포장 구성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일과 자기계발이 더 유익해” 명절 스트레스 가족 모임 불참 온라인몰에서는 올리브 오일, 참기름, 견과류, 꿀 등 건강 지향 소품목 세트가 매출 상위에 오르기도 했다. 실속형·소포장 선물을 찾는 배경에는 고물가 부담과 1~2인 가구 증가가 있다. 소비자들은 예전처럼 고가 선물을 준비하기보다, 실용적이고 보관이 편리한 상품을 선택하는 경향을 보인다. 또 명절을 함께 보내는 가족 규모가 줄면서 필요한 양만큼만 담긴 선물세트가 ‘부담 없는 선택’으로 자리 잡았다. 가격 대비 효용을 중시하는 MZ세대 소비자층도 이 같은 흐름을 이끌고 있다. 모바일 선물하기 판매는 전년 추석 대비 두 배 이상 늘었고, 온라인몰도 같은 기간 선물세트 매출이 2배 가까이 증가했다. 편의점 앱을 통한 선물세트 매출은 연중 대비 100% 이상 신장세가 관측됐고, 패션·라이프스타일 플랫폼의 선물하기 거래액도 두 자릿수 증가를 이어가고 있다. 마켓컬리는 추석 기간 한시 선물하기 서비스를 운영하며 홍삼·화장품 등 선물 품목을 확장했다. 명절 식문화 자체도 간편화 된 흐름이 뚜렷하다. 1인 가구 1012만명, 2인 가구 600만명으로 소규모 가구가 크게 늘어난 가운데, 대형마트의 간편 차례상 매출은 최근 3년 연속 증가했다. 편의점의 냉장·냉동 HMR 매출은 두 자릿수 증가했고, 명절 한정 도시락은 1인 가구 밀집 상권에서 판매 비중이 높았다. 이번 추석에도 이런 흐름에 맞춰 대형 마트는 간편 차례상·냉동 밀키트 대형 할인전을, 편의점 4사는 명절 도시락 출시와 제휴 할인행사를 연달아 내놓고 있다. 밀키트와 같은 간편식의 수요가 증가한 데에는 물가 상승이 영향을 미쳤다. 소비자 설문에선 추석 전체 지출 예산이 평균 71만2000원으로 전년 대비 26%가량 늘었다는 응답이 나왔다. 지출 중에는 부모 용돈·선물 비중이 절반을 웃돌았고, 차례상 비용·내식 비용도 적지 않았다. 품목별로 과일·수산물·햅쌀·송편 등의 차례상 음식 가격 부담이 커지면서, 수입 축산물 고려 비율도 늘었다. 이 때문에 “차례상 형식을 간소화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선택의 시대 추석을 준비하는 한 30대 가정주부는 “지금은 시대가 많이 바뀌어서 차례를 안 지내거나 설에 한 번만 지내는 집이 많다. 고물가 시대에 음식을 다 준비하는 것은 부담되는 것 같다. 그런 형식적인 것은 간소화하더라도 차례를 지내는 행위에 의미가 있으니 상관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