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버린 탈북 브로커 '국가기밀' 폭로

  • 강현석 angeli@ilyosisa.co.kr
  • 등록 2013.05.06 15:5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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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 집단송환 돕다 피박만 썼다"

[일요시사=사회팀] 베트남에서 탈북자 송환을 돕다가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이 있다. 류모(73)씨와 이모(63·여)씨 부부는 노무현정부와 이명박정부에 보상을 요구했으나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다. 박근혜정부가 출범한 올해, 이들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대한민국 전역이 '붉은 악마'의 함성으로 뒤덮였던 2002년. 류씨 부부는 베트남 호치민에서 미니호텔을 운영하고 있었다. 한반도로부터 3500여km나 떨어진 이역만리. 그곳에서 류씨 부부는 '국가'란 이름으로 뜻하지 않은 사건에 휘말렸다.
 
정부·교회 권유로
'보호시설3' 운영

사건으로부터 10여년이 흐른 2013년. 경기도 화성의 한 횟집에서 만난 류씨 부부는 한 통의 진정서를 내밀었다. 진정서 첫 머리에는 류씨의 부인인 이씨의 이름과 함께 "저는 보호시설3 관리인 류00의 처 되는 사람입니다"란 글이 적혀 있었다. '보호시설3'은 류씨 부부가 북한을 탈출해 온 난민들을 수용했던 미니호텔의 비공식 명칭이었다. 류씨 부부는 10여년 전 탈북자를 베트남 국경 밖으로 이송하는 역할을 맡았던 이른바 '운반책'이었다.

류씨는 "(탈북자 보호 및 이송과 관련한) 자세한 얘기는 (국정원 직원이) 밖으로 말하지 못하게 했었다"며 어렵게 입을 열었다. 류씨는 지난 2004년 7월, 베트남에서 체류 중이던 탈북자 468명을 국내로 송환할 당시 베트남 내 '5인의 활동가'로 소개된 인물이다.

노무현정부가 주도한 이 '송환 작전'에서 류씨는 베트남으로 급파된 국정원 직원들과 함께 일했다. 그리고 이 사건에 연루, 베트남에서 추방됐다.

그간 외부로 알려진 것과 달리 류씨는 이른바 '활동가의 얼굴'을 하고 있진 않았다. 그저 베트남에 남아 평범한 교민으로 살고자 했던 류씨. 그런 그가 처음 탈북자 보호를 맡게 된 건 교회와 정부의 권유 때문이었다.


2004년 베트남서 468명 극비리 송환작전 참여
출국 돕다 체포후 강제추방…가족들과 생이별

지금으로부터 20여년 전 베트남으로 이민을 떠났던 류씨 부부는 현지에서 생업을 이어가던 중 호치민의 한 한인교회 목사와 인연을 맺게 됐다. 당시 이 목사는 "탈북자를 다 감당할 수 없으니 (국내 입국 전까지) 보호해 달라"는 요청을 류씨 부부에게 했다. 이는 류씨 부부가 탈북자 보호에 용이한 미니호텔을 운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류씨 부부는 경제적으로 도움이 될뿐더러 좋은 일을 한다는 생각에 이 제안을 받아들였다.

이 무렵 류씨 부부에게 도움을 요청한 목사는 베트남 주재 총영사관에도 협조를 요청했다. 류씨의 증언에 따르면 당시 탈북자들 사이에서는 "일단 (중국) 국경을 넘어 베트남에 도착하면 남한에 갈 수 있다"는 소문이 퍼졌던 것으로 전해졌다. 또 "몰려드는 탈북자 수가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나자 영사관 측도 곤혹스러워하는 눈치였다"고 류씨는 전했다.

당시 영사관 측은 북한 및 베트남과의 외교 마찰을 우려하고 있었다. 하지만 인도적 차원에서 결국 교회의 요청을 승낙할 수 밖에 없었다. 베트남 내 탈북자 송환 작업을 총영사관이 직접 관리하기로 한 것이다. 이 같은 소식은 즉각 중국 내로 퍼졌고, 소문을 듣고 국경으로 밀려드는 탈북자 수는 나날이 증가했다.

생업인 호텔에
난민들 보호

탈북자들은 중국 내 브로커들과 접선, 제3국을 경유해 남한으로의 망명을 시도했다. 제1경유지는 베트남. 중국 내 브로커들은 통상 100만∼300만원 정도의 보수를 받고 이들을 베트남 호치민역으로 이송했다. 베트남으로 입국한 브로커들은 "탈북자를 데려왔다"며 영사관에 전화를 걸었다. 그럼 영사관은 다시 류씨 등에게 전화를 걸어 탈북자들을 보호하도록 지시했다.

류씨는 "(호치민역 광장에서) 서로 눈빛을 주고받은 뒤 탈북자를 미니호텔로 데려오는 게 일이었다"며 "베트남 공안 당국에 적발되면 현장에서 체포되기 때문에 이송 과정에서 신중을 기했다"고 설명했다.


당시 류씨와 같이 탈북자를 관리한 인물은 모두 4명. Y씨와 S씨, L씨, 그리고 또 다른 Y씨였다. 이들은 각각 100여명의 탈북자를 보호하며 매주 20여명을 제2경유지인 라오스, 캄보디아 등지로 넘겼다.

류씨의 증언에 따르면 '보호시설3'에는 늘 80∼100여명의 탈북자가 상주했다. 준비된 방은 모두 10개. 각 방마다 8∼10여명의 탈북자가 있었던 셈이다. 이들이 머무르는 방에는 TV와 컴퓨터가 놓였다. 탈북자들을 교육하기 위한 시청각 시설이었다. 탈북자들은 그곳에서 <대장금>, <허준> 등과 같은 한국 드라마를 시청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도착한 순서에 맞춰 제2경유지로 이동했다.

하지만 워낙 많은 인원이 함께 생활하다보니 그 안에서 크고 작은 문제들이 발생했다. 이씨는 "탈북자 중 임산부가 있었을 때 굉장히 난처했다"며 "한 번은 출산이 임박한 임산부가 있어 몰래 출산할 수 있는 병원을 수소문 하느라 애를 먹었다"고 말했다. 또 류씨는 "남자들 간에 칼부림이 일어날 뻔해 '이렇게 가다간 우리 다 죽는다'고 큰 소동이 났던 적이 있다"고 거들었다.

이 같은 문제는 보호시설이 수용해야 할 인원이 많아질수록 격화됐다. 한 여성 탈북자는 보호시설에서 임신을 하기도 했으며, 또 다른 탈북자는 우울증으로 자살을 기도했다. 5개의 보호시설에서 매일같이 사건이 터져 나왔다. 류씨는 "하루 10여명의 탈북자가 미니호텔로 왔는데 라오스나 캄보디아로 넘길 수 있는 탈북자는 1주일에 많아야 30명이었다"며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순번이 밀려 베트남에 장기 체류하는 탈북자가 많아졌고, 어느 틈엔가부터는 도저히 탈북자들을 감당할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문제의 심각성이 대두되자 류씨 등은 영사관 측과 협의, 되도록 많은 탈북자를 단기간에 이송할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됐다. 이 과정에서 베트남 법무성으로 로비가 들어갔다. 탈북자 468명을 한꺼번에 출국시키는 조건으로 류씨 등이 로비활동을 벌인 것이다. 로비에 사용된 돈은 류씨 등이 영사관으로부터 지원받고 있던 금액의 일부로 충당했다. 류씨에 따르면 당시 로비 명목으로 명품시계가 오고 갔다. 그리고 이들의 노력은 결실을 맺었다. 베트남 출입국관리소가 탈북자들의 출국을 조건부로 허용한 것이다.

당시 베트남이 내건 조건은 "탈북자들의 집단 송환을 비밀리에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한국 정부는 베트남의 요구를 수용하고, 전세기 2대를 준비하는 한편 국정원 직원들을 현지로 파견해 탈북자들의 신원 파악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류씨 등은 간첩으로 의심 되는 인물들을 국정원 직원에게 넘겼다. 송환과 관련한 모든 작업은 계획대로 준비되고 있었고, 총영사는 류씨 등 5명과 만나 "이번 일이 끝나면 모두 생업으로 돌아가자"는 약속을 했다.

그러나 비밀리에 추진되던 이 프로젝트는 작전을 불과 하루 앞두고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정부 주도의 탈북자 송환 사실이 국내 언론을 통해 공개된 것이다. 류씨 부부는 "그때 정부가 (비밀리에 추진한다는) 약속만 지켰어도 베트남에서 추방될 일은 없었을 것"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80∼100명 상주
한주 30명 출국

베트남에 체류 중이던 468명의 탈북자는 2004년 7월27일과 28일 양일에 걸쳐 전세기편으로 한국에 입국했다. 그리고 탈북자들이 떠나자 그 후폭풍은 류씨 부부에게 닥쳤다. 불법체류자(탈북자)를 비호·은닉해 온 혐의로 류씨 등 5명이 전원 체포된 것이다.

류씨는 "전세기가 이륙한 후 베트남 공안 수십 명이 들이닥쳐 우리 부부가 갖고 있던 모든 재산을 압수했다"며 "영사관의 면회 신청마저 거부할 정도로 분위기가 심각했다"고 증언했다.

3주간의 수감 생활 동안 류씨는 외부로 연락을 취하기 위해 부인 이씨에게 부탁, 핸드폰을 사식에 몰래 숨겨 넣는 등의 공작을 시도했지만 모두 무위에 그쳤다. 뒤늦게 만난 총영사는 류씨 등 5명에게 "사건을 원만히 해결할 수 있다"며 "일단 기다려 달라"고 말했다.

하지만 보호소 내부 직원을 통해 건네 들은 실상은 충격적이었다. 류씨 등 5명 모두 베트남에서 강제 추방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이들은 송환 작전을 앞두고 총영사에게 신변 안전을 약속받은 상태였다.


출소 후 이들에게 기다린 현실은 가혹했다. 강제출국 조치된 류씨 등은 베트남에 남아있는 가족들과 생이별을 겪어야 했다. 류씨가 한국으로 추방되던 그날. 마중 나온 총영사는 류씨에게 "미안하다"며 위로의 말을 건넸다. 하지만 류씨의 분노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한국 공항에 입국한 류씨 등은 가장 먼저 외교부로 달려가 담당자 면담을 요청했다. 하지만 탈북자 송환 작전을 담당한 직원은 그 자리에 없었다. 다른 직원 2명은 이들에게 "수고했다"며 "언론과 접촉하지 말고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얘기했다. 류씨의 주장에 따르면 이 같은 패턴은 3개월 내내 반복됐다. 류씨 등이 외교부를 찾으면 통일부로 소관을 넘기고, 통일부는 다시 국정원으로 책임을 떠넘기는 식이었다.

보상 약속 정부 안면 바꿔 모르쇠
외교부-통일부-국정원 책임 넘기기
훈포장 수여도 말 바꿔 없던 일로

이 과정에서 한 외교부 관계자는 류씨 등 5인에게 '훈장 수여'를 약속했다. 또 국정원 관계자는 보상금을 빌미로 이들을 설득했다. 하지만 "훈장은 커녕 보상금마저 제대로 지급되지 않았다"고 류씨 부부는 주장했다. 보상금의 경우 1인당 1만6000달러라는 다소 적은 액수가 지급됐다는 것.

류씨는 "베트남에서 추방될 때 입은 재산 손실만 3만달러가 넘는데 제대로 된 보상이 이뤄진 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씨 역시 "남편이 추방된 후 혼자서 사업을 꾸리다보니 힘든 일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며 "특히 베트남 경찰은 늘 우리 미니호텔을 감시하는 등 (사건 이후) 정상적인 영업이 불가능한 상태였다"고 억울함으로 호소했다. 이씨는 베트남 당국의 감찰이 심해지자 사업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귀국했다.

현재 한국에서 생활하고 있는 사람은 류씨와 S씨, L씨다. 지난해 베트남 당국에 체포된 Y씨는 입국 금지가 해제된 후 리오스로 들어가 '탈북자 브로커'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다른 Y씨는 베트남 현지인과 결혼해 베트남에 재정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경제 사정은 그리 좋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류씨는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당시 탈북자를 관리했던 5명 모두가 생활고를 겪고 있다"며 "정부를 믿고 누군가는 해야할 일을 한 건데 이렇게 다들 어렵게 사는 건 아니지 않냐"고 반문했다. 

"국정원 직원들은
다들 승진했는데…"

이씨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캄보디아를 방문했을 때 탄원서를 전달했고,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도 인수위 시절 탄원서를 제출했지만 아무도 우리 얘기를 듣지 않았다"며 "구출 작업 당시 함께 일했던 국정원 직원 A씨는 간첩을 잡아 승진도 하고 대학교 총장으로 부임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우리만 힘들 게 사는 게 조금은 원망스럽다"고 말했다.

수소문 끝에 만난 S씨는 "당시 모든 방법을 동원했지만 해결이 안 됐고, 지금에 와서 언론 인터뷰에 응할 마음이 전혀 없다"며 "북한 측에서 입국시킨 탈북자들을 다시 북으로 송환하라는 말에 한국 정부는 (알면서도) 뒷짐을 질 수 밖에 없었던 상황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또 <일요시사>는 리오스 현지에서 브로커로 활동 중인 Y씨와 통화를 시도했으나 연결이 되지 않았다.

Y씨는 최근 지인에게 '200달러를 빌려달라'고 호소하는 등 극심한 생활고를 겪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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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고객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쿠팡의 태도가 도마 위에 올랐다. 현재까지 대응만 봐서는 국민은 물론, 정부와도 전면전을 벌일 기세다. 새어나간 정보의 범위와 규모가 ‘역대급’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최악의 사태임에도 불구하고 쿠팡의 고개는 꺾일 줄 모르고 있다. 일각에서는 ‘뭘 믿고 저러나’ 소리가 나오는 중이다. 쿠팡의 고객 개인정보 유출 사건, 이른바 쿠팡 사태가 점입가경이다. 사태가 일어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수습은커녕 국민의 화만 돋우고 있다. 쿠팡의 대응 태도가 미지근한 수준을 넘어 뻔뻔한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 김범석 의장은 모습을 비추지 않고 보상안은 꼼수로 가득하다. 국민을 조롱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한 달 만에 고개 숙여 지난해 11월 말 3370만명에 이르는 쿠팡 고객의 개인정보가 ‘탈탈’ 털렸다. 앞서 쿠팡은 4500여건의 고객 정보가 유출됐다고 정부 당국에 신고했지만 2주 만에 그 수치는 7500배까지 늘어났다. 전 국민의 65% 수준이며 지난해 4월 SKT 개인정보 유출 사태 범위(2300만명)를 훌쩍 넘는 사태였다. 쿠팡은 이커머스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갖고 있다. 대형마트 등이 규제에 막혀 뒷걸음질 칠 때 쿠팡은 로켓배송으로 시장을 싹쓸이했다. 전날 저녁에 주문해도 새벽이면 물건이 문 앞에 와 있는 총알 배송에 소비자는 쿠팡으로 몰렸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비판을 받던 물류센터는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아이러니하게도 쿠팡이 국민의 실생활에 얼마나 스며들어있는지를 바로 보여줬다. 쿠팡 사태가 터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은 “쿠팡이 경쟁자가 없는 시장 지위를 누리고 있고 한국 고객이 데이터 유출에 덜 민감해 보인다”며 “잠재적 고객의 이탈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놨다. 그래서일까? 쿠팡은 역대 최악의 정보 유출 사태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도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이 언급하고 정부 차원의 TF가 꾸려졌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힘겨루기’를 하는 태도를 보이는 중이다. 최근에는 정부의 반박에도 자체 조사 결과를 고집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보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쿠팡은 지난달 25일 ‘정보 유출자는 3300만개 계정에 접근했으나 실제 저장한 정보는 3000여개에 불과하며 제3자 유출 정황은 없는 등 피해가 미미하다’는 내용의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면서 “(유출자는)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언론 보도를 접한 이후 저장했던 정보를 모두 삭제하고 범죄에 사용한 노트북을 파손해 하천에 던졌다”고 주장했다. 쿠팡은 “잠수부들이 벽돌에 담긴 쿠팡 가방에 든 노트북을 하천에서 회수했고 유출자가 클라우드 계정에 등록한 일련번호와 해당 노트북의 일련번호가 일치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범행에 사용된 PC 와 노트북 등 모든 장치를 회수해 안전하게 확보했고 글로벌 보안업체들의 조사 결과도 진술 내용과 같았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매출 90% 나오는데 정보 유출 태도·대응 낙제점 쿠팡이 발표한 대로라면 고객 정보 유출 피해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든다. 또 유출자와 접촉해 장치를 확보했으니 추가 피해는 없다. 전체적으로 사건이 축소되는 것이다. 쿠팡의 발표에 정부는 강하게 반발했다. 쿠팡의 조사 내용은 사전에 정부와 어떤 논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됐다는 설명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는 “정보 유출 종류와 규모, 경위 등은 민관합동조사단이 조사 중인 사안”이라며 “쿠팡이 발표한 내용은 조사단에 의해 확인된 바 없다”고 밝혔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과도 “쿠팡 측이 제출한 진술서와 노트북 등 증거물을 분석 중”이라며 “사실관계를 면밀하게 확인하겠다”고 했다. 논란이 계속되자 쿠팡은 정부의 지시를 받아 조사를 진행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경찰은 사전 협의가 없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사실관계가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쿠팡은 지난달 26일 내놓은 입장문에서 “정부의 지시에 따라 수주간 진행한 조사였다”고 선을 그었다. 같은 달 9일 정부가 쿠팡 측에 유출자와 접촉할 것을 제안했고 14일 쿠팡은 유출자를 처음 만난 뒤 해당 사실을 정부에 보고했으며 16일에는 정부 지시에 따라 유출자의 데스크톱과 하드드라이브를 정부에 제공했다는 게 쿠팡 측 주장이다. 하지만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도 “쿠팡의 입장문 형식의 보도자료에서 정부와 협력했다는 내용 중 일부 국정원으로 추정되는 부분도 사실과 다르거나 왜곡된 부분이 있다”고 반박했다. 쿠팡이 자체 조사와 관련해 정부와 사실 공방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 김범석 쿠팡 의장이 사건 발생 한 달여 만에 사과했다. 그동안 박대준 전 대표가 청문회 등에서 뭇매를 맞고 있는 동안에도 김 의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정부의 압박이 거세지자 처음으로 입을 연 것이다. 5만원 상당 속사정은? 김 의장은 지난달 28일 “쿠팡의 창업자이자 이사회 의장으로서, 쿠팡 전체 임직원을 대표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저희의 책임으로 발생한 이번 데이터 유출로 인해 많은 분께서 자신의 개인정보가 안전하지 않다는 두려움과 불안을 느꼈고 사고 초기부터 명확하게 직접적으로 소통하지 못한 점으로 인해 큰 좌절감과 실망을 안겨 드렸다”며 “사고 직후 미흡했던 초기 대응과 소통 부족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한 달 만에야 입을 연 부분에 대해 “무엇보다 제 사과가 늦었다”면서 “모든 사실이 확인된 이후에 공개적으로 소통하고 사과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돌이켜보면 이는 잘못된 판단”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비판과 질책을 겸허히 받아들인다고도 했다. 하지만 자체 조사 논란에 대해서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김 의장은 “쿠팡은 조사 초기부터 정부에 전면적으로 협력해 왔다”며 “일련의 과정에서 많은 오정보가 확산하는 상황에서도 정부의 ‘기밀 유지’ 요청을 엄격히 준수했다”고 주장했다. 김 의장의 사과는 국회 6개 상임위원회가 참여하는 대규모 연석 청문회를 이틀 앞두고 나왔다. 정부가 범부처 TF를 과기부 총리 산하로 확대하고 다각도로 압수수색과 조사를 진행하는 등 대응 수위를 높이는 상황에 압박을 느꼈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그러나 사과와는 별개로 김 의장은 청문회에 불출석하겠다고 밝혔다. 김 의장뿐만 아니라 동생인 김유석 쿠팡 부사장, 강한승 전 쿠팡 대표 등이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면서 쿠팡에 대한 부정적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여기에 쿠팡이 내놓은 보상안도 도마 위에 올랐다. 쿠팡은 지난달 29일 고객 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해 총 1조6850억원 규모의 보상안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전체적으로 보면 1인당 5만원 상당이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뜯어보면 쿠팡의 ‘꼼수’가 보인다. 청문회는 나 몰라라 보상안은 ▲쿠팡 전 상품 구매 이용권 5000원 ▲쿠팡이츠 5000원 ▲쿠팡트래블 2만원 ▲명품 플랫폼 알럭스 2만원 등으로 구성됐다. 소비자들은 보상금의 상당 부분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 등 평소 이용 빈도가 낮은 서비스 이용권 위주로 구성된 점을 지적했다. 실제 이번 보상안을 통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를 처음 알게 됐다는 소비자도 있다. 시민단체도 쿠팡의 보상안에 반발했다. 참여연대는 “1인당 5만원 보상이라고 했지만 현금이 아닌 구매 이용권으로 사실상 강제 소비를 유도하는 방식”이라며 “보상이 아니라 매출 확대를 위한 마케팅에 불과하다”는 내용의 논평을 발표했다. 쿠팡의 행보는 사사건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민을 조롱하고 정부를 기만하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쿠팡이 미국 시장에 상장한 기업이지만 매출 대부분을 우리나라에서 벌어들이는 상황인데도 이 같은 태도를 보이는 것에 분노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회원 탈퇴, 보상안 거부, 집단소송 참여 움직임이 거세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심지어 이재명 대통령도 쿠팡 사태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쿠팡 사태가 일어나고 사흘 뒤인 지난달 2일 “쿠팡 때문에 국민의 걱정이 많다”면서 “사고 원인을 규명하고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관계부처는 해외 사례를 참고해 과징금을 강화하고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도 현실화하는 등 실질적인 실효적 대책에 나서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뒤늦은 사과·꼼수 보상안 도마 위에 이래서 정치권 인사 영입했나? 의혹 12일에도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반복되는 것에 대해 “경제 제재가 너무 약해서 규정 위반을 밥 먹듯이 한다”며 “앞으로는 규정을 위반해 국민에게 피해를 주면 엄청난 경제 제재를 당해서 ‘회사가 망한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규정을 위반하면 난리가 나야 하는 것 아니냐”며 “그런데 위반해도 태도를 보면 ‘그래서 어쩔 건데’ 이런 느낌이 든다”고 지적했다. 정부도 쿠팡에 강력하게 경고하며 전방위 대응을 예고했다. 실제로 같은 달 29일, 배경훈 부총리 겸 과기부 장관 주재로 ‘쿠팡 사태 범정부TF’ 회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과기부와 경찰청, 개인정보위원회, 금융위원회 등은 역할을 분담해 신속한 조사를 진행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배 부총리는 “쿠팡이 국내 고객 정보 3000만건 이상을 유출한 것은 명백한 국내법 위반 사항으로 정부는 쿠팡이 관련 법령을 위반한 사실이 확인될 경우, 다른 기업과 동일하게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에 따라서는 영업정지 여부도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사방에서 몰아치는 압박에도 쿠팡이 연달아 이상한 행보를 보이자 ‘믿는 구석’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그 정도로 쿠팡의 현재 대응 방식을 이해할 수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쿠팡이 미국 기업인 것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 증시가 쿠팡의 모든 결정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는 것이다. 실제 쿠팡이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한 다음 날 미국 뉴욕 증시에서 쿠팡의 주가는 6% 급등했다. 국내에서는 쿠팡의 ‘셀프 조사’에 분통을 터트리고 있는데 미국 시장에는 호재로 작용한 것이다. 쿠팡이 정치·국회 인사를 대거 영입한 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정치권 인사를 영입해 쿠팡 관련 각종 논란을 틀어막고 있다는 의혹이다. 해당 의혹은 ‘강력 경고’ ‘전방위적 대응’ 등의 수사를 사용하고 있지만 실제 조사는 흐지부지될 것이라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오는 배경으로도 꼽힌다. 변죽 울리다 무사통과? 실제 최근 원내대표직에서 사퇴한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이 국정감사를 한 달여 앞둔 시점에 박대준 전 쿠팡 대표 및 대관 총괄과 오찬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쿠팡이 일용직 퇴직금 미지급 사건에서 검찰 외압 의혹, 물류센터·배송 기사의 과로 및 산재 사망 문제가 제기된 상황이었던 만큼 적절성 논란이 불거졌다. 김 의원은 그달 16일 자신의 SNS에 “공개 일정이고 적어도 5명이 (함께) 식사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만남보다 대화의 내용이 중요한 것 아니냐? 참고로 지난해 7월16일 쿠팡 물류센터도 방문했었다”고 적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