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버린 탈북 브로커 '국가기밀' 폭로

  • 강현석 angeli@ilyosisa.co.kr
  • 등록 2013.05.06 15:5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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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 집단송환 돕다 피박만 썼다"

[일요시사=사회팀] 베트남에서 탈북자 송환을 돕다가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이 있다. 류모(73)씨와 이모(63·여)씨 부부는 노무현정부와 이명박정부에 보상을 요구했으나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다. 박근혜정부가 출범한 올해, 이들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대한민국 전역이 '붉은 악마'의 함성으로 뒤덮였던 2002년. 류씨 부부는 베트남 호치민에서 미니호텔을 운영하고 있었다. 한반도로부터 3500여km나 떨어진 이역만리. 그곳에서 류씨 부부는 '국가'란 이름으로 뜻하지 않은 사건에 휘말렸다.
 
정부·교회 권유로
'보호시설3' 운영

사건으로부터 10여년이 흐른 2013년. 경기도 화성의 한 횟집에서 만난 류씨 부부는 한 통의 진정서를 내밀었다. 진정서 첫 머리에는 류씨의 부인인 이씨의 이름과 함께 "저는 보호시설3 관리인 류00의 처 되는 사람입니다"란 글이 적혀 있었다. '보호시설3'은 류씨 부부가 북한을 탈출해 온 난민들을 수용했던 미니호텔의 비공식 명칭이었다. 류씨 부부는 10여년 전 탈북자를 베트남 국경 밖으로 이송하는 역할을 맡았던 이른바 '운반책'이었다.

류씨는 "(탈북자 보호 및 이송과 관련한) 자세한 얘기는 (국정원 직원이) 밖으로 말하지 못하게 했었다"며 어렵게 입을 열었다. 류씨는 지난 2004년 7월, 베트남에서 체류 중이던 탈북자 468명을 국내로 송환할 당시 베트남 내 '5인의 활동가'로 소개된 인물이다.

노무현정부가 주도한 이 '송환 작전'에서 류씨는 베트남으로 급파된 국정원 직원들과 함께 일했다. 그리고 이 사건에 연루, 베트남에서 추방됐다.

그간 외부로 알려진 것과 달리 류씨는 이른바 '활동가의 얼굴'을 하고 있진 않았다. 그저 베트남에 남아 평범한 교민으로 살고자 했던 류씨. 그런 그가 처음 탈북자 보호를 맡게 된 건 교회와 정부의 권유 때문이었다.


2004년 베트남서 468명 극비리 송환작전 참여
출국 돕다 체포후 강제추방…가족들과 생이별

지금으로부터 20여년 전 베트남으로 이민을 떠났던 류씨 부부는 현지에서 생업을 이어가던 중 호치민의 한 한인교회 목사와 인연을 맺게 됐다. 당시 이 목사는 "탈북자를 다 감당할 수 없으니 (국내 입국 전까지) 보호해 달라"는 요청을 류씨 부부에게 했다. 이는 류씨 부부가 탈북자 보호에 용이한 미니호텔을 운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류씨 부부는 경제적으로 도움이 될뿐더러 좋은 일을 한다는 생각에 이 제안을 받아들였다.

이 무렵 류씨 부부에게 도움을 요청한 목사는 베트남 주재 총영사관에도 협조를 요청했다. 류씨의 증언에 따르면 당시 탈북자들 사이에서는 "일단 (중국) 국경을 넘어 베트남에 도착하면 남한에 갈 수 있다"는 소문이 퍼졌던 것으로 전해졌다. 또 "몰려드는 탈북자 수가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나자 영사관 측도 곤혹스러워하는 눈치였다"고 류씨는 전했다.

당시 영사관 측은 북한 및 베트남과의 외교 마찰을 우려하고 있었다. 하지만 인도적 차원에서 결국 교회의 요청을 승낙할 수 밖에 없었다. 베트남 내 탈북자 송환 작업을 총영사관이 직접 관리하기로 한 것이다. 이 같은 소식은 즉각 중국 내로 퍼졌고, 소문을 듣고 국경으로 밀려드는 탈북자 수는 나날이 증가했다.

생업인 호텔에
난민들 보호

탈북자들은 중국 내 브로커들과 접선, 제3국을 경유해 남한으로의 망명을 시도했다. 제1경유지는 베트남. 중국 내 브로커들은 통상 100만∼300만원 정도의 보수를 받고 이들을 베트남 호치민역으로 이송했다. 베트남으로 입국한 브로커들은 "탈북자를 데려왔다"며 영사관에 전화를 걸었다. 그럼 영사관은 다시 류씨 등에게 전화를 걸어 탈북자들을 보호하도록 지시했다.

류씨는 "(호치민역 광장에서) 서로 눈빛을 주고받은 뒤 탈북자를 미니호텔로 데려오는 게 일이었다"며 "베트남 공안 당국에 적발되면 현장에서 체포되기 때문에 이송 과정에서 신중을 기했다"고 설명했다.


당시 류씨와 같이 탈북자를 관리한 인물은 모두 4명. Y씨와 S씨, L씨, 그리고 또 다른 Y씨였다. 이들은 각각 100여명의 탈북자를 보호하며 매주 20여명을 제2경유지인 라오스, 캄보디아 등지로 넘겼다.

류씨의 증언에 따르면 '보호시설3'에는 늘 80∼100여명의 탈북자가 상주했다. 준비된 방은 모두 10개. 각 방마다 8∼10여명의 탈북자가 있었던 셈이다. 이들이 머무르는 방에는 TV와 컴퓨터가 놓였다. 탈북자들을 교육하기 위한 시청각 시설이었다. 탈북자들은 그곳에서 <대장금>, <허준> 등과 같은 한국 드라마를 시청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도착한 순서에 맞춰 제2경유지로 이동했다.

하지만 워낙 많은 인원이 함께 생활하다보니 그 안에서 크고 작은 문제들이 발생했다. 이씨는 "탈북자 중 임산부가 있었을 때 굉장히 난처했다"며 "한 번은 출산이 임박한 임산부가 있어 몰래 출산할 수 있는 병원을 수소문 하느라 애를 먹었다"고 말했다. 또 류씨는 "남자들 간에 칼부림이 일어날 뻔해 '이렇게 가다간 우리 다 죽는다'고 큰 소동이 났던 적이 있다"고 거들었다.

이 같은 문제는 보호시설이 수용해야 할 인원이 많아질수록 격화됐다. 한 여성 탈북자는 보호시설에서 임신을 하기도 했으며, 또 다른 탈북자는 우울증으로 자살을 기도했다. 5개의 보호시설에서 매일같이 사건이 터져 나왔다. 류씨는 "하루 10여명의 탈북자가 미니호텔로 왔는데 라오스나 캄보디아로 넘길 수 있는 탈북자는 1주일에 많아야 30명이었다"며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순번이 밀려 베트남에 장기 체류하는 탈북자가 많아졌고, 어느 틈엔가부터는 도저히 탈북자들을 감당할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문제의 심각성이 대두되자 류씨 등은 영사관 측과 협의, 되도록 많은 탈북자를 단기간에 이송할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됐다. 이 과정에서 베트남 법무성으로 로비가 들어갔다. 탈북자 468명을 한꺼번에 출국시키는 조건으로 류씨 등이 로비활동을 벌인 것이다. 로비에 사용된 돈은 류씨 등이 영사관으로부터 지원받고 있던 금액의 일부로 충당했다. 류씨에 따르면 당시 로비 명목으로 명품시계가 오고 갔다. 그리고 이들의 노력은 결실을 맺었다. 베트남 출입국관리소가 탈북자들의 출국을 조건부로 허용한 것이다.

당시 베트남이 내건 조건은 "탈북자들의 집단 송환을 비밀리에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한국 정부는 베트남의 요구를 수용하고, 전세기 2대를 준비하는 한편 국정원 직원들을 현지로 파견해 탈북자들의 신원 파악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류씨 등은 간첩으로 의심 되는 인물들을 국정원 직원에게 넘겼다. 송환과 관련한 모든 작업은 계획대로 준비되고 있었고, 총영사는 류씨 등 5명과 만나 "이번 일이 끝나면 모두 생업으로 돌아가자"는 약속을 했다.

그러나 비밀리에 추진되던 이 프로젝트는 작전을 불과 하루 앞두고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정부 주도의 탈북자 송환 사실이 국내 언론을 통해 공개된 것이다. 류씨 부부는 "그때 정부가 (비밀리에 추진한다는) 약속만 지켰어도 베트남에서 추방될 일은 없었을 것"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80∼100명 상주
한주 30명 출국

베트남에 체류 중이던 468명의 탈북자는 2004년 7월27일과 28일 양일에 걸쳐 전세기편으로 한국에 입국했다. 그리고 탈북자들이 떠나자 그 후폭풍은 류씨 부부에게 닥쳤다. 불법체류자(탈북자)를 비호·은닉해 온 혐의로 류씨 등 5명이 전원 체포된 것이다.

류씨는 "전세기가 이륙한 후 베트남 공안 수십 명이 들이닥쳐 우리 부부가 갖고 있던 모든 재산을 압수했다"며 "영사관의 면회 신청마저 거부할 정도로 분위기가 심각했다"고 증언했다.

3주간의 수감 생활 동안 류씨는 외부로 연락을 취하기 위해 부인 이씨에게 부탁, 핸드폰을 사식에 몰래 숨겨 넣는 등의 공작을 시도했지만 모두 무위에 그쳤다. 뒤늦게 만난 총영사는 류씨 등 5명에게 "사건을 원만히 해결할 수 있다"며 "일단 기다려 달라"고 말했다.

하지만 보호소 내부 직원을 통해 건네 들은 실상은 충격적이었다. 류씨 등 5명 모두 베트남에서 강제 추방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이들은 송환 작전을 앞두고 총영사에게 신변 안전을 약속받은 상태였다.


출소 후 이들에게 기다린 현실은 가혹했다. 강제출국 조치된 류씨 등은 베트남에 남아있는 가족들과 생이별을 겪어야 했다. 류씨가 한국으로 추방되던 그날. 마중 나온 총영사는 류씨에게 "미안하다"며 위로의 말을 건넸다. 하지만 류씨의 분노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한국 공항에 입국한 류씨 등은 가장 먼저 외교부로 달려가 담당자 면담을 요청했다. 하지만 탈북자 송환 작전을 담당한 직원은 그 자리에 없었다. 다른 직원 2명은 이들에게 "수고했다"며 "언론과 접촉하지 말고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얘기했다. 류씨의 주장에 따르면 이 같은 패턴은 3개월 내내 반복됐다. 류씨 등이 외교부를 찾으면 통일부로 소관을 넘기고, 통일부는 다시 국정원으로 책임을 떠넘기는 식이었다.

보상 약속 정부 안면 바꿔 모르쇠
외교부-통일부-국정원 책임 넘기기
훈포장 수여도 말 바꿔 없던 일로

이 과정에서 한 외교부 관계자는 류씨 등 5인에게 '훈장 수여'를 약속했다. 또 국정원 관계자는 보상금을 빌미로 이들을 설득했다. 하지만 "훈장은 커녕 보상금마저 제대로 지급되지 않았다"고 류씨 부부는 주장했다. 보상금의 경우 1인당 1만6000달러라는 다소 적은 액수가 지급됐다는 것.

류씨는 "베트남에서 추방될 때 입은 재산 손실만 3만달러가 넘는데 제대로 된 보상이 이뤄진 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씨 역시 "남편이 추방된 후 혼자서 사업을 꾸리다보니 힘든 일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며 "특히 베트남 경찰은 늘 우리 미니호텔을 감시하는 등 (사건 이후) 정상적인 영업이 불가능한 상태였다"고 억울함으로 호소했다. 이씨는 베트남 당국의 감찰이 심해지자 사업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귀국했다.

현재 한국에서 생활하고 있는 사람은 류씨와 S씨, L씨다. 지난해 베트남 당국에 체포된 Y씨는 입국 금지가 해제된 후 리오스로 들어가 '탈북자 브로커'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다른 Y씨는 베트남 현지인과 결혼해 베트남에 재정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경제 사정은 그리 좋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류씨는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당시 탈북자를 관리했던 5명 모두가 생활고를 겪고 있다"며 "정부를 믿고 누군가는 해야할 일을 한 건데 이렇게 다들 어렵게 사는 건 아니지 않냐"고 반문했다. 

"국정원 직원들은
다들 승진했는데…"

이씨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캄보디아를 방문했을 때 탄원서를 전달했고,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도 인수위 시절 탄원서를 제출했지만 아무도 우리 얘기를 듣지 않았다"며 "구출 작업 당시 함께 일했던 국정원 직원 A씨는 간첩을 잡아 승진도 하고 대학교 총장으로 부임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우리만 힘들 게 사는 게 조금은 원망스럽다"고 말했다.

수소문 끝에 만난 S씨는 "당시 모든 방법을 동원했지만 해결이 안 됐고, 지금에 와서 언론 인터뷰에 응할 마음이 전혀 없다"며 "북한 측에서 입국시킨 탈북자들을 다시 북으로 송환하라는 말에 한국 정부는 (알면서도) 뒷짐을 질 수 밖에 없었던 상황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또 <일요시사>는 리오스 현지에서 브로커로 활동 중인 Y씨와 통화를 시도했으나 연결이 되지 않았다.

Y씨는 최근 지인에게 '200달러를 빌려달라'고 호소하는 등 극심한 생활고를 겪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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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창행 김건희’ 아직 남은 의혹들

‘철창행 김건희’ 아직 남은 의혹들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논란과 문제가 끊이지 않던 퍼스트레이디가 결국 구속됐다. 김건희 여사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검찰총장 인사청문회부터 사사건건 발목을 잡던 의혹으로 최초로 구속된 영부인이 됐다. 김 여사의 구속 기간인 20일 동안 김건희 특검팀은 남은 수사에 박차를 가한다는 계획이다. 법원이 지난 13일, 김건희 여사에 대한 구속영장을 전격 발부하면서 최초로 전직 대통령 부부가 모두 구속되는 헌정사상 초유의 일이 발생했다. 대통령보다 힘이 세던 V0이 몰락한 셈이다. 주요 의혹인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명태균 공천 개입’ ‘건진법사·통일교 현안 청탁’ 등으로 김 여사 구속에 성공한 김건희 특검팀은 남은 의혹에 대한 수사에도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 “증거인멸 도주 우려” 이날 법조계에 따르면, 김 여사는 구속영장이 발부되면서 정식 구치소 입소 절차를 거쳤다. 이름과 주민등록번호·주소 등 인적 사항을 확인한 후 일반 수용자와 마찬가지로 정밀 신체검사를 진행한다. 이는 마약 등 반입 금지 물품을 지니고 들어왔는지 등을 확인하는 절차다. 왼쪽 가슴 부분에 수용자 번호가 있는 미결수용 수용복으로 갈아 입고, 얼굴 사진인 ‘머그샷’을 촬영한다. 또 지문 채취와 구치소 내 규율 등 생활 안내, 건강 검진도 받게 된다. 이후 세면 도구와 모포, 식기 세트 등을 받아 본인 ‘감방’으로 향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으로) 영부인 신분이 아닌 만큼 일반 수용자와 똑같은 대우를 받는다”는 게 법무부 측 설명이다. 김 여사는 앞서 수감된 윤 전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독거실에 수용될 전망이다. 크기는 구인 피의자 대기실과 비슷하며 매트리스와 책상 겸 밥상, 관물대, TV 등이 비치돼있다. 끼니도 구치소에서 제공하는 1700원짜리 음식으로 해결해야 한다. 식사와 목욕도 일반 수용자와 같은 절차에 따르지만, 보안상 다른 수용자와의 동선이 겹치지 않도록 조정될 것으로 보인다. 김건희 특검팀(특별검사 민중기)은 지난 7일, 김 여사에 대한 사전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특검은 법원에 22쪽 분량의 구속영장 청구서와 함께 848쪽 분량의 의견서를 제출했다. 구속 의견서에는 ▲지난 4월4일 윤 전 대통령 파면 직후 김 여사가 휴대전화를 교체한 사실 ▲탄핵 인용 전 코바나컨텐츠 사무실에 있는 노트북을 포맷한 사실 ▲김 여사의 ‘문고리’로 불리던 유경옥·정지원 전 대통령실 행정관이 휴대전화를 초기화한 사실 등이 적시됐다. 특검은 ▲김 여사가 지난 6일 조사 과정에서 자신의 혐의를 전면 부인한 점 ▲김 여사의 진술이 계속 바뀌는 점 ▲압수된 휴대전화의 비밀번호를 알려주지 않는 등 수사에 비협조적인 점 ▲전 대통령실 행정관 등 최측근과 말 맞추기를 시도할 우려가 있다는 점 등을 들어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김 여사가 건강상 이유로 입원할 경우 수사에 불응할 가능성이 있다며 구속 사유에 ‘도주 우려’를 포함했다. 영장실질심사에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수사를 주도했던 한문혁 부장검사 등 8명이, 김 여사 측에선 유정화·채명성·최지우 변호사가 참여했다. 김 여사 측은 이날 약 80페이지 분량의 자료를 준비했으며 특검도 구속 수사의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약 3시간 분량의 프리젠테이션(PT)을 진행했으나 법원은 특검의 손을 들어줬다. 특검팀이 처음 주목한 의혹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이른바 명태균 게이트로 불리는 ‘명태균 공천 개입’ 건진 게이트로 불리는 ‘건진법사·통일교 현안 청탁 의혹’이다. 특검팀은 이를 848쪽의 구속 의견서에 담았다. 최초 전직 대통령 부부 구속 의견서엔 구체적 사실 적시 구체적으로 김 여사가 지난 2010년 10월부터 2012년 12월까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범행에 가담한 공범이라고 판단하며 불법 거래 횟수가 총 3822회에 달한다고 적시했다. 특검은 김 여사가 주가조작으로 수익 8억1144만3596원을 얻어내기 위해 70만2512주를 권오수 전 도이치모터스 회장 등과 공모해 통정매매 188회, 가장매매 12회를 했다고 판단했다. 또 같은 기간 주가를 올리려는 목적으로 높은 값에 사는 척하는 고가 매수 주문 1661회, 주가를 내리려는 목적으로 많은 양의 주식을 파는 척하는 물량 소진 주문 1432회, 허수 매수 주문 367회, 시가·종가 관여 주문 242회 등의 이상매매 주문을 김 여사가 권 전 회장 등과 공모해 제출했다고 봤다. 4년 넘게 김 여사의 주가조작 연루 의혹을 수사했던 서울중앙지검은 지난해 10월 “김 여사가 주가조작을 인식했다고 볼 증거가 없다”며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김 여사의 계좌가 주가조작에는 이용됐지만 범행을 알았다는 증거가 없었다는 취지라며 주가조작 공모와 방조 모두 무혐의로 판단했다. 하지만 특검은 보강 수사를 거쳐 방조 혐의를 넘어 공범 혐의를 적용했다. 특검은 2011년 1월경 김 여사가 미래에셋증권 직원과 통화하면서 “6대 4로 나누면 저쪽에 얼마를 줘야 하는 것이냐”며 “2억7000만원을 줘야 하는 것 같다”고 말한 통화 녹취록을 확보해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여사가 통화 당일 은행 계좌에서 2억7000만원을 수표로 인출한 사실도 확인했다. 이에 특검은 김 여사가 주가조작 주도 세력인 ‘저쪽’에 수익 40%를 떼어줬다고 판단하고 “시세조종이라는 교묘한 수법을 동원해 재산상 이득을 취했다”고 적시했다. 특검은 정치 브로커 명태균씨 관련 공천 개입 의혹과 건진법사 전성배씨 관련 통일교 현안 청탁 의혹 등에 대해선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가 공적 지위를 사적으로 활용한 사건”이라고 판단했다. 특검은 “헌법적 가치가 훼손됐다”고 여러 차례 강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검은 윤 전 대통령 부부가 명씨로부터 여론조사를 무상으로 제공받고 공천에 개입했다는 의혹에 대해 ‘정당의 후보자 추천 제도에 정치권력과 금권이 개입한 사건’으로 규정하며 “선거제도의 출발점인 공천의 공정성을 훼손하면서 정당의 후보자 추천 제도를 포함한 대한민국의 헌법적 가치를 침해했다”고 영장에 적시했다. 또 윤모 전 통일교 세계본부장으로부터 샤넬 백 2개와 영국 그라프사의 다이아몬드 목걸이 등 총 8000여만원의 금품을 전씨를 통해 전달받은 뒤 통일교 현안 청탁을 받았다는 의혹에 대해선 김 여사 구속영장을 통해 “종교와 정치가 분리돼야 한다는 헌법 정신에 어긋나는 일을 하면서 국정 질서에 혼란을 초래했다”고 규정했다. 848쪽 의견서 특검은 통일교의 캄보디아 메콩강 부지 개발 등 공적개발원조(ODA) 사업 지원 청탁에 대해선 “김 여사가 대한민국 정부의 조직과 예산에 대한 사적 개입으로 국정 질서에 혼란을 초래했다”고 밝혔다. 특검팀이 밝혀낸 3가지 의혹의 주요한 사실과 더불어 제시한 ‘증거인멸 정황’이 김 여사에 대한 구속영장 발부에 결정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특검은 반클리프 앤 아펠 목걸이를 구매해 김 여사에게 교부한 혐의를 받는 이봉관 서희건설 회장으로부터 전날 제출받은 자수서와 반클리프 앤 아펠 목걸이 진품, 김 여사의 친오빠 진우씨의 장모 자택에서 압수한 목걸이 가품을 영장실질심사에서 제시했다. 이 회장은 자수서에서 “대선이 치러진 2022년 3월 직후 비서실장을 통해 반클리프 앤 아펠 목걸이를 구입해 김 여사에게 전달했고 다시 돌려받았다”고 밝혔다. 특검에 따르면 김 여사가 이 회장 측에 진품을 돌려준 시기는 2022년 6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순방 이후 재산 미등록 의혹 관련 고발장이 제출된 2022년 9월 이후인 것으로 확인됐다. 김건희 특검팀이 수사하고 있는 의혹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삼부토건 주가조작 사건 ▲코바나컨텐츠 뇌물성 협찬 사건 ▲명품 가방 수수 사건 ▲명태균·건진법사 등 민간인이 국정에 관여한 국정 농단 사건 ▲인사 개입 사건 ▲채해병 사건 및 세관 마약 사건 구명 로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개입 ▲제8회 전국동시지방 선거 개입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개입 ▲명태균 등을 통해 제20대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불법 여론조사 등 총 16가지다. 이 외에도 ▲무상 여론조사 제공 대가로 2022년 재보궐선거 공천 거래 등 선거 개입 ▲서울-양평고속도로 노선 변경 및 양평 공흥지구 인허가 과정 개입 ▲대통령 집무실 이전 및 국가 계약에 개입 ▲국가기밀정보 유출 ▲제1호부터 제15호까지의 사건과 이 사건의 수사 과정에서 인지된 관련 사건 및 특별검사의 수사에 대한 방해 행위 등이다. 특검팀은 의혹의 정점인 김 여사의 신병을 확보함에 따라 최장 20일간의 구속 기간 동안 아직 풀리지 않은 사건들에 대한 수사에 속도를 낼 예정이다. 대부분의 의혹이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명태균·건진법사 게이트와 관련된 사건으로, 특검팀은 관련된 사실을 대부분 확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들통난 거짓말 이에 특검팀은 출범 이후 인지한 사건인 ‘집사 게이트’와 관련해 수사력을 모을 것으로 관측된다. 특히 베트남에서 귀국한 ‘김 여사 일가의 집사’ 김예성씨의 신병을 확보함에 따라 향후 수사에도 탄력이 붙을 것으로 보인다. 김씨를 중심으로 IMS모빌리티(구 비마이카)에 대가·보험성 투자 혐의가 의심되는 기업들과 김 여사 일가의 사금고 의혹을 받는 신안저축은행, 그리고 김 여사가 운영해 온 코바나콘텐츠가 개최한 전시회 뇌물 협찬 기업들로 수사가 확대될지도 주목된다. 우선 특검팀은 이번 김 여사의 구속영장 청구에서 배제됐던 ‘반클리프 앤 아펠 목걸이’ 의혹에 대한 수사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6000만원대로 알려진 해당 목걸이는 2022년 6월 윤 전 대통령 부부가 나토 정상회의 참석 차 유럽 순방 당시 착용했다가 재산 신고 누락 논란의 중심에 섰던 바 있다. 목걸이의 행방을 추적해 왔던 특검팀은 최근 김 여사의 오빠인 김진우씨의 장모집에서 해당 목걸이를 확보했지만 감정 결과 모조품인 것으로 확인됐다. 김 여사 역시 해당 목걸이에 대해 모친인 최은순씨에게 선물하기 위해 2010년쯤 홍콩에서 구매한 200만원대 모조품이라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특검팀이 최근 서희건설 측으로부터 윤 전 대통령 당선 직후 ‘김 여사에게 반클리프 스노 플레이크 목걸이의 진품을 직접 건넸다’는 취지의 자수서를 확보하면서 수사는 전환점을 맞이했다. 윤 전 대통령 당선 직후 해당 목걸이를 선물했으며, 몇 년 뒤 김 여사 측으로부터 돌려받아 보관해 왔다는 게 서희건설 측의 설명이다. 서희건설 측은 해당 목걸이 실물도 특검팀에 제출했다. 특검팀 관계자는 “김 여사는 서희건설 측으로부터 목걸이 진품을 교부받아 나토 순방 당시 착용한 게 분명함에도 특검 수사 과정에서 자신이 착용한 제품이 20년 전 홍콩에서 구매한 가품이라고 진술하고 김 여사 오빠 인척집 압수수색 과정에서 이와 동일한 모델인 가품이 발견된 경위에 대해 철저히 수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김 여사를 비롯한 모든 관련자를 수사 방해 및 증거인멸 혐의에 대해 명확히 규명하겠다”고 말했다. 그동안 받은 귀중품 수사 확대 집사 게이트·관저 이전 의혹도 특검팀은 조만간 이봉관 서희건설 회장과 비서실장 최모씨 등을 소환 조사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 인척집에서 최소 3000만원 이상의 바셰론 콘스탄틴 여성용 시계 보증서가 발견된 것과 관련해서도 김 여사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 혐의로 수사 중이다. 해당 시계를 구매한 사업가 서모씨는 최근 특검팀 조사에서 지난 2022년, 윤 전 대통령 취임 뒤 김 여사의 부탁을 받아 같은 해 9월7일쯤 자신이 구매한 뒤 직접 전달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시계 구매 자금 중 일부는 김 여사 측으로부터 받았다는 입장이다. 같은 해 9월 대통령경호처와 1870만원 상당의 로봇개 경호 시범 사업 계약을 맺기도 했다. ‘집사 게이트’와 관련해서는 핵심 키맨인 김씨가 베트남 호찌민에서 귀국하자마자 특검팀은 인천공항에서 체포해 특검 사무실로 압송해 즉시 조사에 착수했다. 김씨의 체포 기한이 영장 집행 기준 48시간 이내이기 때문에 특검팀은 그 안에 수사를 마치고 구속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김씨 역시 특검에 적극 협조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상태다. 특검팀은 김씨를 상대로 집사 게이트에 연루된 기업들의 184억원 투자 경위와 46억원의 행방 그리고 코바나콘텐츠 뇌물 협찬 의혹을 집중 추궁할 것으로 예상된다. 김씨가 운영한 렌터카 플랫폼 사이드스탭 ‘뿅카’는 비마이카와 함께 2015~2019년 코바나콘텐츠가 개최한 4개 전시회 협찬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또 카카오모빌리티와 HS효성 등은 물론 신안저축은행을 대상으로 특검팀의 수사가 확대될지도 주목된다. 특검팀은 카카오모빌리티와 HS효성 등이 IMS모빌리티에 거액을 투자하기 전후로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조사받은 것에 주목하고 있다. 이에 지난 11일, 관련 자료 제출 요구를 위한 정부세종청사 공정위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집행하기도 했다. 김 여사 일가가 운영하는 이에스아이엔디(ESI&D) 등에 130억원이 넘는 대출을 해준 것으로 알려져 사금고 논란이 제기된 바 있는 신안저축은행은 코바나콘텐츠 전시회에도 협찬했다. 신안그룹 회장 차남인 박지호(개명 전 박상훈) 전 신안저축은행 대표는 2010년 서울대 최고경영자과정(EMBA)에서 김 여사와 김씨를 처음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인연이 이어져 2013년 3월 신안저축은행의 각종 불법 대출 혐의가 불기소 처분된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당시 수사를 지휘한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 부장검사가 바로 윤 전 대통령이었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김씨는 박 전 대표의 집사 역할을 했다는 의혹도 있다. 박 전 대표는 신안저축은행이 2017년 김씨와 모친 최은순씨의 329억원대 허위 잔고 증명서 사건의 피해자였음에도 이듬해 김씨를 계열사인 바로투자증권(현 카카오페이증권) 임원으로 선임했다. 특검팀 과제는? 특검팀은 관저 이전 특혜 의혹에 관한 수사도 본격화했다. 이들은 지난 13일 “관저 이전과 관련해 21그램 등 관련 회사 및 관련자 주거지 등에 대해 건설산업기본법 위반 등 혐의로 압수수색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검팀이 관저 이전 문제에 대한 강제수사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관저 이전 특혜 의혹은 윤 전 대통령 취임 후 대통령실과 관저 이전·증축 과정에서 21그램 등 무자격 업체가 공사에 참여하는 등 실정법 위반이 있었다는 게 핵심이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