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음주청문회’ 논란 엿보기

  • 조아라 archo@ilyosisa.co.kr
  • 등록 2013.05.01 15:3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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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 없으면 검증이고 뭐고 필요 없다?!

[일요시사=정치팀] 말 많고 탈 많던 인사청문회였다. 박근혜정부 초기 인사청문회에 국민의 이목이 쏠리면서 크고 작은 논란에 정국이 몇 차례나 들썩였다. 그렇다고 다 그랬던 건 아니다. 그중에서도 저조한 시청률(?)을 기록한 인사청문회는 예외다. 청문회를 보는 이가 적다 보니 아무래도 이를 준비하는 국회의원들의 긴장감도 떨어지게 마련이다. 인사청문을 진행하는 청문위원들의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사소한 감정싸움에 뒷말도 무성하다. 게다가 술을 마신 의원까지 있었다니.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일요시사>가 들여다봤다.  



인터넷 검색창에 인사청문회라고 치면 상단에 유권자의 관심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연관검색어가 뜬다. 단연 일등은 윤진숙 인사청문회다. 윤진숙 해양수산부 장관은 실시간 검색어 상위에 링크돼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며 유명세를 날렸다.

다음은 채동욱, 조윤선, 남재준 인사청문회 순이다. 인사청문회 방송에는 의자에 빼곡히 앉은 인사청문위원들이 준비한 서류 다발을 부산스럽게 찾고 정리하는 모습이 비친다. 빈자리는 거의 없다. 만약 방송을 타지 않는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질의시간 두고 기싸움

얼마 전 열린 이경재 방송통신위원장(이하 방통위장) 후보 내정자의 오후와 저녁 인사청문회는 몹시 썰렁했다. 의원 간 몇 차례 고성도 오갔다. 국민의 관심을 끌 만한 이슈가 없던 탓도 있지만, 오전·오후·저녁에 걸쳐 진행된 인사청문회가 방송을 탄 건 오전뿐인 이유도 있었다.

오전 10시 4분에 개의한 인사청문회에서 한선교 위원장은 “오늘 인사청문회는 KBS와 SBS에서 오전회의 부분만 녹화해서 KBS는 오늘 오후 2시 10분부터 4시까지, SBS는 오후 2시 40분부터 4시까지 중계 방송할 예정입니다”라고 말하며 회의를 시작했다.

한 위원장은 아나운서 출신답게 분명한 목소리와 단정하고 흐트러짐 없는 자세로 청문회를 진행했다.

청문회가 진행되는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회의실은 자리가 꽉 찼다. 창가 쪽에 나란히 선 사진기자들은 이 위원장 후보의 움직임에 초점을 맞추며 연신 플래시를 터트렸다.

이날 청문회 속기록을 보면 오전회의에서 유성엽 민주통합당 의원을 제외하고 모든 의원이 5분여의 질의 시간을 가졌다. 다시 말하면, 유 의원을 제외하고 모두 한 번씩 카메라에 얼굴을 비쳤다. 2시간 38분에 걸쳐 진행된 오전청문회는 오후 12시42분에 중지됐고, 오후 2시57분에 다시 시작됐다.

국회 영상회의록 화면에 비친 회의실은 오전과 달리 거의 텅 비어 있다. 질의응답 내용을 분주하게 받아 기록하던 취재기자와 플래시를 터트리던 사진기자의 모습도 찾아볼 수 없었다.

첫 번째 전병헌 민주당 의원의 질의가 시작되자마자 청문회는 고삐 풀린 듯 흐트러졌다. 전 의원은 질의하려다 “왜 발언하지 않았는데 시간이 가지요?”라고 이의를 제기한 뒤 다시 진행해 줄 것을 한 위원장에게 요구했다.

한 위원장은 짜증 섞인 투로 “아, 참 별것 가지고 다 그러네 진짜”라며 “그냥 하시면 되지 그것 뭐, (중략) 아니 무슨 이의를 제기하실 것 가지고 하셔야지”라며 소리 높여 정 의원을 다그쳤다.

전 의원은 이에 “위원장은 그것을 대단하게 생각하는 사람 아니에요?”라고 목소리를 높이자 한 위원장이 “소리 지리지 마시고, 점잖으신 분이 왜…”라고 말하며 팽팽한 신경전이 벌어졌지만 청문회는 이내 다시 진행됐다. 

시작과 동시에 삐거덕거린 오후 첫 번째 청문회 회의록에는 총 7명의 이름이 빠져 있었다. 새누리당의 김기현, 김태원, 남경필, 박대출, 이상일, 이재영 의원 민주당의 최재천 의원 등이다. 오후 8시35분에 회의를 속개하겠다는 한 위원장의 발언을 마무리로 청문회는 오후 6시36분에 중지됐다.

오전 중계방송 끝나자 텅 빈 회의실, 말다툼에 고성까지
저녁식사 2시간 16분, 청문회 질의서 준비시간도 부족해

저녁회의는 한 위원장이 “저녁 맛있게 드셨습니까?”라는 인사와 함께 두 시간이 조금 넘은 8시51분에 시작했다. 회의 속개를 알리는 한 위원장은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마른침을 삼키며 고개를 젖히는 한 위원장의 얼굴은 약간 홍조를 띠는 듯했다. 

화면에 비친 회의실은 더욱 한산했다. 저녁에 진행된 청문회에서 질의하는 의원 수는 처음보다 절반 정도 줄었다. 마지막 청문회까지 자리를 지킨 의원은 새누리당의 권은희 민병주 염동열 이우현 조해진 의원 등 5명, 민주통합당의 노웅래 배재정 유승희 윤관석 장병완 전병헌 최민희 의원 등 7명, 진보정의당의 이석기 의원 1명으로 총 27명의 출석의원 중 한 위원장을 제외하고 13명이다.

이 중 질의는 하지 않은 채 자리만 지킨 의원이 있다. 이석기 의원의 질의가 끝난 후 한 위원장은 “이우현 의원님!”이라고 호명하며 이 의원과 눈을 맞췄다. “서면으로 질의하겠습니다.” 화면에 등장하지 않은 이 의원은 답은 짤막했다.

곧이어 의원 간 고성이 오갔다. 의원들의 보충·추가 질의 내용에 이미 한 차례 불만을 표했던 염동열 의원이 유승희 의원의 보충질의 제안을 걸고넘어지면서 청문회는 여야 간 싸움으로 번져 한바탕 아수라장이 됐다. 

청문회에 참석했던 한 민주당 관계자 A씨는 취재기자와 만남에서 “의원들은 청문회 앞두고 끼니를 걸러 가며 질의서 준비하고 조사한다”라며 “한쪽은 질의를 하겠다고 하고, 한쪽은 질의를 못하게 하다 양측이 부딪쳤다”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저녁시간 술 마시고 들어와 청문회 내내 자리에 앉아 조는 의원도 있을 정도였다. 청문회가 제대로 진행될 리 없다”라며 의원 3명을 지목했다. 또 다른 의원실 B보좌관은 “누군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술 드시고 청문회에 참석하셨던 분은 계셨다”라고 답했다.

그날 청문회에 참석했던 새누리당 관계자 C씨는 “그에 대해 드릴 말씀이 없다. 간사에게 문의하시면 들으실 수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음주청문회’를 했다고 지목된 의원실 측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하나 같이 전혀 사실무근이라고 답했다.

싸움보다 검증 먼저

당시 청문회에 참석했던 보좌관 D씨는 “그때 의원님은 저녁 약속이 있어 갔다가 청문회에 참석했다. 정말 어처구니없는 이야기다. 우리 의원님은 한 잔만 마셔도 응급실에 실려 가신다. 술을 전혀 못 드시는 분이다”라고 밝혔다. 다른 의원실 보좌관 E씨는 “납득할 수 없는 이야기다. 의원님은 술을 좋아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보좌관 F씨는 한동안 대답을 못 하다가 “정확한 사실이 아닌 떠도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취재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 사실무근이라는 것 말고는 드릴 말씀이 없다”라고 답했다.

음주 여부는 당사자들만이 알겠지만, 안방 전파를 타지 않는 청문회장의 모습은 너무도 달랐다. 카메라 사각지대는 더 이상 공직후보자 검증의 자리가 아니다. 국민은 과연 언제쯤 마음 놓고 국회에 나랏일을 맡길 수 있을까.  


조아라 기자 <archo@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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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법원이 주호영 국회부의장의 대구시장 경선 컷오프 관련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항고할 뜻을 내비쳤다. 주 부의장의 강경 대응은 저조한 국민의힘 지지율과 맞물려 혼란상을 더욱 극적으로 비추고 있다. 과연 국민의힘이란 ‘대마’는 ‘불사’의 존재일까? 주호영 국회부의장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경선에서 컷오프된 것에 반발해 지난달 26일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했다.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수석부장판사 권성수)는 지난 3일 이를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곧바로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법원 결정에 반발했다. 법원 결정 바로 반발 주 부의장은 “저는 그동안 이번 컷오프가 절차·내용 모두 중대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해 왔다”며 “법원의 판단과 별개로 이번 공천 과정이 과연 당원·시민의 눈높이에 맞는 공정하고 민주적인 절차였는지는 여전히 엄중하게 따져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주 부의장은 지난 6일 항고를 제기했다. 이어 지난 8일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항고심 판단을 끝까지 지켜본 후 제 거취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선 일각에서 제기했던 무소속 출마설을 일단 유보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어 주 부의장은 “항고심 판단을 기다린다고 해서 이번 공천 난맥상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체제의 책임을 덮고 가겠단 뜻은 결코 아니”라며 “이런 공천 구조를 만든 세력과 절대로 타협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공천은 충성의 대가나 숙청의 도구가 아닌, 오직 국민 앞에 가장 경쟁력 있고 책임 있는 후보를 세우는 과정”이라고 주장하는 등 자신을 컷오프한 것을 ‘숙청’이라고 암시했다.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에 대해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6선인 주 부의장은 대구 수성에서만 국회의원을 지냈다. 대구 수성을에서는 4선을 지냈고, 수성갑에선 재선에 성공했다. 이 중 4선을 했던 지난 2016년 총선 수성을 선거에선 친박(친 박근혜)계 주도로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 출마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유 있게 이겼다. 문제는 주 부의장이 당내 최다선인 6선 의원 겸 국회부의장이라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명예가 곧 실권을 보장하진 않는다. 아울러 주 부의장이 차기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구에 출마해 7선에 도전하면,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다. 같은 6선인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조정식 의원은 각각 부산 사하을·경기 시흥을을 지역구로 두고 있다. 부산은 이미 격전지가 된 데다 조 의원은 민주당계 정당과 국민의힘 소속으로 각각 3선 했고, 경기 시흥을은 수도권이다. 국민의힘의 안정된 텃밭으로 분류되는 대구 수성을에서 7선에 도전하는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 설령 7선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도 참패 가능성이 제기되는 국민의힘이 2년 후 총선에서 다수당이 된다는 보장도, 국회의장이 되리라는 보장도 하기 어렵다. 오는 2028년 총선까지 연일 떠들썩하게 이어지는 계파 갈등을 어느 정도 안정시킨 후 대안 야당으로 발돋움하면서 이재명정부가 실정으로 지지율이 폭락하는 상황이 겹쳐야 승리를 노려볼 수 있다. 주 부의장이 국회의장에 도전하는 것도 현실적으로는 가능성이 희박하다. 불확실한 국회의장…‘텃밭 7선’ 대신 대구? 연이은 공천 가처분 세례 속 서울 지지율 13% 따라서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집념을 불태우는 것은 필연이다. 대선 패배 후 대구시장에 출마해 당선됐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전례도 있다. 주 부의장으로선 “나라고 출마 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에 있느냐”고 판단해도 무리가 아니란 분석이 있다. 대구시장으로서 임기를 마친 후 대권에 도전하거나 당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가능성은 일명 ‘주한 연대설’로 통하는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와의 연대설 때문에 불거졌다. 이는 국민의힘 이정현 전 공천관리위원장이 주 부의장을 컷오프한 직후 불거졌다.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 대구시장에 출마해 대구 수성갑에서 재보궐선거가 진행되면, 한 전 대표가 여기에 출마하는 형식으로 연대한다”는 설이다. 한 전 대표 측으로선 손해 볼 게 없다. 한 전 대표는 지난달 25일 채널A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보수 재건이 필요하다고 공감하면서 나서겠다고 했다”며 “우린 이미 연대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반면 주 부의장은 신중한 반응을 내비쳤다. 그는 지난달 26일 기자들을 만나던 중 주한 연대설 관련 질문을 받자 “제 코가 석 자인데 딴 생각할 여지가 있겠느냐”고 답변했다. 다만 무소속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선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해 준비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따라서 주한 연대설 성립 가능성 자체를 배제한 것은 아니라는 해석이 나왔다. 주 부의장의 항고 제기는 국민의힘의 치명적 문제 하나를 외부로 노출했다. 국민의힘에선 당내 처분에 대해 연이어 법원으로 달려가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가깝게는 주 부의장과 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컷오프에 대한 가처분을 신청했다. 김 지사는 주 부의장과 달리 가처분이 인용돼 경선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멀게는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배현진 의원에 대해 각각 결정했던 제명·당원권 정지 1년 징계의 효력도 법원에서 정지됐다. 4건의 가처분 모두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에서 판단했다. 재판부는 주 부의장 건에 대해서만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줬다. 장 대표는 김 지사가 신청한 가처분이 인용된 다음 날인 지난 1일 기자들과 만나 “법원이 정치에 너무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며 “재판장이 국민의힘에 와서 공천관리위원장과 윤리위원장을 하면 될 것 같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정치의 사법화가 심각할 정도로 진행된 것 같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천 관련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승리 가능성을 어둡게 하는 신호들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국갤럽은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2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상대로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직접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48%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8%로 집계됐다. 제 코가 석 잔데… 서울에선 민주당 지지율이 51%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3%로 집계됐다. 부산·울산·경남에서도 민주당 지지율은 42%로,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7%로 집계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바람). 영원한 격전지 서울에서도 양당의 지지율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여론조사 결과 수치가 공개되자,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한 지적이 날로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4일 자 사설을 통해 “국민의힘은 지금 수도권에서 후보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며 “현행법상 15% 이상 득표해야 선거 비용을 전액 보전받을 수 있는데 그에 미치지 못할까 걱정한다는 것”이라며 현실을 짚었다. 이어 “말로만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선언했을 뿐 실제로는 반대로 하고 있다”며 “공천 혼란에 대해서도 가처분을 인용한 법원 탓만 할 뿐, 어떻게 수습하고 책임질지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등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조선일보>의 주장대로라면, 수습·책임을 맡을 당 대표는 보이지 않는 셈이다. 해당 매체는 “어렵게 나선 후보들은 국민의힘 상징색인 빨간색을 포기하고 흰색 점퍼를 입고 다닌다”며 “인구가 1300만명에 달하고 국회의원 의석수도 가장 많은 경기도에선 지사 출마자를 구하지 못해 공천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는 현실도 짚었다. <조선일보>가 짚은 국민의힘의 현실은 신체를 통제할 두뇌 없이 거대한 군집을 이룬 채 각자의 역할을 맡은 군집 생물에 비유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관해파리를 들 수 있다. 관해파리는 겉으로 볼 땐 덩치 큰 해파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각각의 역할을 맡은 독립 개체들이 모인 군집이다. 이 개체들은 먹이 섭취·이동·번식 등 각각의 역할만을 담당한다. 각각의 개체들은 생존을 위해 서로 연결돼있지만, 이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뇌는 없다. 개체 중 누군가가 제 역할을 못하면 모두 죽는다. 단세포생물인 점균류도 먹이를 찾을 때, 각자의 세포가 알아서 효율적인 길을 찾는다. 이를 통제할 뇌는 없지만, 화학적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최적의 경로를 결정한다. 그런데 잘못된 경로를 찾으면 방향을 틀 능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는 것은 군집 전체가 굶어 죽는 일이다. 페로몬을 통해 신호를 주고받는 군대개미 집단도 선봉에 선 개미가 길을 잃으면 모든 개미가 원을 그리다가 지쳐 죽는다. 제 역할 못하면… 이탈리아의 정치학자 조반니 사르토리는 원심적 경쟁 이론을 주장했다. 보통의 민주주의 국가에선 정당이 중도층의 표심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강경한 여당과 무책임한 야당이 양립할 땐 정당이 중도층을 설득하기보다 진영 결집에 따른 조직표 구성에 몰두한다. 이런 구도에선 중도층이 정치에서 배제되고, 정치적 대화도 단절된다. 이런 상황에선 후보자들은 당의 승리와 중도 확장을 포기하고, 강성 핵심 지지층의 지지를 얻으려고 노력한다. 중도층이 정치에 냉담해지면서 설득 가능 대상으로 강성 핵심 지지층만 남기 때문이다. 가성비 높은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아울러 후보자들이 지도부를 거부하면서 강성 핵심 지지층에게만 구애하는 각자도생에 몰두한다. 이는 결국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준비 과정에서 서울시장·경기도지사 경선에선 구인난에 빠졌지만, 대구시장·경북도지사 경선은 열기가 과도한 것도 이와 비슷하다. 특히 대구시장 경선엔 국회부의장·경제부총리·원내대표 등 당정의 핵심을 지낸 인사들이 모두 출마했기 때문에 더욱 눈에 띄고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리처드 카츠와 아일랜드의 정치학자 피터 메어는 정당을 카르텔·프랜차이즈 기업에 비유하는 독특한 이론을 발표했다. 카츠와 메어는 “현대 정당이 시민의 자발적 후원보다 국가의 정당 보조금·공천권 등 국가의 자원에 의존해 서로 담합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앙당과 지역구 후보의 관계를 본사와 가맹점주 관계로 규정했다. 따라서 중앙당이 자원을 적절히 배분하지 못하거나, 시장에서 자원의 가치가 폭락하면 가맹점주의 불만이 폭발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을 매개로, 캐나다의 정치학자 켄 카티는 “정당이 실제로 프랜차이즈 시스템으로 바뀌고 있다”고 주장했다. 카티에 따르면, 정당은 브랜드로서만 기능하고, 선거에선 후보가 중앙의 브랜드를 빌려온다. 공천은 결국 이들 간 계약 관계 역할을 한다. 이는 실제 정치적 현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일 서울 쌍문역 일대 쌍리단길을 방문했다. 오 시장의 현장 방문에 동행한 국민의힘 소속 서울시의원들과 도봉구의원들은 국민의힘의 상징색 빨간색이 아닌 흰색 점퍼를 입었다. 오 시장도 서울시 로고가 새겨진 흰색 점퍼를 입고 현장을 돌아다녔다. 지난달 31일 진행된 국민의힘 서울시장 본경선 후보들 대상 첫 토론회에서도 후보들은 장 대표를 비판했다. 이들은 “흰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동그라미 푯말을, 빨간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엑스 푯말을 들어달라”는 진행자의 요구에 일제히 엑스 푯말을 들었다. 오세훈 ‘흰색 점퍼’ 현장행 “빨간색 입고 싶다” 대우그룹·프랑스 사회당 등 한순간에 망한 대마들 하지만 말은 날카로웠다. 오 시장은 “빨간색 점퍼를 입고 싶은 마음을 엑스 푯말을 들어 표현해 봤다”고 말했다. 미래통합당 윤희숙 전 의원은 “흰색 옷을 입어야 하는 사람은 장 대표”라며 “이번 공천이 마무리되면 백의종군을 결심해 달라”고 요구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빨간 당 출신이 빨간색을 안 입는 자기모순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도 “장 대표가 확장하지 못했다면 후보들이 확장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달엔 장 대표의 지원 유세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본사에 대한 가맹점주들의 집단행동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서울시당위원장을 맡은 배 의원도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의 서울 지지율 13%의 주역 장동혁 지도부가 기초단체장 후보를 못 구한 지역의 후보를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방선거 패배 가능성이 내·외부에서 연이어 제기되고 있지만, 국민의힘 지도부에 대해선 “변화할 의지도, 대책도 없는 것 같다”는 평이 나온다. 이 같은 상황은 카츠와 메어가 이미 이론적으로 짚었다. 이들은 “카르텔 정당은 국가 자원을 독점하기 때문에 ‘우리는 망하지 않는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고 지적했다. 바둑으로 치면, 국민의힘은 여러 개의 돌로 넓게 자리 잡은 곤마인 ‘대마’와 비슷하다. 시사 분야에서 관용적으로 잘 쓰는 표현 중 하나는 ‘대마불사’다. “대기업이나 대형 금융기관은 국가의 지원을 받아 망하지 않는다”는 관용 표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1990년대 후반 IMF 금융위기는 대마불사로부터 비롯됐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상황은 당시 재계 2위였던 대우그룹의 해체였다. 김우중 당시 회장은 ‘세계 경영’이라면서 해외 업체를 공격적으로 인수했다. 그러다 IMF 금융위기를 맞아 구조조정을 거쳤지만, 삼성자동차를 받고 대우전자를 주는 빅딜 과정에서 엄청난 빚을 져 결국 워크아웃을 선언했다. 김 전 회장도 해외로 도피했다. 대우그룹은 그렇게 해체됐다. 국제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1990년대 초반 캐나다의 집권당 진보보수당은 경제 실정과 내부 갈등 끝에 구심력을 잃고 연이은 당원 탈당 사태를 겪었다. 그 결과 150석을 넘게 보유했던 거대 여당이 선거 한번에 2석만 건지는 참패를 당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프랑스에서도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을 극복하지 못했던 사회당은 지난 2017년 대선을 앞두고 강경한 좌파 성향 브누아 아몽 대선후보를 선출했다. 그러자 사회당 소속 정치인 다수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창당했던 신생 정당 앙 마르슈로 옮겼고, 당은 선거에서도 참패했다. 반대로 민주당은? 민주당은 대구시장 선거 승리를 위해 대구에서 일정한 기반을 갖추고 있고 선거 승리 경험도 있는 김부겸 전 총리를 대구시장 후보로 선출했다. 이어 지난 8일엔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김 후보와 함께 대구 농수산물도매시장을 방문하는 등 승리 의지를 드러냈다. 구인난을 겪고 있는 국민의힘과 달리, 민주당에선 추미애 의원이 치열한 경선 끝에 경기도지사 후보로 선출돼 주목받고 있다. 대마불사는 과연 영원한 걸까. 대마불사만 믿고 배짱 영업을 해도 되는 걸까. 대우그룹 해체는 국민의힘에 어떤 의미를 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