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정치팀] 말 많고 탈 많던 인사청문회였다. 박근혜정부 초기 인사청문회에 국민의 이목이 쏠리면서 크고 작은 논란에 정국이 몇 차례나 들썩였다. 그렇다고 다 그랬던 건 아니다. 그중에서도 저조한 시청률(?)을 기록한 인사청문회는 예외다. 청문회를 보는 이가 적다 보니 아무래도 이를 준비하는 국회의원들의 긴장감도 떨어지게 마련이다. 인사청문을 진행하는 청문위원들의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사소한 감정싸움에 뒷말도 무성하다. 게다가 술을 마신 의원까지 있었다니.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일요시사>가 들여다봤다.
인터넷 검색창에 인사청문회라고 치면 상단에 유권자의 관심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연관검색어가 뜬다. 단연 일등은 윤진숙 인사청문회다. 윤진숙 해양수산부 장관은 실시간 검색어 상위에 링크돼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며 유명세를 날렸다.
다음은 채동욱, 조윤선, 남재준 인사청문회 순이다. 인사청문회 방송에는 의자에 빼곡히 앉은 인사청문위원들이 준비한 서류 다발을 부산스럽게 찾고 정리하는 모습이 비친다. 빈자리는 거의 없다. 만약 방송을 타지 않는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질의시간 두고 기싸움
얼마 전 열린 이경재 방송통신위원장(이하 방통위장) 후보 내정자의 오후와 저녁 인사청문회는 몹시 썰렁했다. 의원 간 몇 차례 고성도 오갔다. 국민의 관심을 끌 만한 이슈가 없던 탓도 있지만, 오전·오후·저녁에 걸쳐 진행된 인사청문회가 방송을 탄 건 오전뿐인 이유도 있었다.
오전 10시 4분에 개의한 인사청문회에서 한선교 위원장은 “오늘 인사청문회는 KBS와 SBS에서 오전회의 부분만 녹화해서 KBS는 오늘 오후 2시 10분부터 4시까지, SBS는 오후 2시 40분부터 4시까지 중계 방송할 예정입니다”라고 말하며 회의를 시작했다.
한 위원장은 아나운서 출신답게 분명한 목소리와 단정하고 흐트러짐 없는 자세로 청문회를 진행했다.
청문회가 진행되는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회의실은 자리가 꽉 찼다. 창가 쪽에 나란히 선 사진기자들은 이 위원장 후보의 움직임에 초점을 맞추며 연신 플래시를 터트렸다.
이날 청문회 속기록을 보면 오전회의에서 유성엽 민주통합당 의원을 제외하고 모든 의원이 5분여의 질의 시간을 가졌다. 다시 말하면, 유 의원을 제외하고 모두 한 번씩 카메라에 얼굴을 비쳤다. 2시간 38분에 걸쳐 진행된 오전청문회는 오후 12시42분에 중지됐고, 오후 2시57분에 다시 시작됐다.
국회 영상회의록 화면에 비친 회의실은 오전과 달리 거의 텅 비어 있다. 질의응답 내용을 분주하게 받아 기록하던 취재기자와 플래시를 터트리던 사진기자의 모습도 찾아볼 수 없었다.
첫 번째 전병헌 민주당 의원의 질의가 시작되자마자 청문회는 고삐 풀린 듯 흐트러졌다. 전 의원은 질의하려다 “왜 발언하지 않았는데 시간이 가지요?”라고 이의를 제기한 뒤 다시 진행해 줄 것을 한 위원장에게 요구했다.
한 위원장은 짜증 섞인 투로 “아, 참 별것 가지고 다 그러네 진짜”라며 “그냥 하시면 되지 그것 뭐, (중략) 아니 무슨 이의를 제기하실 것 가지고 하셔야지”라며 소리 높여 정 의원을 다그쳤다.
전 의원은 이에 “위원장은 그것을 대단하게 생각하는 사람 아니에요?”라고 목소리를 높이자 한 위원장이 “소리 지리지 마시고, 점잖으신 분이 왜…”라고 말하며 팽팽한 신경전이 벌어졌지만 청문회는 이내 다시 진행됐다.
시작과 동시에 삐거덕거린 오후 첫 번째 청문회 회의록에는 총 7명의 이름이 빠져 있었다. 새누리당의 김기현, 김태원, 남경필, 박대출, 이상일, 이재영 의원 민주당의 최재천 의원 등이다. 오후 8시35분에 회의를 속개하겠다는 한 위원장의 발언을 마무리로 청문회는 오후 6시36분에 중지됐다.
오전 중계방송 끝나자 텅 빈 회의실, 말다툼에 고성까지
저녁식사 2시간 16분, 청문회 질의서 준비시간도 부족해
저녁회의는 한 위원장이 “저녁 맛있게 드셨습니까?”라는 인사와 함께 두 시간이 조금 넘은 8시51분에 시작했다. 회의 속개를 알리는 한 위원장은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마른침을 삼키며 고개를 젖히는 한 위원장의 얼굴은 약간 홍조를 띠는 듯했다.
화면에 비친 회의실은 더욱 한산했다. 저녁에 진행된 청문회에서 질의하는 의원 수는 처음보다 절반 정도 줄었다. 마지막 청문회까지 자리를 지킨 의원은 새누리당의 권은희 민병주 염동열 이우현 조해진 의원 등 5명, 민주통합당의 노웅래 배재정 유승희 윤관석 장병완 전병헌 최민희 의원 등 7명, 진보정의당의 이석기 의원 1명으로 총 27명의 출석의원 중 한 위원장을 제외하고 13명이다.
이 중 질의는 하지 않은 채 자리만 지킨 의원이 있다. 이석기 의원의 질의가 끝난 후 한 위원장은 “이우현 의원님!”이라고 호명하며 이 의원과 눈을 맞췄다. “서면으로 질의하겠습니다.” 화면에 등장하지 않은 이 의원은 답은 짤막했다.
곧이어 의원 간 고성이 오갔다. 의원들의 보충·추가 질의 내용에 이미 한 차례 불만을 표했던 염동열 의원이 유승희 의원의 보충질의 제안을 걸고넘어지면서 청문회는 여야 간 싸움으로 번져 한바탕 아수라장이 됐다.
청문회에 참석했던 한 민주당 관계자 A씨는 취재기자와 만남에서 “의원들은 청문회 앞두고 끼니를 걸러 가며 질의서 준비하고 조사한다”라며 “한쪽은 질의를 하겠다고 하고, 한쪽은 질의를 못하게 하다 양측이 부딪쳤다”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저녁시간 술 마시고 들어와 청문회 내내 자리에 앉아 조는 의원도 있을 정도였다. 청문회가 제대로 진행될 리 없다”라며 의원 3명을 지목했다. 또 다른 의원실 B보좌관은 “누군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술 드시고 청문회에 참석하셨던 분은 계셨다”라고 답했다.
그날 청문회에 참석했던 새누리당 관계자 C씨는 “그에 대해 드릴 말씀이 없다. 간사에게 문의하시면 들으실 수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음주청문회’를 했다고 지목된 의원실 측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하나 같이 전혀 사실무근이라고 답했다.
싸움보다 검증 먼저
당시 청문회에 참석했던 보좌관 D씨는 “그때 의원님은 저녁 약속이 있어 갔다가 청문회에 참석했다. 정말 어처구니없는 이야기다. 우리 의원님은 한 잔만 마셔도 응급실에 실려 가신다. 술을 전혀 못 드시는 분이다”라고 밝혔다. 다른 의원실 보좌관 E씨는 “납득할 수 없는 이야기다. 의원님은 술을 좋아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보좌관 F씨는 한동안 대답을 못 하다가 “정확한 사실이 아닌 떠도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취재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 사실무근이라는 것 말고는 드릴 말씀이 없다”라고 답했다.
음주 여부는 당사자들만이 알겠지만, 안방 전파를 타지 않는 청문회장의 모습은 너무도 달랐다. 카메라 사각지대는 더 이상 공직후보자 검증의 자리가 아니다. 국민은 과연 언제쯤 마음 놓고 국회에 나랏일을 맡길 수 있을까.
조아라 기자 <archo@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