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점검> 36년 만에 부활한 ‘박정희 사람들’ 현주소

  • 조아라 archo@ilyosisa.co.kr
  • 등록 2013.04.29 15: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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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 대물림 하더니 사람까지 대물림?

[일요시사=정치팀] ‘독재자 박정희가 살아나고 있다.’ 한 진보성향 언론에 기고한 전문가의 칼럼이다.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라 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인사에 박정희 전 대통령이 보인다는 이야기가 정가에서 심심치 않게 흘러나왔다. 박 대통령의 당선을 두고 ‘박정희가 살아나고 있다’고 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말 그들이 ‘박정희 시대’에 날고 기던 이들, 혹은 그 2세인지는 두고 볼 일이다. 하지만 ‘독재의 만행’을 몸소 겪었던 이들에게 이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이들은 박정희의 ‘박’자만 들어도 ‘박정희의 부활’과 다름없는 공포와 맞닥뜨린다. 그렇다면 36년 만에 부활한 ‘박정희의 사람들’은 과연 누구란 말인가?  



매년 4월22일은 ‘새마을의 날’이다. 2011년 국가기념일로 공식지정 된 이후부터 ‘대통령 박정희’의 업적을 칭송하고 그에 대한 역사적 정당성을 부여하려는 움직임이 광범위하게 벌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있었다. 여기에 박근혜 대통령의 일명 ‘과외교사’이자 ‘새마을운동 전도사’인 한 학자가 있다. 최외출 영남대 교수가 그 주인공. 그는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2 명의 박 대통령’에게 빚졌다고 믿고 있는 사람이다.

컬러링도 건배사도
오로지 ‘새마을’

박정희 전 대통령은 대구대와 청구대를 강제 통합해 영남대를 설립했다. 영남대가 ‘박정희 일가의 대학교’가 된 역사적 시발점이다. ‘이 법인은 대한민국의 교육이념과 설립자 박정희 선생의 창학정신에 입각하여 교육을 실시함을 목적으로 한다’는 내용의 영남대 정관 제1조만 봐도 알 수 있다.

최 교수는 영남대 새마을장학생 1기생(77학번)으로 박 전 대통령 지시로 만들어진 ‘지역사회개발학과’에 입학했다.

박근혜 대통령과 최 교수의 인연은 모친 육영수 여사 사망 이후에 시작됐다고 한다. 이들의 각별한 인연은 ‘새마을노래’에서 여실히 증명된다. 한 언론 보도에 따르면 최 교수는 지금도 휴대전화 컬러링으로 새마을노래를 쓴다고 한다. 최 교수의 술자리 건배사도 ‘근자협’으로 알려져 있다. 근자협이란 새마을운동의 슬로건이던 근면, 자조, 협동의 줄임말이다. 그는 작년 박 대통령 대선 유세장에서도 새마을 노래를 틀었다는 전언이다.


박정희와 서갑호
경제발전 동반자

최 교수는 2009년 자신의 모교이자 일터인 영남대를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 전초기지로 삼아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학분쟁조정위원회가 ‘설립자 유족’ 자격으로 7명의 이사진 중 4명을 추천할 수 있는 권한을 박 대통령에게 주면서다.

이때부터 영남대는 다시 ‘박통의 대학’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최 교수는 영남대에 박정희 새마을정책대학원을 만들어 초대원장을 지냈으며, 박정희리더십연구원을 세웠다. 이처럼 43년 전 시작된 새마을운동이 최 교수를 매개로 시간을 뛰어넘어서까지 상존할 조짐이다.

최 교수에 앞서 1971년 영남대 기계공학과에 입학한 김삼천 정수장학회 이사장도 ‘친박라인’이다. 김 이사장은 ‘박근혜 해바라기’로 불린다. 대구 출신인 김 이사장은 영남대를 졸업한 뒤 방림방적에 입사해 상무이사까지 지냈다. 방림방적의 설립자인 서갑호 사장이 그 중심인물로, 김 이사장과 박 전 대통령의 연결고리는 여기 있다.

‘2 명의 박 대통령’에게 빚진 최외출 교수 ‘새마을운동’ 재현 
김삼천 정수장학회 이사장 노동자 탄압했던 방림방적 임원 거쳐

서 사장은 1929년 14세의 나이로 일본으로 건너가 자수성가한 인물이다. 1963년 한국 경제개발계획에 발맞추어 해외동포로서는 최초로 엄청난 규모의 자본을 국내에 도입, 한국석유산업으로 수출강국이 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서 사장과 박 전 대통령의 만남은 196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 사장은 3000여 평(현 시가 1조2천억원)의 주일 대한민국대사관을 사저로 매입해 박 전 대통령에게 기증하면서 두 사람은 각별한 인연을 맺게 됐다. 박 전 대통령이 재임 시 서 사장과 그 가족을 청와대로 초청해 찍은 사진이 지난 2011년 8월11일 서 사장 아들에 의해 공개되면서 이 같은 사실이 널리 알려졌다. 


당시 방림방적은 그 유명한 ‘방림방적 사건’을 계기로 노동자를 탄압하는 회사로 악명을 날렸다.

방림방적 노동자들은 “방림방적에서 박정희정권의 탄압이 자행되고 있다”며 적극적으로 외부에 고통을 호소하면서 노동계의 이목이 쏠렸다.

박정희정권에서 산업화가 본격화된 시기에 진보적 기독교 선교단체 총무로 활동했던 인명진 목사는 매체를 통해 “방림방적 등에서 자행된 박정희정권의 노조 및 노동자 탄압 실태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1977년 11월28일자 ‘방림방적체불임금대책협의회 참가자’의 성명서에 따르면, 방림방적은 노동자들의 체불된 임금을 아무 이유 없이 거부하고 있으며, 이에 항의하는 노동자들을 온갖 악독한 방법으로 탄압하고 있지만, 정부는 공정하게 법을 집행하기는커녕 악덕기업을 옹호하고 있다는 등의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동양방송 PD 출신
박근혜 사조직 합류

김 이사장은 이러한 노동자 탄압이 자행되던 시기 방림방적에 근무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 방림방적은 굵직한 기업으로 성장했고 김 이사장은 임원으로 승승장구했지만, 그 이면에는 임금체불과 노동자 탄압이라는 그늘이 존재했다. 김 이사장이 직간접적으로 당시 방림방적 노동자 탄압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인물이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얼마 전 예술의전당 사장으로 임명된 고학찬 윤당아트홀 관장도 대표적인 ‘박정희 사람’으로 꼽혀 한 차례 논란을 일으켰다. 고 관장은 박 대통령을 보좌한 조직에서 활동한 친박인사로 육영수 여사 헌정 공연으로 불리는 뮤지컬 <퍼스트레이디>를 공연해 이 같은 논란에 불을 지폈다.

고 관장은 박 대통령의 사조직이었던 국가미래연구원 출신으로, 국민행복추진위원회 자문위원으로 활동했다. 또한 박 대통령의 문화예술분야 정책조언을 하는 인물 가운데 하나로 알려져 있다.

고 관장은 1970년 한양대 영화과를 졸업한 후 동양방송 TBC PD와 삼성영상사업단 방송본부 총괄국장 등을 지낸 이력이 있다. 박정희정권 당시 그의 구체적 활동에 대해 알려진 바는 없지만, 무엇 때문인지 고 관장에게는 박정희의 사람이라는 꼬리표가 붙어 있다.

고학찬 예술의 전당 사장, 육영수 헌정 뮤지컬 <퍼스트레이디> 공연
쿠데타·유신·독재 함께한 측근의 2세들 '정영사' 통해 사회 요직 맡아  

최민희 민주통합당 의원은 성명을 통해 고 관장 임명에 대해 “대통령의 아버지와 인연이 있는 사람, 본인 캠프에서 일한 사람 중 가족들과 인연이 있는 사람, 본인 가족들을 칭송하는 사람이 현재까지 보여준 이 정부의 인사코드”라며 “소위 박정희 코드라고 불리는 신(新)권력이 이 정부가 말하는 ‘전문성 있는 인사’”라고 비판한 바 있다.

이른바 ‘박정희 키드’라 불리는 박 전 대통령 측근 2세들이 박근혜정권 내각과 청와대에 한자리씩 차지한 것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박정희 사람 1세들이 주로 영남대를 통했다면 2세들은 ‘정영사(正英舍)’를 통했다. 정영사는 박 전 대통령 본인의 이름과 부인 육영수 여사의 이름을 각각 따서 1968년 서울대에 세워진 기숙사다.

그 중에서도 특히 대통령직인수위 경제2분과를 맡았던 서승환 국토교통부 장관과 교육과학분과를 맡았던 장순흥 교수의 부친은 박 전 대통령의 핵심측근으로 알려진다.

서 장관의 부친인 고 서종철 전 국방부 장관은 육군사관학교 1기 출신으로 5·16군사쿠데타에 참여한 인물이다. 서 전 장관은 박정희정권에서 육군참모총장, 대통령 안보담당특별보좌관 등 요직을 두루 거쳤으며, 유신 시절에는 국방부 장관을 지냈다.

장 교수 역시 박 전 대통령(육사 2기)의 측근이던 장우주 전 대학적십자사 사무총장의 아들이다.

‘박정희 키드’
보은인사 여전

또 외교국방통일분과 인수위원을 맡았던 최대석 이화여대 교수의 부친은 박 전 대통령이 총애했다는 고 최재구 전 공화당 의원이다. 고용복지분과 인수위원이던 안상훈 서울대 교수는 박 전 대통령의 유신헌법을 기초했던 김기춘 전 법무부 장관의 사위다.


박 대통령 주변을 포진하고 있는 이들의 면면을 보더라도 박 전 대통령 측근 또는 그들의 2세들이 여전히 정치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박 대통령의 인사를 두고 ‘보은·코드 인사’라는 비판이 곳곳에서 쏟아지는 이유다. 이것은 박 대통령의 최대맹점으로 꼽힌다.

정치권 안팎에선 박근혜정권 초반 ‘독재정치의 망령이 되살아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적잖았다. 그 시절 유신과 독재를 목도했던 이들이 요직을 차지해 최소 36년이나 지난 역사를 거스르지는 않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조아라 기자 <archo@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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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억 오세훈 한강버스, 아라호 흑역사 오버랩

1000억 오세훈 한강버스, 아라호 흑역사 오버랩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시가 돛을 올린 한강버스가 고장 끝에 결국 멈췄다. 과거 ‘아라호 사업’도 재조명되고 있다. 아라호 사업은 2010년대 초반 경인 아라뱃길을 중심으로 관광 활성화와 교통난 해소를 위해 인천시와 공동으로 수백억원을 들여 기획한 수상 교통 프로젝트였다. 아라호는 시민들의 외면과 운영 적자로 인해 자취를 감췄다. ‘반면교사’로 삼았던 걸까? 서울시는 한강을 따라 운행되는 수상 교통수단으로, 서울 전역을 연결하는 새로운 교통망을 구축하겠다는 계획으로 지난 18일 한강버스 운항을 시작했다. 여의도, 잠실, 뚝섬 등 주요 한강변 거점과 지하철역을 연계해 시민과 관광객 모두가 이용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는 게 핵심이다. 관광이냐 출퇴근이냐 서울시는 한강버스를 통해 관광 교통수단을 넘어 서울을 ‘한강 중심의 스마트 모빌리티 도시’를 만들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그러나 정식 운항을 시작한 지 열흘 만에 운항이 중단됐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9일 오전 시청에서 열린 주택 공급 대책 관련 브리핑 도중 “한강버스 관련 입장을 밝히지 않을 수 없다”며 “시민 여러분께 송구스럽다”고 말했다. 이어 “열흘 정도 운행 통해 기계적·전기적 결함이 몇 번 발생하다 보니 시민들 사이에서 약간 불안감 생긴 것도 사실”이라며 “이번 기회에 (운항을) 중단하고 충분히 안정화시킬 수 있다면 그게 바람직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시는 이날부터 10월 말까지 한강버스 시민 탑승을 중단하고 성능 고도화와 안정화를 위한 무승객 시범 운항을 한다. 시는 국내 최초로 한강에 친환경 선박 한강버스를 도입해 지난 18일 정식 운항을 시작했다. 하지만 지난 22일에는 잠실행 한강버스가 운항 중 방향타 고장이 발생했고, 같은 날 마곡행도 운항 준비 중 전기 계통에 문제가 생겨 결항했다. 26일에도 운항 중 방향타 고장이 발생했다. 이 과정에서 운항 중단과 재개가 반복되자 운항 중단을 결정했다. 과거 아라호의 값비싼 교훈을 남겼지만, 실패 요인을 분석하지 않았다는 것으로 해석되는 결과다. 한강버스 역시 또 하나의 혈세 낭비 사례가 될 수 있다. 서울시 한 관계자는 “아라호 사례를 철저히 분석해 이번에는 실질적인 시민 편익을 제공하고 지속 가능한 운영 모델을 구축하겠다”고 강조했다. 한강버스가 서울의 새로운 교통 패러다임으로 자릴 잡을지, 아라호의 전철을 밟을지는 향후 몇 년간의 운영 성과에 달려 있다. 서울시 아라호는 오세훈 서울시장의 첫 임기 때인 2010년 서울시가 예산 112억원을 들여 만든 2층 유람선으로 지난 2009년 5월부터 1년5개월을 들여 건조됐다. 오 시장의 지시로 건조된 아라호는 시민들에게 저렴한 요금으로 공연과 한강특화공원 관람이 동시에 가능한 선상문화체험 기회를 제공한다는 영리 목적보다 공공문화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차원에서 민자 유치 대신 재정이 투입된 사업이었다. 당초 아라호를 한강에서 인천 앞바다까지 운항하는 관광 크루즈선으로 활용하려 했으나 여덟 차례 시범 운항과 21회 시험 운항만 했을 뿐 사실상 사업은 중단됐다. 제작 당시부터 경제적 타당성이 부족하다는 논란을 빚었던 아라호는 정식 취항도 해보지 못한 채 팔렸다. 실제 운행이 어려운 상황에서 보험료와 유지비 등 관리 비용에만 연간 1억원이 들어간다는 점도 매각을 선택하는 데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112억원 들여 29억원에 판 아라호 출항 나흘 만에 고장…오, 좌불안석 아라호가 정식 운항에 나서지 못했던 배경에는 서해뱃길 사업을 둘러싼 서울시와 시의회의 갈등도 있었다. 오 시장의 아라호 활용 계획에 당시 더불어민주당이 다수인 시의회가 이에 반대했기 때문이다. 지난 2011년 10월 고 박원순 전 시장이 취임 후 사업 타당성 문제로 매각을 결정하면서 오 시장의 한강 르네상스 사업이 백지화됐다. 결국 서울시는 아라호 매각을 결정한 후 지난 2013년 5월, 106억원의 예정 가격으로 매각 입찰에 나섰으나 응찰자가 없어 유찰됐다. 이후 2차 입찰 결과도 마찬가지였다. 알만한 이들은 알겠지만, 선박 사업은 수요를 찾기 어려운 사업 중 하나다. 결국 서울시는 3차 매각 입찰에서 최초 예정 가격에서 10% 인하된 95억원으로 깎았지만 이마저도 입찰자가 나타나지 않았다. 이후 같은 해 11월, 4차 매각에서 15% 인하된 90억원에 입찰을 시도했지만 응찰자가 없어 가격 인하의 효과는 전혀 없었다. 그러다 서울시는 지난 2016년 아라호를 매각하지 못하자 결국 임대 쪽으로 사업 방향을 틀었다. 아라호가 정식 운항도 못한 채 6년 넘게 여의도 한강공원 선착장에 방치되면서다. 서울시가 제시한 사업 기간은 연말까지 8개월이고 한 차례 1년간 계약을 연장할 수 있었다. 당시 최저 임대료는 2억6300만원이었다. 아라호는 임대 사업을 시작해 건조 6년 만에 빛을 봤지만, 운항이 종료되는 시점까지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한강의 애물단지로 전락했던 아라호는 지난 2016년 민간업체인 레츠고코리아가 임대사업권을 낙찰받아 3년간 운영하다가 2018년 이랜드그룹 계열사 이랜드크루즈로 사업권을 넘겨줬다. 이랜드크루즈가 사업권을 따낸 시점은 지난 2018년 3월이지만 실제 운영은 2019년 6월부터 시작됐다. 이전 사업자인 레츠고코리아가 서울시의 계약 위반을 주장하며 유람선과 시설물 반환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결국 이랜드크루즈는 1년간의 법정 공방 끝에 지난 2019년 6월부터 운영을 시작했지만,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수익성 악화로 아라호의 임대 운영 사업을 1년 만에 접어야 했다. 애물단지 전락하나 이랜드크루즈는 임대계약 갱신청구권(1년)마저 포기했다. 코로나19 팬데믹 무렵부터는 주식회사 수가 임대사업권을 이어받았다. 이후 마지막으로 인더라인25가 지난해 6월부터 올해 5월까지 사업하는 조건으로 서울시와 지난 2022년 12월 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1년 단기 임대계약이 종료된 이후에도 인더라인25가 철거하지 않아 서울시는 골머리를 앓았다. 아라호 운항은 멈췄지만, 선착장을 한 달째 무단 점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인더라인25는 계약 연장을 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서울시는 인더라인25를 상대로 명도소송, 점유 이전 금지 가처분, 행정 가처분 등 소송을 진행하기도 했다. 아라호가 실패한 가장 큰 이유는 수요 예측 실패와 운영비 부담이었다. 당시 서울시는 아라호가 연간 수십만명의 승객을 유치할 수 있다고 예상했으나, 실제 이용객은 예측치의 30%에도 미치지 못했다. 또 노선 설계가 시민들의 일상적인 통근이나 이동과 잘 맞지 않았고, 요금 역시 육상 교통수단에 비해 비쌌다. 결과적으로 관광객 유치에도 한계가 있었고,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아라호는 철수될 수밖에 없었다. 아라호는 건조한 지 15년 만에 민간에 팔렸다. 지난 1월 서울시 한강 유람선 아라호는 5차례 입찰 끝에 약 28억5780만원에 팔려 민간업체에 인도됐다. 2013년부터 총 9번의 입찰을 시도한 결과 3분의 1 가격에 달하는 헐값에 팔린 셈이다. 당시 서울시에 따르면 아라호는 2024년 11월 말 공개입찰을 진행한 뒤 지난달 주식회사 마이랜드와 매각 계약을 체결했다. 길이 58m에 688톤 규모의 아라호는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과 서강대교 남단을 오갔다. 승객은 총 310명까지 태울 수 있다. 음악회, 공연, 결혼식, 영화 상영을 위한 시설도 보유했다. 선착장에는 편의점, 치킨집 등 부대시설도 있었다. 아라호는 건조 후 15년 만에 매각되기까지 여러 우여곡절을 겪었다. 후임 고 박원순 시장이 2012년 사업을 백지화하면서 5년간 방치됐다. 2013년 5월 처음으로 공개입찰에 넘겨졌다. 시는 같은 해에만 총 4번의 입찰을 추진했으나, 입찰자가 없어 매번 무산됐다. 실패했지만 이번엔 달라? 서울시는 수의계약 방식으로도 매각을 시도했으나, 매각사의 자금 동원 문제로 불발됐다. 이에 시는 2016년 아라호를 매각하는 대신 민간 위탁하는 방향을 택했고, 2017년부터 민간 위탁을 통해 운영했다. 하지만 임대계약이 만료되면서 지난해 5월 말부터 운항이 중단됐다. 그러자 시는 다시 매각을 시도했다. 지난해 10월부터 총 5차례의 입찰을 진행했고, 같은 해 11월 말 입찰자가 나와 12월 매각 계약을 맺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그간 아라호의 위탁 운영은 선박 운항이 아닌 선착장 내 치킨집 등 부대시설 위주로 돌아갔다”며 “자연스레 선박도 노후화되고, 전반적으로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다시 매각을 추진하게 됐다”고 말했다. 법적 분쟁으로 얼룩진 아라호를 통해 한강에 배 띄우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경험했지만, 이번엔 다르다고 한다. 서울시는 이번 한강버스 사업에서 아라호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3가지 전략적 과제를 내세우고 있다. 먼저, 실제 수요 기반의 노선 설계를 강조했다. 또 관광 중심이 아닌, 출퇴근·생활 교통을 고려한 정류장 배치, 그리고 지하철·버스 환승과의 연계를 강화했다는 것이다. 합리적인 요금 체계를 내세우기도 했다. 기존 대중교통과의 환승 할인을 적용하고, 관광·레저용 프리미엄 서비스와 생활 교통 요금제의 이원화를 강조했다. 또 탄소 배출을 최소화한 전기·수소 하이브리드 선박을 도입했고, 실시간 교통 정보 제공 및 안전 관리 시스템을 구축했다고 한다. 서울시가 한강버스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지난해 들인 초기 사업비는 약 542억원으로 향후 발생할 총 사업비는 약 1500억~1750억원으로 예상된다. 아라호 사업비보다 10배가량 많은 혈세가 투입될 예정이다. 한강버스는 출·퇴근용 선박인 만큼 이용객을 충족하기 위해 여러 척의 선박이 필요하다. 지난해 3월 한강버스 운영사는 6척의 선박을 납품받는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현재는 첫 출항 이후 3척이 운항 중이며, 향후 6척의 선박이 모두 납품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밖에도 선착장 시설, 운영 시스템, 접근성 개선 등 다양하고 복합적인 요소가 포함돼 총사업비가 1000억원대 중반까지 증가한다. 묻지 마 10배로 베팅 6시에 나와야 9시 출근 아라호는 ‘유람선 제작’이 중심이고, 공연시설 등이 포함된 문화를 제공하기 위한 목적의 선박이었다. 시설 설계가 크고 복잡한 부분이 있지만, 수량이 하나라 규모 면에서 제한적이기에 한강버스와 다르다는 결론이다. 반면, 한강버스는 여러 척의 선박을 건조해야 하고, 선착장 설치 또는 보수도 그만큼 갖춰져야 한다. 또 전기 또는 하이브리드 선박을 도입한 만큼, 유지비용도 클 뿐만 아니라 홍보, 안전, 시험 운항 등 여타 부대 비용에 민간투자금 및 보조금 등이 혼합돼있어 사업비 증액은 여러 원인으로 발생한다. 한강버스 사업비가 초기 대비 크게 증가한 이유로 업체 선정 과정에서 계약 조건, 예상보다 오래 걸린 공정률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를테면 선박 제작 능력이 있는 업체와 없는 업체 간의 차이를 분석했는데, 일부 업체는 인프라가 부족하거나 준비가 미흡했다는 평가를 받아 계약이 무산된 경우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한강버스는 대중교통 기능이 강조되면서 ‘출퇴근 수단’ ‘교통망 보완’ 등의 역할이 기대되는 상황이다. 따라서 초기 투자비가 크더라도 지속 운영을 통한 수요 확보가 전제된다. 하지만 계획 대비 수요가 예상만큼 확보될지, 운영비와 적자 보전 부담이 얼마나 될지는 논란 중이다. 한편, 한강버스는 정식 운항 나흘 만에 선박의 방향타 고장 등으로 잇따라 멈춰 승객들이 불편을 겪었다. 지난 23일 기준 누적 탑승객이 1만명을 돌파하는 등 시민들의 큰 관심을 받은 한강버스가 정시성 확보가 중요한 대중교통수단으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을 지 의문이 커지고 있다. 매체에 따르면 지난 22일 오후 7시쯤 옥수선착장을 출발한 잠실행 한강버스가 강 한가운데서 20여분간 멈춰섰다. 결국 승객들은 종착지까지 가지도 못하고 도중에 내려야 했다. 한강버스 운영사는 고장 선박을 뚝섬 선착장에 접안한 뒤 승객들을 모두 하선시켰고, 뚝섬에서 잠실까지 구간의 운항을 취소했다. 지난 18일 정식 운항을 시작한 지 나흘 만에 발생한 일이다. 이 과정에서 제대로 된 안내 방송이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한 탑승객은 “20분이 넘게 서 있었고, 안내 방송이 안 나오고 승무원도 안 계시고…. (뚝섬 선착장) 도착하기 2~3분 전에 승무원이 ‘이 배 잠실까지 안 간다’고 뚝섬에 다 내리셔야 된다고…”라고 말했다. 이 사고와 별개로 같은 날 오후 7시30분에 잠실 선착장을 출발할 예정이었던 마곡행 한강버스는 선박 고장으로 아예 결항됐다. 그 바람에 강서 방향으로 이동하려던 시민들은 황급히 다른 교통수단을 찾는 등 불편을 겪어야 했다. 승부수? 무리수? 서울시는 두 선박 모두 전날 밤 안정화 조치를 거쳐 다음 날인 23일 운항에는 차질이 없다고 밝혔다. 또 선내 안내 방송이 없었다는 주장에 대해선 한강버스 운영사가 이상을 감지한 뒤 원인을 파악하는 데 다소 시간이 걸려 안내에 일부 지연이 있었다는 설명이다. 현재 한강버스는 마곡-망원-여의도-압구정-옥수-뚝섬-잠실 28.9km 구간을 상하행 7회씩 총 14회(첫차 11시) 운항하고 있다. 소요 시간은 마곡에서 잠실까지 127분이다. 여의도에서 잠실까지는 80분이다. 추석 연휴 이후인 다음 달 10일부터는 출퇴근 시간 급행 노선(15분 간격)을 포함, 평일 기준 왕복 30회로 증편한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