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점검> 36년 만에 부활한 ‘박정희 사람들’ 현주소

  • 조아라 archo@ilyosisa.co.kr
  • 등록 2013.04.29 15: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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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 대물림 하더니 사람까지 대물림?

[일요시사=정치팀] ‘독재자 박정희가 살아나고 있다.’ 한 진보성향 언론에 기고한 전문가의 칼럼이다.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라 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인사에 박정희 전 대통령이 보인다는 이야기가 정가에서 심심치 않게 흘러나왔다. 박 대통령의 당선을 두고 ‘박정희가 살아나고 있다’고 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말 그들이 ‘박정희 시대’에 날고 기던 이들, 혹은 그 2세인지는 두고 볼 일이다. 하지만 ‘독재의 만행’을 몸소 겪었던 이들에게 이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이들은 박정희의 ‘박’자만 들어도 ‘박정희의 부활’과 다름없는 공포와 맞닥뜨린다. 그렇다면 36년 만에 부활한 ‘박정희의 사람들’은 과연 누구란 말인가?  



매년 4월22일은 ‘새마을의 날’이다. 2011년 국가기념일로 공식지정 된 이후부터 ‘대통령 박정희’의 업적을 칭송하고 그에 대한 역사적 정당성을 부여하려는 움직임이 광범위하게 벌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있었다. 여기에 박근혜 대통령의 일명 ‘과외교사’이자 ‘새마을운동 전도사’인 한 학자가 있다. 최외출 영남대 교수가 그 주인공. 그는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2 명의 박 대통령’에게 빚졌다고 믿고 있는 사람이다.

컬러링도 건배사도
오로지 ‘새마을’

박정희 전 대통령은 대구대와 청구대를 강제 통합해 영남대를 설립했다. 영남대가 ‘박정희 일가의 대학교’가 된 역사적 시발점이다. ‘이 법인은 대한민국의 교육이념과 설립자 박정희 선생의 창학정신에 입각하여 교육을 실시함을 목적으로 한다’는 내용의 영남대 정관 제1조만 봐도 알 수 있다.

최 교수는 영남대 새마을장학생 1기생(77학번)으로 박 전 대통령 지시로 만들어진 ‘지역사회개발학과’에 입학했다.

박근혜 대통령과 최 교수의 인연은 모친 육영수 여사 사망 이후에 시작됐다고 한다. 이들의 각별한 인연은 ‘새마을노래’에서 여실히 증명된다. 한 언론 보도에 따르면 최 교수는 지금도 휴대전화 컬러링으로 새마을노래를 쓴다고 한다. 최 교수의 술자리 건배사도 ‘근자협’으로 알려져 있다. 근자협이란 새마을운동의 슬로건이던 근면, 자조, 협동의 줄임말이다. 그는 작년 박 대통령 대선 유세장에서도 새마을 노래를 틀었다는 전언이다.


박정희와 서갑호
경제발전 동반자

최 교수는 2009년 자신의 모교이자 일터인 영남대를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 전초기지로 삼아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학분쟁조정위원회가 ‘설립자 유족’ 자격으로 7명의 이사진 중 4명을 추천할 수 있는 권한을 박 대통령에게 주면서다.

이때부터 영남대는 다시 ‘박통의 대학’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최 교수는 영남대에 박정희 새마을정책대학원을 만들어 초대원장을 지냈으며, 박정희리더십연구원을 세웠다. 이처럼 43년 전 시작된 새마을운동이 최 교수를 매개로 시간을 뛰어넘어서까지 상존할 조짐이다.

최 교수에 앞서 1971년 영남대 기계공학과에 입학한 김삼천 정수장학회 이사장도 ‘친박라인’이다. 김 이사장은 ‘박근혜 해바라기’로 불린다. 대구 출신인 김 이사장은 영남대를 졸업한 뒤 방림방적에 입사해 상무이사까지 지냈다. 방림방적의 설립자인 서갑호 사장이 그 중심인물로, 김 이사장과 박 전 대통령의 연결고리는 여기 있다.

‘2 명의 박 대통령’에게 빚진 최외출 교수 ‘새마을운동’ 재현 
김삼천 정수장학회 이사장 노동자 탄압했던 방림방적 임원 거쳐

서 사장은 1929년 14세의 나이로 일본으로 건너가 자수성가한 인물이다. 1963년 한국 경제개발계획에 발맞추어 해외동포로서는 최초로 엄청난 규모의 자본을 국내에 도입, 한국석유산업으로 수출강국이 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서 사장과 박 전 대통령의 만남은 196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 사장은 3000여 평(현 시가 1조2천억원)의 주일 대한민국대사관을 사저로 매입해 박 전 대통령에게 기증하면서 두 사람은 각별한 인연을 맺게 됐다. 박 전 대통령이 재임 시 서 사장과 그 가족을 청와대로 초청해 찍은 사진이 지난 2011년 8월11일 서 사장 아들에 의해 공개되면서 이 같은 사실이 널리 알려졌다. 


당시 방림방적은 그 유명한 ‘방림방적 사건’을 계기로 노동자를 탄압하는 회사로 악명을 날렸다.

방림방적 노동자들은 “방림방적에서 박정희정권의 탄압이 자행되고 있다”며 적극적으로 외부에 고통을 호소하면서 노동계의 이목이 쏠렸다.

박정희정권에서 산업화가 본격화된 시기에 진보적 기독교 선교단체 총무로 활동했던 인명진 목사는 매체를 통해 “방림방적 등에서 자행된 박정희정권의 노조 및 노동자 탄압 실태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1977년 11월28일자 ‘방림방적체불임금대책협의회 참가자’의 성명서에 따르면, 방림방적은 노동자들의 체불된 임금을 아무 이유 없이 거부하고 있으며, 이에 항의하는 노동자들을 온갖 악독한 방법으로 탄압하고 있지만, 정부는 공정하게 법을 집행하기는커녕 악덕기업을 옹호하고 있다는 등의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동양방송 PD 출신
박근혜 사조직 합류

김 이사장은 이러한 노동자 탄압이 자행되던 시기 방림방적에 근무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 방림방적은 굵직한 기업으로 성장했고 김 이사장은 임원으로 승승장구했지만, 그 이면에는 임금체불과 노동자 탄압이라는 그늘이 존재했다. 김 이사장이 직간접적으로 당시 방림방적 노동자 탄압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인물이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얼마 전 예술의전당 사장으로 임명된 고학찬 윤당아트홀 관장도 대표적인 ‘박정희 사람’으로 꼽혀 한 차례 논란을 일으켰다. 고 관장은 박 대통령을 보좌한 조직에서 활동한 친박인사로 육영수 여사 헌정 공연으로 불리는 뮤지컬 <퍼스트레이디>를 공연해 이 같은 논란에 불을 지폈다.

고 관장은 박 대통령의 사조직이었던 국가미래연구원 출신으로, 국민행복추진위원회 자문위원으로 활동했다. 또한 박 대통령의 문화예술분야 정책조언을 하는 인물 가운데 하나로 알려져 있다.

고 관장은 1970년 한양대 영화과를 졸업한 후 동양방송 TBC PD와 삼성영상사업단 방송본부 총괄국장 등을 지낸 이력이 있다. 박정희정권 당시 그의 구체적 활동에 대해 알려진 바는 없지만, 무엇 때문인지 고 관장에게는 박정희의 사람이라는 꼬리표가 붙어 있다.

고학찬 예술의 전당 사장, 육영수 헌정 뮤지컬 <퍼스트레이디> 공연
쿠데타·유신·독재 함께한 측근의 2세들 '정영사' 통해 사회 요직 맡아  

최민희 민주통합당 의원은 성명을 통해 고 관장 임명에 대해 “대통령의 아버지와 인연이 있는 사람, 본인 캠프에서 일한 사람 중 가족들과 인연이 있는 사람, 본인 가족들을 칭송하는 사람이 현재까지 보여준 이 정부의 인사코드”라며 “소위 박정희 코드라고 불리는 신(新)권력이 이 정부가 말하는 ‘전문성 있는 인사’”라고 비판한 바 있다.

이른바 ‘박정희 키드’라 불리는 박 전 대통령 측근 2세들이 박근혜정권 내각과 청와대에 한자리씩 차지한 것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박정희 사람 1세들이 주로 영남대를 통했다면 2세들은 ‘정영사(正英舍)’를 통했다. 정영사는 박 전 대통령 본인의 이름과 부인 육영수 여사의 이름을 각각 따서 1968년 서울대에 세워진 기숙사다.

그 중에서도 특히 대통령직인수위 경제2분과를 맡았던 서승환 국토교통부 장관과 교육과학분과를 맡았던 장순흥 교수의 부친은 박 전 대통령의 핵심측근으로 알려진다.

서 장관의 부친인 고 서종철 전 국방부 장관은 육군사관학교 1기 출신으로 5·16군사쿠데타에 참여한 인물이다. 서 전 장관은 박정희정권에서 육군참모총장, 대통령 안보담당특별보좌관 등 요직을 두루 거쳤으며, 유신 시절에는 국방부 장관을 지냈다.

장 교수 역시 박 전 대통령(육사 2기)의 측근이던 장우주 전 대학적십자사 사무총장의 아들이다.

‘박정희 키드’
보은인사 여전

또 외교국방통일분과 인수위원을 맡았던 최대석 이화여대 교수의 부친은 박 전 대통령이 총애했다는 고 최재구 전 공화당 의원이다. 고용복지분과 인수위원이던 안상훈 서울대 교수는 박 전 대통령의 유신헌법을 기초했던 김기춘 전 법무부 장관의 사위다.


박 대통령 주변을 포진하고 있는 이들의 면면을 보더라도 박 전 대통령 측근 또는 그들의 2세들이 여전히 정치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박 대통령의 인사를 두고 ‘보은·코드 인사’라는 비판이 곳곳에서 쏟아지는 이유다. 이것은 박 대통령의 최대맹점으로 꼽힌다.

정치권 안팎에선 박근혜정권 초반 ‘독재정치의 망령이 되살아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적잖았다. 그 시절 유신과 독재를 목도했던 이들이 요직을 차지해 최소 36년이나 지난 역사를 거스르지는 않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조아라 기자 <archo@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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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고객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쿠팡의 태도가 도마 위에 올랐다. 현재까지 대응만 봐서는 국민은 물론, 정부와도 전면전을 벌일 기세다. 새어나간 정보의 범위와 규모가 ‘역대급’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최악의 사태임에도 불구하고 쿠팡의 고개는 꺾일 줄 모르고 있다. 일각에서는 ‘뭘 믿고 저러나’ 소리가 나오는 중이다. 쿠팡의 고객 개인정보 유출 사건, 이른바 쿠팡 사태가 점입가경이다. 사태가 일어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수습은커녕 국민의 화만 돋우고 있다. 쿠팡의 대응 태도가 미지근한 수준을 넘어 뻔뻔한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 김범석 의장은 모습을 비추지 않고 보상안은 꼼수로 가득하다. 국민을 조롱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한 달 만에 고개 숙여 지난해 11월 말 3370만명에 이르는 쿠팡 고객의 개인정보가 ‘탈탈’ 털렸다. 앞서 쿠팡은 4500여건의 고객 정보가 유출됐다고 정부 당국에 신고했지만 2주 만에 그 수치는 7500배까지 늘어났다. 전 국민의 65% 수준이며 지난해 4월 SKT 개인정보 유출 사태 범위(2300만명)를 훌쩍 넘는 사태였다. 쿠팡은 이커머스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갖고 있다. 대형마트 등이 규제에 막혀 뒷걸음질 칠 때 쿠팡은 로켓배송으로 시장을 싹쓸이했다. 전날 저녁에 주문해도 새벽이면 물건이 문 앞에 와 있는 총알 배송에 소비자는 쿠팡으로 몰렸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비판을 받던 물류센터는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아이러니하게도 쿠팡이 국민의 실생활에 얼마나 스며들어있는지를 바로 보여줬다. 쿠팡 사태가 터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은 “쿠팡이 경쟁자가 없는 시장 지위를 누리고 있고 한국 고객이 데이터 유출에 덜 민감해 보인다”며 “잠재적 고객의 이탈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놨다. 그래서일까? 쿠팡은 역대 최악의 정보 유출 사태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도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이 언급하고 정부 차원의 TF가 꾸려졌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힘겨루기’를 하는 태도를 보이는 중이다. 최근에는 정부의 반박에도 자체 조사 결과를 고집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보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쿠팡은 지난달 25일 ‘정보 유출자는 3300만개 계정에 접근했으나 실제 저장한 정보는 3000여개에 불과하며 제3자 유출 정황은 없는 등 피해가 미미하다’는 내용의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면서 “(유출자는)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언론 보도를 접한 이후 저장했던 정보를 모두 삭제하고 범죄에 사용한 노트북을 파손해 하천에 던졌다”고 주장했다. 쿠팡은 “잠수부들이 벽돌에 담긴 쿠팡 가방에 든 노트북을 하천에서 회수했고 유출자가 클라우드 계정에 등록한 일련번호와 해당 노트북의 일련번호가 일치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범행에 사용된 PC 와 노트북 등 모든 장치를 회수해 안전하게 확보했고 글로벌 보안업체들의 조사 결과도 진술 내용과 같았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매출 90% 나오는데 정보 유출 태도·대응 낙제점 쿠팡이 발표한 대로라면 고객 정보 유출 피해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든다. 또 유출자와 접촉해 장치를 확보했으니 추가 피해는 없다. 전체적으로 사건이 축소되는 것이다. 쿠팡의 발표에 정부는 강하게 반발했다. 쿠팡의 조사 내용은 사전에 정부와 어떤 논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됐다는 설명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는 “정보 유출 종류와 규모, 경위 등은 민관합동조사단이 조사 중인 사안”이라며 “쿠팡이 발표한 내용은 조사단에 의해 확인된 바 없다”고 밝혔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과도 “쿠팡 측이 제출한 진술서와 노트북 등 증거물을 분석 중”이라며 “사실관계를 면밀하게 확인하겠다”고 했다. 논란이 계속되자 쿠팡은 정부의 지시를 받아 조사를 진행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경찰은 사전 협의가 없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사실관계가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쿠팡은 지난달 26일 내놓은 입장문에서 “정부의 지시에 따라 수주간 진행한 조사였다”고 선을 그었다. 같은 달 9일 정부가 쿠팡 측에 유출자와 접촉할 것을 제안했고 14일 쿠팡은 유출자를 처음 만난 뒤 해당 사실을 정부에 보고했으며 16일에는 정부 지시에 따라 유출자의 데스크톱과 하드드라이브를 정부에 제공했다는 게 쿠팡 측 주장이다. 하지만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도 “쿠팡의 입장문 형식의 보도자료에서 정부와 협력했다는 내용 중 일부 국정원으로 추정되는 부분도 사실과 다르거나 왜곡된 부분이 있다”고 반박했다. 쿠팡이 자체 조사와 관련해 정부와 사실 공방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 김범석 쿠팡 의장이 사건 발생 한 달여 만에 사과했다. 그동안 박대준 전 대표가 청문회 등에서 뭇매를 맞고 있는 동안에도 김 의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정부의 압박이 거세지자 처음으로 입을 연 것이다. 5만원 상당 속사정은? 김 의장은 지난달 28일 “쿠팡의 창업자이자 이사회 의장으로서, 쿠팡 전체 임직원을 대표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저희의 책임으로 발생한 이번 데이터 유출로 인해 많은 분께서 자신의 개인정보가 안전하지 않다는 두려움과 불안을 느꼈고 사고 초기부터 명확하게 직접적으로 소통하지 못한 점으로 인해 큰 좌절감과 실망을 안겨 드렸다”며 “사고 직후 미흡했던 초기 대응과 소통 부족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한 달 만에야 입을 연 부분에 대해 “무엇보다 제 사과가 늦었다”면서 “모든 사실이 확인된 이후에 공개적으로 소통하고 사과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돌이켜보면 이는 잘못된 판단”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비판과 질책을 겸허히 받아들인다고도 했다. 하지만 자체 조사 논란에 대해서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김 의장은 “쿠팡은 조사 초기부터 정부에 전면적으로 협력해 왔다”며 “일련의 과정에서 많은 오정보가 확산하는 상황에서도 정부의 ‘기밀 유지’ 요청을 엄격히 준수했다”고 주장했다. 김 의장의 사과는 국회 6개 상임위원회가 참여하는 대규모 연석 청문회를 이틀 앞두고 나왔다. 정부가 범부처 TF를 과기부 총리 산하로 확대하고 다각도로 압수수색과 조사를 진행하는 등 대응 수위를 높이는 상황에 압박을 느꼈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그러나 사과와는 별개로 김 의장은 청문회에 불출석하겠다고 밝혔다. 김 의장뿐만 아니라 동생인 김유석 쿠팡 부사장, 강한승 전 쿠팡 대표 등이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면서 쿠팡에 대한 부정적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여기에 쿠팡이 내놓은 보상안도 도마 위에 올랐다. 쿠팡은 지난달 29일 고객 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해 총 1조6850억원 규모의 보상안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전체적으로 보면 1인당 5만원 상당이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뜯어보면 쿠팡의 ‘꼼수’가 보인다. 청문회는 나 몰라라 보상안은 ▲쿠팡 전 상품 구매 이용권 5000원 ▲쿠팡이츠 5000원 ▲쿠팡트래블 2만원 ▲명품 플랫폼 알럭스 2만원 등으로 구성됐다. 소비자들은 보상금의 상당 부분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 등 평소 이용 빈도가 낮은 서비스 이용권 위주로 구성된 점을 지적했다. 실제 이번 보상안을 통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를 처음 알게 됐다는 소비자도 있다. 시민단체도 쿠팡의 보상안에 반발했다. 참여연대는 “1인당 5만원 보상이라고 했지만 현금이 아닌 구매 이용권으로 사실상 강제 소비를 유도하는 방식”이라며 “보상이 아니라 매출 확대를 위한 마케팅에 불과하다”는 내용의 논평을 발표했다. 쿠팡의 행보는 사사건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민을 조롱하고 정부를 기만하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쿠팡이 미국 시장에 상장한 기업이지만 매출 대부분을 우리나라에서 벌어들이는 상황인데도 이 같은 태도를 보이는 것에 분노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회원 탈퇴, 보상안 거부, 집단소송 참여 움직임이 거세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심지어 이재명 대통령도 쿠팡 사태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쿠팡 사태가 일어나고 사흘 뒤인 지난달 2일 “쿠팡 때문에 국민의 걱정이 많다”면서 “사고 원인을 규명하고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관계부처는 해외 사례를 참고해 과징금을 강화하고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도 현실화하는 등 실질적인 실효적 대책에 나서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뒤늦은 사과·꼼수 보상안 도마 위에 이래서 정치권 인사 영입했나? 의혹 12일에도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반복되는 것에 대해 “경제 제재가 너무 약해서 규정 위반을 밥 먹듯이 한다”며 “앞으로는 규정을 위반해 국민에게 피해를 주면 엄청난 경제 제재를 당해서 ‘회사가 망한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규정을 위반하면 난리가 나야 하는 것 아니냐”며 “그런데 위반해도 태도를 보면 ‘그래서 어쩔 건데’ 이런 느낌이 든다”고 지적했다. 정부도 쿠팡에 강력하게 경고하며 전방위 대응을 예고했다. 실제로 같은 달 29일, 배경훈 부총리 겸 과기부 장관 주재로 ‘쿠팡 사태 범정부TF’ 회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과기부와 경찰청, 개인정보위원회, 금융위원회 등은 역할을 분담해 신속한 조사를 진행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배 부총리는 “쿠팡이 국내 고객 정보 3000만건 이상을 유출한 것은 명백한 국내법 위반 사항으로 정부는 쿠팡이 관련 법령을 위반한 사실이 확인될 경우, 다른 기업과 동일하게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에 따라서는 영업정지 여부도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사방에서 몰아치는 압박에도 쿠팡이 연달아 이상한 행보를 보이자 ‘믿는 구석’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그 정도로 쿠팡의 현재 대응 방식을 이해할 수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쿠팡이 미국 기업인 것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 증시가 쿠팡의 모든 결정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는 것이다. 실제 쿠팡이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한 다음 날 미국 뉴욕 증시에서 쿠팡의 주가는 6% 급등했다. 국내에서는 쿠팡의 ‘셀프 조사’에 분통을 터트리고 있는데 미국 시장에는 호재로 작용한 것이다. 쿠팡이 정치·국회 인사를 대거 영입한 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정치권 인사를 영입해 쿠팡 관련 각종 논란을 틀어막고 있다는 의혹이다. 해당 의혹은 ‘강력 경고’ ‘전방위적 대응’ 등의 수사를 사용하고 있지만 실제 조사는 흐지부지될 것이라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오는 배경으로도 꼽힌다. 변죽 울리다 무사통과? 실제 최근 원내대표직에서 사퇴한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이 국정감사를 한 달여 앞둔 시점에 박대준 전 쿠팡 대표 및 대관 총괄과 오찬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쿠팡이 일용직 퇴직금 미지급 사건에서 검찰 외압 의혹, 물류센터·배송 기사의 과로 및 산재 사망 문제가 제기된 상황이었던 만큼 적절성 논란이 불거졌다. 김 의원은 그달 16일 자신의 SNS에 “공개 일정이고 적어도 5명이 (함께) 식사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만남보다 대화의 내용이 중요한 것 아니냐? 참고로 지난해 7월16일 쿠팡 물류센터도 방문했었다”고 적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