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획> 망해도 잘사는 부자들⑤장진호의 진로그룹

  • 한종해 han1028@ilyosisa.co.kr
  • 등록 2013.03.20 11:3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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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억 빚지고 해외서 호화 도피생활

[일요시사=경제1팀] '기업은 망해도 기업주는 산다.'
잘 나가던 기업이 망했다는 소식은 심심찮게 들려온다. 그런데 망한 재벌이 '깡통'을 찼다는 소식은 들어본 적이 없다. IMF 이후 내로라하는 대기업들이 줄줄이 공중분해 됐지만 해당 기업에서 중책을 맡았던 경영진과 그 가족들은 멀쩡히 잘 살고 있다. 미리 '주머니'를 채워놔서일까. <일요시사>가 연속기획으로 잘 먹고 잘 살고 있는 '망한 기업' 수뇌부들의 현주소를 조명해봤다.



'두꺼비 소주' 신화 진로는 1924년 10월 평안도 용강군에서 진천양조상회라는 이름으로 창업주 장학엽씨에 의해 설립됐다. 진천양조상회의 심벌은 '원숭이'였다. 평안도 지방에서는 원숭이가 복을 상징하는 영특한 동물로 여겨졌기 때문에 심벌로 선택되어진 것인데 원숭이 좌우로는 쌀이 있어서, 쌀로 빚은 복주를 마시면 복을 누리며 장수한다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아버지 회사
말아먹은 아들

장학엽씨는 50년 12월 월남해 1년 뒤 부산 동화양조, 52년에는 부산 구포양조를 설립했다. 54년 장학엽씨는 고향과 부산에서의 사업 경험을 바탕으로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에 서광주조를 차렸다. 원숭이가 '두꺼비'로 바뀐 때가 이때다. 장학엽씨는 61년 진로그룹의 최초 계열사인 서광산업이라는 피혁회사를 설립하고 회장직에 올랐다.

진로라는 이름이 탄생한 것은 66년. 서광주조는 66년 진로주조로 상호를 변경했다가 75년 진로로 상호를 바꿨다.

50년대까지만 해도 소주 업계는 전남 목포에 기반을 둔 삼학소주가 장악하고 있었다. 한때 전국시장점유율 65% 이상을 차지하기도 했던 삼학소주가 진로에게 밀리기 시작한 때는 65년 진로가 생산방식을 증류식에서 희석식으로 전환하면서부터다.

70년 12월 진로는 소주 시장 1위를 차지하면서 한국의 대표 주류회사로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진로는 85년 장학엽씨가 사망하기 전인 84년 11월에 불거진 경영권 분쟁으로 일대위기를 맞았다.


이미 경영권 분쟁은 75년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장학엽씨가 자신의 5형제 가운데 둘째인 학섭씨의 장남 익용씨에게 그룹을 맞길 때부터 예고돼 있었다. 장학엽씨의 아들 진호씨가 당시 나이 23세로 경영을 맡기에는 어린나이였기 때문이다. 익용씨는 ㈜진로 사장, 진로위스키 회장, ㈜서광 사장을 역임하면서 실질적인 회장직을 수행했다.

총수 과욕·탐욕으로 무너진 '두꺼비 신화'
장본인 장진호 캄보디아·중국서 호의호식

84년 말, 장학엽씨가 병환이 심해지자 진호씨와 장학엽씨의 이복형 봉용씨가 익용씨에게 이제 경영권을 넘겨줄 때가 됐다고 말했지만 거절당하고 만다. 이에 진호씨는 익용씨몰래 주식을 매입하고 우호지분을 끌어 모아 85년 10월 주총에서 경영권을 손에 넣게 됐다. 그의 나이 33세 때의 일이다.

이후 익용씨는 ㈜서광을, 봉용씨는 소주 원료를 생산하는 진로발효를, 진호씨는 진로그룹을 맡는 것으로 교통정리가 이뤄졌다. 88년 그룹 회장으로 취임한 장진호 진로그룹 회장은 '탈주류'를 선언하고 빠른 속도로 사업다각화에 나섰다.

80년대 후반에만 종합광고업에 진출하고 연합전선, 진로위스키, 진로종합유통, 진로백화점, 진로제약, 진로건설 등을 인수하거나 설립했다. 91년에는 수출입 전문회자 JRI를 설립하고 식품회사인 펭귄과 진로음료를 합병해 진로종합식품으로 상호를 변경했으며 한국터미널과 진로유통을 합병해 진로종합유통을 설립했다.

92년에는 진로쿠어스맥주를 설립해 94년 '카스'를 생산개시했으며 영국 그랜트와 합작해 위스키 시장에 진출했다. 중국 북진그룹과 합작으로 총 20억달러 규모의 종합빌딩 타운 개발사업에도 진출했고 청주 제2백화점 착공, 홈비디오와 멀티미디어 사업에도 참여했다. 96년 말 기준 진로그룹은 총 24개의 계열사를 거느린 재계순위 19위의 재벌로 급부상했다.

그룹 무너뜨린
'탈주류'선언


이러한 사업다각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진로는 계열사들에게 출자금, 대여금 등으로 엄청난 자금을 지원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다. 97년 초부터 진로의 자금 사정이 급속도로 악화되기 시작했다. 97년 4월 기준 진로그룹의 부채총액은 은행권 1조200억원, 제2금융권 2조5000억원 등 총 3조7000억원에 달했고 자기자본비율은 4.34%에 불과했다. 24개 계열사 중 10여 개 사는 적자였다.

위기탈출을 위해 진로는 트럭터미널과 남부터미널, 아크리스백화점 청주 진로백화점 등 계열사들을 대거 처분, 총 1조2000억원을 마련해 구조조정자금으로 사용키로 했고 상업은행과 서울은행에 추가융자를 요청, 각각 600억원, 400억원을 빌렸다.

"진로일가, 아직도 막강한 재력 자랑"

그러나 경기침체로 계열사와 부동산 매각은 쉽지 않았고 은행들은 추가지원을 거부했다. 이렇게 되자 정부가 나섰다. 강경식 당시 부총리는 막 구상단계에 있던 부도방지협약을 적용, 진로 살리기에 나섰다.

하지만 완성되지 않았던 부도방지협약은 은행권보다 제2금융권의 대출비중이 높은 기업에 부도방지협약이 적용되면 제2금융권이 피해를 입을 우려가 있고, 이를 의식한 제2금융권이 대출회수에 나설 경우, 오히려 부도를 촉진하는 결과가 될 수 있다는 큰 문제점이 있었다. 진로그룹이 여기에 딱 들어맞았다.

검찰 수배 받고도
술집·카지노 운영

예상대로 채권은행들은 진로그룹의 모든 어음 지급을 동결하고 긴급자금을 지원하기로 했지만 제2금융권은 경쟁적으로 어음을 돌려 자금을 회수하려 했다.

마침내 진로는 97년 4월21일 조흥은행 서초동지점에 돌아온 어음 213억원과 상업은행 서초동지점에 지급 제시된 당좌수표 83억원을 결제하지 못해 최종 부도처리되고 말았다. 이후 채권단에 의해 화의 인가 결정을 받았지만, 결국 2003년 4월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진로그룹의 계열사들은 청산절차를 밟거나 타사에 인수되거나 일부 사업부문이 양도되는 형식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주력 기업인 진로는 하이트그룹에 인수되어 하이트진로그룹의 한 축을 형성하고 있으며 진로건설은 대우조선해양에 인수되어 대우조선해양건설로 새롭게 태어났다.

진로쿠어스맥주는 OB맥주에 인수되었다가 OB맥주 또한 구조조정 차원에서 폴란드 인터브루사에 지분을 넘겨 실질적 소유권은 외국의 다국적 맥주회사로 넘어간 상태다. 진로엔지니어링은 LG그룹으로 넘어가 LG ENC로 새출발했고 청주진로백화점과 진로하이리빙은 개인 소유로 넘어갔다. 기타 계열사들은 대부분 청산됐다.

2003년 9월 자신이 소유하던 진로 주식 119만9474주(8.14%)를 포기한다는 각서를 쓰고 경영권에서 물러난 장진호 전 회장은 5496억원을 사기 대출받고 비자금 75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검찰에 구속됐다. 수차례 재판 끝에 장 전 회장은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5년형을 받고 풀려났다. 하지만 2005년 2월 가족들과 함께 캄보디아로 출국했다. 그 직후 다른 비자금 건으로 검찰의 수배를 받았다.

당시 언론 보도에 따르면 장 전 회장은 이미 2002년 '찬삼락'이라는 현지 이름을 취득한 상태로 진로그룹이 법정관리에 들어가기 이전부터 캄보디아행을 계획했던 것으로 보인다.

무분별한 사업다각화로 그룹 공중분해
소주는 경쟁사, 맥주는 외국사에 매각


캄보디아에서 장 전 회장은 'ABA은행'을 운영했다. ABA은행은 지난 1996년 진로그룹에 의해 설립된 은행으로 현지에서는 '한국의 은행'으로 통했다. 그러나 이 은행은 진로그룹이 법정관리에 들어갔을 때 채권단 관리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장 전 회장은 은행 뿐 아니라 부동산 개발회사, 경견장, 스몰카지노, 단란주점까지 손을 댔다. 금융 브로커로 알려진 김재록씨와 함께 소주회사를 설립하는 '55 프로젝트'도 진행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장 전 회장은 현재 세금 미납액과 각종 금융 기관의 체납액, 벌금 등 수백억원이 넘는 빚이 있다. 그럼에도 장 전 회장이 아무 제약 없이 현지에서 사업을 벌일 수 있었던 것은 훈센 총리의 장녀 '훈마나'의 비호 덕분이었다. 훈마나는 캄보디아에서 정치권력은 물론 언론까지 장악하고 있어 장 전 회장은 훈마나와 모종의 거래관계를 맺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러나 장 전 회장은 ABA은행을 매각하는 과정에서 탈세를 하는 등 '먹튀' 전략을 쓰는 바람에 캄보디아 관리들에게 신뢰를 잃어 그는 현재 캄보디아를 떠나 중국으로 건너간 상태다.

지난해 2월에는 장 전 회장이 중국 북경 왕진 소재에 체류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장 전 회장은 이곳에 머물면서 중국인 사장을 앞세워 법인을 둔 게임 업체 '이다양광'에 투자, 운영해 온 것으로 전해졌다.

장 전 회장의 근황을 보도한 언론에 따르면 장 전 회장이 투자한 이다양광 게임사에서 최근 게임 개발에 착수했던 개발자들이 몇 개월 동안 임금이 지급되지 않아 국내로 복귀한 상태다. 장 전 회장은 현재 중국 게임업체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업에 투자를 하고 있으며 현지인 법인을 통해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80년 역사의 진로그룹을 공중 분해시킨 장본인은 아무 걱정 없이 화려한 도피생활을 하고 있는 셈이다.

국내서 해외서도
잘 먹고 잘 산다


국내에 남아있는 장 전 회장의 가족들도 탄탄한 재력을 자랑하고 있다. 2011년 사망한 장 전 회장의 이복형인 장봉용 전 진로발효 회장의 부인 서태선씨는 27.%의 진로발효 주식을 보유해 최대주주에 올라있으며 올해 21억원을 배당받아 여성 배당부자 7위에 올랐고 자녀 진혁씨와 진이씨는 각각 18.3%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 사촌형인 장익용 회장은 여성 정장 제조업을 하는 ㈜서광을 이끌고 있다.

한종해 기자<han1028@ilyosisa.co.kr>

 

<진로그룹은?>

▲1924년 진천양조상회 설립
▲1954년 서광주조(진로) 설립
▲1970년 소주시장 1위
▲1985년 장학엽 창업주 사망
▲1988년 장진호 회장 취임
▲1980년대 새그린, 연합전선, 진로위스키, 진로종합유통, 진로백화점, 진로제약, 진로건설 인수 및 설립
▲1990년대 초 진로쿠어스맥주, 진로베스토아, 진로종합식품, 진로인터스트리즈, 여성전문 케이블 텔레비전, 진로하이리빙, 진로지리산샘물 등 계열사 확장
▲1997년 부도
▲1998년 화의 인가 결정
▲2003년 4월 이후 법정관리, 계열사 매각 및 청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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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전국 한의과대학교에는 ‘졸업준비위원회’가 존재한다. 말 그대로 졸업 준비를 위해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조직이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명목상 자발적인 가입을 독려하는 듯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강제로 가입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졸업준비위원회(이하 졸준위)는 졸업앨범 촬영, 실습 준비, 학번 일정 조율, 학사 일정과 실습 공지, 단체 일정뿐 아니라 국가시험(이하 국시) 대비를 위한 각종 자료 배포를 하고 있다. 매 대학 한의대마다 졸준위는 거의 필수적인 조직이 됐다. 졸준위는 ‘전국한의과대학졸업준비협의체(이하 전졸협)’라는 상위 조직이 존재한다. 자료 독점 전졸협은 각 한의대 졸업준비위원장(이하 졸장)의 연합체로 구성돼있으며, 매년 국시 대비 자료집을 제작해 졸준위에 제공한다. 대표적으로 ‘의텐’ ‘의지’ ‘의맥’ ‘의련’ 등으로 불리는 자료집들이다. 실제 한의대 학생들에게는 ‘국시 준비의 필수 자료’로 통한다. 국시 100일 전에는 ‘의텐’만 보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졸준위가 없으면 국시 준비 자체가 어려워진다”는 말이 정설이다. 한의계 국시는 직전 1개년의 시험 문제만 공개되기 때문에 시험 대비가 어렵기 때문이다. 국시 문제는 오직 졸준위를 통해서만 5개년분 열람이 가능할뿐더러, 이 자료집은 공개자료가 아니라서 학생이 직접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사실상 전졸협이 자료들을 독점하고 있는 셈이다. 이 자료집을 얻을 수 있는 경로는 단 하나, 졸준위를 결성하는 것이다. 졸준위가 학생들의 투표로 결성되면 전졸협이 졸준위에 문제집을 제공한다. 이 체계는 오랫동안 유지돼왔고, 학생들도 졸준위를 통해 시험 자료를 제공 받는 것이 ‘관행’처럼 받아들여왔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반드시 결성돼야만 한다는 기조가 강하다. 학생들의 반대로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시 전졸협은 해당 학교에 문제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은 모든 학생들의 가입 동의를 얻어야 가능하다. 졸준위 가입 여부는 실질적으로 선택이 아니다. 자료집은 전졸협을 통해서만 제공되기 때문에, 졸준위에 가입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는다는 인식이 학생들 사이에서 강하게 자리 잡았다. 학생들은 “문제를 얻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크다”고 말한다.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경우 현실적으로 문제집을 받아볼 수 있는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학생들의 해당 학년 학생들을 모두 가입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실제 한 대학교에서는 졸준위 결성을 위한 투표를 진행했는데 익명도 아닌 실명 투표로 진행됐다. 처음에는 익명으로 진행했지만 반대자가 나오자 실명 투표로 전환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는 반대 의견이 나오기 어렵다. 실명으로 투표가 진행되는 데다, 반대표를 던질 경우 이후 자료 배포·학년 일정에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 실명 투표로 진행 가입시 200만원 이상 납부 필수 문제는 이 졸준위 가입이 무료가 아니라는 점이다. 졸준위에 가입하면 졸업 준비 비용(이하 졸비) 명목으로 학생들에게 돈을 걷는데, 그 비용이 상당하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한 대학교의 졸비는 3차에 걸쳐 납부하도록 했는데 1차에 75만원, 2차에 80만원, 3차에 77만원 등 총 232만원 수준이었다. 이는 한 학기 등록금에 맞먹는 금액이다. 금액 산정 방식은 졸준위 가입 학생 수에 따라 결정되는데, 한 명이라도 빠지게 되면 나머지 인원의 비용 부담이 커지게 된다. 심지어 2명 이상 탈퇴하게 된다면 졸준위가 무산될 수도 있다. 이 모든 사안은 ‘졸장’의 주도 하에 움직인다. 졸장은 학년 전체를 대변하며 전졸협과 직접 소통하는 역할을 맡는다. 실제 졸장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한 명이라도 탈퇴하면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이 오갔을 정도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졸준위가 결성되면 가입한 모든 학생들은 졸준위의 통제를 받는다.<일요시사>가 입수한 한 학교의 규칙문에 따르면 졸준위는 다음과 같은 규정을 두고 있었다. ▲출석 시간(8시49분59초까지 착석 등) ▲교수·레지던트에게 개인 연락 금지 ▲지각·결석 시 벌금 ▲회의·행사 참여 의무 ▲병결·생리 결 확인 절차 ▲전자기기 사용 제한 ▲비대면 수업 접속 규칙 ▲시험 기간 행동 규칙 ▲기출·족보 자료 관리 규정 등이다. 학생들이 이 규정을 어길 시 졸준위는 ‘벌금’을 부과해 통제하고 있었다. 금액도 적지 않았다. 규정 위반 시 벌금 2만원에서 50만원까지 부과할 수 있도록 정해져 있었다.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병결이다. 졸준위는 병결을 인정하기 위해 학생에게 진단서 제출을 요구하고, 그 내용(질병명·진료 소견·감염 여부 등)을 직접 열람해 판단했다. 제출 병원에 따라 병결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공지도 있었다. 한 병원의 진단서가 획일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단체가 학생의 개인 의료 정보를 열람해 병결 여부를 자체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은 학생들 사이에서 부담과 압박으로 작용했다. 질병이 있어도 벌금이 부과될 수 있고, 병결을 얻기 위한 절차가 학습보다 더 어렵다는 말도 나왔다. 규정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면 졸준위는 대면 면담을 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 과정에서 3:1로 면담을 진행하는 등 학생이 위축될 수 있는 방식을 행하기도 했다. 전자기기 사용 불가 규칙 어기면 벌금도 이 같은 문제로 탈퇴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실제 A 대학 졸준위 전체 학번 회의에서 밝혀진 내용에 따르면 한 학생은 규정에 문제를 느껴 졸준위 측에 탈퇴를 의사를 밝혀왔다. 이 회의에서는 그간 탈퇴 의사를 밝힌 학생과의 카톡 대화 전문이 학생들에게 공개됐다. 공개된 카톡 내용에는 탈퇴 과정이 담겨있었는데 순탄하지 않았다. 졸준위 측은 탈퇴 의사를 즉각적으로 승인하지 않았고, 재고를 요청하거나 면담하는 방식으로 요청을 지연했다. 해당 학생이 다시 한번 탈퇴 의사를 명확히 밝힌 뒤에도, 졸장은 “만나서 얘기하자”며 받아주지 않았다. 심지어는 이 대화를 공개한 뒤 학우들에게 ‘졸준위에서 이탈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서약서를 받아내기도 했다. 졸준위 운영이 조직 이탈 자체를 문제로 판단하고,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압박을 가한 정황이 확인되는 대목이다. 해당 학우는 탈퇴 확인 및 권리 포기 동의서에 서명한 뒤에야 졸준위를 탈퇴할 수 있었다. 탈퇴 이후에도 갈등은 지속됐다. 목격자에 따르면 시험 기간 중, 강의실 앞을 지나던 탈퇴 학생은 졸준위 임원 두 명에게 “제보가 들어왔다”며 불려 세워졌다. 임원들은 이 학생이 학습 플랫폼 ‘퀴즐렛’을 사용한 점을 언급하며, 그 자료 안에 졸준위에서 배포한 기출문제가 포함돼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졸준위에서는 퀴즐렛에 학교 시험 내용이 있다며 탈퇴자가 보지 못하도록 사용자를 색출하기도 했다. 한편, 전졸협은 10년 전 자체 제작한 문제집으로 논란된 적이 있다. 당시 한의사 국가고시 시험문제가 학생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예상 문제집과 지나치게 유사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시험이 끝난 직후 시험장 앞에서 수험생 60여명을 상대로 참고서와 문제집을 압수했고, 국가시험원까지 압수수색해 기출문제와 대조 작업에 들어갔다. 기형적 구조 문제가 된 교재는 ‘의맥’ ‘의련’ 등 졸준위 연합체인 전졸협이 제작·배포해 온 자료들이다. 학생들은 교재에 일련번호를 붙이고 신분증을 확인한 후 배포하는 등 통제된 방식으로 유통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제보자는 “학생들이 전졸협을 통해서만 기출문제를 구할 수 있는 구조는 기형적”이라며 “국가고시를 위해 몇백만원씩 돈을 받고 문제를 제공하는 건 문제를 사고파는 것”이라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