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총시즌 재계, 사내 ‘권력암투’ 막전막후

  • 김설아 sasa7088@ilyosisa.co.kr
  • 등록 2013.02.21 17:2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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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는 지금…‘묻지마 투서’ 전쟁 중

[일요시사=경제1팀] ‘내부 고발자’의 투서에 기업들이 떨고 있다. 기업 내부에서는 비리 등과 관련된 투서·진정이 난무하고, 기업 밖에서는 공직자나 기업주를 흔드는 소문이 꼬리를 물고 있다. 공공연한 비밀로 치부되던 내부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그야말로 고발자가 사람 잡는 시대다.




“○○○ 부사장은 계약직 여직원을 사적인 자리에 불러내 성추행했다.” “○○○ 임원(후견인)은 스폰서가 한둘이 아니다.”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기업 내부 인사들을 흠집 내는 투서가 쏟아지고 있다. 업계의 표현대로라면 과거엔 아무리 회사가 섭섭하게 해도 몸담았던 조직의 발을 찍는 일은 없었는데 최근 들어 부쩍 내부 고발자가 늘고 있다.

사정기관들은 이런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으며 차기 정부가 들어선 이후 대대적인 물갈이 인사에 나설 것이란 흉흉한 소문까지 더해지고 있다. 이 때문에 주요 기업의 조직 분위기가 크게 술렁이고 있다.

“이대론 안 돼”
내부고발자 급증

A공사는 최근 팀장급 직원이 공개한 C부사장의 인사비리 등 폭로 투서로 몸살을 앓고 있다. 공사 조사연구실에서 일하던 김모팀장은 지난달 22일 개인 블로그에 ‘파행경영과 비리 주역 C부사장의 파면을 요구한다’는 장문의 글을 올렸다. 김 팀장은 이 글에서 C부사장을 지목해 독단적 인사권을 행사하면서 사내 파벌을 조장하고 각종 비리를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김 팀장은 “공사가 고위간부로 재직 중인 C부사장 개인의 사조직이나 다름없이 운영되고 있으며 C부사장의 파행경영과 비리가 대표정책금융기관을 지향하는 공사의 정체성을 뿌리째 흔들고 있다”며 “이런 파행경영이 3년간 지속되고 있지만 많은 직원들이 혹시 인사실권자(C부사장)로부터 불이익을 받을까 벌벌 떨면서 ‘양들의 침묵’을 유지하고 있다”고 폭로했다.

김 팀장은 우선 자신이 경험한 2010년 팀장 인사평가 문제를 지적하며, 산업은행 출신과 비산업은행 출신의 인사 차별에 대해 언급했다.

김 팀장은 “인사팀의 비산업은행 출신 부서장들에게 ‘다른 사람을 먼저 승진시켜야 한다’는 등의 황당무계한 논리로 이미 제출한 평가 점수를 낮춰 다시 제출할 것을 요구했다”며 “이는 산업은행 출신이 아닌 관계로 업무프로세스가 익숙지 않은 비산업은행 출신 부서장들을 농락한 것이나 다름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C부사장은 노골적으로 ‘내가 있는 한 외부출신의 승진은 없다’ ‘사장도(임기가 끝나면) 나간다. 나한테 줄 잘서라’ ‘(비산은출신 팀장에게) 내가 당신을 부장시키면 사장 앞에서 나를 씹을 것 아니냐’고 말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주총·인사 앞둔 공기업·대기업 ‘폭로 몸살’
비리·성추문 등 의혹 봇물…고소·고발 난무

김 팀장은 C부사장의 현금상납설과 성추행설에 대해서도 말했다. 그는 “(공금의) 지출명목 허위작성은 일상화된 일”이라며 “일부 부서장들은 업무추진비는 물론 각종 회의비, 야식비까지 개인의 쌈짓돈처럼 쓴다”고 주장했다.

이어 “(C부사장이) 계약직 여직원에게 직접 전화해 사적인 저녁식사자리에 동참시킨 일도 있었다”고 파행을 폭로했다. 글의 마지막에는 감사실과 컴플라이언스팀에 이 모든 문제들에 대해 낱낱이 조사해 줄 것을 당부했다.


해당 글이 확산되자 A공사는 감사원 감사를 실시, 지난 6일 전격적으로 임원 인사를 단행해 투서에 당사자로 지목된 C부사장의 모든 직무와 권한을 중지시킨 것으로 확인됐다.

C부사장은 공사의 경영기획본부장을 맡아 기획과 인사, 자금, 국제금융, 해외사업 등의 주요 핵심 업무를 담당해 왔으나 이번 인사로 사실상 대기발령 상태에 놓였다. 공사는 대외적인 이미지 실추를 막기 위해 조기에 사태 진화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청장 눈에 들면
1계급 특진?

B청은 ‘투서’를 발단으로 고위 간부들끼리 맞고소를 놓는 볼썽사나운 꼴을 연출하고 있다. L청장은 지난달 S 전 본부장과 B 현 간부를 무고 및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이는 S 전 본부장이 L청장을 고소한데 대한 맞고소다.

이들의 갈등은 지난해 11월 당시 S본부장이 직위해제 되면서 시작됐다. S 당시 본부장이 L청장의 영남 중심 지역 편향적 인사와 개인 비리 등을 담은 투서(A4 11장)를 감사원·국회에 제보했다는 이유에서였다. S 전 본부장은 직위해제 직후 L청장을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이후 감사원은 L청장에 대한 감사를 진행했고, 국회 국정감사에서 관련 질의와 답변이 오갔다. 그 사이 L청장은 S 전 본부장을 검찰에 맞고소했다. 두 달 남짓 감사를 벌인 감사원은 지난 7일 감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S 전 본부장의 손을 들어줬다.



감사원에 따르면 L청장은 지난해 1월 임의로 승진 심사절차를 간소화하고 한 직원을 특별 승진시켰고, 2011년 7월에는 전입요건을 갖추고 못한 지방직 공무원 4명을 국가직 공무원으로 전보 조치했다.

L청장은 또 자신이 차장으로 재직시절 직원들로부터 수 백만원 상당의 향응을 접대 받았다는 투서를 감사원에 보냈다며 한 직원을 의심해 이 직원을 ‘직무수행 능력과 근무성적이 극히 불량하고 성실·복종 및 품위유지의무를 위반하였다’는 이유를 붙여 강등 조치를 하기도 했다.

감사원의 발표에 따라 하극상으로 비춰지던 B청 수뇌부 간 갈등은 ‘총수의 인사전횡’이라는 반전으로 매듭짓는 분위기다. 조직 초유의 고소·고발 사태에 대해 B청의 한 직원은 “결국 인사 문제를 둘러싼 투서와 총수의 무원칙, 비리로 촉발한 일”이라고 한탄했다.

실제 B청 감찰계에 들어오는 투서는 한 달 평균 3∼4건 이지만 인사철이 되면 10배 가까지 폭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직원 투서로
시장 추락 위기

기업들 역시 인사철에 몰리는 투서에서 자유롭지 않다. C사도 지난 2006년 임원 인사를 둘러싼 투서로 한동안 곤욕을 치렀다.


당시 투서문건에 따르면 J회장의 핵심 측근들이 기업 내 J회장 주변에 ‘인(人)의 장막’을 치고 독자적인 세력구축을 위해 인사를 전횡했다고 주장했다. 문건은 특히 이들이 주요 임원 인사 과정에서 조직적으로 경쟁자를 제거했다는 주장까지 담고 있어 논란을 키웠다.

지난 2009년 D그룹 차기 회장 선출을 앞두고도 때 아닌 투서 소동이 일어났다. 차기 후보로 유력한 모 인사가 수년 전에 D그룹 내부정보를 이용해 거액의 차익을 거뒀기 때문에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투서가 날아들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D그룹이 납품받는 과정에서 친인척 회사에 대규모 특혜를 줬다는 의혹을 제기하는 투서까지 나와 충격을 줬다.

E그룹은 동생이 회장으로 추대되는데 반대한 형이 동생의 비리를 담은 투서를 검찰에 제출하면서 골육상쟁의 불씨를 만들었다.

이에 검찰은 E그룹 전반에 대한 비리 조사를 실시했고, 조사결과 두 형제 모두 유죄가 입증 돼 나란히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사정기관에도 진정서 쌓여…내사 돌입
해당 기업들 좌불안석 “정보풀 가동”

이후 형은 E그룹에서 제명됐고,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중견 기업을 인수했지만 자금난, 실적 부진 등으로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이듬해 자택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F사는 한 직원의 투서로 중국시장에서 추락할 위기에 놓였다. 중국 현지에서 ‘모범답안’으로 불리며 승승장구하던 F사에 돌이킬 수 없는 오명을 가져다 준 투서가 공개된 것이다.

지난 2006년 말 중국 상하이의 F사 A/S업체에 근무하던 한 직원은 당시 “F사가 판매 과정에서 일부 문제가 있는 에어컨을 자체 수리 및 재포장 과정을 거쳐 새 제품으로 둔갑시킨 뒤 소비자에게 재 판매했다”는 내용의 투서를 보냈다.

당시 F사 측은 일부 A/S센터에서 일부 문제 제품에 대해 수리과정을 거쳐 포장만 다시한 후 판매한 사실이 있었음을 시인하며 회사에 책임이 있다고 인정했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F사는 기업 이미지는 물론 신뢰도에 큰 타격을 입었다. 중국 시장 내에서 ‘반(反 ) F사’ 조직이 출범하는 계기가 됐고, 최근까지도 F사의 판매율은 꾸준한 하향곡선을 그리며 곤두박질치고 있다.

‘고발’은 짧고
‘고생’은 길다?

이런 과정에서 다수가 입은 상처는 컸다. 전문가들은 문제점 개선을 위한 투서문화는 환영해야 할 일이지만 각종 이해관계에 따른 감정적 고소고발은 오히려 분열과 갈등을 양산해 사회를 좀먹는 병폐로 작용하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한 대학 교수는 내부고발자의 증가에 대해 “우리 사회의 투명성을 높일 수 있는 기회”라며 “인터넷의 확산이 갖가지 부작용도 일으키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땐 긍정적인 것처럼 내부고발자도 불투명한 사회의 제도와 법을 보완하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고 내다봤다.

한 노조 관계자는 “민주주의는 절차의 합리성과 정당성이 보장돼야 하는데 국내 기업들의 경영 형태는 아직 불합리한 점이 많다”며 “근본적으로 변화하지 않으면 구조적으로 계속 충돌이 일어날 것이다. 고발은 짧고 고생은 길다”고 강조했다.

반면 사정기관 관계자들은 “근거 없는 진정과 투서 남발로 사법기관의 내사와 수사가 진행돼 행정력 낭비와 직원들의 사기저하가 심각하다”며 “이해관계에 따른 무분별한 진정과 투서는 지역의 분열만 조장할 뿐이다”라고 호소했다.


김설아 기자 <sasa7088@ilyosisa.co.kr>

 


내부고발자 잔혹사

입 함부로 놀렸다간 ‘모가지’

공익을 위해 조직 내부의 부패행위를 폭로했다가 고통을 겪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조직적 차원의 ‘보복행위’도 끊이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권익위원회에 따르면 내부 고발자에 대해 보복성 인사를 가하는 등 불이익이 잇따르고 있다.
구미국가산업단지 직원 A씨는 2011년 6월 상급자의 업무추진비 횡령과 부당한 집행을 내부 감사실에 신고했다. 그런데 그는 곧 다른 부서로 전보 조치됐다. “조직 화합을 저해했다”는 이유였다.
국가평생교육진흥원 직원 B씨는 지난해 5월 공사 계약 체결 과정에서 상급자의 부당한 알선·청탁 사실을 내부에 신고했다. 하지만 그에게 돌아온 것은 포상이 아니라 재계약 거부 통지였다.
C씨는 지난해 3월 산림조합중앙회가 서울 우면산 산사태 복구공사비를 과다계상한 의혹을 발주 기관인 서울시에 신고했다. 그러나 서울시의 한 직원은 산림조합중앙회 직원에게 신고자의 신분을 유출했고, 산림조합중앙회는 C씨에게 신고를 취하할 것을 요구했다.
전남 광양시청 직원인 D씨는 2011년 5월 동료 직원이 생활폐기물 반입 수수료 2700여만원을 누락시킨 사실을 광양시 감사실에 신고했다. D씨는 한 달여 뒤 동료 직원에게 폭행을 당했다. 또 광양시는 공직기강을 저해했다는 이유로 D씨에게 감봉 처분을 내렸다.
이에 권익위는 서울시장과 산림조합중앙회장에게 ㄷ씨의 신분을 공개한 직원을 각각 징계하라고 요구했다. 광양시장에게는 ㄹ씨에 대한 감봉 처분을 취소하고 과태료 350만원을 물도록 했다.
권익위 관계자는 “부패행위를 정당하게 신고한 사람에게 보복을 하거나 신변위협, 신분공개 등을 하는 행위에 대해선 앞으로도 형사처벌 등 실효성 있는 제재를 강화해나갈 것”이라며 “매년 권익위의 반부패 경쟁력 평가에도 이 사실을 적극 반영해 기관들이 책임지고 내부 고발자 보호를 할 수 있는 조직 문화를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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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박희영 기자 =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더불어민주당의 검찰개혁에 대해 “검찰을 3개로 찢어놓는다고 해서, 검찰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것이란 확신은 못하겠다”고 비판했다. 김 전 비대위원장은 국민의힘에 대해서도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고 경고했다.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개혁신당 공천관리위원장을 끝으로 정치에 직접 개입하지 않고 있다. <일요시사>는 추석 연휴를 앞두고 김 전 비대위원장을 만나 그가 제시하는 정국 진단 결과와 향후 우리 정치가 나아가야 할 길을 들었다. 다음은 김 전 비대위원장과의 일문일답. -출범 100일을 넘긴 이재명 정부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100일 동안 별 탈 없이 무난하게 잘했다고 본다. 국민과 소통하려고 애를 많이 썼다. -추석을 앞두고 지급된 2차 민생회복 소비쿠폰에 대한 의견은? ▲민생 경제가 굉장히 어렵고, 우리나라의 총수요가 낮아졌다. 한국은행이 진단한 올해 성장률도 0.9%밖에 안 된다. 쿠폰을 풀면, 약간의 소비 촉진 효과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경제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엔 부족하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겉보기엔 훈훈했다. 하지만 미국 정부의 3500억달러 투자 펀드 조성 요구와 노동자 317명 추방 등 사태와 맞물려 이 대통령에 대한 비판 여론이 불거졌다. ▲우리 경제 부처 장관들이 미국 월가를 이해하지 못한 채 막연하게 생각한 것 같다. 그래서 “미국의 요구는 보증·대출을 거쳐 이행하면 될 것”이라고 이해한 것 같다. 근본적인 시각 차이 때문에 협상이 타결되지 못했다. 그런데 국민에겐 마치 타결된 것 같은 인상을 줬다. 한 달도 안 돼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에 국민은 의아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하는 미국의 MAGA 진영은 우리나라 일각의 부정선거론을 지지하면서 “한국이 공산주의에 진입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어떻게 보는가? ▲그들은 미국이 어떻게 위대한 나라가 됐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트럼프의 MAGA 프로젝트는 성공하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우리와도 관계가 없다. “MAGA 진영이 우리 정치에 개입할 것”이란 믿음은 국내 보수 진영의 희망 사항일 뿐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검찰 해체를 서둘러 마무리하려고 한다. 민주당이 새로 구상하는 검찰 체계에 대한 평가는?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검찰의 문제는 지금까지 권력자가 검찰을 이용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려고 한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이 때문에 검찰도 못된 버릇이 들어 이렇게 됐다. 개혁보다 “검찰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진짜 문제다. 검찰을 3개로 찢어놓는다고 해서, 검찰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것이란 확신은 못하겠다. -이 대통령이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 재헌씨를 주중대사로 임명했다. 노 대사가 어떤 역할을 할 것 같은가? ▲노 전 대통령은 한중 수교를 이끌었다. 노 대사는 동아시아문화센터 이사장으로서 한중 문화 교류와 관련된 많은 역할을 했다. 이 대통령이 이를 참작해 중국 대사로 임명하는 신선한 인사를 한 것 같다. 이 대통령도 자신에게 정치적으로 유리하다고 생각했으니 노 대사를 임명했을 것이다. -최근 민주당의 내부 구도를 놓고 ‘김어준 상왕설’이 불거지고 있다. 이 주장은 정국을 강경하게 이끄는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대응과 맞물리고 있는데… ▲김어준씨가 유튜브를 시청하는 일정 부류엔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다. 그런데 대중에게 크게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보진 않는다. 대통령이 엄연히 있기 때문이다. ‘상왕설’은 너무 과장된 얘기라고 생각한다. -최근 특검 수사 기간 연장과 관련해 정 대표와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가 충돌했다. ▲내부 의견 충돌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다. 내가 보기엔 김 원내대표가 독단적으로 합의한 것 같진 않다. 합의 후 강성 지지층이 반발해서 문제가 생겼다. 그래서 합의를 파기하려다 보니 두 사람 사이에 갈등이 생겼다. 그 자체가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이 대통령과 정 대표는 과거에 갈등이 많았고, 최근 민주당에 대해선 “친명과 구 친문이 갈등하는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그건 다 괜히 하는 소리다. 대통령이 엄연히 있는데, 당 대표가 대통령을 상대로 자신의 의사를 관철하기가 쉽진 않다. -민주당 일각에선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에 합당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혁신당 조국 비대위원장은 목표가 정해진 사람이다. 합당이 그 목표 실현에 유리할지 많이 생각할 것이다. 아울러 조 비대위원장으로선 혁신당만으로 전국 단위 선거를 치를 수 있을지 고민할 텐데, 상황에 직면하면 합당 여부를 정하지 않겠나? 합당은 민주당 내부에서도 받아들일 의사가 있어야 진행될 수 있다. 자신들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하면서 합의점에 도달하면 합당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대통령 있는데 당대표가 어떻게 의사 관철?” “장동혁은 대권 욕심 갖고 계속 변화할 것”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이끌던 국민의당과 혁신당은 총선을 치르면서 호남에서 선전해 존재감을 드러냈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호남 민심이 어떤 선택을 할 거라고 보나? ▲두고 봐야 안다. 호남 민심은 제19대 대선에선 안 의원이 아니라 문재인 전 대통령을 선택했다. 호남 유권자들은 상당히 전략적으로 투표한다. 그들은 정권 재창출이 가능한 후보에게 표를 몰아준다. 그러니 선거를 치러봐야 알 수 있다. 지금은 뭐라고 얘기하기 어렵다. -장 대표가 취임하자, 강경 보수 유튜버들은 “군소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과 강경 보수 유튜버들이 너무 밀착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국민의힘이 계속 지금과 같은 자세를 유지하면, 희망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사태와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이후 우리 정치 지형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냉철하게 분석해야 한다. 변화가 있어야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처럼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 -장 대표는 강경 보수와의 밀착과 중도층 공략 사이에서 계속 의견이 바뀐다. ▲장 대표에게도 정치적 목표가 있을 텐데 그는 목표 달성을 위해 많은 변화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강경 보수의 지원을 받아 당 대표가 됐지만, 자신의 정치적 지향점을 어떻게 결정할지 잘 생각해 봐야 한다. 만약 “지나치게 강경 보수와 밀착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 어느 정도는 그들과 선을 그을 필요가 있다. 하지만 선을 긋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다.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그에게는 크게 정치적 기대를 하기 힘들다고 본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가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어차피 당 대표가 됐으니, 대권 욕심을 가질 것이다. 정치인은 언제나 시대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장 대표 스스로 “변화하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계속 많이 변할 것이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장 대표가 당선되면서 위상이 많이 훼손됐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한 전 대표의 행보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국민의힘 당원들은 상당한 분노에 차 있었기 때문에 갑자기 강경해졌다. 세월이 흘러 당원들이 당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되면, 또 변할 수도 있다. 지금 상황만으로 판단하기엔 굉장히 이르다. 한 전 대표가 당시 여당 대표로서 비상계엄 선포 직후 반대 의견을 밝히면서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에 찬성한 것은 굉장히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앞으로 어떻게 정치적으로 발전할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래도 국민의힘에선 가장 올바른 판단을 했다고 본다. -장 대표가 한 전 대표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바꾸지 않고 있다. ▲장 대표로선 당연히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쫓아낼 수 있겠는가? 어떻게 쫓아내겠나? 오늘의 장 대표는 한 전 대표 덕분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 대표는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 오세훈 서울시장 등과 지방선거에서 연대할 가능성을 내비친다. ▲뻔한 사람들끼리 하는 거라서 큰 효과가 있을 것 같진 않다. 모두 국민의힘 사람이거나 국민의힘 출신인데 특별한 효과가 있겠는가? -진영 간 대결 구도가 성별·세대 갈등 구도로 번졌다. 정치권 원로로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시대·사회·경제 구조가 변하고, 새 기술이 도입되면 의견이 분분할 수밖에 없다. 국민 사이에 형성되는 ‘그룹’을 조화시킬 수 있는 정치적 능력이 필요하다. 이런 능력이 없는 사람은 정치적으로 성공할 수 없다. “이준석·안철수·오세훈? 뻔한 사람들” “국힘, 강경 보수로? 희망 보이지 않아” -일부 정치인은 갈등을 이용해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후원금을 벌고 있다. ▲큰 도움이 되진 않을 것이다. 갈등을 전체적으로 포괄한 후 최대공약수를 찾아 정치해야 한다. -과거 정치와 현재 정치의 가장 큰 변화와 차이점은? ▲못 살던 시절엔 먹고사는 게 가장 중요해서 경제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먹고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지금은 국민의 의식 구조가 과거와 다르다. 이 시대의 젊은 세대는 우리 국민 중 성숙도가 가장 높다. 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능력도 가장 좋다. 이들은 공정하지 못하고, 불평등하며, 민주적이지 않은 것에 크게 저항한다. 세대별로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극우화됐다”고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4050 남성이 2030 남성에게 가장 불만을 품는 부분은 “너희는 왜 국민의힘을 지지하면서 보수화되느냐”는 것이다. ▲2030 남성은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게 아니다. 최근 국민의힘은 장외 집회를 하고 있는데, 이들은 이런 걸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너무 소란을 피우는 것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흔히들 “장 자크 루소가 얘기하는 계몽주의가 프랑스 대혁명을 낳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계몽주의가 뭔가? 성숙지 못한 국민을 성숙하게 만들어서 사회를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우리 국민의 성숙도는 매우 높아졌다. 이 때문에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도 실패했다. 국민의 의식 수준이 높아지면, 정치가 이를 따라가야 하는데, 접근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정계의 킹메이커로 알려졌다.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인가? ▲대통령은 정직해야 한다. 시대 변화에 민감하게 적응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대통령들이 모두 실패한 원인은 너무 탐욕스러웠고, 시대 변화를 제대로 못 따라갔다는 것이었다. -최근 한국 정치·사회에서 작게나마 희망을 봤거나 “아직은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거나 그 반대가 된 일이 있다면? ▲우리나라의 제일 시급한 과제는 아주 극단적인 양극화 현상이다. 이를 완화하지 않으면, 한국 정치는 국민통합을 이룰 수 없다. 우리는 초고령화 사회로 가고 있고, 출산율은 매우 낮다. 경제의 역동성이 거의 없어지고 있다. 정치인이 말로만 소통·통합을 외친들 아무 소용이 없다. -추석 연휴를 앞둔 <일요시사> 독자에게 남길 덕담 한마디가 있다면? ▲대통령을 선출하는 기준이 여론조사에 휩쓸리는 식으로 정해지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윤 전 대통령도 그렇게 대통령에 당선됐다. 오랫동안 검사였던 사람이 지도자가 된 사례가 세계적으로 별로 없다. 이들은 남의 부정적인 측면만 따지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창의적·긍정적 역할을 하기 힘든 사람들이다. 제가 그를 호의적으로 봤던 것도 큰 잘못이었다. 당시 국민의힘엔 대통령감이 없었다. 그래서 저는 윤 전 대통령의 여론조사 지지율이 높은 것을 일컬어 “별의 순간을 잡았다”고 말했다. 결국 윤 전 대통령은 제가 우려했던 행동을 했다. 저는 이승만 전 대통령 외엔 모든 대통령을 만나봤다. 직접 자문도 했고, 대통령 선거에 참여한 적도 있다. 이 경험을 토대로 <왜 대통령은 실패하는가>라는 책도 출간했다. 이들이 실패한 원인은 초심을 관철하지 못했단 것이었다. 박근혜·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된 이유를 생각해야 한다. 이미 우리나라에선 오래전에 보수·진보가 사라졌다. 지난 1997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선됐던 제15대 대선도 보수·진보의 싸움이 아니었다. 모두 보수였다. 1980년대 운동권 출신들은 정치권에 진출한 후 스스로 대단한 진보를 자처했다. 그런데 이들은 진보의 뜻도 모른다. 이들은 정권을 네 번 잡을 동안 양극화 하나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이 무슨 진보 정권인가? 국민이 정치 상황을 냉철하게 관찰하시고 올바른 선택을 하는 자세를 갖추셔야 한다. 대통령·국회의원도 결국 국민이 선출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바란다. <ctzxp@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