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 풀스토리> 전주 일가족 살인사건 전말

  • 강현석 angeli@ilyosisa.co.kr
  • 등록 2013.02.12 14:4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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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형 서서히 죽인 냉혹한 패륜아

[일요시사=사회팀] 전주에서 일가족 4명이 가스에 질식했다. 처음에는 생활고로 인한 자살 시도로 추정됐다. 아버지와 어머니, 큰 아들이 죽고 작은 아들만 살아남았다. 그런데 이 작은 아들의 정체는 존속을 살해한 희대의 살인마였다.



지난달 30일 오전 11시께 전북소방안전본부에 한 통의 신고전화가 접수됐다.

"빨리 와요. 그전에도 119에 신고한 적이 있어요."

다급한 목소리의 전화는 곧 끊겼고, 119구조대는 곧 사건 현장으로 급파됐다.

사건은 전북 전주시 덕진구 송천동의 한 아파트 3층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이곳에 살던 일가족 4명은 일산화탄소 가스에 질식하면서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

자살로 알았더니…

발견 당시 집주인 A(52)씨와 A씨의 아내 B(55)씨, 이들 부부의 큰 아들 C(27)씨 모두 의식이 없었다. 이들은 인근 병원으로 모두 옮겨졌으나 숨졌다. 유일한 생존자인 박모(25)씨 역시 일산화탄소 중독 증세를 보여 전북대병원에 입원했다.

A씨 자택은 큰 방과 작은 방 거실로 이뤄져 있었다. 일산화탄소 중독의 원인으로 지목된 번개탄은 A씨 부부가 있던 안방과 C씨 형제가 있던 작은방 이렇게 두 곳에 피워져 있었다. 그리고 번개탄을 피운 화덕은 A씨 가족의 자살을 암시하듯 검게 그을려 있었다.

그러나 비슷한 사고는 이미 지난달 8일에도 있었다. A씨 부부와 박씨가 가스 사고에 노출됐었던 것이다. 당시 A씨는 전북대학교의 한 연구센터에 사고 조사를 의뢰했다. 출타 중이라 사고를 피했던 C씨도 한국가스안전공사에 원인 규명을 요구했다. 하지만 집 내부 가스 시설에는 문제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어디선가 가스는 유출됐는데 원인은 밝혀내지 못했던 상황. 분명한 건 보일러나 가스에는 이상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20여 일 뒤 똑같은 장소에서 또 다시 가스에 의한 질식 사고가 발생했다.

폴리스 라인이 쳐진 사건 현장은 의심할 나위 없는 '자살 현장'이었다. 번개탄과 화덕은 가족의 자살을 가리키는 듯 했다. 하지만 경찰은 A씨 자택에서 '유서'를 발견할 수 없었다. 통상 가족이 동반 자살을 꾀하는 경우 유서는 남기기 마련인데 A씨 가족 주변에서는 어떤 메모나 흔적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의문은 여기서부터 시작됐다.

A씨 가족은 지난달 8일 신고 전에도 두 차례에 걸쳐 "약국이 어디 있느냐"고 119에 물었다. 질식사건이 있던 날의 신고까지 합치면 올 들어 4번이나 119에 신고한 것이다. 석연찮은 분위기가 감지됐지만 이와 관련 정확한 증언을 듣기 위해서는 유일한 증인인 박씨가 의식을 회복해야했다. 전북대병원에 누워있던 박씨는 담당 수사관을 만나자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새벽 5시까지 형과 집에서 술을 마셨는데 형이 준 우유를 마시고 곯아 떨어져 일어나보니 집 안에 연기가 자욱해 119에 신고했다"는 내용이었다. 이어 박씨는 "형 C씨가 사업과 여자 문제로 고민하던 중 '죽고 싶다'는 말을 자주 했다"고 재차 강조했다. 그러나 C씨의 여자친구는 "사건 당일 오전 3시까지 C씨와 함께 있었는데 차 안에서 연탄과 번개탄은 보지 못했다"고 반박했다.

즉 박씨의 진술에 따르면 C씨는 자살을 결심한 오전 3시 이후 남은 술과 번개탄을 자신의 차량으로 가져다 놓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 번개탄을 피우고 죽음을 맞이한 셈이다. 이처럼 연결고리가 약한 박씨의 진술을 경찰은 신빙성이 낮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박씨는 실제로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A씨 가족은 자살을 결심할만한 뚜렷한 이유도 없었다. A씨는 시가 10억원 이상으로 추정되는 콩나물공장을 운영하고 있었다. 사업에도 막힘이 없었다. 사건 당일에도 A씨의 휴대폰에는 제품을 주문하는 바이어들의 문자 메시지가 쇄도했다. 사고 며칠 전에는 지인을 통해 땅도 알아봤다. 경제적 어려움은 없었다는 이야기다. A씨의 아들 C씨 역시 체인점 형태의 떡갈비전문점을 운영하고 있었다. 경찰은 생활고로 인한 동반 자살의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판단 내렸다.

탐문을 이어가던 중 경찰은 박씨가 자신의 차량에서 C씨의 차량으로 번개탄을 가져다 놓은 정황을 포착했다. 박씨는 범행을 은폐하기 위해 자신의 차량을 세차했는데 이게 거꾸로 범행을 입증하는 결정적인 단서가 된 것이다.

3명 가스 질식사 알고 보니 작은아들 범행
치밀한 계획 세워 살해…경찰 삼촌이 조언

박씨에게 세차를 조언한 건 다름 아닌 현직 경찰관이었다. 박씨의 외삼촌인 D경사(42)는 박씨를 전북대병원에서 만났고 박씨의 범행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D경사는 박씨에게 현장의 유류품을 치우라는 등의 조언을 했다. 이후 D경사는 박씨의 증거인멸을 도운 혐의로 경찰에 붙잡혔다.

지난 4일 경찰은 일가족 3명을 살해한 혐의(존속살해)로 박씨를 긴급 체포했다. 지난달 31일 장례식장에서 상주 노릇을 하며 눈물까지 흘리던 박씨는 경찰에 구속되자 굳게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박씨의 침묵에도 범행 흔적은 속속 드러났다.

전주 덕진경찰서 등에 따르면 박씨는 매우 치밀하게 이번 범행을 계획했다. 올해 초 박씨는 보일러가 있는 베란다와 작은 방 사이의 벽에 엄지손가락만한 크기의 구멍을 냈다.

이와 관련 경찰 관계자는 "이 구멍에 가스 연기를 주입시키려고 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형인 C씨를 해치기 위한 사전 준비였던 셈. 뿐만 아니라 박씨는 지난달 8일 보일러 연통을 20cm 정도 뜯어내고 가스 연기를 부모가 있는 방 안으로 강제 유입했다. 그러나 A씨와 B씨는 가스 냄새를 맡고 잠에서 깼다. 박씨의 첫 살해 시도가 실패로 돌아갔다.

계획이 무산되자 박씨는 자신의 집과 비슷한 구조의 오피스텔을 월세로 얻었다. 그리고 번개탄 10여 개와 화덕을 구입해 원룸에서 모의실험을 감행했다. 실험이 성공으로 끝나자 박씨는 병원을 찾아가 불면증을 호소했다. 그리고는 수면제를 처방받았다. 이는 모두 살인을 위한 사전 준비였다.

사건 당일인 30일 오전 1시께. 박씨는 A씨와 B씨에게 수면제를 탄 음료수를 건넸다. 음료수를 마신 A씨 부부는 잠들었다. 이후 박씨는 이들 부부가 있는 방 안에 화덕을 가져다 놓고, 가스가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도록 문을 닫았다. A씨 부부는 서서히 일산화탄소에 질식했다. 그리고 박씨는 휴대전화를 꺼내 형 C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모든 게 거짓말

C씨와 오전 3시20분께 만난 박씨는 C씨의 승용차 안에서 맥주를 나눠 마셨다. 그리고 오전 4시30분께 귀가해 수면제가 든 우유를 C씨에게 건넸다. 쓰러진 C씨는 A씨 부부와 같은 방법으로 박씨에게 살해됐다. 박씨는 범행 1시간30분 뒤 C씨의 휴대전화로 여자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행복해. 잘 살아"란 내용이었다. 자살극으로 위장하기 위한 고도의 연출이었다.

박씨는 체포된 뒤 "여자친구를 만나고 자백하겠다"고 하는 등 죄책감 없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일각에서는 박씨가 '사이코패스'라는 주장 또한 제기되고 있다. 현재 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은 "이 같은 계획적인 존속살해는 본 적이 없다"며 허탈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

 

박씨의 범행 동기는…

보험금? 성격장애?

A씨 부부와 C씨가 남긴 사망 보험금은 25억원. 여기에 A씨가 남긴 부동산은 수십억원대로 추정된다. 이 같은 정황을 바탕으로 경찰은 박씨가 재산을 노리고 범행을 계획한 것으로 보고 있다. 죽은 일가족 3명의 보험 개수는 모두 30여 개에 달하며, 납입 보험금은 월 300여만원에 이르는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경찰은 박씨가 육군 소령이었던 아버지 A씨와의 불화 등으로 인해 성격 장애를 겪고 있을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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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법원이 주호영 국회부의장의 대구시장 경선 컷오프 관련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항고할 뜻을 내비쳤다. 주 부의장의 강경 대응은 저조한 국민의힘 지지율과 맞물려 혼란상을 더욱 극적으로 비추고 있다. 과연 국민의힘이란 ‘대마’는 ‘불사’의 존재일까? 주호영 국회부의장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경선에서 컷오프된 것에 반발해 지난달 26일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했다.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수석부장판사 권성수)는 지난 3일 이를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곧바로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법원 결정에 반발했다. 법원 결정 바로 반발 주 부의장은 “저는 그동안 이번 컷오프가 절차·내용 모두 중대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해 왔다”며 “법원의 판단과 별개로 이번 공천 과정이 과연 당원·시민의 눈높이에 맞는 공정하고 민주적인 절차였는지는 여전히 엄중하게 따져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주 부의장은 지난 6일 항고를 제기했다. 이어 지난 8일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항고심 판단을 끝까지 지켜본 후 제 거취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선 일각에서 제기했던 무소속 출마설을 일단 유보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어 주 부의장은 “항고심 판단을 기다린다고 해서 이번 공천 난맥상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체제의 책임을 덮고 가겠단 뜻은 결코 아니”라며 “이런 공천 구조를 만든 세력과 절대로 타협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공천은 충성의 대가나 숙청의 도구가 아닌, 오직 국민 앞에 가장 경쟁력 있고 책임 있는 후보를 세우는 과정”이라고 주장하는 등 자신을 컷오프한 것을 ‘숙청’이라고 암시했다.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에 대해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6선인 주 부의장은 대구 수성에서만 국회의원을 지냈다. 대구 수성을에서는 4선을 지냈고, 수성갑에선 재선에 성공했다. 이 중 4선을 했던 지난 2016년 총선 수성을 선거에선 친박(친 박근혜)계 주도로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 출마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유 있게 이겼다. 문제는 주 부의장이 당내 최다선인 6선 의원 겸 국회부의장이라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명예가 곧 실권을 보장하진 않는다. 아울러 주 부의장이 차기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구에 출마해 7선에 도전하면,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다. 같은 6선인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조정식 의원은 각각 부산 사하을·경기 시흥을을 지역구로 두고 있다. 부산은 이미 격전지가 된 데다 조 의원은 민주당계 정당과 국민의힘 소속으로 각각 3선 했고, 경기 시흥을은 수도권이다. 국민의힘의 안정된 텃밭으로 분류되는 대구 수성을에서 7선에 도전하는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 설령 7선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도 참패 가능성이 제기되는 국민의힘이 2년 후 총선에서 다수당이 된다는 보장도, 국회의장이 되리라는 보장도 하기 어렵다. 오는 2028년 총선까지 연일 떠들썩하게 이어지는 계파 갈등을 어느 정도 안정시킨 후 대안 야당으로 발돋움하면서 이재명정부가 실정으로 지지율이 폭락하는 상황이 겹쳐야 승리를 노려볼 수 있다. 주 부의장이 국회의장에 도전하는 것도 현실적으로는 가능성이 희박하다. 불확실한 국회의장…‘텃밭 7선’ 대신 대구? 연이은 공천 가처분 세례 속 서울 지지율 13% 따라서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집념을 불태우는 것은 필연이다. 대선 패배 후 대구시장에 출마해 당선됐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전례도 있다. 주 부의장으로선 “나라고 출마 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에 있느냐”고 판단해도 무리가 아니란 분석이 있다. 대구시장으로서 임기를 마친 후 대권에 도전하거나 당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가능성은 일명 ‘주한 연대설’로 통하는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와의 연대설 때문에 불거졌다. 이는 국민의힘 이정현 전 공천관리위원장이 주 부의장을 컷오프한 직후 불거졌다.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 대구시장에 출마해 대구 수성갑에서 재보궐선거가 진행되면, 한 전 대표가 여기에 출마하는 형식으로 연대한다”는 설이다. 한 전 대표 측으로선 손해 볼 게 없다. 한 전 대표는 지난달 25일 채널A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보수 재건이 필요하다고 공감하면서 나서겠다고 했다”며 “우린 이미 연대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반면 주 부의장은 신중한 반응을 내비쳤다. 그는 지난달 26일 기자들을 만나던 중 주한 연대설 관련 질문을 받자 “제 코가 석 자인데 딴 생각할 여지가 있겠느냐”고 답변했다. 다만 무소속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선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해 준비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따라서 주한 연대설 성립 가능성 자체를 배제한 것은 아니라는 해석이 나왔다. 주 부의장의 항고 제기는 국민의힘의 치명적 문제 하나를 외부로 노출했다. 국민의힘에선 당내 처분에 대해 연이어 법원으로 달려가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가깝게는 주 부의장과 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컷오프에 대한 가처분을 신청했다. 김 지사는 주 부의장과 달리 가처분이 인용돼 경선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멀게는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배현진 의원에 대해 각각 결정했던 제명·당원권 정지 1년 징계의 효력도 법원에서 정지됐다. 4건의 가처분 모두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에서 판단했다. 재판부는 주 부의장 건에 대해서만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줬다. 장 대표는 김 지사가 신청한 가처분이 인용된 다음 날인 지난 1일 기자들과 만나 “법원이 정치에 너무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며 “재판장이 국민의힘에 와서 공천관리위원장과 윤리위원장을 하면 될 것 같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정치의 사법화가 심각할 정도로 진행된 것 같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천 관련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승리 가능성을 어둡게 하는 신호들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국갤럽은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2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상대로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직접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48%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8%로 집계됐다. 제 코가 석 잔데… 서울에선 민주당 지지율이 51%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3%로 집계됐다. 부산·울산·경남에서도 민주당 지지율은 42%로,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7%로 집계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바람). 영원한 격전지 서울에서도 양당의 지지율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여론조사 결과 수치가 공개되자,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한 지적이 날로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4일 자 사설을 통해 “국민의힘은 지금 수도권에서 후보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며 “현행법상 15% 이상 득표해야 선거 비용을 전액 보전받을 수 있는데 그에 미치지 못할까 걱정한다는 것”이라며 현실을 짚었다. 이어 “말로만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선언했을 뿐 실제로는 반대로 하고 있다”며 “공천 혼란에 대해서도 가처분을 인용한 법원 탓만 할 뿐, 어떻게 수습하고 책임질지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등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조선일보>의 주장대로라면, 수습·책임을 맡을 당 대표는 보이지 않는 셈이다. 해당 매체는 “어렵게 나선 후보들은 국민의힘 상징색인 빨간색을 포기하고 흰색 점퍼를 입고 다닌다”며 “인구가 1300만명에 달하고 국회의원 의석수도 가장 많은 경기도에선 지사 출마자를 구하지 못해 공천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는 현실도 짚었다. <조선일보>가 짚은 국민의힘의 현실은 신체를 통제할 두뇌 없이 거대한 군집을 이룬 채 각자의 역할을 맡은 군집 생물에 비유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관해파리를 들 수 있다. 관해파리는 겉으로 볼 땐 덩치 큰 해파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각각의 역할을 맡은 독립 개체들이 모인 군집이다. 이 개체들은 먹이 섭취·이동·번식 등 각각의 역할만을 담당한다. 각각의 개체들은 생존을 위해 서로 연결돼있지만, 이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뇌는 없다. 개체 중 누군가가 제 역할을 못하면 모두 죽는다. 단세포생물인 점균류도 먹이를 찾을 때, 각자의 세포가 알아서 효율적인 길을 찾는다. 이를 통제할 뇌는 없지만, 화학적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최적의 경로를 결정한다. 그런데 잘못된 경로를 찾으면 방향을 틀 능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는 것은 군집 전체가 굶어 죽는 일이다. 페로몬을 통해 신호를 주고받는 군대개미 집단도 선봉에 선 개미가 길을 잃으면 모든 개미가 원을 그리다가 지쳐 죽는다. 제 역할 못하면… 이탈리아의 정치학자 조반니 사르토리는 원심적 경쟁 이론을 주장했다. 보통의 민주주의 국가에선 정당이 중도층의 표심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강경한 여당과 무책임한 야당이 양립할 땐 정당이 중도층을 설득하기보다 진영 결집에 따른 조직표 구성에 몰두한다. 이런 구도에선 중도층이 정치에서 배제되고, 정치적 대화도 단절된다. 이런 상황에선 후보자들은 당의 승리와 중도 확장을 포기하고, 강성 핵심 지지층의 지지를 얻으려고 노력한다. 중도층이 정치에 냉담해지면서 설득 가능 대상으로 강성 핵심 지지층만 남기 때문이다. 가성비 높은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아울러 후보자들이 지도부를 거부하면서 강성 핵심 지지층에게만 구애하는 각자도생에 몰두한다. 이는 결국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준비 과정에서 서울시장·경기도지사 경선에선 구인난에 빠졌지만, 대구시장·경북도지사 경선은 열기가 과도한 것도 이와 비슷하다. 특히 대구시장 경선엔 국회부의장·경제부총리·원내대표 등 당정의 핵심을 지낸 인사들이 모두 출마했기 때문에 더욱 눈에 띄고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리처드 카츠와 아일랜드의 정치학자 피터 메어는 정당을 카르텔·프랜차이즈 기업에 비유하는 독특한 이론을 발표했다. 카츠와 메어는 “현대 정당이 시민의 자발적 후원보다 국가의 정당 보조금·공천권 등 국가의 자원에 의존해 서로 담합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앙당과 지역구 후보의 관계를 본사와 가맹점주 관계로 규정했다. 따라서 중앙당이 자원을 적절히 배분하지 못하거나, 시장에서 자원의 가치가 폭락하면 가맹점주의 불만이 폭발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을 매개로, 캐나다의 정치학자 켄 카티는 “정당이 실제로 프랜차이즈 시스템으로 바뀌고 있다”고 주장했다. 카티에 따르면, 정당은 브랜드로서만 기능하고, 선거에선 후보가 중앙의 브랜드를 빌려온다. 공천은 결국 이들 간 계약 관계 역할을 한다. 이는 실제 정치적 현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일 서울 쌍문역 일대 쌍리단길을 방문했다. 오 시장의 현장 방문에 동행한 국민의힘 소속 서울시의원들과 도봉구의원들은 국민의힘의 상징색 빨간색이 아닌 흰색 점퍼를 입었다. 오 시장도 서울시 로고가 새겨진 흰색 점퍼를 입고 현장을 돌아다녔다. 지난달 31일 진행된 국민의힘 서울시장 본경선 후보들 대상 첫 토론회에서도 후보들은 장 대표를 비판했다. 이들은 “흰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동그라미 푯말을, 빨간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엑스 푯말을 들어달라”는 진행자의 요구에 일제히 엑스 푯말을 들었다. 오세훈 ‘흰색 점퍼’ 현장행 “빨간색 입고 싶다” 대우그룹·프랑스 사회당 등 한순간에 망한 대마들 하지만 말은 날카로웠다. 오 시장은 “빨간색 점퍼를 입고 싶은 마음을 엑스 푯말을 들어 표현해 봤다”고 말했다. 미래통합당 윤희숙 전 의원은 “흰색 옷을 입어야 하는 사람은 장 대표”라며 “이번 공천이 마무리되면 백의종군을 결심해 달라”고 요구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빨간 당 출신이 빨간색을 안 입는 자기모순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도 “장 대표가 확장하지 못했다면 후보들이 확장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달엔 장 대표의 지원 유세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본사에 대한 가맹점주들의 집단행동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서울시당위원장을 맡은 배 의원도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의 서울 지지율 13%의 주역 장동혁 지도부가 기초단체장 후보를 못 구한 지역의 후보를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방선거 패배 가능성이 내·외부에서 연이어 제기되고 있지만, 국민의힘 지도부에 대해선 “변화할 의지도, 대책도 없는 것 같다”는 평이 나온다. 이 같은 상황은 카츠와 메어가 이미 이론적으로 짚었다. 이들은 “카르텔 정당은 국가 자원을 독점하기 때문에 ‘우리는 망하지 않는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고 지적했다. 바둑으로 치면, 국민의힘은 여러 개의 돌로 넓게 자리 잡은 곤마인 ‘대마’와 비슷하다. 시사 분야에서 관용적으로 잘 쓰는 표현 중 하나는 ‘대마불사’다. “대기업이나 대형 금융기관은 국가의 지원을 받아 망하지 않는다”는 관용 표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1990년대 후반 IMF 금융위기는 대마불사로부터 비롯됐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상황은 당시 재계 2위였던 대우그룹의 해체였다. 김우중 당시 회장은 ‘세계 경영’이라면서 해외 업체를 공격적으로 인수했다. 그러다 IMF 금융위기를 맞아 구조조정을 거쳤지만, 삼성자동차를 받고 대우전자를 주는 빅딜 과정에서 엄청난 빚을 져 결국 워크아웃을 선언했다. 김 전 회장도 해외로 도피했다. 대우그룹은 그렇게 해체됐다. 국제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1990년대 초반 캐나다의 집권당 진보보수당은 경제 실정과 내부 갈등 끝에 구심력을 잃고 연이은 당원 탈당 사태를 겪었다. 그 결과 150석을 넘게 보유했던 거대 여당이 선거 한번에 2석만 건지는 참패를 당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프랑스에서도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을 극복하지 못했던 사회당은 지난 2017년 대선을 앞두고 강경한 좌파 성향 브누아 아몽 대선후보를 선출했다. 그러자 사회당 소속 정치인 다수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창당했던 신생 정당 앙 마르슈로 옮겼고, 당은 선거에서도 참패했다. 반대로 민주당은? 민주당은 대구시장 선거 승리를 위해 대구에서 일정한 기반을 갖추고 있고 선거 승리 경험도 있는 김부겸 전 총리를 대구시장 후보로 선출했다. 이어 지난 8일엔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김 후보와 함께 대구 농수산물도매시장을 방문하는 등 승리 의지를 드러냈다. 구인난을 겪고 있는 국민의힘과 달리, 민주당에선 추미애 의원이 치열한 경선 끝에 경기도지사 후보로 선출돼 주목받고 있다. 대마불사는 과연 영원한 걸까. 대마불사만 믿고 배짱 영업을 해도 되는 걸까. 대우그룹 해체는 국민의힘에 어떤 의미를 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