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쥐락펴락 ‘국정원 조작사’ 대추적

  • 조아라 archo@ilyosisa.co.kr
  • 등록 2013.02.14 13: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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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시무시한 ‘절대반지’ “대권 잡으려면 이것부터 쥐어라!”

?[일요시사=정치팀] 정권이 위기에 닥치면 단골손님처럼 등장하는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이 이번에도 어김없이 정국 한 가운데 있다. 뜨뜻미지근한 경찰의 수사 태도 때문에 국정원 댓글조작사건이 대선을 한 달이나 넘기고 그 실체를 드러내고 있지만, 쉽게 잠잠해질 것 같지 않은 분위기다.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사실이 터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만약 한반도에서 국정원을 비롯한 정보기관의 ‘조작’이 없었다면 어떠했을까? 아마도 지금과는 전혀 다른 역사가 쓰여졌을 것으로 보인다. <일요시사>가 ‘공작’에 기생해 권력을 휘두르는 ‘정보기관과 권력의 유착관계’를 되짚어 보았다. 

 


조작은 조작인데, 이번엔 다르다. 조작도 진화하는 모양이다. 멀쩡한 사람이 빨갱이로 둔갑해 옥고를 치르고 고문을 당하던 그때와는 확실히 다르다. 정보화시대에 맞게 그래도 ‘인터넷 댓글 조작’이다. 국정원 직원이 십 수개의 아이디를 이용해 야권 대선 후보를 향한 여론을 조작했다. 대선 직전 ‘조작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중간 수사를 발표해 국민으로부터 공범 혐의를 받고 있는 경찰이 첫 등장인물이라는 점이 새롭다. 모습은 바꿔도 습관은 바뀌지 않나 보다.

개헌여론 안 좋아
돌파용 ‘북풍조작’

불리한 판세를 뒤집기 위한 ‘북풍조작’은 국정원이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다. 1961년 국정원의 전신인 중앙정보부가 탄생하기도 전이다.

1958년 이승만 전 대통령은 총선의 판세를 뒤엎기 위해 엄청난 사건을 계획했다.

하필이면 이게 성공했다. 국가 정보기관의 선거 개입 조작이 이미 반세기 전에 태동한 것이다. 북풍조작의 역사적 뿌리나 다름없는 그 유명한 ‘진보당 사건’이 비극의 시작이었다.


‘시대의 풍운아’ 조봉암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며, 북풍조작의 첫 번째 희생양이 됐다. 이 전 대통령이 3선을 하기 위해 제출한 개헌안이 국회의원 재적 3분의 2에서 1표가 부족해 부결이 선포되자, 자유당 의원만이 참석한 가운데 ‘4사5입’ 원칙을 주장하며 부결선포를 취소하고 가결을 선포한 사건이 발생했다. 4사5입 개헌 파동을 계기로 여당인 자유당이 국민의 신망을 잃게 됐다.

초대 농림부 장관을 지내고 진보당을 창당한 조봉암은 대통령선거에 출마해 이 전 대통령에게 정면으로 도전했던 인물이다. 선거과정을 보더라도 조봉암은 이 전 대통령과 정면으로 맞서면서 위협적인 인물로 급부상했다. 이후 이 전 대통령은 조봉암을 숙청하기 위한 본격적인 작업을 시작했다.

중앙정보부 태어나기 전 1958년 이승만 ‘북풍조작’으로 총선압승
시대의 풍운아 조봉암, ‘동백림 사건’ 관련자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 

이 전 대통령은 위헌적인 개헌으로 여론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총선을 앞두고 있었다. 조봉암도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선거대책을 수립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조봉암은 북한 간첩과 접선하였고, 공산 집단이 주장하는 통일방안에 동조했다는 이유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됐다. 이후 진보당 사건에 연관된 몇몇 관계자들은 대법원에서 무죄가 선고되어 석방되었으나, 조봉암은 대법원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리고 1959년 11월 사형이 전격적으로 집행됐다. 총선은 이 전 대통령의 압승이었다.

이후 조봉암에 대한 사면복권신청서가 국회에 제출되는 등 각고의 노력이 이어졌다. 그리고 2007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조봉암이 연루된 진보당 사건이 이승만 정권의 반인권적 정치탄압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판결에 대한 재심 등을 권고했다. 

2011년 1월20일 대법원은 국가변란과 간첩 혐의에 대해 전원 일치로 무죄를 선고했으며, 조봉암의 신원은 복권됐다. 조봉암이 북풍조작으로 목숨을 잃은 지 52년 만의 일이었다.


이후 선거 때만 되면 정보기관에 의해 이 같은 일들이 자행되기 시작했다. 1967년 박정희 정권하에서 일어난 ‘동백림 조작 사건’이 국가 정보기관에 의해 벌어진 첫 대규모 공안사건이다.

박정희의 공작단
관련자만 203명

당시 6월8일에는 국회의원 총선이 있었다. 총선의 부정 의혹에 대한 비판 분위기가 확대되자 박정희 정권은 중앙정보부를 동원해 혐의가 미미한 사람들에게 이를 확대해 뒤집어씌웠다.

중앙정보부는 당시 동독의 수도인 동베를린을 거점으로 한 북괴 대남 적화 공작단에 대한 수사 결과를 대대적으로 발표했다. 관련자만 무려 203명이었다. 발표에 따르면 이들이 동백림 소재 북한대사관을 왕래하면서 이적(利敵)활동을 했을 뿐만 아니라 일부는 입북 또는 노동당에 입당해 국내에 잠입, 간첩활동을 해왔다는 혐의였다.

하지만 실제로 한국에서 간첩행위를 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 이들이 간첩행위를 했다는 재판결과는 고문에 의한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해외 유학생과 교민들의 강제연행까지 이루어져 외교적 마찰까지 불러왔다. 박정희 정권은 결국 서독 및 프랑스의 의견을 수용해 사건 관계자에 대해 잔여 형기 집행을 면제, 사형수까지 모두 석방했다. 하지만 이미 사형을 당한 이들의 목숨을 다시 살릴 방법은 없었다.

 

 

결과적으로 동백림 사건에 의해 부정선거 규탄 시위는 냉각됐다. 진보당 사건에 이어 북풍조작이 또다시 성공해 정권에 힘을 실어준 격이었다.

1987년 전두환 군사정권도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위와 같은 조작을 기획했다. 이것이 그 유명한 ‘수지김 사건’으로 정권 유지를 위해 저질러진 가장 유명한 공안사건이다. 당시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이한열 치사 사건’ 등 전두환 정권의 최악의 위기상황이었다.

홍콩에서 남편에 의해 억울한 죽음을 당한 수지김은 국가안전기획부(이하 안기부)에 의해 북한 공작원으로 둔갑했다. 한순간에 빨갱이의 핏줄이 된 수지김의 가족 중 3명이 정신병과 화병 등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후 유족들의 진상규명에도 국정원의 압력에 제대로 된 수사가 이루어지지 않다가 2003년 8월14일 42억원의 배상판결이 내려졌다. 국정원은 같은해 8월21일 사건조작을 인정하고 공식으로 사과했다. 평범한 한 여성을 간첩으로 몰아 정치적으로 이용한 이 사건의 진실이 밝혀지는 데는 무려 14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진실 밝히려면
오랜 세월 기다려야

1992년 제14대 대통령선거에서 안기부는 맹활약했다. 이때 김대중 전 대통령을 간첩사건과 연루시키려는 ‘중부지역당 사건’과 김영삼 전 대통령을 겨냥한 ‘초원복집 사건’이 대선을 앞두고 연이어 일어났다.

10월6일 안기부는 “남로당 이후 최대의 간첩단 사건”이라고 주장하며 ‘남한 조선노동당’ 가담자 95명을 적발해 이 가운데 ‘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62명을 적발, 300여 명을 추적 중이라고 발표했다.


안기부는 당시 평민당 후보인 김대중 전 대통령의 비서가 이 사건에 연루돼 있다는 허위사실을 유포시켰다. 이 때문에 안기부는 당시 여당 총재였던 김영삼 전 대통령을 당선시키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는 평가를 받았다. 선거 후 이 사건은 조용히 덮였다.

초원복집 사건은 선거 직전에 일어났다. 정부 기관장들이 부산의 초원복집이라는 음식점에 모여 제14대 대통령선거에 영향을 미칠 목적으로 지역감정을 부추기자고 모의한 것이 도청에 의해 드러난 사건이다. 이 자리에 이규삼 안기부 부산지부장이 함께했다.

이날 비밀회동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을 당선시키기 위해 야당 후보들을 비방하는 내용을 유포시키자는 대화가 오갔다. 이같은 발언은 정주영 국민당 후보 측이 민자당의 치부를 폭로하기 위해 전직 안기부 직원들과 공모하여 도청장치를 몰래 숨겨서 녹음한 것이었다.

‘수지김 사건’으로 가정파탄, 역풍 맞은 ‘초원복집’ 안기부직원 연루
“권력자의 정보기관 사유화” 전문가들 경고…인권유린 실태 심각

결과는 ‘역풍’이었다. 김영삼 후보 측은 이 사건을 음모라고 규정했다. 주류 언론은 관권선거의 부도덕성보다 주거침입에 의한 도청의 비열함을 더 부각시켰다. 영남세력은 더욱 결집했고, 김영삼 전 대통령은 대권을 잡았다.

그리고 5년 후 북풍은 다시 불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당선을 막기 위해 안기부는 또다시 움직였다. 이번에는 북한에서 월북한 오익제라는 인물이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보냈다는 편지가 안기부에 의해 공개됐다. 그리고 김정일이 보낸 선거자금이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전달됐다는 내용의 ‘공작’이었다. 하지만 북풍은 미미했다. 안기부의 조작이 선거의 판세를 뒤집지 못했다. 국민은 더 이상 ‘레드컴플렉스’에 빠져있지 않았다. 


이번 국정원 댓글조작사건을 보더라도 국정원의 선거 개입 논란은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는 문제다. 전문가들은 국정원이 조작을 통해 억지로 여론을 형성하는 가장 큰 원인으로 ‘권력자의 정보기관 사유화’를 꼽고 있다. 실제로 정권이 바뀌면 국정원은 수뇌부뿐 아니라 실·국장급, 과장·계장 등 대부분의 고위 계급들이 대통령의 측근 비선라인으로 바뀐다는 것이다.

국민도 직원도
조작의 희생양

이 때문에 국정원은 매번 중요한 대북정보는 놓치고, 정보기관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지 못했다는 비난을 받아왔다. 오히려 특정세력을 위해 정보를 사용하다보니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인권을 짓밟는다는 우려다. 거기엔 일반 국민뿐만 아니라 조작의 도구로 쓰인 국정원 직원의 인권도 마찬가지라는 경고의 목소리다.

제18대 대선의 중심에 있는 국정원 댓글조작사건은 앞으로 얼마나 세월이 흘러야 진실이 밝혀질지 귀추가 주목된다.

조아라 기자 <archo@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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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