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특별기획] MB정부 출범, 그 이후…③대형 사건·사고 풀스토리

  • 강현석 angeli@ilyosisa.co.kr
  • 등록 2013.02.07 18: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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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저기서 펑펑' 하루도 편한 날 없었다

[일요시사=사회팀] "이보다 더 바쁠 순 없다." 한 경찰 관계자는 MB정부 5년을 평가해달라는 얘기에 이렇게 답했다. 유난히 대형 사건이 많았던 지난 5년. 반드시 짚고 가야 할 몇 가지 중요한 사건을 모아봤다. 


MB정부 5년은 말그대로 다사다난했다. 한 경찰 관계자는 "민주화 정부 출범 이후 MB정부만큼 경찰력이 바삐 돌아간 적이 없었다"며 지난 5년을 회상했다. 그만큼 이번 정부 들어 사건·사고가 많았다는 뜻이다.

항간에서는 MB정부가 '꼼꼼한(?) 정부'로 불리지만 사건·사고 뒷수습에서는 합격점을 줄 수 없다는 게 각계의 중론이다. MB정부의 대형사건 처리가 본격적인 시험대에 오른 건 지난 2008년 소위 '명박산성'으로 대변되는 '촛불정국'이 개시되면서다.

꼼꼼한 그분의
사건·사고 처리

지난 2008년 5월 10대들이 거리로 뛰쳐나왔다. 한·미 쇠고기 협상 결과에 반대하는 촛불 집회 참가자였다. 이들은 인터넷 등을 통해 광우병의 위험을 전해 듣고 친구들과 함께 거리로 뛰쳐나왔다. 이에 정부는 '전교조 배후설' 카드를 꺼내들었다. 집회 참가자 대부분이 10대인만큼 교육 현장에 있는 전교조가 학생들을 선동하지 않았겠냐는 얘기가 청와대 국무회의에서 흘러나왔다.

현장에 있던 학생들은 코웃음을 쳤다. 이와 동시에 촛불은 들불처럼 번져나갔다. 20∼30대 청년층이 서울광장에 결합했고, 아이들 '먹을거리' 걱정에 유모차를 끌고 나온 가정주부가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폭등하는 물가와 불안정한 일자리에 시름하던 직장인들도 촛불 행렬에 대거 합류했다.


치솟는 촛불의 기세가 청와대를 위협하자 이명박 대통령은 대국민 사과를 했다. 하지만 문제가 됐던 쇠고기 위생조건검역 장관고시 강행을 기정사실화했다.

이에 반발한 시민들은 도로를 점거한 채 가두시위에 나섰다. 경찰은 불법시위라며 물대포와 방패를 동원해 이들을 진압했다. 이 과정에서 부상자와 연행자가 속출했다. 경찰의 진압은 연일 과격해졌고 시위대도 이에 맞서 폭력성을 띄었다. 촛불은 어느새 큰 횃불이 됐다.

당시 경찰 수장이었던 어청수 경찰청장은 "(시위 참가자들은) 폭력 시민이기 때문에 강경 진압해야 한다"는 발언으로 물의를 빚었다. 시민들은 '쇠고기 재협상'에서 '이명박 퇴진'으로 구호를 바꿨다. 매일 밤 서울 종로 일대에는 시위대를 진압하기 위한 전·의경과 경찰 호송버스가 진을 쳤다. 정부와 시위대 간 끝을 알 수 없는 '벼랑 끝 대치'는 두 달이 지나서야 정부의 승리로 사실상 막을 내렸다.

정권초기 광우병 촛불 시위로 '전국 들썩들썩'
서울 한복판서 현대사 비극 용산참사 벌어져

그러나 광우병 촛불 시위는 우리나라 집회 풍토를 바꾸는 데 크게 기여했다. 살벌한 죽창을 든 폭력 시위가 아닌 종이컵에 촛불을 든 문화제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준 첫 집회였기 때문이다.

시위 기간 서울 곳곳에서는 흥겨운 노래가락이 퍼졌고, 함께 하는 춤사위가 광장마다 이어졌다. 초기 집회 현장에서 시위대가 비폭력을 외치다보니 경찰력과 직접 맞서기보다는 공권력에 대한 날선 풍자와 유머가 하나의 문화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의 선풍적인 인기도 이 같은 사회지형의 변화를 반영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사회 저명인사들의 반성도 이어졌다. 당시 김지하 시인은 한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온라인을 통해 소통하고 토론하는 새로운 정치집단이 대한민국에 생겨났다" 평한 뒤 "정치권이나 지식인을 비롯한 책임 있는 사람들이 나서서 젊은 세대와의 교감을 더욱 넓히고 많은 대화를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촛불서 놀란 MB

용산서 터트렸다

그러나 촛불이 켜진 광화문 일대를 말없이 바라봤다던 이 대통령은 이때부터 시위대에 대한 적대감을 키웠는지도 모를 일이다. 촛불시위의 트라우마는 끝없이 MB정부를 괴롭혔다. '촛불 정국' 이후 경찰은 '명박산성'과 같은 소극적인(?) 대응을 벗어나 방패를 들고 직접 내리찍는 강경진압을 선택했다.

그리고 곧바로 현대사의 비극인 '용산참사'가 서울 한복판에서 벌어졌다.

2009년 1월 서울 용산4지구 철거민 40여명은 철거가 예정된 남일당 건물을 점거하고 농성에 들어갔다. 그들은 정부의 재개발 정책을 반대하며 생존권 보장을 요구했다. 그러나 그들이 농성에 돌입한 시점부터 비극은 막을 올렸다.

이?날 경찰은 특공대를 동원해 강제진압에 나섰다. 철거민이 올랐던 망루에는 난데없이 불길이 일었다. "여기 사람이 있다"고 외치는 절규와 함께 현장은 불바다로 변했다. 이 불길에 고 이상림씨를 비롯한 철거민 5명, 경찰특공대원 1명이 안타까운 목숨을 잃었다. 전체 부상자는 23명에 달했다.

'용산참사'라는 이름이 붙여진 그날, 김석기 당시 서울경찰청장은 사건에 책임을 지고 자리에서 물러난다는 뜻을 밝혔다. 하지만 김 전 총장의 사퇴로 모든 사건이 해결되는 건 아니었다. '용산참사'는 다시 법정공방으로 이어졌다.

검찰은 용산4지구 철거민 대표 이충연씨 등을 상대로 특수공무집행 방해 치사 혐의를 적용했다. 기소된 이씨 등은 1심에서 모두 4년 이상의 중형을 선고받았다. 민변 등의 사민·시회단체는 검찰의 기소내용을 반박하며 "화재 원인으로 지목된 화염병을 농성자가 던진 걸 본 사람이 아무도 없고, 경찰 측에도 진압 과정에서 주의의무 위반이 있었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결국 대법원은 2010년 11월 기소된 철거민들에 대해 유죄를 확정했다.

이씨 등이 수감된 후 이씨 가족과 철거민 유가족들은 매해 '용산참사 추모제'를 열었다. 사고가 발생한 용산4구역 재개발은 참사 발생 4년이 지나도록 답보 상태다. 비록 최근 용산참사 수감자들이 설 특별사면으로 풀려나긴 했지만 용산참사 진상규명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어 공은 박근혜 정부로 넘어간 상황이다.

극심한 좌우분열
천안함 사건터져

용산참사가 벌어진 해와 같은 해인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나고 뒤이어 김대중 전 대통령도 서거하면서 우리나라는 극심한 좌우 분열을 겪게 된다. 해방 공간 이후 최대의 갈등 국면에 접어든 2010년. 북한발 대형 사고가 터졌다.

소위 '천안함 침몰 사건'이라 불리는 이 대형 국가재난은 당시 정치 상황과 맞물려 정국을 뒤흔드는 핵심 변수로 급부상했다. 같은 사안을 놓고 각기 다른 해석이 우후죽순처럼 불거졌고, 진보와 보수로 나뉜 정치적 입장은 '천안함 침몰 사건'에 대한 진실을 상호 왜곡하는 결과를 낳았다.


2010년 3월. 인천 백령도 근처 해상에서 대한민국 해군 초계함 PCC-772(천안함)가 침몰했다. 정부는 이 사건을 '천안함 피격 사건'이라 지칭했다. 국방부는 "북한 정찰총국이 우리나라 초계함을 침몰시켰다"고 브리핑했다.

당시 천안함에 탑승하고 있던 104명의 군인 중 58명은 구조됐으나 나머지 46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모두 사망자로 확인됐다. 더불어 수색과정에서 UDT 대원인 한주호 해군준위가 작업 중 순직했다. 뿐만 아니라 천안함 실종자 수색 작업을 하던 '금양98호' 역시 인천 서해 부근에서 침몰해 탑승 선원 9명 전원이 실종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천안함 침몰 사건'으로 인한 사망자는 점점 늘어났다.

논란도 점차 확대됐다. 대한민국을 포함한 미국, 영국, 스웨덴 등의 국제 전문가 24명이 포함된 '천안함 합동조사단'은 "천안함이 북한의 어뢰공격으로 침몰한 것"이라고 공식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국제사회는 북한의 천안함 공격을 규탄하는 의장성명을 채택했다.

하지만 합동조사단의 발표를 반박하는 증거 자료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잠수함의 이동 경로에 대한 설명이 불충분하다는 지적부터 어뢰가 북한 것이 아니라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이에 이 대통령은 "대한민국에 살면서 북한 소행이 아니라고 믿는 것은 정말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의혹 제기에 대해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당시 북한은 사고 지점에 암초가 많다는 점을 근거로 스스로 좌초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처럼 천안함 침몰 원인을 놓고 수많은 의혹이 제기됐으나 결론은 '피격설'로 마무리됐다. 남북 간의 긴장은 고조됐으며, 대한민국 안에서도 합동조사단의 조사결과를 부정하는 글을 쓴 시민이 국정원으로부터 내사를 받는 등 이른바 '용공 논란'이 점화됐다.

이에 대해 천안함 조사 의혹을 제기한 이승헌 버지니아대학교 교수는 "정부의 천안함 발표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이 고소됐다"며 "이것은 현재 우리 사회가 합리적인 사회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줄 뿐이다"고 비판했다.



천안함·연평도 도발 초긴장
연쇄살인·아동성폭행 잇달아

'천안함 사건'으로부터 8개월 후 북한은 '연평도 도발'을 통해 또 한 번 대한민국의 안보를 건드렸다. 2010년 11월 북한은 대한민국의 영토인 연평도에 예고 없는 집중 포격을 가했다.

북한이 대한민국 영토를 직접 타격하여 민간인이 사망한 건 한국전쟁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대한민국은 보복 사격을 했고 이 사건은 국제사회의 큰 관심을 불러 모았다. 남북 간의 갈등은 더욱 심화됐다.

남북 간의 기류가 심상치 않자 언론은 좌우 갈등이 극명한 민감한 이슈보다는 살인·성폭행과 같은 자극적인 이슈에 천착한다. 괜한 걸 건드렸다가 이해당사자로부터 고소를 당하거나 정부기관으로부터 내사를 받는 것에 비해 강력 사건은 비교적 안전한(?) 이슈로 분류됐기 때문이다.

이 같은 경향은 지난 2009년 용산참사 이후 "'강호순 사건'을 활용해 여론을 반전하라"고 지시한 청와대발 메일로 한 차례 드러난 적이 있다. 그러나 MB정부 들어 흉악범들이 기승을 부린 건 사실. 그 첫 시작은 지난 2008년 조두순이었다.

2008년 12월. 조두순은 초등학생 A양을 납치·성폭행했다. '조두순 사건'으로 알려진 이 범죄로 피해자 A양은 생식기와 내장 대부분이 파열되는 치명적인 내상을 입었다. 조두순은 대법원으로부터 징역 12년형을 선고 받았는데 이 '조두순 사건'을 계기로 정부는 아동성범죄에 대한 형량을 최대 50년까지 상향 조정하고 공소 시효도 폐지하기로 하는 법안을 입법했다.

2009년 12월. 정부와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이 주도한 아동성범죄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한 후 3개월도 되지 않아 '김길태 사건'이 또 한 번 세상을 놀라게 했다. 2010년 2월, 김길태는 예비 중학생인 한 아이를 납치·성폭행·살해하고 그 시신을 유기했다. 범죄의 심각성을 느낀 경찰은 6년 만에 피의자 신상을 공개하는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하지만 범죄 예방 효과는 없었다. 아동과 여성을 대상으로 한 흉악범죄는 더 잔인한 성격을 띠게 됐다.

2011년 4월. 늘어나는 성폭행 사건에 대한 국민의 우려가 커지자 법무부는 모든 성범죄자들의 신상을 인터넷에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신상공개도 희대의 살인마 오원춘의 범행을 막진 못했다.

2012년 4월. 오원춘은 20대 여성 B씨를 집으로 납치한 뒤 강간을 시도했으나 실패, 이후 목 졸라 살해한 뒤 그 시신을 토막 냈다. 범행의 잔혹함이 가져다주는 충격도 컸지만 경찰의 늦장 대응은 당시 범국민적인 분노를 촉발했다. 이 사건으로 조현오 경찰청장은 스스로 옷을 벗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죽은 이가 돌아오는 건 아니었다.

유족들은 오원춘 사형 판결을 목 놓아 기다렸다. 많은 국민도 오원춘의 사형을 바랬다. 하지만 오원춘은 대법원 선고공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다. 현재는 오원춘 사건으로 인해 사형수들에 대한 형 집행이 요구되고 있는 실정이다.

천안함 정국 이후
성폭행 보도 봇물

실질적인 사형 폐지국으로 분류됐던 대한민국은 이제 다시 '사형'을 부르짖는 상황에 놓여 있다. 천안함 사건을 계기로 남·북 관계는 급속도로 냉각됐다. 금강산 관광은 언제 재개될지 알 수 없다. 용산 참사 진실규명은 아직도 멀어 보이며, 전국에서는 철거민과 개발업자들의 실랑이가 끊이지 않고 있다. 쇠고기 협상으로 물꼬를 튼 한·미 FTA가 2011년 체결됐지만 정부가 약속한 체감 경제 이득은 전무하다. 먼 미래의 누군가는 아마 MB정부를 '잃어버린 5년'이라고 평가할지도 모르겠다.

 

강현석 기자<kangeli@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지난 5년간 재난·재해

▲08년 02월 숭례문 방화사건 (사망 없음)
  08년 12월 이천 물류창고 화재 사고 (사망 8명)
▲09년 02월 화왕산 억새태우기 사고 (사망 6명)
  09년 11월 부산 실내사격장 화재 사고 (사망 10명)
▲10년 01월 한국 중부 폭설 (사망 1명·피해 106억)
  10년 11월 포항 요양원 화재 참사 (사망 10명)
▲11년 4월 구제역 파동 (사상 36명·피해 2000억)
  11년 7월 한국 중부 집중호우 (사망·실종 71명)
▲12년 5월 부산 노래방 화재 사고 (사망 9명)
  12년 8월 태풍 볼라벤 상륙 (사망·실종 25명·피해 800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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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창행 김건희’ 아직 남은 의혹들

‘철창행 김건희’ 아직 남은 의혹들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논란과 문제가 끊이지 않던 퍼스트레이디가 결국 구속됐다. 김건희 여사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검찰총장 인사청문회부터 사사건건 발목을 잡던 의혹으로 최초로 구속된 영부인이 됐다. 김 여사의 구속 기간인 20일 동안 김건희 특검팀은 남은 수사에 박차를 가한다는 계획이다. 법원이 지난 13일, 김건희 여사에 대한 구속영장을 전격 발부하면서 최초로 전직 대통령 부부가 모두 구속되는 헌정사상 초유의 일이 발생했다. 대통령보다 힘이 세던 V0이 몰락한 셈이다. 주요 의혹인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명태균 공천 개입’ ‘건진법사·통일교 현안 청탁’ 등으로 김 여사 구속에 성공한 김건희 특검팀은 남은 의혹에 대한 수사에도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 “증거인멸 도주 우려” 이날 법조계에 따르면, 김 여사는 구속영장이 발부되면서 정식 구치소 입소 절차를 거쳤다. 이름과 주민등록번호·주소 등 인적 사항을 확인한 후 일반 수용자와 마찬가지로 정밀 신체검사를 진행한다. 이는 마약 등 반입 금지 물품을 지니고 들어왔는지 등을 확인하는 절차다. 왼쪽 가슴 부분에 수용자 번호가 있는 미결수용 수용복으로 갈아 입고, 얼굴 사진인 ‘머그샷’을 촬영한다. 또 지문 채취와 구치소 내 규율 등 생활 안내, 건강 검진도 받게 된다. 이후 세면 도구와 모포, 식기 세트 등을 받아 본인 ‘감방’으로 향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으로) 영부인 신분이 아닌 만큼 일반 수용자와 똑같은 대우를 받는다”는 게 법무부 측 설명이다. 김 여사는 앞서 수감된 윤 전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독거실에 수용될 전망이다. 크기는 구인 피의자 대기실과 비슷하며 매트리스와 책상 겸 밥상, 관물대, TV 등이 비치돼있다. 끼니도 구치소에서 제공하는 1700원짜리 음식으로 해결해야 한다. 식사와 목욕도 일반 수용자와 같은 절차에 따르지만, 보안상 다른 수용자와의 동선이 겹치지 않도록 조정될 것으로 보인다. 김건희 특검팀(특별검사 민중기)은 지난 7일, 김 여사에 대한 사전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특검은 법원에 22쪽 분량의 구속영장 청구서와 함께 848쪽 분량의 의견서를 제출했다. 구속 의견서에는 ▲지난 4월4일 윤 전 대통령 파면 직후 김 여사가 휴대전화를 교체한 사실 ▲탄핵 인용 전 코바나컨텐츠 사무실에 있는 노트북을 포맷한 사실 ▲김 여사의 ‘문고리’로 불리던 유경옥·정지원 전 대통령실 행정관이 휴대전화를 초기화한 사실 등이 적시됐다. 특검은 ▲김 여사가 지난 6일 조사 과정에서 자신의 혐의를 전면 부인한 점 ▲김 여사의 진술이 계속 바뀌는 점 ▲압수된 휴대전화의 비밀번호를 알려주지 않는 등 수사에 비협조적인 점 ▲전 대통령실 행정관 등 최측근과 말 맞추기를 시도할 우려가 있다는 점 등을 들어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김 여사가 건강상 이유로 입원할 경우 수사에 불응할 가능성이 있다며 구속 사유에 ‘도주 우려’를 포함했다. 영장실질심사에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수사를 주도했던 한문혁 부장검사 등 8명이, 김 여사 측에선 유정화·채명성·최지우 변호사가 참여했다. 김 여사 측은 이날 약 80페이지 분량의 자료를 준비했으며 특검도 구속 수사의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약 3시간 분량의 프리젠테이션(PT)을 진행했으나 법원은 특검의 손을 들어줬다. 특검팀이 처음 주목한 의혹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이른바 명태균 게이트로 불리는 ‘명태균 공천 개입’ 건진 게이트로 불리는 ‘건진법사·통일교 현안 청탁 의혹’이다. 특검팀은 이를 848쪽의 구속 의견서에 담았다. 최초 전직 대통령 부부 구속 의견서엔 구체적 사실 적시 구체적으로 김 여사가 지난 2010년 10월부터 2012년 12월까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범행에 가담한 공범이라고 판단하며 불법 거래 횟수가 총 3822회에 달한다고 적시했다. 특검은 김 여사가 주가조작으로 수익 8억1144만3596원을 얻어내기 위해 70만2512주를 권오수 전 도이치모터스 회장 등과 공모해 통정매매 188회, 가장매매 12회를 했다고 판단했다. 또 같은 기간 주가를 올리려는 목적으로 높은 값에 사는 척하는 고가 매수 주문 1661회, 주가를 내리려는 목적으로 많은 양의 주식을 파는 척하는 물량 소진 주문 1432회, 허수 매수 주문 367회, 시가·종가 관여 주문 242회 등의 이상매매 주문을 김 여사가 권 전 회장 등과 공모해 제출했다고 봤다. 4년 넘게 김 여사의 주가조작 연루 의혹을 수사했던 서울중앙지검은 지난해 10월 “김 여사가 주가조작을 인식했다고 볼 증거가 없다”며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김 여사의 계좌가 주가조작에는 이용됐지만 범행을 알았다는 증거가 없었다는 취지라며 주가조작 공모와 방조 모두 무혐의로 판단했다. 하지만 특검은 보강 수사를 거쳐 방조 혐의를 넘어 공범 혐의를 적용했다. 특검은 2011년 1월경 김 여사가 미래에셋증권 직원과 통화하면서 “6대 4로 나누면 저쪽에 얼마를 줘야 하는 것이냐”며 “2억7000만원을 줘야 하는 것 같다”고 말한 통화 녹취록을 확보해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여사가 통화 당일 은행 계좌에서 2억7000만원을 수표로 인출한 사실도 확인했다. 이에 특검은 김 여사가 주가조작 주도 세력인 ‘저쪽’에 수익 40%를 떼어줬다고 판단하고 “시세조종이라는 교묘한 수법을 동원해 재산상 이득을 취했다”고 적시했다. 특검은 정치 브로커 명태균씨 관련 공천 개입 의혹과 건진법사 전성배씨 관련 통일교 현안 청탁 의혹 등에 대해선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가 공적 지위를 사적으로 활용한 사건”이라고 판단했다. 특검은 “헌법적 가치가 훼손됐다”고 여러 차례 강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검은 윤 전 대통령 부부가 명씨로부터 여론조사를 무상으로 제공받고 공천에 개입했다는 의혹에 대해 ‘정당의 후보자 추천 제도에 정치권력과 금권이 개입한 사건’으로 규정하며 “선거제도의 출발점인 공천의 공정성을 훼손하면서 정당의 후보자 추천 제도를 포함한 대한민국의 헌법적 가치를 침해했다”고 영장에 적시했다. 또 윤모 전 통일교 세계본부장으로부터 샤넬 백 2개와 영국 그라프사의 다이아몬드 목걸이 등 총 8000여만원의 금품을 전씨를 통해 전달받은 뒤 통일교 현안 청탁을 받았다는 의혹에 대해선 김 여사 구속영장을 통해 “종교와 정치가 분리돼야 한다는 헌법 정신에 어긋나는 일을 하면서 국정 질서에 혼란을 초래했다”고 규정했다. 848쪽 의견서 특검은 통일교의 캄보디아 메콩강 부지 개발 등 공적개발원조(ODA) 사업 지원 청탁에 대해선 “김 여사가 대한민국 정부의 조직과 예산에 대한 사적 개입으로 국정 질서에 혼란을 초래했다”고 밝혔다. 특검팀이 밝혀낸 3가지 의혹의 주요한 사실과 더불어 제시한 ‘증거인멸 정황’이 김 여사에 대한 구속영장 발부에 결정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특검은 반클리프 앤 아펠 목걸이를 구매해 김 여사에게 교부한 혐의를 받는 이봉관 서희건설 회장으로부터 전날 제출받은 자수서와 반클리프 앤 아펠 목걸이 진품, 김 여사의 친오빠 진우씨의 장모 자택에서 압수한 목걸이 가품을 영장실질심사에서 제시했다. 이 회장은 자수서에서 “대선이 치러진 2022년 3월 직후 비서실장을 통해 반클리프 앤 아펠 목걸이를 구입해 김 여사에게 전달했고 다시 돌려받았다”고 밝혔다. 특검에 따르면 김 여사가 이 회장 측에 진품을 돌려준 시기는 2022년 6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순방 이후 재산 미등록 의혹 관련 고발장이 제출된 2022년 9월 이후인 것으로 확인됐다. 김건희 특검팀이 수사하고 있는 의혹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삼부토건 주가조작 사건 ▲코바나컨텐츠 뇌물성 협찬 사건 ▲명품 가방 수수 사건 ▲명태균·건진법사 등 민간인이 국정에 관여한 국정 농단 사건 ▲인사 개입 사건 ▲채해병 사건 및 세관 마약 사건 구명 로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개입 ▲제8회 전국동시지방 선거 개입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개입 ▲명태균 등을 통해 제20대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불법 여론조사 등 총 16가지다. 이 외에도 ▲무상 여론조사 제공 대가로 2022년 재보궐선거 공천 거래 등 선거 개입 ▲서울-양평고속도로 노선 변경 및 양평 공흥지구 인허가 과정 개입 ▲대통령 집무실 이전 및 국가 계약에 개입 ▲국가기밀정보 유출 ▲제1호부터 제15호까지의 사건과 이 사건의 수사 과정에서 인지된 관련 사건 및 특별검사의 수사에 대한 방해 행위 등이다. 특검팀은 의혹의 정점인 김 여사의 신병을 확보함에 따라 최장 20일간의 구속 기간 동안 아직 풀리지 않은 사건들에 대한 수사에 속도를 낼 예정이다. 대부분의 의혹이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명태균·건진법사 게이트와 관련된 사건으로, 특검팀은 관련된 사실을 대부분 확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들통난 거짓말 이에 특검팀은 출범 이후 인지한 사건인 ‘집사 게이트’와 관련해 수사력을 모을 것으로 관측된다. 특히 베트남에서 귀국한 ‘김 여사 일가의 집사’ 김예성씨의 신병을 확보함에 따라 향후 수사에도 탄력이 붙을 것으로 보인다. 김씨를 중심으로 IMS모빌리티(구 비마이카)에 대가·보험성 투자 혐의가 의심되는 기업들과 김 여사 일가의 사금고 의혹을 받는 신안저축은행, 그리고 김 여사가 운영해 온 코바나콘텐츠가 개최한 전시회 뇌물 협찬 기업들로 수사가 확대될지도 주목된다. 우선 특검팀은 이번 김 여사의 구속영장 청구에서 배제됐던 ‘반클리프 앤 아펠 목걸이’ 의혹에 대한 수사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6000만원대로 알려진 해당 목걸이는 2022년 6월 윤 전 대통령 부부가 나토 정상회의 참석 차 유럽 순방 당시 착용했다가 재산 신고 누락 논란의 중심에 섰던 바 있다. 목걸이의 행방을 추적해 왔던 특검팀은 최근 김 여사의 오빠인 김진우씨의 장모집에서 해당 목걸이를 확보했지만 감정 결과 모조품인 것으로 확인됐다. 김 여사 역시 해당 목걸이에 대해 모친인 최은순씨에게 선물하기 위해 2010년쯤 홍콩에서 구매한 200만원대 모조품이라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특검팀이 최근 서희건설 측으로부터 윤 전 대통령 당선 직후 ‘김 여사에게 반클리프 스노 플레이크 목걸이의 진품을 직접 건넸다’는 취지의 자수서를 확보하면서 수사는 전환점을 맞이했다. 윤 전 대통령 당선 직후 해당 목걸이를 선물했으며, 몇 년 뒤 김 여사 측으로부터 돌려받아 보관해 왔다는 게 서희건설 측의 설명이다. 서희건설 측은 해당 목걸이 실물도 특검팀에 제출했다. 특검팀 관계자는 “김 여사는 서희건설 측으로부터 목걸이 진품을 교부받아 나토 순방 당시 착용한 게 분명함에도 특검 수사 과정에서 자신이 착용한 제품이 20년 전 홍콩에서 구매한 가품이라고 진술하고 김 여사 오빠 인척집 압수수색 과정에서 이와 동일한 모델인 가품이 발견된 경위에 대해 철저히 수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김 여사를 비롯한 모든 관련자를 수사 방해 및 증거인멸 혐의에 대해 명확히 규명하겠다”고 말했다. 그동안 받은 귀중품 수사 확대 집사 게이트·관저 이전 의혹도 특검팀은 조만간 이봉관 서희건설 회장과 비서실장 최모씨 등을 소환 조사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 인척집에서 최소 3000만원 이상의 바셰론 콘스탄틴 여성용 시계 보증서가 발견된 것과 관련해서도 김 여사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 혐의로 수사 중이다. 해당 시계를 구매한 사업가 서모씨는 최근 특검팀 조사에서 지난 2022년, 윤 전 대통령 취임 뒤 김 여사의 부탁을 받아 같은 해 9월7일쯤 자신이 구매한 뒤 직접 전달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시계 구매 자금 중 일부는 김 여사 측으로부터 받았다는 입장이다. 같은 해 9월 대통령경호처와 1870만원 상당의 로봇개 경호 시범 사업 계약을 맺기도 했다. ‘집사 게이트’와 관련해서는 핵심 키맨인 김씨가 베트남 호찌민에서 귀국하자마자 특검팀은 인천공항에서 체포해 특검 사무실로 압송해 즉시 조사에 착수했다. 김씨의 체포 기한이 영장 집행 기준 48시간 이내이기 때문에 특검팀은 그 안에 수사를 마치고 구속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김씨 역시 특검에 적극 협조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상태다. 특검팀은 김씨를 상대로 집사 게이트에 연루된 기업들의 184억원 투자 경위와 46억원의 행방 그리고 코바나콘텐츠 뇌물 협찬 의혹을 집중 추궁할 것으로 예상된다. 김씨가 운영한 렌터카 플랫폼 사이드스탭 ‘뿅카’는 비마이카와 함께 2015~2019년 코바나콘텐츠가 개최한 4개 전시회 협찬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또 카카오모빌리티와 HS효성 등은 물론 신안저축은행을 대상으로 특검팀의 수사가 확대될지도 주목된다. 특검팀은 카카오모빌리티와 HS효성 등이 IMS모빌리티에 거액을 투자하기 전후로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조사받은 것에 주목하고 있다. 이에 지난 11일, 관련 자료 제출 요구를 위한 정부세종청사 공정위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집행하기도 했다. 김 여사 일가가 운영하는 이에스아이엔디(ESI&D) 등에 130억원이 넘는 대출을 해준 것으로 알려져 사금고 논란이 제기된 바 있는 신안저축은행은 코바나콘텐츠 전시회에도 협찬했다. 신안그룹 회장 차남인 박지호(개명 전 박상훈) 전 신안저축은행 대표는 2010년 서울대 최고경영자과정(EMBA)에서 김 여사와 김씨를 처음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인연이 이어져 2013년 3월 신안저축은행의 각종 불법 대출 혐의가 불기소 처분된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당시 수사를 지휘한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 부장검사가 바로 윤 전 대통령이었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김씨는 박 전 대표의 집사 역할을 했다는 의혹도 있다. 박 전 대표는 신안저축은행이 2017년 김씨와 모친 최은순씨의 329억원대 허위 잔고 증명서 사건의 피해자였음에도 이듬해 김씨를 계열사인 바로투자증권(현 카카오페이증권) 임원으로 선임했다. 특검팀 과제는? 특검팀은 관저 이전 특혜 의혹에 관한 수사도 본격화했다. 이들은 지난 13일 “관저 이전과 관련해 21그램 등 관련 회사 및 관련자 주거지 등에 대해 건설산업기본법 위반 등 혐의로 압수수색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검팀이 관저 이전 문제에 대한 강제수사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관저 이전 특혜 의혹은 윤 전 대통령 취임 후 대통령실과 관저 이전·증축 과정에서 21그램 등 무자격 업체가 공사에 참여하는 등 실정법 위반이 있었다는 게 핵심이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