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촌 비망록' 출간설 실체

  • 강현석 angeli@ilyosisa.co.kr
  • 등록 2013.01.25 09:4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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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기업인·연예인…'형님수첩' 열면 여럿 다친다!

[일요시사=사회팀] '주먹계 거물' 고 김태촌씨가 지난 5일 생을 마감하면서 '김태촌 비망록' 존재 여부에 시선이 쏠리고 있다. <일요시사>는 김씨의 생전 인터뷰를 통해 비망록 출간 의지를 확인한 바 있다. 당시 김씨는 초대형 폭로가 담긴 '판도라의 상자'가 될 것이라고 큰소리 쳤다. 그렇다면 김씨의 비망록에는 어떤 내용이 담길까.

"내가 입 열면 여럿 다쳐!"

범서방파 두목, 고 김태촌씨가 지난해 1월 <일요시사>와의 병상 인터뷰 도중 꺼낸 말이다. 서울 종로구 혜화동 서울대병원에서 '최양석'이라는 가명을 사용하며 투병 중이던 김씨는 인터뷰 후 본지 기자에게 '비망록'의 존재를 털어놨다.

할 말 많은데
누군가 죽는다

고인이 된 김씨는 80년대 '양은이파' 조양은, 'OB파' 이동재와 함께 '어둠의 세계'를 호령했던 인물이다. 6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가 받은 형은 모두 33년 6개월. 인생의 절반 이상을 감옥에서 보냈지만 그가 감옥 밖에서 쌓은 인맥은 결코 호락호락한 것이 아니었다.

1974년 상경해 이듬해부터 본격적인 전국구 조폭 생활을 시작한 김씨는 1976년 5월 '신민당 전당대회 난입사건'에 관여하며 신민당으로부터 중앙당 노동부 차장이라는 직함을 받았다. 당시 김씨는 신민당 의원이자 당 총재 후보였던 이철승 의원의 사주를 받고 신민당 전당대회에 개입해 폭력을 행사하는 등 '정치깡패'로 악명을 떨쳤다.


'5월 전당대회'의 또 다른 총재 후보였던 김영삼 전 대통령(당시 후보)은 박정희 정권으로부터 감시와 협박을 받고 있었는데 이때 김씨 조직을 실질적으로 움직인 배후가 청와대의 차지철 경호실장이라는 얘기도 있었다. 난입사건을 빌미로 깡패들을 동원해 김 전 대통령을 제거하려했지만 김 전 대통령이 김씨를 피해 총재실 밖으로 뛰어내리는 바람에 '거사'를 이루지 못했다는 증언도 김씨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김씨가 직접 몇몇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듯 '행동대장'이던 그는 난입사건 전부터 국회의원의 사위, 정계 로비스트 등을 '형님'으로 모시고 있었다. 난입사건 이후 김씨는 '서방파'라는 이름의 독자 세력을 구축했고 나이트클럽 등 유흥업소를 운영하며 연예계 쪽과도 교류했다. 이처럼 정계의 내로라하는 '형님'들과 연예계 '아우'들을 거느린 김씨는 서울 중구 소공동과 명동을 중심으로 점차 세력을 넓혔다.

유신정권이 끝나고 전두환 정권이 들어선 1980년 7월. 김씨는 폭력·공갈·범죄단체조직 등의 혐의로 군법회의에 회부됐다. 1심에서 징역 15년을 선고받은 김씨는 항소심에서 징역 5년으로 형이 감경됐다. 정계뿐 아니라 검·경과도 인연이 깊었던 김씨는 고위 공직자들을 회유하는 한편 측근들을 통해 검찰 쪽 인맥을 뚫었다.

김씨 출감 이후 서울 한강 고수부지에서 열린 '새마을 축구대회'에는 서울고검 P모 부장검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때 P검사와 함께 김씨에게 돈봉투를 건넨 인물은 당시 전두환 전 대통령의 친동생 전경환 전 새마을운동 중앙본부장이었다. 이후 P검사는 김씨와의 부적절한 커넥션이 드러나 옷을 벗었다.

본지와 병상 인터뷰 당시 출간 의지 드러내
생전 "꼭 책 낸다" 장담…측근도 일부 인정

김씨는 재계에도 발을 걸쳤다. 1986년 3월 프로야구 청보 핀토스 구단주 K씨와 나란히 앉아 야구 경기를 관람했다는 일화는 지금까지 회자되며, 김씨 조직인 범서방파에 대기업 회장인 K씨가 5공 시절부터 각별한 관심을 보였다는 소문도 재계에 파다하다.

이밖에도 김씨를 둘러싼 여러 소문들은 그의 사후에도 꼬리를 물고 있다. 한편에서는 김씨에 대해 "언론이 만들어낸 신화"라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지만 "그의 사회적 영향력이 상당했다"는 것에 대해서는 대체로 이견이 없는 분위기다.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김씨는 "만약 내가 죽으면 일대기의 형태로 이 모든 것을 공개할 생각이다. (비망록을) 지인들을 통해 집필하고 있다"고 전했었다. 김씨가 병석에서 지난 사건들을 술회하면 지인들이 메모를 해 책으로 엮어내는 형식이다.

김씨 생애와 관련 이미 언론에 알려진 내용도 많기 때문에 그가 준비했던 비망록은 알려지지 않은 사건에 대한 숨겨진 이야기가 담길 것으로 기대를 모았었다.

일례로 김씨가 지난 1985년 인천 뉴송도 호텔 나이트클럽 사장으로 있던 시절, 유명 연예인들이 출연료도 받지 않고 무대에 섰던 이유가 비망록을 통해 밝혀지는 것이다.

김씨 주변인의 실명이 그대로 노출될지 여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지만 만약 김씨가 일대기를 통해 새로운 '검은 커넥션'을 공개한다면 그 칼끝은 가장 먼저 연예계로 향한다는 것이 한 조직원의 설명이다.

김씨와 유착 관계에 있던 '형님' 정치인들 대부분이 현역을 은퇴한 '죽은 권력'인만큼 김씨와 거의 비슷한 시기에 활동하거나 김씨 후배들과 사업상으로 묶여 있는 연예계 실력자들이 새롭게 부각될 것이라는 해석이다.

이와 관련 한 익명의 조직원은 "연예인들과 건달은 서로 친할 수밖에 없다"면서 "옛날에는 우리들이 연예인들 뒤봐주고 그랬다"고 말했다.

조폭이 뒤봐주고
권력은 이용하고

현재와 같은 거대 연예매니지먼트사가 설립되기 전 조폭들은 연예인과 직접 계약을 맺거나 스케줄 매니저를 조직원으로 관리하는 수법을 통해 연예계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특히 뜨는 여자 연예인의 경우는 조폭들의 집중관리 대상이 됐다. 김씨가 활동했던 70년대 무렵 당대의 스타였던 K씨는 김씨 조직과 공생관계에 있었다고 한 관계자는 전했다.

유신정권 때부터 K씨를 포함한 숱한 여자 연예인들은 권력기관의 고위 관계자(대부분 남성)와 부적절한 관계에 놓여 있었는데 그 중간 연락책이 바로 조폭이었다. 권력기관은 비선라인을 통해 조폭에게 연락을 취하고, 조폭은 고위 관계자가 찾는 여자 연예인을 물색해 만남을 주선하는 식이다.

이 같은 관행은 요정 등에서 빈번하게 벌어졌는데 취재 기자들의 접근을 막거나 정보 보안을 유지하는 건 늘 조폭의 몫이었다. 그리고 조폭이 지키는 밀실 안에서는 사회 고위층과 유명 연예인의 끈적한 관계가 맺어졌다.

이처럼 정·관계 고위 인사는 성욕을 채우고, 연예인은 사회 상류층으로 이어지는 실크로드를 붙잡게 되는 거래가 뒷세계에서는 공공연히 일어났다. 그리고 이 모든 거래는 중간브로커인 조폭의 입막음 하에 벌어졌다. 이들은 침묵의 대가로 권력의 비호를 받았다.


유신정권이 막을 내리고 서울 도처에 나이트클럽이 성행한 뒤에는 조폭들이 '권력'보다는 '돈'을 취하는 일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됐다.

세력 간의 이권 다툼이 끊이지 않았던 80년대. 큼직한 조직들은 자신들이 관리하는 클럽에 유명 연예인을 세우기 위해 서로 이전투구를 벌였다. 업소마다 연예인 섭외를 위한 담당 연락책이 있었고 이들은 저마다 조직의 이름을 앞세워 연예인 출연을 종용했다.

또 지역 장터나 축제와 같은 이권이 개입된 행사에는 여지없이 조폭이 개입했다. 지역의 작은 조폭이지만 중앙의 '큰 형님'들과도 연락이 가능했던 지역 보스들은 서울에 전화를 걸어 "나 00형님 동생인데, 트로트 가수 누구누구를 불러 달라"고 부탁한 뒤 실제 연예인이 오면 행사를 준비한 업체로부터 관례적인 뒷돈을 챙겨 받았다.

많은 트로트 가수들이 조폭과 남다른 유착을 보이는 건 지역 행사 수입이 쏠쏠한 그들의 스케줄과 무관하지 않다. 지난 6일 김씨의 빈소가 차려진 서울 아산병원에는 가수 L씨 등 트로트 가수의 화환이 줄을 이었다.

노태우 정권이 추진한 '범죄와의 전쟁' 이후 범서방파를 포함한 국내 3대 조직원 일부는 합법적인 연예산업에 뛰어들었다. 이들과 형·동생하는 사이로 알려진 K씨는 걸그룹을 포함한 유명 아이돌을 여럿 발굴하며 2000년대 업계의 큰 손으로 자리매김했다. 뿐만 아니라 지난해 조폭으로부터 피습당한 E씨도 조폭과의 커넥션이 끊이지 않았던 인물이다. E씨 역시 젊은 조직원들로부터 '형님'이라는 칭호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외형적으로는 거대 매니지먼트사가 연예시장을 잠식하면서 '주먹'들의 조직적인 영향력은 과거에 비해 현저히 줄어들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지난 2004년 범서방파 출신 사업가 N씨가 검찰에 구속됐을 당시 개그맨 L씨, 가수 K씨 등이 법원에 탄원서를 제출한 사례에서 보듯 개인과 개인 간의 '검은 커넥션'은 아직 유효하다.

비망록 칼날
연예계 조준


개인 사업자 형태의 '연예인 브로커' 행위도 아직 건재하다. 단골고객이 정·관계 인사에서 재계 인사로 바뀌었다는 점 외에는 지금도 암암리에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

지난해 익명을 요구한 한 브로커는 '연예인 스폰서' 존재에 대해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재벌 3세 A씨가 발라드 가수인 B씨와 만나다가 비서진을 통해 걸그룹 멤버 C씨와의 또 다른 만남을 요구했었다"며 "이들의 만남은 고급 가라오케나 호텔 스위트룸에서 즉흥적으로 이뤄진다"고 주장했다. 재벌과 연예인의 만남을 개인 브로커가 주선한다는 것.

또 이 브로커는 "예나 지금이나 연예인 브로커 중에서는 조폭 출신이 많고, 이들이 조직 쪽에 흘리는 정보가 조폭들 입장에서는 좋은 먹잇감이기 때문에 악어와 악어새 같은 구도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같은 뒷세계 생리를 잘 아는 김씨는 건강이 악화된 후에도 자신의 후배들을 통해 은밀한 정보를 모아온 온 것으로 전해졌다. 조폭이 입수하는 고급 정보들은 위기 상황에서 자신을 지켜주는 무기가 되기 때문이다.

8년 전 조직폭력계를 떠난 한 전직 '주먹'은 "이 바닥은 엘리베이터로 일찍 뜬 만큼 일찍 간다(죽는다)"면서 "김씨처럼 라인을 잘 타 이쪽저쪽 다 막아두지 않으면 아무리 떠도 죽는 건 금방"이라고 먼저 운을 띄었다.

이어 "김씨는 내 직계 선배는 아니지만 사람을 잘 부렸던 것으로 알고 있으며, 조폭 생활이란 건 결국 밑에 애들 일 잘 시키고, 돈 좀 있고 힘 잘 쓰는 스폰서를 잡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덧붙여 "그 정도 위치쯤 되면 겉으로는 아무리 개과천선 했다고 하더라도 뒤로는 밑에 애들 만나서 사업 얘기도 하고, 잘 나갈 때 텄던 라인들을 통해 윗선의 정보도 듣고, 그러면서 알게 모르게 주변에서 청탁도 많이 받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만약 죽으면 모든 비밀 공개" 병석서 일대기 형태 집필 확인
각계 유명인사들과 친분, 부적절한 관계 폭로할까 "후폭풍 만만치 않을 듯"

실제 김씨는 전성기를 구가하던 때 서울시경으로부터 폭력배 단속 계획을 가장 먼저 입수할 정도로 정보전에 능했다. 살면서 그가 받았던 각종 청탁과 그 대가로 교환했던 정보들만 나열해도 사회적 파장이 클 것이라는 경찰 관계자의 증언도 있었다.

'머리 쓰는 조폭'이었던 그는 은퇴 후 자신의 후견인으로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조용기 목사를 선택하면서 로얄 인맥에 방점을 찍기도 했다.

조 목사와 김씨의 친분이 남달랐던 만큼 김씨가 직접 작성한 '비망록'의 칼끝이 종교계로 향할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하지만 생전 김씨가 조 목사와의 친분을 자랑스러워했고 본인의 일대기를 쓰는 것에도 비상한 관심이 있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김씨가 조 목사와의 관계를 언급하지 않고 비망록을 작성할 수는 없을 것으로 관측된다.

지난해까지 김씨는 대외적으로 몸을 사리는 모습을 보였다. 김씨는 "정치인이나 검찰, 경제인들과 관련된 '큰 사건'이 지금 나가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죽기 전까지 고수했다. 지난 1992년 일명 <김태촌 비망록>이 공개된 후 애써 다져 놓은 정·관계 라인이 한 순간에 무너진 상황을 김씨가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김씨의 운전사 겸 비서인 K씨가 폭로한 이 비망록에는 지난 1989년 6월부터 8월까지 김씨의 일거수일투족이 기록돼있다. 이 기록에 따르면 당시 검찰, 안기부, 경찰, 교도소 고위 관계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김씨와 친분을 맺고 있었다. 그러나 이 문건이 폭로되자 이들 대부분은 더는 김씨를 비호할 수 없었다.

1986년 민중민주당 창당대회에 부하 수십 명을 이끌고 나타나 국회의원들을 긴장시키던 김씨도 비호세력 없이는 한낱 폭력배나 수감자에 불과했다. 카지노 문제로 모 회장과 등을 돌린 뒤 그의 사돈이던 정치 거물에게 쓴 맛을 봤던 그였기에 "권력의 핵심과 관계된 일은 신중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김씨 사후 김씨의 최측근인 L씨는 비망록에 대한 질문에 "아직은 장례를 치른 지 얼마 되지 않아 때가 아닌 것 같다"며 "나중에 정리가 되면 고인과 관련된 자료를 따로 모을 수 있겠지만 당장의 출간 계획은 없다"고 답했다. 비망록의 존재를 부정하지도 인정하지도 않은 셈이다. 죽은 자는 말이 없지만 죽은 자를 둘러싼 산 사람들의 이야기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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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