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촌 비망록' 출간설 실체

  • 강현석 angeli@ilyosisa.co.kr
  • 등록 2013.01.25 09:4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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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기업인·연예인…'형님수첩' 열면 여럿 다친다!

[일요시사=사회팀] '주먹계 거물' 고 김태촌씨가 지난 5일 생을 마감하면서 '김태촌 비망록' 존재 여부에 시선이 쏠리고 있다. <일요시사>는 김씨의 생전 인터뷰를 통해 비망록 출간 의지를 확인한 바 있다. 당시 김씨는 초대형 폭로가 담긴 '판도라의 상자'가 될 것이라고 큰소리 쳤다. 그렇다면 김씨의 비망록에는 어떤 내용이 담길까.

"내가 입 열면 여럿 다쳐!"

범서방파 두목, 고 김태촌씨가 지난해 1월 <일요시사>와의 병상 인터뷰 도중 꺼낸 말이다. 서울 종로구 혜화동 서울대병원에서 '최양석'이라는 가명을 사용하며 투병 중이던 김씨는 인터뷰 후 본지 기자에게 '비망록'의 존재를 털어놨다.

할 말 많은데
누군가 죽는다

고인이 된 김씨는 80년대 '양은이파' 조양은, 'OB파' 이동재와 함께 '어둠의 세계'를 호령했던 인물이다. 6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가 받은 형은 모두 33년 6개월. 인생의 절반 이상을 감옥에서 보냈지만 그가 감옥 밖에서 쌓은 인맥은 결코 호락호락한 것이 아니었다.

1974년 상경해 이듬해부터 본격적인 전국구 조폭 생활을 시작한 김씨는 1976년 5월 '신민당 전당대회 난입사건'에 관여하며 신민당으로부터 중앙당 노동부 차장이라는 직함을 받았다. 당시 김씨는 신민당 의원이자 당 총재 후보였던 이철승 의원의 사주를 받고 신민당 전당대회에 개입해 폭력을 행사하는 등 '정치깡패'로 악명을 떨쳤다.

'5월 전당대회'의 또 다른 총재 후보였던 김영삼 전 대통령(당시 후보)은 박정희 정권으로부터 감시와 협박을 받고 있었는데 이때 김씨 조직을 실질적으로 움직인 배후가 청와대의 차지철 경호실장이라는 얘기도 있었다. 난입사건을 빌미로 깡패들을 동원해 김 전 대통령을 제거하려했지만 김 전 대통령이 김씨를 피해 총재실 밖으로 뛰어내리는 바람에 '거사'를 이루지 못했다는 증언도 김씨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김씨가 직접 몇몇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듯 '행동대장'이던 그는 난입사건 전부터 국회의원의 사위, 정계 로비스트 등을 '형님'으로 모시고 있었다. 난입사건 이후 김씨는 '서방파'라는 이름의 독자 세력을 구축했고 나이트클럽 등 유흥업소를 운영하며 연예계 쪽과도 교류했다. 이처럼 정계의 내로라하는 '형님'들과 연예계 '아우'들을 거느린 김씨는 서울 중구 소공동과 명동을 중심으로 점차 세력을 넓혔다.

유신정권이 끝나고 전두환 정권이 들어선 1980년 7월. 김씨는 폭력·공갈·범죄단체조직 등의 혐의로 군법회의에 회부됐다. 1심에서 징역 15년을 선고받은 김씨는 항소심에서 징역 5년으로 형이 감경됐다. 정계뿐 아니라 검·경과도 인연이 깊었던 김씨는 고위 공직자들을 회유하는 한편 측근들을 통해 검찰 쪽 인맥을 뚫었다.

김씨 출감 이후 서울 한강 고수부지에서 열린 '새마을 축구대회'에는 서울고검 P모 부장검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때 P검사와 함께 김씨에게 돈봉투를 건넨 인물은 당시 전두환 전 대통령의 친동생 전경환 전 새마을운동 중앙본부장이었다. 이후 P검사는 김씨와의 부적절한 커넥션이 드러나 옷을 벗었다.

본지와 병상 인터뷰 당시 출간 의지 드러내
생전 "꼭 책 낸다" 장담…측근도 일부 인정

김씨는 재계에도 발을 걸쳤다. 1986년 3월 프로야구 청보 핀토스 구단주 K씨와 나란히 앉아 야구 경기를 관람했다는 일화는 지금까지 회자되며, 김씨 조직인 범서방파에 대기업 회장인 K씨가 5공 시절부터 각별한 관심을 보였다는 소문도 재계에 파다하다.

이밖에도 김씨를 둘러싼 여러 소문들은 그의 사후에도 꼬리를 물고 있다. 한편에서는 김씨에 대해 "언론이 만들어낸 신화"라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지만 "그의 사회적 영향력이 상당했다"는 것에 대해서는 대체로 이견이 없는 분위기다.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김씨는 "만약 내가 죽으면 일대기의 형태로 이 모든 것을 공개할 생각이다. (비망록을) 지인들을 통해 집필하고 있다"고 전했었다. 김씨가 병석에서 지난 사건들을 술회하면 지인들이 메모를 해 책으로 엮어내는 형식이다.

김씨 생애와 관련 이미 언론에 알려진 내용도 많기 때문에 그가 준비했던 비망록은 알려지지 않은 사건에 대한 숨겨진 이야기가 담길 것으로 기대를 모았었다.

일례로 김씨가 지난 1985년 인천 뉴송도 호텔 나이트클럽 사장으로 있던 시절, 유명 연예인들이 출연료도 받지 않고 무대에 섰던 이유가 비망록을 통해 밝혀지는 것이다.

김씨 주변인의 실명이 그대로 노출될지 여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지만 만약 김씨가 일대기를 통해 새로운 '검은 커넥션'을 공개한다면 그 칼끝은 가장 먼저 연예계로 향한다는 것이 한 조직원의 설명이다.

김씨와 유착 관계에 있던 '형님' 정치인들 대부분이 현역을 은퇴한 '죽은 권력'인만큼 김씨와 거의 비슷한 시기에 활동하거나 김씨 후배들과 사업상으로 묶여 있는 연예계 실력자들이 새롭게 부각될 것이라는 해석이다.

이와 관련 한 익명의 조직원은 "연예인들과 건달은 서로 친할 수밖에 없다"면서 "옛날에는 우리들이 연예인들 뒤봐주고 그랬다"고 말했다.

조폭이 뒤봐주고
권력은 이용하고

현재와 같은 거대 연예매니지먼트사가 설립되기 전 조폭들은 연예인과 직접 계약을 맺거나 스케줄 매니저를 조직원으로 관리하는 수법을 통해 연예계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특히 뜨는 여자 연예인의 경우는 조폭들의 집중관리 대상이 됐다. 김씨가 활동했던 70년대 무렵 당대의 스타였던 K씨는 김씨 조직과 공생관계에 있었다고 한 관계자는 전했다.

유신정권 때부터 K씨를 포함한 숱한 여자 연예인들은 권력기관의 고위 관계자(대부분 남성)와 부적절한 관계에 놓여 있었는데 그 중간 연락책이 바로 조폭이었다. 권력기관은 비선라인을 통해 조폭에게 연락을 취하고, 조폭은 고위 관계자가 찾는 여자 연예인을 물색해 만남을 주선하는 식이다.

이 같은 관행은 요정 등에서 빈번하게 벌어졌는데 취재 기자들의 접근을 막거나 정보 보안을 유지하는 건 늘 조폭의 몫이었다. 그리고 조폭이 지키는 밀실 안에서는 사회 고위층과 유명 연예인의 끈적한 관계가 맺어졌다.

이처럼 정·관계 고위 인사는 성욕을 채우고, 연예인은 사회 상류층으로 이어지는 실크로드를 붙잡게 되는 거래가 뒷세계에서는 공공연히 일어났다. 그리고 이 모든 거래는 중간브로커인 조폭의 입막음 하에 벌어졌다. 이들은 침묵의 대가로 권력의 비호를 받았다.

유신정권이 막을 내리고 서울 도처에 나이트클럽이 성행한 뒤에는 조폭들이 '권력'보다는 '돈'을 취하는 일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됐다.

세력 간의 이권 다툼이 끊이지 않았던 80년대. 큼직한 조직들은 자신들이 관리하는 클럽에 유명 연예인을 세우기 위해 서로 이전투구를 벌였다. 업소마다 연예인 섭외를 위한 담당 연락책이 있었고 이들은 저마다 조직의 이름을 앞세워 연예인 출연을 종용했다.

또 지역 장터나 축제와 같은 이권이 개입된 행사에는 여지없이 조폭이 개입했다. 지역의 작은 조폭이지만 중앙의 '큰 형님'들과도 연락이 가능했던 지역 보스들은 서울에 전화를 걸어 "나 00형님 동생인데, 트로트 가수 누구누구를 불러 달라"고 부탁한 뒤 실제 연예인이 오면 행사를 준비한 업체로부터 관례적인 뒷돈을 챙겨 받았다.

많은 트로트 가수들이 조폭과 남다른 유착을 보이는 건 지역 행사 수입이 쏠쏠한 그들의 스케줄과 무관하지 않다. 지난 6일 김씨의 빈소가 차려진 서울 아산병원에는 가수 L씨 등 트로트 가수의 화환이 줄을 이었다.

노태우 정권이 추진한 '범죄와의 전쟁' 이후 범서방파를 포함한 국내 3대 조직원 일부는 합법적인 연예산업에 뛰어들었다. 이들과 형·동생하는 사이로 알려진 K씨는 걸그룹을 포함한 유명 아이돌을 여럿 발굴하며 2000년대 업계의 큰 손으로 자리매김했다. 뿐만 아니라 지난해 조폭으로부터 피습당한 E씨도 조폭과의 커넥션이 끊이지 않았던 인물이다. E씨 역시 젊은 조직원들로부터 '형님'이라는 칭호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외형적으로는 거대 매니지먼트사가 연예시장을 잠식하면서 '주먹'들의 조직적인 영향력은 과거에 비해 현저히 줄어들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지난 2004년 범서방파 출신 사업가 N씨가 검찰에 구속됐을 당시 개그맨 L씨, 가수 K씨 등이 법원에 탄원서를 제출한 사례에서 보듯 개인과 개인 간의 '검은 커넥션'은 아직 유효하다.

비망록 칼날
연예계 조준

개인 사업자 형태의 '연예인 브로커' 행위도 아직 건재하다. 단골고객이 정·관계 인사에서 재계 인사로 바뀌었다는 점 외에는 지금도 암암리에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

지난해 익명을 요구한 한 브로커는 '연예인 스폰서' 존재에 대해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재벌 3세 A씨가 발라드 가수인 B씨와 만나다가 비서진을 통해 걸그룹 멤버 C씨와의 또 다른 만남을 요구했었다"며 "이들의 만남은 고급 가라오케나 호텔 스위트룸에서 즉흥적으로 이뤄진다"고 주장했다. 재벌과 연예인의 만남을 개인 브로커가 주선한다는 것.

또 이 브로커는 "예나 지금이나 연예인 브로커 중에서는 조폭 출신이 많고, 이들이 조직 쪽에 흘리는 정보가 조폭들 입장에서는 좋은 먹잇감이기 때문에 악어와 악어새 같은 구도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같은 뒷세계 생리를 잘 아는 김씨는 건강이 악화된 후에도 자신의 후배들을 통해 은밀한 정보를 모아온 온 것으로 전해졌다. 조폭이 입수하는 고급 정보들은 위기 상황에서 자신을 지켜주는 무기가 되기 때문이다.

8년 전 조직폭력계를 떠난 한 전직 '주먹'은 "이 바닥은 엘리베이터로 일찍 뜬 만큼 일찍 간다(죽는다)"면서 "김씨처럼 라인을 잘 타 이쪽저쪽 다 막아두지 않으면 아무리 떠도 죽는 건 금방"이라고 먼저 운을 띄었다.

이어 "김씨는 내 직계 선배는 아니지만 사람을 잘 부렸던 것으로 알고 있으며, 조폭 생활이란 건 결국 밑에 애들 일 잘 시키고, 돈 좀 있고 힘 잘 쓰는 스폰서를 잡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덧붙여 "그 정도 위치쯤 되면 겉으로는 아무리 개과천선 했다고 하더라도 뒤로는 밑에 애들 만나서 사업 얘기도 하고, 잘 나갈 때 텄던 라인들을 통해 윗선의 정보도 듣고, 그러면서 알게 모르게 주변에서 청탁도 많이 받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만약 죽으면 모든 비밀 공개" 병석서 일대기 형태 집필 확인
각계 유명인사들과 친분, 부적절한 관계 폭로할까 "후폭풍 만만치 않을 듯"

실제 김씨는 전성기를 구가하던 때 서울시경으로부터 폭력배 단속 계획을 가장 먼저 입수할 정도로 정보전에 능했다. 살면서 그가 받았던 각종 청탁과 그 대가로 교환했던 정보들만 나열해도 사회적 파장이 클 것이라는 경찰 관계자의 증언도 있었다.

'머리 쓰는 조폭'이었던 그는 은퇴 후 자신의 후견인으로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조용기 목사를 선택하면서 로얄 인맥에 방점을 찍기도 했다.

조 목사와 김씨의 친분이 남달랐던 만큼 김씨가 직접 작성한 '비망록'의 칼끝이 종교계로 향할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하지만 생전 김씨가 조 목사와의 친분을 자랑스러워했고 본인의 일대기를 쓰는 것에도 비상한 관심이 있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김씨가 조 목사와의 관계를 언급하지 않고 비망록을 작성할 수는 없을 것으로 관측된다.

지난해까지 김씨는 대외적으로 몸을 사리는 모습을 보였다. 김씨는 "정치인이나 검찰, 경제인들과 관련된 '큰 사건'이 지금 나가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죽기 전까지 고수했다. 지난 1992년 일명 <김태촌 비망록>이 공개된 후 애써 다져 놓은 정·관계 라인이 한 순간에 무너진 상황을 김씨가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김씨의 운전사 겸 비서인 K씨가 폭로한 이 비망록에는 지난 1989년 6월부터 8월까지 김씨의 일거수일투족이 기록돼있다. 이 기록에 따르면 당시 검찰, 안기부, 경찰, 교도소 고위 관계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김씨와 친분을 맺고 있었다. 그러나 이 문건이 폭로되자 이들 대부분은 더는 김씨를 비호할 수 없었다.

1986년 민중민주당 창당대회에 부하 수십 명을 이끌고 나타나 국회의원들을 긴장시키던 김씨도 비호세력 없이는 한낱 폭력배나 수감자에 불과했다. 카지노 문제로 모 회장과 등을 돌린 뒤 그의 사돈이던 정치 거물에게 쓴 맛을 봤던 그였기에 "권력의 핵심과 관계된 일은 신중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김씨 사후 김씨의 최측근인 L씨는 비망록에 대한 질문에 "아직은 장례를 치른 지 얼마 되지 않아 때가 아닌 것 같다"며 "나중에 정리가 되면 고인과 관련된 자료를 따로 모을 수 있겠지만 당장의 출간 계획은 없다"고 답했다. 비망록의 존재를 부정하지도 인정하지도 않은 셈이다. 죽은 자는 말이 없지만 죽은 자를 둘러싼 산 사람들의 이야기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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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법원이 주호영 국회부의장의 대구시장 경선 컷오프 관련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항고할 뜻을 내비쳤다. 주 부의장의 강경 대응은 저조한 국민의힘 지지율과 맞물려 혼란상을 더욱 극적으로 비추고 있다. 과연 국민의힘이란 ‘대마’는 ‘불사’의 존재일까? 주호영 국회부의장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경선에서 컷오프된 것에 반발해 지난달 26일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했다.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수석부장판사 권성수)는 지난 3일 이를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곧바로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법원 결정에 반발했다. 법원 결정 바로 반발 주 부의장은 “저는 그동안 이번 컷오프가 절차·내용 모두 중대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해 왔다”며 “법원의 판단과 별개로 이번 공천 과정이 과연 당원·시민의 눈높이에 맞는 공정하고 민주적인 절차였는지는 여전히 엄중하게 따져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주 부의장은 지난 6일 항고를 제기했다. 이어 지난 8일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항고심 판단을 끝까지 지켜본 후 제 거취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선 일각에서 제기했던 무소속 출마설을 일단 유보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어 주 부의장은 “항고심 판단을 기다린다고 해서 이번 공천 난맥상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체제의 책임을 덮고 가겠단 뜻은 결코 아니”라며 “이런 공천 구조를 만든 세력과 절대로 타협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공천은 충성의 대가나 숙청의 도구가 아닌, 오직 국민 앞에 가장 경쟁력 있고 책임 있는 후보를 세우는 과정”이라고 주장하는 등 자신을 컷오프한 것을 ‘숙청’이라고 암시했다.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에 대해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6선인 주 부의장은 대구 수성에서만 국회의원을 지냈다. 대구 수성을에서는 4선을 지냈고, 수성갑에선 재선에 성공했다. 이 중 4선을 했던 지난 2016년 총선 수성을 선거에선 친박(친 박근혜)계 주도로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 출마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유 있게 이겼다. 문제는 주 부의장이 당내 최다선인 6선 의원 겸 국회부의장이라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명예가 곧 실권을 보장하진 않는다. 아울러 주 부의장이 차기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구에 출마해 7선에 도전하면,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다. 같은 6선인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조정식 의원은 각각 부산 사하을·경기 시흥을을 지역구로 두고 있다. 부산은 이미 격전지가 된 데다 조 의원은 민주당계 정당과 국민의힘 소속으로 각각 3선 했고, 경기 시흥을은 수도권이다. 국민의힘의 안정된 텃밭으로 분류되는 대구 수성을에서 7선에 도전하는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 설령 7선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도 참패 가능성이 제기되는 국민의힘이 2년 후 총선에서 다수당이 된다는 보장도, 국회의장이 되리라는 보장도 하기 어렵다. 오는 2028년 총선까지 연일 떠들썩하게 이어지는 계파 갈등을 어느 정도 안정시킨 후 대안 야당으로 발돋움하면서 이재명정부가 실정으로 지지율이 폭락하는 상황이 겹쳐야 승리를 노려볼 수 있다. 주 부의장이 국회의장에 도전하는 것도 현실적으로는 가능성이 희박하다. 불확실한 국회의장…‘텃밭 7선’ 대신 대구? 연이은 공천 가처분 세례 속 서울 지지율 13% 따라서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집념을 불태우는 것은 필연이다. 대선 패배 후 대구시장에 출마해 당선됐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전례도 있다. 주 부의장으로선 “나라고 출마 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에 있느냐”고 판단해도 무리가 아니란 분석이 있다. 대구시장으로서 임기를 마친 후 대권에 도전하거나 당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가능성은 일명 ‘주한 연대설’로 통하는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와의 연대설 때문에 불거졌다. 이는 국민의힘 이정현 전 공천관리위원장이 주 부의장을 컷오프한 직후 불거졌다.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 대구시장에 출마해 대구 수성갑에서 재보궐선거가 진행되면, 한 전 대표가 여기에 출마하는 형식으로 연대한다”는 설이다. 한 전 대표 측으로선 손해 볼 게 없다. 한 전 대표는 지난달 25일 채널A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보수 재건이 필요하다고 공감하면서 나서겠다고 했다”며 “우린 이미 연대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반면 주 부의장은 신중한 반응을 내비쳤다. 그는 지난달 26일 기자들을 만나던 중 주한 연대설 관련 질문을 받자 “제 코가 석 자인데 딴 생각할 여지가 있겠느냐”고 답변했다. 다만 무소속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선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해 준비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따라서 주한 연대설 성립 가능성 자체를 배제한 것은 아니라는 해석이 나왔다. 주 부의장의 항고 제기는 국민의힘의 치명적 문제 하나를 외부로 노출했다. 국민의힘에선 당내 처분에 대해 연이어 법원으로 달려가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가깝게는 주 부의장과 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컷오프에 대한 가처분을 신청했다. 김 지사는 주 부의장과 달리 가처분이 인용돼 경선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멀게는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배현진 의원에 대해 각각 결정했던 제명·당원권 정지 1년 징계의 효력도 법원에서 정지됐다. 4건의 가처분 모두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에서 판단했다. 재판부는 주 부의장 건에 대해서만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줬다. 장 대표는 김 지사가 신청한 가처분이 인용된 다음 날인 지난 1일 기자들과 만나 “법원이 정치에 너무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며 “재판장이 국민의힘에 와서 공천관리위원장과 윤리위원장을 하면 될 것 같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정치의 사법화가 심각할 정도로 진행된 것 같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천 관련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승리 가능성을 어둡게 하는 신호들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국갤럽은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2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상대로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직접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48%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8%로 집계됐다. 제 코가 석 잔데… 서울에선 민주당 지지율이 51%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3%로 집계됐다. 부산·울산·경남에서도 민주당 지지율은 42%로,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7%로 집계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바람). 영원한 격전지 서울에서도 양당의 지지율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여론조사 결과 수치가 공개되자,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한 지적이 날로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4일 자 사설을 통해 “국민의힘은 지금 수도권에서 후보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며 “현행법상 15% 이상 득표해야 선거 비용을 전액 보전받을 수 있는데 그에 미치지 못할까 걱정한다는 것”이라며 현실을 짚었다. 이어 “말로만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선언했을 뿐 실제로는 반대로 하고 있다”며 “공천 혼란에 대해서도 가처분을 인용한 법원 탓만 할 뿐, 어떻게 수습하고 책임질지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등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조선일보>의 주장대로라면, 수습·책임을 맡을 당 대표는 보이지 않는 셈이다. 해당 매체는 “어렵게 나선 후보들은 국민의힘 상징색인 빨간색을 포기하고 흰색 점퍼를 입고 다닌다”며 “인구가 1300만명에 달하고 국회의원 의석수도 가장 많은 경기도에선 지사 출마자를 구하지 못해 공천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는 현실도 짚었다. <조선일보>가 짚은 국민의힘의 현실은 신체를 통제할 두뇌 없이 거대한 군집을 이룬 채 각자의 역할을 맡은 군집 생물에 비유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관해파리를 들 수 있다. 관해파리는 겉으로 볼 땐 덩치 큰 해파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각각의 역할을 맡은 독립 개체들이 모인 군집이다. 이 개체들은 먹이 섭취·이동·번식 등 각각의 역할만을 담당한다. 각각의 개체들은 생존을 위해 서로 연결돼있지만, 이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뇌는 없다. 개체 중 누군가가 제 역할을 못하면 모두 죽는다. 단세포생물인 점균류도 먹이를 찾을 때, 각자의 세포가 알아서 효율적인 길을 찾는다. 이를 통제할 뇌는 없지만, 화학적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최적의 경로를 결정한다. 그런데 잘못된 경로를 찾으면 방향을 틀 능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는 것은 군집 전체가 굶어 죽는 일이다. 페로몬을 통해 신호를 주고받는 군대개미 집단도 선봉에 선 개미가 길을 잃으면 모든 개미가 원을 그리다가 지쳐 죽는다. 제 역할 못하면… 이탈리아의 정치학자 조반니 사르토리는 원심적 경쟁 이론을 주장했다. 보통의 민주주의 국가에선 정당이 중도층의 표심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강경한 여당과 무책임한 야당이 양립할 땐 정당이 중도층을 설득하기보다 진영 결집에 따른 조직표 구성에 몰두한다. 이런 구도에선 중도층이 정치에서 배제되고, 정치적 대화도 단절된다. 이런 상황에선 후보자들은 당의 승리와 중도 확장을 포기하고, 강성 핵심 지지층의 지지를 얻으려고 노력한다. 중도층이 정치에 냉담해지면서 설득 가능 대상으로 강성 핵심 지지층만 남기 때문이다. 가성비 높은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아울러 후보자들이 지도부를 거부하면서 강성 핵심 지지층에게만 구애하는 각자도생에 몰두한다. 이는 결국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준비 과정에서 서울시장·경기도지사 경선에선 구인난에 빠졌지만, 대구시장·경북도지사 경선은 열기가 과도한 것도 이와 비슷하다. 특히 대구시장 경선엔 국회부의장·경제부총리·원내대표 등 당정의 핵심을 지낸 인사들이 모두 출마했기 때문에 더욱 눈에 띄고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리처드 카츠와 아일랜드의 정치학자 피터 메어는 정당을 카르텔·프랜차이즈 기업에 비유하는 독특한 이론을 발표했다. 카츠와 메어는 “현대 정당이 시민의 자발적 후원보다 국가의 정당 보조금·공천권 등 국가의 자원에 의존해 서로 담합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앙당과 지역구 후보의 관계를 본사와 가맹점주 관계로 규정했다. 따라서 중앙당이 자원을 적절히 배분하지 못하거나, 시장에서 자원의 가치가 폭락하면 가맹점주의 불만이 폭발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을 매개로, 캐나다의 정치학자 켄 카티는 “정당이 실제로 프랜차이즈 시스템으로 바뀌고 있다”고 주장했다. 카티에 따르면, 정당은 브랜드로서만 기능하고, 선거에선 후보가 중앙의 브랜드를 빌려온다. 공천은 결국 이들 간 계약 관계 역할을 한다. 이는 실제 정치적 현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일 서울 쌍문역 일대 쌍리단길을 방문했다. 오 시장의 현장 방문에 동행한 국민의힘 소속 서울시의원들과 도봉구의원들은 국민의힘의 상징색 빨간색이 아닌 흰색 점퍼를 입었다. 오 시장도 서울시 로고가 새겨진 흰색 점퍼를 입고 현장을 돌아다녔다. 지난달 31일 진행된 국민의힘 서울시장 본경선 후보들 대상 첫 토론회에서도 후보들은 장 대표를 비판했다. 이들은 “흰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동그라미 푯말을, 빨간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엑스 푯말을 들어달라”는 진행자의 요구에 일제히 엑스 푯말을 들었다. 오세훈 ‘흰색 점퍼’ 현장행 “빨간색 입고 싶다” 대우그룹·프랑스 사회당 등 한순간에 망한 대마들 하지만 말은 날카로웠다. 오 시장은 “빨간색 점퍼를 입고 싶은 마음을 엑스 푯말을 들어 표현해 봤다”고 말했다. 미래통합당 윤희숙 전 의원은 “흰색 옷을 입어야 하는 사람은 장 대표”라며 “이번 공천이 마무리되면 백의종군을 결심해 달라”고 요구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빨간 당 출신이 빨간색을 안 입는 자기모순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도 “장 대표가 확장하지 못했다면 후보들이 확장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달엔 장 대표의 지원 유세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본사에 대한 가맹점주들의 집단행동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서울시당위원장을 맡은 배 의원도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의 서울 지지율 13%의 주역 장동혁 지도부가 기초단체장 후보를 못 구한 지역의 후보를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방선거 패배 가능성이 내·외부에서 연이어 제기되고 있지만, 국민의힘 지도부에 대해선 “변화할 의지도, 대책도 없는 것 같다”는 평이 나온다. 이 같은 상황은 카츠와 메어가 이미 이론적으로 짚었다. 이들은 “카르텔 정당은 국가 자원을 독점하기 때문에 ‘우리는 망하지 않는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고 지적했다. 바둑으로 치면, 국민의힘은 여러 개의 돌로 넓게 자리 잡은 곤마인 ‘대마’와 비슷하다. 시사 분야에서 관용적으로 잘 쓰는 표현 중 하나는 ‘대마불사’다. “대기업이나 대형 금융기관은 국가의 지원을 받아 망하지 않는다”는 관용 표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1990년대 후반 IMF 금융위기는 대마불사로부터 비롯됐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상황은 당시 재계 2위였던 대우그룹의 해체였다. 김우중 당시 회장은 ‘세계 경영’이라면서 해외 업체를 공격적으로 인수했다. 그러다 IMF 금융위기를 맞아 구조조정을 거쳤지만, 삼성자동차를 받고 대우전자를 주는 빅딜 과정에서 엄청난 빚을 져 결국 워크아웃을 선언했다. 김 전 회장도 해외로 도피했다. 대우그룹은 그렇게 해체됐다. 국제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1990년대 초반 캐나다의 집권당 진보보수당은 경제 실정과 내부 갈등 끝에 구심력을 잃고 연이은 당원 탈당 사태를 겪었다. 그 결과 150석을 넘게 보유했던 거대 여당이 선거 한번에 2석만 건지는 참패를 당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프랑스에서도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을 극복하지 못했던 사회당은 지난 2017년 대선을 앞두고 강경한 좌파 성향 브누아 아몽 대선후보를 선출했다. 그러자 사회당 소속 정치인 다수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창당했던 신생 정당 앙 마르슈로 옮겼고, 당은 선거에서도 참패했다. 반대로 민주당은? 민주당은 대구시장 선거 승리를 위해 대구에서 일정한 기반을 갖추고 있고 선거 승리 경험도 있는 김부겸 전 총리를 대구시장 후보로 선출했다. 이어 지난 8일엔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김 후보와 함께 대구 농수산물도매시장을 방문하는 등 승리 의지를 드러냈다. 구인난을 겪고 있는 국민의힘과 달리, 민주당에선 추미애 의원이 치열한 경선 끝에 경기도지사 후보로 선출돼 주목받고 있다. 대마불사는 과연 영원한 걸까. 대마불사만 믿고 배짱 영업을 해도 되는 걸까. 대우그룹 해체는 국민의힘에 어떤 의미를 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