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르포> ‘간판만’ 면세점 가 보니…

  • 김설아 sasa7088@ilyosisa.co.kr
  • 등록 2013.01.21 12:5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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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가지 코리아…등쳐먹기 혈안

[일요시사=경제1팀] 간판만 면세점인 이른바 ‘짝퉁면세점’들이 난립하고 있다. 외국인 관광객들을 상대로 우후죽순 생겨나면서 진짜 면세점인양 행세를 하고 있는 것. <일요시사>가 확인해보니 이름도 모를 제품을 수십만원에 파는 등 바가지 횡포가 극에 달했다. 여행사와 판매점이 ‘짜고 치는’, 그 현장을 가봤다.

지난 15일 오후 서대문구 창천동에 위치한 한 면세점. 정체불명의 이곳은 ‘韓國 化粧品 免稅店’(한국 화장품 면세점), ‘서울 면세점·듀티프리(Duty Free)’라는 간판을 내걸고 영업 중이었다. 외관의 중심에는 한류스타 ‘손예진’이 전속모델로 활동하고 있는 한 화장품 광고의 포스터가 걸려 있었다.

“한국인은 나가!”

매장 안으로 들어가니 손님은 없고 6∼7명의 직원들만 근무하고 있었다. 향수, 화장품 등을 판매하는 전문매장 이었지만 홍삼 등의 건강 제품도 함께 판매하고 있었다.

제품들을 자세히 살펴보니 생소한 브랜드의 화장품 세트가 20만∼30만원대의 고가에 팔리고 있었다. 국내 화장품 매장에선 보지 못한 이름 모를 달팽이 크림이 5만∼7만원에 팔리고 있는가 하면 마스크팩 한 묶음이 2만5000원에 팔리고 있었다. 

또 국내 저가 브랜드 화장품이 교묘하게 이름을 바꿔 2∼3배 비싼 가격에 전시돼 있었다. 중국인 관광객에게 특히 인기가 좋다는 건강식품 역시 접해 보지 못한 브랜드를 내걸고 고가에 판매되고 있었다.


이때 중국어로 얘기를 주고받던 직원 중 한명이 기자에게 다가와 “여기는 개인 고객에게는 상품을 판매하지 않는다”며 “예약된 단체 관광객들에게만 판매하는 곳이다. 나가달라”고 말했다.   

이 매장 인근에서 10년 째 장사를 해온 한 상인은 “중국인 등 외국인 단체 관광객들을 상대로 ‘파격 할인’을 해준다고 유혹해 뻥튀기 판매를 하는 곳”이라며 “당연히 한국인들에게는 사게 하지도 팔지도 않는다”고 귀띔했다.

또 다른 상인은 “이 곳 말고도 외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명동, 마포구 일대에 다양한 소규모 면세점들이 있다”며 “홍삼 면세점, 화장품 면세점 등 품목도 다양한 걸로 알고있다”고 말했다.

모두 여행사와 상인들이 짜고 판매액의 50∼60%를 여행사에 리베이트로 주면서 관광객들을 면세점으로 유인하는 이른바 리베이트 영업을 하고 있는 곳들이다.

‘Duty Free’ 걸고 성업…정체불명 제품 뻥튀기
‘리베이트’ 여행사·상인 짜고 해외 관광객 유인

여행사들은 과대광고와 단가 후려치기로 마구잡이식 모객을 한 뒤, 여기에서 발생하는 적자를 업체로부터 받는 쇼핑 리베이트로 메운다.

리베이트의 경우 사람 수에 따라 일정액을 받기도 하고, 사람수+α(매출액의 일정부분)를 받기도 한다. 특히 검증된 업체가 아닌 경우에는 50% 내외의 리베이트를 받는 경우도 있다.


중국인 관광객들을 상대로 현지 가이드를 했던 한 관계자는 “고가 상품을 판매하는 곳 위주로 관광객들을 데리고 다녔다”면서 “우리에게 리베이트로 지급되는 돈 이외에 업체에서 본사로도 별도의 리베이트가 들어간 것으로 알고 있다. 여행사와 업체는 서로 없어서는 안 될, 공생하는 관계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이름만 면세점’ 행세가 가능한 배경에는 텍스프리, ‘사후면세제도’가 있다. 사후면세제도란 외국인 관광객이 사후 면세판매점에서 제품을 구입해, 국내에서 사용하지 않고 자국으로 소지하고 출국했을 경우 물품에 부과된 세금을 환급해주는 제도다.

이 제도는 가입하는 방법도 간단하다. 사업장 소재 관할 세무서에 외국인 관광객 면세판매장 지정신청서만 작성하여 사업자등록증과 함께 제출하면 누구나 사후 면세점으로 등록할 수 있게 돼 있다.

때문에 백화점, 화장품 브랜드숍 등을 포함해 사후면세점으로 등록한 업체들은 현재 전국 5400여개에 이른다. 그리고 이들 중 상당수 업체들은 관리·감독이 부실한 틈을 타 마치 ‘사전면세점’인 것처럼 ‘듀티프리(Duty free)’간판을 내걸고 사기성이 짙은 영업을 하고 있다.

사후면세제도 자체는 관광객들의 물품 구매를 증대시키는 등 긍정적 측면이 많은 제도다. ‘86아시아게임’과 ‘88올림픽’을 앞두고 도입된 후 지난 2001년 외국인 필수 관광지인 동대문의 한 쇼핑타운은 사후면세제도가 활성화되어 텍스프리존이 형성됐다. 명동의 화장품, 명품가게 80%가 이 제도에 참여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악용해 ‘면세점’ 간판까지 내걸고 리베이트 영업을 하는 업체들 탓에 처음의 좋은 취지가 크게 퇴색하고 있다. 더욱이 텍스프리 영업점의 듀티프리 간판 영업에 대한 제재 조치조차도 현재는 불가능한 실정이다.

정부기관들은 소관 사항이아니라는 이유로 제도적 보완 장치도 마련해 놓고 있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공정거래위원회 관계자는 “면세점 간판을 내 건 것이 ‘표시ㆍ광고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위반의 소지가 있지만 시장 질서를 교란하는 수준인지는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짝퉁’우후죽순

이러한 안이한 대응 속에서 ‘짝퉁 면세점’으로 인한 피해는 전적으로 외국인들의 몫으로 남는다. 문제는 이러한 피해가 비단 몇 십명의 외국인 관광객으롤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장기적으로 보면 국내로 들어오는 해외 여행객들에게 안 좋은 인상을 끼쳐, 결국 대한민국 관광수익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외국인 관광객 1000만명 시대가 이미 도래한 가운데 관계 당국의 빠른 시정 조치가 필요해 보인다.

김설아 기자 <sasa708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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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우리에게 추석은 차례를 지내거나 귀향을 하는 것이 익숙한 명절이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명절을 보내는 방식이 크게 달라졌다. 특히 차례를 지내는 비중은 줄어들고 MZ세대를 중심으로 긴 연휴를 활용한 여행, 단기 아르바이트, 자기계발 등을 하는 것이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추석에 차례를 지내겠다고 응답한 비율은 40%대 초반에 그쳤다. 절반 이상은 차례를 지내지 않겠다고 답한 것이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당연하게 여겨지던 차례와 제사가 더 이상 필수가 아니게 된 셈이다. 알바 우선 통계청 조사에서도 명절 의례를 간소화하거나 아예 하지 않는 가정이 해마다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차례를 지내는 대신 긴 연휴를 여행으로 보내려는 수요가 뚜렷하게 증가했다. 한국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여행 중개 플랫폼 스카이스캐너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약 77%가 이번 추석 연휴에 여행 계획을 세웠다고 응답했다. 특히 해외여행 비중이 크게 늘었다. 10년 전 대비 명절 여행에 긍정적인 인식이 37%에서 70%로 2배 가까이 상승했다. 검색 데이터에 따르면, 추석 연휴 기간 인기 여행지는 일본(43.1%)이 1위였고, 이어 베트남(13.2%), 중국(9.6%), 태국(7.5%), 대만(6.2%) 순이었다. 도시별로는 일본 후쿠오카(20.2%)가 가장 높은 검색 비율을 기록했으며, 오사카(18.3%), 도쿄(15.4%), 방콕(8.9%), 타이베이(8.0%)가 뒤를 이었다. 여행을 가지 않고 명절 연휴를 일터에서 보내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긴 연휴를 활용해 “돈을 벌겠다”는 사람들이 늘면서 단기 아르바이트 수요도 급증했다. 당근마켓과 같은 알바 커뮤니티와 플랫폼에는 “추석 알바 구합니다”라는 글이 다수 올라왔다. 한 20대 청년은 “쉬는 날이 길어 잠깐이라도 일을 하려 한다”고 밝혔고, 한 대학생은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선물세트 포장 알바에 지원했다”고 말했다. 특히 명절 기간에는 업무강도가 높아 평균 시급의 1.5배를 지급하는 경우가 많다. 평상시에 근무할 때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많은 청년들이 명절 시즌 알바를 노리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 맞춰 구인·구직 플랫폼들은 ‘추석 알바 채용관’을 운영하며 수요를 모으고 있다. 백화점과 대형 마트, 도·소매점과 전통시장에서 단기 인력을 모집하고, 선물용 고기·과일 세트 포장, 택배 상·하차, 진열·판매 등의 일자리가 집중적으로 생겨났다. 절반 이상 “안 지내요” 77%가 여행 계획 세워 지난해 추석 구인 구직 사이트 알바천국 조사에서는 응답자 중 절반 이상(53.9%)이 단기 용돈 벌이를 위해, 22.2%는 고물가로 인한 지출 부담 때문에, 18.2%는 여행 경비나 등록금 등 목돈 마련을 위해 명절 알바를 계획했다고 답했다. 이는 명절을 단순히 휴식 시간으로 보내지 않고, 생계와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집에 머무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자기계발하며 추석 나기’가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혼자 추석을 보내는 일명 ‘혼추족’ 중에는 독서나 온라인 강의, 어학 공부, 자격증 준비 등에 연휴를 투자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스터디 카페와 도서관을 찾는 이용객이 증가했다는 조사도 나왔다. 일부 출판사나 문화 기획사에서는 명절 연휴에 맞춰 북콘서트 같은 행사를 열기도 했다. 명절이 휴식 기간만이 아닌 스스로를 계발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같은 양상은 가족 모임에도 영향을 받았다. MZ세대는 가족·친척 모임을 스트레스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한 청년은 “친척들과 모이면 취업·결혼 얘기 등으로 잔소리를 들어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느니 차라리 그 시간에 자기계발을 하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말했다. 과거처럼 친척 모임에 시간을 할애하기보다, 필요한 경우에만 가족을 만나고 나머지 시간에는 개인활동에 집중하는 방식이다. 연휴를 도심에서 보내는 ‘혼추족’을 겨냥해 유통·외식업계도 다양한 이벤트를 내놓고 있다. 수도권 맛집 가이드, 추석맞이 전시·공연, 집콕형 OTT·게임 프로모션 등이 대표적이다. 편의점과 HMR(가정 간편식) 업체는 명절 한정 도시락·한상 차림 제품을 늘리고, 명절 기간 반값·카드 제휴 할인 등 단기 판촉을 강화하고 있다. 추석 선물 시장도 과거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예전에는 굴비·한우·고급 과일 세트 등 전통 품목이 중심이었지만, 최근에는 실속형·소포장 선물세트가 늘었다. 대표적으로 대형마트에서는 고급 커피·차 세트, 수제 디저트처럼 가볍게 주고받을 수 있는 소포장 구성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일과 자기계발이 더 유익해” 명절 스트레스 가족 모임 불참 온라인몰에서는 올리브 오일, 참기름, 견과류, 꿀 등 건강 지향 소품목 세트가 매출 상위에 오르기도 했다. 실속형·소포장 선물을 찾는 배경에는 고물가 부담과 1~2인 가구 증가가 있다. 소비자들은 예전처럼 고가 선물을 준비하기보다, 실용적이고 보관이 편리한 상품을 선택하는 경향을 보인다. 또 명절을 함께 보내는 가족 규모가 줄면서 필요한 양만큼만 담긴 선물세트가 ‘부담 없는 선택’으로 자리 잡았다. 가격 대비 효용을 중시하는 MZ세대 소비자층도 이 같은 흐름을 이끌고 있다. 모바일 선물하기 판매는 전년 추석 대비 두 배 이상 늘었고, 온라인몰도 같은 기간 선물세트 매출이 2배 가까이 증가했다. 편의점 앱을 통한 선물세트 매출은 연중 대비 100% 이상 신장세가 관측됐고, 패션·라이프스타일 플랫폼의 선물하기 거래액도 두 자릿수 증가를 이어가고 있다. 마켓컬리는 추석 기간 한시 선물하기 서비스를 운영하며 홍삼·화장품 등 선물 품목을 확장했다. 명절 식문화 자체도 간편화 된 흐름이 뚜렷하다. 1인 가구 1012만명, 2인 가구 600만명으로 소규모 가구가 크게 늘어난 가운데, 대형마트의 간편 차례상 매출은 최근 3년 연속 증가했다. 편의점의 냉장·냉동 HMR 매출은 두 자릿수 증가했고, 명절 한정 도시락은 1인 가구 밀집 상권에서 판매 비중이 높았다. 이번 추석에도 이런 흐름에 맞춰 대형 마트는 간편 차례상·냉동 밀키트 대형 할인전을, 편의점 4사는 명절 도시락 출시와 제휴 할인행사를 연달아 내놓고 있다. 밀키트와 같은 간편식의 수요가 증가한 데에는 물가 상승이 영향을 미쳤다. 소비자 설문에선 추석 전체 지출 예산이 평균 71만2000원으로 전년 대비 26%가량 늘었다는 응답이 나왔다. 지출 중에는 부모 용돈·선물 비중이 절반을 웃돌았고, 차례상 비용·내식 비용도 적지 않았다. 품목별로 과일·수산물·햅쌀·송편 등의 차례상 음식 가격 부담이 커지면서, 수입 축산물 고려 비율도 늘었다. 이 때문에 “차례상 형식을 간소화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선택의 시대 추석을 준비하는 한 30대 가정주부는 “지금은 시대가 많이 바뀌어서 차례를 안 지내거나 설에 한 번만 지내는 집이 많다. 고물가 시대에 음식을 다 준비하는 것은 부담되는 것 같다. 그런 형식적인 것은 간소화하더라도 차례를 지내는 행위에 의미가 있으니 상관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