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취재> '조폭 대부' 김태촌 마지막 가는 길

  • 강현석 angeli@ilyosisa.co.kr
  • 등록 2013.01.14 16:4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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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 세계 호령하다 어둠에 영원히 잠들다

[일요시사=사회팀] 80년대 전국구 주먹시대를 열었던 범서방파 두목 김태촌(64)씨가 지난 5일 세상을 떠났다. 향년 64세. 숨진 김씨의 빈소는 다음 날인 6일 서울 송파구 아산병원에 차려졌다. 관할 경찰서인 송파경찰서는 강력계 형사들을 아산병원에 급파했다. '주먹'과 '경찰'의 보이지 않는 신경전은 장례식 내내 계속됐다.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서 입원 중이던 '주먹계 거물' 김태촌씨는 지난 5일 새벽 패혈증으로 인한 심장마비로 숨을 거뒀다. 김씨의 시신은 서울 송파구 아산병원으로 옮겨졌다. 김씨가 숨진 다음 날인 6일 빈소는 아산병원 장례식장 2층 특실에 마련됐다.

유명인 화환 빼곡
곳곳서 90도 인사

김씨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하나둘 장례식장에 모여들었다. 유가족들은 상주 리본을 달고 조문객을 맞았다. 중절모를 쓴 60대 남성부터 회색 코트의 20대 남성까지 조문객 대부분은 남자였지만 간간이 여자 조문객도 눈에 띄었다.

장례식장 주변에는 경찰이 포진했다. 파견된 경찰 인력은 150여 명이었다. 송파경찰서에서 출동한 강력팀은 빈소 앞 입구 전면에 배치됐다. 장례식장 에스컬레이터를 포함한 내부 곳곳에는 사복형사들이 자리했다. 건물 밖에는 둘씩 짝을 지은 경찰관들이 구역을 정해 순찰을 돌고 있었다. 1개 중대 규모의 전·의경은 2대의 경찰 버스에서 만약의 사태에 대비했다. 대체로 평온한 분위기였지만 무전기를 든 형사의 눈매만은 날카로웠다.

시간이 지날수록 김씨의 빈소를 찾는 조문객은 늘어났다. 빈소 입구를 지키는 건장한 젊은 남성들도 세를 더했다. 빈소 입구와 10여m 떨어진 엘리베이터 앞까지 '주먹'들의 행렬은 이어졌다. 빈소와 연결된 화장실 앞에도 20여명의 남자들이 기립해 있었다. 이들은 서로 마주 본 채 반듯한 자세로 뒷짐을 지고 있었다. 빈소 입구에는 100켤레가 넘는 구두가 조문 온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경찰은 김씨의 장례 기간 중 빈소를 찾은 조문객이 약 3000명 규모라고 추산했다.

패혈증 심장마비로 사망…빈소에 3000명 몰려
장례식장 경찰 150여명 배치 "주먹들과 신경전"

빈소 옆 비상구 계단 앞에는 화환이 빼곡히 자리했다. 화장실 앞부터 시작된 화환 행렬은 에스컬레이터 앞까지 계속됐다. 화환을 보낸 이들의 면면도 화려했다. 조용기 여의도순복음교회 목사, 송일현 한국기독교부흥협의회장 등 기독교계 유력 인사를 비롯해 가수 설운도, 김태곤 등 음악계 인사, WBC 세계챔피언을 지낸 염동균, 동부프로미 농구단 감독을 맡고 있는 강동희 등 체육계 인사까지 각계를 망라한 유명인들의 화환이 줄을 이었다. 특히 이번 대선에서 불법선거운동을 벌인 혐의를 받고 있는 권봉길 새누리당 선대위 국정홍보대책위원장의 화환 또한 눈길을 끌었다.

둘째 날에도 조문객의 행렬은 끊이지 않았다. 이미 첫째 날에 다녀간 하일성 전 KBO 사무총장은 김씨와 오랜 인연으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1986년 김씨는 프로야구 한 구단의 이사를 맡았었는데 당시 야구해설위원이었던 하 전 사무총장과 각별한 인연을 유지해왔던 것. 이밖에도 탤런트 임혁이 조문을 위해 아산병원을 찾아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태권도 국가대표 출신 탤런트 이동준씨도 지난 7일 저녁 지인들과 함께 빈소를 찾았다. 이씨는 "형님과는 원래 건달, 연예인 이런 거 다 떠나서 친분이 있었고 좋은 분이었다"며 "잠깐 그쪽 세계에도 계셨지만 손 씻고 나중에는 좋은 일도 많이 하시고 그런 점을 훌륭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유명 걸그룹이 소속된 모 소속사 대표 K씨가 김씨와의 인연으로 빈소를 찾을 것"이라는 얘기가 돌았지만 장례식장에는 직접 참석하지 않았다. 이와 관련 김씨의 장례식에 참석한 한 40대 남성은 "연예인들과 건달은 서로 친하게 지낼 수밖에 없다"면서 "보는 눈들 때문에 오지는 못해도 조의금은 다른 루트를 통해 보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또 다른 30대 남성은 "빈소로 화환을 보낸 사람 중 거물로 분류되는 인사의 화환은 안쪽에 배치됐다"고 말했다. 화환을 보낸 이의 신원을 보호하는 방법인 셈. 유명인들의 화환 외에도 부산 영도파 두목 천달남, 칠성파 두목 이강환 등이 보낸 화환은 엘리베이터를 경계로 외부에서 보이지 않는 쪽에 배치됐다.

빈소 바로 맞은편에 있는 소파에는 강력계 형사들과 채증 임무를 맡은 수사관들이 앉아있었다. 이들은 화환으로 가려진 빈소 안쪽 상황을 예의주시하며 밤낮으로 똬리를 틀고 있었다. 한 형사는 "우리는 특별한 목적으로 이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상주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20∼40대 조직원
형사에 깐족깐족

이와 반대로 기자와 얘기를 나눈 중견 보스 A씨는 "사람들이 영화를 너무 많이 봐서 그런지 조폭하면 매일 경찰과 치고받고 마약이나 하고 그러는 줄 아는데 요즘은 경찰이 영장 들고 찾아오면 손들고 '꼼짝마라'(움직이지 않는다)"라면서 "영화랑 현실은 엄연히 다르다"고 주장했다. 이어 "식구끼리 장례식 하는데 여기 언론이고 경찰이고 찾아오면 우리가 라이브로 싸우길 바라는 거냐?"고 되물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40대 중견 보스 B씨는 "화나게 하면 아예 경찰이랑 붙을 수도 있지"라며 "태촌이형이랑 잘 알지는 못해도 도리로 온 사람들 많은데 (언론과 경찰은) 시간 아깝게 여기 뭐 건질 게 있어서 죽치고 앉아 있을까"라며 A씨를 거들었다.

A씨와 B씨 옆에는 검은 정장을 입은 20∼40대 조직원 10여명이 고개를 뻣뻣이 든 채 서 있었다. 몇몇 조직원은 경찰이 쓰고 있는 책상에 자신이 마신 음료 캔을 올려놓는 등 경찰과 보이지 않는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다. 그때마다 경찰의 표정은 다소 굳어졌다.

이때 조문을 위해 도착한 40대 남성은 '형님'인 50대 조직원을 복도에서 발견하고 "안녕하십니까"라며 깍듯이 90도 인사를 했다. 인사를 받은 이 50대 조직원은 "너는 왜 그러냐. 이런 건 이제 어린 애들이나 해야 하는데" 등의 설교를 늘어놨다.

오후 5시 이후에는 조문객들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적게는 3명에서 많게는 10명 넘게 김씨의 빈소로 무리지어 가는 조직원들이 보였다. 이 중에는 외국 폭력조직원도 있었다. 중국 상해에서 왔다는 폭력조직원 5명은 등장과 함께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저 중국인들이 누구냐"는 물음이 기자들 사이에 있었지만 경찰은 "중국에서 왔다는 사람의 신원을 한국 관할 경찰서가 어떻게 얼굴만 보고 파악하겠느냐"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조문을 끝낸 중국 상해 조직원들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오후 7시께는 민갑룡 송파경찰서장이 수행 경찰관을 대동하고 장례식장을 찾았다. 민 서장은 상주 근무 중인 강력팀을 격려하며 "이번 임무가 끝나면 휴식을 좀 취하라"고 말했다. 그러나 신원파악과 관련해서는 "현장에 있는 일선 경찰이 조폭의 얼굴을 무작정 모른다고 해서는 안 된다"며 '수배자 명단 조회' 등을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전국구 등 전현직 조폭 조문 행렬
중국 상해 조직원도 몰래 다녀가
"화나게 하면 짭새고 뭐고 없어"

밤이 깊어갈수록 김씨의 발인을 지켜보기 위한 조폭계 원로들의 방문은 계속됐다. 한 원로 주먹은 새벽이 되자 건물 복도에 나와 담배를 태우며 이리저리 전화를 돌렸다. 빈소에서 나온 또 다른 원로는 장례식장 직원에게 "3일 동안 고생 많았어요"라며 덕담을 건네기도 했다. 경찰은 조직원들의 동향을 체크하며 무전기로 교신을 주고받고 있었다. 경찰은 마지막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렇게 장례식장의 마지막 밤은 깊어갔다.

다음 날 오전 5시30분께 김씨의 빈소가 다시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고인을 보내는 발인예배가 지하 1층 영결식장에서 준비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김씨의 신앙생활에 도움을 준 것으로 알려진 최성규 인천순복음교회 목사는 이른 시각 아산병원 영결식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오전 6시께 김씨의 영정사진과 함께 유족들이 지하 1층 강당에 도착했다. 김씨의 운구가 영결식장으로 들어가고 '다시 만나자'는 찬송가가 영결식장 주위에 울려 퍼졌다. 강당 밖의 조문객들도 차분한 분위기로 김씨의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켜봤다.

오전 6시30분께 발인예배가 끝나자 운구행렬이 영구차가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350여명의 조문객들은 검은 리무진에 옮겨지는 고인의 관을 보면서 "형님 잘 가쇼"라고 외쳤다. 한 60대 남성은 "이 사람, 생전에 그렇게 멋있는 척을 하더니 먼저 가버렸구만"이라며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미리 도착한 45인승 관광버스 12대는 아산병원 장례식장 주변을 메웠다. 병원 주변에서 담배를 피우던 20대 주먹 2명은 "형님에게 혼나겠다"며 서둘러 버스에 올랐다. 그들이 탄 버스는 앞서 간 리무진을 따라 광주로 향했다.

"형님 잘 가쇼"
한줌 재로 묻혀

오전 12시께 흰 천을 두른 김씨의 시신은 화장장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김씨를 덮은 흰 천에는 십자가가 새겨져 있었다. '고 김태촌 집사 천국환송예배'를 끝으로 김씨는 그곳에서 한줌의 재로 잠들었다. 1975년 폭력조직에 몸담은 뒤 어둠의 세계를 호령했던 김씨는 그렇게 고향으로 돌아가 영원한 어둠 속에 묻혔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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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법원이 주호영 국회부의장의 대구시장 경선 컷오프 관련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항고할 뜻을 내비쳤다. 주 부의장의 강경 대응은 저조한 국민의힘 지지율과 맞물려 혼란상을 더욱 극적으로 비추고 있다. 과연 국민의힘이란 ‘대마’는 ‘불사’의 존재일까? 주호영 국회부의장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경선에서 컷오프된 것에 반발해 지난달 26일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했다.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수석부장판사 권성수)는 지난 3일 이를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곧바로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법원 결정에 반발했다. 법원 결정 바로 반발 주 부의장은 “저는 그동안 이번 컷오프가 절차·내용 모두 중대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해 왔다”며 “법원의 판단과 별개로 이번 공천 과정이 과연 당원·시민의 눈높이에 맞는 공정하고 민주적인 절차였는지는 여전히 엄중하게 따져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주 부의장은 지난 6일 항고를 제기했다. 이어 지난 8일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항고심 판단을 끝까지 지켜본 후 제 거취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선 일각에서 제기했던 무소속 출마설을 일단 유보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어 주 부의장은 “항고심 판단을 기다린다고 해서 이번 공천 난맥상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체제의 책임을 덮고 가겠단 뜻은 결코 아니”라며 “이런 공천 구조를 만든 세력과 절대로 타협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공천은 충성의 대가나 숙청의 도구가 아닌, 오직 국민 앞에 가장 경쟁력 있고 책임 있는 후보를 세우는 과정”이라고 주장하는 등 자신을 컷오프한 것을 ‘숙청’이라고 암시했다.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에 대해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6선인 주 부의장은 대구 수성에서만 국회의원을 지냈다. 대구 수성을에서는 4선을 지냈고, 수성갑에선 재선에 성공했다. 이 중 4선을 했던 지난 2016년 총선 수성을 선거에선 친박(친 박근혜)계 주도로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 출마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유 있게 이겼다. 문제는 주 부의장이 당내 최다선인 6선 의원 겸 국회부의장이라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명예가 곧 실권을 보장하진 않는다. 아울러 주 부의장이 차기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구에 출마해 7선에 도전하면,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다. 같은 6선인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조정식 의원은 각각 부산 사하을·경기 시흥을을 지역구로 두고 있다. 부산은 이미 격전지가 된 데다 조 의원은 민주당계 정당과 국민의힘 소속으로 각각 3선 했고, 경기 시흥을은 수도권이다. 국민의힘의 안정된 텃밭으로 분류되는 대구 수성을에서 7선에 도전하는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 설령 7선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도 참패 가능성이 제기되는 국민의힘이 2년 후 총선에서 다수당이 된다는 보장도, 국회의장이 되리라는 보장도 하기 어렵다. 오는 2028년 총선까지 연일 떠들썩하게 이어지는 계파 갈등을 어느 정도 안정시킨 후 대안 야당으로 발돋움하면서 이재명정부가 실정으로 지지율이 폭락하는 상황이 겹쳐야 승리를 노려볼 수 있다. 주 부의장이 국회의장에 도전하는 것도 현실적으로는 가능성이 희박하다. 불확실한 국회의장…‘텃밭 7선’ 대신 대구? 연이은 공천 가처분 세례 속 서울 지지율 13% 따라서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집념을 불태우는 것은 필연이다. 대선 패배 후 대구시장에 출마해 당선됐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전례도 있다. 주 부의장으로선 “나라고 출마 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에 있느냐”고 판단해도 무리가 아니란 분석이 있다. 대구시장으로서 임기를 마친 후 대권에 도전하거나 당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가능성은 일명 ‘주한 연대설’로 통하는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와의 연대설 때문에 불거졌다. 이는 국민의힘 이정현 전 공천관리위원장이 주 부의장을 컷오프한 직후 불거졌다.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 대구시장에 출마해 대구 수성갑에서 재보궐선거가 진행되면, 한 전 대표가 여기에 출마하는 형식으로 연대한다”는 설이다. 한 전 대표 측으로선 손해 볼 게 없다. 한 전 대표는 지난달 25일 채널A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보수 재건이 필요하다고 공감하면서 나서겠다고 했다”며 “우린 이미 연대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반면 주 부의장은 신중한 반응을 내비쳤다. 그는 지난달 26일 기자들을 만나던 중 주한 연대설 관련 질문을 받자 “제 코가 석 자인데 딴 생각할 여지가 있겠느냐”고 답변했다. 다만 무소속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선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해 준비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따라서 주한 연대설 성립 가능성 자체를 배제한 것은 아니라는 해석이 나왔다. 주 부의장의 항고 제기는 국민의힘의 치명적 문제 하나를 외부로 노출했다. 국민의힘에선 당내 처분에 대해 연이어 법원으로 달려가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가깝게는 주 부의장과 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컷오프에 대한 가처분을 신청했다. 김 지사는 주 부의장과 달리 가처분이 인용돼 경선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멀게는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배현진 의원에 대해 각각 결정했던 제명·당원권 정지 1년 징계의 효력도 법원에서 정지됐다. 4건의 가처분 모두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에서 판단했다. 재판부는 주 부의장 건에 대해서만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줬다. 장 대표는 김 지사가 신청한 가처분이 인용된 다음 날인 지난 1일 기자들과 만나 “법원이 정치에 너무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며 “재판장이 국민의힘에 와서 공천관리위원장과 윤리위원장을 하면 될 것 같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정치의 사법화가 심각할 정도로 진행된 것 같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천 관련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승리 가능성을 어둡게 하는 신호들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국갤럽은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2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상대로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직접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48%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8%로 집계됐다. 제 코가 석 잔데… 서울에선 민주당 지지율이 51%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3%로 집계됐다. 부산·울산·경남에서도 민주당 지지율은 42%로,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7%로 집계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바람). 영원한 격전지 서울에서도 양당의 지지율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여론조사 결과 수치가 공개되자,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한 지적이 날로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4일 자 사설을 통해 “국민의힘은 지금 수도권에서 후보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며 “현행법상 15% 이상 득표해야 선거 비용을 전액 보전받을 수 있는데 그에 미치지 못할까 걱정한다는 것”이라며 현실을 짚었다. 이어 “말로만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선언했을 뿐 실제로는 반대로 하고 있다”며 “공천 혼란에 대해서도 가처분을 인용한 법원 탓만 할 뿐, 어떻게 수습하고 책임질지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등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조선일보>의 주장대로라면, 수습·책임을 맡을 당 대표는 보이지 않는 셈이다. 해당 매체는 “어렵게 나선 후보들은 국민의힘 상징색인 빨간색을 포기하고 흰색 점퍼를 입고 다닌다”며 “인구가 1300만명에 달하고 국회의원 의석수도 가장 많은 경기도에선 지사 출마자를 구하지 못해 공천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는 현실도 짚었다. <조선일보>가 짚은 국민의힘의 현실은 신체를 통제할 두뇌 없이 거대한 군집을 이룬 채 각자의 역할을 맡은 군집 생물에 비유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관해파리를 들 수 있다. 관해파리는 겉으로 볼 땐 덩치 큰 해파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각각의 역할을 맡은 독립 개체들이 모인 군집이다. 이 개체들은 먹이 섭취·이동·번식 등 각각의 역할만을 담당한다. 각각의 개체들은 생존을 위해 서로 연결돼있지만, 이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뇌는 없다. 개체 중 누군가가 제 역할을 못하면 모두 죽는다. 단세포생물인 점균류도 먹이를 찾을 때, 각자의 세포가 알아서 효율적인 길을 찾는다. 이를 통제할 뇌는 없지만, 화학적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최적의 경로를 결정한다. 그런데 잘못된 경로를 찾으면 방향을 틀 능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는 것은 군집 전체가 굶어 죽는 일이다. 페로몬을 통해 신호를 주고받는 군대개미 집단도 선봉에 선 개미가 길을 잃으면 모든 개미가 원을 그리다가 지쳐 죽는다. 제 역할 못하면… 이탈리아의 정치학자 조반니 사르토리는 원심적 경쟁 이론을 주장했다. 보통의 민주주의 국가에선 정당이 중도층의 표심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강경한 여당과 무책임한 야당이 양립할 땐 정당이 중도층을 설득하기보다 진영 결집에 따른 조직표 구성에 몰두한다. 이런 구도에선 중도층이 정치에서 배제되고, 정치적 대화도 단절된다. 이런 상황에선 후보자들은 당의 승리와 중도 확장을 포기하고, 강성 핵심 지지층의 지지를 얻으려고 노력한다. 중도층이 정치에 냉담해지면서 설득 가능 대상으로 강성 핵심 지지층만 남기 때문이다. 가성비 높은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아울러 후보자들이 지도부를 거부하면서 강성 핵심 지지층에게만 구애하는 각자도생에 몰두한다. 이는 결국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준비 과정에서 서울시장·경기도지사 경선에선 구인난에 빠졌지만, 대구시장·경북도지사 경선은 열기가 과도한 것도 이와 비슷하다. 특히 대구시장 경선엔 국회부의장·경제부총리·원내대표 등 당정의 핵심을 지낸 인사들이 모두 출마했기 때문에 더욱 눈에 띄고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리처드 카츠와 아일랜드의 정치학자 피터 메어는 정당을 카르텔·프랜차이즈 기업에 비유하는 독특한 이론을 발표했다. 카츠와 메어는 “현대 정당이 시민의 자발적 후원보다 국가의 정당 보조금·공천권 등 국가의 자원에 의존해 서로 담합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앙당과 지역구 후보의 관계를 본사와 가맹점주 관계로 규정했다. 따라서 중앙당이 자원을 적절히 배분하지 못하거나, 시장에서 자원의 가치가 폭락하면 가맹점주의 불만이 폭발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을 매개로, 캐나다의 정치학자 켄 카티는 “정당이 실제로 프랜차이즈 시스템으로 바뀌고 있다”고 주장했다. 카티에 따르면, 정당은 브랜드로서만 기능하고, 선거에선 후보가 중앙의 브랜드를 빌려온다. 공천은 결국 이들 간 계약 관계 역할을 한다. 이는 실제 정치적 현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일 서울 쌍문역 일대 쌍리단길을 방문했다. 오 시장의 현장 방문에 동행한 국민의힘 소속 서울시의원들과 도봉구의원들은 국민의힘의 상징색 빨간색이 아닌 흰색 점퍼를 입었다. 오 시장도 서울시 로고가 새겨진 흰색 점퍼를 입고 현장을 돌아다녔다. 지난달 31일 진행된 국민의힘 서울시장 본경선 후보들 대상 첫 토론회에서도 후보들은 장 대표를 비판했다. 이들은 “흰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동그라미 푯말을, 빨간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엑스 푯말을 들어달라”는 진행자의 요구에 일제히 엑스 푯말을 들었다. 오세훈 ‘흰색 점퍼’ 현장행 “빨간색 입고 싶다” 대우그룹·프랑스 사회당 등 한순간에 망한 대마들 하지만 말은 날카로웠다. 오 시장은 “빨간색 점퍼를 입고 싶은 마음을 엑스 푯말을 들어 표현해 봤다”고 말했다. 미래통합당 윤희숙 전 의원은 “흰색 옷을 입어야 하는 사람은 장 대표”라며 “이번 공천이 마무리되면 백의종군을 결심해 달라”고 요구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빨간 당 출신이 빨간색을 안 입는 자기모순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도 “장 대표가 확장하지 못했다면 후보들이 확장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달엔 장 대표의 지원 유세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본사에 대한 가맹점주들의 집단행동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서울시당위원장을 맡은 배 의원도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의 서울 지지율 13%의 주역 장동혁 지도부가 기초단체장 후보를 못 구한 지역의 후보를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방선거 패배 가능성이 내·외부에서 연이어 제기되고 있지만, 국민의힘 지도부에 대해선 “변화할 의지도, 대책도 없는 것 같다”는 평이 나온다. 이 같은 상황은 카츠와 메어가 이미 이론적으로 짚었다. 이들은 “카르텔 정당은 국가 자원을 독점하기 때문에 ‘우리는 망하지 않는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고 지적했다. 바둑으로 치면, 국민의힘은 여러 개의 돌로 넓게 자리 잡은 곤마인 ‘대마’와 비슷하다. 시사 분야에서 관용적으로 잘 쓰는 표현 중 하나는 ‘대마불사’다. “대기업이나 대형 금융기관은 국가의 지원을 받아 망하지 않는다”는 관용 표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1990년대 후반 IMF 금융위기는 대마불사로부터 비롯됐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상황은 당시 재계 2위였던 대우그룹의 해체였다. 김우중 당시 회장은 ‘세계 경영’이라면서 해외 업체를 공격적으로 인수했다. 그러다 IMF 금융위기를 맞아 구조조정을 거쳤지만, 삼성자동차를 받고 대우전자를 주는 빅딜 과정에서 엄청난 빚을 져 결국 워크아웃을 선언했다. 김 전 회장도 해외로 도피했다. 대우그룹은 그렇게 해체됐다. 국제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1990년대 초반 캐나다의 집권당 진보보수당은 경제 실정과 내부 갈등 끝에 구심력을 잃고 연이은 당원 탈당 사태를 겪었다. 그 결과 150석을 넘게 보유했던 거대 여당이 선거 한번에 2석만 건지는 참패를 당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프랑스에서도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을 극복하지 못했던 사회당은 지난 2017년 대선을 앞두고 강경한 좌파 성향 브누아 아몽 대선후보를 선출했다. 그러자 사회당 소속 정치인 다수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창당했던 신생 정당 앙 마르슈로 옮겼고, 당은 선거에서도 참패했다. 반대로 민주당은? 민주당은 대구시장 선거 승리를 위해 대구에서 일정한 기반을 갖추고 있고 선거 승리 경험도 있는 김부겸 전 총리를 대구시장 후보로 선출했다. 이어 지난 8일엔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김 후보와 함께 대구 농수산물도매시장을 방문하는 등 승리 의지를 드러냈다. 구인난을 겪고 있는 국민의힘과 달리, 민주당에선 추미애 의원이 치열한 경선 끝에 경기도지사 후보로 선출돼 주목받고 있다. 대마불사는 과연 영원한 걸까. 대마불사만 믿고 배짱 영업을 해도 되는 걸까. 대우그룹 해체는 국민의힘에 어떤 의미를 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