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사회팀] '황마담'으로 유명한 개그맨 오승훈이 지난 10월 경찰 조사를 받았다. 오씨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잘나가는 연예인 출신 CEO로 통했다. 웨딩사업부터 외식사업까지 손을 뻗친 그는 두 달 후 투자자들에게 수십억원의 피해를 입힌 혐의로 경찰에 붙잡혔다. 오씨는 대체 무슨 사업에 실패한 것일까.
개그맨 오승훈(41·예명 황승환)씨는 연예계 데뷔 전 사업가로 활동했다. 1993년 유한공업전문대를 졸업한 그는 자신의 친구들과 한 디자인 회사를 설립했다. 당시 영업을 담당했던 오씨는 1년 동안 수억 원의 매출을 올리는데 기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1994년 오씨는 사업을 잠시 포기하고 개그맨의 길에 들어섰다. 1995년 KBS <대학개그제>를 통해 데뷔한 오씨는 1997년 열린 KBS <코미디대상>에서 신인상 후보에 오르는 등 개그맨으로서의 가능성도 인정받았다.
꿈틀댄 사업본능
그러나 당시 오씨는 사업을 향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연예 활동을 접고 그가 향한 곳은 일본. 재일 한국인들을 상대로 한 술집을 열고자 했던 그는 대부분 시간을 사업을 준비하는 데 활용했다.
1998년, 오씨는 일본에서의 사업계획을 접고 급작스런 귀국을 선택했다. 한국에서의 친생자부존재 확인 소송 때문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오씨는 자신의 이름이 모두 3개(황승환·오승훈·조승환)라는 사실을 밝혀왔는데 귀국 후 유산 상속문제로 숨겨진 아버지의 존재를 알게 됐고, 그 뒤 약 1년가량 재판을 진행했다는 것이 스스로 밝힌 방송 공백의 이유였다.
2년간의 긴 외도 끝에 오씨는 KBS 2TV <개그콘서트>에 출연하면서 연예 활동에 전념했다. 1999년 9월 첫 방송부터 여자 캐릭터를 선보였던 그는 '황마담'이라는 여장남자 역할을 맡으면서 유명세를 치렀다.
황마담 캐릭터를 소화하기 위해 실제 룸살롱의 마담들과 잦은 만남을 가졌다는 그는 '승순이'란 캐릭터까지 연이어 히트시키며 국민적인 인기를 누렸다. '알면서' '훌쩍 훌쩍 삐짐' 등의 유행어도 이때 만들어진 것. 그는 동년배 개그맨 중 정상급 개그맨으로 분류되며 전성기를 맞이했다.
그러나 오씨는 바쁜 연예활동 중에도 의상사업과 주류사업에 관심을 보였다. 먼저 2002년 2월 의류점을 개장했는데 결과는 신통치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원금도 회수하지 못한 채 폐업을 맞이한 오씨는 동료 개그맨 강성범에게 동업을 제의했다. 서울 청담동에 오픈한 포장마차 '천국'은 고급 주점을 표방하며 성공을 거두는 듯 했으나 다른 투자자의 사기로 불과 3개월 만에 문을 닫았다.
이와 거의 동시에 오씨의 인기도 사그라졌다. 같은 해 교통사고로 개그콘서트에서 하차한 오씨는 의욕을 갖고 SBS <웃찾사>에 도전했지만 그곳에서의 생활은 3주 만에 끝이 났다. 이로부터 6개월 후 오씨는 <개그콘서트>로 다시 연예계에 복귀했다. 그러나 재기를 노린 오씨에게 전성기만큼의 인기는 돌아오지 않았다. 다만 최고참으로서 '군기반장' 역할에는 충실했다는 평가가 있었다. 연예인과 사업가 사이에서 고민하던 오씨는 '황마담웨딩컨설팅'을 설립하며 2006년 사업가로서 본격적인 행보를 시작했다.
주식 부자인줄 알았더니…몽땅 사채 담보로
회사돈 59억 빼돌린 혐의 불구속 수사받아
사업가로 변신에 성공한 오씨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사업을 결심한 순간 10년의 계획을 세웠다"고 말했다. 웨딩사업으로 시작했지만 돌잔치 기획, 베이비 스튜디오 나중엔 장례사업까지 황마담이란 브랜드를 붙이는 게 목표라고 했다. 실제로 그는 웨딩사업 진출 이후 청담동에 '황마담 베이비 스튜디오'를 열었다. 연예계 활동 당시 인맥을 맺었던 박성호, 정종철 등 동료 개그맨들이 그의 사업을 도왔다. 계획에 없던 국수 프랜차이즈 '개그맨 황마담의 알면서'도 논현동에 론칭했다. 미스코리아 출신 아내 박윤현이 그를 내조했다. 2006년 본격적인 사업을 시작한 후 오씨는 거칠 것이 없었다. 경기 안산에 위치한 대형 결혼식장인 '아이스타 웨딩홀'까지 관리하는 그에게 '성공한 CEO'란 수식어는 당연해 보였다.
그렇게 사업을 시작한 지 5년째 되던 해에 오씨는 마이크형 노래방기기 제조업체인 '엔터기술'의 주주총회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날 오씨는 이 회사 주식의 23.6%인 200만 주를 80억원에 사들였다. 이와 함께 오씨는 이른바 '연예인 주식 부자' 반열에 이름을 올렸다. 주식 보유액이 모든 연예인을 통틀어 7위라는 인터넷 기사가 등장했다.
증권가도 민감하게 반응했다. 오씨가 최대주주라는 소문이 돌자 '연예인 테마주'가 만들어졌고, 1100원이던 주식은 어느덧 2400원까지 치솟았다. 9억9000만원 규모의 소액 유상증자에 1000억원 가까운 청약금이 몰렸다. 엔터기술 부회장에 취임한 오씨는 어릴 적 자신의 꿈이었던 엔터테인먼트사업에 진출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하지만 거짓이었다. 엔터기술 소속 인수합병(M&A) 전문가 박모(41)씨는 '황마담'을 얼굴마담으로 이용했다. 연예인을 내세워 자금을 쉽게 확보하기 위해 오씨를 엔터기술 간판으로 내세운 것. 이미 사건이 커지기 전부터 이상 징후는 여러 곳에서 포착됐다. 금융감독원은 투자주의 환기종목으로 엔터기술을 지정했고, 불성실 공시법인으로도 지목했다. 경영은 점차 악화됐고 주가는 80% 넘게 폭락했다. 오씨의 앞엔 추락하는 길만 남아 있었다.
그리고 오씨에게는 갚아야 할 거액의 빚이 남아 있었다. 박씨 등은 서울 명동의 한 사채업자에게 오씨 명의로 45억원의 인수 대금을 빌렸다. 실제 오씨는 이렇게 마련한 주식을 모두 사채업자에게 다시 담보로 제공했다. 결국 오씨는 수중에 한 주의 주식도 없는 일명 ‘바지사장’ 구실을 하고 있었던 셈이다. 회사의 수익은 모두 사채 빚을 갚는데 불법으로 쓰였다.
빚 갚느라 쩔쩔
이 사건을 쫓던 경기경찰청은 지난 18일 특경가법상 업무상횡령·배임 혐의로 오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현재 오씨는 회삿돈 59억원을 빼돌린 박씨 등과 공모한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고 있다. 드러난 사실로 볼 때 유죄 판결을 피하긴 어려운 상황이다.
지난 2010년 오씨는 사석에서 한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했다.
"연예인 중 부업으로 사업하는 경우는 많아요. 그런데 저는 그냥 이름만 걸어두고 지분만 가진 소위 '바지사장'은 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열심히 했습니다."
잘나가던 개그맨에서 자신이 바라던 사업가를 택한 오씨, 대박사장이라 불렸던 그는 이제 바지사장이란 오명을 피할 수 없게 됐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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