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사회팀] 로또 1등 당첨자들의 인생이 모두 '장밋빛'인 것만은 아니다. 최근 로또 1등 당첨자들 가운데 전과자가 되거나 자살까지 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행복한 인생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믿었던 로또당첨이 오히려 인생을 망친 것이다. 성실하게 자장면 배달부로 일하던 A씨도 로또 당첨 이후 1년 만에 모든 재산을 탕진하고 폭행혐의로 감옥에 가게 됐다.
인천 남동구에 위치한 중국음식점에서 자장면 배달부로 일하던 A(42)씨는 지난해 10월 로또 1등에 당첨됐다.
당첨금은 무려 19억여원. 세금을 뗀 실수령액만도 약 13억원이나 됐다. 뜻밖의 '일확천금'을 거머쥐게 된 그는 완전히 다른 인생을 살려 했다. 하지만 '인생역전'의 꿈은 1년 만에 무너졌다. 그는 현재 아내를 상습적으로 폭행한 혐의로 감옥에 있다.
날아간 인생역전
지난해 A씨는 당첨금을 받자마자 자장면 배달부를 그만뒀다. 10억이 넘는 거금을 어디에 투자할지 고민하다 펀드에 발을 들였다. 이후 A씨는 양복을 쫙 빼입고 고급승용차를 몰고 다니며 가는 곳마다 자신이 투자한 펀드얘기를 하고 다녔다. 그는 또 펀드매니저 행세까지 했다.
주변사람들도 A씨가 억 소리 나는 투자얘기를 하고 돈을 뿌리고 다니자 돈 많은 투자자라 여겼다. 어떤 주식을 사는 것이 좋을지 묻는 이들도 생겨났다.
이혼 한 A씨는 지인 소개로 혼자 살고 있던 B(42)씨와 결혼했다. B씨는 A씨가 주식으로 돈을 많이 번 펀드매니저라고 믿었다. 하지만 결혼 뒤 A씨는 방탕한 생활을 했다. 가는 곳마다 돈을 펑펑 써댔고 밤에는 과음을 일삼았고 하는 일이라곤 로또복권 사서 확인하는 것이 전부였다. 또 룸살롱에서 하룻밤에 수백만원을 쓰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속아 결혼한 B씨는 A씨에 대한 불만이 극에 달했고 서로 고성을 지르며 다투는 날이 늘어갔다.
문제는 단순 부부싸움에서 그친 게 아니라는 것. 지난 2월부터 7월까지 A씨는 B씨를 상습적으로 폭행했다. 폭행 과정에서 A씨는 불로 달군 흉기로 B씨를 위협하고 B씨의 옷을 찢은 후 담뱃불로 다리를 지지는 등 잔인한 행위도 서슴지 않았다. 심지어 B씨에게 흉기를 주면서 스스로 목숨을 끊을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B씨는 남편의 폭력도 견디기 힘들었지만 남편 친척들이 로또 당첨소식을 듣고 찾아와 돈을 요구하는 일이 반복되자 더 이상 결혼 생활을 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집을 빠져나와 별거에 들어갔고 A씨에게 협의이혼을 요구했다.
A씨는 아내가 자신의 돈을 빼돌렸다고 의심했다. 이를 추궁하기 위해 A씨는 지난 7월 B씨를 자신의 아파트로 불러 함께 술을 마시며 4시간여 동안 이야기를 했다. 이 과정에서 A씨는 그동안 가졌던 의심을 언급하며 화를 냈다.
40대 자장면 배달부 1년 전 19억원 당첨
부자행세하다 패가망신…아내 폭행 구속
A씨는 B씨가 자기 통장에서 1억5000만원을 몰래 빼내 주식 투자를 했다가 모두 날렸다고 여겼다. 하지만 B씨는 "그런 일이 없다"고 맞섰다. 이에 A씨는 "사실대로 말하면 용서해 주겠다"고 몰아붙였고 서로 악감정만 커져갔다. 결국 B씨가 화를 내며 포크를 집어 던졌다. 흥분한 A씨는 B씨를 주먹과 발로 마구 때렸다. B씨는 새벽 3시께 A씨의 집에서 맨발로 뛰쳐나와 남편에게 폭행당했다며 경찰에 신고했다.
신고를 받은 인천 남동경찰서는 지난 7월 A씨를 불구속 입건했고 인천지검 형사4부(부장검사 안성수)는 지난 4일 A씨를 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A씨는 검찰 조사에서 "술을 먹고 우발적으로 아내를 때렸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관계자는 "당초 경찰로부터 A씨에 대한 단일 폭력 사건만을 송치받아 A씨를 불구속 기소했으나 이후 A씨에 대한 추가 범행 사실이 담긴 고소장이 접수돼 수사한 결과 A씨의 범죄가 중하다고 판단해 구속했다"고 밝혔다. A씨는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로또 당첨금을 거의 다 날리고 통장에 5000여만원 정도만 남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로또 1등 당첨으로 인생역전을 꿈꾸었지만 어마어마한 당첨금은 방탕한 생활로 금세 탕진했고 아내를 폭행한 범죄자로 전락한 것이다. 로또 1등 당첨 이후 '패가망신'한 사람은 A씨뿐만이 아니다.
2005년 인생역전의 기회를 맞은 평범한 가장 C씨는 실수령액 18억여원을 받았다. 그는 직장을 그만두고 당첨금으로 개인 사업을 벌이다 2년여 만에 돈을 모두 날렸다. 결국 그는 지난 7월 광주의 한 목욕탕 남자 탈의실에서 목을 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006년 경남에 살던 D씨도 로또 1등에 당첨돼 실수령액 14억여원을 받았다. D씨는 도박과 유흥에 빠져 8개월여 만에 당첨금을 모두 탕진했다. 속칭 '포커' 게임에 중독된 것이 결정적 원인이었다. 빈털터리 신세가 된 D씨는 도박 자금과 유흥비를 마련하기 위해 2007년과 2008년 두 차례에 걸쳐 금은방을 털다 결국 붙잡혀 감옥에 갔다.
행운이 비극으로
2010년 5월 포항에서는 로또 1등에 당첨돼 실수령액 15억여원을 받은 50대 남성이 손윗 동서가 휘두른 흉기에 목이 베어 숨지는 비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당시 이 사건은 로또 1등의 행운이 파국을 부른 것으로 추정됐다. 숨진 E씨는 로또 당첨 이후 아내와 별거하더니 이혼소송을 진행하고 있었고 손윗 동서에겐 4000만원을 빌려줬었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친척 간 불화를 넘어서 원한에 의한 살해까지 이어지게 된 것이다.
이처럼 로또 당첨으로 화목했던 가정까지 파탄 나는가 하면 거액을 흥청망청 쓴 뒤 목숨을 끊거나 범죄의 유혹에 빠져드는 사례가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엄청난 행운이 찾아와도 현명하게 행동하지 못하는 순간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이다. '로또열풍'의 씁쓸한 이면인 셈이다.
김민석 기자 <ideaed@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