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분석] 재벌가 ‘가족형 비리’ 막전막후

  • 김설아 sasa7088@ilyosisa.co.kr
  • 등록 2012.12.04 11: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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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 검찰행…따로 법원행…같이 철창행

[일요시사=경제1팀] 국내에서 ‘감옥’ 한 번 가지 않고 기업을 경영하기란 쉽지 않은 모양이다. 내로라하는 재벌 총수들은 하나 같이 온갖 비리를 저질러 왔고, 이에 상응하는 전과 경력을 가지고 있다. 이제 이들이 휠체어를 타고 법원 앞에 나타나는 것은 예삿일이 됐다. 최근엔 모자가 나란히 전과경력을 달거나 삼부자가 함께 기소되는 등 ‘가족형 범죄’가 늘고 있어 이목이 쏠리고 있다.

대기업, 재벌 총수들의 비리가 잇따라 불거지고 있다. 특히 부부·부자·형제 등이 함께 의기투합해 저지르는 ‘가족형 범죄’가 적지 않다. 이들은 시 예산과 맞먹는 규모의 탈세를 저지르는가 하면 회사 재산을 개인 돈처럼 함부로 빼돌리는 등의 혐의로 저마다 검찰과 법원에 출석도장을 찍고 있다.

나란히 서초동 출두
그 아버지에 그 자식

피죤 이윤재 회장과 이 회장의 장녀 이주연 부회장은 최근 나란히 검찰조사를 받았다.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3부(김한수 부장검사)는 회삿돈으로 수십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로 이들을 불러 조사했다고 지난달 27일 밝혔다.

이 회장 부녀는 하청업체 거래대금을 부풀려 지급했다가 차액을 돌려받는 등의 방법으로 수십억원 규모의 비자금을 만든 의혹을 받고 있다. 검찰은 이들 부녀가 돈을 빼돌리는 과정에 직접 개입했는지 등을 추궁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검찰은 피죤 소유주 일가와 경영진이 거액의 회삿돈을 빼돌린 정황을 잡고, 지난 6월 서울 역삼동에 있는 피죤 본사 등을 압수수색하고 임원진을 소환 조사했다.


국세청은 지난 1월부터 특별세무조사를 벌여 이 부회장이 2010년 세금감면 등 청탁목적으로 북인천세무서 직원들에게 200만원을 돌린 사실을 밝히기도 했다.

이 회장은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낸 이은욱 전 사장을 청부 폭행한 혐의가 인정돼 지난해 10월 1심과 2심에서 10개월의 실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수십억 비자금 피죤 부녀…세금탈루 동아 부자
LIG 삼부자 사기 혐의…태광 모자 거액 횡령극

부자가 함께 검찰에 고발된 사례도 있다. 최원석 전 동아그룹 회장과 차남은 최근 조세범처벌법 위반으로 검찰에 고발됐다.

서울지방국세청은 6억6000만원의 세금을 체납한 최 전 회장을 체납처분 면탈 혐의로, 차남에게는 체납처분 면탈 방조 혐의를 적용해 수원지검 평택지청에 수사를 의뢰했다.

최 전 회장은 지난해 12월 본인 소유의 미국 캘리포니아주 빅혼골프클럽의 회원권 환급금 25만달러(한화 약 2억7000만원)를 국세청 눈을 피해 차남에게 양도했고 차남은 부친의 체납사실을 알고도 돈을 받았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국세청은 차남이 보유한 25만달러에 대해 압류조치도 했다. 최 전 회장은 또 자신이 이사장으로 있는 학교법인 공산학원의 공금 10억원을 빼돌린 혐의도 받고 있다.


사기성 기업 어음을 발행한 구자원 LIG그룹 회장과 그의 두 아들 등 삼부자는 지난달 15일 이례적으로 동시 기소됐다. 검찰은 재산을 지키려고 금융시장에 폭탄을 투척한 셈이라고 기소 이유를 밝혔다.

LIG 건설은 지난 2009년부터 1894억원 상당의 기업어음과 257억원 상당의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을 집중적으로 발행했고 투자자 1천여 명은 2150억 원 어치의 어음을 구입했다.

그런데 지난해 3월, 재무상황에 이상이 없다던 회사가 갑자기 법정관리에 들어갔고 LIG건설의 기업어음은 휴지조각이 됐다. 손실은 고스란히 일반 투자자들에게 전가됐다.

‘사기성 CP의혹’을 수사해 온 검찰은 구 회장 일가가 LIG건설이 법정관리에 들어갈 경우 계열사의 경영권을 상실할 것을 우려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판단했다.

LIG건설은 금융기관에서 투자를 받으며 그룹 계열사의 주식을 담보로 맡긴 상태였다. 그러나 LIG건설을 파산시킨 직후 계열사 주식을 되찾았다. 앞서 일반 투자자에게 기업어음 등을 팔아 조달한 2000억여원을 재원으로 활용했다.

삼부자 사기극서
휠체어 모자까지

검찰은 또 구 회장 일가가 2009년부터 1500억원대의 분식회계를 저질러 LIG건설이 발행한 기업어음의 신용등급을 ‘투자적격’으로 조작한 사실도 확인했다. 검찰은 이례적으로 구 회장 삼부자 모두를 기소하면서 죄질이 좋지 않다고 강조했다.

함께 구속된 모자도 있다.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과 그의 어머니 이선애 전 태광산업 상무는 지난 2월 1400억여원을 빼돌리거나 회사에 손해를 끼친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실형을 선고 받았다. 이후 건강 악화를 이유로 이 전 회장과 이 전 상무는 각각 보석과 구속집행정지 허가를 받아 같은 병원에서 치료 중인 상태다.

지난달 27일 열린 2심에 항소심 결심공판에서 이 전 회장은 휠체어를 타고, 이 전 상무는 의료용 침대에 누워 등장했다. 이날 검찰은 이 전 회장에게 징역 7년과 벌금 70억원을 구형했고 모친인 이 전 상무에게는 징역 5년과 벌금 70억원을 구형했다.

앞서 검찰은 지난해 1월 검찰에 소환될 당시 태광그룹 모자의 ‘휠체어 출석’을 비판한 바 있다. 검찰은 당시 ‘재벌 오너와 휠체어’라는 자료를 배포하며 그 행태를 꼬집었다. 자료에는 “한국 재벌 총수들은 곤란할 때면 휠체어로 탈출한다”고 비판한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의 기사가 담겨 있었다.

SK그룹 형제는 계열사 자금을 횡령한 혐의로 검찰 구형을 받았다. 검찰은 지난달 22일 서울중앙지법 심리로 열린 최태원 SK그룹 회장 결심공판에서 계열사 자금 636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최 회장에 대해 징역 4년을 구형했다.

검찰은 최 회장이 2008년 선물에 투자하기 위해 SK 계열사 자금 497억원을 빼돌렸고, 2005년부터 5년간 그룹 임원들에게 지급하는 상여금을 부풀리는 방법으로 139억원을 빼돌린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최 회장의 동생 최재원 SK그룹 수석부회장에 대해서도 최 회장과 공모해 자금을 횡령하는 등 총 1943억원의 횡령·배임 혐의가 있다며 징역 5년 구형했다.

‘오너 형제·부부’   
횡령으로 의기투합

검찰에 따르면 최 회장 형제는 1998년과 2003년 각자 지인을 통해 소개받은 김원홍 전 SK해운 고문을 통해 선물옵션 투자에 나섰다.

검찰은 이 과정에서 최 회장 형제가 주요 SK그룹 계열사 18곳이 창업투자사 베넥스인베스트먼트에 투자한 2천800억원 중 450억원을 김씨에게 투자하는 방법으로 모두 497억원의 회삿돈을 빼돌린 것으로 보고 있다.

최 회장은 또 2005∼2010년 계열사 임원들에게 매년 성과급을 과다 지급한 후 이를 SK홀딩스로 되돌려 받는 방식으로 139억5천만원의 비자금을 조성한 뒤 개인경비 등으로 사용한 혐의도 받고 있다.

최 회장이 검찰 구형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는 지난 2008년 5월에도 1조5000억원의 SK글로벌 분식회계로 징역 3년·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은 후 78일 만에 사면된 바 있다. 검찰은 “최 회장은 동종의 전과가 있고 법원에서 반성하는 모습도 보이고 있지 않다”며 “반드시 실형이 선고돼야 한다”고 말했다.

유경선 유진그룹 회장과 동생 유순태 EM미디어 대표는 지난달 12일 특임검사의 소환조사를 받았다. 유진그룹 측은 서울고검 김모 검사에게 6억 원을 건넨 의혹을 받고 있다.


특임검사팀은 유 회장 형제를 상대로 김 검사와의 관계, 금품 전달 경위와 규모, 대가성 여부 등을 집중 추궁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다단계 사기꾼 조희팔 측근 강모씨로부터 2억4000만원, 유순태 대표로부터 6억원을 받은 혐의로 김 검사에 대한 수사를 개시했다.

지난달 16일엔 프라임그룹 비자금 의혹 사건 핵심 피의자인 백종안 전 프라임서키트 대표가 검거됐다. 프라임그룹 비자금 의혹 사건은 2008년, 백종헌 프라임그룹 회장의 동생 백종진씨 등이 그룹 계열사로부터 수 백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사건이다.

검거된 백씨는 백종진씨의 둘째형으로 당시 이사회 결의를 거치지 않고 100억 원의 약속어음을 발행해 자신이 운영하던 중소기업에 손해를 입힌 혐의로 체포영장이 청구됐으나, 3개월 뒤 수사를 피해 국외로 도피했다. 지난 10월 28일엔 ‘알파벳’ 오타로 인천공항으로 귀국한 그를 놓쳐 논란이 됐다.

SK·유진·프라임그룹 형제 나란히 수사·재판
총수일가 경영참여 늘면서 의기투합 범죄 늘어

프라임그룹의 검찰 조사발 악재는 형제 뿐만이 아니다. 지난 5월엔 200억원대 불법대출 지시 혐의를 받고 있는 백종헌 프라임그룹회장과 백 회장의 부인 임명효 동아건설 회장이 재판에 넘겨졌다.

백 회장 부부는 지난 2005년 11월부터 2010년 12월까지 담보가 부실하거나 아예 없는데도 200억원대 부실대출을 지시한 혐의를 받고 있다. 백 회장은 상호저축은행법이 금지한 타 저축은행과의 수십억원대 교차대출에 나선 혐의도 받고 있다.

검찰 수사 결과 백 회장은 프라임그룹의 대우건설 인수지원을 노리고 재무상태가 극도로 열악한 부동산업자 박모씨에 대한 35억원 규모 차명대출을 김선교 전 프라임저축은행장(구속기소)과 공모한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차명차주조차 금융권 부채가 98억 원에 달했다고 설명했다.

또 백 회장의 부인 임 회장은 2007∼2008년 프라임저축은행 회장으로 재직하며 본인의 미술품 구매대금 19억원 상당을 대출로 충당한 혐의를 받고 있다.

전문가들은 잇따른 재벌 총수들의 ‘가족형 비리’에 대해 “우리나라 재벌의 독특한 구조”에 원인이 있다고 꼬집었다. 계열사 간 순환 출자나 피라미드형 지배 구조를 통하여 총수 일가가 극히 적은 지분으로 광범한 기업집단을 배타적으로 지배하는 가족형 기업이라는 점이 그것이다.

한 경제연구소 관계자는 “단순히 총수 일가가 적은 지분으로 과다한 지배력을 행사해 왔다는 것 뿐 아니라 그동안 전략적 경제성장 과정에서 많은 특혜를 입고 성장하였는데도 사회적 책임을 소홀히 했고 부의 축적과 그 승계 과정에서 적지 않은 탈법과 편법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이 관계자는 “재벌총수들의 범죄행각은 집행유예 등 비교적 가벼운 처벌로 일단락되는 것도 문제”라며 “사법처리 이후 아무 일 없는 듯 공식 활동을 이어가는 것도 그 덕분아니겠냐”고 비판했다.

실제로 그룹 내부에서는 총수의 ‘아픈 과거’를 ‘한때의 과오’정도로 받아들이는 입장이다. 재계 일각에서는 이 같은 재벌가의 각종 비리가 불가피한 ‘시대의 희생양’이었다고 설명하기도 한다.

총수 일가 비리는
시대의 희생양?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대한민국은 다시 출발점에 섰다. 유력 대선주자들은 앞 다퉈 ‘재벌개혁’ 공약을 내세우고 있다. 재벌 규제 가운데 눈여겨 볼 점은 단연 기업범죄 처벌 강화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와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 모두 사면권 및 집행유예를 제한하는 방안에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따라서 대기업 총수 일가가 경제 범죄로 처벌 받을 경우 장기간 경영 공백 현상은 물론 기업 이미지 타격 등을 불러올 수 있을지, 재계에 실제 미치는 영향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휠체어 탄 재벌 총수들의 ‘쇼’를 언제까지 봐야 하나요?”라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과연 그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김설아 기자 <sasa708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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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장 올인’ 민주당 그래도 불안한 이유

‘서울시장 올인’ 민주당 그래도 불안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내년 6월 치러질 지방선거의 최대 격전지는 단연 서울시다. 서울시에 깃발을 꽂는 쪽이 전체 선거의 승리라 봐도 무관하다는 해석도 나온다. 진보 진영에서는 당원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오세훈 대항마’를 자처하는 후보군이 속속 등장했지만, 서울 시민의 마음까지 얻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지난 10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전국 지역위원장 워크숍에서 제9회 지방선거(이하 지선) 승리라는 목표를 세웠다. 이달 중으로 지선 공천 룰을 확정해 빠르게 선거에 임하겠다는 방침이다. 큰 틀로는 ▲당원 민주주의 실현 ▲완전한 민주적 경선 ▲깨끗하고 유능한 후보 선출 ▲여성·청년·장애인 기회 확대 등 4대 방향이 제시됐다. 출사표 만지작 민주당은 이번 지선의 성격을 ‘완전한 내란 종식’으로 규정했다. 민주당 전국 지역위원장은 워크숍에서 ‘이재명정부 성공과 지선 승리를 위한 더불어민주당 전국지역위원장 결의문’을 통해 “국민의 준엄한 명령을 받들어 민생회복·내란청산·개혁완수라는 역사적 사명을 반드시 이루어 낼 것을 결의한다”고 밝혔다. 내년 지선서 압도적 승리를 이끌어냄으로서 ‘무능 부패한 국민의힘 지방권력’을 심판하고 ‘진짜 자치분권 균형성장’의 시대를 만들겠다는 방침이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 또한 “이정부 성공을 위해 당이 무엇을 할 것인지에 모든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다가오는 지선은 민주당의 책임과 기회의 시험대다. 당의 힘을 모아 이정부의 성공과 지선 승리라는 두 목표를 함께 이뤄낼 것”이라고 밝혔다. 주목도가 높은 서울시장 선거 최종 후보가 되는 것만으로도 존재감을 키울 수 있다. 차기 서울시장 임기는 2030년으로 21대 대통령선거 시기와 맞아떨어진다. 그동안 서울시장은 대선주자로 가는 지름길로 여겨졌던 만큼 정치인으로서 큰 꿈을 꾸는 이들에게는 ‘일생일대의 기회’다. 민주당은 서울시장 선거 본선행 티켓을 놓고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원내 의원들의 공식 출마 선언 이후에도 자칭타칭 물망에 오른 진보 인사들이 시기를 재고 있어 다양한 경선 구도가 그려질 것으로 관측된다. 박주민 의원은 민주당 내에서도 가장 먼저 공식 출마 의사를 밝힌 인물이다. 그는 “서울이 ‘맏이’ 역할을 하며 지방 도시들과 함께 성장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며 일찌감치 선거판을 예열했다. 뒤이어 민주당 서영교 최고위원이 출사표를 던졌다. 조희대 대법원장 저격수를 자처하며 존재감을 키운 그가 이번에는 “서민을 위해 일 잘하는 시장이 필요하다”며 오세운 서울시장 대항마로 나섰다. 서 최고위원은 “(오 시장은) 토지거래허가구역을 무리하게 해제하면서 부동산 폭등을 자초했다”며 “이태원 참사의 충격이 채 가시지도 않은 시점에서 큰 책임이 있는 용산구청장에게 서울시 주최 지역축제 안전관리 대상을 주는 등 시민의 요구, 시대의 요구를 전혀 읽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전현희 최고위원은 “국정감사 이후 결단을 내리겠다”며 가능성을 열어뒀다. 그는 지난달 오마이TV ‘박정호의 핫스팟’과의 인터뷰에서 “정치적 중요성이 매우 크기 때문에 반드시 승리할 후보가 서울시를 탈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그런 자리에 과연 제가 적합한 후보인지 고민을 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큰 판 향하는 의원들 오세훈만 꺾으면 끝? 지난 조기 대선 당시 ‘민주당 골목골목선대위 서울위원장’을 맡아 서울시 정책 로드맵을 짜는 데 참여한 만큼 출마 명분은 충분하다는 평이 나온다. 마찬가지로 원내 인사인 박홍근 의원과 김영배 의원도 몸풀기에 나섰다. 특히 박 의원은 자신의 거취와 관련해선 지난해 8월 당시 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과 사전 논의가 있었던 점을 강조만 만큼 오랜 고심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 원내대표를 지낸 홍익표 전 의원도 “서울시장 선거 출마를 생각하고 준비 중”이라며 도전을 시사했다. 홍 전 의원은 가장 민감한 서울 부동산 문제를 겨냥하는 등 오 시장의 강남권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를 집값 상승의 원인으로 꼽으며 저격에 나섰다. 박용진 전 의원의 출마 가능성도 점쳐진다. 박 전 의원은 “아직 정해진 건 없다”면서도 연일 오 시장을 때리며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최근에는 “민주당의 정치가 ‘영포티(젊어 보이려 애쓰는 40대)’ 정치로 전락하지 않도록 몸부림쳐야 한다”며 청년세대와의 통합을 강조하기도 했다. 원외에서는 정원오 성동구청장의 이름이 눈에 띈다. ‘K-브랜드지수’에서 서울시 지자체장 부문 1위 타이틀을 따낸 그는 활발한 SNS 활동으로 두터운 지지층을 보유한 인물이다. “나 서울 시민인데, 구청장님 좀 같이 씁시다” 등 밈(인터넷 유행 콘텐츠)이 온라인에 퍼지면서 팬덤을 등에 업고 민주당 원내 인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지 이목이 쏠린다. 민주당 후보군은 일동 ‘오세훈 때리기’에 집중하고 있다. 오 시장의 야심작인 한강버스가 연일 구설수에 오른 데 이어 최근 서울시가 최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서울 종묘 맞은편에 높이 145m 건물이 들어설 수 있도록 재정비촉진계획을 변경한 것을 두고 맹공에 나선 것이다. 지난 11일 민주당 문화예술특별위원회는 기자회견을 통해 종묘 재개발 논의를 정면으로 반박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당내 서울시장 후보군인 박주민 의원과 서영교 최고위원을 비롯한 전현희·김영배·박홍근 의원 등이 대거 참석했다. 특히 박홍근 의원은 “차기 시장, 그리고 대권 놀음을 위해 종묘를 제물로 바치겠다는 것이냐”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서울 종묘가 서울시장 선거의 새로운 전장이 된 셈이다. 이리저리 혼돈의 표심 민주당에서는 윤석열정부 조기 퇴진으로 치러진 조기 대선 승리의 후광효과가 지선까지 이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번 지선 기조를 내란 청산으로 내세운 것 역시 ‘내란 VS 헌법 수호’ 프레임이 유효하다고 본 것이다. 다시 꺼내든 내란 종식 키워드가 내년 지선에서도 먹힐지는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지선 압승이라는 낙관론에 젖어 서울시 민심을 제대로 훑지 못한다면 ‘이정부 심판론’으로 되치기당할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지점이다. 민주당 출신의 한 정치권 관계자는 “서울시 선거는 ‘오세훈만 꺾으면 당선’ 같은 일차 방정식이 아니다. 오 시장이 명태균 게이트, 한강버스 등 각종 리스크에 발목 잡혀 약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서울시민이 내란 종식을 외치는 후보에게 표를 던지겠냐는 근본적인 질문에서 다시 출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구 특성만큼 변수도 많은 서울시 자체가 첫 번째 허들이다. 서울은 마포·용산·영등포·광진·동작·성동·강동·중구 등 13개 선거구를 일컫는 한강벨트를 따라 보수층이 포진해 있어 보수 텃밭으로 여겨지지만, 지난해 치러진 총선에서 민주당이 서울 48석 중 37석을 얻어 과반이 넘는 지역에 파란 깃발을 수놓았다. 그럼에도 조기 대선에서 당시 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서울시에서 각각 47.1%, 41.6%를 얻어 두 후보 간의 격차는 5.5%p에 불과했다. 여기에 범보수로 여겨지는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가 얻은 9.9%를 더하면 보수 진영이 진보 진영을 앞서게 된다. 비상계엄이라는 특수 상황을 경험했지만 40%에 달하는 서울 시민이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두 번째는 한강벨트를 따라 빼곡히 자리 잡은 부동산이다. 정부의 10·15 부동산 정책을 통해 서울시 민심을 움직이는 건 진영 간의 논리 싸움이 아닌 정책, 그중에서도 집값이라는 게 명확해졌다. 서울 전역을 토지거래허가구역과 투기과열지구·조정대상지역으로 지정하는 이재명표 부동산 대책이 발표된 지 약 보름 뒤 민주당 지지율이 1주일 새 10%포인트 하락하며 국민의힘에 오차범위 내에서 역전됐다. 지지층에 휩쓸릴라 한국갤럽이 지난달 28~30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2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민주당의 서울 지지율은 31%로 전주 대비 10%p 떨어졌다. 반면 국민의힘은 12%p 오른 32%로 집계됐다. 서울을 대상으로 고강도 대책이 발표되자 서울 민심에 본격적으로 영향을 끼쳤다는 해석이 나왔다. 이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대한 전체 긍정 평가는 전주 대비 1%포인트 상승해 57%를 기록했지만, 민주당과 마찬가지로 서울 지역에서는 8%p 하락한 47%로 나타났다. 해당 조사의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로 응답률은 12.6%다.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와 한국갤럽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결국 이번 서울시장 선거는 진영 간의 대립구도가 아닌 인물과 정책으로 승부를 봐야 한다는 의견에 초점이 맞춰지지만, 진보 진영 후보들은 본선 진출을 위해 당원의 표심을 얻는 일을 우선해야 한다는 딜레마에 빠졌다. 지선을 앞두고 민주당 지도부가 권리당원 권한을 대폭 강화하겠다고 밝힌 만큼 국민의힘과 잘 싸우는 ‘전투적인 후보’가 경선에서 압도적으로 유리하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차기 서울시장 후보 적합도를 묻는 여론조사에서 진보·여권 후보 가운데 정 구청장이 1위를 차지했다. 만일 정 구청장이 출마 의지를 굳히더라도 박주민·서영교 의원 등 쟁쟁한 원내 인사를 제치고 당원의 선택을 받을지 확신할 수 없다. 인지도면은 물론 민주당 지선 기조가 내란 청산으로 자리 잡은 한 12·3 비상계엄을 해제한 인물에게 더 많은 정치적 유산과 서사가 쥐어지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박 전 의원은 출마 가능성을 시사한 동시에 민주당 강성 지지층에게 집중적으로 질타 받았다. 2023년 8월 당시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이던 시절 체포동의안을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지던 중 불체포특권 포기 성명에 이름을 올린 31명의 의원 중 한 명인 만큼 경선 통과가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반면 민주당 지지층으로부터 꾸준히 이름을 알려온 경우 경선 통과가 수월하지만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 ‘개딸(개혁의 딸들)이 밀어준 강경파 후보’라는 꼬리표가 붙는다면 정책이나 행정가로서의 자질은 묻히고 이에 거부감을 느낀 중도층의 표가 분산될 것이란 점에서다. 당원 마음 잡으랴, 중도층 안으랴 김민석·강훈식 ‘투톱’ 차출설도 경선과 본선을 놓고 민주당의 딜레마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 대통령의 신임을 받는 ‘김민석·강훈식 차출설’이 돌면서 서울시장 선거판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인지도가 높고 행정가 면모가 돋보이는 김민석 국무총리와 강훈식 대통령실비서실장을 서울시장 후보로 내보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국정 투톱이 또다시 정치의 한가운데에 들어섰다. 앞서 김 총리는 여러 차례에 걸쳐 서울시장 출마 가능성에 선을 그어왔지만 종묘 재개발 논쟁에 뛰어들면서 다시 불을 댕겼다. 지난 10일 김 총리가 서울 종묘 일대를 찾아 “무리하게 한강버스를 밀어붙이다 시민의 부담을 초래한 서울시로서는 더욱 신중하게 국민적 우려를 경청해야 한다”고 우려를 표했는데, 이를 두고 오 시장이 “국민 감정을 자극하려 하는데 이는 선동”이라며 지선을 겨냥한 발언이라고 의심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한 차례 서울시장에 도전했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이름도 다시 거론된다. 김 총리가 서울시장 대신 당 대표로 나서고, 직을 내려놓은 정 대표가 서울시장 도전 후 대권 코스를 밟는 시나리오다. 3대 개혁을 두고 당정 불협화음이라는 의심의 눈초리가 따라붙는 만큼 교통정리를 통해 당정 서로에게 윈윈(win-win)하는 방법으로 꼽힌다. 우선 민주당 관계자들은 앞선 두 사람의 출마 가능성이 극히 낮다고 보고 있다. 가장 중요한 시기에 총리나 대통령비서실장 자리에 생긴 공백은 국정 운영에 차질이 빚을뿐더러 정부 출범 1년도 되지 않은 시기에 지선 후보로 차출할 시 모양새가 좋지 않다는 게 공통된 설명이다. 정 대표의 서울시장 도전 여부 역시 “이제 겨우 (취임) 100일이 지났다”며 일축했다. 이처럼 ‘스타 정치인’ 후보군이 물망에 오르자 당 일각에서도 지역 일꾼을 뽑는 지선의 의미가 퇴색될까 우려하는 모양새다. 경선 당락을 결정할 당원의 표심을 사로잡기 위해 지나친 선명성 경쟁이 이어질 경우 중도층의 눈살을 찌푸리게 할 거라는 지적도 나온다. 수많은 변수들 여권 관계자는 “지선 결과를 미리 예단하기엔 시간이 많이 남았으니 차분하게 기다리면서 후보들의 공약을 분석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이어 “앞으로 종묘 재개발 같은 이슈가 전방으로 나올 텐데 그때마다 (민주당도) 네거티브로 맞받아치면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우리 당원도 내란 종식과 민생회복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사람을 최종 후보로 뽑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터줏대감 눈치 보는 국힘? 더불어민주당과 마찬가지로 국민의힘 역시 서울시장을 이번 지방선거의 최대 격전지로 보고 있다. 서울시 사수를 위해 후보군을 물색하고 있지만, 오세훈 시장의 임기가 남은 만큼 누구 하나 선뜻 도전장을 내밀지 못하는 분위기다. 이에 오 시장의 재도전이 유일한 방법으로 여겨지는 모양새다. 오 시장은 “시민들이 어떤 평가를 해줄지 지켜보며 거취를 분명히 하겠다”며 3선 도전 가능성을 내비쳤다. 명태균 게이트, 한강버스, 종묘 재개발 등 리스크를 안고 있지만 현역 프리미엄에 기댄다면 시도해 볼 가치가 충분하다고 본 셈이다. 한때 경기도지사 후보로 거론됐던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이 이번에는 서울시장 물망에 올랐다. 서울시장 출사표를 던진 민주당 박주민 의원이 “오 시장이 아닌 나 의원을 상대할 가능성이 있다”는 취지로 말하면서 이목이 쏠렸지만 정작 나 의원은 서울시장 도전 가능성에 대해 말을 아끼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