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속으로] 수십억 재력녀 내연남 살인 전말

사랑에 숨은 무서운 집착 돈에 가려진 추악한 욕망

[일요시사=사회팀] 40억원대의 건물과 임야를 보유하고 있는 재력가인 60대 여성 윤모(64)씨가 자신의 양아들이자 내연남인 40대 남성을 수면제와 연탄가스를 이용해 살해했다. 그는 자신의 내연남이 사치스러운 행동과 폭력, 잦은 외도를 일삼는다는 이유로 친아들 내외와 보험설계사 유모(52)씨를 끌어들여 내연남 살해해 가담케 한 것으로 드러났다. 열렬히 사랑했던 감정이 복수심으로 돌변해 결국 살인이라는 비극을 불러온 사건의 내막을 공개한다.

수면제와 연탄가스를 이용해 40대 내연남을 살해한 혐의로 경찰에 구속된 60대 여성 윤모씨는 공시지가로 40억대 상가건물을 보유한 상당한 재력가였다. 윤씨는 매달 1000만원에 달하는 임대수익을 받고 이 가운데 절반인 500여만원을 보험료로 낼 정도로 경제적으로 풍족한 삶을 살았다. 그는 무엇 하나 아쉬울 것도, 집착할 것도 없어 보이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의 이면에는 어두운 속내가 꿈틀대고 있었다. 윤씨는 당초 세인들 눈을 피해 양아들 삼아 함께 살고 싶었을 정도로 내연남을 열렬하게 사랑했다. 하지만 그는 사랑에 대한 열정만큼 돈에 대한 집착 또한 강했다. 그러다 그는 어느새인가부터 내연남이 자신의 돈을 펑펑 쓰면서 다른 여성들과 은밀한 관계를 맺어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괘씸함을 느껴 친아들 내외와 전문 보험설계사를 고용해 철저히 살해계획을 세웠다.

그렇다면 윤씨와 내연남의 끔찍한 악연은 과연 언제부터 시작된 것이었을까.

수면제와 연탄가스
이용 계획적 살해

윤씨는 지난 2002년 안양의 한 골프장에서 내연남 채모(당시 34세)씨를 처음 만났다. 안양을 중심으로 교도소 재소자 교화활동을 해온 윤씨는 폭력배 출신인 채씨에게 뜻 모를 연민을 느꼈다. 채씨 또한 익히 들어 알고 있었던 윤씨의 재력을 보고 의도적으로 접근하기 시작했다. 서로 다른 의도로 호감을 느꼈지만 계속되는 만남에 둘은 금새 가까워졌다. 어쩌면 20살 차이라는 나이를 극복하고 두 사람이 급속도로 친해질 수 있었던 것은 판이하게 다른 환경 속에서 살아왔기 때문일 것이라고 추측하는 이들도 있다. 


윤씨는 1995년 전남편과 이혼해 친아들 내외와 함께 살았다. 아들 내외와 함께였지만 남편 없는 삶은 적적함 그 자체였다. 그는 마음의 여유를 찾기 위해 교도소 내에서 재소자들을 상대로 종교 활동과 봉사를 병행하고, 평소에는 골프를 치며 여가생활을 즐겼다. 

반면 광주광역시 보육원에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채씨는 광주에서 잘나가는 조직 폭력배 일원으로 활동했다가 폭력 등의 혐의로 수감됐다. 출소 이후 그는 2000년부터 용인에서 단칸방을 얻어 혼자 생활해왔다. 그에겐 친구도 가족도 없었다. 그런 채씨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온 건 다름 아닌 윤씨였다. 윤씨는 어두운 삶을 살아왔던 채씨를 안타깝게 생각하면서도 옳은 길로 교화하고자 노력했다. 채씨는 별다른 거부감 없이 윤씨의 호의를 받아들였지만 순수한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온 것은 아니었다. 채씨의 이면에는 돈이라는 검은 욕망이 숨겨져 있었다.

40억대 재산 60대녀-40대남 골프장서 눈 맞아
세인들 눈초리 피해 내연남을 양아들로 들여

두 사람은 골프장과 윤씨의 집 등에서 데이트를 즐겼고 둘 사이가 깊은 관계로 발전했다. 이윽고 2002년 말, 윤씨는 채씨를 안양 소재 자신의 집으로 데려와 두 사람은 본격적으로 동거를 시작했다. 그러나 둘의 동거는 순조롭지 않았다. 20살이나 어린 남성과 한 집에서 사는 윤씨를 주위 사람들이 곱게 볼 리 만무했기 때문. 급기야 윤씨는 이웃의 따가운 시선을 피하고자 2004년 2월경 내연남인 채씨를 자신의 양자로 입양했다.

이로써 윤씨에게 채씨는 내연남 겸 양아들이 된 것이다. 윤씨는 내연남 채씨와 친아들을 이복형제로 만들었고, 채씨가 훨씬 연상이었음에도 자신의 친아들을 형으로 대하도록 지시했다. 적잖이 자존심이 상했을 채씨지만 돈 앞에서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었다. 그는 조금만 자존심을 낮추고 비위만 맞춰 주면 쓰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 모두 누릴 수 있었다.

2005년에는 윤씨와 채씨의 관계가 더 돈독해졌다. 윤씨의 친아들 내외가 윤씨의 집으로부터 분가해 안양 집에 둘만 살게 됐던 것. 두 사람은 이웃의 이목 때문에 밖에서 엄마와 아들 행세를 했지만, 안에서는 부부처럼 은밀하고 스릴 있는 관계를 이어나가고 있었다.

행복 끝 불행 시작
동거 순탄치 않아


그러나 은밀한 행복도 잠시였다. 두 사람의 동거는 생각보다 순탄치 않았다. 아들 내외가 분가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짧은 행복이 지나가고 두 사람의 관계는 급속도로 냉랭해졌다. 조직폭력배 출신인 채씨는 여자관계가 복잡했을 뿐만 아니라 윤씨에게 폭행까지 일삼으면서 두 사람의 관계는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됐다. 회복하기에는 이미 늦은 듯 했다. 경찰 관계자도 윤씨가 채씨를 살해한 동기를 여기서 비롯된 것으로 보고 있다.

둘의 크고 작은 다툼은 2006년부터 2009년 말, 살해사건이 발생하기 전까지 지속됐다. 채씨의 복잡한 여자관계와 심한 주사, 습관성 폭력으로 심신이 고달파진 윤씨는 결국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했다. 더 이상 채씨와의 관계가 회복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윤씨는 2009년 11월부터 친아들 부부와 범행을 위한 치밀한 계획을 세웠다.

윤씨는 아들 내외와 2010년 1∼2월 서울, 안양, 횡성 등지에서 향정신성의약품인 졸피뎀 성분이 함유된 수면제 80여 알을 사고, 채씨가 사망했을 시 받을 수 있는 종신보험도 집중적으로 가입했다. 윤씨가 채씨 앞으로 가입한 보험은 모두 12개로 수령할 수 있는 금액은 약 7억원에 달했다. 채씨 앞으로 등록된 생명보험을 포함한 종신보험 등은 윤씨의 가족 등이  채씨가 사망하기 20여 일 전에 가입한 것이다. 그 중 4억3000만원 가량은 사망 보험금을 탈 수 있는 생명보험 3개였고, 채씨 명의의 또 다른 보험 9개도 3억원에 달했다. 그리고 이 모든 보험금은 윤씨가 수령할 수 있도록 명의를 변경해 놓은 상태였다.

내연남을 살해할 모든 준비가 끝난 윤씨와 아들 내외는 같은 해 2월 중순 새벽 3시경, 윤씨는 채씨가 집에서 자주 마시던 홍삼즙에 80여 알에 달하는 수면제를 탔다. 채씨는 아무 의심 없이 홍삼즙을 마셨고 수면제 효과 때문인지 바로 잠이 들었다. 윤씨는 채씨가 잠이든 것을 확인한 후 의도적으로 거실에 있는 연탄난로의 덮개를 열고 외출했다. 일산화탄소 중독사로 위장하기 위한 윤씨의 철저한 사전계획이었다. 같은 날 오후 윤씨는 외출하고 자신의 집으로 되돌아온 후 채씨가 싸늘한 주검으로 변해버린 것을 확인하고도 밤새 가동시켰던 연탄난로의 연탄재를 쓸어버리고, 새 연탄과 번개탄 등으로 갈아 끼우는 등 침착함과 태연함을 유지했다.

오후 7시30분. 윤씨는 마치 채씨가 죽어있는 상태를 처음 직면한 것처럼 “아들이 죽은 것 같다”며 흥분한 목소리로 119에 신고했다.     

신고를 받은 경찰은 재빨리 채씨의 변사사건을 접수한 후 본격적인 수사에 돌입했다. 부검 결과 채씨의 시신에서 1회 복용량의 60배가 넘는 치사량 수준의 수면제 성분이 발견됐고, 연탄가스 누수를 미뤄 채씨의 사인은 수면제 과량 및 일산화탄소 중독사로 밝혀졌다.

이어 경찰 측은 채씨 사망 직전에 윤씨가 다수의 보험에 가입한 점, 윤씨가 119 신고시간보다 7시간여 일찍 집에 갔음에도 신고시간이 늦은 점 등 수상한 점을 확인한 후 윤씨와 그의 아들 내외가 채씨 살해에 공범일 가능성을 열어두고 장기간에 걸쳐 수사를 진행했다.

수사 결과 윤씨가 안양 집 PC에서 수면제를 검색한 사실과 윤씨의 며느리가 수도권 및 강원도 등지에서 수면제를 구입한 사실이 드러났다. 그러나 윤씨 일가는 범행을 극구 부인했고 윤씨의 며느리는 불면증 치료차 구입한 것이라고 발뺌하면서 수사는 답보상태에 빠졌다.

미제로 남을 뻔
재수사로 실마리

미제로 남을 뻔한 이들의 범행은 지난 5월 초 경기경찰청 광역수사대가 기록 일체를 넘겨받아 재수사에 돌입하면서 사건의 실체가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경찰은 윤씨 주거지 컴퓨터에서 윤씨가 범행 2일 전부터 지속적으로 인터넷을 통해 수면제를 검색한 사실을 확인했고, 아들 내외가 윤씨의 지시에 따라 범행을 공모한 사실도 입증했다.

경찰의 계속되는 추궁 끝에 윤씨 아들 부부는 “어머니의 지시로 수면제를 구입했고, 경찰의 수사가 다시 시작되자 의심받을 수 있을 것 같아 추가로 수면제를 구입했다”고 자백했다. 이들은 수사의 혼선을 주기 위해 필요치도 않은 수면제를 4번 더 구입한 점을 추가 시인하기도 했다. 윤씨의 친아들의 경우 보험회사 측으로부터 보험금 수령 동의여부를 묻는 확인전화가 올 것을 대비해 보험사 홈페이지에 접속해 연락처를 자신의 것으로 변경한 뒤, 피해자 행세를 하는 등 뻔뻔한 행동도 서슴지 않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유씨 일가가 보험금을 수령할 수 있게 도와준 보험설계사 유씨의 범행도 뒤이어 밝혀졌다. 유씨는 채씨 생전 당시 채씨를 생명보험 가입시키기 위해 연금전환이 가능한 것처럼 속이고 보험계약을 체결시켰다.
경찰은 끈질긴 수사 끝에 유씨 등이 채씨를 살해했다는 증거를 확보하면서 주요한 피의자로 지목된 윤씨를 중점적으로 추궁하기 시작했다.


잦은 폭행, 습관적 외도 탓 계획적 살해 계획
친아들 내외·보험설계사 공동으로 살인 교사

최초 채씨 사망에 대해 ‘연탄가스 사고사’라고 주장했던 윤씨는 최근 “내연관계를 끝내기 위해 동반자살하려고 수면제를 샀다”고 말을 바꿔 여전히 살인의 목적성은 부인했다. 이어 그는 경찰조사에서 “현재 공시지가로 40억∼50억원대 상가건물과 임야 등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는데 내가 뭐가 아쉬워서 아들을 죽였겠느냐”며 “생명보험은 재테크 차원에서 가입한 것일 뿐”이라고 살인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윤씨의 강력한 부인에도 경찰은 윤씨가 범행 이전 채씨와 여자문제로 극심한 갈등을 겪어왔다고 진술한 점과 윤씨 소유 40억원대 건물에 근저당이 설정돼 있어 임의로 처분할 수 없는 점 등으로 미뤄 금전과 치정에 의한 살인사건으로 확신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윤씨 일가는 뚜렷한 직장과 임대수익 이외의 수입 없이도 매달 수백만원을 카드값으로 지출하는 등 씀씀이가 컸다”며 “윤씨가 여전히 살인 혐의를 부인하고 있지만 관련 증거가 드러날 때마다 진술이 바뀌고 있는 데다 수면제 다량 구매와 보험 가입 등 정황 증거로 봤을 때도 타살이 확실하다”고 혐의를 자신했다. 경찰은 지난 10일 윤씨 일가와 보험설계사를 살인 등의 혐의로 구속 및 불구속 입건했다.

검은 욕망이
비극 불러와

돈과 사랑, 모두를 쟁취하고 싶었던 한 여성의 과욕과 집착이 자신의 삶은 물론 아들의 가정까지 무너뜨렸다. 윤씨는 세인의 성난 눈초리에도 불구하고 내연남을 양자로 들여 곁에 두고 싶었던 것, 그 내연남이 자신의 소유가 아닌 것을 알게 되자 돈으로라도 바꾸고 싶어 했던 추악한 욕망이 도리어 자신의 삶을 파괴하고 있는 줄도 모른 채 가슴 한 켠에 비워둔 욕망을 채우느라 여념이 없었다. ‘과하면 독이된다’ ‘그릇된 과욕은 항상 비극을 불러온다’는 옛말이 새삼 중요하게 다가온다.


김지선 기자 jisun86@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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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빅텐트 타령 국민의힘, 왜?

또 빅텐트 타령 국민의힘, 왜?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이 당심 반영 비율을 늘린 지방선거 경선 규칙을 발표했다. 이어 장동혁 대표를 필두로 지방선거 전략으로 ‘반명 빅텐트론’을 지난 대선에 이어 또 거론했다. 국민의힘이 6년째 내리 실패한 전략을 또 끌고 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국민의힘이 지난달 25일 지방선거 경선 규칙을 발표했다. 국민의힘 지방선거 총괄기획단 대변인을 맡은 조지연 의원은 이날 국회에서 진행된 기획단 회의 후 “내년 지방선거 경선에서 당원투표 비중을 기존 50%에서 70%로 늘리기로 했다”고 밝혔다. 민심보다 당심으로? 국민의힘 지방선거 공천은 당원투표 70%와 국민 여론조사 결과 30%가 혼합돼 결정된다. 만 44세 이하 청년은 가점을 부여받고, 여성 신인은 만 45세 이상이어도 가산점이 부여된다. 광역의원 비례대표 후보자는 청년 인재 오디션을 거쳐 선출해 최우선 순위로 당선권에 배치할 예정이다. 지난 2022년 지방선거 당시 국민의힘 대표였던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시행했던 공직 후보자 기초 자격 평가는 기초자치단체장·기초의원 후보자들을 대상으로 진행된다. 국민의힘 지방선거 총괄기획단장은 5선 나경원 의원이 맡고 있다. 나 의원은 서울시장 출마 후보군 중 1명으로 거론된다. 현 시점에선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로 오세훈 서울시장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일각에선 “나 의원이 사심 때문에 경선 규칙을 정한 것 아니냐”고 의심한다. “오세훈 서울시장의 대중적 인기는 높지만, 당내 기반은 약하다”는 평가로부터 비롯되는 의심이다. 새로 정한 경선 규칙에 대해선 당내에서도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았던 김용태 의원은 지난 25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내년 지방선거를 시작으로 실질적인 수권 전략을 실현하려면, 공직선거 후보자 선출 규칙은 국민경선 100% 제도를 채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도 같은 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비판했다. 윤 의원은 “민심이 곧 천심이고, 민심보다 앞서는 당심은 없다”며 “민의를 줄이고 당원 비율을 높이는 것은 민심과 거꾸로 가는 길이고, 폐쇄적 정당으로 비칠 수 있는 위험한 처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최근 사법부 압박 논란과 대장동 항소 포기 문제까지 있었는데도 우리 당 지지율은 떨어지고 여당 지지율이 오르는 이유는 무엇이겠느냐”며 “여당이 잘해서가 아니라 진정성 있는 성찰과 혁신 없이 표류하는 야당에 대한 국민적 실망이 더 크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라고 강조했다. 한국갤럽이 지난 18일부터 20일까지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정당 지지도 여론조사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지지율은 43%였고,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4%였다. 지난 7월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만 18세 이상 1003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전화 면접 여론조사 당시 국민의힘 지지율이 19%를 기록했던 것에 비하면 높지만, 두드러진다고 보긴 어렵다. 내부 비판 이어지는데 당심 비중↑ 비상계엄 사과 두고도 ‘옥신각신’ “국민의힘의 지지율이 당분간 크게 오르긴 어렵다”는 일각의 예측도 있다. 다음 달 3일은 비상계엄 1주년이라서 윤석열 전 대통령의 재임 중 실정과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불참 ▲윤 전 대통령 체포 저지 시도 ▲심야 대선후보 교체 시도 등 지난 1년 동안 국민의힘이 여론으로부터 비난을 받았던 행보들이 다시 주목받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국민의힘 일부 소장파 의원들은 비상계엄 사과 등을 통한 윤 전 대통령과의 확실한 절연을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지난 24일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좀 더 명확한 메시지를 낼 필요가 있다는 얘기가 당내에서도 나온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역사와 국민 앞에 누군가 사과해야 할 상황이고, 국민의힘이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예측할 수 없었던 돌발적인 계엄이 있었고, 탄핵에 이어 정권을 잃은 후 국정의 주도권을 넘겨줬다”고 강조했다. 반면 같은 당 김재원 최고의원은 같은 달 26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일회성 사과로 과거의 잘못을 끊어내고 새로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사과를 자꾸 하는 것은 오히려 현 상황을 악화시킬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의힘은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어떤 정치를 할 것인지 고민하는 게 필요하다”며 “사과하는 것보단 앞으로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는 게 더 낫다”고 역설했다. 장 대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히고 있다. 그는 같은 달 25일, 경북 구미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를 방문한 후 “사과 메시지를 내는 것은 지금 말씀드릴 단계는 아닌 것 같다”며 “국민의힘이 지금 싸워야 할 대상은 무도한 이재명정권과 의회 폭거를 이어가는 민주당”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구미역 광장에서 진행된 민생 회복·법치 수호 경북 국민대회에 참석해 “저들이 똘똘 뭉쳐 우리를 공격하고 손가락질할 때, 우리가 우리를 향해 손가락질·비판하는 게 부끄럽다”고 목소리 높였다. 그러면서 “대한민국과 자녀 세대를 위해 소리치는 우리가 아스팔트 세력이라고 손가락질당하는 게 부끄러운 게 아니라, 나라가 쓰러져가는데도 한마디도 못하는 게 부끄러운 것”이라고 강조했다. 해당 발언은 “사과해야 한다”는 일부 주장에 대한 반박으로 풀이된다. 돌발적인 계엄이다? 이재명 대통령·민주당에 대한 투쟁을 강조하는 장 대표의 주장은 빅텐트론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나 의원도 지난 1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대통령과 민주당을 비판하면서 “국민의힘은 네 탓 공방을 벌이면서 분열에 빠져 있다”며 “정당의 뿌리를 흔드는 내부는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하나로 뭉쳐 민주당의 독재 완성 계략에 단호히 맞서야 한다”고 했다. 국민의힘에선 각종 선거와 정국에 대응할 때마다 빅텐트론이 거론됐다. 시작은 황교안 당시 자유한국당 대표가 재임했던 지난 2019년이다. 이듬해엔 “각 정당·정파가 참여하는 통합추진위원회를 구성해 모든 자유민주 세력과 손을 맞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황 전 대표는 “통합 없이는 절대 이길 수 없단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며 “이 나라를 망치려는 사람들은 통합을 두려워한다”고 말했다. 황 전 대표가 주장했던 빅텐트론은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란 헌법 가치를 공유한다면, 태극기 세력부터 중도 보수 인사까지 아우른다”는 것이었다. 그의 주장을 토대로 자유한국당은 미래통합당으로 바뀌었다. 황 전 대표는 제21대 총선 패배 후 물러났다. 이 대표는 빅텐트론에 일관적으로 반대하면서 세대 포위론을 토대로 지난 2022년 대선을 지휘했다. 지난 6월 대선에 출마했던 이 대표는 국민의힘 등 보수 각계로부터 후보 단일화 요구를 받았다. 이 대표는 당시에도 국민의힘 등에서 주장했던 ‘반명 빅텐트론’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대선을 완주했다. 일각에선 국민의힘의 빅텐트론을 놓고 “혁신 요구가 나올 때마다 제기되는 주장”이라고 비판한다. 빅텐트론의 핵심은 통합이다. 통합은 정치권에서 반대 계파·의견을 억압하는 수사로 활용되는 예가 잦다. 빅텐트의 핵심은 조정 능력이다. 여기엔 다양한 계파·의견을 조율해 갈등을 최소화하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장 대표는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체제 전쟁 깃발 아래 모일 수 있는 모든 우파가 함께 모여서 이재명정권이 사회주의 독재체제로 가려는 걸 막기 위해 연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주장하는 ‘체제 전쟁’의 근거는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민주당의 배임죄 폐지·대법관 증원 시도 등이다. 장 대표는 공식적으로 국민의힘과 관계없는 황 전 대표가 지난 12일 내란 선동 혐의를 받아 내란 특검에 의해 체포되자 “우리가 황교안이다”라는 구호를 외쳤다. 이어지는 재탕 삼탕 이어 “국민의힘만으로 이재명정부·민주당과 싸우긴 어렵다”며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주도하는 자유통일당 ▲고영주 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이 주도하는 자유민주당 ▲새누리당 조원진 전 의원이 주도하는 우리공화당 ▲황 전 대표가 주도하는 자유와혁신 등을 연대 대상으로 지목했다. 이들은 모두 부정선거론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그에 반해 개혁신당과 이 대표는 부정선거론을 강하게 비판한다. 장 대표가 주장하는 빅텐트론은 김문수 전 대선후보 등이 주장했던 빅텐트론과 큰 차이가 없다. 당시 김 전 후보는 “민주당 이재명 후보를 이기기 위해선 어떤 경우든 힘을 합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한덕수 전 총리 ▲황 전 대표 ▲이낙연 전 총리 ▲이 대표 등을 통합 대상으로 지명했다. 권성동 당시 원내대표는 김 전 후보·한 전 총리의 단일화를 지지하면서, 당시 당내 주류와 불화했던 국민의힘 김상욱 당시 의원(현 민주당 의원)에게 “스스로 거취를 결정하라”고 요구했다. 이는 장 대표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에게 당원 게시판 의혹 관련 압박을 가한 것과 비슷하다. 당시 권 전 원내대표는 “당원 대부분은 민주당 이 후보에게 대항하기 위해선 반명 빅텐트가 필요하단 의견을 갖고 있다”며 “지도부는 당원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는 부정선거론을 주장하는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연대를 주장하면서, 개혁신당과의 연대설도 공개적으로 부정하진 않는다. 일각에선 “오 시장이 장 대표·이 대표의 가교 역할을 한다”고 관측하고 있다. 오 시장은 지난 9월 “개혁신당과의 연대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한 이후 꾸준히 개혁신당과의 연대를 주장하고 있다. 이후 정치권 일각에선 “오 시장이 서울시장으로 다시 출마하고, 이 대표가 경기도지사 야권 단일 후보로 출마하면 수도권에서 보수 진영이 선전할 수 있다”는 기대를 하고 있다. <미디어토마토>가 지난달 28일부터 이틀 동안 서울특별시 거주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무선·ARS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오 시장은 보수 진영에서 민심 27.5%·당심 50.3%의 지지를 얻어 서울시장 후보 중 가장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민주당이 서울시장 후보를 선출한 후 ‘여당 프리미엄’을 앞세워 오 시장에 대한 공세를 이어간다면, 재선을 장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국민의힘이 중도층의 민심을 끝내 얻지 못하면, 오 시장으로선 힘겨운 선거가 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체제 전쟁” 명분으로 사과 거부 홍 “국힘은 보수 참칭 사이비 레밍” 당내에서도 나 의원 등 막강한 경쟁자가 있어 본선행을 확실하게 장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대표는 지난달 23일 “국민의힘 내부에서 변화·쇄신 목소리가 전혀 안 나온다”며 “연대를 함께할 가능성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국민의힘은 지난 대선에 이어 1990년대식 ‘뭉치면 이긴다’ 구호만 내세운다”며 “그 전략으로 패배한 사람은 황 전 대표였는데, 같은 선택을 하면서 다른 결과가 나오길 기대하는 건 이해가 안 간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내부에도 연대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국민의힘 지도부에서 강경 보수의 주장을 가장 강하게 내세우는 김민수 최고위원은 같은 달 25일, 채널A 유튜브 채널 ‘정치시그널’에 출연해서 “이 대표는 당내 많은 분쟁을 가져온 사람이라서 화합을 해칠 가능성이 있다”며 “개혁신당과의 연대는 득보다 실이 더 많을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김 최고위원의 주장은 오 시장의 주장에 대한 반박으로 해석되고 있다. 김 최고위원은 “개혁신당은 보수 정당인지, 진보 정당인지 모르겠고, 그 사이에 있다고 생각한다”며 “저는 최고위원이 되기 전부터 우측으로의 연대를 주장했다”고 설명했다. 대선은 기동전·총력전 성격이 강한 반면, 지방선거는 진지전 성격이 강하다. 선거의 성격이 다르지만, 국민의힘에선 똑같이 ‘반명 빅텐트’라는 구호를 거론하고 있다. 역사엔 위기 상황에서 변화를 거부했다가 돌이킬 수 없는 위기를 맞이한 사례가 다수 기록돼있다. 변화를 거부하는 세력이 그 집단을 주도할 때, 이 사례는 더욱 빈번하게 재현된다. 중국 청나라에선 수구파를 이끌던 서태후가 변법자강운동을 주도하던 광서제에게 반대해 정변을 일으켜 성공한 후 광서제를 유폐했다. 중국 정부가 지난 2008년 광서제의 능을 공식 발굴 조사한 결과, 광서제는 급성 비소 중독으로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어 3세 나이로 즉위한 청나라 황제는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영화 <마지막 황제>의 주인공인 선통제다. 선통제는 영화 제목 그대로 마지막 황제였다. 광서제의 개혁 시도는 청나라의 마지막 몸부림이었다. 자신에게 유리한 정보만 취사 선택해 그 정보를 근거로 자신의 주장을 전개하고, 불리한 정보는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성향을 확증편향이라고 한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지역구 관리에만 능하고, 기득권·이익 추구에만 관심을 두는 의원들이 당을 주도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언더 찐윤’이란 집단이 거론된다. 확증편향 소탐대실 일각에선 국민의힘이 변화·혁신에 거부감을 느끼면서 같은 선택을 반복하는 핵심 이유로 언더 찐윤을 거론한다. 홍준표 전 대구시장은 지난 6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은 이념도 없는, 보수를 참칭한 사이비 레밍 집단”이라고 주장했다. 이미 여러 번 선거에서 패배한 전략임에도 확증편향·소탐대실을 근거로 같은 선택을 고집한다면, 무리 지어 절벽에서 떨어지는 레밍과 비교되는 수모를 또 겪을 수도 있다. 하지만 국민의힘에선 또 빅텐트론이 반복되고 있다. 빅텐트는 국민의힘 주변을 배회하는 유령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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