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경제1팀] 모방은 제2의 창조인가, 비도덕적 양심인가. 업계의 소문난 ‘카피캣(흉내쟁이)’ 롯데의 베끼기 행위가 여전하다. 한 회사에서 거액의 연구비를 들여 인기 제품을 만들어 내면 얼마 안 돼 유사한 상품을 냉큼 내놓는다. 최근엔 제품 뿐 아니라 업태까지 모방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아무리 ‘아이디어 헌팅’시대라지만 롯데는 ‘카피의 황제’라는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어 보인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인 롯데의 만연한 베끼기 병폐를 살펴봤다.
이번 논란의 주인공은 ‘드럭스토어’다. 이르면 올해 말 1호점을 오픈하는 롯데 드럭스토어를 두고 “또 카피캣이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2000년대 들어 국내에 본격적으로 도입되기 시작한 ‘드럭스토어’는 처방전 없이 살 수 있는 일반의약품과 화장품,·건강보조식품, 음료 등을 함께 판매하는 매장을 가리킨다.
드럭스토어도
“분스처럼”
최근 이 ‘드럭스토어’가 눈부신 성장을 이루며 유망사업으로 떠오르자 롯데도 시장에 뛰어들었다. 업계에 따르면, 롯데는 지난 7월 태스크포스(TF)팀을 구성해 드럭스토어 오픈을 준비했다.
최근엔 사업구상을 완료하고 시장진출 시기만 조율하고 있는데 이르면 올해 말 롯데백화점 잠실점과 롯데마트 사이 지하 쇼핑몰에 시범점포를 열 계획이다. 최대 700개까지 매장을 확대할 계획도 함께 검토 중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롯데가 선보일 드럭스토어가 “신세계 드럭스토어 ‘분스’의 카피캣”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롯데 드럭스토어 입점 회의에서 “콘셉트도, 규모도, 취급 물품도 모두 분스처럼”이라는 말이 빈번하게 들린다는 것이다.
분스는 신세계그룹 계열사 이마트에서 운영하고 드럭스토어로 지난 6월 서울 강남역에 1호점을 오픈했다. 분스는 국내 화장품 브랜드숍의 제품들은 물론 온라인 쇼핑몰에서만 판매되거나 다른 드럭스토어에선 볼 수 없던 생소한 화장품 브랜드로 다양성을 추구한 게 특징이다.
안 되면 업태도 베껴라?…흉내내기 ‘점입가경’
인기 신제품 나오면 얼마 뒤 바로 유사품 출시
여기에 약국, 컵라면, 냉동식품, 와인, 음료, 샐러드, 과일 등 다채로운 식품구성과 문구류까지 더해져 원스톱 쇼핑 형태를 만들어 냈다. 현재 입점된 브랜드만 100여 가지에 달한다.
업계 한 관계자는 “이미 시장에서는 롯데가 유통 라이벌인 이마트 분스를 재현한 드럭스토어를 구성 할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롯데 측은 “‘카피캣’이라기보다는 시장 트렌드에 맞춰가는 통상적인 관례”라는 입장이지만 아직 시작도 하지 않은 사업에 대해 이런 반응이 나오는 것은 롯데의 뿌리 깊은 카피캣 병폐에 대한 거부감으로 해석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실제 롯데에서 ‘남의 것'을 베껴 제 것처럼 내놓는 사례는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지난 6월 서울 금천구에 1호점을 낸 롯데마트의 회원제 창고형 할인점 ‘빅마켓’도 오픈 전부터 ‘코스트코 판박이’라는 구설수에 올랐다. 코스트코는 미국계 회원제 창고형 할인점이다.
빅마켓은 여러가지 점에서 코스트코와 흡사하다. Vic마켓이라고 적힌 외부 간판의 디자인 뿐 아니라 매장 진입로와 내부 인테리어, 화장실의 위치, 매장입구에서의 회원권 검사, 매장동선과 디스플레이, 회원가입비와 탈퇴규정, 제품 환불, 쇼핑백 등 어느 것 하나 다른 것이 없을 정도로 완벽에 가깝게 코스트코를 벤치마킹했다.
빅마켓을 이용해본 한 고객은 “빅마켓은 모든 요소와 시스템이 코스트코와 흡사했다”며 “만약 코스트코가 비즈니스 모델 특허가 있다면, 침해로 소송을 백만번 걸어도 좋을 만큼 완벽하게 동일하다. 롯데가 작정하고 코스트코를 베낀다는 것이 확실하다”고 말했다
남이 잘되면?
냉큼 베끼기!
특히 롯데음료의 베끼기 전통은 뿌리가 깊다. 코카콜라 ‘암바사’가 인기를 끌자 이를 모방한 ‘밀키스’를 선보여 역전해 성공했고, 90년대 말 시장을 강타한 ‘2% 부족할 때’도 3개월 먼저 나온 남양유업 ‘니어워터’의 카피캣이라는 의혹을 받았다.
이후 광동제약의 ‘비타500’과 유사한 ‘비타파워’를 출시했고 코카콜라의 ‘환타 쉐이커’와 흡사한 ‘쉐이킷 붐붐’, CJ제일제당의 ‘컨디션 헛개수’와 비슷한 ‘아침헛개’, 웅진식품의 ‘하늘보리’를 연상케하는 ‘황금보리’, 그리고 ‘비락 식혜’를 모방한 ‘잔칫집’ 출시 등 수많은 ‘미투’ 제품 논란을 일으켜 왔다. 올해 출시한 에너지 음료 ‘핫식스’도 동서식품이 수입판매하는 ‘레드불’과 제품 성분이 똑같아 도마에 올랐다.
이 때문에 롯데칠성은 지난 8월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경고장을 받기도 했다. 롯데칠성의 ‘데일리C 비타민워터’가 먼저 출시된 코카콜라의 ‘글라소 비타민워터’와 병 모양, 색깔, 성분 등이 매우 흡사해 이를 경고한 것이다.
그러나 롯데칠성은 제품 출시와 함께 소비자들의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유통매장에서 기존 코카콜라 제품과 나란히 배치하도록 하는가 하면 “우리 제품에 사용된 비타민은 생산 공정 등 위생을 꼼꼼하게 검증한 퀄리C(Quali-C) 인증을 받은 100% 영국산 비타민”이라며 원조인 코카콜라 제품과 비교 광고까지 진행해 빈축을 샀다.
지난 1월에는 국순당이 서울 중앙지방법원에 롯데칠성을 상대로 부정경쟁행위 금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다. 롯데칠성의 청주 브랜드인 ‘백화수복’에서 지난해 12월 출시된 ‘백화차례주’는 국순당이 지난 2005년 출시한 ‘예담’과 병의 모양과 색깔 뿐 아니라 상표의 디자인과 부착위치 등이 흡사해 소비자 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게 이유였다.
‘상표 논란’
법정소송까지
롯데 제과에서도 카피캣 논란은 이어진다. 1974년 오리온이 쵸코파이를 내놓고 시장에서 큰 인기를 끌자 5년 후 롯데제과가 ‘롯데 쵸코파이’ 상표를 등록하고 판매를 시작했다. 이 때문에 양사는 상표 등록을 놓고 법정 공방까지 벌였다.
지난 2008년엔 크라운제과가 롯데제과를 상대로 상표권을 무단 도용했다며 상표 사용금지 가처분소송을 제기했다. 크라운제과는 일본 애니메이션 ‘짱구는 못말려’의 주인공 짱구를 ‘신짱’으로 변형해 스낵제품 ‘못말리는 신짱’을 2001년부터 판매해 왔는데, 롯제제과가 7년 뒤 신제품에 ‘신짱’이란 이름을 그대로 쓰면서 글씨체도 흡사하게 베꼈다는 것이다.
이 외에도 롯데제과는 크라운제과의 ‘버터와플’과 유사한 ‘롯데와플’, 해태제과의 ‘홈런볼’과 비슷한 ‘마이볼’ 등을 잇따라 출시하며 ‘카피의 황제’라는 비난을 받아왔다. 최근에는 장수제품인 ‘오징어땅콩’을 흡사하게 베낀 ‘오징어땅콩’을 또다시 출시해 논란이 되고 있다.
뿌리 깊은 병폐…신제품만 내놨다하면 베끼기 구설수
사업 초기비용 생략·안정적 수익보장에 쉽게 못 끊어
이렇듯 롯데는 같은 계열 기업들은 브랜드 네임, 관련 스토리텔링, 마케팅 방식까지 복사기처럼 찍어 베끼고 있는 것을 관행처럼 일삼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업계에서는 롯데가 잦은 ‘카피캣 전략’을 쓰는 이유를 크게 두 가지로 설명한다. 사업 초기 시장분석, 연구 개발비, 조사비용 등 투자해야 하는 자금과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는 게 그 첫 번째다. 이 때문에 기업들이 인기상품을 모방해 적은 노력을 가지고 이익을 얻으려는 유혹에 빠지기 쉬운 것이다.
잘 나가는 제품을 모방한다면 어느 정도 보장된 수익과 편하게 시장 진입을 할 수 있다는 것도 원인이다. 식음료의 특성상 트렌드를 반영한 제품은 쉽게 구매로 이어지기 때문에 유통 과정에서 프로모션 이벤트를 벌이거나 가격을 인하해 소비자들의 주목을 끌면 원 브랜드 상품을 추월할 수도 있다는 점이 모방의 중요 원인이라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롯데는 흉내내기 전략을 통해 짭짤한 재미를 보고 있으니 쉽게 끊을 수 없을 것”이라며 “모방이 성공하면 편하게 돈을 벌 수 있으니 버릇이 된 것 같다. 굴지의 유통기업답게 유통망도 잘 갖춰져 있으니 유사품을 출시해도 제품이 불티나게 팔리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고 말했다.
이러한 ‘롯데의 카피캣’을 두고 가끔씩 벌이는 네티즌들의 갑론을박 중에도 두 가지 반응이 있다. ‘맛만 좋으면 장땡’이라는 것과 ‘카피로 떼돈 버는 비양심적 기업’이라는 것이다.
카피로 흥한기업
카피로 망한다?
진실이 무엇이든 맛만 제대로 낸다면 장땡일 수도 있다. 그러나 영민한 소비자들이 롯데가 출시하는 제품이 무엇을 따라 만든 것인지 모를 리 없다. 베끼기의 카피 캣 제품은 짝퉁의 또 다른 이름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이에 한 전문가는 “카피 캣 전략을 통해 이익을 보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롯데’하면 ‘카피왕’ 먼저 떠오르는 것은 문제”라며 “양질의 제품 개발에 힘을 쏟고, 장기적으로 소비자들에게 브랜드와 제품에 대한 신뢰를 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설아 기자 <sasa708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