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 '황제경영' 막전막후

  • 한종해 han1028@ilyosisa.co.kr
  • 등록 2012.11.12 11:2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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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나간 창업공신…물러났나? 밀려났나?

[일요시사=경제팀]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의 '남자'가 회사를 그만뒀다. 구재상 미래에셋자산운용 부회장 얘기다. 표면적으로는 본인 스스로 쉬고 싶다는 일신상의 이유로 확인됐지만 외부 시선은 다르다. 그간 박 회장과 경영철학과 지향점의 차이로 갈등을 빚어 왔던 구 부회장을 실적 악화를 이유로 압박해 스스로 물러나게 했다는 분석에 힘이 실리고 있다. 창업공신이라 할지라도 '황제경영'으로 유명한 박 회장의 눈 밖에 났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은 지난 1일 구재상 미래에셋자산운용 부회장이 일신상의 사유로 돌연 회사 측에 사의를 표했다고 밝혔다. 회사 관계자는 "구 부회장이 수년간 휴일 없이 일한만큼 이제 쉬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해 왔다"고 밝혔다.

돌연 떠나는
미래에셋 창업공신

미래에셋자산운용은 당분간 정상기 부회장과 장부연 경영관리부문 대표의 2인 공동 대표체제로 운영된다. 총괄은 정 부회장이 맡는다.

구 부회장에 이어 윤진홍 옛 미래에셋맵스운용 부회장이 올해 안에 미래에셋을 떠날 예정이며 강창희 부회장(투자교육연구소장 겸 퇴직연금연구소장)은 지난 5일 퇴임식을 하고 미래에셋을 떠났다.

이로서 미래에셋 부회장단은 최현만 미래에셋생명 수석 부회장과 정 부회장만 남게 됐다.


구 부회장의 거취는 구체적으로 정해지지 않았다. 미래에셋자산운용 관계자는 "잠시 휴식을 가지고 천천히 거취를 결정할 것으로 안다"며 "갑작스런 사의표명이 아니라 경영진들 사이에서는 이미 논의가 이뤄진 사항으로, 구 부회장의 부재를 메울 수 있도록 운용시스템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인사를 단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미래에셋그룹은 정기인사를 앞당겨 총 12명의 임원인사를 단행했다.

11월의 시작과 함께 들려온 구 부회장의 사임 소식은 증권가를 충격에 빠뜨렸다. 구 부회장이 지난 1997년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 최현만 부회장과 함께 미래에셋을 창립한 1등 창업공신이기 때문이다. 

박현주-최현만-구재상 체제 14년 만에 지각변동
구재상 돌연 사임…갈등설 등 내부 분위기 주목

'일신상의 이유'라는 퇴진 배경은 석연찮은 구석이 많다. 업계에서는 펀드운용성과 부진 등과 관련해 박 회장과의 갈등이 구 부회장을 사임으로 몰고 갔다는 의견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박 회장과 구 부회장의 경영철학과 투자 철학의 차이로 갈등의 골이 깊어졌다는 설명이다.

구 부회장은 1988년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동원증권(현 한국투자증권)에 입사했다. 1997년 동원증권 압구정 지점장 시절 중앙지점장이었던 박 회장과 서초지점장이었던 최 부회장과 함께 미래에셋캐피탈을 세웠다. 이어 1998년 미래에셋자산운용 운용 담당 상무를 맡아 14년간 그룹의 자산운용 부문을 책임지면서 금융투자업계에 입지전적인 인물로 떠올랐다. 박 회장은 구 부회장을 한때 '투자 천재'라고 표현하며 애정을 아끼지 않았다. 최 부회장과 함께 박 회장의 '좌 현만' '우 재상'이라고 불릴 정도였다.

이랬던 구 부회장의 사임설이 여의도 증권가에 돌기 시작한 것은 지난 7월부터다. 펀드 운용 전략을 놓고 박 회장과 갈등이 심해져 구 부회장이 곧 회사를 떠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당시 미래에셋 측은 "풍문이다"며 부인했지만 구 부회장의 사임설은 4개월 만에 현실이 됐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은 1998년 국내 첫 개방형 뮤추얼펀드인 '박현주 1호'를 출시하면서 운용사로서의 입지를 굳혔다. 2007년에는 '인사인트펀드'로 국내 펀드 돌풍을 일으키며 일약 '1등 운용사'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손실이 원금 절반 수준까지 내려가면서 미래에셋자산운용은 추락하기 시작했다.

투자철학·지향점
박 회장과 대립


경쟁사인 삼성자산운용과 한국자산운용 등 여타 운용사들이 최근 3~4년 수탁고를 늘리며 승승장구하고 있는데 반해 미래에셋자산운용은 한때 33조원을 웃돌던 수탁고가 10조원 남짓으로 급감했다. 구 부회장의 사임 소식이 들려온 지난 1일 기준 국내 주식형 펀드 설정액은 총 12조1204억원으로 올해에만 2조2131억원 감소했다.

구 부회장이 실적악화의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는 얘기가 된다. 하지만 왜 하필 구 부회장이어야만 했을까라는 의문이 생긴다. 일각에서는 그간 박 회장이 투자철학과 지향점을 놓고 이견을 보이며 대립해 왔던 구 부회장을 투자 실적을 핑계로 압박해 물러나게 했다는 얘기가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박 회장이 해외 투자를 강조하며 그룹전략의 포커싱을 해외로 두면서 국내 투자를 전담하는 구 부회장의 부담이 컸다"며 "미래에셋 전체 그림에 대한 그룹 내부 수장들의 지향점이 달랐던 것이 가장 큰 사임 배경일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미래에셋그룹은 작년 말 미래에셋증권의 최 부회장을 수석부회장으로 승진 발령하면서 미래에셋증권과 미래에셋생명 영업을 총괄하도록 했다. 그러면서 박 회장은 글로벌 사업에 치중하는 전략을 세웠다.

이 과정에서 구 부회장은 글로벌 사업보다는 국내 운용에 더 집중해 부진의 늪에 빠진 펀드 수익률을 끌어올려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구 부회장이 사임하면서 박 회장의 견제장치가 사라진 셈이다.

박 회장은 1958년 광주에서 태어나 광주일고와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집에서 부쳐준 생활비를 밑천으로 명동 증권가를 누비며 실전 경험을 쌓았다. 증권 투자해 번 돈으로 1984년 서울 회현동 코리아헤럴드 빌딩 18층에 30평 남짓한 사무실을 얻어 작은 사설 투자자문회사를 설립했다.

1인 지배 체제 하
예고된 사임

2년 뒤인 1986년 박 회장은 투자자문회사를 접고 동원증권에 입사했다. 그로부터 불과 45일 뒤 대리로 승진한 박 회장은 1989년 당시 33세의 나이에 동원증권 중앙지점장으로 발탁되면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2년 만에 중앙지점을 전국 1등으로 올려놨고 압구정 지점장으로 발령나고서도 혁혁한 공을 세웠다. 이 같은 전력을 바탕으로 1995년 이사로 승진했다.

잘 나가던 박 회장은 1997년 6월 당시 압구정지점장(현 구 부회장), 서초지점장(현 최 부회장)과 함께 동원증권을 떠나 미래에셋캐피탈을 세웠다.

1998년에는 미래에셋자산운용을 설립한 뒤 자신의 이름을 붙인 뮤추얼펀드 박현주 1호를 내놨다. 박현주 펀드는 2시간20분 만에 판매가 마감됐고 100%가 넘는 수익률을 올렸다. 은행 예금 위주의 저축문화를 2004년 이후 적립식 펀드 위주 투자문화로 바꾸는데도 기여했다. 박 회장은 2005년 SK생명보험을 인수, 자산운용과 증권, 생명보험으로 짜인 금융그룹을 탄생시켰다.

그러던 박 회장은 2007년 말 일대의 위기에 직면했다. 10월 말 펀드시장에 돌풍을 일으켰던 인사이트 펀드가 대규모 손실을 기록한 것. 한 달 만에 4조원어치가 팔렸던 인사이트 펀드는 6개월 후 리먼브러더스의 파산으로 수익률이 곤두박질쳤다. 박현주라는 브랜드에 추자했던 개인들은 원금이 반 토막 나는 아픔을 감수해야만 했다.

실적악화 책임? 견제장치 제거?
구조조정식 세대교체 분석도


당시 전문가들은 인사이트 펀드의 몰락에 대해 박 회장이 분산투자라는 원칙을 무시한 것과 펀드 운용에 대한 지나친 자신감의 합작품이라고 분석했다.

2008년 9월 세계금융위기 초기 50조원이 넘었던 주식형 펀드 자산은 2010년 30조원대로 줄었다. 지난해 말엔 22조원대를 기록, 업계 3위로 내려앉았다.

이때부터 미래에셋 경영구조가 도마 위에 오르기 시작했다. 2008년 국감에서도 미래에셋이 심심찮게 거론됐다. 조문환 당시 한나라당 의원은 "펀드 광풍을 일으킨 인사이트 펀드는 투자자 보호를 위해 최소한의 투자 기준도 없는 '묻지마' 투자와 마찬가지였다"면서 미래에셋 지배구조를 "1인 지배 체제"로 규정했다.

미래에셋에서 박 회장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미래에셋그룹의 지배 구조는 현재 박 회장을 중심으로 단순화 되어있다. 미래에셋의 41개 계열사 중 상장사는 미래에셋증권과 와이디온라인으로 단 2개뿐이다. 지주회사 격인 미래에셋 컨설팅과 핵심 계열사인 미래에셋자산운용, 미래에셋생명 등은 모두 비상장사로서 공시의무가 없고 오너 일가의 지분 구조도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박 회장 일가는 미래에셋컨설팅 지분 91.86%를 보유 중이다. 미래에셋자산운용 지분 62.56%, 미래에셋캐피탈 지분 46.35%를 가지고 있다. 미래에셋캐피탈은 미래에셋생명보험 지분 47.06%와 미래에셋증권 지분 36.98%를, 미래에셋컨설팅은 미래에셋자산운용 지분 32.23%를 보유해 사실상 박 회장 일가 회사라 할 수 있다.

KRIA 합병으로
미래에셋컨설팅 장악


박 회장 일가가 보유한 미래에셋컨설팅 지분 91.86%의 내면에는 2010년 케이알아이에이(KRIA)와의 합병이 있다. 미래에셋컨설팅은 2008년 KRIA에서 인적분할해 분리해 나왔지만 2년 만인 2010년 오히려 KRIA가 미래에셋컨설팅으로 흡수 합병됐다. 당시 KRIA는 박 회장이 43.68%, 박 회장 부인이 10.24%, 세 자녀가 각각 8.19%씩, 모두 78.49%를 가지고 있었다.

미래에셋은 '투자자들의 돈을 끌어들여 박 회장의 배만 불리고 있다'라는 비아냥이 나올 정도로 최근 펀드 수익률 악화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그럼에도 박 회장의 주식 평가액은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미래에셋자산운용, 미래에셋컨설팅, 미래에셋생명의 지분 평가액은 수조원대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종해 기자<han102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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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고객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쿠팡의 태도가 도마 위에 올랐다. 현재까지 대응만 봐서는 국민은 물론, 정부와도 전면전을 벌일 기세다. 새어나간 정보의 범위와 규모가 ‘역대급’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최악의 사태임에도 불구하고 쿠팡의 고개는 꺾일 줄 모르고 있다. 일각에서는 ‘뭘 믿고 저러나’ 소리가 나오는 중이다. 쿠팡의 고객 개인정보 유출 사건, 이른바 쿠팡 사태가 점입가경이다. 사태가 일어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수습은커녕 국민의 화만 돋우고 있다. 쿠팡의 대응 태도가 미지근한 수준을 넘어 뻔뻔한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 김범석 의장은 모습을 비추지 않고 보상안은 꼼수로 가득하다. 국민을 조롱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한 달 만에 고개 숙여 지난해 11월 말 3370만명에 이르는 쿠팡 고객의 개인정보가 ‘탈탈’ 털렸다. 앞서 쿠팡은 4500여건의 고객 정보가 유출됐다고 정부 당국에 신고했지만 2주 만에 그 수치는 7500배까지 늘어났다. 전 국민의 65% 수준이며 지난해 4월 SKT 개인정보 유출 사태 범위(2300만명)를 훌쩍 넘는 사태였다. 쿠팡은 이커머스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갖고 있다. 대형마트 등이 규제에 막혀 뒷걸음질 칠 때 쿠팡은 로켓배송으로 시장을 싹쓸이했다. 전날 저녁에 주문해도 새벽이면 물건이 문 앞에 와 있는 총알 배송에 소비자는 쿠팡으로 몰렸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비판을 받던 물류센터는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아이러니하게도 쿠팡이 국민의 실생활에 얼마나 스며들어있는지를 바로 보여줬다. 쿠팡 사태가 터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은 “쿠팡이 경쟁자가 없는 시장 지위를 누리고 있고 한국 고객이 데이터 유출에 덜 민감해 보인다”며 “잠재적 고객의 이탈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놨다. 그래서일까? 쿠팡은 역대 최악의 정보 유출 사태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도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이 언급하고 정부 차원의 TF가 꾸려졌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힘겨루기’를 하는 태도를 보이는 중이다. 최근에는 정부의 반박에도 자체 조사 결과를 고집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보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쿠팡은 지난달 25일 ‘정보 유출자는 3300만개 계정에 접근했으나 실제 저장한 정보는 3000여개에 불과하며 제3자 유출 정황은 없는 등 피해가 미미하다’는 내용의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면서 “(유출자는)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언론 보도를 접한 이후 저장했던 정보를 모두 삭제하고 범죄에 사용한 노트북을 파손해 하천에 던졌다”고 주장했다. 쿠팡은 “잠수부들이 벽돌에 담긴 쿠팡 가방에 든 노트북을 하천에서 회수했고 유출자가 클라우드 계정에 등록한 일련번호와 해당 노트북의 일련번호가 일치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범행에 사용된 PC 와 노트북 등 모든 장치를 회수해 안전하게 확보했고 글로벌 보안업체들의 조사 결과도 진술 내용과 같았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매출 90% 나오는데 정보 유출 태도·대응 낙제점 쿠팡이 발표한 대로라면 고객 정보 유출 피해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든다. 또 유출자와 접촉해 장치를 확보했으니 추가 피해는 없다. 전체적으로 사건이 축소되는 것이다. 쿠팡의 발표에 정부는 강하게 반발했다. 쿠팡의 조사 내용은 사전에 정부와 어떤 논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됐다는 설명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는 “정보 유출 종류와 규모, 경위 등은 민관합동조사단이 조사 중인 사안”이라며 “쿠팡이 발표한 내용은 조사단에 의해 확인된 바 없다”고 밝혔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과도 “쿠팡 측이 제출한 진술서와 노트북 등 증거물을 분석 중”이라며 “사실관계를 면밀하게 확인하겠다”고 했다. 논란이 계속되자 쿠팡은 정부의 지시를 받아 조사를 진행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경찰은 사전 협의가 없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사실관계가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쿠팡은 지난달 26일 내놓은 입장문에서 “정부의 지시에 따라 수주간 진행한 조사였다”고 선을 그었다. 같은 달 9일 정부가 쿠팡 측에 유출자와 접촉할 것을 제안했고 14일 쿠팡은 유출자를 처음 만난 뒤 해당 사실을 정부에 보고했으며 16일에는 정부 지시에 따라 유출자의 데스크톱과 하드드라이브를 정부에 제공했다는 게 쿠팡 측 주장이다. 하지만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도 “쿠팡의 입장문 형식의 보도자료에서 정부와 협력했다는 내용 중 일부 국정원으로 추정되는 부분도 사실과 다르거나 왜곡된 부분이 있다”고 반박했다. 쿠팡이 자체 조사와 관련해 정부와 사실 공방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 김범석 쿠팡 의장이 사건 발생 한 달여 만에 사과했다. 그동안 박대준 전 대표가 청문회 등에서 뭇매를 맞고 있는 동안에도 김 의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정부의 압박이 거세지자 처음으로 입을 연 것이다. 5만원 상당 속사정은? 김 의장은 지난달 28일 “쿠팡의 창업자이자 이사회 의장으로서, 쿠팡 전체 임직원을 대표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저희의 책임으로 발생한 이번 데이터 유출로 인해 많은 분께서 자신의 개인정보가 안전하지 않다는 두려움과 불안을 느꼈고 사고 초기부터 명확하게 직접적으로 소통하지 못한 점으로 인해 큰 좌절감과 실망을 안겨 드렸다”며 “사고 직후 미흡했던 초기 대응과 소통 부족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한 달 만에야 입을 연 부분에 대해 “무엇보다 제 사과가 늦었다”면서 “모든 사실이 확인된 이후에 공개적으로 소통하고 사과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돌이켜보면 이는 잘못된 판단”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비판과 질책을 겸허히 받아들인다고도 했다. 하지만 자체 조사 논란에 대해서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김 의장은 “쿠팡은 조사 초기부터 정부에 전면적으로 협력해 왔다”며 “일련의 과정에서 많은 오정보가 확산하는 상황에서도 정부의 ‘기밀 유지’ 요청을 엄격히 준수했다”고 주장했다. 김 의장의 사과는 국회 6개 상임위원회가 참여하는 대규모 연석 청문회를 이틀 앞두고 나왔다. 정부가 범부처 TF를 과기부 총리 산하로 확대하고 다각도로 압수수색과 조사를 진행하는 등 대응 수위를 높이는 상황에 압박을 느꼈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그러나 사과와는 별개로 김 의장은 청문회에 불출석하겠다고 밝혔다. 김 의장뿐만 아니라 동생인 김유석 쿠팡 부사장, 강한승 전 쿠팡 대표 등이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면서 쿠팡에 대한 부정적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여기에 쿠팡이 내놓은 보상안도 도마 위에 올랐다. 쿠팡은 지난달 29일 고객 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해 총 1조6850억원 규모의 보상안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전체적으로 보면 1인당 5만원 상당이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뜯어보면 쿠팡의 ‘꼼수’가 보인다. 청문회는 나 몰라라 보상안은 ▲쿠팡 전 상품 구매 이용권 5000원 ▲쿠팡이츠 5000원 ▲쿠팡트래블 2만원 ▲명품 플랫폼 알럭스 2만원 등으로 구성됐다. 소비자들은 보상금의 상당 부분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 등 평소 이용 빈도가 낮은 서비스 이용권 위주로 구성된 점을 지적했다. 실제 이번 보상안을 통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를 처음 알게 됐다는 소비자도 있다. 시민단체도 쿠팡의 보상안에 반발했다. 참여연대는 “1인당 5만원 보상이라고 했지만 현금이 아닌 구매 이용권으로 사실상 강제 소비를 유도하는 방식”이라며 “보상이 아니라 매출 확대를 위한 마케팅에 불과하다”는 내용의 논평을 발표했다. 쿠팡의 행보는 사사건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민을 조롱하고 정부를 기만하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쿠팡이 미국 시장에 상장한 기업이지만 매출 대부분을 우리나라에서 벌어들이는 상황인데도 이 같은 태도를 보이는 것에 분노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회원 탈퇴, 보상안 거부, 집단소송 참여 움직임이 거세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심지어 이재명 대통령도 쿠팡 사태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쿠팡 사태가 일어나고 사흘 뒤인 지난달 2일 “쿠팡 때문에 국민의 걱정이 많다”면서 “사고 원인을 규명하고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관계부처는 해외 사례를 참고해 과징금을 강화하고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도 현실화하는 등 실질적인 실효적 대책에 나서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뒤늦은 사과·꼼수 보상안 도마 위에 이래서 정치권 인사 영입했나? 의혹 12일에도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반복되는 것에 대해 “경제 제재가 너무 약해서 규정 위반을 밥 먹듯이 한다”며 “앞으로는 규정을 위반해 국민에게 피해를 주면 엄청난 경제 제재를 당해서 ‘회사가 망한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규정을 위반하면 난리가 나야 하는 것 아니냐”며 “그런데 위반해도 태도를 보면 ‘그래서 어쩔 건데’ 이런 느낌이 든다”고 지적했다. 정부도 쿠팡에 강력하게 경고하며 전방위 대응을 예고했다. 실제로 같은 달 29일, 배경훈 부총리 겸 과기부 장관 주재로 ‘쿠팡 사태 범정부TF’ 회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과기부와 경찰청, 개인정보위원회, 금융위원회 등은 역할을 분담해 신속한 조사를 진행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배 부총리는 “쿠팡이 국내 고객 정보 3000만건 이상을 유출한 것은 명백한 국내법 위반 사항으로 정부는 쿠팡이 관련 법령을 위반한 사실이 확인될 경우, 다른 기업과 동일하게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에 따라서는 영업정지 여부도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사방에서 몰아치는 압박에도 쿠팡이 연달아 이상한 행보를 보이자 ‘믿는 구석’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그 정도로 쿠팡의 현재 대응 방식을 이해할 수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쿠팡이 미국 기업인 것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 증시가 쿠팡의 모든 결정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는 것이다. 실제 쿠팡이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한 다음 날 미국 뉴욕 증시에서 쿠팡의 주가는 6% 급등했다. 국내에서는 쿠팡의 ‘셀프 조사’에 분통을 터트리고 있는데 미국 시장에는 호재로 작용한 것이다. 쿠팡이 정치·국회 인사를 대거 영입한 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정치권 인사를 영입해 쿠팡 관련 각종 논란을 틀어막고 있다는 의혹이다. 해당 의혹은 ‘강력 경고’ ‘전방위적 대응’ 등의 수사를 사용하고 있지만 실제 조사는 흐지부지될 것이라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오는 배경으로도 꼽힌다. 변죽 울리다 무사통과? 실제 최근 원내대표직에서 사퇴한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이 국정감사를 한 달여 앞둔 시점에 박대준 전 쿠팡 대표 및 대관 총괄과 오찬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쿠팡이 일용직 퇴직금 미지급 사건에서 검찰 외압 의혹, 물류센터·배송 기사의 과로 및 산재 사망 문제가 제기된 상황이었던 만큼 적절성 논란이 불거졌다. 김 의원은 그달 16일 자신의 SNS에 “공개 일정이고 적어도 5명이 (함께) 식사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만남보다 대화의 내용이 중요한 것 아니냐? 참고로 지난해 7월16일 쿠팡 물류센터도 방문했었다”고 적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