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시 공무원 70억 횡령사건 전말

‘근면성실’ 시청 샌님의 기막힌 이중생활

[일요시사=사회팀] 전남 여수가 발칵 뒤집혔다. 여수시청 회계과에 근무하는 공무원이 70억대 공금을 횡령한 사건이 발생했기 때문. 일개 지방공무원의 뻔뻔한 횡령 혐의가 밝혀지자 곳곳에서는 공무원의 흐트러진 기강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76억원. 대담한 공금 횡령으로 부인과 함께 철창신세를 지게 된 남성이 있다. 그는 여수시청 회계과 8급 공무원인 김모(47)씨. 김씨는 지각·결근 한번 한 적 없는 근면 성실한 직원으로 아무도 그의 소름끼칠만한 이중생활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부인이 사채놀이를 하다 빚이 눈덩이처럼 불자 거액의 빚을 갚기 위해 공금을 빼돌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꼬리가 길면 잡힌다고 했던가. 빚만 갚기 위해 시작했던 공금 횡령은 개인적인 용도로 수십억 대까지 불어났고, 검찰수사 결과 김씨가 3년 동안 저지른 음흉한 행적이 모두 발각됐다.

대형 국고 손실

김씨는 지난 1992년 기능 10급으로 임용됐다. 교동사무소, 수도과 등에서 검침업무를 거쳐 2000년 9월경 기획예산과, 2년 뒤인 2002년에는 지금의 회계과로 부서를 옮겼다. 그는 2006년 9월인 4년 동안 별 문제없이 회계업무를 수행한 후 잠시 총무과로 부서를 옮기다 3년 뒤 2009년 7월, 회계과로 다시 복귀했다. 그는 무려 7년을 넘는 세월 동안 관공서의 직원급여, 세입·세출 등 회계업무를 전담하고 있었다. 운 좋게 다시 제자리를 찾은 김씨는 전입한 지 불과 일주일 만에 범행을 시작했다. 원인 역시 돈에 있었다.

김씨의 부인은 지난 2007년경부터 사채놀음에 빠져있었다. 사채업자에게 사채를 받아 지인들을 상대로 돈놀이를 시작했지만 채무자가 말없이 도망가면서 채권회수가 부진하게 됐다. 그녀는 자신이 대부업체로부터 빌린 8억원을 변제하지 못했고, 고리 사채 또한 체감할 수 없을 만큼 늘었다. 결국 2009년경에는 고리사채만 수십억원에 다다를 정도가 됐다. 채권자들은 하루를 멀다하고 변제를 독촉했고, 이에 정신적 충격을 받는 김씨 부인은 정신과 치료를 동반한 빙의를 겪기도 했다.


김씨는 부인의 간곡한 요청과 자신의 상황을 비관하던 중 빚이라도 갚기 위해 공금 횡령을 결심했다. 그러나 김씨의 횡령은 해가 갈수록 대담해졌고 점점 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몇 차례에 걸친 공금 빼돌리기로 모든 채무는 변제했지만, 김씨의 돈에 대한 탐욕은 끝이 없었다.

그는 지인들로부터 64억원에 달하는 금액에 대한 차명계좌 11개를 개설했다. 김씨는 64억원 중 반은 채무변제로, 나머지 반은 친인척 명의를 이용해 부동산 구입과 차량 4대 구입, 생활비 충당이란 명목하에 마치 원래부터 자신의 돈이었던 것처럼 공금을 지출했다. 나머지 12억원은 대출금 상환 등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하고 4억원에 이르는 돈은 또 다른 지인 2명에게 전했다. 김씨는 지인 중 1명에게 급전이 필요하다는 문자메시지를 수차례 받아 돈을 빌려주기 위해 공금을 빼돌리기도 했다.

그렇다면 왜 김씨는 3년 동안 거액을 횡령했음에도 모든 감사와 단속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일까. 그는 시청 내 관리감독이 부실한 점을 이용, 관련 문서를 위조하거나 허위로 작성하는 방법을 이용했다. 실제로 대부분의 지방자치제의 모든 업무는 전산화(e-호조시스템)돼 있지만, 유독 여수시청 내 김씨가 전담한 회계업무는 수기에 의존하고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수기로 업무를 하는 게 전산보다 정확하고 빠르다”는 김씨의 말 한마디 때문이었다.

평소 근면 성실은 물론 잡음을 내지 않고 묵묵히 일해 온 그를 무조건적으로 신뢰했던 여수시는 그의 업무만은 예외로 해줬다. 만약 여수시가 예산과 지출 등을 포함한 모든 재정 상태를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는 전산시스템만 사용했더라도 3년간 76억원에 이르는 거대 횡령사고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안에선 근면성실…밖에선 횡령금으로 부귀영화
부인 사채 불자 지인들 차명계좌로 공금 빼돌려

매년 치르는 수박 겉핥기식 감사도 공금횡령의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2009년 7월부터 올해 9월까지 3년간 10차례에 걸쳐 대대적인 회계감사를 실시해왔지만 공무원들의 안이한 업무수행 때문에 김씨의 거대 횡령은 발견할 수조차 없었다. 여수시는 사건 보름 전에도 시청 관계자의 비리 제보를 받고 특별감사를 실시한 바 있으나 단 한 차례의 비리도 잡아내지 못했다. 공직감찰 과정에서 들통난 김씨의 범행은 공직자들의 부정부패와 허술한 업무체제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대표적인 예로 인식되고 있다.

김씨는 동료 직원의 횡령 제보에 따른 감사를 받게 되자 수면제 복용과 승용차 내에 번개탄을 피운 채 운전하는 등 부인과 함께 동반자살을 결심했다. 하지만 그들의 자살기도는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는 재차 감사를 받으면서 모든 범행이 낱낱이 밝혀졌고 지난달 29일 구속 기소됐다.


검찰은 김씨 등에 대한 자금을 추적한 결과 김씨 부인 명의 및 차명계좌에는 잔고가 거의 남아있지 않음을 확인했고, 김씨 소유의 아파트 1채와 횡령자금이 유입된 친인척 명의의 부동산에 대해서는 가압류를 신청했다.

회계과의 다른 동료들은 김씨의 범행이 언론을 통해 드러나자 경악을 금치 못했다. 동료 중 1명은 모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김씨가 그렇게 열심히 일한 이유가 자신의 범행이 탄로 나지 않을까 두려움과 초조함 속에서 돈을 빼내려는 기만술이었음을 알았다”며 “평소 성실하고 검소한 사람이라 공금에 손댔을 거라고는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고 탄식했다.

또 다른 직원은 “말수도 적고 평판도 나쁘지 않았던 김씨가 범죄 때문에 가까운 친구들도 멀리하고 아내와 범행에 참여한 친인척들만 상대하다보니 일그러진 삶을 살아오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고 전했다.
김씨는 회사내외로 철저한 이중생활을 일삼아 왔다. 출근할 때에는 소형차를 끌고 다니며 평범한 복장을 하고 다녔고, 돈과는 거리가 먼 생활을 해왔다. 반면 그의 부인은 외제차에 골프 라운딩을 즐기는 등 김씨가 횡령한 자금으로 여유로운 생활을 영위해 왔다.

허술한 관리시스템

평생 밝혀지지 않을 것만 같았던 김씨의 위선적인 행동은 3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만천하에 공개됐다. 검찰에 따르면 김씨의 횡령자금은 이보다 더 많은 100억대까지 이를 수도 있다고 한다. 역대 정부는 공직자의 부정부패의 꼬리를 자르려고 무던히도 노력해왔다. 그러나 실상은 다람쥐 쳇바퀴 돌듯 악순환만 남아있는 실정이다.

이 사건을 접한 국민들은 거액의 공금을 횡령한 김씨보다 국민의 혈세를 무책임하게 방치했던 대다수 공직자들의 행태를 비난하고 있다. 하루빨리 공무원의 기강을 바로잡고 이 같은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정부의 강력한 조치가 요구되고 있다.   

김지선 기자 <jisun86@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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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