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억8000여만원 규모의 뇌물수수 혐의 사건 중 13억원은 ‘수사조차 하지 못한 채’ 사라졌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은 지난 22일, “감사원 고위 간부의 15억8000여만 원 뇌물 사건과 관련해, 감사원의 의뢰로 2021년 처음 수사에 착수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법원에서 ‘소명 부족’ 등의 이유로 기각됐고, 이후 별다른 보완 없이 2023년 사건을 검찰로 넘겼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검찰은 2024년 1월 공수처에 보완수사를 요구했지만, 공수처는 검찰에 그런 법적 권한이 없다는 이유로 이를 거부했다”며 “이에 검찰이 직접 보완수사에 나서 압수수색 등 영장을 청구했으나, 법원은 공수처 사건에 대해 검찰의 보완수사 권한이 불명확하다는 이유로 영장을 기각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서울중앙지검 안동건 검사는 “이처럼 검찰의 보완수사 요구와 직접 보완수사 모두가 막힌 상황에서, 공수처의 최초 사건 송부 이후 수사가 사실상 멈춰 있었다”며 “그 사이 일부 뇌물 혐의의 공소시효가 임박해, 결국 현재까지 확보된 증거만으로, 지난 22일 충분한 진실규명 없이 사건을 끝낼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결국 2억8000여만원만 재판에 넘겨졌고, 13억원 혐의는 ‘증거 부족’이 아니라 ‘수사 자체가 불가능한 구조’ 속에서 사라진 것이다.
이 상황을 국민의 눈높이에서 보자. 범죄 의혹이 있어 수사해야 하는데 부족하고 추가 수사마저 할 권한이 없다. 그렇다면 그 사건은 어떻게 되는가. 답은 단순하다. 그냥 끝난다. 진실은 밝혀지지 않고, 책임도 규명되지 않은 채 사건은 사라진다. 이것이 지금 우리가 가진 ‘사법 시스템의 작동 방식’이다.
더 심각한 것은 이 일이 ‘예외’가 아니라 ‘구조’라는 점이다. 공수처는 보완수사를 하지 않아도 되고, 검찰은 직접 할 수 없으며, 법원은 이를 막을 수 있다. 세 기관 모두 법적으로 맞는 행동을 했지만 결과는 정의의 실종이다. 누구도 잘못하지 않았는데, 정의만 사라진다. 그 결과는 시스템에 대한 신뢰 자체를 무너뜨린다.
이 구조는 견제가 아닌 무력화다. 권한은 나뉘었지만 연결되지 않았고, 책임은 분산된 것이 아니라 해체됐다. 사건은 공수처에서 검찰로, 다시 검찰에서 공수처로 이동했다. 이른바 ‘핑퐁 수사’다. 공은 오가는데 득점은 없었고 시간만 흘렀으며 증거는 사라졌다. 그 사이 진실은 점점 멀어졌고, 세 기관은 서로를 견제하지 않았다. 서로를 멈추게 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한 가지 더 분명히 해야 한다. 이 구조는 우연히 생긴 것이 아니다. 더불어민주당이 공수처법을 설계할 당시, 보완수사에 대한 권한과 의무를 명확히 정리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 구조적 공백이다. 권한 분산에는 집중했지만, 권한이 멈췄을 때 누가 이어받을 것인가에 대한 설계는 빠져 있었다. 그 결과가 지금의 ‘수사 불능’이다.
이제 질문은 더 명확히 ‘이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공수처인가, 검찰인가, 법원인가, 법을 만든 국회인가’라고 던져야 한다. 결론은 불편하지만 분명하다. 넷 모두에게 있는 것이다.
공수처는 보완수사를 거부할 수 있는 구조 속에서 책임을 회피했고, 검찰은 직접 수사 권한이 제한된 상태에서 결과를 만들어내지 못했으며, 법원은 권한의 경계를 지키는 판단을 했지만 책임은 지지 않았고, 국회는 법을 치밀하게 만들지 못했다.
미국은 검사가 수사를 지휘하고 필요하면 직접 보완수사를 한다. 독일 역시 검사가 수사의 주체로서 경찰을 통제하고 추가 수사를 명령할 수 있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검찰이 보완수사를 요구하면 경찰은 이를 따라야 한다. 어느 나라를 보더라도 공통점은 하나다.
수사가 부족하면 반드시 보완할 수 있어야 하고, 그 결과에 대해 책임지는 주체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반면 우리는 다르다. 보완수사는 필요하지만 가능하지 않은 구조다. 요구는 할 수 있지만 강제할 수 없고, 직접 할 수도 없다. 이 구조는 책임의 공백을 만들고, 그 공백 속에서 사건은 사라진다. 이것은 선진적 분권이 아니라, 책임 없는 해체다.
이 지점에서 사법개혁의 방향은 분명해진다. 지금까지의 개혁이 권한을 나누는 데 집중했다면, 이제는 책임을 끊기지 않게 연결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수사와 기소의 분리는 수단일 뿐 목표가 아니다. 목표는 단 하나, 사건이 끝까지 처리되고 그 결과에 대해 반드시 책임이 남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책임 연속성’이 제도에 포함돼야 한다. 한 기관이 멈추면 다른 기관이 이어받고, 그 과정에서 책임이 사라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보완수사 요구는 더 이상 협조 요청이어서는 안 된다. 법적 의무가 돼야 한다.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명확한 제재가 뒤따라야 하며, 일정 범위 내에서는 기소기관이 직접 보완수사를 수행할 수 있는 예외적 권한도 필요하다.
동시에 사건이 어느 지점에서 멈췄는지, 누가 책임자인지를 끝까지 추적하는 ‘책임 기록 시스템’도 도입해야 한다.
문제는 앞으로다. 오는 10월 출범 예정인 중수청과 공수청 역시 같은 구조 위에 서 있다. 지금처럼 보완수사 권한과 의무를 명확히 규정하지 않는다면, 그 공백은 그대로 반복될 수밖에 없다. 공수처와 검찰 사이의 핑퐁 게임이 중수청과 공소청 사이에서도 그대로 재현될 가능성이 크다는 말이다.
사법 시스템은 정교함이 아니라 작동으로 평가받는다. 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결과를 만들지 못하면 실패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더 많은 기관이 아니라, 더 명확한 책임이다. 권한은 나눌 수 있으나 책임은 끊을 수 없다. 이번 사건은 끝난 사건이 아닌 반복될 사건의 예고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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