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연재> ‘몽키하우스’ 미군 위안부 수용소 (22)대니 보이, 누구냐 넌?

  • 김영권 작가 nammunsan@naver.com
  • 등록 2026.04.20 05:30:18
  • 호수 158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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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니 보이란 과연 누구일까?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아일랜드는 영국의 지배를 받고 있었고 생활이 많이 어려웠다. 청년들까지 1차 세계대전 등에 징용당했다. 이 노래는 이런 어지러운 상황 속에서 전쟁터로 떠날 수밖에 없었던 대니를 사랑하는 소녀가 헤어지기 안타까워 부른 이별의 노래라고 한다. 또는 멀리 떠난 아들을 그리워하는 어머니의 애틋한 노래라는 얘기도 전해 온다.

정면으로 보이는 얼굴은 어찌 보면 좀 흉측하기도 했으나 아무도 개의치 않았다. 코를 중심으로 얼굴의 반은 백색이고 반은 흑색으로 화장한 모습이었다.

반은 백색

미군들은 오히려 재미있다는 듯 웃으며(어디선가 ‘몽키 걸’이란 말이 들려오긴 했지만…), 흑인과 백인들이 잠시나마 함께 어울려 먼 고향 아메리카 초원의 추억을 되새기는 양 컨츄리송을 따라 불렀다. 향수에 젖어 눈물을 글썽이는 녀석도 있었다.

누가 그들을 포악하고 야비한 양키라고 욕할 수 있겠는가? 그 순간만큼은 신마저 어여삐 여겨 눈물을 닦아 줄 터였다.

무희를 향해 달러 지폐와 동전이 날아갔다. 춤을 끝낸 그녀는 환호성에 답해 손 키스를 던져 준 후 무대 장막 뒤로 사라져 갔다.

청운은 담비처럼 잽싸게 무대 위로 올라가 그녀의 춤옷과 달러화를 챙겨서는 곧장 뒤따랐다. 장막 뒤의 분장실 겸 대기실로 들어서자 자욱한 담배 연기 속에 여자들의 수다가 왁자지껄했다.

그녀는 화장대의 거울 앞에 앉아 티슈로 화장을 지우고 있었다. 청운이 돈을 내밀자 그녀는 거울을 통해 슬쩍 쳐다보더니 고갯짓으로 탁자를 가리켰다. 청운이 돈을 놓고 돌아서는데 그녀가 한 마디 툭 던졌다.

“헤이, 아조씨 옷은 두고 가야죠.”

청운은 자기 팔에 걸쳐져 있는 붉은 옷을 내려다보곤 얼핏 놀란 표정이었다. 그는 곧 허물 같은 춤옷을 옷걸이에 건 뒤 몸을 돌려 나갔다.

“잠깐!”

감정이 전혀 담기지 않았으면서도 쓸쓸한 울림을 지닌 목소리에 청운은 슬쩍 돌아보았다.

“왜요?”

“동전과 은화는 가져가요. 팁이에요.”

“뭘요, 괜찮아요. 하하, 아좀마….”

청운은 여자가 했던 말투로 대꾸하곤 곧장 밖으로 나갔다. 뒤에서 여자들의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밤도 제법 깊었다.

일을 하는 사이 창문을 바라보면 눈송이가 불빛에 섞여 언뜻언뜻 보이다가 사라지곤 했다.

무대 위에서는 무명 가수와 코미디언들이 번갈아 나와 재롱을 떨고 있었지만 관중들은 별 관심 없이 술을 마시며 이제 짝짓기 상대에 열중한 상태였다.

서로 마음을 맞춘 남녀는 웃음을 나누며 서둘러 홀을 빠져 나갔다. 육중하고 큰 그림자와 작고 가냘픈 그림자를 벽에 남기며….

청운은 가능한 한 현실을 있는 대로만 보고 자기 감정을 개입시키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때였다. 이상스런 신음소리가 청운의 귀를 곤두세웠다.

“아악 살려 줘요.”

그건 눈을 밟는 발자국 소리처럼 미약하여 지옥 같은 악마산에서 특수훈련을 받은 청운마저 뭔지 헷갈릴 정도였다.

하지만 그는 곧 홀의 골마루를 지나 뒷문 쪽으로 달려갔다. 어둑한 뒤쪽 계단에서 건장한 흑인이 한 여인의 목을 조르고 있었다.

놈은 잔뜩 화난 고릴라처럼 씨근벌떡거렸고 여자는 가녀린 팔로 벗어나려 애를 썼지만 역부족이었다.

“디스 이즈 데드 키스. 흐흐흐.”

흑인은 음흉스레 웃으며 신음하는 여자의 입술을 빨려고 들었다. 죽음의 키스. 놈은 마치 영화를 찍는 배우 같은 폼이었다.

“핫, 핫….”

여자는 곧 숨이 넘어갈 듯 할딱거렸다. 청운은 일단 고주망태라도 된 듯, 비틀비틀 계단을 걸어 내려가며 흑인에게 상체를 한번 쿡 부딪쳤다. 놈의 성난 눈알이 청운에게로 향했다.

“갓뎀! 개쇼키!”

녀석이 허연 이빨을 드러내며 짖었다.

“갓뎀!”

청운은 대꾸하며 히죽 웃었다. 흑인 녀석의 한 손이 별안간 청운의 멱살을 잡았다. 억센 악력이었다.

청운은 맥없이 끌려가는 척하다가 왼손으로는 목의 급소를 재빨리 슬쩍 찌르는 동시에 오른쪽 주먹으로 놈의 명치를 세게 올려쳤다.

놈은 양손을 놓고 허우적대며 주저앉더니 아예 드러누워 버렸다.

세계대전 징용 당한 아일랜드 청년들
아들 그리워하는 어머니 애틋한 노래

“좀 있다 깨어나 현실을 알아보면, 훗날 하나의 추억이 될 거야.”

청운은 중얼거린 후 급히 여인을 안아들고 계단을 내려갔다. 그녀는 미간을 살짝 찡그린 채 진홍색 입술 사이로 신음소리를 흘려냈다. 하얀 목에 짙은 손자국이 나고 파란 정맥이 어렴풋이 내비쳤다.

인적이 좀 뜸한 골목의 전신주에 그녀를 기대어 앉힌 청운은 뺨을 찰싹찰싹 두드렸다.

여자는 신음소리만 낼 뿐이었다.

인공호흡 겸 충격요법으로 입술을 한번 빨아 볼까 하고 가까이 다가가는 순간 여자의 눈이 서서히 뜨였다. 청운은 곧 뒤로 물러났다. 그녀는 천천히 심호흡을 몇 번 했다.

붉은 옷과 붉은 구두가 아니더라도 청운은 그녀가 바로 그 진홍의 무희임을 알아볼 수 있었다. 여자는 윗니로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앞에 웅크린 남자가 자신의 입술을 탐했다고 생각하는지도 몰랐다.

“그런 일 없었으니 걱정 마요.”

청운은 중얼거렸다.

“뭐라구요? 내가 왜 여기 이러고 있죠? 혹시 당신이 날 납치했나요?”

“아뇨.”

“그럼 대체 무슨 일이 있었나요?”

“무슨 일이 있긴 했지만 별일은 없었어요.”

“무슨 소리죠?”

“어떤 흑인이 당신의 목을 조르고 있더군요.”

“그럼 당신이 구해 줬나요?”

“가능하다면 그런 얘긴 아무한테도 하지 마세요. 그놈은 아마 술에 취해 계단에서 굴렀다고 생각할 테니 일을 만들지 말자구요.”

“알았어요.”

반은 흑색

“그럼 이만 가볼게요. 이젠 일어서서 어서 갈 길을 가요.”

“술 취하면 개귀신처럼 달라붙는 놈들이 많아요. 흰둥이들도 마찬가지예요. 혹시 내 보디가드가 될 생각 없나요?”

여자가 하얀 치아를 살짝 내보이며 웃음 지었다.

“하하, 빨리 가봐야 해요.”

청운은 그 말을 뒤에 남기곤 급히 클럽을 향해 발을 옮겼다. 어디선가 캐롤송 소리가 희미하게 끊어질 듯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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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용지가 없다니…’ 초유의 사태 후폭풍

‘투표용지가 없다니…’ 초유의 사태 후폭풍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선거가 끝난 뒤에는 자연스럽게 후폭풍이 따라온다. 이긴 쪽은 동력을 얻고 진 쪽은 수습에 나선다. 하지만 이번 지방선거는 결과만큼이나 선거관리위원회의 행보가 회자할 것으로 보인다. ‘투표용지 부족’이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불러온 후폭풍이 지방선거를 뒤흔드는 모양새다.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는 이재명정부 출범 1년(4일)을 앞두고 치러졌다. 선거 자체가 국민의 심판을 받는다는 취지로 치러지는 만큼 여야는 결과에 사활을 걸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광역단체장 등에서 싹쓸이로 의회 권력에 이어 지방 권력까지 차지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고, 국민의힘은 ‘견제’를 외치며 맞섰다. 누구 손도 안 들어줘 민심은 절묘했다. 광역단체장 선거에서 민주당은 총 16개 시‧도 중 12곳에서 이겼다. 결과만 놓고 보면 압승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격전지였던 서울시장 선거에서 채 1% 차이도 나지 않게 석패했다. 관심을 모았던 대구에서도 졌다. 지방선거와 함께 치러진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서도 관심이 집중된 부산 북구갑에서 의석을 내줬다. 반면 국민의힘은 선거 초반 전패를 예상했던 것과 비교해 상당히 선전했다는 평을 받는다. 서울을 수성했고 텃밭인 대구에서도 예상보다 수월하게 이겼다. 경기 평택을 선거에서도 ‘어부지리’지만 의석 하나를 건졌다. 민주당으로선 이겨도 찜찜한, 국민의힘은 졌지만 미묘하게 웃을 수 있는 결과가 나온 셈이다. 이제 여야는 물론 이재명 정부는 선거 결과에 따른 후폭풍을 마주해야 한다. 여야 모두 ‘완벽하게 이겼다, 혹은 졌다’는 결과를 받아든 게 아니기에 후폭풍은 작지 않으리라고 예상된다. 전당대회를 앞둔 민주당은 이번 선거 결과를 두고 당권 싸움을 시작할 것이고, 보수 궤멸 직전에 간신히 살아남은 국민의힘에서도 내전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여기에 또 다른 후폭풍이 더해졌다는 점이다. 심지어 이 후폭풍의 크기는 선거 결과에 따른 후폭풍과는 차원이 다르다. 선거의 신뢰성 문제까지 뒤흔들 수 있는 수준의 초대형 태풍급이다. 선거에서 심판 역할을 맡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가 도마 위에 올랐기 때문. 지난 3일 지방선거 본투표 중에 서울 일부 지역에서 투표용지 부족으로 유권자가 투표하지 못하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났다. 유권자의 참정권 행사라는 선거의 가장 본질적인 부분에 취지가 훼손된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이 같은 일이 투표소 한 군데가 아니라 십수 군데서 발생했다는 점이다. 선관위에 따르면 지난 3일 서울 송파구 잠실 일대를 비롯한 12개 투표소와 강남구 1개 투표소, 광진구 1개 투표소에서 투표용지가 부족해 유권자들이 투표하지 못하고 현장에서 대기하는 일이 벌어졌다. 선관위는 사태를 인지한 후 투표용지를 이송하고 현장 대기 인원에 한해 투표를 보장하겠다고 했다. 소쿠리 이어 투표지가 없다? 부정선거 논란에 불 질렀다 하지만 잠실7동 제2투표소는 대기표를 받은 유권자를 대상으로 오후 10시까지 투표 시간을 연장하는 등 혼란이 발생했다. 동시에 소식을 접한 시민과 유튜버 등이 투표소에 몰리면서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일부 투표소에서는 투표함 반출을 둘러싸고 선관위 관계자와 시민 사이에 대치 상황까지 벌어졌다. 이번 투표용지 부족 사태는 선거의 공정성과 신뢰성에 강한 타격을 입혔다. 특히 서울시장 선거는 국민적 관심이 집중됐던 데다 개표가 진행되면서 출구조사보다 실제 결과가 훨씬 박빙으로 나오고 있는 상태였다. 개표가 진행되는 와중에 투표도 동시에 이뤄지는 말도 안 되는 상황에 여야는 물론 지지자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국민의힘은 개표 중단을 요구했다.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발생한 지역이 공교롭게도 서울 지역 내에서 비교적 보수세가 강한 ‘강남권’으로 확인되자 당력을 집중한 것이다. 국민의힘 장동혁 상임선대위원장은 긴급 기자회견에서 개표를 중단하고 결과에 따라 서울시 선거를 다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개표를 멈추고 상황에 따라 재선거를 치러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민주당은 선관위에 책임을 묻겠다면서도 국민의힘의 개표 중단, 재선거 요구는 일축했다. 민주당 조승래 총괄선대본부장은 국민의힘의 요구에 ‘일고의 가치가 없다’고 말했다. 선관위의 부실한 선거 관리에 대해서는 책임을 묻겠다고 약속하면서도 선거를 다시 치를 필요까지는 없다는 뜻으로 풀이됐다. 선관위 역시 대국민 사과를 하면서도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선거 연기나 재선거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발표했다. 앞서 허철훈 선관위 사무총장은 “국민 여러분께 큰 혼란과 심려를 끼쳐 드렸다”며 “소중한 주권을 행사하기 위해 투표소를 찾아주신 국민께 불편을 드리고 공정한 선거 관리에 대한 신뢰를 훼손한 점에 대해 책임을 통감한다”고 고개를 숙였다. 박빙에서 불 질렀다 그러면서 “중앙선관위는 이번 사안을 엄중히 인식하고 있으며 개표가 종료되는 즉시 일부 투표소의 투표용지가 부족했던 원인과 문제점을 정확히 파악해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겠다”며 “미흡한 준비와 대처로 실망을 드리게 돼 다시 한번 사과드린다”고 덧붙였다. 또 이상능 선관위 선거1국장은 “이런 사례가 과거 선거에서 발생했다는 보고를 받은 적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송파구의 경우 전체 유권자 수의 50% (규모의 투표용지)를 인쇄한 것으로 파악했다”고 말했다. ‘몇 표 차이로 선거 당락이 갈리는 경우가 있는데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윤재수 선거관리정책실장은 “저희가 직접 말씀드리기는 좀 곤란할 것 같다”며 “소송 절차 등을 통해 법원의 결정에 따라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답했다. 선관위는 지난 4일 0시께 긴급 위원회를 열고 수습 방안을 논의했다. 이후 위원회는 “(투표용지 부족 문제가) 공직선거법에 따른 선거 연기나 재선거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입장문을 내놨다. 또 “현재 진행되는 개표를 중단하는 것은 불가하다”고 강조했다. 국민의힘의 요구에 선을 그은 것이다. 이번 사태로 선관위에 개혁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쏟아지고 있다. 이번 일뿐만 아니라 선거 때마다 일어났던 ‘선관위발’ 논란이 ‘파묘’되는 분위기다. 가장 큰 논란 중 하나는 ‘소쿠리 투표’다. 2022년 대선 당시 코로나19 확진자와 격리자의 사전투표 용지를 간이 용기나 쇼핑백 등에 담으면서 촉발된 논란이다. 지난 조기 대선 때도 서울 신촌의 한 사전투표소에서 관외 선거를 위해 대기하던 일부 유권자가 대기 줄이 길다는 이유로 투표용지를 받은 채 식사하고 돌아오는 일도 있었다. 선관위의 행태는 일부 극우층에서 제기하는 ‘부정선거’ 논란에 빌미를 제공하고 있다. 이들은 본투표에 앞서 이틀간 진행되는 사전투표가 조작됐다는 등 부정선거가 조직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주장을 내세우는데, 선관위 관련 논란도 그 근거로 언급하고 있다. 재선거까지 나왔지만… 부정선거 논란을 차단해야 할 기관에서 오히려 의심만 제공하는 꼴이다. 일각에서는 선관위 내부 사정이 반복되는 부실 선거의 배경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한 언론이 민주당 채현일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1일 기준 선관위 휴직자 수는 176명으로 집계됐다. 최근 10년 새 두 번째로 많은 수치다. 육아휴직이 124명으로 가장 많았고 일반 질병 휴직 30명, 가족 돌봄 휴직 11명, 해외 동반 휴직 8명 등이 뒤를 이었다. 지방선거, 대통령선거, 국회의원 선거 등 이른바 3대 전국 선거 때마다 휴직자가 늘어나는 선관위의 고질적인 병폐가 또다시 되풀이됐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실제 2022년 5월 기준 선관위 휴직자 수는 218명으로 최근 10년 기준으로 가장 많았다. 당시 3월에는 대선, 6월에는 지방선거가 각각 치러졌다.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으로 갑작스럽게 치러진 지난해에도 선거를 한 달 앞둔 5월 기준 휴직자는 145명에 달했다. 이 같은 문제가 반복적으로 지적되자 선관위도 선거 기간에는 휴직을 자제하라는 내용의 공지를 내리는 등 개선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법으로 보장된 육아휴직 등은 강제로 제한할 수 없으니 인력을 채용하는 방향으로 인력 공백을 막겠다는 대응책도 내놨다. 하지만 앞서 선관위 내부에서 채용 관련 비리 의혹이 크게 불거지면서 이마저도 미덥지 못한 방안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더 큰 문제는 선거 때마다 논란이 불거지고 내부의 고질적인 병폐 등으로 지적을 받는 와중에도 선관위는 큰 변화가 없다는 점이다. 독립된 ‘헌법기관’이라는 방패를 내세워 ‘지금만 넘기면 된다’는 안일한 생각이 선관위를 좀먹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자정을 할 수 없으면 외력이라도 가해야 하는데 그것조차 막혀 있다는 것이다. 선거 때마다 구설 불거지는데… 자정은커녕 외부 감사도 안 돼 2023년 5월 당시 선관위 사무총장, 사무차장 등 고위 간부의 자녀가 선관위 경력직 채용에 특혜를 받았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다. ‘아빠 찬스’ 논란의 시발점이다. 이후 선관위 자체 특별감사 결과 고위직 자녀 특혜 채용이 관행적으로 이뤄졌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 과정에서 감사원이 선관위의 인력 관리 실태에 관한 직무감찰에 착수했다. 그러자 선관위는 ‘독립기관’임을 내세우면서 감사원 감사를 수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국회는 물론 여론의 반발이 거셌다. 선관위는 감사원 직무감찰을 부분적으로 수용하면서도 “감사원의 감사 범위를 명확히 정리할 필요가 있다”며 2023년 7월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했다. 헌재는 선관위의 손을 들어줬다. 지난해 2월 헌재는 “이 사건 직무감찰은 헌법 및 법률상 권한 없이 이뤄진 것으로 선관위의 독립적 업무 수행 권한을 침해했다”고 밝혔다. 선관위가 감사원의 감사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헌법에 기재된 감사원의 감사 범위가 “행정부 내부의 통제장치로서의 성격”인 만큼 정부와 독립된 헌법기관인 선관위는 국회, 법원, 헌재와 같이 직무감찰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본 것이다. 그 배경으로 선관위의 선거 관리 업무를 들었다. 대통령 소속 기관인 감사원이 독립된 헌법 기구인 선관위를 직무감찰할 수 있게 되면 선거 관리 공정성에 대한 신뢰가 훼손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감사원의 직무감찰 배제가 곧바로 부패 행위에 대한 성역의 인정으로 호도돼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헌재는 “감사원 직무감찰을 허용하지 않는 것은 이를 대신할 독립성과 전문성을 갖춘 자체 감찰기구가 마련될 것이라는 점을 전제로 한 것”이라며 “선관위는 자체 감찰제도의 실효성을 담보함으로써 우려를 불식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결국 내부 자정 기능에 기대를 건 것이다. 이번에는 고쳐질까 하지만 채용 의혹은 차치하고라도 그 이후에도 가장 본연의 업무인 선거 관리에서 계속해서 잡음을 내고 있다는 점에서 선관위를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은 곱지 않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4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민주공화국에서 무엇보다 철저해야 할 선거 관리에 납득하기 쉽지 않은 허점이 발생한 점에 대해 매우 큰 유감을 표한다”며 “국민의 참정권이 한치라도 훼손되는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신뢰할 만한 적절한 대책을 조속하게 마련해 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제 지방선거는 끝났다. 선관위는 이 후폭풍을 감당할 수 있을까.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