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초까지만 해도 아일랜드는 영국의 지배를 받고 있었고 생활이 많이 어려웠다. 청년들까지 1차 세계대전 등에 징용당했다. 이 노래는 이런 어지러운 상황 속에서 전쟁터로 떠날 수밖에 없었던 대니를 사랑하는 소녀가 헤어지기 안타까워 부른 이별의 노래라고 한다. 또는 멀리 떠난 아들을 그리워하는 어머니의 애틋한 노래라는 얘기도 전해 온다.
정면으로 보이는 얼굴은 어찌 보면 좀 흉측하기도 했으나 아무도 개의치 않았다. 코를 중심으로 얼굴의 반은 백색이고 반은 흑색으로 화장한 모습이었다.
반은 백색
미군들은 오히려 재미있다는 듯 웃으며(어디선가 ‘몽키 걸’이란 말이 들려오긴 했지만…), 흑인과 백인들이 잠시나마 함께 어울려 먼 고향 아메리카 초원의 추억을 되새기는 양 컨츄리송을 따라 불렀다. 향수에 젖어 눈물을 글썽이는 녀석도 있었다.
누가 그들을 포악하고 야비한 양키라고 욕할 수 있겠는가? 그 순간만큼은 신마저 어여삐 여겨 눈물을 닦아 줄 터였다.
무희를 향해 달러 지폐와 동전이 날아갔다. 춤을 끝낸 그녀는 환호성에 답해 손 키스를 던져 준 후 무대 장막 뒤로 사라져 갔다.
청운은 담비처럼 잽싸게 무대 위로 올라가 그녀의 춤옷과 달러화를 챙겨서는 곧장 뒤따랐다. 장막 뒤의 분장실 겸 대기실로 들어서자 자욱한 담배 연기 속에 여자들의 수다가 왁자지껄했다.
그녀는 화장대의 거울 앞에 앉아 티슈로 화장을 지우고 있었다. 청운이 돈을 내밀자 그녀는 거울을 통해 슬쩍 쳐다보더니 고갯짓으로 탁자를 가리켰다. 청운이 돈을 놓고 돌아서는데 그녀가 한 마디 툭 던졌다.
“헤이, 아조씨 옷은 두고 가야죠.”
청운은 자기 팔에 걸쳐져 있는 붉은 옷을 내려다보곤 얼핏 놀란 표정이었다. 그는 곧 허물 같은 춤옷을 옷걸이에 건 뒤 몸을 돌려 나갔다.
“잠깐!”
감정이 전혀 담기지 않았으면서도 쓸쓸한 울림을 지닌 목소리에 청운은 슬쩍 돌아보았다.
“왜요?”
“동전과 은화는 가져가요. 팁이에요.”
“뭘요, 괜찮아요. 하하, 아좀마….”
청운은 여자가 했던 말투로 대꾸하곤 곧장 밖으로 나갔다. 뒤에서 여자들의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밤도 제법 깊었다.
일을 하는 사이 창문을 바라보면 눈송이가 불빛에 섞여 언뜻언뜻 보이다가 사라지곤 했다.
무대 위에서는 무명 가수와 코미디언들이 번갈아 나와 재롱을 떨고 있었지만 관중들은 별 관심 없이 술을 마시며 이제 짝짓기 상대에 열중한 상태였다.
서로 마음을 맞춘 남녀는 웃음을 나누며 서둘러 홀을 빠져 나갔다. 육중하고 큰 그림자와 작고 가냘픈 그림자를 벽에 남기며….
청운은 가능한 한 현실을 있는 대로만 보고 자기 감정을 개입시키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때였다. 이상스런 신음소리가 청운의 귀를 곤두세웠다.
“아악 살려 줘요.”
그건 눈을 밟는 발자국 소리처럼 미약하여 지옥 같은 악마산에서 특수훈련을 받은 청운마저 뭔지 헷갈릴 정도였다.
하지만 그는 곧 홀의 골마루를 지나 뒷문 쪽으로 달려갔다. 어둑한 뒤쪽 계단에서 건장한 흑인이 한 여인의 목을 조르고 있었다.
놈은 잔뜩 화난 고릴라처럼 씨근벌떡거렸고 여자는 가녀린 팔로 벗어나려 애를 썼지만 역부족이었다.
“디스 이즈 데드 키스. 흐흐흐.”
흑인은 음흉스레 웃으며 신음하는 여자의 입술을 빨려고 들었다. 죽음의 키스. 놈은 마치 영화를 찍는 배우 같은 폼이었다.
“핫, 핫….”
여자는 곧 숨이 넘어갈 듯 할딱거렸다. 청운은 일단 고주망태라도 된 듯, 비틀비틀 계단을 걸어 내려가며 흑인에게 상체를 한번 쿡 부딪쳤다. 놈의 성난 눈알이 청운에게로 향했다.
“갓뎀! 개쇼키!”
녀석이 허연 이빨을 드러내며 짖었다.
“갓뎀!”
청운은 대꾸하며 히죽 웃었다. 흑인 녀석의 한 손이 별안간 청운의 멱살을 잡았다. 억센 악력이었다.
청운은 맥없이 끌려가는 척하다가 왼손으로는 목의 급소를 재빨리 슬쩍 찌르는 동시에 오른쪽 주먹으로 놈의 명치를 세게 올려쳤다.
놈은 양손을 놓고 허우적대며 주저앉더니 아예 드러누워 버렸다.
세계대전 징용 당한 아일랜드 청년들
아들 그리워하는 어머니 애틋한 노래
“좀 있다 깨어나 현실을 알아보면, 훗날 하나의 추억이 될 거야.”
청운은 중얼거린 후 급히 여인을 안아들고 계단을 내려갔다. 그녀는 미간을 살짝 찡그린 채 진홍색 입술 사이로 신음소리를 흘려냈다. 하얀 목에 짙은 손자국이 나고 파란 정맥이 어렴풋이 내비쳤다.
인적이 좀 뜸한 골목의 전신주에 그녀를 기대어 앉힌 청운은 뺨을 찰싹찰싹 두드렸다.
여자는 신음소리만 낼 뿐이었다.
인공호흡 겸 충격요법으로 입술을 한번 빨아 볼까 하고 가까이 다가가는 순간 여자의 눈이 서서히 뜨였다. 청운은 곧 뒤로 물러났다. 그녀는 천천히 심호흡을 몇 번 했다.
붉은 옷과 붉은 구두가 아니더라도 청운은 그녀가 바로 그 진홍의 무희임을 알아볼 수 있었다. 여자는 윗니로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앞에 웅크린 남자가 자신의 입술을 탐했다고 생각하는지도 몰랐다.
“그런 일 없었으니 걱정 마요.”
청운은 중얼거렸다.
“뭐라구요? 내가 왜 여기 이러고 있죠? 혹시 당신이 날 납치했나요?”
“아뇨.”
“그럼 대체 무슨 일이 있었나요?”
“무슨 일이 있긴 했지만 별일은 없었어요.”
“무슨 소리죠?”
“어떤 흑인이 당신의 목을 조르고 있더군요.”
“그럼 당신이 구해 줬나요?”
“가능하다면 그런 얘긴 아무한테도 하지 마세요. 그놈은 아마 술에 취해 계단에서 굴렀다고 생각할 테니 일을 만들지 말자구요.”
“알았어요.”
반은 흑색
“그럼 이만 가볼게요. 이젠 일어서서 어서 갈 길을 가요.”
“술 취하면 개귀신처럼 달라붙는 놈들이 많아요. 흰둥이들도 마찬가지예요. 혹시 내 보디가드가 될 생각 없나요?”
여자가 하얀 치아를 살짝 내보이며 웃음 지었다.
“하하, 빨리 가봐야 해요.”
청운은 그 말을 뒤에 남기곤 급히 클럽을 향해 발을 옮겼다. 어디선가 캐롤송 소리가 희미하게 끊어질 듯 들려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