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보내고 싶지 않은 안성기

  • 서진 기자 jen9@ilyosisa.co.kr
  • 등록 2026.01.12 11:23:48
  • 호수 1566호
  • 댓글 0개

영원히 기억될 ‘천의 얼굴’

[일요시사 취재1팀] 서진 기자 = “내 인생 최고의 작품은 언제나 다음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데뷔 60주년을 맞아 열린 특별전에서 안성기 배우가 한 말이다. 그에게 붙은 수많은 수식어는 단순히 인기가 많아서 생긴 게 아니었다. 그는 영화계 안팎에서 구설 없는 자기 관리와 겸손한 인품으로 후배들의 귀감이 됐다.

그는 ‘국민 배우’라는 왕관의 무게를 묵묵히 지켜냈다. 한국 영화계의 권익이 침해받을 때면 스크린쿼터 사수 운동의 선봉에 서서 문화 주권을 지켰고, 유니세프(UNICEF) 친선대사로서 30년 넘게 봉사하며 선한 영향력을 펼쳤다.

영화계
버팀목

대한민국 영화사 그 자체였던 배우 안성기가 향년 74세를 일기로 영면에 들었다. 그는 지난해 12월30일 심정지 상태로 순천향대학교 병원으로 후송돼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다가 지난 5일 오전 9시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뒀다.

안성기는 지난 2019년 혈액암 진단을 받고 투병했다. 2020년 완치 판정을 받았다가 다시 검진받는 과정에서 암 재발이 확인됐다. 같은 해 10월 입원한 사실이 알려지며 건강 이상설이 불거졌다. 그는 2022년 언론 인터뷰를 통해 혈액암 투병 사실을 밝혔다.

이듬해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건강이 아주 좋아졌다”며 “새 영화로 찾아오겠다”고 복귀를 다짐하기도 했다.

그해까지 부천판타스틱영화제 등 공식 석상에 모습을 보이고, 각종 외부 활동 및 후배 배우들을 통해 근황을 알리기도 했지만, 이후 병세가 급격히 악화돼 투병에 전념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안성기는 생전 완벽에 가까운 자기 관리로 60대 중반에 액션영화 주연을 맡으며 왕성히 활동했으나 결국 병마를 이기지 못했다.

은은히 웃는 얼굴을 한 고인의 마지막 떠나는 길에 조문 행렬이 이어졌다. 빈소는 서울 서초구 반포동에 위치한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31호실에 마련됐다.

고인과 절친으로 알려진 배우 박중훈은 “30년 동안 선배님과 같이 영화를 찍었다는 것도 행운이지만 배우로서, 그런 인격을 가지신 분과 함께하며 좋은 영향을 받은 것도 감사하게 생각한다. 이 슬픈 마음을 표현할 길이 없다”고 눈물 지었다.

고인의 60년 지기로 알려진 가수 조용필도 빈소를 찾았다. 그는 “제가 지금 투어 중이라 입술도 부르트고 했지만, 친구가 갑자기 변을 당했다고 해서 왔다”며 “지난번에 병원에 입원했을 당시에도 찾았고, 그때 코로나 시기여서 병원은 들어갈 수 없었다. 잘 퇴원해서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또 이렇게 돼서 너무 안타깝다”고 슬픈 마음을 전했다.

이어 “하고 싶은 게 아직도 많을 텐데, 이겨내지 못했다”며 “성기야 또 만나자”라고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이 외에도 배우 김형일, 김동현, 이덕화, 정진영, 강우석 감독, 임권택 감독, 김동호 전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임진모 대중문화평론가 등 대중문화계 다양한 인사들이 조문에 나서 고인을 배웅했다. 소속사 후배 배우인 정우성과 이정재는 빈소를 지켰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및 우원식 국회의장,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 국민의힘 배현진 의원,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 김동연 경기도지사 등 여러 정치계 인사들도 빈소를 찾았다.

조국 대표는 “어린 시절부터 안성기 선생님 영화를 보고 자랐다. 선생님 자체가 한국의 영화사라고 생각한다”며 고인을 떠올렸다. 이재명 대통령, 더불어민주당 박지원 의원, 국민의힘 박정하 의원 등도 개인 SNS를 통해 애도의 뜻을 전했다. 뿐만 아니라 정부 차원에서도 추모의 뜻이 전달됐다.

5세 데뷔 후 69년 연기 인생
장르 가리지 않는 만능 배우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는 고인에게 대중문화예술 분야의 최고 영예인 금관문화훈장(1등급)을 추서했다. 문화훈장은 문화예술 발전과 국민의 문화 향유에 기여한 공적이 뚜렷한 인물에게 수여하는 훈장이다.

문체부는 “고인은 세대를 아우르는 연기를 보여주며 한국 영화와 생애를 함께해 온 ‘국민배우’로 평가받아 왔다”며 “1990, 2000년대 한국 영화의 대중적 도약과 산업적 성장을 상징하는 인물로서, 한국 영화의 사회적·문화적 외연 확장에 기여했다”고 추서 배경을 설명했다.

음악계 관계자들도 빈소를 찾아 고인과의 추억을 떠올렸다. 고인의 추천으로 영화 <고래사냥>에 출연한 인연이 있는 가수 김수철은 고인을 친형 같았던 분으로 기억한다며 슬퍼했다.

김수철은 “마음의 준비는 두어 달 전부터 했지만 기분이 좋지 않다”며 “형은 ‘난 사람(능력이 뛰어난 사람)’이면서 ‘된 사람(인품도 훌륭한 사람)’ 었다. 인간미가 아주 깊은 분이자 큰 어른이셨다”고 회고했다.

한국 영화의 거목은 그가 생전 독실하게 몸담았던 신앙의 품 안에서 영원한 안식에 들었다. 지난 9일 오전, 서울 명동성당에서 배우 안성기의 영결 미사가 거행됐다. 5일간 영화인장으로 치러진 장례의 마지막 여정이었다.

<고래사냥> <기쁜 우리 젊은 날> 등 수많은 걸작을 함께한 배창호 감독과 후배 배우 정우성이 추도사를 맡아 고인의 고결했던 생애를 기렸다.

영결식을 마친 뒤 이어진 운구에는 배우 이정재와 정우성 등이 참여해 선배의 마지막 길을 든든하게 배웅했다. 유족 대표로 나선 장남 안다빈 작가는 생전 아버지가 남긴 편지를 낭독하며 추모에 열기를 더했다.

지난 9일 오전 6시 발인을 마친 고인은 영결식 엄수 후 장지인 경기 양평군 별그리다 추모공원에 안장됐다.

배우 안성기의 시작은 우연과 필연의 교차점에 있었다. 영화 제작자였던 부친 안화영씨와 절친했던 김기영 감독은 1957년 영화 <황혼열차> 제작 당시 마땅한 아역을 찾지 못하자 안씨의 둘째 아들인 안성기를 불러들였다. 다섯살 소년은 놀라운 몰입도로 배역을 소화했고, 이는 천재 아역의 탄생을 알리는 신호탄이 됐다.

이후 그는 <10대의 반항>으로 미국 샌프란시스코영화제 특별상을 받으며 국제적으로 재능을 인정받았다. 중학교 3학년 때 <얄개전>에 이르기까지 10년간 출연한 작품만 70여편이었다. 하지만 동성고 진학 후 학업을 위해 돌연 영화계를 떠나며 대중의 기억 속에서 잠시 잊혔다.

한국외국어대 베트남어과 졸업 후 ROTC로 군 복무를 마친 안성기의 본래 꿈은 전공을 살린 해외 취업이었다. 그러나 베트남 전쟁 종전이라는 시대적 상황은 그의 발길을 다시 충무로로 돌려놨다.

10년의 공백을 깨고 성인 연기자로 복귀한 그는 1977년 <병사와 아가씨들>을 거쳐 이장호 감독의 <바람 불어 좋은 날>에서 덕배 역을 맡으며 비로소 존재감을 증명했다.

된 사람
난사람

그는 이 작품으로 대종상영화제 남자 신인상을 거머쥐며 연기 인생 2막을 시작했다. 당시 배우를 소위 ‘딴따라’로 낮잡아 보던 사회적 분위기를 바꾸고자 그는 누구보다 엄격한 잣대로 작품을 골랐다. 자극적인 베드신을 거절하고, 고뇌하는 지식인이나 소외된 이웃의 얼굴을 자처하는 등 배우라는 직업의 품격을 스스로 높였다.

1980년대와 1990년대는 안성기의 시대였다. <만다라>부터 <꼬방동네 사람들> <고래사냥> <칠수와 만수> 등은 단순한 오락 영화를 넘어 당대 한국 사회의 모순과 아픔을 꿰뚫는 걸작들이었다.

1990년대 들어 한국 영화가 산업자본을 만나며 큰 변화를 겪었듯 그는 다채로운 캐릭터를 맡으며 최고 전성기에 올랐다. 산업화의 물결 속에서 그는 1990년 <남부군>부터 <하얀 전쟁> <투캅스> <인정사정 볼 것 없다> 등 장르를 가리지 않는 변주로 스크린을 누볐다.

2000년대 이후에도 안성기는 멈추지 않았다. 그동안 한국 영화 최다 주연 배우를 도맡던 그는 2001년 <무사>에서 최초 조연으로 등장했다. 이때 2001년 청룡영화상 시상식에서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2003년 강우석 감독의 <실미도>도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다. 이는 1968년 창설된 북파공작 부대인 684부대의 비극적인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국가의 부름을 받고 지옥 훈련을 견뎠으나, 정치적 상황 변화로 인해 버려진 대원들의 처절한 사투를 그렸다.

<실미도>는 한국 영화 사상 최초의 1000만 관객 시대를 연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최종 관객수 1108만1000명을 기록했다. 당시 안성기는 <실미도>의 대성공으로 흥행 보증수표로서의 입지를 재확인을 했다.

이 작품의 대흥행 이후 그는 영화계의 어른으로서 ‘스크린쿼터 사수 운동’ 등 영화계 발전을 위한 목소리를 내는 데 더욱 앞장섰다. 스크린쿼터 사수 운동은 극장이 1년 중 일정 일수 이상을 반드시 국산 영화를 상영하도록 강제하는 법적 제도다. 정식 명칭은 ‘한국영화 의무상영제’였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 미국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과정에서 이 제도를 폐지하거나 축소하라고 강력하게 압박했다. 당시 한국 영화는 지금처럼 세계적인 수준이 아니었기에, 보호막(쿼터)이 사라지면 할리우드 거대 자본에 밀려 한국 영화 생태계가 붕괴할 것이라는 위기감이 팽배했다.

이때 안성기는 1990년대 후반부터 ‘스크린쿼터 사수 비상대책위원회’의 공동위원장을 맡아 투쟁을 이끌었다. 광화문 네거리에서 삭발을 감행하거나, 1인 시위에 나서는 등 현장을 직접 지켰다. 대중적 신뢰가 두터운 그가 앞장서자 국민적 지지가 모였고, 스크린 쿼터제는 문화 주권 수호라는 명분으로 승화됐다.

정치권
러브콜도

결국 2006년에 이르러 상영 일수가 146일에서 73일로 절반 축소됐지만, 이 과정에서 다져진 영화인들의 결속력과 대중의 관심은 한국 영화가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됐다.

한편 안성기가 가장 애착을 보였던 <라디오 스타>는 고인의 따뜻함이 가장 잘 묻어난 작품으로 꼽힌다. 2006년 개봉한 이준익 감독의 <라디오 스타>는 88년 가수왕이었으나 지금은 미사리 카페촌을 전전하는 한물간 록스타 최곤(박중훈)과, 그의 전성기부터 20년째 묵묵히 곁을 지키는 매니저 박민수(안성기)의 우정을 그린 영화다.

극중 비 오는 날 최곤을 위해 우산을 받쳐 들고 서 있던 마지막 장면은 안성기의 즉석 제안으로 탄생했다. 시나리오상에는 박중훈의 얼굴로 끝나는 설정이었으나, 안성기가 제안한 이 연출은 영화의 주제인 ‘동행’을 가장 잘 상징하는 명장면이 됐다.

단짝 박중훈은 저서에서 그를 두고 “따뜻한 온도의 물 같은 사람”이라 회고했다. 그는 단순히 연기 잘하는 선배를 넘어, 영화계의 든든한 버팀목이자 사회적 양심의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안성기는 2010년대에도 멈추지 않는 연기 변신을 보여주었다. 2012년 <부러진 화살>과 인생의 사랑과 죽음을 깊이 있게 표현한 <화장>은 베테랑 배우로서 그의 관록이 가장 돋보인 대표작으로 꼽힌다.

2017년에는 안성기의 데뷔 60주년을 맞아 영화계 차원의 대규모 특별전이 열리는 등 한국 영화의 상징으로서 각별한 예우를 받았다. 이때 한 인터뷰에서 그는 “영화인들과 영화가 좀 더 존중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성인 연기자로서의 삶을 출발하면서 저 자신을 굉장히 다그치고 많은 자제를 하면서 살았다”며 책임감을 느낀 삶이었다고 돌아봤다.

그는 “저는 팬클럽도 없는데 국민이 팬이라고 생각하면 국민 배우가 맞는 것 같다”며 “국민 배우라고 불러주시는 건 국민 배우로서 잘살았으면 하는 애정의 표시가 아닌가 싶다”고 전했다.

안성기는 그렇게 영화 한 우물을 파 온 데 대한 자부심을 가졌다. 업계에 따르면 모범적인 이미지로 정치권 등의 러브콜이 있었지만, 그는 영화 연기를 가장 우선에 뒀던 것으로 전해진다.

고인의 별세 소식이 전해진 지난 5일, 김대중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지낸 더불어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과거 고인과 얽힌 영입 비화를 공개하며 그를 추모했다. 박 의원의 회고에 따르면, 과거 김 전 대통령은 안성기의 대중적 신망과 성실함을 높이 평가해 그를 정계에 영입하고자 공천을 제안했다.

그러나 안성기의 답변은 단호하고도 정중했다. 그는 “김 전 대통령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따르지만, 나는 영화배우로서 국민에게 봉사하겠다”며 정치권의 부름을 사양했다.

넘쳐 흐르는 미담들
금관문화훈장 영예

데뷔 이후 69년간 160편이 넘는 작품에 출연한 고인은 국내외 영화제에서 40여차례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1980년 <바람 불어 좋은 날>로 신인상을 받은 것을 시작으로 198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4개 대(代)에 걸쳐 모두 주연상을 받은 배우는 안성기가 유일하다.

또 1987년 <기쁜 우리 젊은 날>과 1992년 <하얀 전쟁>으로 아시아태평양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두 차례 거머쥐며 국제적 위상을 증명하기도 했다.

연기력만큼이나 대중에게 깊이 각인된 것은 그의 부드러운 이미지였다. 고인은 1983년부터 무려 38년간 동서식품 커피 브랜드 맥심(Maxim)의 최장수 모델로 활동하며, 시대를 상징하는 ‘신사’의 아이콘으로 남았다.

그의 필모그래피 마지막 페이지는 2023년 <노량: 죽음의 바다>가 장식했다. 이순신을 보좌하는 어영담 역을 맡은 고인은 투병 중임에도 최선을 다해 촬영에 임하며 진정한 배우의 뒷모습을 보여줬다.

1952년 1월1일에 서울특별시에서 출생한 안성기는 아내 오소영씨와 결혼해 슬하에 아들 두 명을 뒀다. 그는 “오래 연기하는 게 꿈이자 숙제”라고 늘 밝혀왔다. 2022년 대종상영화제에서 공로상을 받은 그는 참석 대신 보낸 영상을 통해 “나이를 잊어버리고 살았는데, 최근 들어 시간과 나이는 멈출 수 없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고인의 영면 소식이 알려지며 그가 주변 사람들을 어떻게 대했는지를 보여주는 훈훈한 일화들이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확산하며 큰 울림을 주고 있다.

최근 시설 관리자 커뮤니티 등에는 고인이 거주하던 아파트 관리 직원들을 매년 살뜰히 챙겼다는 미담이 올라와 화제가 됐다.

내용에 따르면 안성기는 1년에 한 번씩 호텔로 관리사무소 직원 전원을 초청해 식사를 대접했다. 단순히 자리만 마련한 것이 아니라, 고인은 정장을 갖춰 입고 배우자 오씨는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채 직원들을 맞이했다. 참석한 직원 한 명 한 명과 정성껏 기념사진을 촬영하며 진심으로 감사를 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유니세프 한국위원회는 지난 5일 공식 SNS를 통해 “우리에게는 인자한 미소의 ‘국민 배우’였고, 전 세계 어린이에게는 든든한 ‘희망의 버팀목’이었던 안성기 친선대사님,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한결같은 애정으로 어린이 곁을 지켜주신 안성기 친선대사님이 이제 우리 곁을 떠나셨습니다”라는 글을 남기며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그러면서 “친선대사님과 함께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고, 진심으로 감사했습니다”라고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훈훈한 일화
인자한 미소

안성기가 남긴 것은 수많은 영화만이 아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타인을 배려했던 그의 신사다움은 삭막한 연예계의 등불과 같았다. 비록 육신은 떠났지만, 그가 스크린에 새긴 수많은 눈빛과 낮은 목소리는 한국 영화가 존재하는 한 영원히 회자될 것이다.

<jen9@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법원이 주호영 국회부의장의 대구시장 경선 컷오프 관련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항고할 뜻을 내비쳤다. 주 부의장의 강경 대응은 저조한 국민의힘 지지율과 맞물려 혼란상을 더욱 극적으로 비추고 있다. 과연 국민의힘이란 ‘대마’는 ‘불사’의 존재일까? 주호영 국회부의장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경선에서 컷오프된 것에 반발해 지난달 26일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했다.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수석부장판사 권성수)는 지난 3일 이를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곧바로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법원 결정에 반발했다. 법원 결정 바로 반발 주 부의장은 “저는 그동안 이번 컷오프가 절차·내용 모두 중대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해 왔다”며 “법원의 판단과 별개로 이번 공천 과정이 과연 당원·시민의 눈높이에 맞는 공정하고 민주적인 절차였는지는 여전히 엄중하게 따져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주 부의장은 지난 6일 항고를 제기했다. 이어 지난 8일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항고심 판단을 끝까지 지켜본 후 제 거취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선 일각에서 제기했던 무소속 출마설을 일단 유보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어 주 부의장은 “항고심 판단을 기다린다고 해서 이번 공천 난맥상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체제의 책임을 덮고 가겠단 뜻은 결코 아니”라며 “이런 공천 구조를 만든 세력과 절대로 타협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공천은 충성의 대가나 숙청의 도구가 아닌, 오직 국민 앞에 가장 경쟁력 있고 책임 있는 후보를 세우는 과정”이라고 주장하는 등 자신을 컷오프한 것을 ‘숙청’이라고 암시했다.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에 대해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6선인 주 부의장은 대구 수성에서만 국회의원을 지냈다. 대구 수성을에서는 4선을 지냈고, 수성갑에선 재선에 성공했다. 이 중 4선을 했던 지난 2016년 총선 수성을 선거에선 친박(친 박근혜)계 주도로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 출마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유 있게 이겼다. 문제는 주 부의장이 당내 최다선인 6선 의원 겸 국회부의장이라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명예가 곧 실권을 보장하진 않는다. 아울러 주 부의장이 차기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구에 출마해 7선에 도전하면,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다. 같은 6선인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조정식 의원은 각각 부산 사하을·경기 시흥을을 지역구로 두고 있다. 부산은 이미 격전지가 된 데다 조 의원은 민주당계 정당과 국민의힘 소속으로 각각 3선 했고, 경기 시흥을은 수도권이다. 국민의힘의 안정된 텃밭으로 분류되는 대구 수성을에서 7선에 도전하는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 설령 7선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도 참패 가능성이 제기되는 국민의힘이 2년 후 총선에서 다수당이 된다는 보장도, 국회의장이 되리라는 보장도 하기 어렵다. 오는 2028년 총선까지 연일 떠들썩하게 이어지는 계파 갈등을 어느 정도 안정시킨 후 대안 야당으로 발돋움하면서 이재명정부가 실정으로 지지율이 폭락하는 상황이 겹쳐야 승리를 노려볼 수 있다. 주 부의장이 국회의장에 도전하는 것도 현실적으로는 가능성이 희박하다. 불확실한 국회의장…‘텃밭 7선’ 대신 대구? 연이은 공천 가처분 세례 속 서울 지지율 13% 따라서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집념을 불태우는 것은 필연이다. 대선 패배 후 대구시장에 출마해 당선됐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전례도 있다. 주 부의장으로선 “나라고 출마 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에 있느냐”고 판단해도 무리가 아니란 분석이 있다. 대구시장으로서 임기를 마친 후 대권에 도전하거나 당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가능성은 일명 ‘주한 연대설’로 통하는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와의 연대설 때문에 불거졌다. 이는 국민의힘 이정현 전 공천관리위원장이 주 부의장을 컷오프한 직후 불거졌다.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 대구시장에 출마해 대구 수성갑에서 재보궐선거가 진행되면, 한 전 대표가 여기에 출마하는 형식으로 연대한다”는 설이다. 한 전 대표 측으로선 손해 볼 게 없다. 한 전 대표는 지난달 25일 채널A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보수 재건이 필요하다고 공감하면서 나서겠다고 했다”며 “우린 이미 연대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반면 주 부의장은 신중한 반응을 내비쳤다. 그는 지난달 26일 기자들을 만나던 중 주한 연대설 관련 질문을 받자 “제 코가 석 자인데 딴 생각할 여지가 있겠느냐”고 답변했다. 다만 무소속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선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해 준비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따라서 주한 연대설 성립 가능성 자체를 배제한 것은 아니라는 해석이 나왔다. 주 부의장의 항고 제기는 국민의힘의 치명적 문제 하나를 외부로 노출했다. 국민의힘에선 당내 처분에 대해 연이어 법원으로 달려가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가깝게는 주 부의장과 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컷오프에 대한 가처분을 신청했다. 김 지사는 주 부의장과 달리 가처분이 인용돼 경선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멀게는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배현진 의원에 대해 각각 결정했던 제명·당원권 정지 1년 징계의 효력도 법원에서 정지됐다. 4건의 가처분 모두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에서 판단했다. 재판부는 주 부의장 건에 대해서만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줬다. 장 대표는 김 지사가 신청한 가처분이 인용된 다음 날인 지난 1일 기자들과 만나 “법원이 정치에 너무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며 “재판장이 국민의힘에 와서 공천관리위원장과 윤리위원장을 하면 될 것 같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정치의 사법화가 심각할 정도로 진행된 것 같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천 관련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승리 가능성을 어둡게 하는 신호들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국갤럽은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2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상대로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직접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48%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8%로 집계됐다. 제 코가 석 잔데… 서울에선 민주당 지지율이 51%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3%로 집계됐다. 부산·울산·경남에서도 민주당 지지율은 42%로,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7%로 집계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바람). 영원한 격전지 서울에서도 양당의 지지율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여론조사 결과 수치가 공개되자,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한 지적이 날로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4일 자 사설을 통해 “국민의힘은 지금 수도권에서 후보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며 “현행법상 15% 이상 득표해야 선거 비용을 전액 보전받을 수 있는데 그에 미치지 못할까 걱정한다는 것”이라며 현실을 짚었다. 이어 “말로만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선언했을 뿐 실제로는 반대로 하고 있다”며 “공천 혼란에 대해서도 가처분을 인용한 법원 탓만 할 뿐, 어떻게 수습하고 책임질지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등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조선일보>의 주장대로라면, 수습·책임을 맡을 당 대표는 보이지 않는 셈이다. 해당 매체는 “어렵게 나선 후보들은 국민의힘 상징색인 빨간색을 포기하고 흰색 점퍼를 입고 다닌다”며 “인구가 1300만명에 달하고 국회의원 의석수도 가장 많은 경기도에선 지사 출마자를 구하지 못해 공천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는 현실도 짚었다. <조선일보>가 짚은 국민의힘의 현실은 신체를 통제할 두뇌 없이 거대한 군집을 이룬 채 각자의 역할을 맡은 군집 생물에 비유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관해파리를 들 수 있다. 관해파리는 겉으로 볼 땐 덩치 큰 해파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각각의 역할을 맡은 독립 개체들이 모인 군집이다. 이 개체들은 먹이 섭취·이동·번식 등 각각의 역할만을 담당한다. 각각의 개체들은 생존을 위해 서로 연결돼있지만, 이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뇌는 없다. 개체 중 누군가가 제 역할을 못하면 모두 죽는다. 단세포생물인 점균류도 먹이를 찾을 때, 각자의 세포가 알아서 효율적인 길을 찾는다. 이를 통제할 뇌는 없지만, 화학적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최적의 경로를 결정한다. 그런데 잘못된 경로를 찾으면 방향을 틀 능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는 것은 군집 전체가 굶어 죽는 일이다. 페로몬을 통해 신호를 주고받는 군대개미 집단도 선봉에 선 개미가 길을 잃으면 모든 개미가 원을 그리다가 지쳐 죽는다. 제 역할 못하면… 이탈리아의 정치학자 조반니 사르토리는 원심적 경쟁 이론을 주장했다. 보통의 민주주의 국가에선 정당이 중도층의 표심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강경한 여당과 무책임한 야당이 양립할 땐 정당이 중도층을 설득하기보다 진영 결집에 따른 조직표 구성에 몰두한다. 이런 구도에선 중도층이 정치에서 배제되고, 정치적 대화도 단절된다. 이런 상황에선 후보자들은 당의 승리와 중도 확장을 포기하고, 강성 핵심 지지층의 지지를 얻으려고 노력한다. 중도층이 정치에 냉담해지면서 설득 가능 대상으로 강성 핵심 지지층만 남기 때문이다. 가성비 높은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아울러 후보자들이 지도부를 거부하면서 강성 핵심 지지층에게만 구애하는 각자도생에 몰두한다. 이는 결국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준비 과정에서 서울시장·경기도지사 경선에선 구인난에 빠졌지만, 대구시장·경북도지사 경선은 열기가 과도한 것도 이와 비슷하다. 특히 대구시장 경선엔 국회부의장·경제부총리·원내대표 등 당정의 핵심을 지낸 인사들이 모두 출마했기 때문에 더욱 눈에 띄고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리처드 카츠와 아일랜드의 정치학자 피터 메어는 정당을 카르텔·프랜차이즈 기업에 비유하는 독특한 이론을 발표했다. 카츠와 메어는 “현대 정당이 시민의 자발적 후원보다 국가의 정당 보조금·공천권 등 국가의 자원에 의존해 서로 담합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앙당과 지역구 후보의 관계를 본사와 가맹점주 관계로 규정했다. 따라서 중앙당이 자원을 적절히 배분하지 못하거나, 시장에서 자원의 가치가 폭락하면 가맹점주의 불만이 폭발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을 매개로, 캐나다의 정치학자 켄 카티는 “정당이 실제로 프랜차이즈 시스템으로 바뀌고 있다”고 주장했다. 카티에 따르면, 정당은 브랜드로서만 기능하고, 선거에선 후보가 중앙의 브랜드를 빌려온다. 공천은 결국 이들 간 계약 관계 역할을 한다. 이는 실제 정치적 현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일 서울 쌍문역 일대 쌍리단길을 방문했다. 오 시장의 현장 방문에 동행한 국민의힘 소속 서울시의원들과 도봉구의원들은 국민의힘의 상징색 빨간색이 아닌 흰색 점퍼를 입었다. 오 시장도 서울시 로고가 새겨진 흰색 점퍼를 입고 현장을 돌아다녔다. 지난달 31일 진행된 국민의힘 서울시장 본경선 후보들 대상 첫 토론회에서도 후보들은 장 대표를 비판했다. 이들은 “흰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동그라미 푯말을, 빨간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엑스 푯말을 들어달라”는 진행자의 요구에 일제히 엑스 푯말을 들었다. 오세훈 ‘흰색 점퍼’ 현장행 “빨간색 입고 싶다” 대우그룹·프랑스 사회당 등 한순간에 망한 대마들 하지만 말은 날카로웠다. 오 시장은 “빨간색 점퍼를 입고 싶은 마음을 엑스 푯말을 들어 표현해 봤다”고 말했다. 미래통합당 윤희숙 전 의원은 “흰색 옷을 입어야 하는 사람은 장 대표”라며 “이번 공천이 마무리되면 백의종군을 결심해 달라”고 요구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빨간 당 출신이 빨간색을 안 입는 자기모순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도 “장 대표가 확장하지 못했다면 후보들이 확장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달엔 장 대표의 지원 유세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본사에 대한 가맹점주들의 집단행동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서울시당위원장을 맡은 배 의원도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의 서울 지지율 13%의 주역 장동혁 지도부가 기초단체장 후보를 못 구한 지역의 후보를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방선거 패배 가능성이 내·외부에서 연이어 제기되고 있지만, 국민의힘 지도부에 대해선 “변화할 의지도, 대책도 없는 것 같다”는 평이 나온다. 이 같은 상황은 카츠와 메어가 이미 이론적으로 짚었다. 이들은 “카르텔 정당은 국가 자원을 독점하기 때문에 ‘우리는 망하지 않는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고 지적했다. 바둑으로 치면, 국민의힘은 여러 개의 돌로 넓게 자리 잡은 곤마인 ‘대마’와 비슷하다. 시사 분야에서 관용적으로 잘 쓰는 표현 중 하나는 ‘대마불사’다. “대기업이나 대형 금융기관은 국가의 지원을 받아 망하지 않는다”는 관용 표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1990년대 후반 IMF 금융위기는 대마불사로부터 비롯됐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상황은 당시 재계 2위였던 대우그룹의 해체였다. 김우중 당시 회장은 ‘세계 경영’이라면서 해외 업체를 공격적으로 인수했다. 그러다 IMF 금융위기를 맞아 구조조정을 거쳤지만, 삼성자동차를 받고 대우전자를 주는 빅딜 과정에서 엄청난 빚을 져 결국 워크아웃을 선언했다. 김 전 회장도 해외로 도피했다. 대우그룹은 그렇게 해체됐다. 국제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1990년대 초반 캐나다의 집권당 진보보수당은 경제 실정과 내부 갈등 끝에 구심력을 잃고 연이은 당원 탈당 사태를 겪었다. 그 결과 150석을 넘게 보유했던 거대 여당이 선거 한번에 2석만 건지는 참패를 당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프랑스에서도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을 극복하지 못했던 사회당은 지난 2017년 대선을 앞두고 강경한 좌파 성향 브누아 아몽 대선후보를 선출했다. 그러자 사회당 소속 정치인 다수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창당했던 신생 정당 앙 마르슈로 옮겼고, 당은 선거에서도 참패했다. 반대로 민주당은? 민주당은 대구시장 선거 승리를 위해 대구에서 일정한 기반을 갖추고 있고 선거 승리 경험도 있는 김부겸 전 총리를 대구시장 후보로 선출했다. 이어 지난 8일엔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김 후보와 함께 대구 농수산물도매시장을 방문하는 등 승리 의지를 드러냈다. 구인난을 겪고 있는 국민의힘과 달리, 민주당에선 추미애 의원이 치열한 경선 끝에 경기도지사 후보로 선출돼 주목받고 있다. 대마불사는 과연 영원한 걸까. 대마불사만 믿고 배짱 영업을 해도 되는 걸까. 대우그룹 해체는 국민의힘에 어떤 의미를 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