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보내고 싶지 않은 안성기

  • 서진 기자 jen9@ilyosisa.co.kr
  • 등록 2026.01.12 11:23:48
  • 호수 156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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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기억될 ‘천의 얼굴’

[일요시사 취재1팀] 서진 기자 = “내 인생 최고의 작품은 언제나 다음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데뷔 60주년을 맞아 열린 특별전에서 안성기 배우가 한 말이다. 그에게 붙은 수많은 수식어는 단순히 인기가 많아서 생긴 게 아니었다. 그는 영화계 안팎에서 구설 없는 자기 관리와 겸손한 인품으로 후배들의 귀감이 됐다.

그는 ‘국민 배우’라는 왕관의 무게를 묵묵히 지켜냈다. 한국 영화계의 권익이 침해받을 때면 스크린쿼터 사수 운동의 선봉에 서서 문화 주권을 지켰고, 유니세프(UNICEF) 친선대사로서 30년 넘게 봉사하며 선한 영향력을 펼쳤다.

영화계
버팀목

대한민국 영화사 그 자체였던 배우 안성기가 향년 74세를 일기로 영면에 들었다. 그는 지난해 12월30일 심정지 상태로 순천향대학교 병원으로 후송돼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다가 지난 5일 오전 9시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뒀다.

안성기는 지난 2019년 혈액암 진단을 받고 투병했다. 2020년 완치 판정을 받았다가 다시 검진받는 과정에서 암 재발이 확인됐다. 같은 해 10월 입원한 사실이 알려지며 건강 이상설이 불거졌다. 그는 2022년 언론 인터뷰를 통해 혈액암 투병 사실을 밝혔다.

이듬해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건강이 아주 좋아졌다”며 “새 영화로 찾아오겠다”고 복귀를 다짐하기도 했다.


그해까지 부천판타스틱영화제 등 공식 석상에 모습을 보이고, 각종 외부 활동 및 후배 배우들을 통해 근황을 알리기도 했지만, 이후 병세가 급격히 악화돼 투병에 전념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안성기는 생전 완벽에 가까운 자기 관리로 60대 중반에 액션영화 주연을 맡으며 왕성히 활동했으나 결국 병마를 이기지 못했다.

은은히 웃는 얼굴을 한 고인의 마지막 떠나는 길에 조문 행렬이 이어졌다. 빈소는 서울 서초구 반포동에 위치한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31호실에 마련됐다.

고인과 절친으로 알려진 배우 박중훈은 “30년 동안 선배님과 같이 영화를 찍었다는 것도 행운이지만 배우로서, 그런 인격을 가지신 분과 함께하며 좋은 영향을 받은 것도 감사하게 생각한다. 이 슬픈 마음을 표현할 길이 없다”고 눈물 지었다.

고인의 60년 지기로 알려진 가수 조용필도 빈소를 찾았다. 그는 “제가 지금 투어 중이라 입술도 부르트고 했지만, 친구가 갑자기 변을 당했다고 해서 왔다”며 “지난번에 병원에 입원했을 당시에도 찾았고, 그때 코로나 시기여서 병원은 들어갈 수 없었다. 잘 퇴원해서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또 이렇게 돼서 너무 안타깝다”고 슬픈 마음을 전했다.

이어 “하고 싶은 게 아직도 많을 텐데, 이겨내지 못했다”며 “성기야 또 만나자”라고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이 외에도 배우 김형일, 김동현, 이덕화, 정진영, 강우석 감독, 임권택 감독, 김동호 전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임진모 대중문화평론가 등 대중문화계 다양한 인사들이 조문에 나서 고인을 배웅했다. 소속사 후배 배우인 정우성과 이정재는 빈소를 지켰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및 우원식 국회의장,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 국민의힘 배현진 의원,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 김동연 경기도지사 등 여러 정치계 인사들도 빈소를 찾았다.


조국 대표는 “어린 시절부터 안성기 선생님 영화를 보고 자랐다. 선생님 자체가 한국의 영화사라고 생각한다”며 고인을 떠올렸다. 이재명 대통령, 더불어민주당 박지원 의원, 국민의힘 박정하 의원 등도 개인 SNS를 통해 애도의 뜻을 전했다. 뿐만 아니라 정부 차원에서도 추모의 뜻이 전달됐다.

5세 데뷔 후 69년 연기 인생
장르 가리지 않는 만능 배우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는 고인에게 대중문화예술 분야의 최고 영예인 금관문화훈장(1등급)을 추서했다. 문화훈장은 문화예술 발전과 국민의 문화 향유에 기여한 공적이 뚜렷한 인물에게 수여하는 훈장이다.

문체부는 “고인은 세대를 아우르는 연기를 보여주며 한국 영화와 생애를 함께해 온 ‘국민배우’로 평가받아 왔다”며 “1990, 2000년대 한국 영화의 대중적 도약과 산업적 성장을 상징하는 인물로서, 한국 영화의 사회적·문화적 외연 확장에 기여했다”고 추서 배경을 설명했다.

음악계 관계자들도 빈소를 찾아 고인과의 추억을 떠올렸다. 고인의 추천으로 영화 <고래사냥>에 출연한 인연이 있는 가수 김수철은 고인을 친형 같았던 분으로 기억한다며 슬퍼했다.

김수철은 “마음의 준비는 두어 달 전부터 했지만 기분이 좋지 않다”며 “형은 ‘난 사람(능력이 뛰어난 사람)’이면서 ‘된 사람(인품도 훌륭한 사람)’ 었다. 인간미가 아주 깊은 분이자 큰 어른이셨다”고 회고했다.

한국 영화의 거목은 그가 생전 독실하게 몸담았던 신앙의 품 안에서 영원한 안식에 들었다. 지난 9일 오전, 서울 명동성당에서 배우 안성기의 영결 미사가 거행됐다. 5일간 영화인장으로 치러진 장례의 마지막 여정이었다.

<고래사냥> <기쁜 우리 젊은 날> 등 수많은 걸작을 함께한 배창호 감독과 후배 배우 정우성이 추도사를 맡아 고인의 고결했던 생애를 기렸다.

영결식을 마친 뒤 이어진 운구에는 배우 이정재와 정우성 등이 참여해 선배의 마지막 길을 든든하게 배웅했다. 유족 대표로 나선 장남 안다빈 작가는 생전 아버지가 남긴 편지를 낭독하며 추모에 열기를 더했다.

지난 9일 오전 6시 발인을 마친 고인은 영결식 엄수 후 장지인 경기 양평군 별그리다 추모공원에 안장됐다.

배우 안성기의 시작은 우연과 필연의 교차점에 있었다. 영화 제작자였던 부친 안화영씨와 절친했던 김기영 감독은 1957년 영화 <황혼열차> 제작 당시 마땅한 아역을 찾지 못하자 안씨의 둘째 아들인 안성기를 불러들였다. 다섯살 소년은 놀라운 몰입도로 배역을 소화했고, 이는 천재 아역의 탄생을 알리는 신호탄이 됐다.

이후 그는 <10대의 반항>으로 미국 샌프란시스코영화제 특별상을 받으며 국제적으로 재능을 인정받았다. 중학교 3학년 때 <얄개전>에 이르기까지 10년간 출연한 작품만 70여편이었다. 하지만 동성고 진학 후 학업을 위해 돌연 영화계를 떠나며 대중의 기억 속에서 잠시 잊혔다.


한국외국어대 베트남어과 졸업 후 ROTC로 군 복무를 마친 안성기의 본래 꿈은 전공을 살린 해외 취업이었다. 그러나 베트남 전쟁 종전이라는 시대적 상황은 그의 발길을 다시 충무로로 돌려놨다.

10년의 공백을 깨고 성인 연기자로 복귀한 그는 1977년 <병사와 아가씨들>을 거쳐 이장호 감독의 <바람 불어 좋은 날>에서 덕배 역을 맡으며 비로소 존재감을 증명했다.

된 사람
난사람

그는 이 작품으로 대종상영화제 남자 신인상을 거머쥐며 연기 인생 2막을 시작했다. 당시 배우를 소위 ‘딴따라’로 낮잡아 보던 사회적 분위기를 바꾸고자 그는 누구보다 엄격한 잣대로 작품을 골랐다. 자극적인 베드신을 거절하고, 고뇌하는 지식인이나 소외된 이웃의 얼굴을 자처하는 등 배우라는 직업의 품격을 스스로 높였다.

1980년대와 1990년대는 안성기의 시대였다. <만다라>부터 <꼬방동네 사람들> <고래사냥> <칠수와 만수> 등은 단순한 오락 영화를 넘어 당대 한국 사회의 모순과 아픔을 꿰뚫는 걸작들이었다.

1990년대 들어 한국 영화가 산업자본을 만나며 큰 변화를 겪었듯 그는 다채로운 캐릭터를 맡으며 최고 전성기에 올랐다. 산업화의 물결 속에서 그는 1990년 <남부군>부터 <하얀 전쟁> <투캅스> <인정사정 볼 것 없다> 등 장르를 가리지 않는 변주로 스크린을 누볐다.


2000년대 이후에도 안성기는 멈추지 않았다. 그동안 한국 영화 최다 주연 배우를 도맡던 그는 2001년 <무사>에서 최초 조연으로 등장했다. 이때 2001년 청룡영화상 시상식에서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2003년 강우석 감독의 <실미도>도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다. 이는 1968년 창설된 북파공작 부대인 684부대의 비극적인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국가의 부름을 받고 지옥 훈련을 견뎠으나, 정치적 상황 변화로 인해 버려진 대원들의 처절한 사투를 그렸다.

<실미도>는 한국 영화 사상 최초의 1000만 관객 시대를 연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최종 관객수 1108만1000명을 기록했다. 당시 안성기는 <실미도>의 대성공으로 흥행 보증수표로서의 입지를 재확인을 했다.

이 작품의 대흥행 이후 그는 영화계의 어른으로서 ‘스크린쿼터 사수 운동’ 등 영화계 발전을 위한 목소리를 내는 데 더욱 앞장섰다. 스크린쿼터 사수 운동은 극장이 1년 중 일정 일수 이상을 반드시 국산 영화를 상영하도록 강제하는 법적 제도다. 정식 명칭은 ‘한국영화 의무상영제’였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 미국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과정에서 이 제도를 폐지하거나 축소하라고 강력하게 압박했다. 당시 한국 영화는 지금처럼 세계적인 수준이 아니었기에, 보호막(쿼터)이 사라지면 할리우드 거대 자본에 밀려 한국 영화 생태계가 붕괴할 것이라는 위기감이 팽배했다.

이때 안성기는 1990년대 후반부터 ‘스크린쿼터 사수 비상대책위원회’의 공동위원장을 맡아 투쟁을 이끌었다. 광화문 네거리에서 삭발을 감행하거나, 1인 시위에 나서는 등 현장을 직접 지켰다. 대중적 신뢰가 두터운 그가 앞장서자 국민적 지지가 모였고, 스크린 쿼터제는 문화 주권 수호라는 명분으로 승화됐다.

정치권
러브콜도

결국 2006년에 이르러 상영 일수가 146일에서 73일로 절반 축소됐지만, 이 과정에서 다져진 영화인들의 결속력과 대중의 관심은 한국 영화가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됐다.

한편 안성기가 가장 애착을 보였던 <라디오 스타>는 고인의 따뜻함이 가장 잘 묻어난 작품으로 꼽힌다. 2006년 개봉한 이준익 감독의 <라디오 스타>는 88년 가수왕이었으나 지금은 미사리 카페촌을 전전하는 한물간 록스타 최곤(박중훈)과, 그의 전성기부터 20년째 묵묵히 곁을 지키는 매니저 박민수(안성기)의 우정을 그린 영화다.

극중 비 오는 날 최곤을 위해 우산을 받쳐 들고 서 있던 마지막 장면은 안성기의 즉석 제안으로 탄생했다. 시나리오상에는 박중훈의 얼굴로 끝나는 설정이었으나, 안성기가 제안한 이 연출은 영화의 주제인 ‘동행’을 가장 잘 상징하는 명장면이 됐다.

단짝 박중훈은 저서에서 그를 두고 “따뜻한 온도의 물 같은 사람”이라 회고했다. 그는 단순히 연기 잘하는 선배를 넘어, 영화계의 든든한 버팀목이자 사회적 양심의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안성기는 2010년대에도 멈추지 않는 연기 변신을 보여주었다. ‘석궁 테러’ 실화를 다룬 2012년 <부러진 화살>과 인생의 사랑과 죽음을 깊이 있게 표현한 <화장>은 베테랑 배우로서 그의 관록이 가장 돋보인 대표작으로 꼽힌다.

2017년에는 안성기의 데뷔 60주년을 맞아 영화계 차원의 대규모 특별전이 열리는 등 한국 영화의 상징으로서 각별한 예우를 받았다. 이때 한 인터뷰에서 그는 “영화인들과 영화가 좀 더 존중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성인 연기자로서의 삶을 출발하면서 저 자신을 굉장히 다그치고 많은 자제를 하면서 살았다”며 책임감을 느낀 삶이었다고 돌아봤다.

그는 “저는 팬클럽도 없는데 국민이 팬이라고 생각하면 국민 배우가 맞는 것 같다”며 “국민 배우라고 불러주시는 건 국민 배우로서 잘살았으면 하는 애정의 표시가 아닌가 싶다”고 전했다.

안성기는 그렇게 영화 한 우물을 파 온 데 대한 자부심을 가졌다. 업계에 따르면 모범적인 이미지로 정치권 등의 러브콜이 있었지만, 그는 영화 연기를 가장 우선에 뒀던 것으로 전해진다.

고인의 별세 소식이 전해진 지난 5일, 김대중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지낸 더불어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과거 고인과 얽힌 영입 비화를 공개하며 그를 추모했다. 박 의원의 회고에 따르면, 과거 김 전 대통령은 안성기의 대중적 신망과 성실함을 높이 평가해 그를 정계에 영입하고자 공천을 제안했다.

그러나 안성기의 답변은 단호하고도 정중했다. 그는 “김 전 대통령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따르지만, 나는 영화배우로서 국민에게 봉사하겠다”며 정치권의 부름을 사양했다.

넘쳐 흐르는 미담들
금관문화훈장 영예

데뷔 이후 69년간 160편이 넘는 작품에 출연한 고인은 국내외 영화제에서 40여차례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1980년 <바람 불어 좋은 날>로 신인상을 받은 것을 시작으로 198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4개 대(代)에 걸쳐 모두 주연상을 받은 배우는 안성기가 유일하다.

또 1987년 <기쁜 우리 젊은 날>과 1992년 <하얀 전쟁>으로 아시아태평양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두 차례 거머쥐며 국제적 위상을 증명하기도 했다.

연기력만큼이나 대중에게 깊이 각인된 것은 그의 부드러운 이미지였다. 고인은 1983년부터 무려 38년간 동서식품 커피 브랜드 맥심(Maxim)의 최장수 모델로 활동하며, 시대를 상징하는 ‘신사’의 아이콘으로 남았다.

그의 필모그래피 마지막 페이지는 2023년 <노량: 죽음의 바다>가 장식했다. 이순신을 보좌하는 어영담 역을 맡은 고인은 투병 중임에도 최선을 다해 촬영에 임하며 진정한 배우의 뒷모습을 보여줬다.

1952년 1월1일에 서울특별시에서 출생한 안성기는 아내 오소영씨와 결혼해 슬하에 아들 두 명을 뒀다. 그는 “오래 연기하는 게 꿈이자 숙제”라고 늘 밝혀왔다. 2022년 대종상영화제에서 공로상을 받은 그는 참석 대신 보낸 영상을 통해 “나이를 잊어버리고 살았는데, 최근 들어 시간과 나이는 멈출 수 없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고인의 영면 소식이 알려지며 그가 주변 사람들을 어떻게 대했는지를 보여주는 훈훈한 일화들이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확산하며 큰 울림을 주고 있다.

최근 시설 관리자 커뮤니티 등에는 고인이 거주하던 아파트 관리 직원들을 매년 살뜰히 챙겼다는 미담이 올라와 화제가 됐다.

내용에 따르면 안성기는 1년에 한 번씩 호텔로 관리사무소 직원 전원을 초청해 식사를 대접했다. 단순히 자리만 마련한 것이 아니라, 고인은 정장을 갖춰 입고 배우자 오씨는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채 직원들을 맞이했다. 참석한 직원 한 명 한 명과 정성껏 기념사진을 촬영하며 진심으로 감사를 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유니세프 한국위원회는 지난 5일 공식 SNS를 통해 “우리에게는 인자한 미소의 ‘국민 배우’였고, 전 세계 어린이에게는 든든한 ‘희망의 버팀목’이었던 안성기 친선대사님,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한결같은 애정으로 어린이 곁을 지켜주신 안성기 친선대사님이 이제 우리 곁을 떠나셨습니다”라는 글을 남기며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그러면서 “친선대사님과 함께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고, 진심으로 감사했습니다”라고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훈훈한 일화
인자한 미소

안성기가 남긴 것은 수많은 영화만이 아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타인을 배려했던 그의 신사다움은 삭막한 연예계의 등불과 같았다. 비록 육신은 떠났지만, 그가 스크린에 새긴 수많은 눈빛과 낮은 목소리는 한국 영화가 존재하는 한 영원히 회자될 것이다.

<jen9@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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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뚱한 곳에 떨어진 ‘이혜훈 폭탄’

엉뚱한 곳에 떨어진 ‘이혜훈 폭탄’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이재명정부 초대 기획예산처 장관에 지명된 이혜훈 후보자의 발길이 닿는 곳마다 뻥뻥 터지고 있다. 지명 직후 국민의힘을 두 쪽으로 가르더니 이제는 더불어민주당까지 혼란에 빠트렸다.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청와대의 고심이 깊다. 인사청문회까지 몇 개의 고비가 남았을까? 지난달 28일 이재명 대통령이 이혜훈 전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 의원을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로 내정했다고 이규연 대통령실 홍보소통수석이 전했다. 이혜훈 후보자는 국민의힘의 전신인 한나라당과 새누리당, 미래통합당에서 내리 3선을 지낸 중진 보수 정치인이다. 오랜 기간 보수에 몸담은 인사를 초대 경제 부처 수장으로 지명한 만큼 ‘경제·민생 통합’이란 이재명정부의 기조를 반영한 것으로 해석된다. 속전속결 손절 치기 이날 이 수석은 이같이 밝히며 “이 후보자는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간사, KDI 연구위원 등을 역임했으며 정책과 실무에 능통하다”고 밝혔다. 이어 “경제민주화 철학에 기반해 최저임금법, 이자제한법 개정안 등을 대표 발의하고 불공정 거래의 근절과 민생 활성화 정책을 추진한 바 있다”며 “곧 출범하는 기획예산처가 국가 중장기 전략을 세심하게 수립하도록 해 미래 성장 동력을 회복시킬 수 있는 적임자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같은 날 국민의힘은 휴일임에도 즉각 최고위원회의를 열어 자당 소속인 이 후보자를 제명 조치했다. 국민의힘은 보도자료를 내고 “오늘 오후 (서면) 최고위원회의를 개최해 당헌·당규에 따라 이혜훈 전 의원에 대한 제명과 당직자로서 행한 모든 당무 행위 일체를 취소하는 안건을 의결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 전 의원은 당협위원장 신분으로 이재명정부의 국무위원 임명에 동의해 현 정권에 부역하는 행위를 자처함으로써 지방선거를 불과 6개월을 앞두고 국민과 당원을 배신하는 사상 최악의 해당 행위를 했다”고 말했다. 이 후보자가 국무위원 내정 사실을 밝히지 않은 채 선출직 공직자 평가를 실시하는 등 당무 행위를 병행함으로써 당의 질서를 어지럽히고, 당무 운영을 고의적으로 방해했다고 본 것이다. 아울러 “나라 곳간을 책임지는 국무위원직을 정치 거래의 대상으로 전락시킨 이재명 대통령과 이 전 의원을 강력히 규탄하며, 대국민 사과와 함께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국민 앞에 책임 있는 조치를 취할 것을 촉구한다”고 날을 세웠다. 국민의힘이 유독 거친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이 후보자가 자당 출신인 점은 물론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정국에서 ‘윤 어게인’과 결을 함께했기 때문이다. 이 후보자는 윤 전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에 참석하는 등 강성 행보를 보였다. 배신자 VS 외연 확장 보수 가르더니… 자진 사퇴 VS 일단 중립 진보도 두 쪽 후보자 지명 이틀 만에 국민의힘이 두 쪽으로 갈라졌다. ‘기회주의자’의 이탈을 막아야 한다며 ‘이혜훈 배신자 프레임’을 띄우는 한편, 지금이야말로 윤 전 대통령과 절연하고 외연 확장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맞서며 분열하는 양상을 띤 것이다.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이 후보자에 대해 “당의 지원을 받는 일에는 물불 가리지 않고 단물을 빼먹은 분”이라며 “그런데 이렇게 이정부의 앞잡이가 되어서 기획예산처 장관이라는 자리를 차지하려고 자신의 영혼을 팔고, 자리를 구걸하고 있다. 그것을 탕평이라고 볼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글삭튀 이혜훈, 소신도 없이 이재명에게 러브레터를?’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고 “보수 전사인 척하더니 자리를 넙죽 받았다. 이혜훈은 이재명의 기본소득, 보편 복지, 수요 억제 부동산 정책을 가장 세게 까왔다”고 말했다. 이는 내정 직후 이 후보자가 입장문을 통해 “경제와 민생 문제 해결은 본래 정파나 이념을 떠나 누구든지 협력해야 할 일이라는 것이 저의 오랜 소신”이라는 대목을 꼬집은 것으로 풀이된다. 반면 범보수인 개혁신당은 이 후보자의 ‘배신자론’이 과하다며 오히려 보수 때리기에 나섰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이 전 의원은 20년간 쌓아온 모든 것을 버리고 결국 강을 건넜다. 우리는 그 의미를 직시해야 한다”며 “거국 내각은 보통 정권 말기의 레임덕 국면에서 등장하는 유화책이다. 그런데 이재명 대통령은 정권 초기부터 이런 파격적인 확장 전략을 펼치고 있다. 이는 위기감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자신감의 발로”라고 주장했다. 이어 “지금은 이 전 의원을 배신자로 몰아세울 때가 아니라, 보수 진영이 국민께 매력적인 비전과 담론을 제시하여 희망을 드려야 할 때”라며 “누군가 등을 돌렸다면, 왜 떠났는지 그 이유를 살펴야지 떠난 사람을 저주해서 무엇을 얻겠나?”라고 반문했다. 아울러 “보수 담론이 저급해진 원인은 상대를 감옥에 보내면 문제가 해결된다는 검찰주의적 사고방식에 있다”며 “정책을 놓고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으니, 결국 상대를 감옥으로 보내는 데만 몰두했고, 그것마저 뜻대로 되지 않자 이제 남은 것은 저주뿐”이라고 날을 세웠다. 파도 파도 끝이 없네 여러 의미로 ‘파격 인사’인 만큼 이 후보자의 지명을 놓고 무수한 뒷말이 나왔다. 한 여권 관계자는 “세간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이 후보자는 ‘경제 총알받이’ ‘국민의힘 분열’ 등 청와대가 전략적으로 지명했다는 설이 있었다”며 “겨우 그런 걸 위해 이재명 대통령이 이런 리스크를 떠안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이 후보자라는 시한폭탄이 여당 쪽으로 넘어왔다는 점이다. 강선우·김병기 의원의 ‘보좌관 갑질 논란’으로 사나운 민심의 파도를 건너던 도중 이 후보자를 둘러싼 ‘초대형’ 갑질 의혹이 터지면서 전직 관계자들의 폭로전이 시작됐다. 2017년 당시 바른정당 의원이던 이 후보자가 자신의 이름이 언급된 언론 기사를 보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인턴 직원에게 “죽었으면 좋겠다”는 등 질책하는 내용의 통화 녹취가 공개됐다. 이후 이 후보자가 보좌직원에게 자신에 대한 비판 댓글을 지우게 하거나 직접 반박 댓글을 달게 하고, 상호 감시를 지시하거나 구의원들에게 집회에서 삭발을 강요했다는 등의 증언이 잇달아 나왔다. 하루 간격으로 ‘비행기 좌석 업그레이드’ ‘수박 배달’ 등 자잘한 의혹이 추가로 제기되면서 논란은 걷잡을 수 없이 번졌다. 결국 이 후보자의 갑질 논란은 어느 새 고발전이 됐다. 지난 2일 국민의힘 소속 이종배 서울시의원은 이 후보자를 협박·직권남용 혐의로 경찰에 고발하면서 “권력 우위에 있는 국회의원이 약자인 인턴 직원에게 모욕적 언사를 반복하고, 공적 직무와 무관한 개인 주거 공간의 프린터 수리를 지시했다면 이는 명백한 직장 내 괴롭힘이자 직권 남용”이라며 “이 대통령은 즉시 지명을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8일에는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로 추가 고발장을 제출했다. 땅 투기 의혹도 제기됐다.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 후보자의 배우자 김씨가 인천국제공항 공식 개항 전인 2000년 1월 초 인천 중구 중산동의 잡종지 약 200평(6612㎡)을 매입했다고 밝혔다. 이후 이 후보자의 과거에 제출한 재산 신고 내역에 따르면 이 땅은 2006년 한국토지공사와 인천도시개발공사에 39억2100만원에 수용됐다. 6년 사이 약 세 배의 시세 차익을 번 것이다. 그래도 품어야 주 의원은 “서울 사는 이혜훈 부부가 인천 잡종지 2000평을 매입할 이유가 없다”며 김씨가 땅 투기를 통해 재산을 취득했다고 주장했다. 여야의 날 선 공방이 이어지는 사이 이 후보자의 청문회 날짜가 오는 19일로 확정됐다. 국민의힘은 19~20일 이틀간 청문회를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국회 재정경제기획위원회 여야 간사 간의 조율 끝에 충분한 질의 기회를 보장하는 것을 전제로 이같이 정해졌다. 청와대와 민주당은 우선 청문회를 통해 이 후보자의 입장을 청취하겠다는 입장이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이 후보자는 제명까지 당하면서 이정부와 함께하길 택했다. 지금 자진 사퇴하면 정치 인생은 끝”이라며 “만일 지명 철회를 하더라도 청문회를 통해 입장을 밝힐 기회는 줘야 하지 않겠는가. 정치 생명 다 걸고 온 사람한테 해명할 시간도 주지 않고 쫓아내는 건 정부 입장에서도 (모양이 좋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 후보자 역시 정면돌파를 택했다. 이 후보자는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출근하는 길에 취재진들과 만나 “청문회에서 다 소상히 설명할 수 있는 사안”이라며 논란을 일축했다. ‘국민의 눈높이’를 강조했던 민주당인 만큼 이 후보자에 대한 여론을 의식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 후보자 지명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한 비율이 42%로, 긍정 평가보다 높게 나타나면서 당에서도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는 요구가 나오는 모양새다.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지난 5~7일, 만 18세 이상 남녀 1005명을 대상으로 진행해 이날 발표한 전국지표조사(NBS)에 따르면 이 대통령이 이 후보자를 지명한 것에 대해 ‘잘못한 결정’이라는 부정적 평가는 42%로 집계됐다. ‘잘한 결정’이라는 긍정적 평가는 35%, 모름·무응답은 23%로 드러났다. 해당 조사는 휴대전화 가상번호(100%)를 이용한 전화 면접으로 이뤄졌으며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다. 응답률은 18.2%로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결국 민주당 내에서도 자진 사퇴 목소리가 나왔다. 그중에서도 민주당 장철민 의원은 이 후보자에 대해 “도저히 방어할 수 없다”며 자진 사퇴를 공개적으로 권했다. 이 지명 부정 평가 42% 그래도 버티는 이유 뭐? 장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우리가 여당이기 때문에 소명 기회를 부여하고 필요하면 적극적으로 방어도 해 줘야 하지만 지금 그런 분위기가 아니”라고 말했다. 특히 “조승래 사무총장이 ‘언급 자제령’을 내렸다. 이 후보자가 위태롭고 고립돼있다는 걸 정말로 증명하는 말 같다”고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 이어 “대통령이 지명을 철회하는 것도 적절치 않으니 본인이 결단을 하는 게 맞다”며 “이미 만신창이지만 청문회를 버텨낼 수 있을까 의구심이 있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민주당은 검증을 통해 끝까지 지켜보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한 라디오를 통해 “(정부 인사는) 불완전한 상태로 국민께 추천을 드리는 단계가 있고, (지금은) 그런 보도가 되면 언론이 검증을 하는 시기”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러고 나서 청문회 과정에서 국민과 함께 제도적으로 그것들을 바탕으로 다시 최종 점검하는 것이 검증 절차”라며 “국민과 함께 검증하는 청문회 과정까지는 보장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청문회를 통한 검증 이후 최종 판단 기준은 ‘국민의 눈높이’라며 “적어도 국민적 정서에 맞는가가 굉장히 중요하지 않겠나”라고 덧붙였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 역시 끝까지 지켜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정 대표는 “제가 이 후보자라면 잘못한 말·행동에 대해 반성과 사과를 철저히 하고, 낮은 자세로 임하고, 기획예산처 장관으로서 갖출 비전과 이재명 대통령의 국정 철학을 잘 맞추겠다고 어필할 것”이라고 말했다. 청문회 통과 전망에 대해서는 “청문회 당일 지켜봐야 한다. (이렇게) 어필하면 청문회를 넘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이 대통령 결정에 대해 (민주당 지지자가) 다 마음에 들어할 수는 없지만, 대통령 결정이 잘 된 결정이 되도록 도와줘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 후보자 입장에서는 (국민의힘이) 즉각 제명하고 비난하다 보니 국민의힘 쪽으로는 갈 수도 없다. 이쪽(민주당)에서 더 잘해야 한다. 파이팅하시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거센 비판 속에서도 청와대가 이 후보자에 대한 임명을 강행할 것이란 기류도 읽힌다. 믿는 구석 통할까? 한 정치권 관계자는 “민주당발 갑질 논란에도 의원들이 끝까지 버틴 이유는 폭언·갑질 등으로 형사 처벌을 받은 사례가 많지 않기 때문”이라며 “의원직 사퇴까지 이어지지 않는 이상 버티고 보는 것이다. 강 전 의원은 ‘1억 자금’ 논란이 불거지면서 탈당했지만 이 후보자의 경우 법적으로 걸릴 게 없다고 자신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도덕성 차원에서는 큰 타격을 입겠지만 끝에 가서는 결과로 승부를 보겠다는 것”이라며 “안 그래도 민감한 소재인 갑질 의혹과 맞물리면서 논란이 곱절이 됐다”고 부연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왼쪽으로 넘어온 이혜훈 누구? 이혜훈 초대 기획예산처 장관은 1964년생 부산 출신으로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UCLA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영국 레스터대 경제학과 교수와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을 거치는 등 경제 분야서 활동했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서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 후보자로 서울 서초 갑에 당선돼 정치에 입문했으며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간사와 정보위원장 등을 역임했고, 기획재정위원회 위원으로도 활약했다. 지난해 22대 총선서 국민의힘 소속으로 서울 중구·성동구을 선거구에 출마했지만, 더불어민주당 박성준 후보자에게 패배해 원내 진입에 실패했다. 지난해 7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는 김문수 전 대선후보자의 국민의힘 당 대표 추대를 촉구하는 209인의 전직 의원 명단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