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우리의 대배우 이순재

  • 서진 기자 jen9@ilyosisa.co.kr
  • 등록 2025.12.01 11:22:17
  • 호수 156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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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남을 ‘국민 아버지’

[일요시사 취재1팀] 서진 기자 = “이 아침이 드라마 한 장면이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선생님이 ‘오케이, 컷’ 소리에 툭툭 털고 일어나시고 ‘다들 수고했다. 오늘 좋았어’라고 해주실 것 같습니다.” 지난달 27일 오전 5시30분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 진행된 ‘국민 배우’ 고 이순재 영결식에서 배우 김영철이 목멘 소리로 추도사를 읽어 내려갔다.

배우 이순재. 그의 생은 단지 배우로서의 삶만은 아니었다. 후학을 가르치는 스승으로도, 정치인으로도 존재했다. 수십년간 문화 예술계에 그가 쌓은 헌신과 노고는 우리 모두에게 귀감이 됐다. 이순재, 그 이름은 오랫동안 한국 연극과 방송, 그리고 우리의 마음속에 영원히 남을 빛나는 별이다.

대한민국
연기 역사

지난달 25일 새벽, 91세의 나이로 별세한 이순재는 70년 가까이 연기 인생을 이어오며 현역 최고령 배우로서 왕성한 활동을 펼쳐왔다. 그러다 지난해 10월 건강 악화로 출연 중이던 연극을 취소한 뒤 조용히 휴식을 취하다가 작고했다.

고인의 영결식에서는 배우 정보석이 사회를 맡고, 김영철과 하지원이 추모사를 낭독했다. 이 외에도 많은 배우들이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했다. 발인은 같은 날 오전 6시20분에 치러졌으며, 장지는 경기도 이천에 위치한 에덴낙원이었다.

영결식에서 사회자 정보석은 “선생님의 한 걸음 한 걸음이 우리 후배들이 따라갈 수 있는 큰 역사였고, 선생님은 항상 제일 앞에서 큰 우상으로서 후배들이 마음 놓고 연기할 수 있는 길을 만들어주셨다”며 그는 이순재를 ‘연기의 역사’라고 칭했다.


‘평생 연기했는데 팬클럽이 없다’는 말에 팬클럽 회장을 자처했던 배우 하지원은 추도사에서 생전 고인과 연기에 관해 나눴던 대화를 떠올리며 눈물을 흘렸다.

그는 당시 “연기는 왜 할수록 어려운가요? 라고 물었더니 선생님은 잠시 저를 바라보더니 특유의 담담한 목소리로 ‘나도 지금까지 어렵다’고 하셨다”며 “그 한마디는 저의 큰 위로이자 오랜 시간 마음 깊이 새긴 가르침이었다”고 말했다. 하지원은 “저는 선생님의 영원한 팬클럽 회장”이라며 추도사를 마쳤다.

애도의 물결이 이어지며 가수 겸 배우 이승기, 배우 최수종·하희라 부부, 송승헌, 김성환, 이한위, 손숙, 박상원, 김희애, 장용, 최지우, 가수 이용, 바다, MC 유재석, 박경림 등이 조문했다.

tvN 여행 예능 <꽃보다 할배>를 같이 했던 원로배우 백일섭, 박근형, 신구, 김용건도 빈소를 찾았다. 백일섭은 “먹먹해서 하루 종일 소화가 안 된다”며 “(이순재와) 거의 50년을 가깝게 지냈다. 가끔 만나도 어제 만난 것 같았다”고 전하면서 “형이 95살까지 하면 나도 95살까지 연기할 거라고 했었는데, 약속 못 지키고 가시나”라고 애도했다.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유족에게 대한민국 정부 포상의 최고 훈격인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했다. 훈장은 영전에 함께 놓였다. 최 장관은 “연극, 영화, 방송을 아우르며 칠십년의 세월 동안 늘 우리 국민과 함께하며 울고 웃으셨다”며 “선생님이 남기신 발자취는 길이길이 기억될 것이다. 선생님, 우리 모두 신세 많이 졌습니다”라고 고인을 기렸다.

91세 나이로 별세…후배들 배웅 속 영면
<햄릿> 보고 배우의 길…70년 연기 인생

고인은 지난 1월 <개소리>로 KBS에서 연기대상을 수상하며 역대 최고령 수상자로 이름을 남기기도 했다. 당시 이순재는 “오래 살다 보니 이런 날이 온다”며 “여러분, 정말 평생 신세 많이 지고 도움 많았습니다. 감사합니다”라는 수상 소감으로 시청자에게 큰 감동을 남겼다.


이순재는 1934년 함경북도 회령군에서 태어나 4세 때 조부모를 따라 서울로 내려왔다. 이후 서울대학교 철학과에 진학해 영국 배우 로렌스 올리비에가 출연한 영화 <햄릿>을 보고 배우의 길을 걷게 됐다. 그는 1965년 TBC 1기 전속 배우로 데뷔해 연극 <지평선 너머>를 시작으로, 총 70년 가까이 연기 인생을 이어왔다.

무대뿐 아니라 드라마와 영화에서도 활약하며 ‘국민 아버지’로 대중들에게 친숙히 다가왔다. 그는 KBS와 MBC 등을 넘나들며 수많은 드라마에 출연했다.

대표작으로는 1991년 방영된 MBC 주말 연속극 <사랑이 뭐길래> 고집스러우면서 가부장적인 아버지 ‘이병호’ 역을 맡았다. 그는 1990년대 당시 전형적인 아버지 상을 연기하며 엄격하고 목소리가 큰 성격의 가장을 보여줬다.

특히 아들인 이대발 역의 최민수를 특유의 걸걸한 목소리로 “대발아”라고 부르는 대사가 전국적으로 유행어가 될 만큼 큰 인기를 얻으면서 ‘대발이 아버지’라는 별명이 붙었다. 이 작품은 역대 한국 드라마에서 손꼽히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1999년 드라마 <허준>에서 이순재는 주인공 허준의 스승인 명의 ‘유의태’ 역을 맡았다. 유의태는 뛰어난 의술과 강한 성격을 지닌 조선 최고의 한의사로, 젊은 허준에게 의술과 인생의 진리를 가르치는 든든한 멘토이자 조력자 역할을 한 인물이었다.

이순재는 <허준>에서 탁월한 연기로 시청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으며, 주인공이 위기에 빠질 때마다 지혜와 용기로 돕는 장면들이 크게 사랑받았다.

특히 임진왜란 중 허준을 위험에서 구해내고, 의서 편찬을 지원하며 허준이 궁궐 내에서 인정받게 만드는 과정에서 그의 역할이 돋보였다. 유의태의 엄격하지만 인간적인 모습과 불같은 성격, 그리고 허준에 대한 깊은 애정이 어우러진 장면들이 많은 시청자들의 기억에 남았다.

이 드라마는 최고 시청률 64.8%를 기록하며 국민 드라마로 자리 잡았고, 이순재의 일품 연기는 작품의 깊이를 더하는 결정적인 요소로 평가받았다. 이 작품은 대한민국 사극 사상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으며 높은 완성도로 아직까지 사극 중 최고로 평가받고 있다.

대한한의사협회는 고인이 “단순한 국민 배우를 넘어 한의철학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이를 국민에게 온전히 전달해 준 귀중한 분이었다”고 밝혔다. 이들은 “한의학 발전과 국민 건강 증진에 기여한 고인의 공로를 길이 기억하겠다”고 전하며 추모했다.

이 작품을 통해 이순재는 한의학의 뿌리와 철학을 대중에게 친숙하게 전달하며 공로를 인정받았다. 대한한의사협회는 그를 ‘명예 한의사’로 위촉했고,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에서도 ‘한의학 명예 학사’ 학위를 수여한 바 있다.

전설의
발자취

2006년 방영된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에서 이순재는 가족에게 진심 어린 마음을 보여주는 캐릭터를 연기했다. 그는 본명 그대로 ‘순재’라는 인물로 등장해 한방병원 원장으로서 까칠하고 권위적인 가부장 역할을 했다. 아내 ‘문희’와 자식들에게 엄격하고 때로는 가족들 속을 썩이기도 하지만, 결국 가족을 위한 진심 어린 애정을 보여주는 인물이었다.


‘순재’는 작품에서 아들과 손자들 몰래 인터넷 야동(야한 동영상)을 본다는 설정으로 ‘야동 순재’라는 전무후무한 별명으로 불렸다. 그는 노년 남성의 이미지를 내려놓고 유쾌한 연기를 보여주며 시청자에게 큰 웃음을 선사했다.

2009년 방영된 MBC 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은 ‘하이킥’ 시리즈 형태로 시청자 앞에 재등장했다. 이순재는 <거침없이 하이킥>에 이어 여기서도 ‘순재’라는 이름으로 출연하지만, 한의사에서 자수성가한 식품회사 사장으로 변신해 전과 다른 면모를 보여줬다.

<지붕 뚫고 하이킥>에서 그는 다혈질이지만 사랑 앞에서는 자상하고 매너 있는 역할을 맡았다. 아내와 사별한 이후 6년 만에 다시 사랑을 찾아 나선 ‘순재’는 유쾌한 연기를 보여주며 시청자를 다시 한번 매료시켰다.

특히 새로운 사랑인 ‘자옥’과의 러브라인과 사위인 정보석 등 가족 간에 벌어지는 크고 작은 소동은 시청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이 시트콤은 이순재에게 또 다른 세대와 공감할 수 있는 친근한 이미지를 확고히 한 작품으로 남았다. 특히 그는 <거침없이 하이킥>을 통해 2007년 MBC 방송연예대상 시상식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출연진들의 기립박수를 받았다.

2007년 MBC 사극 드라마 <이산>에서 조선 왕 영조 역을 맡아 냉철하고 카리스마 있는 왕의 모습을 연기해 같은 해 MBC 연기대상에서 사극 부문 황금연기상을 공동 수상하기도 했다. 그는 영조의 권위와 냉철함을 표현하며 아들 이산(정조)을 향한 복잡한 감정, 권력과 왕권 유지를 위한 결단을 연기하는 면모로 돋보였다.

이순재는 이 밖에도 <베토벤 바이러스> <선덕여왕> <대물> <욕망의 불꽃> 등 굴지의 인기 드라마에 출연했다.


2008년 MBC 미니시리즈 <베토벤 바이러스>에서는 악단 대표 ‘김갑용’ 역할로, 음악과 인생에 대한 열정을 보여주며 주목받았다. 알츠하이머병을 앓고 있는 캐릭터로, 음악에 대한 열정을 포기하지 않는 깊이 있는 연기를 선보였다.

특히 김갑용의 치매 증상이 점차 심해지면서 발생하는 주변인들과의 관계 변화를 섬세하게 표현해 큰 호평을 받았다. 이순재는 <베토벤 바이러스>를 통해 2008년 MBC 연기대상 특별상을 수상했다.

2010년 SBS 드라마 <대물>에서는 ‘백성민’ 대통령 역을 맡아 권력자의 위엄과 인간적인 면모를 동시에 소화했다. 그는 권력의 무게와 정치적 갈등 속에서도 인간적인 면모를 잃지 않는 대통령 역을 소화했는데, 특히 ‘조배호’ 역의 배우 박근형과 정치적 갈등을 이루며 긴장감을 높였다.

2015년에는 KBS2 드라마 <푸른 바다의 전설>에서 조연으로 출연하며 연기상을 수상하는 등 다수 작품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펼친 것으로 평가받았다.

최근 작품은 지난해 KBS 드라마 <개소리>로, 주연으로 출연한 미스터리 코미디 드라마다. 이 작품은 이순재가 드라마 촬영 중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갑질 배우’라는 오명을 쓰고 충격에 빠져 거제도로 도피성 휴양을 떠나면서 시작된다.

평생 연극
깊은 애정

그곳에서 은퇴한 경찰견 ‘소피’와 만나 강아지의 말을 사람의 언어로 듣게 되면서 그는 미스터리한 사건들을 하나씩 해결해 나간다. 이후 거제도 동네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소피와 함께 조사하며, 인간관계와 삶의 의미를 새롭게 찾아가는 이야기로, 유쾌하면서도 발칙한 노년 성장기를 담아냈다.

이순재가 미스터리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인생 2막을 열어가는 모습이 주를 이루고, 오랜 친구이자 동료인 배우 김용건과 티격태격하면서도 서로 돕는 동거 관계도 주요 웃음 포인트로 등장했다. 그에게 이 작품은 2024 KBS 연기대상에서 대상을 수상케 한 생애 마지막 수상작이기도 했다.

이순재는 연극에 대해 평생 깊은 애정을 가진 배우였다. 그는 2018년 한 인터뷰에서 “대사를 외울 수 있을 때까지는 연기하고 싶다. 매 작품이 유작이라는 생각으로 임한다”고 말하며 무대에 대한 특별한 책임감과 열정을 드러냈다.

2023년에도 “내 소망은 무대에서 쓰러지는 것이다. 그게 가장 행복한 것”이라는 발언으로 연극에 대한 애착과 그가 생각하는 배우의 삶을 진솔하게 밝혔다.

이순재는 “배우가 자기 연기를 구체화해 관객과 소통하는 방법은 연극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배우였다. 그는 연극 <장수상회> <앙리할아버지와 나> <세일즈맨의 죽음> <리어왕> 등을 통해 더욱 가까이서 관객과 마주했다.

연극 <앙리할아버지와 나>는 2018년 시작해 2021년에는 서울 공연과 지방 투어를 통해 전국적으로 선보여졌다. 흥행 면에서 작품성과 배우들의 열연으로 꾸준한 관객 호응을 받았다. 특히 현실적인 세대 갈등과 따뜻한 메시지로 관객으로부터 깊은 공감을 얻었다.

티켓 오픈 시마다 빠른 매진을 기록하며 흥행 성공을 거뒀고, 작품성까지 인정받았다. 그는 <장수상회>와 같은 후속작의 성공에도 기여하며, 세대 공감을 자아내는 휴먼 드라마를 만들어 이 연극을 꾸준히 사랑받는 작품으로 남겼다.

이순재는 2020년부터 3년 동안 연극 <장수상회>에서 ‘김성칠’ 역을 연기했다. 까칠하고 융통성 없는 노신사 성칠이 오랜 시간 지켜온 장수마트를 배경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뿐만 아니라 원로배우 신구, 손숙 등 베테랑 배우들이 선사하는 섬세한 연기로 관객들에게 깊은 감동을 줬다. 무엇보다 가족 간 갈등과 화해, 치매 환자에 대한 사회적 메시지를 담아 많은 공감을 얻었다. 연극을 관람한 관객들은 “내 자신과 가족들을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며 “연극 보면서 오열한 건 처음”이라는 등의 호평을 쏟아냈다.

‘대발이 아버지’부터
‘야동 순재’까지 소화

이순재는 연극 <리어왕>으로 정점을 찍었다. 87세의 나이에도 무대에 올라 화제가 됐다. 3시간이 넘는 러닝타임과 방대한 대사를 소화하며 ‘노장 배우’의 상징으로 불렸다. 2024년 백상예술대상 특별무대에서 <리어왕> 연기를 재연하기도 했다.

배우 박근형은 이순재의 장례식장에서 2021년 방영됐던 골프 예능 <그랜파> 촬영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이순재가 “취침 시간에도 계속 연극 <리어왕> 대사를 외웠다”며, 이순재에게 “‘일을 좀 적게 하시는 건 어떻냐’고 했는데 ‘아니야, 이건 내가 꼭 해야 돼. 하고 싶었던 거야’”라는 대답을 들었다고 전했다.

이순재는 구순(90세)이었던 지난해 건강 이상으로 활동을 중단하기 전까지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로 연기를 펼쳤다.

이순재는 나영석 PD가 연출한 대표 예능 <꽃보다 할배> 시리즈에 출연하며 그와 큰 인연을 맺었다. <꽃보다 할배>는 나영석이 tvN으로 이적한 후 처음 만든 작품이다. 2013년 첫 방영을 시작으로 시즌 4까지 제작된 여행 버라이어티로 이순재, 신구, 백일섭 등 원로 배우들과 여행 예능을 펼쳐 큰 인기를 끌었다.

특히 배우 이서진은 젊은 짐꾼 역할로 출연하며 할아버지 세대와 호흡을 맞췄다. 나영석은 이순재의 별세 소식에 깊은 충격과 애도를 표하며 방송 중 그와 함께했던 시간을 회고했고, 이서진과 함께 빈소를 방문해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꽃보다 할배>에서 ‘순재 할배’는 귀엽고 순박한 매력으로, 때로는 직진하는 엉뚱한 모습들을 보여줬다. 동시에 80세가 넘는 나이에도 외국어를 유창히 구사하며 끊임없이 공부하고 배우는 모습이 담겨 찬사를 받았다.

또 파리, 스페인 등 해외여행에서 보여준 모습들도 화제가 됐다. 이순재는 나영석과 멤버들 사이에서 중심 역할을 하며 특유의 유머와 인간미로 화면을 빛냈다. 나영석이 인터뷰에서 “이순재는 ‘꽃할배’ 그 자체”라고 표현할 정도였다.

방송계도 추모를 이어갔다. KBS 2TV에서는 지난달 25일부터 26일까지 <추모특선 국민배우 이순재 개소리 1~4회 몰아보기>와 <추모특선 국민배우 이순재 십분간, 당신의 사소한>을 방영했다.

KBS는 “반세기 넘게 한국 방송 발전에 기여한 고인의 예술적 업적과 헌신을 기리기 위해 분향소를 설치했다”며 서울 여의도 KBS 본관 2층에 고인의 추모 공간을 마련했으며, 일반인들의 조문 행렬이 잇따랐다.

끝까지
무대서

이순재는 “예술이란 영원한 미완성이다. 나는 완성을 향해 끊임 없이 도전한다”는 말을 습관처럼 했다. 이 같은 심상으로 도전했던 드라마가 310편, 영화가 130편, 연극이 60편이었다.

연기를 향해 끊임없이 연구하고 탐미하는 자세와 철학은 그가 평생 현역으로 연기활동을 이어온 이유이자, 후배들에게 가장 존경받는 이유였다. 이제 그는 평생을 예술에 바친 진정한 장인으로 편안한 영면에 들었다.

<jen9@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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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지난 6월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후보가 서영교 의원을 누르고 22대 더불어민주당 2기 원내대표로 당선됐다. 김 원내대표는 내란 종식과 헌정 질서 회복, 권력기관 개혁을 외쳤다. 이로부터 두 달 뒤인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정청래 신임 당 대표가 선출됐다. 이재명정부 첫 여당 지도부가 제모습을 갖추면서 안정 궤도에 접어드는 듯했다. 약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와 정청래 대표의 첫 갈등이 불거졌다. 정 대표가 지난 9월11일 여야 원내 지도부가 합의한 3대 특검법 합의안에 대해 “협상안을 수용할 수 없고, 지도부 뜻과 달라 재협상을 지시했다”고 밝히면서다. 불안불안 이인삼각 특검법 개정안의 핵심인 기간 연장을 제외한 채 합의해 특검법의 취지와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게 정 대표의 입장이다. 김 원내대표는 곧바로 반박했다. 원내 지도부와의 긴급회의를 거듭하던 그는 밖에서 기다리던 취재진을 향해 “정청래한테 공개 사과하라고 그래!”라며 소리쳤다. 이후 당 안팎에서 원성이 쏟아지자 김 원내대표는 오히려 취재진을 향해 “왜 자꾸 합의라고 그러느냐”고 물었다. 그는 “(합의가 아니라) 1차로 논의한 것이고, 무엇보다도 의원총회에서 추인을 받아야 한다”며 “수사 기간과 규모에 다른 의견에 있으면 그 의견을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제 총론만 (발표)하고 나갔는데 원내수석들이 각론에서 너무 많이 나갔다. 마치 합의가 된 것처럼 보도됐다”며 합의문이 아니라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두 사람 간의 갈등은 사흘 만인 13일 봉합됐다. 김 원내대표는 자신의 SNS에 “심려 끼쳐서 죄송하다. 심기일전해 내란 종식과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해 분골쇄신하겠다”고 게시글을 작성했다. 이렇게 냉전은 끝났지만 지지층의 비난은 거셌다. 김 원내대표를 향해 ‘수박’ ‘변절자’ 등 원색적인 비판을 쏟아내며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문재인정부 당시 민주당 대표를 지냈지만 지난 대선에서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의 손을 들어준 이낙연 전 국무총리의 행보와 비교하는가 하면 ‘역시 서영교 의원을 뽑아야 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왔다. 지지층의 미묘한 기류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번에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검사 징계안을 놓고 두 번째 갈등이 터졌다. 법사위 소속 범여권 의원들이 대장동 항소 포기에 반발한 검사장 18명을 고발한다고 밝힌 데 대해 “협의가 없었다”고 선을 그으면서 개혁 의지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온 것이다. 지난달 19일 법사위 소속 민주당·조국혁신당·무소속 등 범여권 의원들은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에 이의를 제기한 검사장 18명을 국가공무원법 위반으로 경찰에 고발했다. 여당 간사인 민주당 김용민 의원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 조직 기강과 헌정 질서를 무너뜨린 검사장 18명의 집단 항명 행위에 대해서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다”고 밝혔다. ‘당심’이 뽑은 정, ‘의심’이 뽑은 김 연일 삐거덕…벌써 이재명 리더십 부재? 김 원내대표는 고발 소식이 알려진 뒤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금 봤다”며 “그렇게 민감한 것은 정교하고 일사불란하게 해야 한다. 협의를 좀 해야 했다”고 당혹한 기색을 보였다. 이어 “뒷감당은 거기서 해야 할 것”이라며 고발장을 제출한 법사위 쪽에 책임을 물었다. 법사위의 검사장 고발은 원내 지도부뿐 아니라 당 지도부와도 사전 논의가 없었다는 게 김 원내대표의 설명이다. 하지만 김용민 의원은 검사장 고발 문제에 대해 “당의 기조와 흐름이 잡혀 있는 상태에서 저희가 고발장을 그날 제출하는 기자회견을 한 것뿐, (원내 지도부와) 소통이 없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김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원내(지도부)와 소통할 때 이 문제를 법사위는 고발할 예정이라는 걸 얘기했다”며 “원내가 많은 사안을 다루다 보니까 (고발 문제를) 진지하게 듣거나 기억하지 못하셨을 가능성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저희가 더 적극적으로 설명을 해야 했지 않았느냐는 지적을 한다면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면서도 “소통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당시 한 여권 관계자는 “당 대표가 당 전체를 이끄는 일이라면 원내대표는 말 그대로 원내 상황을 조율하고 총괄하는 위치인데, 오히려 갈등을 키우고 있으니 (민주당) 의원들도 혼란스러운 것”이라며 “이런 상황이 조금씩 노출되면서 지지층까지 불안함을 느끼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당과 원내,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뉜 민주당의 배경에는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의 선출 방식이 거론된다. 강경 지지층이 밀어 올린 정 대표와 달리 김 원내대표는 당내 의원 선거를 통해 당선됐다. 당시 원내에 친명(친 이재명)계가 다수 포진했던 만큼 김 원내대표 의중은 ‘명심(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에 가깝다. 더 강하고 더 빠르게 개혁을 외치는 정 대표의 지지층과 사사건건 부딪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런 강성 지지층에게 김 원내대표는 이미 ‘투아웃’이다. 여기에 정 대표의 공약이었던 대의원과 권리당원 간 표 반영 비율을 ‘1대 1’로 변경하는 당헌·당규 개정이 부결되면서 지지층의 반발이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밑서 치솟고 위서 누르고 그동안 민주당은 당 대표나 최고위원 등 선출 시 대의원과 권리당원 투표 반영 비율을 20:1 미만으로 규정해 왔다. ‘동등한 1인1표제’는 정 대표가 당 대표 경선 당시 공약으로 내건 정책 중 하나로 “나라의 선거에서 국민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하듯 당의 선거에서도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해야 한다”고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조차 ‘졸속 추진’이라는 비판이 나오면서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 두 사람 모두 시험대에 올랐다. 정 대표 쪽에선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는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였던 때부터 추진됐던 개혁의 실현’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일각에서 ‘시기’와 ‘방법’을 문제 삼는 등 반대 의견에 부딪혔다. 권리당원의 힘으로 대표직에 오른 지 3개월이 조금 지난 상황에서 1인1표제를 추진하자 친명계 조직인 ‘더민주혁신회의’와 일부 당원 등을 중심으로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1인1표제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이 최고위원은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논란이 커지고 있는데 이는 찬반의 문제라기보다 절차의 정당성·민주성 확보, 그리고 취약 지역(영남 등)에 대한 전략적 규제와 과소 대표성이 핵심”이라고 분석했다. 친명계인 윤종군 의원도 SNS를 통해 “당원주권 강화 방향에 동의한다”면서도 “전 지역 권리당원 표를 1인1표로 하는 것에는 이견이 있다. TK(대구·경북) 등 영남지역 당원 자긍심 저하, 당세 확장 장애 조성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현 상황과 관련해서 한 정치권 관계자는 “당 대표는 당 컨트롤이 안 되고, 원내대표는 의원들 컨트롤이 안 되는 상황”이라며 “지난 지도부(이재명 당 대표, 박찬대 원내대표)가 워낙 합이 좋았고 당 대표 리더십도 강했기 때문에 더욱 비교된다. 중심축이 없으니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반 발자국만 앞서도 자기 정치라는 뒷말이 나오는 것”이라고 봤다. 결국 정 대표의 1인1표제는 중앙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지난 5일 치러진 투표 결과 중앙위원 총 593명 중 373명이 투표에 참여해 찬성 277표, 반대 102표로 과반이 찬성하지 않아 부결된 것이다. 남은 고비 얼마나? 원내 일각에서는 무리하게 밀어붙인 ‘정청래발 개혁’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김 원내대표의 고충 역시 이와 궤를 같이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대통령실에서조차 몇 차례 속도 조절을 주문했지만, 지지층을 등에 업은 정 대표는 ‘개혁 골든 타임’을 필두로 숨 가쁘게 달리고 있다. 그런 김 원내대표가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을 못 박으면서 ‘쓰리아웃’은 겨우 면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지난달 2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내란전담재판부는 국민의 명령이기 때문에 당연히 설치한다”며 “여기에 대해 더는 설왕설래하지 않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 제한’ 조치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 원내대표는 “시간이 지나면 내란 사범이 사면돼 거리를 활보하지 못하도록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을 제한하는 법안도 적극 관철하겠다”며 “내란 사범을 사면하려면 국회 동의를 받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만일 윤석열 전 대통령 등 내란 주요 피의자에 대한 내란죄가 확정될 경우 사면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로부터 약 일주일 뒤인 지난 4일 범여권의 주도로 ‘내란전담재판부(내란특별재판부)’ 설치법이 법사위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법사위는 해당 법안을 이달 중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며 속도를 냈다. 해당 재판부는 12·3 내란 사태와 관련해 윤 전 대통령 등이 연루된 내란 사건 전담을 골자로 한다. 내란전담재판부 판사 및 영장전담법관 추천위원회는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법무부 장관과 판사회의에서 추천한 총 9명으로 구성된다. 내란전담재판부로 성난 지지층 달래도… 위헌 폭탄 껴안고 걸어가는 ‘불’꽃길 구성을 마친 추천위원회는 2주 안에 영장전담법관과 전담재판부를 맡을 판사 후보자를 각각 정원의 2배수로 추천해야 하며 최종 임명은 대법원장의 몫이다. 또 형사소송법상 피고인의 구속기간은 최대 6개월이지만 특별법에서는 내란·외환 관련 범죄에 대해 구속기간을 1년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국민의힘은 위헌 소지가 있다며 반발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한마디로 판사가 마음에 안 든다고 골라 쓰겠다는 ‘지귀연 판사 바꾸자는 법’”이라며 “사법부의 무작위 배당 원칙을 위반하는 것일 뿐 아니라 이미 재판하는 사건도 뺏어서 다른 판사한테 맡기겠다는 삼권분립의 침해”라고 지적했다. 이날 법사위에 출석한 천대엽 법원행정처장 역시 “1987년 헌법 아래 누렸던 삼권분립, 사법부 독립이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질 수 있다”며 “내란특별재판부법에 여러 가지 위헌 요소가 있다”고 반대했다. 천 처장은 “헌법재판소가 결국 이 법안에 대해 위헌 심판을 맡게 될 텐데 헌재소장이 추천권에 관여한다면 심판이 선수 역할을 하게 돼 룰에 근본적으로 모순이 생긴다”며 “헌법재판소장과 직·간접적 관계에 있는 헌법재판관들이 재판(위헌심판)을 맡을 수 없게 된다면 ‘내란특별헌법재판부’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이 법이 예정하고 있는 바”라고 설명했다.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으로 개혁 동력을 얻었지만 후폭풍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위헌 가능성을 지닌 사법개혁을 진행하는 건 위험요소가 다분할뿐더러 원내대표로서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두고 중도층 민심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출신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지금 민주당은 집단 의존 증상이 있다. 지난 총선에서 이재명 당시 대표에게 충성하는 정치인만 대거 유입되다 보니 여당이 된 지금 제대로 갈피를 못 잡는 것”이라며 “2차 종합 특검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 내란전담재판부를 어떻게 꾸릴 것인지, 조희대 대법원장을 어떻게 할 것인지 등에서 국민의 피로도를 높이지 않으면서도 종합적인 전략을 짤 사람이 없다”고 지적했다. 175석 버거웠나 그러면서 “내란전담재판부가 설치되면 국민의힘이 위헌을 걸 것이고, 법원에서 위헌 소지가 있다고 보는 만큼 위험성도 크다. 하지만 헌재에서 위헌 판결을 내리지 못하게 하려면 민심을 우리 편으로 끌고 와야 하는, 법률 싸움이 아닌 고도의 민심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고 덧붙였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원팀’ 원내대표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단에 때아닌 ‘내 편 봐주기’ 논란이 일었다. 민주당 문진석 당 원내운영 수석 부대표가 인사청탁 의혹에 휩싸였지만 ‘엄중 경고’에 그치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앞서 지난 2일 문 수석이 본회의장에서 김남국 대통령실 디지털소통비서관에게 문자로 특정 인물을 거론하며 “내가 추천하면 강훈식 실장이 반대할 거니까 아우가 추천해줘”라고 보냈고, 이에 김 비서관이 “제가 (강)훈식이 형이랑 (김)현지 누나한테 추천할게요”라고 답한 것이 언론에 포착됐다. 인사 청탁 논란이 불거지자 문 수석은 “부적절한 처신에 송구하다”고 고개를 숙였지만 국민의힘은 ‘김현지 실세’ 프레임을 다시 띄우며 이재명정부를 압박했다. 김 원내대표의 엄중 경고로 논란을 수습하려는 분위기가 이어지자 강성 지지층은 “과감히 내쳐야 한다”며 더 강한 징계를 요구하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