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서진 기자 = 닫혔던 청와대 문이 다시 열린다. 용산으로 옮겨갔던 대통령 집무실이 청와대로 복귀하기 위해 새로운 정부와 새 경비체계로 옛 공간을 채울 준비를 하고 있다. 하지만 그동안 청와대재단을 통해 청와대 곳곳을 지켜왔던 노동자들의 일터는 정작 지도에서 지워지고 있다.
대통령실 앞에 선 청와대 용역 노동자들은 ‘노동 배제’를 외치며 벼랑 끝에 몰린 자신의 자리를 증명하고 있었다. 2022년 청와대를 개방하고 용산으로 집무실을 이전한 후, 남겨진 노동자들은 고용 보장 한 줄을 계약서에 받지 못한 채 휴직 상태에 머물렀다. 당장 이번 달에 집단 해고될 처지에 있는 이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하청 릴레이
공공운수노조 서울지역공공서비스지부는 지난달 1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해고 위기에 놓인 청와대 용역 노동자들의 고용 보장을 촉구했다.
노조에 따르면 이재명 대통령의 청와대 복귀 방침으로 미화·조경·안내·보안 등 업무를 수행해 온 간접 고용 노동자는 지난 7월 업무를 마무리하고, 이달 계약이 종료될 예정이다. 노조는 청와대재단과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가 책임을 회피하고, 대통령실이 아무런 대책 없이 노동자들에게 사실상 해고를 통보했다고 비판했다.
노조는 지난 3년간 청와대 용역 노동자들이 청와대재단과 하도급 구조 아래에서 상시·지속 업무를 담당해 왔음에도 직접 고용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특히 정부가 지난 8월 청와대 개방을 중단한 뒤 12월 계약 만료를 이유로 이들의 해고를 추진하는 것은 용역 근로자 보호 지침에 위배된다고 강조했다. 청와대재단이 용역업체에 특혜를 줬다는 의혹, 재하도급을 묵인하거나 친인척이 부당 입사하는 사례 등이 빈번히 발생했다고 폭로하기도 했다.
이성균 공공운수노조 지부장은 대통령실이 두 달 넘도록 고용 승계 방안을 내놓지 않고 있다며 “노동자 집단해고 사태를 방치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청와대의 청소·경비·조경·안내 업무가 운영에 필수적인 만큼, 대통령실이 사용자로서 책임 있는 고용 보장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며 실행을 촉구했다.
그에 따르면 200여명의 현장 노동자들은 혼란과 불안 속에서 기다리고 있다. 미화직으로 근무하던 임동용 노동자는 “용역 회사가 근무 일정을 번복하며 노동자들이 강제휴업에 들어갔다”고 주장했으며, 안내직으로 근무하던 정산호 노동자는 “노동자들이 청와대 복귀 논의 과정에서 배제되고 있다”며 고용 안정의 제도화를 요구했다.
노조는 “노동자들의 요구는 특혜가 아닌 최소한의 고용 안정”이라며 정부와 청와대재단의 책임 있는 대응을 강조했다.
이전 앞두고 조용한 대통령실
200여명 휴직 상태…해고될 처지
윤석열 전 대통령이 취임했을 당시 민간에 개방된 청와대는 관리에 돌입했다. 문화재청(현 국가유산청)이 청와대 관리 업무를 해오다가 문체부로 권한을 이관했다. 문화재청과 문체부를 전전하던 청와대 관리 소관은 갑작스레 재단 신설로 이어졌다.
2023년 문체부는 예산 330억원을 투입해 이듬해 비영리 법인인 ‘청와대재단’을 설립했다. 설립 배경은 청와대 관리의 ‘안정적이고 효율적인 추진’을 위해서였다.
정부가 청와대를 문화예술 시설로 활용한다는 목적에 따라 개방해 문체부에 권한을 맡겼으나, 문체부 소관 공공기관은 청와대 관리를 할 수 있는 법적 근거와 전문성 등이 부족하다는 이유에서 재단 신설을 감행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청와대 개방 146일 만에 200만명이 다녀갔다”던 청와대의 속사정은 달랐다. 청와대재단이 운영을 맡은 뒤 청와대의 시설관리·조경·미화·방호·관람 안내·홍보 등 주요 업무는 대부분 ‘외주화’됐다.
이후 시설 부실 관리와 임금체불 문제 등은 꾸준히 거론돼왔다. 청와대재단이 설립된 이유가 무엇이냐는 비판은 지난 2023년 10월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도 언급됐다. 당시 유인촌 전 문체부 장관은 청와대재단의 불투명한 설립 과정의 근거로 뚜렷한 답을 내놓지 않았다.
야권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무리한 대통령실 이전과 더불어 수백억원대 사업을 위탁받는 비영리재단을 설립한다며 우려를 표했다.
지난여름까지 개방됐던 청와대의 낡고 닳은 하자가 그대로 방치됐던 사실이 확인되면서 청와대재단을 향한 비판의 목소리는 더욱 커졌다. 정부가 지난해 청와대 수리 명목으로 예산을 추가 투입하기도 했지만, 청와대 관리에 다단계 하청을 주면서 청와대재단이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최근 청와대재단이 해체 국면에 접어들면서 정작 책임을 물어야 할 창구는 사라진 실정이다. 문체부는 당초 2026년 예산 편성 조정 과정에서 청와대재단의 예산은 전액 삭감하고, 인건비 56억원만 유지하도록 확정했다. 청와대재단 해체 과정에 드는 제반 비용을 남긴 것이다.
유명무실 사라진 ‘청와대재단’
“실효적 고용 보장 대책 나와야”
이재명정부가 청와대에 들어가면서 예산은 최소화한다는 방침이지만, 약 250억원이 사용될 예정이다. 문체부는 지난 2023년 3월 말부터 청와대 관리를 위임받았다가 지난 8월1일을 끝으로 해제됐다고 밝혔다. 이후 청와대는 공사에 착수했고, 기존 청와대 용역 노동자들은 휴업에 들어갔다.
문체부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위임 해제 이후 용역 노동자들에게 휴업수당을 지급 중이며, 법적으로 1년 단위 계약이라 올해 연말까지 계약을 유지할 것”이라며 “모두를 직고용하면 이상적이지만, 상당한 세금이 수반된다. 하도급법에 따를 뿐, 다수를 대상으로 한 직고용은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용역의 하도급 구조로 기존 인력에 대한 책임이 흐려진 상황에서 앞으로는 정부가 명확한 규정을 못 박거나 실효적 고용 보장 대책을 내놓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앞서 문재인정부는 2017년부터 ‘비정규직 제로’ 정책을 본격 추진하며 인천국제공항공사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시행했다. 다만 까다로운 공개 경쟁 채용 절차와 제한된 직접 고용 대상자 선정, 그리고 예산 미확보로 노동자 해고와 갈등을 낳은 실패 사례로 남았다는 게 중론이다.
현재 청와대 노동자는 정부의 직접적인 직원도, 용역업체의 정규직도 아닌 하청 노동자라는 특수한 위치에 놓여있다. 실질적인 근로 조건을 결정하는 대통령실(원청)과 직접 교섭할 권리가 없어 열악한 노동환경을 개선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게 현실이다.
무책임 외주화
과거 정부에서 용역업체를 통해 하청 노동자를 고용하던 구조는 정부와 관리 주체인 청와대재단이 책임을 회피하고, 노동력을 값싸게 조달하려 한 폐습의 결과라는 비판이다. 내년 3월 본격 시행되는 노동조합법 제2·3조 개정안(노란봉투법)은 이 같은 문제를 해소할 돌파구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 노무사는 “이번 개정안은 하청 노동자에게도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원청(대통령실)을 교섭 당사자로 인정하고 단체교섭을 요구할 권리를 부여하는 게 가능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jen9@ilyosisa.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