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 갈등 시즌2 시나리오

불씨 잡다 큰불 놓친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전환이 없으면 한국 의료는 붕괴한다.” 이미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상황에 제동을 걸고 방향을 완전히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다. 의료계 내부에서 수십년 전부터 나왔던 말이다. 그때와의 차이점이 있다면 이제 붕괴 시점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는 사실뿐이다.

윤석열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하던 의료개혁이 현안에서 사라졌다. 계엄 이후 정권교체에 성공한 이재명정부는 의료개혁과 관련해 별다른 조처를 하지 않고 있다. 임기 초반 병원을 떠난 전공의와 학교를 떠난 의대생에게 특혜를 준다는 인상을 줘 여론의 역풍을 한차례 맞고 난 이후 손 놓은 듯한 모습이다.

반복되는

의과대학 정원을 2000명 늘리는 내용을 골자로 한 의료 정책은 의료계와 정부 간 갈등으로 이어졌다. 의료 현장을 떠받치고 있던 인력이 사라졌고 미래 인력은 학업을 거부했다. 인력 부족으로 ‘응급실 뺑뺑이’ 사건이 일어나는 등 현장이 마비됐고 의료 붕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쏟아졌다.

1년여간 상황이 지속되자 의정 갈등의 연쇄 반응이 국민 피해로 이어지는 상황을 수습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하지만 지난해 12월3일 윤석열 전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는 이 논의에 찬물을 끼얹었다. 모든 이슈가 계엄이라는 블랙홀에 빨려 들어갔고 탄핵 정국, 조기 대선으로 이어지면서 의료개혁은 표류했다. 그러면서도 정권이 바뀌면 의료개혁이 다시 추진되리라는 기대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이정부는 의료계와 정부 사이의 갈등이 한없이 깊어진 상태에서 현안을 넘겨받았다. 여러 정부에서 진행했지만 끝내 합의에 이르지 못한 의료계 문제를 이정부에서 봉합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컸다. 비상계엄으로 몰락한 윤정부에서조차 의료개혁은 지지를 받을 정도로 의료계에 대한 국민 여론은 좋지 않았다.

무엇보다 의료계 내부에서도 출구를 찾아야 한다는 의견이 팽배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정은경 전 질병관리청장을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지명하면서 그 기대감은 더욱 커졌다. 정 장관은 문재인정부 시기인 코로나19 당시 ‘방역 수장’으로 국민에게 눈도장을 찍은 상태였다. 배우자의 주식 문제로 청문회 때 홍역을 치르긴 했지만 무난하게 장관이 됐다.

의료계는 정 장관의 지명 때부터 일제히 환영의 뜻을 보였다. 의사 출신이라는 점과 코로나19 당시 보여줬던 리더십이 긍정적인 평가로 이어졌다. 전공의 복귀, 의대생 복학 등 인력 수급부터 필수의료, 수가 등 정책 문제에 이르기까지 의료계에 산적해 있는 현안을 처리할 수 있겠다는 믿음을 드러낸 것으로 풀이됐다.

하지만 정 장관이 취임한 이후에도 의정 갈등은 해소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오히려 ‘제2의 의정 갈등’을 예고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재명정부는 임기 초 한 차례 비판받고 난 뒤 의료개혁에 대해 손을 놓아버린 느낌”이라며 “정 장관이 나서서 뭘 할 타입은 아니니 의료개혁은 표류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일을 하기 위해 자리에 오르는지, 자리에 오르기 위해 일을 하는지를 잘 살펴야 하는데 현재 의사 단체의 윗선들은 자리에 오르기 위해 일하는 듯하다”며 “의협은 의협대로 구심점 역할을 못하는 것 같고 다른 의사 단체도 선봉에서 이끌던 사람이 사라지니 흐지부지되고 있다”고 직격 비판했다.


존재감 사라진 복지부 장관
국립대병원 부처 이관 갈등

오는 16일로 예정된 궐기대회에 대해서도 큰 반향은 예상하지 않는 듯했다.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는 오는 11일 보건복지부 청사 앞에서 항의 집회를 시작으로 대정부 투쟁을 재개한다고 밝혔다. 이날에는 전국의사대표자 궐기대회도 열겠다고 했다.

앞서 의협은 지난달 30일 ‘국민건강보호 대책특별위원회(범대위)’를 구성하고 대정부 투쟁을 예고한 바 있다.

의협이 문제 삼는 법안과 정책은 약사의 성분명 처방, 한의사 엑스레이 사용, 검체 검사 위·수탁 개선 등이다. 의료계는 “장기적으로 봤을 때 국민 건강에 해를 끼치고 1차 병원이 고사할 수 있는 제도”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처럼 의협이 이정부 들어 첫 대정부 투쟁을 예고하면서 의료개혁은 또 다른 국면으로 접어드는 모양새다.

또 다른 의료계 관계자는 “전공의가 복귀하고 의대생이 돌아오면서 표면적으로는 의정 갈등이 봉합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의정 갈등 과정에서 드러난 문제는 새로운 내용이 아니다. 정부가 아무 대책 없이 2000명 증원을 발표하면서 거칠게 터져나왔을 뿐 언제 터져도 터질 일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천지개벽 수준의 대전환이 필요한 상황이다. 2030년 전후로 재정(건강보험)이 고갈된다. 많은 의료 분야 학자들이 의료 붕괴가 일어날 것으로 예측한 시기다. 의료 붕괴라는 게 어느 날 갑자기 망하는 식으로 오지 않는다. 서서히 무너져서 그 상태로 쭉 가는 것이다. 환자가 불편함을 느끼는 시점이 오면 그땐 되돌릴 수 없다”고 경고했다.

의료계 관계자는 제2의 의정 갈등 외에도 여기저기서 갈등의 불씨가 자꾸 만들어지고 있다고 한탄했다. 그 한 예로 든 게 국립대병원의 주무 부처 변경 건이다. 보건복지부는 현재 교육부가 관리하는 국립대병원의 소관 부처를 이관하려 하고 있다. 지역·필수·공공의료를 강화한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문제는 국립대 교수들의 반대다. 이들은 국립대병원의 소속이 보건복지부로 변경되면 교육·연구 역량이 약화할 것으로 우려했다.

한 국립대 교수는 “보건복지부가 국립대병원을 ‘빅5’ 병원 수준의 지역 거점병원으로 키우겠다고 말하고 있는데, 이는 공허한 약속”이라며 “이관 계획은 여러 가지 근본적인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오히려 국민 건강과 지방 의료의 미래를 위협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지난 수십년 동안 국립중앙의료원을 보건복지부 소관으로 둔 결과를 복기해야 한다”며 “(국립중앙의료원은) 1970년대 국내 최고 수준의 의료기관이었지만 현재 상황은 처참하다. 보건복지부가 효과적으로 관리, 육성하지 못했다는 방증”이라고 지적했다.

한 부처 관계자는 물론 학계, 의료계 등 다방면에서 의견을 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쪽 의견만 듣고 정책을 강행하다가는 자칫 실패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힘겨루기

그러면서 “국립대병원 이관 계획은 국민 건강을 위한 진전이 아니라 과거 실패를 반복할 가능성이 있는 위험한 정책”이라며 “이관을 중단하고 근본적 구조 혁신을 우선 추진하는 게 국민과 지방 의료계를 위한 올바른 길”이라고 강조했다.

<jsjang@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민주당 사법개혁 진짜 속내

민주당 사법개혁 진짜 속내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더불어민주당이 사법개혁안을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사법부가 빌미를 제공했단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이 당리당략을 위해 허점이 많은 법안을 밀어붙인단 비판도 있다. 대통령 재판중지법 추진을 엮어 이재명 대통령까지 패로 쓰려 했던 민주당의 진짜 속내는 뭘까?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사법개혁특별위원회가 지난달 20일 ▲대법관 증원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 구성 변경 ▲법관 평가에 변호사협회 평가 반영 ▲하급심 판결문 전면 공개 ▲압수수색 영장 발부 전 사전심문제 도입 등 5대 사법개혁안을 확정해 발표했다. 법 왜곡죄 신설과 재판소원 제도는 별도로 추진할 예정이다. 5대 개혁안 확정 발표 민주당의 사법개혁안 발표 이후 대법원과 야권은 즉각 반발했다. 대법원이 특히 반발했던 개혁안은 대법관 증원이었다. 민주당 안에 따르면, 현행 14명인 대법관은 4년 동안 매년 4명씩 늘려 30명까지 채운다. 이재명 대통령은 임기 내에 신임 대법관 16명과 임기 만료 후 교체되는 대법관 10명 등 총 26명을 임명한다. 대법원은 지난달 29일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실에 “대법관 증원은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는 취지의 의견서를 제출했다. 대법원은 “대법관 과반수 또는 절대다수가 일시에 임명되면, 정치적 논란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며 “후임 대법관 임명 때마다 논란이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고 반발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도 지난달 22일 국회서 진행된 ‘민주당의 입법에 의한 사법 침탈 긴급 토론회’에서 “민주당의 사법개혁안은 사법 해체안”이라며 “사법부의 중립성은 온데간데 없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사법부 스스로 민주당에 빌미를 제공한 측면이 있다”고 보는 분위기다. 빌미로 작용하는 구체적 사례는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 부장판사의 윤석열 전 대통령 구속 취소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파기환송 등이다. 지 부장판사는 지난 3월 윤 전 대통령 측의 구속 취소 청구를 인용했다. 핵심 근거는 “수사 관련 서류가 법원에 있었던 시간은 구속기간에 산입하지 않는 게 타당하다”는 것이었다. 이어 “기술이 발달해 정확한 서류 접수·반환 시간을 확인할 수 있고, 관리하는 게 어렵지 않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윤 전 대통령의 구속기간을 시간 단위로 계산한 후 “구속 기한이 만료됐다”고 판단했다. 형사소송법 제66조 제1항은 “구속기간의 초일은 시간을 계산하지 않고, 1일로 산정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지 부장판사가 집필에 참여해 지난 2022년 발간된 <주석 형사소송법>도 “구속기간 계산은 시간이 아닌 일(日)로 한다”며 “구속기간은 날짜 단위 계산법을 따른다”고 명시했다. 검찰이 지 부장판사의 구속 취소에 즉시항고를 제기하지 않아 반발은 더욱 커졌다. 이후 지 부장판사는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과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의 재판을 비공개하거나 “보석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는 의견을 밝히는 등 물의를 일으켰다. 지난 5월부터는 “고급 룸살롱에서 접대를 받았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대법원은 제21대 대통령선거를 33일 앞둔 지난 5월1일 이 대통령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대법원은 지난 3월28일 서울고등법원으로부터 이 대통령 사건 기록을 받았고, 4월22일 전원합의체에 넘겼다. 이로부터 불과 9일 후 상고심 선고가 진행됐기 때문에 논란이 발생했다. 빌미 제공한 사법부에 몰아치는 민주 왜? 당리당략 위해 여야 번갈아 “대법관 증원” 민주당은 “기록 6만쪽을 제대로 검토하지 않은 졸속 재판”이라고 반발했다. 법원 내부에서도 “듣도 보도 못한 초고속 절차 진행”이라며 “대법원은 왜 정치를 하느냐는 국민적 비판까지 감수한 무리한 행동을 하느냐”는 반발이 나왔다. 이후 범여권은 조희대 대법원장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유지하면서 사법개혁안을 추진하고 있다. 민주당은 특유의 일사불란한 몰아치기 전술로 사법개혁안을 한꺼번에 처리하려 하고 있다. 보복을 위해 대법원을 무력화하려는 것일 가능성도 스스로 노출하고 있다. 사법개혁안 중 특히 논란이 되는 것은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추진 ▲법 왜곡죄 신설 등이다. 대법관 증원론은 1994년부터 제기됐다. 상고허가제는 밀려드는 상고심 접수에 대응하기 위해 1981년부터 운영됐다가 위헌 논란이 제기돼 1990년 폐지됐다. 대법관 증원론은 상고허가제 폐지 이후 대안으로 거론됐다. 대법원은 당시에도 반대 의견을 밝혔다. 상고심 절차에 관한 특례법에 따른 심리불속행 기각 특례는 1994년 도입됐다. 하지만 상고심 접수는 나날이 늘었다. 지난해에 접수된 상고심 접수 건수는 동일인에 의한 과다 소송을 제외하면 1만3026건이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상고법원 설치를 시도했다. 대법원은 전원합의체 사건만 전담하고, 상고법원은 그 외 상고심을 맡아 사실상 4심 법원 체제로 운영하려던 시도였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법원행정처를 내세워 ▲불법 로비 ▲재판 거래 ▲판사 사찰 등을 저질렀단 의혹이 불거졌다. 양 전 대법원장 등 당시 대법원 수뇌부는 현재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상고허가제는 “국민이 상고심을 받을 권리를 침해한다”는 비판이 다시 제기될 가능성이 있어 섣불리 꺼내기 어렵다. 상고법원 설치는 금기시됐다. 심리불속행 기각 특례는 누가 봐도 한계에 부딪힌 지 오래다. 남은 대안은 대법관 증원밖에 없다. 하지만 대법원은 대법관 증원론이 거론될 때마다 강하게 반대해 왔다. 사법부는 1994년에도 “인구 1억2000만명인 일본의 대법관 수도 15명”이라며 “법령 해석의 통일이라는 대법원의 고유 기능 측면에서 볼 때, 대법관 13명도 많은 숫자”라고 주장했다. 이후 대법원은 대법관 증원론이 제기될 때마다 ▲전원합의체 유지 ▲파기환송 증가로 인한 송사 비용 증가 ▲재판 지연 ▲인사청문회·임명 지연 등 논점을 제시하면서 반대 의견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정치권은 정략적으로 접근한다. 국민의힘의 전신 한나라당은 지난 2010년 우리법연구회 좌편향 논란을 제기하면서 대법관 증원을 시도했다. 당시 한나라당은 “비법관 출신 8명을 포함해 대법관을 24명으로 늘리자”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이명박정부가 사법부를 장악하려고 한다”며 반발하는 등 현시점에선 기시감이 느껴지는 상황이 이어졌다. 대법원은 당시에도 크게 반발했다. 여야는 대법관을 20명으로 늘리기로 합의했다가 곧 백지화시켰다. 돌고 도는 직권남용 당시 한나라당이 우리법연구회 소속 법관들을 겨냥해 대법관을 늘리기로 한 것처럼, 민주당도 대법원의 이 대통령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파기환송 이후 급하게 대법관 증원을 추진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이 대통령 재판에 대한 보복을 하려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 발생했다. 우리 정치권은 눈앞의 정치적 상황 때문에 긴 안목으로 검토해야 할 사안을 급하게 밀어붙여 부작용을 양산하는 고질적인 문제가 있다. 법 왜곡죄 신설은 지난해에 이어 다시 추진된다. 범여권은 꾸준히 법 왜곡죄 신설을 시도했다. 제20대 국회에선 정의당 심상정 전 의원이 발의했으나 국회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제21대 국회에선 민주당 김남국 당시 의원(현 대통령실 디지털소통비서관)이 발의했다. 지난해엔 민주당 이건태 의원이 발의했다. 지난해까진 검사·사법경찰관 등 수사 업무 종사자들을 대상으로 발의됐으며, 이번 추진엔 법관도 포함된다. 1년여 동안 법관도 법 왜곡죄 적용 대상에 포함돼야 할 정도로 달라진 변수는 지 부장판사 관련 논란과 이 대통령 공직선거법 사건 파기환송밖에 없다. 그런데 여기엔 심각한 오류들이 있다. 민주당은 이미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쪼개는 검찰 해체 법안 통과를 완수했다. 이에 따르면, 중대범죄수사청에 소속될 검사는 수사관 신분으로 전환된다. 공소청에서 근무할 검사는 기소·공소 유지만 맡는다. 부장검사를 지낸 김상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부교수는 지난 6월 발표한 <법 왜곡죄에 관한 소고>에서 “기소 이후엔 절차 지휘권이 법원으로 넘어간다”며 “검사는 판사에 의한 법 왜곡죄의 공범으로 가담할 수 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검찰 해체 이후 검사에겐 수사권이 없고, 공소 유지는 법관이 전담하는데, 검사가 어떻게 법 왜곡죄를 저지르는 주체가 되느냐”는 취지의 반박이다. 김 부교수는 법관을 법 왜곡죄 적용 대상에 포함하는 민주당의 시도도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법 왜곡죄 도입이 특정인의 특정 사건을 염두에 두고 추진되는 게 아니냐는 의심을 도저히 지울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지난해 법안엔 검사 등 수사기관으로 규율 범위가 한정됐지만, 대법원이 특정인에게 불리한 판결을 선고하자, 12일 만에 법관을 적용 대상에 추가해 발의했다”고 꼬집었다. 대통령 구하기? 그러면서 “이 의심은 막연한 추정이 아니라 고도의 개연성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법 왜곡죄는 독일 형법으로부터 비롯됐다. 독일의 법 왜곡죄는 “법관 등이 재판 등을 하면서 당사자 일방에게 유리하거나 불리하게 법을 왜곡하면 징역형에 처한다”는 취지의 법률이다.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해 다른 사람에게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하면 처벌한다”는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이하 직권남용죄)의 법관 전용 특별규정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법 왜곡죄에 대해선 “법관에 대해서도 이미 있는 직권남용죄를 적용할 수 있다”면서 “굳이 신설할 필요가 있느냐”는 지적도 제기된다. 아울러 직권남용죄에 대해서도 “정치권이 정치 보복 목적으로 활용하는 측면이 강하다”는 지적이 오래전부터 제기돼왔다. 다수의 고위공직자에게 직권남용죄가 본격적으로 적용된 시초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연루자들에 대한 것이었다. 이후 출범한 문재인정부의 검찰도 박근혜정부 인사들에게 직권남용죄를 적용해 기소하는 사례가 많았다. 문정부에서 서울중앙지검장·검찰총장을 지내면서 직권남용죄를 다수 적용했던 사람은 바로 윤 전 대통령이었다. 실제로 검찰의 직권남용죄 총처분 건수는 2011년 4057건서 2020년엔 1만4050건으로 늘어난 통계도 제시됐다. 직권남용죄에 대해선 “개념이 모호해서 악용될 소지가 많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무원의 직권은 어디까지인지, 무엇이 남용인지, 직권과 행사에 방해를 받은 권리에 인과관계가 있는지도 명확하지 않다”는 취지의 지적이다. 이렇게 되면 “이렇게 하면 범죄가 성립돼 처벌을 받는다”고 명확하게 규정돼야 한다는 법 명확성의 원칙에 어긋난다. 수사·기소를 하는 수사기관과 판단을 하는 법관의 재량에 판단이 좌우되는 일이 많다. 권성 전 헌법재판관은 지난 2006년 직권남용죄에 대한 헌법소원 당시 “조항이 모호해서 정권교체 후 정치 보복을 위한 고위공직자 처벌에 이용될 우려가 있다”며 위헌 취지의 소수 의견을 냈다. 이 파기환송에 “판사 법 왜곡 처벌” 수사권 없어지는데 검사도 포함 추진 권 전 재판관은 지난 2022년 <법률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남용을 방지하려면 요건을 명백히 규정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위헌 의견을 냈다”며 “우려했던 현상들이 현실로 나타났다”고 주장했다. 이어 “제가 의견을 밝혔을 때 서둘러 개정했다면, 좋지 않은 일들이 벌어지진 않았을 거라서 아쉽다”고 덧붙였다. 권 전 재판관이 발언했던 시점은 윤 전 대통령 취임 후 약 5개월이 지난 시기였다. 문정부도 직권남용죄의 함정에 빠져, 문 전 대통령 재임 중인 지난 2019년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과 관련해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 등이 직권남용죄로 기소됐다. 대법원은 지난 2022년 김 전 장관에 대한 징역 2년형을 확정했다. 산업통상자원부·과학기술정보통신부·통일부에 대해서도 “인사권과 관련된 직권남용이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에 연루돼 기소된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등은 현재 항소심 재판을 받고 있다. 윤석열정부 출범 이후인 지난 2022년 10월엔 ‘서해 피격 공무원 월북 조작’ 의혹과 관련해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과 서욱 전 국방부 장관 등 문정부 인사들이 불구속 기소됐다. 문정부 검찰총장으로서 다수의 직권남용을 지휘했던 윤 전 대통령도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선포 이후 다수의 직권남용 혐의 때문에 구속 기소됐다. 민주당은 한동안 “대통령 재임 중엔 진행 중인 형사재판을 중지한다”는 취지의 대통령 재판중지법을 추진했다. 이 대통령이 취임 전 다수의 형사재판을 받고 있었고, 대법원이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던 사건도 있었던 현실을 고려한 법안 추진이었다. 발의 시점도 대법원의 파기환송 판결 다음 날인 지난 5월2일이었다. 민주당은 ‘국정안정법’이란 별명까지 붙여가면서 이달 안에 처리하려고 했다. 그런데 반발은 정작 대통령실에서 나왔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지난 3일 “재판중지법은 불필요하단 게 대통령실의 일관적 입장”이라고 말했다. 이어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도 “여당에 사법개혁안 중 대통령 재판중지법 제외를 요청했다”고 말했다. 이후 “민주당이 이 대통령까지 옭아매 패로 쓰려던 것 아니냐”는 의심이 제기됐다. 대통령 재판중지법에 따르면, 현직 대통령이 받는 형사재판은 임기 중에만 중지된다. 퇴임 이후엔 다시 진행되기 때문에 유죄를 선고받으면 수감 생활을 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한다. 따라서 일각에선 “진짜 이 대통령에게 필요한 것은 공소 취소”라고 주장한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도 지난 6월 “공소를 취소하는 게 맞다”는 의견을 밝혔다. 이후 비판받은 사람은 민주당 정청래 대표였다. ▲유엔 총회 ▲아세안 정상회의 ▲APEC 정상회의 등 이 대통령의 정상외교 일정이 겹친 시기에 대통령 재판중지법을 강하게 추진한 사람이 정 대표였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선 “대통령을 구했다는 프레임을 설정해서 당 대표 재선에 활용하고, 차기 대권까지 노리려는 것”이란 일각의 분석도 나온다. 법률적 이해관계 민주당의 사법개혁안엔 이 대통령의 법률적 이해관계가 묶인 내용이 다수 포함돼있다. 아울러 “특정 정치인이 자기 정치를 위해 현임 대통령까지 이용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법률적으로 성립하기 어려운 오류에 대한 지적에도 개의치 않는다. “보복·당리당략·자기 정치를 위해 막 던지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 제기되는데도 특유의 몰아치기가 작동한다. 민주당이 사법개혁을 추진하는 진짜 속내는 무엇일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