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검찰개혁을 마친 정부·여당의 칼날이 사법부를 향했다. 사법개혁의 고삐를 나란히 쥐었지만 속도를 놓고 의견이 엇갈리는 모양새다. ‘신중히’를 외치는 정부와 달리 더불어민주당은 ‘빠르게’를 요구하고 있다. 속마음을 알아주지 않으니 정부도, 여당도 서로 답답하기만 하다.

지난달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과 범여권의 주도로 검찰청 폐지와 중대범죄수사청 설치 등의 내용을 담은 정부조직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78년 만에 검찰청이 역사 속으로 사라진 것이다. 검찰개혁에 반대하던 보수 진영이 뒷다리 잡기에 나섰지만 민주당은 이미 사법개혁의 길을 거침없이 걷고 있다.
잰걸음
민주당은 이른 시일 안에 사법개혁안을 공개하겠다는 방침이다.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공개될 개혁안은) 확정안이 아니고 지금까지 논의된 사개특위 차원의 안을 국민께 말씀드리고 그때부터 법안이 발의되고 국민과 함께하는 공론화 시간이 시작된다”고 설명했다.
민주당 사법개혁특별위원회가 마련한 초안에는 ▲대법관 증원 ▲대법관 추천위원회 구성 다양화 ▲법관 평가제도 개선 ▲하급심 판결문 공개 확대 ▲압수수색 사전 심문제 도입 등 ‘5대 개혁 의제’가 담길 것으로 전망된다.
이 중에서도 핵심은 대법관 증원과 재판소원이다. 우선 대법관 수는 현행 14명에서 최대 26명까지 늘리는 방안이 유력하다. 그동안 민주당은 업무량에 비해 대법관 수가 적어 대법원이 제대로 기능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이번 개혁으로 대법관 수를 늘려 사건 부담을 해소하고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도 보장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헌법재판소(이하 헌재)에 헌법소원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하는 재판소원 도입 여부도 주목된다. 사실상 ‘4심’인 재판소원에 대해 법조계는 오히려 헌재에 업무가 몰리고, 대법원 판결이 훼손된다는 등의 이유로 반대하고 있어 민주당의 신중한 접근이 예상된다.
사법개혁의 짜임새가 드러나면서 민주당은 강하게 치고 나갔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추석 연휴에도 SNS를 통해 “상기하자 조희대의 난, 잊지 말자 사법개혁”이라는 글을 올리면서 사법개혁이 당의 주요 과제임을 다시 한번 못 박았다. 추석 전 검찰개혁을 끝낸 만큼 사법개혁은 11월까지 완수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민주당은 조희대 대법원장과 지귀연 판사를 몰아붙이며 개혁의 대상으로 삼았다. 연휴 이후 정 대표는 “우리가 맞서야 할 개혁에 저항하는 반동의 실체들”이라며 “내란에 맞선 이번 개혁은 이전의 개혁과는 달라야 한다. 반격의 여지를 남겨두면 언제든 다시 내란 세력은 되살아난다”고 주장했다.
여, 검찰청 깨고 이제는 사법부로
“이러니…” 조희대·지귀연 십자 포격
앞서 정 대표는 추석 민심에 대해 “현장에서는 불안한 마음도 있었다. ‘내란 수괴가 또 풀려나는 것은 아니냐’ ‘재판이 왜 이렇게 늦어지냐’ 등 걱정이 많았다”고 설명한 만큼 사법개혁이 더뎌져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정 대표의 거침없는 행보에 강성 지지층은 환호했지만 당 지지율이 소폭 하락한 것으로 미뤄볼 때 중도층을 설득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검찰개혁은 ‘민주당의 숙원’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오래된 의제다. 반면 사법개혁 여론이 충분히 무르익지 않았고, 이 대통령의 재판이 엮여 있던 점 등으로 봐서 내막을 모르는 국민에겐 단순한 정치 보복으로 비칠 수 있다.
‘조희대 때리기’가 곧 사법개혁 프레임으로 굳어지면서 민주당의 탄핵 남발 프레임 또한 무시할 수 없게 됐다.
그럼에도 정 대표를 비롯한 민주당 지도부는 자신들의 리더십이 타격을 입을지언정 개혁 입법을 차질 없이 완수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개혁 적기를 놓친다면 남은 임기 동안 흐지부지 논의만 이어가다 끝내 실패할 것이란 우려에서다.
민주당과 달리 대통령실은 개혁 신중론에 힘을 실었다. 이 대통령은 대선후보 당시 공약집에 사법개혁을 포함하는 등 의지를 보였지만 야당 대표였던 그때와 달리 지금은 무엇 하나 강하게 밀어붙이기 어려운 상황이다.
사법개혁의 물꼬는 민주당이 틀었지만 성과도 후폭풍도 모두 대통령의 몫이다. 사회적 논의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은 지금 대통령실 입장에서 민주당의 행보는 ‘과속’이라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대통령실은 에둘러 표현에 나섰다.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은 한 유튜브 채널에서 “불편해하는 사람들도 수술대 위로 살살 꼬셔서 마취하고 잠들었다가 일어났는데 ‘아, 배를 갈랐나 보네. 혹을 뗐구나’ 생각하게 만드는 게 개혁이어야 한다고 대통령은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우상호 대통령실 정무수석 역시 KBS 라디오를 통해 “개혁을 안 할 수는 없다”면서도 “중도와 합리적 보수 진영에서는 ‘개혁하는 것은 좋은데 싸우듯이 하는 것은 불편하고 피곤하다’며 피로를 얘기하는 분들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민의 사랑을 받고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접근 방식으로 개선해야 한다”며 “지금 민심은) ‘여권이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세상이 조금 시끄럽다’는 게 총평으로 보인다. 시끄럽지 않게 개혁하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뼛속에 각인된 ‘개혁 실패’ 트라우마
당정 갈등 신호탄? 12월까지 잡음 예상
민주당 역시 대변인을 통해 “정 대표는 대통령실과 거의 매일, 하루에 2~3차례씩 소통한다”며 갈등 봉합에 나섰지만 강경파 의원들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당내에서조차 엇박자라는 비판이 나온다.
국회 국정감사가 시작되자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중심으로 조 대법원장을 겨냥한 압박 수위가 최고조에 달했다. 사법부가 저항하고 침묵할수록 민주당은 사법개혁의 정당성을 주장하며 착실히 동력으로 삼고 있다.
내란 가담 혐의를 받는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에 대한 특검의 구속영장이 기각되던 날 정 대표는 “내란 척결에 대한 법원의 반격이냐, 이렇게 하면 사법부 독립과 신뢰가 높아지느냐? 조 대법원장님, 대답 좀 해보시라”고 비판했다.
민주당 전현희 수석최고위원 역시 “내란 수괴를 불법 석방한 것도 모자라 내란 총리, 내란 장관 구속영장까지 줄줄이 기각한 법원을 더는 묵과할 수 없다”며 “사법부 스스로가 사법개혁을 자초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불협화음 조짐에도 민주당 강경 지지층과 의원들이 개혁을 서두르는 이유는 과거부터 쌓인 ‘개혁 실패 트라우마’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당장 검찰개혁만 하더라도 노무현-문재인-이재명정부 3대를 거쳐 비로소 완성됐다. 정부의 힘이 가장 센 지금 사법·언론개혁까지 끝마쳐야 하는데, 대통령실이 주장하는 ‘온건한 개혁’으로는 내란 세력과 맞서 싸울 수 없다는 것이다. “조용한 개혁은 존재할 수 없다”는 여론이 민주 진영에 확산된 것 역시 궤를 같이한다.
겨우 한고비
대통령실과 민주당 모두 당정 갈등에는 선을 그었지만 온도 차까지 부정하기 어려워 보인다. 민주당은 올해 안에 3대 개혁을 모두 마치겠다는 입장으로 개혁 속도를 둘러싼 잡음은 연말까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거대 야당인 민주당의 주도로 검찰개혁이 통과된 것처럼 사법개혁도 진통 끝에 마침표를 찍겠지만, 장기간 지속될 경우 지지층 간의 갈등으로까지 번질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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